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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78회 풍질을 치료하는 신묘한 의사가 죽고, 유명을 전하며 간웅이 운수를 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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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七十八回 治風疾神醫身死 傳遺命奸雄數終
2
제78회 풍질을 치료하는 신묘한 의사가 죽고, 유명을 전하며 간웅이 운수를 다하다.
 
 
3
卻說漢中王聞關公父子遇害,哭倒於地; 衆文武急救,半晌方醒,扶入內殿。孔明勸曰:“王上少憂。自古道‘死生有命’;關公平日剛而自矜,故今日有此禍。王上且宜保養尊體,徐圖報仇。”玄德曰:“孤與關、張二弟桃園結義時,誓同生死。今雲長已亡,孤豈能獨享富貴乎!”言未已,只見關興號慟而來。玄德見了,大叫一聲,又哭絕於地。 衆官救醒。一日哭絕三五次,三日水漿不進,只是痛哭;淚濕衣襟,斑斑成血。孔明與 衆官再三勸解。
 
4
한편, 한중왕은 관우 부자가 살해된 것을 전해 듣고 통곡하며 바닥에 쓰러지니, 문무 관리들이 급히 구했다. 한참 뒤에야 깨어나자 부축해서 내전으로 들였다. 공명이 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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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께서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로부터 이르기를, ‘생사는 운명에 달렸다,’ 라고 했습니다. 관공이 평소에 굳세고 자긍심이 있더니 오늘 이렇게 화를 입었습니다. 주상께서는 우선 옥체를 보양하시며 천천히 복수를 도모하셔야 합니다.”
 
6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7
“나와 관우, 장비 두 아우는 도원에서 결의할 때 생사를 같이할 것을 맹세했소. 이제 운장이 이미 죽었으니, 내가 어찌 홀로 부귀를 누리겠소!”
 
8
했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관흥이 울부짖으며 왔다. 현덕이 보더니 크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다시 통곡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관리들이 구해서 깨웠다. 하루에 통곡하며 혼절하기를 서너 차례 하며 사흘간 물과 장도 먹지 않고 오로지 통곡할 따름이었다. 눈물이 옷자락을 적셔 핏자국이 얼룩덜룩했다. 공명과 관리들이 거듭 말렸다.
 
 
9
玄德曰:“孤與東吳,誓不同日月也!”孔明曰:“聞東吳將關公首級獻與曹操,操以王侯禮祭葬之。”玄德曰:“此何意也?”孔明曰:“此是東吳欲移禍於曹操,操知其謀,故以厚禮葬關公,令王上歸怨於吳也。”玄德曰:“吾今即提兵問罪於吳,以雪吾恨!”孔明諫曰:“不可。方今吳欲令我伐魏,魏亦欲令我伐吳,各懷譎計,伺隙而乘。王上只宜按兵不動,且與關公發喪。待吳、魏不和,乘時而伐之,可也。” 衆官又再三勸諫,玄德方才進膳,傳旨川中大小將士,盡皆掛孝。漢中王親出南門招魂祭奠,號哭終日。
 
10
현덕이 말하기를,
 
11
“나와 동오는 맹세코 해와 달을 같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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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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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니 동오에서 관공의 수급을 조조에게 바쳐서, 조조가 왕과 제후의 예로써 장례를 치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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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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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무슨 뜻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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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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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동오가 재앙을 조조에게 떠넘기려는 것인데, 조조가 그 계략을 알아차렸기에 관공을 두터운 예로써 장사지낸 것입니다. 주상으로 하여금 동오에 원한을 돌리도록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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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19
“내가 지금 즉시 병력을 이끌고 동오의 죄를 물어 내 원한을 씻겠소!”
 
20
하니, 공명이 간하기를,
 
21
“안 됩니다. 바야흐로 지금 동오는 우리가 위나라를 치기를 바라고, 위나라 역시 우리가 동오를 치기를 바랍니다. 각각 서로 남을 속이는 계책을 품고 기회를 노릴 것입니다. 주상께서는 오로지 병력을 움직이지 않고 우선 관공을 위해 초상을 치러야 합니다. 동오와 위나라가 서로 불화하기를 기다렸다가, 그 틈을 타서 정벌하셔야 합니다.”
 
22
했다. 관리들도 거듭 권하며 간했다. 현덕이 그제야 음식을 먹으며 천중(동서 양천 지방)의 대소 장사들에게 모두 상복을 입도록 지시했다. 한중왕이 몸소 남문을 나가 관공의 혼을 부르며 장례를 치르는데 하루 종일 목 놓아 울었다.
 
 
23
卻說曹操在洛陽,自葬關公後,每夜合眼便見關公。操甚驚懼,問於 衆官。 衆官曰:“洛陽行宮舊殿多妖,可造新殿居之。”操曰:“吾欲起一殿,名建始殿。恨無良工。”賈詡曰:“洛陽良工有蘇越者,最有巧思。”操召入,令畫圖像。蘇越畫成九間大殿,前後廊廡樓閣,呈與操。操視之曰:“汝畫甚合孤意,但恐無棟梁之材。”蘇越曰:“此去離城三十裏,有一潭,名躍龍潭;前有一祠,名躍龍祠。祠傍有一株大梨樹,高十餘丈,堪作建始殿之梁。”
 
24
한편, 조조는 낙양에서 관공의 장례를 치른 뒤부터 매일 밤 눈만 감으면 관우가 보였다. 조조가 몹시 놀라고 두려워서 관리들에게 묻자 그들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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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의 행궁은 오래된 전각이라 요사스런 기운이 많으니 새로 전각을 지어 머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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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27
“내가 전각 하나를 지어서 건시전이라고 이름 짓고 싶었으나 솜씨 좋은 목수가 없어 한스러웠소.”
 
28
하니, 가후가 말하기를,
 
29
“낙양의 좋은 목수로 소월이란 사람이 있는데 (솜씨가) 무척 교묘합니다.”
 
30
했다. 조조가 불러들여 설계도를 그리게 했다. 소월이 아홉 간의 큰 전각과 전후의 행랑, 누각을 그려서 조조에게 바쳤다. 조조가 보고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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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계획이 나의 뜻과 아주 일치하나, 다만 기둥과 대들보로 쓸 재목이 없을까 걱정이오.”
 
32
하니, 소월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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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성 밖 3십 리에 연못이 하나 있는데 약룡담이라 합니다. 그 앞에 사당이 하나 있는데 약룡사라 합니다. 사당 옆에 한 그루 커다란 배나무가 있어 그 높이가 십여 길이니 건시전 대들보로 쓸 만합니다.”
 
34
했다.
 
 
35
操大喜,即令人工到彼砍伐。次日,回報此樹鋸解不開,斧砍不入,不能斬伐。操不信,自領數百騎,直至躍龍祠前下馬,仰觀那樹,亭亭如華蓋,直侵雲漢,並無曲節。操命砍之,鄉老數人前來諫曰:“此樹已數百年矣,常有神人居其上,恐未可伐。”操大怒曰:“吾平生遊曆,普天之下,四十餘年,上至天子,下及庶人,無不懼孤;是何妖神,敢違孤意!”
 
36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사람들을 시켜 그곳으로 가서 벌목하도록 했다. 다음날, 되돌아와 보고하기를, 그 나무는 톱질로 자를 수도 없거니와 도끼로 찍어도 들어가지 않아서 벨 수가 없다고 했다. 조조가 믿지 않고 몸소 수백 기마를 거느리고 곧바로 약룡사 앞으로 가서 말에서 내렸다. 그 나무를 올려다보니, 우뚝 솟은 것이 마치 제왕의 일산 같고 은하수까지 치솟은 듯한데 전혀 구부러지지 않았다. 조조가 베어내라고 명령하자 시골노인 몇 사람이 앞으로 와서 간하기를,
 
37
“이 나무는 수백 년이나 되는데 늘 신인이 그 위에 사시니, 아마 베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38
했다. 조조가 크게 노해 말하기를,
 
39
“내 평생에 천하를 돌아다니기를 4십여 년으로 위로는 천자, 아래로는 서민들까지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다. 무슨 요사스런 귀신이라고 감히 나의 뜻을 거스르겠느냐!”
 
40
했다.
 
 
41
言訖,拔所佩劍親自砍之,錚然有聲,血濺滿身。操愕然大驚,擲劍上馬,回至宮內。是夜二更,操睡臥不安,坐於殿中,隱幾而寐。忽見一人披發仗劍,身穿皂衣,直至面前,指操喝曰:“吾乃梨樹之神也。汝蓋建始殿,意欲篡逆,卻來伐吾神木!吾知汝數盡,特來殺汝!”操大驚,急呼:“武士安在?”皂衣人仗劍砍操。操大叫一聲,忽然驚覺,頭腦疼痛不可忍。急傳旨遍求良醫治療,不能痊可。 衆官皆憂。
 
42
말을 마치더니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직접 나무를 찍었다. 쨍! 소리가 나면서 조조의 온몸에 피가 뿌려졌다. 조조가 악!하고 크게 놀라 검을 내던지고 말을 타고 궁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2경(밤10시쯤)에 조조가 누워서 자는 것이 불안하여 전각 안에 앉아 있다가 안석에 기대어 잠들었다. 홀연히 한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검을 잡고, 몸에는 검은 옷을 입었으며, 바로 면전으로 와서 조조를 손가락질하며 외쳐 말하기를,
 
43
“나는 바로 배나무의 신이다. 네가 건시전을 짓겠다니 찬역할 뜻을 품고 내 신목을 베려온 것이구나! 네 운수가 다한 것을 알고 특별히 너를 죽이러 왔다!”
 
44
했다. 조조가 크게 놀라 급히 부르기를,
 
45
“무사는 어디에 있느냐?”
 
46
하니, 그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검을 들어 조조를 베려 했다. 조조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문득 놀라 깨었다. 머리가 쑤시듯이 아파 참을 수가 없어서 급히 좋은 의사를 찾으라고 지시하여, 치료해도 낫지 않아서 관리들이 모두 걱정했다.
 
 
47
華歆入奏曰:“大王知有神醫華佗否?”操曰:“即江東醫周泰者乎?”歆曰:“是也。”操曰:“雖聞其名,未知其術。”歆曰:“華佗字元化,沛國譙郡人也。其醫術之妙,世所罕有。但有患者,或用藥,或用針,或用灸,隨手而愈。若患五髒六腑之疾,藥不能效者,以麻肺湯飲之,令病者如醉死,卻用尖刀剖開其腹,以藥湯洗其髒腑,病人略無疼痛。洗畢,然後以藥線縫口,用藥敷之;或一月,或二十日,即平複矣:其神妙如此!
 
48
화흠이 들어와서 아뢰기를,
 
49
“대왕께서 신의 화타가 있는 것을 모르십니까?”
 
50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51
“바로 강동에서 주태를 치료한 사람 말이오?”
 
52
했다. 화흠이 말하기를,
 
53
“그렇습니다.”
 
54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55
“비록 그 명성을 들었으나 아직 그 의술을 모르겠소.”
 
56
했다. 화흠이 말하기를,
 
57
“화타는 자가 원화이며 패국의 초군 사람입니다. 그 의술은 신묘하기가 세상에 드뭅니다. 환자가 있다면 약을 쓰든 침을 쓰든 뜸을 쓰든 즉시 치유합니다. 만약 오장육부의 질병을 앓아 약으로 치료할 수 없다면, 마폐탕을 먹여 병자를 마취해 죽은 듯이 만들어놓고 뾰족한 칼로써 그 배를 가르고, 약탕으로써 그 장부를 씻는데 환자는 아무 통증도 느끼지 못합니다. 씻기를 마친 뒤, 약을 묻힌 실로 꿰매고 약을 바르면 한 달이나 스무 날이 지나면 곧 회복됩니다. 그 신묘함이 이렇습니다.”
 
58
했다.
 
 
59
一日,佗行於道上,聞一人呻吟之聲。佗曰:此飲食不下之病。問之果然。佗令取蒜齏汁三升飲之,吐蛇一條,長二三尺,飲食即下。廣陵太守陳登,心中煩懣,面赤,不能飲食,求佗醫治。佗以藥飲之,吐蟲三升,皆赤頭,首尾動搖。登問其故,佗曰:此因多食魚腥,故有此毒。今日雖可,三年之後,必將複發,不可救也。後陳登果三年而死。又有一人眉間生一瘤,癢不可當,令佗視之。佗曰:內有飛物。人皆笑之。佗以刀割開,一黃雀飛去,病者即愈。有一人被犬咬足指,隨長肉二塊,一痛一癢,俱不可忍。佗曰:痛者內有針十個,癢者內有黑白棋子二枚。人皆不信。佗以刀割開,果應其言。此人真扁鵲,倉公之流也!現居金城,離此不遠,大王何不召之?”
 
60
(화흠이 말하기를)
 
61
“하루는 화타가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의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화타가 말하기를, ‘이것은 음식이 내려가지 않는 병이다.’ 라고 했습니다. 물어보니 과연 그랬습니다. 화타가 마늘 즙을 석 되를 마시게 하자 뱀 한 마리를 토해내니 길이가 2, 3척인데 그때부터 음식이 바로 내려갔습니다. 광릉태수 진등이 마음속에 번민이 가득하고 얼굴이 붉어져 음식을 먹지 못하자 화타에게 치료를 요청했습니다. 화타가 약을 마시게 하자, 벌레를 석 되나 토해내는데 모두 머리가 붉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꿈틀거렸습니다. 진등이 그 까닭을 물으니 화타가 말하기를, ‘이것은 비린내 나는 물고기를 많이 드셔서 이렇게 독충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은 비록 낫더라도 3년 뒤에 반드시 재발할 텐데 구해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뒤 진등이 과연 3년이 되자 죽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미간 에 혹이 생겨 가려워 견딜 수 없어서 화타에게 보였습니다. 화타가 말하기를,‘이 속에 날짐승이 들어 있소,’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그런데 화타가 칼로 갈라보니 한 마리 노란 참새가 날아가고 병자는 즉시 치유됐습니다. 어떤 사람이 개에게 발가락이 물리고 이어서 살덩어리가 두개 자라나더니 하나는 아프고 하나는 가려워 모두 참을 수 없었습니다. 화타가 말하기를,‘아픈 곳은 안에 바늘이 열개 있고, 가려운 곳은 안에 흑백 바둑알이 두알 있을 것이오.’라고 말했지만 사람들 모두 믿지 않았습니다. 화타가 칼로 절개하자 과연 그의 말대로였습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편작이나 창공(중국 전국시대와 한나라 때의 신의)과 같은 사람입니다. 현재 금성에 머물러 있어 여기서 멀지 않은데 대왕께서 어찌 부르지 않으십니까?”
 
62
했다.
 
 
63
操即差人星夜請華佗入內,令診脈視疾。佗曰:“大王頭腦疼痛,因患風而起。病根在腦袋中,風涎不能出,枉服湯藥,不可治療。某有一法:先飲麻肺湯,然後用利斧砍開腦袋,取出風涎,方可除根。”操大怒曰:“汝要殺孤耶!”佗曰:“大王曾聞關公中毒箭,傷其右臂,某刮骨療毒,關公略無懼色;今大王小可之疾,何多疑焉?”操曰:“臂痛可刮,腦袋安可砍開?汝必與關公情熟,乘此機會,欲報仇耳!”呼左右拿下獄中,拷問其情。賈詡諫曰:“似此良醫,世罕其匹,未可廢也。”操叱曰:“此人欲乘機害我,正與吉平無異!”急令追拷。
 
64
조조가 즉시 사람을 보내서 밤새 화타를 불러들이고, 진맥해서 병을 살피게 했다. 화타가 말하기를,
 
65
“대왕의 두통은 중풍 때문입니다. 병의 뿌리가 머리 속에 들어서, 풍기가 솟아올라 배출하지 못합니다. 부질없이 탕약을 드신들 치료할 수 없습니다. 제게 한 가지 방법이 있사오니 먼저 마폐탕을 드신 뒤, 예리한 도끼로 두뇌를 갈라 풍기를 꺼낸다면 병의 뿌리를 없앨 수 있습니다.”
 
66
하니, 조조가 크게 노해 말하기를,
 
67
“네가 나를 죽이려는구나.”
 
68
했다. 화타가 말하기를,
 
69
“대왕께서는 일찍이 관우가 독화살을 맞아 오른 팔을 다친 것을 제가 뼈를 긁어서 독을 치료하는데도 관우는 아무 두려운 기색이 없었던 것을 들어보셨습니까? 지금 대왕께서 하찮은 질병에 어찌 이렇게 의심이 많으십니까?”
 
70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71
“팔이 아픈 것은 긁어내도 되겠지만 두뇌를 어찌 절개하겠느냐? 네놈이 필시 관우와 정이 두터워서 이 기회를 타서 복수하려는 것이구나!”
 
72
했다. 좌우 사람들에게 소리쳐 옥중에 가두어서 진상을 밝히도록 고문하라고 했다. 가후가 간하기를,
 
73
“이같이 훌륭한 의사는 세상에 짝이 드무니 죽여서는 안 됩니다.”
 
74
하니, 조조가 꾸짖기를,
 
75
“이 놈이 기회를 타서 나를 죽이려하거늘 정녕 길평과 무엇이 다르랴!”
 
76
하고, 급히 영을 내려 추궁하고 고문하도록 했다.
 
 
77
華佗在獄,有一獄卒,姓吳,人皆稱爲“吳押獄”。此人每日以酒食供奉華佗。佗感其恩,乃告曰:“我今將死,恨有《青囊書》未傳於世。感公厚意,無可爲報;我修一書,公可遣人送與我家,取《青囊書》來贈公,以繼吾術。”吳押獄大喜曰:“我若得此書,棄了此役,醫治天下病人,以傳先生之德。”佗即修書付吳押獄。吳押獄直至金城,問佗之妻取了《青囊書》;回至獄中,付與華佗檢看畢,佗即將書贈與吳押獄。吳押獄持回家中藏之。
 
78
화타가 옥중에 있을 때 한 옥졸이 있어, 성이 오씨인데 사람들이 모두 그를 오압옥이라 불렀다. 이 사람이 매일 술과 밥을 화타에게 제공했다. 화타가 그 은혜에 감동해서 말하기를,
 
79
“나는 곧 죽을 것이나 다만 <청낭서>를 세상에 전하지 못해 한스럽소. 공의 후의에 감동해도 아무 보답할 길이 없소. 제가 편지를 써드릴 테니, 사람을 보내 우리 집에 전해서 <청낭서>를 가져오면 공께 드려서 제 의술을 이어가게 하겠소.”
 
80
하니, 오압옥이 크게 기뻐서 말하기를,
 
81
“제가 그 책을 얻는다면 이 일을 그만두고 천하의 병인들을 치료해 선생의 덕을 전하겠습니다!”
 
82
했다. 화타가 즉시 서찰을 써서 오압옥에게 주니, 오압옥이 곧바로 금성으로 가서 화타의 처를 찾아가서 청낭서를 얻었다. 옥중으로 돌아와 화타에게 주자 검사를 마치고 그 책을 오압옥에게 주었다. 오압옥이 가지고 집에 돌아가서 숨겼다.
 
 
83
旬日之後,華佗竟死於獄中。吳押獄買棺殯殮訖,脫了差役回家,欲取《青囊書》看習,只見其妻正將書在那裏焚燒。吳押獄大驚,連忙搶奪,全卷已被燒毀,只剩得一兩葉。吳押獄怒罵其妻。妻曰:“縱然學得與華佗一般神妙,只落得死於牢中,要他何用!”吳押獄嗟歎而止。因此《青囊書》不曾傳於世,所傳者止閹雞豬等小法,乃燒剩一兩葉中所載也。後人有詩歎曰:“華佗仙術比長桑,神識如窺垣一方。惆悵人亡書亦絕,後人無複見《青囊》!”
 
84
열흘 뒤에 화타가 마침내 옥중에서 죽었다. 오압옥이 관을 사서 염을 했다. 옥졸의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청낭서>를 꺼내서 익히려는데 그 처가 그 책을 불태우려는 것을 보고, 오압옥이 크게 놀라 황망히 빼앗았지만 전권이 모두 불에 타고 겨우 한두 장만 남았다. 오압옥이 노해서 그 처를 욕하자 처가 말하기를,
 
85
“비록 화타와 같이 신묘한 의술을 익히더라도 결국 옥중에서 죽는다면 그것을 어디에 쓰겠소!”
 
86
했다. 오압옥이 한탄해 마지않았다. 이로 인해 청낭서는 세상에 전하지 못하고 전하는 것은 고자, 닭, 돼지 등에 관한 하찮은 내용이 타다 남은 한두 장에 실려 있을 뿐이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87
“화타의 신선 같은 의술은 장상(전국시대의 신의)에 비할지니, 담 너머 엿보듯이 신묘하게 진단하네. 슬프게도 누군가 그 서책마저 망실하니, 뒷사람들은 <청낭서>를 다시 볼 수 없구나!”
 
88
했다.
 
 
89
卻說曹操自殺華佗之後,病勢愈重,又憂吳、蜀之事。正慮間,近臣忽奏東吳遣使上書。操取書拆視之,略曰:“臣孫權久知天命已歸王上,伏望早正大位,遣將剿滅劉備,掃平兩川,臣即率群下納土歸降矣。”操觀畢大笑,出示群臣曰:“是兒欲使吾居爐火上耶!”侍中陳群等奏曰:“漢室久已衰微,殿下功德巍巍,生靈仰望。今孫權稱臣歸命,此天人之應,異氣齊聲。殿下宜應天順人,早正大位。”操笑曰:“吾事漢多年,雖有功德及民,然位至於王,名爵已極,何敢更有他望?苟天命在孤,孤爲周文王矣。”司馬懿曰:“今孫權既稱臣歸附,王上可封官賜爵,令拒劉備。”操從之,表封孫權爲驃騎將軍、南昌侯,領荊州牧。即日遣使齎誥敕赴東吳去訖。
 
90
한편, 조조는 화타를 죽인 뒤부터 병세가 더욱 심해지는데다 동오와 서촉의 문제를 걱정했다. 근심하는 사이에, 문득 측근 신하가 아뢰기를, 동오가 사신을 보내어 서찰을 바친다고 했다. 조조가 서찰을 뜯어보니 대략 이르기를,
 
91
“신 손권은 오래전부터 천명이 이미 왕상께 돌아간 것을 알고 있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조속히 황제의 자리를 바로잡으시고, 장수를 파견해 유비를 소멸해서 양천(동천과 서천)을 평정하소서. 신은 즉시 무리를 이끌고 영토를 바치며 투항하겠습니다.”
 
92
했다. 조조가 읽고 나서 크게 웃으며, 신하들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93
“이 녀석이 나를 화롯불 위에 올리려 하는구나!”
 
94
했다. 시중 진군 등이 아뢰기를,
 
95
“한나라 황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쇠퇴하여 미약하고 전하의 공덕은 우뚝 솟으니 백성들이 우러러봅니다. 이제 손권이 신하를 칭하며 귀순하니 이것은 하늘과 사람이 응하고 다른 성씨들도 모두 한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마땅히 하늘의 뜻에 응하고 사람의 뜻에 순종하여 빨리 황제의 자리를 바로잡으소서!”
 
96
했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97
“내가 여러 해 한실을 섬겨왔소. 비록 공덕이 백성들에게 미치더라도 내 지위는 이미 왕위에 올랐고 공명과 작록이 이미 지극한데 어찌 감히 더 다른 바람이 있겠소? 진실로 천명이 나에게 있다면 나는 주나라 문왕(그 아들 무왕이 은나라를 멸함)처럼 되겠소.”
 
98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99
“이제 손권이 신하를 칭하며 귀부하니 주상께서 관직을 봉하고 작위를 내리며 그에게 유비를 막으라 명하십시오.”
 
100
했다. 조조가 이에 따라 손권을 표기장군 남창후로 봉해서 형주목을 맡도록 표를 올렸다. 그날로 사자를 보내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동오로 가게 했다.
 
 
101
操病勢轉加。忽一夜夢三馬同槽而食,及曉,問賈詡曰:“孤向日曾夢三馬同槽,疑是馬騰父子爲禍;今騰已死,昨宵複夢三馬同槽。主何吉凶?”詡曰:“祿馬,吉兆也。祿馬歸於曹,王上何必疑乎?”操因此不疑。後人有詩曰:“三馬同槽事可疑,不知已植晉根基。曹瞞空有奸雄略,豈識朝中司馬師?”是夜,操臥寢室,至三更,覺頭目昏眩,乃起,伏幾而臥。忽聞殿中聲如裂帛,操驚視之,忽見伏皇後、董貴人、二皇子,並伏完、董承等二十餘人,渾身血汙,立於愁雲之內,隱隱聞索命之聲。操急拔劍望空砍去,忽然一聲響亮,震塌殿宇西南一角。操驚倒於地,近侍救出,遷於別宮養病。次夜,又聞殿外男女哭聲不絕。
 
102
조조의 병세가 더욱 심해졌다. 문득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세 마리 말이 같은 구유에서 먹고 있었다. 새벽이 되어 가후에게 묻기를,
 
103
“내가 지난날 일찍이 꿈속에서 세 마리 말이 같은 구유에서 먹는 것을 보고, 마등 부자가 재앙이 될까 의심했었소. 이제 마등은 이미 죽었는데 어젯밤 또다시 세 마리 말이 같은 구유에서 먹는 것을 보았소. 무슨 길흉의 징조이겠소?”
 
104
하니, 가후가 말하기를,
 
105
“녹마(사주에서 벼슬과 재물)는 길조입니다. 녹마가 조씨에게 귀부한다는 것인데 왕상께서 구태여 무엇을 의심하시겠습니까?”
 
106
했다. 조조가 이로 인해 의심하지 않았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107
“세 마리 말이 구유를 함께하는 것은 의심하면서도, 자신이 진나라 뿌리를 심은 것을 몰랐구나. 조조가 헛되이 간사한 지략을 펼쳤으니, 어찌 조정 안의 사마사를 알았으리오!”
 
108
했다. 이날밤 조조가 침실에 누워 3경(자정)이 되자 머리와 눈이 흐리고 어지러워 이에 일어나 안석에 기대어 누웠다. 문득 전각 안에서 비단 찢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조조가 놀라 쳐다보았다. 홀연 복황후, 동귀인, 두 황자, 그리고 복완, 동승 등 스무 사람 남짓이 온몸이 피에 물든 채 음침한 어둠 속에 서 있는데 목숨을 내놓으라는 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조조가 급히 검을 뽑아 허공을 향해 베러 가는데 문득 큰소리가 나며 벼락이 전각 서남쪽에 떨어졌다. 조조가 놀라 바닥에 쓰러지니 근시들이 구출해서 별궁으로 옮겨 요양했다. 다음날 밤 다시 전각 밖에서 남녀들의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109
至曉,操召群臣入曰:“孤在戎馬之中,三十餘年,未嘗信怪異之事。今日爲何如此?”群臣奏曰:“大王當命道士設醮修禳。”操歎曰:“聖人雲:獲罪於天,無所禱也。孤天命已盡,安可救乎?”遂不允設醮。次日,覺氣沖上焦,目不見物,急召夏侯惇商議。惇至殿門前,忽見伏皇後、董貴人、二皇子、伏完、董承等,立在陰雲之中。惇大驚昏倒,左右扶出,自此得病。操召曹洪、陳群、賈詡、司馬懿等,同至臥榻前,囑以後事。曹洪等頓首曰:“大王善保玉體,不日定當霍然。”
 
110
날이 밝자 조조가 신하들을 불러들여 말하기를,
 
111
“내가 전쟁터에서 3십여 년을 보내도 아직 괴이한 일들을 믿은 적이 없었소. 오늘 무엇 때문에 이렇겠소?”
 
112
하니, 신하들이 아뢰기를,
 
113
“대왕께서 마땅히 도사들에게 명하시어 제단을 만들어 기도하여 액운을 없애십시오.”
 
114
했다. 조조가 탄식하기를,
 
115
“성인께서 이르시길, ‘하늘에 죄를 지으면 기도할 곳이 없다.’ 라고 하셨소. 나의 천명이 이미 다했으니 어찌 구하겠소?”
 
116
하고, 결국 제단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음날 기운이 상초(심장과 폐)에 치밀어 눈으로 물체를 볼 수 없자 급히 하후돈을 불러 상의하려 했다. 하후돈이 궁궐 문 앞에 이르니 홀연 복황후, 동귀인, 두 황자, 복완, 동승 등이 음산한 구름 속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하후돈이 크게 놀라 혼절해서 쓰러지니, 좌우 사람들이 부축해 세우지만 이때부터 병에 걸렸다. 조조가 조홍, 진군, 가후, 사마의 등을 함께 침상 앞으로 불러 뒷일을 부탁했다. 조홍 등이 머리를 조아려 말하기를,
 
117
“대왕께서 옥체를 잘 보전하시면, 머지않아 반드시 쾌차하실 것입니다.”
 
118
했다.
 
 
119
操曰:“孤縱橫天下三十餘年,群雄皆滅,止有江東孫權,西蜀劉備,未曾剿除。孤今病危,不能再與卿等相敘,特以家事相托。孤長子曹昂,劉氏所生,不幸早年歿於宛城;今卞氏生四子:丕、彰、植、熊。孤平生所愛第三子植,爲人虛華少誠實,嗜酒放縱,因此不立。次子曹彰,勇而無謀;四子曹熊,多病難保。惟長子曹丕,篤厚恭謹,可繼我業。卿等宜輔佐之。”
 
120
조조가 말하기를,
 
121
“내가 30여 년 동안 천하를 종횡하며 군웅을 모두 멸망시키고 다만 강동의 손권과 서촉의 유비를 아직 쓸어 없애지 못했소. 내가 이제 병세가 위급해서 다시는 경들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것이니 특별히 집안일을 부탁하겠소. 나의 장자였던 조앙은 유씨 소생이나 불행히 젊은 나이에 완성에서 죽었소. 지금은 변씨가 낳은 네 아들인 비, 창, 식, 웅이 있소. 내가 평소에 사랑한 애는 셋째 아들 조식인데 그 사람됨이 겉치레가 적고 성실하나 술을 좋아하고 방종하므로 세자로 세울 수 없었소. 둘째 아들 조창은 용맹스러우나 무모하오. 네째 아들 조웅은 병이 많아 보전하기 어렵소. 오로지 첫째 아들 조비는 성실하고 후덕하며 공손하고 삼가니 가히 나의 왕업을 계승하겠소. 경들은 마땅히 그를 보좌하시오.”
 
122
했다.
 
 
123
曹洪等涕泣領命而出。操令近侍取平日所藏名香,分賜諸侍妾,且囑曰:“吾死之後,汝等須勤習女工,多造絲履,賣之可以得錢自給。”又命諸妾多居於銅雀台中,每日設祭,必令女伎奏樂上食。又遺命於彰德府講武城外,設立疑塚七十二:“勿令後人知吾葬處,恐爲人所發掘故也。”囑畢,長歎一聲,淚如雨下。須臾,氣絕而死。壽六十六歲。時建安二十五年春正月也。
 
124
조홍 등이 눈물을 흘리며 명령을 받들고 나갔다. 조조가 근시들에게 명하여, 평소에 소장했던 이름난 향을 가져오게 하여, 여러 시첩에게 나눠주며 다시 부탁하기를,
 
125
“내가 죽은 후에 너희는 반드시 길쌈을 부진런히 익혀서 명주 신발을 많이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어 자급해라.”
 
126
하고, 다시 명을 내려, 여러 첩들은 동작대에서 머물며 날마다 제를 올리고, 기생들은 음악을 연주하고 음식을 바치라고 했다. 다시 명령하여, 창덕부 강무성 밖에 가짜 무덤 72개를 만들라 하고,
 
127
“후대 사람들이 나의 무덤을 알지 못하게 하라. 사람들이 발굴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128
라고 했다. 이렇게 부탁을 마치더니, 긴 탄식을 하고 눈물을 비 오듯이 흘렸다. 얼마 뒤 기운이 다하여 죽으니, 그의 나이 66세였고, 때는 건안 25년 봄 정월이었다.
 
 
129
後人有《鄴中歌》一篇,歎曹操雲:“城則鄴城水漳水,定有異人從此起:雄謀韻事與文心,君臣兄弟而父子;英雄未有俗胸中,出沒豈隨人眼底?功首罪魁非兩人,遺臭流芳本一身;文章有神霸有氣,豈能苟爾化爲群?橫流築台距太行,氣與理勢相低昂;安有斯人不作逆,小不爲霸大不王?霸王降作兒女鳴,無可奈何中不平;向帳明知非有益,分香未可謂無情。嗚呼!古人作事無巨細,寂寞豪華皆有意;書生輕議塚中人,塚中笑爾書生氣!”
 
130
뒷사람이 <업중가> 한편을 지어 조조를 탄식하기를,
 
131
“성은 업성이요 물은 장수인데, 남다른 사람이 이곳에서 일어나니, 웅대한 지략과 문장에도 뛰어났네. 주군과 신하들은 형제와 부자 같았고, 영웅은 가슴속에 속된 것이 없으니, 그 출몰을 어찌 남을 따르는 사람들이 알아보랴. 공로도 으뜸이요 죄악도 으뜸이니 두 사람이 아니었고, 악취나 향기도 본래 한 몸에서 다 나왔네. 문장은 신묘하고 패기가 있었으니, 어찌 구차하게 다른 인재들과 섞이랴. 흐르는 물을 가로막고 동작대를 쌓아 태항산과 겨루고, 기운과 이치가 형세 따라서 때때로 낮아지고 높아졌네. 어찌 이런 사람이 반역을 저지르지 아니하고, 작게는 패자요 크게는 왕이 되지 않았는가? 패왕도 죽을 때는 여자처럼 울었으며, 어쩔 도리 없이 마음속으로 불평했네. 기녀들의 춤도 부질없음을 알았으나, 향을 나눠줬으니 무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네. 아, 옛사람이 일을 할 때 크고 작음에 구애되지 않았고, 적막하거나 호화롭거나 모두 뜻이 있었는데, 서생들은 무덤 속의 사람을 가벼이 논하지만, 무덤 속에서는 이런 서생 기질을 비웃을 것이네.”
 
132
했다.
 
 
133
卻說曹操身亡,文武百官盡皆舉哀;一面遣人赴世子曹丕、鄢陵侯曹彰、臨淄侯曹植、蕭懷侯曹熊處報喪。 衆官用金棺銀槨將操入殮,星夜舉靈櫬赴鄴郡來。曹丕聞知父喪,放聲痛哭,率大小官員出城十裏,伏道迎櫬入城,停於偏殿。官僚掛孝,聚哭於殿上。忽一人挺身而出曰:“請世子息哀,且議大事。” 衆視之,乃中庶子司馬孚也。孚曰:“魏王既薨,天下震動;當早立嗣王,以安 衆心。何但哭泣耶?”群臣曰:“世子宜嗣位,但未得天子詔命,豈可造次而行?”兵部尚書陳矯曰:“王薨於外,愛子私立,彼此生變,則社稷危矣。”遂拔劍割下袍袖,厲聲曰:“即今日便請世子嗣位。 衆官有異議者,以此袍爲例!”百官悚懼。
 
134
한편, 조조가 죽자 문무백관이 모두 애도하고, 한편으로 세자 조비, 언릉후 조창, 임치후 조식, 소회후 조웅에게 사람을 보내 상을 알렸다. 관리들이 금 널(관)과 은 덧널(곽)을 써서 조조를 입관하고 밤새 영구를 업군으로 운구했다. 조비가 부친의 상을 듣고 목 놓아 통곡하며 대소 관원들을 이끌고 성 밖 십 리까지 나왔다. 길에 엎드려 영구를 맞이해 성으로 들어가서 편전에 모셨다. 관료들이 상복을 입고 편전에 모여서 곡을 했다. 문득 한 사람이 일어나 말하기를,
 
135
“청하옵건대 세자께서는 애도를 멈추시고 우선 대사를 의논하소서.”
 
136
했다. 사람들이 쳐다보니 바로 중서자 (세자의 보좌관) 사마부였다. 사마부가 말하기를,
 
137
“위왕께서 돌아가시어 천하가 진동하옵니다. 마땅히 어서 왕위를 이어서 모두의 마음을 안정시켜야 하거늘 어찌 흐느껴 우시기만 하십니까?”
 
138
하니, 신하들이 말하기를,
 
139
“세자께서 마땅히 왕위를 이으셔야 하지만, 아직 천자의 조명을 얻지 못했으니 어찌 서둘러 행하겠소?”
 
140
했다.
 
 
141
兵部尚書陳矯曰:“王薨於外,愛子私立,彼此生變,則社稷危矣。”遂拔劍割下袍袖,厲聲曰:“即今日便請世子嗣位。 衆官有異議者,以此袍爲例!”百官悚懼。忽報華歆自許昌飛馬而至, 衆皆大驚。須臾華歆入, 衆問其來意,歆曰:“今魏王薨逝,天下震動,何不早請世子嗣位?” 衆官曰:“正因不及候詔命,方議欲以王後卞氏慈旨立世子爲王。”歆曰:“吾已於漢帝處索得詔命在此。” 衆皆踴躍稱賀。歆於懷中取出詔命開讀。原來華歆諂事魏,故草此詔,威逼獻帝降之;帝只得聽從,故下詔即封曹丕爲魏王、丞相、冀州牧。丕即日登位,受大小官僚拜舞起居。
 
142
병부상서 진교가 말하기를,
 
143
“왕께서 바깥에서 서거하셨는데 아들을 사사로이 옹립해서 피차간에 변고가 생기면 사직이 위태롭소.”
 
144
하고, 곧 검을 뽑아 옷소매를 자르고 소리를 높여 말하기를,
 
145
“오늘 즉시 세자께서 왕위를 이으시기를 청하옵니다. 관리들 중에 이의를 가진 자는 바로 이 옷소매처럼 될 것이오!”
 
146
했다. 백관이 떨며 두려워했다. 그런데 문득 화흠이 허창에서 급히 말을 타고 왔다고 했다. 사람들 모두 크게 놀랐다. 잠시 뒤 화흠이 들어오니 사람들이 그가 온 까닭을 물었다. 화흠이 말하기를,
 
147
“지금 위왕께서 훙서(서거)하시어 천하가 진동하거늘 어찌 조속히 세자께 왕위를 잇게 청하지 않소?”
 
148
하니, 관리들이 말하기를,
 
149
“바로 천자의 조명을 받지 못한 까닭에 왕후 변씨의 전지로써 세자를 왕으로 옹립하려고 의논하고 있었소.”
 
150
했다. 화흠이 말하기를,
 
151
“내가 이미 한나라 황제의 거처에서 조명을 얻어서 여기 가지고 왔소.”
 
152
하니, 모두 기뻐서 펄쩍 뛰며 축하했다. 화흠이 품속에서 조명을 꺼내어 읽었다. 원래 화흠이 위나라에 아첨해서 섬기고자 조명의 초안을 쓰고 헌제를 핍박해서 받아들이게 한 것이었다. 헌제는 어쩔 수 없이 따라서 조서를 내려 조비를 위왕, 승상, 기주목으로 봉했다. 조비가 그날로 왕위에 올라 대소 관료들이 무릎을 꿇고 절한 뒤에 춤을 추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예절을 받았다.
 
 
153
正宴會慶賀間,忽報鄢陵侯曹彰,自長安領十萬大軍來到。丕大驚,遂問群臣曰:“黃須小弟;平日性剛,深通武藝。今提兵遠來,必與孤爭王位也。如之奈何?”忽階下一人應聲出曰:“臣
 
 
154
請往見鄢陵侯,以片言折之。” 衆皆曰:“非大夫莫能解此禍也。”正是:試看曹氏丕彰事,幾作袁家譚尚爭。
 
155
바로 연회를 열어 축하하고 있는데, 문득 보고하기를, 언릉후 조창이 장안에서 십만 병력을 이끌고 왔다고 했다. 조비가 크게 놀라 신하들에게 묻기를,
 
156
“노란 수염 아우가 평소 성격이 굳세고 무예에 깊이 통달했소. 이제 병력을 이끌고 멀리서 왔으니 반드시 나와 더불어 왕위를 다투려는 것인데, 어찌해야겠소?”
 
157
하니, 문득 계단 아래에서 한 사람이 그 말을 듣자마자 나와서 말하기를,
 
158
“바라건대 신이 언릉후를 가서 만나보고 한마디 말로써 그를 꺾겠습니다.”
 
159
했다. 모두가 말하기를,
 
160
“대부가 아니시면 이 재난을 해결할 수 없겠소.”
 
161
했다. 이야말로, 조씨 집안의 조비, 조창의 일을 살펴보면, 원씨 집안의 원담, 원상의 다툼과 거의 같겠구나.
 
 
162
未知此人是誰,且看下文分解。
 
163
이 사람이 누굴까? 다음 회의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78회 풍질을 치료하는 신묘한 의사가 죽고, 유명을 전하며 간웅이 운수를 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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