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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95회 마속이 간언을 듣지 않아 가정을 빼앗기고 무후가 거문고를 타서 중달을 물리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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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九十五回 馬謖拒諫失街亭 武侯彈琴退仲達
2
제95회 마속이 간언을 듣지 않아 가정을 빼앗기고 무후가 거문고를 타서 중달을 물리치다.
 
 
3
卻說魏主曹睿令張郃爲先鋒,與司馬懿一同征進;一面令辛毗、孫禮二人領兵五萬,往助曹真。二人奉詔而去。且說司馬懿引二十萬軍,出關下寨,請先鋒張郃至帳下曰:“諸葛亮平生謹慎,未敢造次行事。若是吾用兵,先從子午穀徑取長安,早得多時矣。他非無謀,但怕有失,不肯弄險。今必出軍斜穀,來取郿城。若取郿城,必分兵兩路,一軍取箕穀矣。吾已發檄文,令子丹拒守郿城,若兵來不可出戰;令孫禮、辛毗截住箕穀道口,若兵來則出奇兵擊之。”郃曰:“今將軍當於何處進兵?”
 
4
한편, 위나라 군주 조예가 장합을 선봉으로 삼아, 사마의와 함께 출정시켰다. 한편으로 신비와 손례 두 사람에게 병력 5만을 거느리고 조진을 돕게 하니 두 사람이 명령을 받들고 갔다. 한편, 사마의는 2십만 군을 이끌고 관문을 나와 진을 치고, 선봉 장합을 군막 안으로 불러 말하기를,
 
5
“제갈량은 평생에 걸쳐 조심하며 감히 급하게 일을 한 적이 없소. 만약 내가 용병을 했다면 먼저 자오곡을 따라 곧장 장안을 취하여 일찌감치 오랜 시간을 벌었을 것이오. 그가 지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행여나 잘못될까 두려워, 기꺼이 모험을 하지 않은 것이오. 이제 반드시 사곡으로 군사를 내보내어 미성을 취하러 올 것이오. 미성을 취하면 반드시 병력을 두 갈래로 나눠 1군은 기곡을 취할 것이오. 내가 이미 격문을 보내어 자단(조진)에게 명하여 미성을 막아서 지키고, 만약 적병이 오더라도 출전하지 말라 하였소. 또한 손례와 신비에게 명하여 기곡 입구를 차단하여 만약 적병이 온다면 기습부대를 내어 습격하라 하였소.”
 
6
했다. 장합이 말하기를,
 
7
“이제 장군은 어디로 진격하실 생각이오?”
 
8
했다.
 
 
9
懿曰:“吾素知秦嶺之西,有一條路,地名街亭;傍有一城,名列柳城:此二處皆是漢中咽喉。諸葛亮欺子丹無備,定從此進。吾與汝徑取街亭,望陽平關不遠矣。亮若知吾斷其街亭要路,絕其糧道,則隴西一境,不能安守,必然連夜奔回漢中去也。彼若回動,吾提兵於小路擊之,可得全勝;若不歸時,吾卻將諸處小路,盡皆壘斷,俱以兵守之。一月無糧,蜀兵皆餓死,亮必被吾擒矣。”張郃大悟,拜伏於地曰:“都督神算也!”懿曰:“雖然如此,諸葛亮不比孟達。將軍爲先鋒,不可輕進。當傳與諸將:循山西路,遠遠哨探。如無伏兵,方可前進。若是怠忽,必中諸葛亮之計。”張郃受計引軍而行。
 
10
사마의가 말하기를,
 
11
“내가 평소 알고 있기로는 진령의 서쪽에 한 줄기 길이 있는데 지명이 가정이오. 옆에 성이 하나 있으니 이름하여 열류성이오. 이 두 곳은 모두 한중 지방의 목구멍 같은 곳이오. 제갈량은 자단(조진)의 방비가 없을 것이라 여기고 틀림없이 이곳으로 진격할 것이오. 나와 그대가 곧바로 가정을 취한다면 양평관 쪽에서 멀지 않소. 우리가 가정의 길목을 차단하여 그들의 식량 수송로를 끊은 것을 제갈량이 안다면 농서 일대를 안전하게 지킬 수 없어, 그는 반드시 밤을 새워서라도 한중으로 돌아갈 것이오. 그가 돌아갈 때 우리가 병력을 거느리고 좁은 길에서 공격하면 완전한 승리를 거둘 것이오. 그들이 돌아가지 않더라고 우리가 곳곳의 작은 길에 모두 보루를 쌓아 차단하고 전부 병력을 배치해 지킨다면, 한 달이 지나 식량이 바닥나서 촉병들이 모두 굶어 죽을 테니 제갈량은 우리에게 잡히고 말 것이오.”
 
12
하니, 장합이 크게 깨닫고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리며 말하기를,
 
13
“도독은 참으로 신묘한 계략을 가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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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15
“비록 이렇더라도 제갈량은 맹달에 비할 바가 아니오. 장군께서 선봉이 되더라도 함부로 진격하지 마시오. 다른 장수들에게도 그렇게 전해야 하오. 산 너머 서쪽 길은 멀리까지 정탐하여 복병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전진해야 하오. 만약 이를 소홀히 하면 반드시 제갈량의 계략에 빠질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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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장합이 계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떠났다.
 
 
17
卻說孔明在祁山寨中,忽報新城探細人來到。孔明急喚入問之,細作告曰:“司馬懿倍道而行,八日已到新城,孟達措手不及;又被申耽、申儀、李輔、鄧賢爲內應:孟達被亂軍所殺。今司馬懿撤兵到長安,見了魏主,同張郃引兵出關,來拒我師也。”孔明大驚曰:“孟達做事不密,死固當然。今司馬懿出關,必取街亭,斷吾咽喉之路。”便問:“誰敢引兵去守街亭?”
 
18
한편, 공명은 기산의 영채 안에 머물고 있었는데 갑자기 신성에서 정탐을 하던 사람이 왔다고 했다. 공명이 급히 불러들여서 묻자, 그 세작이 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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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의가 길을 재촉하여 8일에 벌써 신성에 도착하니, 맹달이 손쓸 틈이 없었습니다. 또한 신탐, 신의, 이보, 등현이 내응하니 맹달은 난전 중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제 사마의가 병력을 거두어 장안으로 가서 위나라 군주를 만나 장합과 함께 병력을 이끌고 관문을 나와서 아군을 막으러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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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공명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21
“맹달이 하는 일이 주밀하지 못해 죽은 것이야 당연하다. 이제 사마의가 관문을 나왔다면 틀림없이 가정을 취해서 우리의 목구멍처럼 중요한 길을 끊을 것이다.”
 
22
하고, 곧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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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용감히 병력을 이끌고 가정을 지키러 가겠소?”
 
24
했다.
 
 
25
言未畢,參軍馬謖曰:“某願往。”孔明曰:“街亭雖小,幹系甚重:倘街亭有失,吾大軍皆休矣。汝雖深通謀略,此地奈無城郭,又無險阻,守之極難。”謖曰:“某自幼熟讀兵書,頗知兵法。豈一街亭不能守耶?”孔明曰:“司馬懿非等閑之輩;更有先鋒張郃,乃魏之名將:恐汝不能敵之。”謖曰:“休道司馬懿、張郃,便是曹睿親來,有何懼哉!若有差失,乞斬全家。”孔明曰:“軍中無戲言。”謖曰:“願立軍令狀。”孔明從之,謖遂寫了軍令狀呈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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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참군 마속이 말하기를,
 
27
“제가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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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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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비록 작은 곳이지만 책임은 막중하오. 만약 가정을 잃는다면 우리 대군도 끝장이오. 그대가 비록 책략에 능통하지만 그곳은 아무 성곽도 없고 지세가 험하지도 않아서 수비가 극히 곤란하오.”
 
30
했다. 마속이 말하기를,
 
31
“제가 어려서부터 병서를 숙독하여 병법을 자못 아는데 어찌 가정 하나를 지키지 못하겠습니까?”
 
32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33
“사마의는 등한히 할 사람이 아니오. 게다가 선봉 장합은 바로 위나라의 이름난 장수요. 그대가 대적하지 못할까 걱정스럽소.”
 
34
했다. 마속이 말하기를,
 
35
“사마의, 장합 따위야 말할 것도 없고, 조예가 친히 온들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만약 잘못을 저지른다면 저희 집안 모두를 처형하십시오.”
 
36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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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에는 농담이 없소.”
 
38
하니, 마속이 말하기를,
 
39
“바라옵건대 군령장을 쓰겠습니다.”
 
40
했다. 공명이 이를 따르니 마속이 곧 군령장을 써서 바쳤다.
 
 
41
孔明曰:“吾與汝二萬五千精兵,再撥一員上將,相助你去。”即喚王平分付曰:“吾素知汝平生謹慎,故特以此重任相托。汝可小心謹守此地:下寨必當要道之處,使賊兵急切不能偷過。安營既畢,便畫四至八道地理形狀圖本來我看。凡事商議停當而行,不可輕易。如所守無危,則是取長安第一功也。戒之!戒之!”二人拜辭引兵而去。孔明尋思,恐二人有失,又喚高翔曰:“街亭東北上有一城,名列柳城,乃山僻小路,此可以屯兵紥寨。與汝一萬兵,去此城屯紥。但街亭危,可引兵救之。”高翔引兵而去。孔明又思:高翔非張郃對手,必得一員大將,屯兵於街亭之右,方可防之,遂喚魏延引本部兵去街亭之後屯紥。
 
42
공명이 말하기를,
 
43
“내가 그대에게 2만5천의 정예병을 주고, 상장 한 사람을 뽑아 그대를 돕도록 하겠소.”
 
44
하고, 즉시 왕평을 불러 분부하기를,
 
45
“내가 평소 그대가 늘 조심스러운 것을 알기에 특별히 이 중대한 임무를 맡기오. 그대는 조심하고 삼가면서 그곳을 지키고, 영채를 세울 때는 반드시 중요한 길목에 세워 적병들로 하여금 몰래 지나가게 하지 마시오. 영채를 세우고 나서, 곧바로 사방팔방의 지리 형상을 그린 도본을 내게 보내시오. 모든 일을 상의한 후에 실행할 것이지 함부로 쉽게 하지 마시오. 그곳을 무사히 수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장안을 점령하는 가장 큰 공이 될 것이오. 주의하고 주의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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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두 사람이 절을 올려 작별하고 병력을 이끌고 떠났다. 공명이 깊이 생각하더니 두 사람이 실수할까 두려워 다시 고상을 불러 말하기를,
 
47
“가정 동북쪽에 성이 하나 있으니 이름하여 열류성인데 외진 산속 좁은 길에 있소. 그곳에 군사를 주둔할 만하오. 내가 그대에게 병력 1만을 줄 테니 그 성으로 가서 주둔하시오. 가정이 위급하면 바로 병력을 이끌고 구원하시오.”
 
48
하니, 고상이 병력을 이끌고 갔다. 공명이 다시 생각하니,‘고상도 장합의 적수가 못 되니 반드시 대장 한 사람을 뽑아 가정의 우측에 주둔시켜야 방어할 수 있겠구나.’하고, 곧 위연을 불러 휘하 병력을 이끌고 가정의 뒤쪽으로 가서 주둔하게 했다.
 
 
49
延曰:“某爲前部,理合當先破敵,何故置某於安閑之地?”孔明曰:“前鋒破敵,乃偏裨之事耳。今令汝接應街亭,當陽平關沖要道路,總守漢中咽喉:此乃大任也,何爲安閑乎?汝勿以等閑視之,失吾大事。切宜小心在意!”魏延大喜,引兵而去。孔明恰才心安,乃喚趙雲、鄧芝分付曰:“今司馬懿出兵,與舊日不同。汝二人各引一軍出箕穀,以爲疑兵。如逢魏兵,或戰、或不戰,以驚其心。吾自統大軍,由斜穀徑取郿城;若得郿城,長安可破矣。”二人受命而去。孔明令薑維作先鋒,兵出斜穀。
 
50
위연이 말하기를,
 
51
“제가 선봉이 되어서 마땅히 적병을 앞장서 격파해야 이치에 맞거늘 어찌 저를 편안하고 한가한 곳에 두려고 하십니까?”
 
52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53
“선봉이 되어 적병을 격파하는 것이야 편장이나 비장 따위가 할 일일 따름이오. 지금 그대에게 명하여 가정의 군사를 돕고 양평관의 요충 도로를 맡아 한중으로 통하는 목구멍 같은 중요한 지역을 모두 지키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큰 임무요. 어찌 편하고 한가한 곳이라 하겠소? 그대는 절대 이를 등한히 여겨 대사를 그르치지 마시오. 반드시 조심해야 할 것이오!”
 
54
했다.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병력을 이끌고 갔다. 공명이 비로소 안심하여 조운과 등지를 불러 분부하기를,
 
55
“이제 사마의가 출병했으니 지난날과 상황이 다를 것이오. 그대 두 사람은 각각 1군을 이끌고 기곡으로 나가서 의심스러운 군사의 역할을 하시오. 위나라 병력과 만나거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싸우지 않아서 적병의 마음을 혼란시키시오. 내가 직접 대군을 통솔하여 사곡에서 곧바로 미성을 취하러 가겠소. 만약 미성을 얻으면 장안도 깨뜨릴 수 있게 되오.”
 
56
하니, 두 사람이 명을 받고 떠났다. 공명이 강유에게 선봉을 맡겨 사곡에서 출병했다.
 
 
57
卻說,馬謖,王平二人兵到街亭,看了地勢。馬謖笑曰:“丞相何故多心也?量此山僻之處,魏兵如何敢來!”王平曰:“雖然魏兵不敢來,可就此五路總口下寨;卻令軍士伐木爲柵,以圖久計。”謖曰:“當道豈是下寨之地?此處側邊一山,四面皆不相連,且樹木極廣,此乃天賜之險也:可就山上屯軍。”平曰:“參軍差矣。若屯兵當道,築起城垣,賊兵總有十萬,不能偷過;今若棄此要路,屯兵於山上,倘魏兵驟至,四面圍定,將何策保之?”謖大笑曰:“汝真女子之見!兵法雲:‘憑高視下,勢如劈竹。’若魏兵到來,吾教他片甲不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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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마속과 왕평 두 사람의 병력이 가정에 이르러 지형을 살펴보고, 마속이 웃으며 말하기를,
 
59
“승상께서 무엇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단 말이오? 이까짓 산속 외진 곳에 위병들이 어찌 감히 오겠소!”
 
60
하니, 왕평이 말하기를,
 
61
“비록 위병들이 감히 오지 않더라도 이곳 다섯 갈래의 길의 입구에 영채를 세워야 하니, 즉시 군사들에게 명하여 나무를 베어서 목책을 만들어 오래 버틸 계책을 강구해야 하오.”
 
62
했다. 마속이 말하기를,
 
63
“이 길목이 어찌 영채를 세울 자리라고 말씀하시오? 이곳 주변에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은 사방이 모두 끊기고 게다가 수목이 극히 넓게 펼쳐져 거기는 참으로 하늘이 내린 험준한 곳이오. 그 산 위로 올라가 군사를 주둔하겠소.”
 
64
하니, 왕평이 말하기를,
 
65
“참군께서 틀리셨소. 이 길목에 병력을 주둔하고 성벽을 쌓아 올린다면 적병이 모두 십만이 몰려온들 능히 뚫고 지나갈 수 없소. 이곳 요로를 버리고 산 위에 주둔했다가 위병들이 몰려와서 사방에서 포위하면 무슨 계책으로 지키겠소?”
 
66
했다. 마속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67
“그대는 참으로 여자 같은 식견을 가졌구려! 병법에 이르기를, 높은 곳에 의지하여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마치 파죽지세와 같다, 하였소. 만약 위병들이 온다면 나는 그들을 갑옷 한 조각도 돌아가지 못하게 하겠소!”
 
68
했다.
 
 
69
平曰:“吾累隨丞相經陣,每到之處,丞相盡意指教。今觀此山,乃絕地也:若魏兵斷我汲水之道,軍士不戰自亂矣。”謖曰:“汝莫亂道!孫子雲:‘置之死地而後生。’若魏兵絕我汲水之道,蜀兵豈不死戰?以一可當百也。吾素讀兵書,丞相諸事尚問於我,汝奈何相阻耶!”平曰:“若參軍欲在山上下寨,可分兵與我,自於山西下一小寨,爲掎角之勢。倘魏兵至,可以相應。”馬謖不從。忽然山中居民,成群結隊,飛奔而來,報說魏兵已到。王平欲辭去。馬謖曰:“汝既不聽吾令,與汝五千兵自去下寨。待吾破了魏兵,到丞相面前須分不得功!”王平引兵離山十裏下寨,畫成圖本,星夜差人去稟孔明,具說馬謖自於山上下寨。
 
70
왕평이 말하기를,
 
71
“내가 여러 번 승상을 따라다니며 진을 치시는 것을 봤지만 매번 가시는 곳마다 진심을 다하여 알려주셨소. 지금 이 산을 살펴보건대 이 산은 바로 단절된 곳이오. 만약 위병이 우리가 물을 길어 먹는 길을 끊는다면 군사들이 싸우지도 못하고 저절로 혼란에 빠질 것이오.”
 
72
하니, 마속이 말하기를,
 
73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손자가 이르기를,‘죽을 곳에 빠지고 나서야 살길이 생기는 법이다.’라고 하였소. 만약 위병들이 아군의 물길을 끊는다면 촉병들이 어찌 죽을 각오로 싸우지 않겠소? 한 사람으로 백 사람을 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오. 내가 평소에 병서를 읽었거니와 승상께서도 여러 가지 일들을 내게 묻곤 하시는데 그대가 어찌 가로막는단 말이오?”
 
74
했다. 왕평이 말하기를,
 
75
“만약 참군께서 산 위에 영채를 세우겠다면 병력을 나눠 제게 주시오. 나는 산 서쪽 아래에 작은 영채를 세워서 서로 기각지세(군대를 나누어 적을 견제하거나 협공하는 형세)를 이루는 것이 좋겠소. 만약 위병들이 온다면 서로 도웁시다.”
 
76
하니, 마속이 따르지 않는데, 갑자기 산속에 사는 백성이 떼를 지어 몰려오며 위병들이 벌써 왔다고 알렸다. 왕평이 인사하고 가려는데 마속이 말하기를,
 
77
“그대가 기어코 내 명령을 듣지 않겠다면 5천 군사를 데리고 가서 영채를 세우시오. 내가 위병을 격파하기를 기다렸다가 승상 면전에서 공로를 나눌 생각은 마시오!”
 
78
했다. 왕평이 병력을 이끌고 산에서 십 리 떨어진 곳에 영체를 세웠다. 그곳의 도본을 그려서 사람을 시켜 밤새 공명을 찾아가 전하고 마속이 산 위에 영채를 세운 것을 모두 말하게 했다.
 
 
79
卻說司馬懿在城中,令次子司馬昭去探前路:若街亭有兵守禦,即當按兵不行。司馬昭奉令探了一遍,回見父曰:“街亭有兵守把。”懿歎曰:“諸葛亮真乃神人,吾不如也!”昭笑曰:“父親何故自墮志氣耶?男料街亭易取。”懿問曰:“汝安敢出此大言?”昭曰:“男親自哨見,當道並無寨柵,軍皆屯於山上,故知可破也。”懿大喜曰:“若兵果在山上,乃天使吾成功矣!”遂更換衣服,引百餘騎親自來看。是夜天晴月朗,直至山下,周圍巡哨了一遍,方回。馬謖在山上見之,大笑曰:“彼若有命,不來圍山!”傳令與諸將:“倘兵來,只見山頂上紅旗招動,即四面皆下。”
 
80
한편, 사마의는 성안에 머물며 둘째 아들 사마소를 보내어 길을 정탐하게 했다. 만약 가정에 적병이 주둔하여 수비한다면 즉시 진군을 멈추라고 했다. 사마소가 명령을 받들어 그 일대를 두루 정탐하고 돌아가 부친에게 말하기를,
 
81
“가정을 적병이 지키고 있습니다.”
 
82
했다. 사마의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83
“제갈량은 참으로 신묘한 사람이다. 내가 미치지 못하겠구나!”
 
84
했다, 사마소가 웃으며 말하기를,
 
85
“부친께서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 뜻과 용기를 떨어뜨리십니까? 제가 보기에 가정은 쉽게 빼앗을 수 있습니다.”
 
86
했다. 사마의가 묻기를,
 
87
“네가 어찌 감히 이렇게 큰소리를 치느냐?”
 
88
하니, 사마소가 말하기를,
 
89
“제가 직접 정탐해보니 길을 막는 영채와 울타리도 없고 군사들은 모두 산 위에 주둔해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들을 격파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90
했다.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91
“적병이 정말로 산 위에 있다면 하늘이 나에게 성공하게 한 것이다!”
 
92
하고, 곧 옷을 갈아입고 백여 기를 이끌고 직접 보러 갔다. 이날 밤 하늘이 맑고 달이 밝은데 곧장 산 아래에 이르러 주위를 한번 쭈욱 둘러보고서야 돌아갔다. 마속이 산 위에서 이를 보더니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93
“저 사람에게 명운이 있다면 이 산을 포위하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94
하고, 장수들에게 명령을 전하기를,
 
95
“적병이 몰려왔을 때 산 정상에서 붉은 깃발을 흔드는 즉시 사방에서 모두 내려가 공격하라.”
 
96
고 했다.
 
 
97
卻說司馬懿回到寨中,使人打聽是何將引兵守街亭。回報曰:“乃馬良之弟馬謖也。”懿笑曰:“徒有虛名,乃庸才耳!孔明用如此人物,如何不誤事!”又問:“街亭左右別有軍否?”探馬報曰:“離山十裏有王平安營。”懿乃命張郃引一軍,當住王平來路。又令申耽、申儀引兩路兵圍山,先斷了汲水道路;待蜀兵自亂,然後乘勢擊之。當夜調度已定。次日天明,張郃引兵先往背後去了。司馬懿大驅軍馬,一擁而進,把山四面圍定。馬謖在山上看時,只見魏兵漫山遍野,旌旗隊伍,甚是嚴整。蜀兵見之,盡皆喪膽,不敢下山。馬謖將紅旗招動,軍將你我相推,無一人敢動。謖大怒,自殺二將。 衆軍驚懼,只得努力下山來沖魏兵。魏兵端然不動。蜀兵又退上山去。馬謖見事不諧,教軍緊守寨門,只等外應。
 
98
한편, 사마의가 영채 안으로 돌아와서 사람들을 시켜 어느 장수가 가정을 지키는지 알아보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99
“그는 바로 마량의 아우 마속입니다.”
 
100
했다.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기를,
 
101
“한갓 헛된 명성만 있지, 범용한 재능을 가졌을 뿐인 사람이다! 공명이 이런 인물을 쓰다니 어찌 일을 그르치지 않겠는가!”
 
102
하고, 또 묻기를,
 
103
“가정의 좌우에는 따로 군사들이 없는가?”
 
104
하니, 정찰병이 보고하기를,
 
105
“산에서 십 리 떨어진 곳에 왕평의 군사들이 영채를 세워 주둔하고 있습니다.”
 
106
했다. 사마의가 이에 장합에게 명하여 1군을 이끌고 왕평이 구원하러 오는 길을 맡도록 했다. 또한 신탐과 신의에게 명하여 양 갈래의 병력을 이끌고 산을 포위하여 먼저 마실 물길을 끊도록 했다. 촉병들이 스스로 혼란에 빠지기를 기다린 뒤에 그 틈을 타서 치라고 했다. 이날 밤 작전 배치를 마치고, 다음날 동틀 무렵에 장합이 병력을 이끌고 먼저 배후를 차단하러 갔다. 사마의가 군사들을 크게 이끌고 가서, 떼지어 몰려가 사방에서 산을 포위했다. 마속이 산 위에서 바라보니 위나라 병사들이 산과 들을 가득 메웠는데 깃발과 대오가 몹시 엄정했다. 촉나라 병사들이 이를 보고 모두 간담이 서늘하여 감히 산을 내려가지 못했다. 마속이 붉은 깃발을 흔들었지만 군사들과 장수들이 너나없이 서로 미루며 아무도 감히 움직이지 않았다. 마속이 크게 노하여 직접 장수 두 사람을 죽였다. 군사들이 놀라고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있는 힘을 다해 위나라 병사들을 치러 산을 내려갔다. 그러나 위병들은 굳건히 서서 동요하지 않으니 촉병들이 다시 후퇴하여 산으로 올라갔다. 마속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군사들에게 영채를 굳게 지키게 하고 외부의 도움을 기다리게 했다.
 
 
107
卻說,王平見魏兵到,引軍殺來,正遇張郃;戰有數十餘合,平力窮勢孤,只得退去。魏兵自辰時困至戌時,山上無水,軍不得食,寨中大亂。嚷到半夜時分,山南蜀兵大開寨門,下山降魏。馬謖禁止不住。司馬懿又令人於沿山放火,山上蜀兵愈亂。馬謖料守不住,只得驅殘兵殺下山西逃奔。司馬懿放條大路,讓過馬謖。背後張郃引兵追來。趕到三十餘裏,前面鼓角齊鳴,一彪軍出,放過馬謖,攔住張郃;視之,乃魏延也。延揮刀縱馬,直取張郃。郃回軍便走。延驅兵趕來,複奪街亭。趕到五十餘裏,一聲喊起,兩邊伏兵齊出:左邊司馬懿,右邊司馬昭,卻抄在魏延背後,把延困在垓心。
 
108
한편, 왕평은 위병들이 오자 군사를 이끌고 나오다가 마침 장합과 만났다. 싸운 지 수십여 합에 왕평이 힘도 빠지고 세력도 고립되어 어쩔 수 없이 퇴각했다. 위병들이 진시(오전 8시쯤)부터 술시(오후 8시쯤)까지 포위하니 산 위에 물이 없어 군사들이 먹지 못하여 군중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 한밤중이 되자 아우성치며, 산 남쪽의 촉병들이 영채 문을 활짝 열고 산을 내려가 위나라에 항복하지만, 마속이 제지하지 못했다. 사마의가 다시 사람들을 시켜 산기슭에 불을 지르자 산 위의 촉병들이 더욱 혼란에 빠졌다. 마속이 수비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어쩔 수 없이 남은 병력을 몰아 산 서쪽으로 내려가 달아났다. 사마의가 큰길을 터주어 마속이 달아나도록 놔두었다. 배후에서 장합이 병력을 이끌고 뒤쫓았다. 3십여 리를 추격하자 앞쪽에서 북소리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리며 한 무리 군사가 튀어나와 마속을 통과시키고 장합을 가로막았다. 보니 바로 위연이었다. 위연이 칼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 곧바로 장합에게 달려들었다. 장합이 군사를 되돌려 달아났다. 위연이 군사를 몰아 가정을 다시 빼앗으려 했다. 5십여 리를 추격하자 한바탕 함성이 일어나며 양쪽에서 복병이 일제히 나왔다. 왼쪽은 사마의이고, 오른쪽은 사마소였다. 도리어 위연의 배후를 공격하여 위연을 포위의 한 가운데로 몰아넣었다.
 
 
109
張郃複來,三路兵合在一處。魏延左沖右突,不得脫身,折兵大半。正危急間,忽一彪軍殺入,乃王平也。延大喜曰:“吾得生矣!”二將合兵一處,大殺一陣,魏兵方退。二將慌忙奔回寨時,營中皆是魏兵旌旗。申耽、申儀從營中殺出。王平、魏延徑奔列柳城,來投高翔。此時高翔聞知街亭有失,盡起列柳城之兵,前來救應,正遇延、平二人,訴說前事。高翔曰:“不如今晚去劫魏寨,再複街亭。”當時三人在山坡下商議已定。待天色將晚,兵分三路。魏延引兵先進,徑到街亭,不見一人,心中大疑,未敢輕進,且伏在路口等候.
 
110
장합이 다시 와서 세 갈래 병력이 한데 합쳤다. 위연이 좌충우돌하지만 탈출하지 못하고 병력의 태반을 잃었다. 바로 위급한 순간에 홀연히 한 무리 군사가 돌입하니 바로 왕평이었다.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111
“내가 살았구나!”
 
112
하고, 두 장수가 병력을 한데 모아 한바탕 크게 무찌르니 위병들이 비로소 물러갔다. 두 장수가 황망히 영채로 돌아가 보니 영채에는 온통 위나라 깃발이 휘날렸다. 신탐과 신의가 영채 안에서 튀어나왔다. 왕평과 위연이 곧장 열류성으로 달아나 고상을 찾아갔다. 이때 고상은 가정을 빼앗긴 것을 전해 듣고 열류성의 병력을 모조리 일으켜서 구원하러 오고 있었다. 마침 위연과 왕평 두 사람과 맞닥뜨리니 그들이 앞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고상이 말하기를,
 
113
“오늘 저녁 위나라 영채를 습격하여 가정을 되찾는 것이 낫겠소.”
 
114
했다. 이때 세 사람이 산비탈 아래에서 상의하여 정했다.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서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위연이 병력을 이끌고 먼저 진군하여 곧바로 가정에 이르지만, 적병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서 마음속으로 크게 의심하여 감히 함부로 전진하지 못하고, 일단 길 어귀에 매복하여 기다렸다.
 
 
115
忽見高翔兵到,二人共說魏兵不知在何處。正沒理會,又不見王平兵到。忽然一聲炮響,火光沖天,鼓聲震地:魏兵齊出,把魏延、高翔圍在垓心。二人往來沖突,不得脫身。忽聽得山坡後喊聲若雷,一彪軍殺入,乃是王平,救了高、魏二人,徑奔列柳城來。比及奔到城下時,城邊早有一軍殺到,旗上大書“魏都督郭淮”字樣。原來郭淮與曹真商議,恐司馬懿得了全功,乃分淮來取街亭;聞知司馬懿、張郃成了此功,遂引兵徑襲列柳城。正遇三將,大殺一陣。蜀兵傷者極多。魏延恐陽平關有失,慌與王平、高翔望陽平關來。
 
116
갑자기 고상의 병력도 당도하여 두 사람이 함께 위병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찌 된 까닭인지 모르겠는데 또한 왕평의 병력도 오지 않았다. 홀연 한바탕 포성이 울리며 불길이 하늘을 찌르고 북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위병들이 일제히 몰려나와 위연과 고상을 포위의 한가운데에 빠뜨렸다. 두 사람이 좌충우돌하지만 탈출하지 못했다. 갑자기 산비탈 뒤에서 우레 같은 함성소리가 들리며 한 무리 군사가 몰려드니 바로 왕평이었다. 고상과 위연 두 사람을 구출하여 열류성으로 급히 달아났다. 성 아래 이르자 어느 틈엔가 성 주변에서 한 무리 군사가 쇄도하는데 깃발에 '위나라 도독 곽회'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원래 곽회는 조진과 상의하여 사마의가 모든 공을 가져갈까 두려워했다. 이에 곽회에게 병력을 나눠주어 가정을 점령하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사마의와 장합이 이미 그 공을 세운 것을 들어서 알고, 곧 병력을 이끌고 열류성을 습격하러 온 것이었다. 마침 이들 세 장수와 마주쳐서 한바탕 크게 무찌르니 촉나라 병사 가운데 사상자가 극히 많았다. 위연이 양평관을 잃을까 두려워서 황망히 왕평, 고상과 함께 양평관으로 갔다.
 
 
117
卻說郭淮收了軍馬,乃謂左右曰:“吾雖不得街亭,卻取了列柳城,亦是大功。”引兵徑到城下叫門,只見城上一聲炮響,旗幟皆豎,當頭一面大旗,上書“平西都督司馬懿”。懿撐起懸空板,倚定護心木欄幹,大笑曰:“郭伯濟來何遲也?”淮大驚曰:“仲達神機,吾不及也!”遂入城。相見已畢,懿曰:“今街亭已失,諸葛亮必走。公可速與子丹星夜追之。”郭淮從其言,出城而去。
 
118
한편, 곽회는 군사를 거두고, 좌우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119
“내가 비록 가정을 점령하지 못했으나 열류성을 취한 것도 큰 공이라 하겠소.”
 
120
했다. 병력을 이끌고 성 아래에 이르러 문을 열라고 외치는데, 성 위에서 한 차례 포성이 울리며 온갖 깃발이 일제히 일어서고 맨 앞 큰 깃발 위에 '평서도독 사마의'라고 적혀 있었다. 사마의가 현공판(성문에서 해자 위에 걸치는 가동식 다리)을 걷어 올리고 가슴을 보호하는 목책 난간에 기대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121
“곽백제(곽회)는 어찌 이리 늦게 오시오?"하니, 곽회가 깜짝 놀라며 밀하기를,”
 
122
중달( 사마의)의 신묘한 지략은 내가 따르지 못하겠구려!"했다. 곧 성 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마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123
“이제 가정을 이미 잃었으니 제갈량이 반드시 달아날 것이오. 공은 빨리 자단(조진)과 함께 밤낮없이 그를 추격하시오." 했다. 곽회가 그 말을 따라 성을 나가서 떠났다.
 
 
124
懿喚張郃曰:“子丹、伯濟,恐吾全獲大功,故來取此城池。吾非獨欲成功,乃僥幸而已。吾料魏延、王平、馬謖、高翔等輩,必先去據陽平關。吾若去取此關,諸葛亮必隨後掩殺,中其計矣。兵法雲:‘歸師勿掩,窮寇莫追。’汝可從小路抄箕穀退兵。吾自引兵當斜穀之兵。若彼敗走,不可相拒,只宜中途截住:蜀兵輜重,可盡得也。”張郃受計,引兵一半去了。懿下令:“竟取斜穀,由西城而進。西城雖山僻小縣,乃蜀兵屯糧之所,又南安、天水、安定三郡總路。若得此城,三郡可複矣。”於是司馬懿留申耽、申儀守列柳城,自領大軍望斜穀進發。
 
125
시마의가 장합을 불러 말하기를,
 
126
“자단(조진)과 백제(곽회)는 내가 큰 공을 모두 차지할까 두려워서 이곳 성을 취하러 왔던 것이오. 내가 홀로 공을 이루려 한 것이 아니라 요행으로 이렇게 되었을 뿐이오. 내가 보기에 위연, 왕평, 마속, 고상의 무리는 틀림없이 양평관으로 먼저 갈 것이오. 내가 그곳을 취하러 가면 제갈량이 반드시 뒤따라 습격하여 결국 그의 계략에 빠지고 말 것이오. 병법에 이르기를,‘돌아가는 적군을 치지 말며 궁지에 몰린 적병을 뒤쫓지 말라.’하였소. 그대는 지름길을 따라가서 기곡의 후퇴하는 군사를 공격하시오. 나는 직접 병력을 이끌고 사곡의 적병을 맡겠소. 그들이 패주하면 막지 말고 다만 중도에서 차단해야 촉병의 군수물자를 모두 노획할 수 있소.”
 
127
했다. 장합이 계책을 받고, 병력 절반을 이끌고 떠났다. 사마의가 명령을 내리기를,
 
128
“지금 바로 사곡을 취하러, 서성으로 진격할 것이다. 서성이 비록 외진 산속의 작은 현이지만 촉병의 군량 저장소이자 남안, 천수, 안정 3개 군으로 모두 통하는 길이다. 그 성을 점령하면 3개 군을 회복할 수 있다.”
 
129
고 했다. 이에 사마의가 신탐과 신의를 남겨서 열류성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는 대군을 거느리고 사곡으로 나아갔다.
 
 
130
卻說孔明自令馬謖等守街亭去後,猶豫不定。忽報王平使人送圖本至。孔明喚入,左右呈上圖本。孔明就文幾上拆開視之,拍案大驚曰:“馬謖無知,坑陷吾軍矣!”左右問曰:“丞相何故失驚?”孔明曰:“吾觀此圖本,失卻要路,占山爲寨。倘魏兵大至,四面圍合,斷汲水道路,不須二日,軍自亂矣。若街亭有失,吾等安歸?”長史楊儀進曰:“某雖不才,願替馬幼常回。”孔明將安營之法,一一分付與楊儀。正待要行,忽報馬到來,說:“街亭、列柳城,盡皆失了!”
 
131
한편, 공명은 마속 등에게 가정을 지키러 보낸 뒤에도 망설이고 결정하지 못했다. 문득 왕평이 보낸 사람이 그곳을 그린 도본을 가지고 왔다. 공명이 그를 불러들이니 측근이 도본을 바쳐 올렸다. 공명이 탁자 위에서 뜯어보더니 탁자를 내리치며 몹시 놀라 말하기를,
 
132
“마속이 무지하여 아군을 구렁텅이에 빠뜨리는구나! ”
 
133
하니, 좌우에서 묻기를,
 
134
“승상께서 무슨 까닭에 깜짝 놀라십니까?”
 
135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36
“내가 이 도본을 살펴보니 길목을 버리고 도리어 산 위에 영채를 세웠소. 만약 위병이 와서 사방으로 포위하여 물길을 끊는다면 이틀이 못 되어 아군이 저절로 혼란에 빠질 것이오. 가정을 잃는다면 우리가 어찌 돌아가겠소?”
 
137
했다. 장사(비서실장) 양의가 진언하기를,
 
138
“제가 비록 재주 없으나 마유상(마속)에게 가 보겠습니다.”
 
139
하니, 공명이 영채를 만들어 주둔하는 법을 하나하나 양의에게 알려주고 분부했다. 막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달려와 말하기를,
 
140
“가정과 열류성을 모두 잃었습니다!”
 
141
했다.
 
 
142
孔明跌足長歎曰:“大事去矣!此吾之過也!”急喚關興、張苞分付曰:“汝二人各引三千精兵,投武功山小路而行。如遇魏兵,不可大擊,只鼓噪呐喊,爲疑兵驚之。彼當自走,亦不可追。待軍退盡,便投陽平關去。”又令張冀先引軍去修理劍閣,以備歸路。又密傳號令,教大軍暗暗收拾行裝,以備起程。又令馬岱、薑維斷後,先伏於山穀中,待諸軍退盡,方始收兵。又差心腹人,分路報與天水、南安、安定三郡官吏軍民,皆入漢中。又遣心腹人到冀縣搬取薑維老母,送入漢中。
 
143
공명이 발을 구르며 길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144
“대사를 그르쳤구나! 이 모두 나의 잘못이다!”
 
145
하고, 급히 관흥과 장포를 불러 분부하기를,
 
146
“그대들은 각각 정병 3천을 거느리고 무공산의 지름길로 가시오. 위나라 병력을 만나더라도 크게 공격하지 말고, 다만 북을 치고 함성을 질러 의심스런 군사가 되어 놀라게 하시오. 적병이 스스로 물러나도 추격하지 마시오. 모두 물러가기를 기다려 즉시 양평관으로 가시오.”
 
147
했다. 다시 장익에게 명하여 먼저 군사를 이끌고 가서 검각을 수리하여 퇴로를 준비하게 했다. 또한 은밀히 촉나라 대군에게 명령을 전하여, 암암리에 행장을 수습하여 떠날 준비를 하라고 했다. 또한 마대와 강유에게 명하여, 후미를 차단하고 먼저 산골짜기에 매복하여 다른 군사들이 모두 퇴각을 마치면 비로소 철수하라고 했다. 다시 심복들을 보내어 천수, 남안, 안정 세 고을로 길을 나눠 들어가 관리와 군민들을 모두 한중으로 들어가게 했다. 다시 심복을 시켜 기현으로 가서 강유의 노모를 모시고 한중으로 들어가게 했다.
 
 
148
孔明分撥已定,先引五千兵退去西城縣搬運糧草。忽然十餘次飛馬報到,說:“司馬懿引大軍十五萬,望西城蜂擁而來!”時孔明身邊別無大將,只有一班文官,所引五千軍,已分一半先運糧草去了,只剩二千五百軍在城中。 衆官聽得這個消息,盡皆失色。孔明登城望之,果然塵土沖天,魏兵分兩路望西城縣殺來。孔明傳令,教“將旌旗盡皆隱匿;諸軍各守城鋪,如有妄行出入,及高言大語者,斬之!大開四門,每一門用二十軍士,扮作百姓,灑掃街道。如魏兵到時,不可擅動,吾自有計。”孔明乃披鶴氅,戴綸巾,引二小童攜琴一張,於城上敵樓前,憑欄而坐,焚香操琴。
 
149
공명이 이렇게 처리를 마치고 먼저 병력 5천을 거느리고 서성현으로 가서 군량과 사료를 운반하려 했다. 갑자기 십여 차례나 급보가 날아드니, 사마의가 이끄는 15만 대군이 서성으로 벌떼처럼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 공명 곁에는 대장이 아무도 없고 오로지 한 무리 문관만 있고 휘하의 군사 5천도 이미 절반은 군량과 사료를 운반하도록 떠나보내어 성안에는 겨우 2천 5백 명의 군사만 있었다. 이러한 소식을 관리들이 듣고 모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공명이 성에 올라 바라보니 과연 흙먼지가 하늘을 찌르며 위병들이 두 갈래로 나뉘어 서성현으로 쇄도했다. 공명이 명령을 전하여 지시하기를,
 
150
“각종 깃발을 모두 감추고 장수들은 제각기 성벽의 방어 시설을 수비하며 함부로 출입하거나 큰 소리로 떠드는 자는 즉시 참할 것이다. 네 개 성문을 활짝 열고 성문마다 스무 명의 군사를 백성으로 가장하여 길거리를 청소해라. 위병들이 오더라도 멋대로 행동하지 말라. 나에게 따로 계책이 있다.”
 
151
고 했다. 이에 공명이 학창의를 입고 윤건을 쓰고 작은 동자 둘을 데리고 거문고를 가지고 성벽 위의 적루 앞에서 난간에 기대앉아 향불을 피우고 거문고를 탔다.
 
 
152
卻說司馬懿前軍哨到城下,見了如此模樣,皆不敢進,急報與司馬懿。懿笑而不信,遂止住三軍,自飛馬遠遠望之。果見孔明坐於城樓之上,笑容可掬,焚香操琴。左有一童子,手捧寶劍;右有一童子,手執麈尾。城門內外,有二十餘百姓,低頭灑掃,傍若無人,懿看畢大疑,便到中軍,教後軍作前軍,前軍作後軍,望北山路而退。次子司馬昭曰:“莫非諸葛亮無軍,故作此態?父親何故便退兵?”
 
153
한편, 사마의의 전초 부대가 성 아래로 정찰을 와서 이러한 모습을 보고 서둘러 사마의에게 알렸다. 사마의는 웃으며 믿지 않고, 곧 삼군의 진격을 멈추고 스스로 급히 말을 몰아 먼 거리에서 바라보았다. 과연 공명이 성루 위에 앉아 뚜렷이 웃는 모습으로 향을 사르며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왼쪽에 한 동자가 손으로 보검을 받들었고, 오른쪽의 한 동자는 먼지떨이 를 잡고 있었다. 성문 안팎에서 스물 남짓의 백성들이 머리를 숙인 채 물을 뿌리고 쓸고 있는데 옆에 마치 사람이 없는 듯했다. 사마의가 이를 보고 크게 의심이 들어 곧 중군으로 가서 지시하기를, 후군을 전군으로, 전군을 후군으로 바꾸어 북쪽 산길 쪽으로 물러나라고 했다. 둘째 아들 사마소가 말하기를,
 
154
“틀림없이 제갈량에게 아무 군사도 없어 저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친께서 어찌 바로 병력을 물리십니까?" 했다.
 
 
155
懿曰:“亮平生謹慎,不曾弄險。今大開城門,必有埋伏。我兵若進,中其計也。汝輩豈知?宜速退。”於是兩路兵盡皆退去。孔明見魏軍遠去,撫掌而笑。 衆官無不駭然,乃問孔明曰:“司馬懿乃魏之名將,今統十五萬精兵到此,見了丞相,便速退去,何也?”孔明曰:“此人料吾生平謹慎,必不弄險;見如此模樣,疑有伏兵,所以退去。吾非行險,蓋因不得已而用之。此人必引軍投山北小路去也。吾已令興、苞二人在彼等候。”
 
156
사마의가 말하기를,
 
157
“제갈량은 평생 신중하여 여태껏 함부로 모험하지 않았다. 지금 성문을 활짝 열었으니 반드시 매복이 있을 것이다. 아군이 진격한다면 그 계략에 걸려들 것이다. 너희들이 어찌 알겠나? 어서 물러나야 한다.”
 
158
했다. 이에 두 갈래의 병력이 모두 퇴각했다. 공명은 위나라 군대가 멀리 떠난 것을 보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관리들은 깜짝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공명에게 묻기를,
 
159
“사마의는 위나라의 이름난 장수로서 지금 15만 정병을 거느리고 이곳으로 왔거늘 승상을 보자마자 급히 물러났습니다. 어찌된 까닭입니까?”
 
160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61
“그는 내가 평소에 신중한 줄만 알아서 반드시 모험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소. 그런데 이런 모양을 보고 복병이 있을까 의심하여 퇴각한 것이오. 내가 모험을 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까닭에 그렇게 했을 뿐이오. 그는 틀림없이 군사를 이끌고 북쪽 산속 지름길로 갈 것이오. 내가 이미 관흥, 장포 두 사람에게 명하여 그곳에서 기다리도록 했소.”
 
162
했다.
 
 
163
衆皆驚服曰:“丞相之機,神鬼莫測。若某等之見,必棄城而走矣。”孔明曰:“吾兵止有二千五百,若棄城而走,必不能遠遁。得不爲司馬懿所擒乎?”後人有詩贊曰:“瑤琴三尺勝雄師,諸葛西城退敵時。十五萬人回馬處,土人指點到今疑。”言訖,拍手大笑,曰:“吾若爲司馬懿,必不便退也。”遂下令,教西城百姓,隨軍入漢中;司馬懿必將複來。於是孔明離西城望漢中而走。天水、安定、南安三郡官吏軍民,陸續而來。
 
164
사람들이 모두 놀라 탄복하여 말하기를,
 
165
“승상의 지략은 귀신도 예측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희 같았으면 반드시 성을 버리고 달아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166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67
“우리 병력은 겨우 2천5백에 불과하니, 만약 성을 버리고 달아났더라도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오. 결국 사마의에게 사로잡히지 않겠소?”
 
168
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
 
169
“석 자 거문고로 대군을 물리치니, 제갈량이 서성에서 적군을 물리쳤을 때라네. 십오만 대군이 말머리를 돌린 곳을, 원주민이 가리키지만 지금도 믿기지 않네.”
 
170
했다. (공명이) 말을 마치더니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171
“내가 만약 사마의였다면, 반드시 바로 물러나지는 않았을 것이오.”
 
172
하고, 곧 명령을 내려, 서성의 백성들도 군사들을 따라 한중으로 들어가게 하며, 사마의가 반드시 다시 올 것이라 했다. 이에 공명이 서성을 떠나 한중으로 달아났다. 천수, 안정, 남안 세 군의 관리와 군민들도 계속 따라갔다.
 
 
173
卻說司馬懿望武功山小路而走。忽然山坡後喊殺連天,鼓聲震地。懿回顧二子曰:“吾若不走,必中諸葛亮之計矣。”只見大路上一軍殺來,旗上大書“右護衛使虎翼將軍張苞”。魏兵皆棄甲拋戈而走。行不到一程,山穀中喊聲震地,鼓角喧天,前面一杆大旗,上書“左護衛使龍驤將軍關興”。山穀應聲,不知蜀兵多少;更兼魏軍心疑,不敢久停,只得盡棄輜重而去。興、苞二人皆遵將令,不敢追襲,多得軍器糧草而歸。司馬懿見山穀中皆有蜀兵,不敢出大路,遂回街亭。
 
174
한편, 사마의가 무공산의 좁은 길로 달아나는데, 갑자기 산 뒤에서 함성이 하늘을 찌르고 북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사마의가 두 아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175
“내가 아까 떠나지 않았으면 반드시 제갈량의 계책에 빠졌겠구나.”
 
176
했다. 그런데 큰길로 한 무리 군사가 몰려왔다. 깃발 위에 큰 글씨로 '우호위사 호익장군 장포'라고 적혔다. 위나라 병사들이 모두 갑옷과 창을 버리고 달아났다. 한 마장을 못 가서 산골짜기 안에서 함성이 땅을 뒤흔들고 북소리 피리 소리가 하늘을 울리는데 앞쪽의 큰 깃발 위에 '좌호위사 용양장군 관흥'이라 적혔다. 산골짜기에서 소리에 응하니 촉병들의 숫자가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위나라 군사들이 더욱 의심하여 감히 오래 머물지 못하고 모조리 군수물자를 버리고 달아났다. 관흥과 장포 두 사람이 모두 군령을 준수하여 감히 추격하지 않고 다만 군수물자와 군량과 사료를 많이 얻어서 돌아갔다. 사마의는 산골짜기에 온통 촉병인 것을 보고, 감히 큰길로 나오지 못하고 마침내 가정으로 돌아갔다
 
 
177
此時曹真聽知孔明退兵,急引兵追趕。山背後一聲炮響,蜀兵漫山遍野而來:爲首大將,乃是薑維、馬岱。真大驚,急退軍時,先鋒陳造已被馬岱所斬。真引兵鼠竄而還。蜀兵連夜皆奔回漢中。卻說,趙雲、鄧芝伏兵於箕穀道中。聞孔明傳令回軍,雲謂芝曰:“魏軍知吾兵退,必然來追。吾先引一軍伏於其後,公卻引兵打吾旗號,徐徐而退。吾一步步自有護送也。
 
178
이때 조진은 공명이 후퇴한 것을 듣고 급히 병력을 이끌고 뒤쫓았다. 산 뒤에서 한 차례 포성이 울리더니 촉병들이 산과 들을 가득 덮은 채 몰려왔다. 앞장선 대장은 바로 강유와 마대였다. 조진이 크게 놀라 급히 군사를 물리는데, 위나라 선봉 진조를 벌써 마대가 참했다. 조진이 병력을 이끌고 쥐처럼 되돌아서 달아나니, 촉병들이 밤새 모두 한중으로 돌아갔다. 한편, 조운과 등지의 복병은 기곡으로 통하는 길에 있다가, 공명이 군사를 물리라는 명령을 전하니 조운이 등지에게 말하기를,
 
179
“아군이 후퇴한 것을 위군이 안다면 반드시 추격할 것이오. 내가 먼저 1군을 거느리고 그 뒤에 매복할 테니 공께서는 군사를 이끌고 나의 깃발을 앞세워서 서서히 퇴각하시오. 내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호송해주겠소.”
 
180
했다.
 
 
181
卻說,郭淮提兵再回箕穀道中,喚先鋒蘇顒分付曰:“蜀將趙雲,英勇無敵。汝可小心提防,彼軍若退,必有計也。”蘇顒欣然曰:“都督若肯接應,某當生擒趙雲。”遂引前部三千兵,奔入箕穀。看看趕上蜀兵,只見山坡後閃出紅旗白字,上書“趙雲”。蘇顒急收兵退走。行不到數裏,喊聲大震,一彪軍撞出:爲首大將,挺槍躍馬,大喝曰:“汝識趙子龍否!”蘇顒大驚曰:“如何這裏又有趙雲?”措手不及,被雲一槍刺死於馬下。餘軍潰散。
 
182
한편, 곽회는 병력을 거느리고 다시 기곡으로 통하는 길로 돌아가며 선봉장 소옹을 불러 분부하기를,
 
183
“촉장 조운은 뛰어나게 용맹스러워 대적할 자가 없으니 그대는 조심하여 대비하시오. 저들 군사가 만약 물러난다면 반드시 계략이 있을 것이오.”
 
184
하니, 소옹이 흔연히 말하기를,
 
185
“도독께서 기꺼이 도와주시면 제가 조운을 사로잡겠습니다.”
 
186
했다. 곧 선두 병력 3천을 이끌고 기곡으로 돌입했다. 점점 촉병을 따라잡는데 산비탈 뒤쪽에서 갑자기 나타난 붉은 깃발에 흰 글씨로 '조운'이라 적혔다. 소옹이 급히 군사를 거두어 물러났다. 몇 리 못 가서 함성이 크게 일며 또 한 무리 군사가 튀어나왔다. 앞장선 대장이 창을 꼬나쥐고 말을 몰며 크게 외치기를,
 
187
“네놈이 조자룡을 알아보겠느냐?”
 
188
하니, 소옹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189
“어떻게 여기에도 또 조운이 있단 말이냐!”
 
190
했다. 미처 손을 쓰지도 못한 채 조운의 한 창에 찔려 죽어서 말 아래 뒹굴었다. 나머지 군사들은 무너져 흩어졌다.
 
 
191
雲迤邐前進,背後又一軍到,乃郭淮部將萬政也。雲見魏兵追急,乃勒馬挺槍,立於路口,待來將交鋒。蜀兵已去三十餘裏。萬政認得是趙雲,不敢前進,雲等得天色黃昏,方才撥回馬緩緩而進。郭淮兵到,萬政言趙雲英勇如舊,因此不敢近前。淮傳令教軍急趕,政令數百騎壯士趕來。行至一大林,忽聽得背後大喝一聲曰:“趙子龍在此!”驚得魏兵落馬者百餘人,餘者皆越嶺而去。萬政勉強來敵,被雲一箭射中盔纓,驚跌於澗中。雲以槍指之曰:“吾饒汝性命回去!快教郭淮趕來!”萬政脫命而回。雲護送車仗人馬,望漢中而去,沿途並無遺失。曹真、郭淮複奪三郡,以爲己功。
 
192
조운이 계속 전진하는데 배후에서 다시 한 무리 군사가 나타나니 바로 곽회의 부하 장수 만정이었다. 위병이 급히 추격하자 조운이 말을 멈춰 세우고 창을 꼬나쥔 채 길 어귀에 서서 적장과 교전하려고 기다렸다. 촉병은 이미 30여 리나 갔다. 만정이 조운을 알아보고 감히 전진하지 못했다. 조운이 하늘이 저물기를 기다려 비로소 말머리를 돌려 천천히 퇴각했다. 곽회의 병력이 도착하자 만정은 조운이 여전히 용맹하여 그로 인해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곽회가 군사들에게 급히 추격하라고 하자, 만정이 씩씩하고 용감한 군사 수백 기에게 추격하게 했다. 이들이 어느 큰 숲에 이르자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기를,
 
193
“조자룡이 여기 있다!”
 
194
하니, 깜짝 놀란 위병이 말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 백여 명이고 나머지는 고개를 넘어 달아났다. 만정이 힘껏 달려들지만 조운이 쏜 화살이 투구의 끈에 명중하니 놀라서 계곡물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조운이 창으로 만정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195
“내가 네 목숨을 살려줄 테니 돌아가거라! 어서 곽회더러 추격하여 오라고 말해라!”
 
196
하니, 만정이 목숨을 구하여 돌아갔다. 조운이 수레와 인마를 호송하여 한중으로 가면서 도중에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았다. 조진과 곽회는 세 개 군을 탈환하여 전공으로 삼았다.
 
 
197
卻說,司馬懿分兵而進。此時蜀兵盡回漢中去了,懿引一軍複到西城,因問遺下居民及山僻隱者,皆言孔明止有二千五百軍在城中,又無武將,只有幾個文官,別無埋伏。武功山小民告曰:“關興、張苞,只各有三千軍,轉山呐喊,鼓噪驚追,又無別軍,並不敢廝殺。”懿悔之不及,仰天歎曰:“吾不如孔明也!”遂安撫了諸處官民,引兵徑還長安,朝見魏主。睿曰:“今日複得隴西諸郡,皆卿之功也。”懿奏曰:“今蜀兵皆在漢中,未盡剿滅。臣乞大兵並力收川,以報陛下。”睿大喜,令懿即便興兵。忽班內一人出奏曰:“臣有一計,足可定蜀降吳。”正是:蜀中將相方歸國,魏地君臣又逞謀。
 
198
한편, 사마의는 병력을 나눠 진격하는데, 이때 이미 촉병들은 모두 한중으로 가버렸다. 사마의가 한 무리 군사를 이끌고 다시 서성으로 가니, 그곳에 남은 백성들이나 외진 산속에 숨은 자들이나 모두 말하기를, 공명이 겨우 2천 5백의 군사만 성안에 있었고, 무장은 없고 다만 문관만 몇 명 있었으며, 따로 병력을 매복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무공산의 백성이 고하기를,
 
199
“관흥과 장포는 제각기 단지 3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산을 돌아나와 함성을 지르고 북소리 요란하게 급히 추격했지만 역시 따로 돕는 군사가 없어 감히 공격하지 못한 것입니다.”
 
200
했다. 사마의가 후회해 마지않으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201
“나는 공명에 미치지 못하는구나!”
 
202
하고, 곧 관리와 백성들을 위무하고 병력을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가서 위나라 군주를 알현했다. 위주 조예가 말하기를,
 
203
“오늘날 농서 지방의 여러 군을 다시 얻은 것은 모두 경의 공이오.”
 
204
하니, 사마의가 아뢰기를,
 
205
“이제 촉병이 모두 한중에 있어 아직 저들을 모조리 소탕하지 못하였습니다. 신에게 대군을 주시면 힘을 합쳐 서천(촉)을 수복하여 폐하께 보답하겠나이다.”
 
206
했다. 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사마의에게 즉시 병력을 일으키라고 했다. 갑자기 반열에서 한 사람이 나와서 아뢰기를,
 
207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사오니 족히 촉나라를 평정하고 오나라를 항복시킬 수 있습니다.”
 
208
했다. 이야말로, 촉나라 장수와 승상이 귀국하자마자, 위나라 군신은 다시 음모를 꾸미네.
 
 
209
未知獻計者是誰,且看下文分解。
 
210
계책을 바친 이가 누군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95회 마속이 간언을 듣지 않아 가정을 빼앗기고 무후가 거문고를 타서 중달을 물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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