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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73회 현덕은 한중왕에 오르고, 운장은 양양군을 쳐서 빼앗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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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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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七十三回 玄德進位漢中王 雲長攻拔襄陽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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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회 현덕은 한중왕에 오르고, 운장은 양양군을 쳐서 빼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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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曹操退兵至斜穀,孔明料他必棄漢中而走,故差馬超等諸將,分兵十數路,不時攻劫。因此操不能久住;又被魏延射了一箭,急急班師。三軍銳氣墮盡。前隊才行,兩下火起,乃是馬超伏兵追趕。曹兵人人喪膽。操令軍士急行,曉夜奔走無停;直至京兆,方始安心。且說玄德命劉封、孟達、王平等,攻取上庸諸郡,申耽等聞操已棄漢中而走,遂皆投降,玄德安民已定,大賞三軍,人心大悅。於是 衆將皆有推尊玄德爲帝之心;未敢徑啟,卻來稟告諸葛軍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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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 조조는 병력을 후퇴시켜서 사곡에 이르렀다. 공명은 그가 틀림없이 한중을 포기하고 달아날 것이라 생각하고 마초 등 여러 장수를 보내서 병력을 열 몇 갈래로 나누어 불시에 공격했다. 이로 인해 조조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또 위연에게 화살을 맞아 급히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니 삼군의 예기가 모조리 꺾였다. 앞쪽 대열이 조금 행군하자 양쪽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바로 마초의 복병이 쫓아와서 조조 군사들이 모두 간담이 떨어졌다. 조조가 군사들에게 서둘러 가자고 명령하여 밤낮으로 쉬지 않고 달아났다. 곧장 경조 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안심했다. 한편, 현덕은 유봉, 맹달, 왕평 등에게 상용의 여러 군을 쳐서 빼앗으라고 했다. (상용 태수) 신탐 등은 조조가 이미 한중을 포기하고 달아난 것을 듣고 곧 모두 투항했다. 현덕이 백성들을 안심시킨 후에 삼군에 크게 상을 내리니 인심이 크게 기뻐했다. 이에 여러 장수들이 모두 현덕을 황제로 받들 마음을 가졌지만 아직 감히 당장 나타내지 못하고, 제갈 군사에게 아뢰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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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明曰:“吾意已有定奪了。”隨引法正等入見玄德,曰:“今曹操專權,百姓無主;主公仁義著於天下,今已撫有兩川之地,可以應天順人,即皇帝位,名正言順,以討國賊。事不宜遲,便請擇吉。”玄德大驚曰:“軍師之言差矣。劉備雖然漢之宗室,乃臣子也;若爲此事,是反漢矣。”孔明曰:“非也。方今天下分崩,英雄並起,各霸一方,四海才德之士,舍死亡生而事其上者,皆欲攀龍附鳳,建立功名也。今主公避嫌守義,恐失 衆人之望。願主公熟思之。”玄德曰:“要吾僭居尊位,吾必不敢。可再商議長策。”諸將齊言曰:“主公若只推卻, 衆心解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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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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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은 이미 정해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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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곧 법정 등을 이끌고 들어가 현덕을 만나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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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조가 권력을 전횡하니 백성에게 임금이 없습니다. 주공께서 인의를 천하에 드러내고 이미 양천(서천과 동천) 땅을 장악하였으니, 가히 천명에 응하고 인심을 따라서 황제의 자리에 올라야 합니다. 명분이 바르고 말이 순조로우니 이로써 나라의 역적을 토벌해야 합니다. 이 일은 늦춰서는 아니 되니 청하옵건대 바로 길일을 잡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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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현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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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의 말씀이 틀렸습니다. 유비가 비록 한나라 종실이지만 곧 신하입니다. 만약 그런 일을 하면 바로 한나라에 반역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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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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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이제 천하가 갈라져 무너지고 영웅들이 아울러 일어나서 제각기 한 곳을 제패하여 천하의 재능과 덕망이 있는 인물들이 생사를 무릅쓰고 그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모두 용과 봉황(영웅)에게 붙어서 공명을 세우고자 함입니다. 이제 주공께서 사람들의 의심을 피해서 의리만 고집하시다가 사람들의 소망을 잃어버릴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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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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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참람하게 존위(황제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면, 정말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다시 원대한 계책을 상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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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장수들이 일제히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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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께서 만약 (우리의 뜻을) 물리치시기만 하시면, 사람들의 마음이 떠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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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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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明曰:“主公平生以義爲本,未肯便稱尊號。今有荊襄、兩川之地,可暫爲漢中王。”玄德曰:“汝等雖欲尊吾爲王,不得天子明詔,是僭也。”孔明曰:“今宜從權,不可拘執常理。”張飛大叫曰:“異姓之人,皆欲爲君,何況哥哥乃漢朝宗派!莫說漢中王,就稱皇帝,有何不可!”玄德叱曰:“汝勿多言!”孔明曰:“主公宜從權變,先進位漢中王,然後表奏天子,未爲遲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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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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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께서 평생 의리를 근본으로 삼아서 아직 존칭을 일컫지 않았습니다. 이제 형주와 양양, 동천과 서천의 땅을 가졌으니 잠시 한중왕이 되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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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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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이 비록 나를 왕으로 높이고자 하나, 천자의 분명한 명령을 받지 않으면 이것은 참람한 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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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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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마땅히 임시방편에 따라야지 당연한 도리만 고집하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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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장비가 크게 외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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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가 다른 사람도 모두 군주가 되려는데 하물며 형님은 바로 한조의 종파이시오! 한중왕은 말할 것도 없고, 바로 황제라 칭한들 안 될 게 무엇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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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현덕이 꾸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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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여러 말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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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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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께서 마땅히 임시변통에 따라 먼저 한중왕에 오르시고 그런 뒤 천자께 표를 올려 아뢰어도 늦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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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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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德再三推辭不過,只得依允。建安二十四年秋七月,築壇於沔陽,方圓九裏,分布五方,各設旌旗儀仗。群臣皆依次序排列。許靖、法正請玄德登壇,進冠冕璽綬訖,面南而坐,受文武官員拜賀爲漢中王。子劉禪,立爲王世子。封許靖爲太傅,法正爲尚書令;諸葛亮爲軍師,總理軍國重事。封關羽、張飛、趙雲、馬超、黃忠爲五虎大將,魏延爲漢中太守。其餘各擬功勳定爵。玄德既爲漢中王,遂修表一道,差人齎赴許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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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이 두세 번 사양하며 미루더니, 할 수 없이 허락했다. 건안 14년 가을 7월 면양에 단을 쌓으니 모나고 둥글게 9 리에 걸치고 오방(동서남북중)을 나누어, 각각 각종 깃발과 의장을 설치했다. 여러 신하들이 차례대로 배열하고, 허정과 법정이 현덕에게 단을 오를 것을 청하고 면류관과 옥새를 바쳤다. 현덕이 남쪽을 향해 앉고, 한중왕이 된 것을 문무 관리가 절하여 축하하는 것을 받았다. 아들 유선이 왕세자가 되었다. 허정을 태부로, 법정을 상서령으로 봉했다. 제갈량은 군사(軍師)가 되어, 군대와 국가의 중대사를 모두 관장했다.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을 오호대장으로 봉했다. 위연은 한중태수가 되었다. 그 나머지는 각각 공훈에 따라 벼슬을 정했다. 현덕이 한중왕이 된 후, 곧 표를 써서 사람을 시켜 허도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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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曰:“備以具臣之才,荷上將之任,總督三軍,奉辭於外;不能掃除寇難,靖匡王室,久使陛下聖教陵遲,六合之內,否而未泰:惟憂反側,疢如疾首。曩者董卓,偽爲亂階。自是之後,群凶縱橫,殘剝海內。賴陛下聖德威臨,人臣同應,或忠義奮討,或上天降罰,暴逆並殪,以漸冰消。惟獨曹操,久未梟除,侵擅國權,恣心極亂。臣昔與車騎將軍董承,圖謀討操,機事不密,承見陷害。臣播越失據,忠義不果,遂得使操窮凶極逆:主後戮殺,皇子鴆害。雖糾合同盟,念在奮力;懦弱不武,曆年未效。常恐殞沒,辜負國恩;寤寐永歎,夕惕若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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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에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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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머릿수나 채우는 평범한 신하의 재능을 가졌으나 상장의 임무를 맡아 삼군을 총독하여 바깥에서 말씀을 받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적들의 난리를 쓸어버리고 왕실을 편안하게 바로잡지 못하고 오래도록 폐하의 성스러운 교지를 널리 펴지 못했습니다. 천지와 동서남북 곳곳이 흉흉하고 아직 편안하지 못하니 오로지 걱정하며 뒤척이고 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지난날, 동탁이 난리의 계기를 만들어 그 뒤부터 흉악한 무리가 종횡하며 천하를 잔인하게 해쳤습니다. 폐하의 성덕과 군림에 힘입어, 신하들이 호응하여 혹은 충의로써 힘껏 토벌하고, 혹은 하느님께서 천벌을 내려 난폭한 자들이 모두 죽고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홀로 조조가 오래도록 아직 소멸되지 않고 국권을 멋대로 빼앗아 제멋대로 함이 극히 어지럽습니다. 신이 지난날 거기장군 동승과 더불어 조조를 토벌할 것을 도모하였으나, 일을 추진함이 주밀하지 못해서 동승이 해를 당했습니다. 신은 피란하며 근거지를 잃고 충의의 열매를 맺지 못하여 마침내 조조가 흉악하게 황후를 죽기고 황자를 독살했습니다. 비록 동맹을 규합해 힘을 떨칠 것을 생각했으나, 나약한데다 굳세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공을 세우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해 나라의 은혜를 갚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자나깨나 길게 탄식하니, 밤마다 역병처럼 두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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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臣群僚以爲:在昔《虞書》,敦敘九族,庶明勵翼;帝王相傳,此道不廢;周監二代,並建諸姬,實賴晉、鄭夾輔之力;高祖龍興,尊王子弟,大啟九國,卒斬諸呂,以安大宗。今操惡直醜正,實繁有徒,包藏禍心,篡盜已顯;既宗室微弱,帝族無位,斟酌古式,依假權宜:上臣爲大司馬、漢中王。臣伏自三省:受國厚恩,荷任一方,陳力未效,所獲已過,不宜複忝高位,以重罪謗。群僚見逼,迫臣以義。臣退惟寇賊不梟,國難未已;宗廟傾危,社稷將墜:誠臣憂心碎首之日。若應權通變,以寧靜聖朝,雖赴水火,所不得辭。輒順 衆議,拜受印璽,以崇國威。仰惟爵號,位高寵厚;俯思報效,憂深責重。驚怖惕息,如臨於穀。敢不盡力輸誠,獎勵六師,率齊群義,應天順時,以寧社稷。謹拜表以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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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의 여러 관료들이 생각하기에, 지난날 <우서>에 있는 대로, 아홉 종족이 화목하고 현자들이 힘써 보좌하는 것을 제왕들이 서로 전하니 이러한 도리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주나라가 (夏商) 2대를 살피고, 아울러 여러 희씨(주나라의 성씨)를 세운 것은, 참으로 진나라와 정나라가 함께 도와준 것에 의지한 것입니다. 고조 황제께서 왕조를 일으켜서 자제를 왕으로 봉하여 아홉 제후국을 크게 다스리게 하니, 그들이 마침내 여씨들을 참하여 종실을 안정시켰습니다. 이제 조조가 모든 곧고 바른 것을 미워하고 그를 따르는 무리가 실로 번성하며 남을 해칠 마음을 품고 빼앗고 훔치는 것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이미 종실이 미약해지고 황족이 벼슬이 없으니 옛 법식을 짐작해서 잠시 따라서 신을 대사마 한중왕으로 높이고자 합니다. 신이 엎드려 세 번 자성하며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한 지역을 맡아 힘을 다했으나 아직 공을 세우지 못했는데, 신이 획득한 것이 이미 지나친데, 높은 지위를 또 더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아서, (관료들을) 중죄로써 꾸짖었습니다. 신의 관료들은 핍박을 받으며 신을 의리로써 추종해왔습니다. 신이 물러나자니, 다만 아직 도적을 효수하지 못했고, 국난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종묘가 기울어 위급하고, 사직이 장차 무너지려 하니 충신은 근심으로 머리가 깨질 듯한 때입니다. 만약 임기응변으로 천자의 조정을 편안케 할 수 있다면, 비록 물과 불에 들더라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사람들의 의논를 따라, 삼가 옥새를 받아서 나라의 위엄을 높이겠습니다. 벼슬 이름을 우러러 보면, 그 자리가 높고 사랑이 두터워서, 신이 고개 숙여 은혜 갚을 것을 생각하니, 근심은 깊고 책무는 무겁습니다. 놀랍고 두려워서 한숨을 쉬고 마치 깊은 골짜기에 임한 것과 같으니, 신이 어찌 감히 힘과 정성을 다해서 여섯 군대를 격려하고 여러 옳은 사람을 거느려서 천명에 응하고 시세를 따라서 흉악한 역적을 토벌하여 사직을 편안케 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절하고 표를 올려 아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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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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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到許都,曹操在鄴郡聞知玄德自立漢中王,大怒曰:“織席小兒,安敢如此!吾誓滅之!”即時傳令,盡起傾國之兵,赴兩川與漢中王決雌雄。一人出班諫曰:“大王不可因一時之怒,親勞車駕遠征。臣有一計,不須張弓只箭,令劉備在蜀自受其禍;待其兵衰力盡,只須一將往征之,便可成功。”操視其人,乃司馬懿也。操喜問曰:“仲達有何高見?”懿曰:“江東孫權,以妹嫁劉備,而又乘間竊取回去;劉備又據占荊州不還:彼此俱有切齒之恨。今可差一舌辯之士,齎書往說孫權,使興兵取荊州;劉備必發兩川之兵以救荊州。那時大王興兵去取漢川,令劉備首尾不能相救,勢必危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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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문이 허도에 이르자, 업군에 있던 조조는 현덕이 스스로 한중왕에 오른 것을 전해 듣고, 크게 노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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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나 짜던 어린놈이, 어찌 감히 이러하냐! 내 맹세코 그를 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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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즉시 명령을 내려서, 전국의 병력을 모조리 일으켜 동천과 서천으로 가서, 한중왕과 자웅을 겨루려고 했다. 한 사람이 반열에서 나와 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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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께서 한 때의 노여움으로써 친히 제왕의 수레를 움직여 원정을 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활을 당겨 화살 하나 쏠 것 없이 유비로 하여금 촉 땅에서 스스로 화를 입게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병력이 쇠하여 힘이 다하기를 기다려서 단지 장수 한 사람 보내서 정벌하시면, 바로 성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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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조가 그 사람을 보니, 바로 사마의였다. 조조가 기뻐하며 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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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달(사마의의 자)에게 어떤 훌륭한 의견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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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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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의 손권이 그 누이를 유비에게 시집보냈으나 사이를 틈타서 절취해서 데려갔습니다. 유비가 또한 형주를 점거한 채 돌려주지 않으니 피차 모두 심한 원한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말재주가 뛰어난 인물을 보내서 서신을 들고 손권을 찾아가 설득하여 병력을 일으켜 형주를 취하게 하십시오. 유비는 반드시 양천의 병력을 일으켜서 형주를 구원하러 올 것입니다. 그때 대왕께서 병력을 일으켜 한중과 양천을 취하시어, 유비가 머리와 꼬리를 서로 돕지 못하게 하면, 형세가 반드시 위태로울 것입니다.”
 
50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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操大喜,即修書令滿寵爲使,星夜投江東來見孫權。權知滿寵到,遂與謀士商議。張昭進曰:“魏與吳本無仇;前因聽諸葛之說詞,致兩家連年征戰不息,生靈遭其塗炭。今滿伯寧來,必有講和之意,可以禮接之。”權依其言,令 衆謀士接滿寵入城相見。禮畢,權以賓禮待寵。寵呈上操書,曰:“吳、魏自來無仇,皆因劉備之故,致生釁隙。魏王差某到此,約將軍攻取荊州,魏王以兵臨漢川,首尾夾擊。破劉之後,共分疆土,誓不相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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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글을 다듬어 만총을 사자로 삼아, 밤낮으로 강동으로 가서 손권을 만나게 했다. 손권은 만총이 찾아온 것을 알고, 곧 모사들과 더불어 상의했다. 장소가 나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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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와 오나라는 본래 원수진 게 없었으나 지난날 제갈량의 말을 듣고, 양가(위나라와 오나라)가 해마다 싸우기를 그치지 않아,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습니다. 지금 만백녕(만총)이 온 것은 반드시 강화할 뜻이 있는 것이니 예를 갖추어 맞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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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손권이 그 말에 따라, 모사들에게 만총을 성 안으로 맞아들이게 해서 만났다. 인사를 나눈 뒤에, 손권이 손님에 대한 예절을 갖추어 만총을 대했다. 만총이 조조의 서찰을 바치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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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와 위나라는 원래 원수지지 않았습니다. 모두 유비 때문에 틈이 생긴 것입니다. 위왕께서 저를 여기 보내시며 장군께서 형주를 공격하면, 위왕께서 병력을 이끌고 한중과 양천에 이르러, 앞뒤로 협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유비를 쳐부순 뒤, 그 강토를 함께 나누고, 서로 침범하지 않을 것을 맹세할 것입니다.”
 
56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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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權覽書畢,設筵相待滿寵,送歸館舍安歇。權與 衆謀士商議。顧雍曰:“雖是說詞,其中有理。今可一面送滿寵回,約會曹操,首尾相擊;一面使人過江探雲長動靜,方可行事。”諸葛瑾曰:“某聞雲長自到荊州,劉備娶與妻室,先生一子,次生一女。其女尚幼,未許字人。某願往與主公世子求婚。若雲長肯許,即與雲長計議共破曹操;若雲長不肯,然後助曹取荊州。”孫權用其謀,先送滿寵回許都;卻遣諸葛瑾爲使,投荊州來。入城見雲長,禮畢。雲長曰:“子瑜此來何意?”瑾曰:“特來求結兩家之好:吾主吳侯有一子,甚聰明;聞將軍有一女,特來求親。兩家結好,並力破曹。此誠美事,請君侯思之。”雲長勃然大怒曰:“吾虎女安肯嫁犬子乎!不看汝弟之面,立斬汝首!再休多言!”遂喚左右逐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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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이 서신을 읽고 나서, 연회를 베풀어 만총을 대접하고, 관사로 보내서 쉬게 했다. 손권이 모사들과 상의하니, 고옹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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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변설이지만, 이치에 맞는 것도 있습니다. 이제 한편으로 만총을 돌려보내어 조조와 앞뒤로 협공할 것을 약속하고, 또 한편으로 사람을 강 너머로 보내어 운장의 동정을 살펴본 뒤에 일을 실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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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제갈근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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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듣자니 관운장이 형주에 온 뒤, 유비가 그에게 아내를 구해주어, 먼저 아들 하나를 낳고 그 뒤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 딸이 아직 어려서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바라건대 제가 가서 주공의 세자와 혼인할 것을 요청하겠습니다. 만약 운장이 기꺼이 허락하면, 즉시 운장과 더불어 조조를 격파할 것을 의논하고, 만약 운장이 따르지 않으면, 그 뒤에 조조를 도와 형주를 취해야 합니다.”
 
62
했다. 손권이 그 계책을 써서, 먼저 만총을 허도로 돌려보내고, 제갈근을 사자로 삼아 형주로 보냈다. (제갈근이) 형주성 안으로 들어가 운장을 만나서, 인사를 마치자 운장이 말하기를,
 
63
“자유(제갈근)께서 이렇게 오신 것은 무슨 뜻이요?”
 
64
하니, 제갈근이 말하기를,
 
65
“특별히 두 집안의 우호를 맺고자 왔소. 우리 주공 오후께 아드님이 한 분 계신데, 심히 총명하오. 듣건대 장군에게 따님이 한 분 계시다니 특별히 결친을 구하러 왔소. 양가가 우호를 맺어 함께 힘을 모아 조조를 격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니, 청컨대 군후께서 생각해 주시오.”
 
66
하니, 운장이 버럭 크게 노해서 말하기를,
 
67
“내 호랑이 딸을 어찌 개새끼에게 시집보내겠소! 그대 아우의 얼굴만 아니라면, 당장 목을 벨 것이오! 다시는 여러 말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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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곧 좌우를 불러 그를 쫓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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瑾抱頭鼠竄,回見吳侯;不敢隱匿,遂以實告。權大怒曰:“何太無禮耶!”便喚張昭等文武官員,商議取荊州之策。步騭曰:“曹操久欲篡漢,所懼者劉備也;今遣使來令吳興兵吞蜀,此嫁禍於吳也。”權曰:“孤亦欲取荊州久矣。”騭曰:“今曹仁現屯兵於襄陽、樊城,又無長江之險,旱路可取荊州;如何不取,卻令主公動兵?只此便見其心。主公可遣使去許都見操,令曹仁旱路先起兵取荊州,雲長必掣荊州之兵而取樊城。若雲長一動,主公可遣一將,暗取荊州,一舉可得矣。”權從其議,即時遣使過江,上書曹操,陳說此事。操大喜,發付使者先回,隨遣滿寵往樊城助曹仁,爲參謀官,商議動兵;一面馳檄東吳,令領兵水路接應,以取荊州。
 
70
제갈근이 머리를 감싼 채 쥐처럼 달아나서 돌아가 오후를 만나, 감히 숨기지 못하고 결국 사실대로 고하였다. 손권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71
“어찌 이리 심하게 무례하냐!”
 
72
하고, 곧 장소 등 문무 관원들을 불러 형주를 빼앗을 계책을 상의했다. 보즐이 말하기를,
 
73
“조조가 오래전부터 한나라를 찬탈할 욕심을 가졌으나 그가 두려워한 자는 유비입니다. 이제 사자를 보내서, 동오로 하여금 병력을 일으켜서 촉을 병탄하라 하는데, 이는 동오에 재앙을 떠넘기려 하는 것입니다.”
 
74
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75
“나 역시 형주를 취하고 싶어 한 지 오래요.”
 
76
했다. 보즐이 말하기를,
 
77
“지금 조인이 양양, 번성에 주둔하고, 장강의 험함도 없으니 육로를 따라 형주를 취할 수 있거늘, 어찌하여 취하지 않고 도리어 주공께 군사 동원을 요구하겠습니까? 단지 이것으로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주공께서 사자를 허도로 보내서, 조조를 만나 조인으로 하여금 육로로 먼저 병력을 일으켜 형주를 취하라고 하시면, 운장은 반드시 형주의 병력을 뽑아내어 번성을 취할 것입니다. 만약 운장이 움직이면, 주공께서 장수 한 사람을 보내서 몰래 형주를 취해서 한번 움직여 얻을 수가 있습니다.”
 
78
하니, 손권이 그 의견을 따라 즉시 사자를 강 건너에 파견해 조조에게 글을 바쳐서 그 일을 진술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사자에게 먼저 돌아가게 처리하고 뒤따라 만총을 번성으로 보내서 조인을 도와 참모관이 되어 출병을 상의하게 했다. 한편으로 동오에게 급히 격문을 전해서 병력을 이끌고 물길을 따라 접응해서 형주를 취하라고 했다.
 
 
79
卻說漢中王令魏延總督軍馬,守禦東川。遂引百官回成都。差官起造宮庭,又置館舍,自成都至白水,共建四百餘處館舍郵亭。廣積糧草。多造軍器,以圖進取中原。細作人探聽得曹操結連東吳,欲取荊州,即飛報入蜀。漢中王忙請孔明商議。孔明曰:“某已料曹操必有此謀;然吳中謀士極多,必教操令曹仁先興兵矣。”漢中王曰:“似此如之奈何?”孔明曰:“可差使命就送官誥與雲長,令先起兵取樊城,使敵軍膽寒,自然瓦解矣。”
 
80
한편, 한중왕(유비)은 위연에게 명하여 군마를 총독해서 동천(한중)을 지키게 하고, 마침내 백관을 이끌고 성도로 돌아갔다. 관리를 시켜 궁정을 짓고, 관사를 마련하고, 성도에서 백수까지 4백여 곳에 관사와 역참을 세웠다. 널리 식량과 사료를 쌓고, 무기를 많이 만들어서 중원으로 진격할 것을 도모했다. 간첩이 조조가 동오와 연합하여 형주를 취하려는 것을 정탐해서 즉시 촉으로 들어와 급보했다. 한중왕이 황망히 공명을 불러 상의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81
“제가 이미 조조의 이런 계책을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동오에 모사들이 극히 많으니, 반드시 조조로 하여금 조인이 먼저 출병하게 했을 것입니다.”
 
82
했다. 한중왕이 말하기를,
 
83
“그렇다면, 어찌해야겠소?”
 
84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85
“사자를 시켜 공문을 운장에게 보내서, 먼저 병력을 일으켜 번성을 취하여, 적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면 자연히 와해될 것입니다.”
 
86
했다.
 
 
87
漢中王大喜,即差前部司馬費詩爲使,齎捧誥命投荊州來。雲長出郭,迎接入城。至公廨禮畢,雲長問曰:“漢中王封我何爵?”詩曰:“五虎大將之首。”雲長問:“那五虎將?”詩曰:“關、張、趙、馬、黃是也。”雲長怒曰:“翼德吾弟也;孟起世代名家;子龍久隨吾兄,即吾弟也:位與吾相並,可也。黃忠何等人,敢與吾同列?大丈夫終不與老卒爲伍?”遂不肯受印。詩笑曰:“將軍差矣。昔蕭何、曹參與高祖同舉大事,最爲親近,而韓信乃楚之亡將也;然信位爲王,居蕭、曹之上,未聞蕭、曹以此爲怨。今漢中王雖有五虎將之封,而與將軍有兄弟之義,視同一體。將軍即漢中王,漢中王即將軍也。豈與諸人等哉?將軍受漢中王厚恩,當與同休戚、共禍福,不宜計較官號之高下。願將軍熟思之。”
 
88
한중왕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전부사마 비시를 사자로 삼아 왕명을 지니고 형주로 가게 했다. 운장이 성곽을 나와서 비시를 영접해 들어갔다. 관청에 이르러 인사를 마치고 운장이 묻기를,
 
89
“한중왕께서 내게 무슨 벼슬을 봉했소?”
 
90
하니, 비시가 말하기를,
 
91
“오호대장의 으뜸입니다.”
 
92
했다. 운장이 묻기를,
 
93
“누가 오호장군이오?”
 
94
하니, 비시가 말하기를,
 
95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입니다.”
 
96
했다. 운장이 노하여 말하기를,
 
97
“익덕은 내 아우요. 맹기는 대대로 명문이오. 자룡은 내 형을 오래 따라다녔으니 곧 내 아우요. 그들의 지위가 나와 나란한 것은 좋소. 그런데 황충은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나와 동열이란 말이오! 대장부는 결코 늙은 병졸과 같은 대오에 설 수 없소!”
 
98
하고, 끝내 관인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비시가 웃으며 말하기를,
 
99
“장군께서 틀렸습니다. 옛날 소하와 조참은 고조 황제와 더불어 함께 대사를 일으켜 가장 친근했으나 한신은 초나라에서 망명한 장수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한신이 왕이 되어 그 지위가 소하와 조참의 윗자리에 있었으나 소하와 조참이 이것으로 원망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한중왕께서 비록 오호장군의 봉작을 두셨으나 장군과는 형제의 의를 가져 한 몸처럼 보고 계십니다. 장군께서 곧 한중왕이요 한중왕께서 곧 장군이십니다. 어찌 여러 사람들과 같겠습니까? 장군께서 한중왕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마땅히 안락과 근심과 화복을 함께 해야지 벼슬의 높낮이를 따져서는 안 됩니다. 바라건대 장군께서는 깊이 생각하십시오.”
 
100
했다.
 
 
101
雲長大悟,乃再拜曰:“某之不明,非足下見教,幾誤大事。”即拜受印綬。費詩方出王旨,令雲長領兵取樊城。雲長領命,即時便差傅士仁、糜芳二人爲先鋒,先引一軍於荊州城外屯紥;一面設宴城中,款待費詩。飲至二更,忽報城外寨中火起。雲長急披掛上馬,出城看時,乃是傅士仁、糜芳飲酒,帳後遺火,燒著火炮,滿營撼動,把軍器糧草,盡皆燒毀。雲長引兵救撲,至四更方才火滅。
 
102
운장이 크게 깨달아 거듭 절하고 말하기를,
 
103
“내가 현명하지 못해서, 족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자칫 대사를 그르칠 뻔했습니다.”
 
104
하고, 곧 절하고 인수를 받았다. 비시가 비로소 왕의 교지를 꺼내, 운장에게 병력을 거느리고 번성을 취하라 했다. 운장이 명령을 받들어, 즉시 부사인과 미방 두 사람을 선봉으로 삼아, 먼저 한 무리 군사를 이끌고 형주성 밖에 주둔하게 했다. 한편으로 성안에서 연회를 베풀어서 비시를 환대했다. 2경(밤 10시쯤)까지 마시는데 문득 성 밖 영채 안에서 불길이 치솟는다고 알렸다. 운장이 곧 갑옷을 걸치고 말에 올라 성을 나가 살펴보니 바로 부사인과 미방이 술을 마시다가 장막 뒤에 실화하여 불이 화포에 붙어서 온통 영채를 뒤흔들며 무기와 군량과 사료를 모조리 불태웠다. 운장이 병력을 이끌고 불을 꺼서 4경(새벽 2시쯤)에 이르러서야 겨우 불을 껐다.
 
 
105
雲長入城,召傅士仁、糜芳責之曰:“吾令汝二人作先鋒,不曾出師,先將許多軍器糧草燒毀,火炮打死本部軍人。如此誤事,要你二人何用?”叱令斬之。費詩告曰:“未曾出師,先斬大將,於軍不利。可暫免其罪。”雲長怒氣不息,叱二人曰:“吾不看費司馬之面,必斬汝二人之首!”乃喚武士各杖四十,摘去先鋒印綬,罰糜芳守南郡,傅士仁守公安;且曰:“若吾得勝回來之日,稍有差池,二罪俱罰!”二人滿面羞慚,喏喏而去。雲長便令廖化爲先鋒,關平爲副將,自總中軍,馬良、伊籍爲參謀,一同征進。先是,有胡華之子胡班,到荊州來投降關公;公念其舊日相救之情,甚愛之;令隨費詩入川,見漢中王受爵。費詩辭別關公,帶了胡班,自回蜀中去了。
 
106
운장이 성으로 들어와, 부사인과 미방을 불러 꾸짖기를,
 
107
“내가 너희 두 사람에게 선봉을 맡겼거늘 출병도 하기 전에, 먼저 허다한 무기와 군량과 사료를 불살라 없애고, 화포가 터져 본부 군사들을 죽여 이렇게 일을 그르쳤으니, 너희 두 사람을 무엇에 쓰겠는가!”
 
108
하고, 소리쳐 참하라고 명령하니, 비시가 고하기를,
 
109
“아직 출병하지 않았는데, 먼저 대장들을 참하면, 군대에 불리합니다. 잠시 그 죄를 면해주십시오.”
 
110
하니, 운장이 노기를 삭히지 못한 채 두 사람을 꾸짖기를,
 
111
“내가 비 사마의 얼굴만 아니라면 반드시 너희 둘의 목을 베었을 것이다!”
 
112
했다. 이에 무사들을 불러 각각 장 40 대를 때리고, 선봉의 인수를 거두어 미방은 남군을, 부사인은 공안을 수비하게 했다. (운장이) 또 말하기를,
 
113
“내가 승리를 거둬서 돌아오는 날에,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두 가지 죄를 함께 벌하겠다!”
 
114
하니, 두 사람이 얼굴에 가득히 부끄럼을 띠고,‘예, 예’하며 떠났다. 운장이 곧 요화를 선봉으로 삼고, 관평을 부장으로 삼아 스스로 중군을 총독하고 마량과 이적을 참모로 삼아서 함께 싸우러 나아갔다. 그 전에 호화의 아들 호반이 형주로 찾아와 관운장에게 투항하니 운장이 지난날 구해준 정을 생각하여 그를 몹시 아꼈다. 그에게 비시를 따라 서천으로 들어가 한중왕을 뵙고 벼슬을 받으라고 했다. 비시가 관우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호반을 데리고 촉으로 돌아갔다.
 
 
115
且說關公是日祭了“帥”字大旗,假寐於帳中。忽見一豬,其大如牛,渾身黑色,奔入帳中,徑咬雲長之足。雲長大怒,急拔劍斬之,聲如裂帛。霎然驚覺,乃是一夢。便覺左足陰陰疼痛,心中大疑。喚關平至,以夢告之。平對曰:“豬亦有龍象。龍附足,乃升騰之意,不必疑忌。”雲長聚多官於帳下,告以夢兆。或言吉祥者,或言不祥者, 衆論不一。雲長曰:“吾大丈夫,年近六旬,即死何憾!”正言間,蜀使至,傳漢中王旨,拜雲長爲前將軍,假節鉞,都督荊襄九郡事。雲長受命訖, 衆官拜賀曰:“此足見豬龍之瑞也。”於是雲長坦然不疑,遂起兵奔襄陽大路而來。
 
116
한편, 관우가 그날 ‘수(帥)’자 큰 깃발에 제사를 지내고 막사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문득 돼지 한 마리가 황소만하고 온몸이 검은데 막사 안으로 뛰어들어 곧장 운장의 발을 물었다. 운장이 크게 노해 급히 칼을 뽑아 베니 그 소리가 비단을 찢는 것 같았다. 곧 놀라 깨니 한바탕 꿈이었다. 바로 왼쪽 발이 은근히 아픈 것이 느껴졌다. 마음속으로 크게 의심이 들어, 관평을 불러서 꿈을 이야기했다. 관평이 대답하기를,
 
117
“돼지도 용의 모습이 있습니다. 용이 발에 붙은 것은 곧 높이 날아오른다는 뜻이니, 반드시 의심해 꺼릴 것이 없습니다.”
 
118
했다. 운장이 관리들을 막사로 불러 모아, 꿈속에 나타난 징조를 이야기하자, 누구는 길하고 상서롭다 말하고, 누구는 상서롭지 않다고 말하여, 중론이 일치하지 않았다. 운장이 말하기를,
 
119
“대장부가 나이 육십에 가까운데, 곧 죽은들 무슨 유감이 있으랴!”
 
120
했다.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촉의 사자가 이르러서 한중왕의 교지를 전하니, 운장을 전장군으로 삼고, 절월(부절과 도끼로 생사여탈의 전권을 준다는 증표)를 내려, 형주와 양양의 아홉 개 군의 사무를 총독하게 했다. 운장이 왕명을 받자 관리들이 절을 올려 축하해 말하기를,
 
121
“이것만 봐도 돼지와 용의 상서로움을 족히 알 수 있습니다.”
 
122
했다. 이에 운장이 마음을 놓고 아무 의심 없이, 마침내 병력을 일으켜 양양의 대로를 달려갔다.
 
 
123
曹仁正在城中,忽報雲長自領兵來。仁大驚,欲堅守不出,副將翟元曰:“今魏王令將軍約會東吳取荊州;今彼自來,是送死也,何故避之!”參謀滿寵諫曰:“吾素知雲長勇而有謀,未可輕敵。不如堅守,乃爲上策。”驍將夏侯存曰:“此書生之言耳。豈不聞‘水來土掩,將至兵迎’?我軍以逸待勞,自可取勝。”曹仁從其言,令滿寵守樊城,自領兵來迎雲長。雲長知曹兵來,喚關平、廖化二將,受計而往。與曹兵兩陣對圓,廖化出馬搦戰。翟元出迎。二將戰不多時,化詐敗,撥馬便走,翟元從後追殺,荊州兵退二十裏。次日,又來搦戰。
 
124
조인이 마침 성안에 있다가, 운장이 스스로 병력을 거느리고 온다고 문득 보고를 받았다. 조인이 크게 놀라, 굳게 지키며 출전하지 않으려 했다. 부장 책원이 말하기를,
 
125
“이제 위왕께서 장군에게 동오와 함께 형주를 취하라 하셨는데, 지금 그가 스스로 찾아왔으니, 이는 죽으러 온 것입니다. 무슨 까닭에 피하십니까?”
 
126
하니, 참모 만총이 간하기를,
 
127
“내가 평소에 알기로는, 운장은 용맹한데다 꾀가 있으니, 함부로 맞설 수는 없소. 굳게 지키는 것을 상책으로 삼음만 못하오.”
 
128
했다. 사납고 날랜 장수 하후존이 말하기를,
 
129
“그것은 서생의 말이오. 어찌‘물이 오면 흙으로 막고, 적장이 오면 병력으로 맞아라’는 속담도 못 들었소? 아군이 편히 쉬면서 지친 적병을 맞이하니, 저절로 이길 것이오.”
 
130
했다. 조인이 그 말에 따라 만총에게 번성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병력을 이끌고 운장을 맞이했다. 운장은 조조의 군사들이 오는 것을 알고 관평과 요화 두 장수를 불러, 계책을 받고 가게 했다. 조조 군사들을 맞이해서 양쪽 진영이 전투 대형을 갖추니, 요화가 출마해 도전하자 책원이 나가 맞섰다. 두 장수가 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요화가 거짓 패하여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니 책원이 그 뒤를 쫓아 무찔러서 형주 군사가 2십 리를 퇴각했다. 다음날 다시 와서 싸움을 걸었다.
 
 
131
夏侯存、翟元一齊出迎,荊州兵又敗,又追殺二十餘裏。忽聽得背後喊聲大震,鼓角齊鳴。曹仁急命前軍速回,背後關平、廖化殺來,曹兵大亂。曹仁知是中計,先掣一軍飛奔襄陽;離城數裏,前面繡旗招颭,雲長勒馬橫刀,攔住去路。曹仁膽戰心驚,不敢交鋒,望襄陽斜路而走。雲長不趕。須臾,夏侯存軍至,見了雲長,大怒,便與雲長交鋒,只一合,被雲長砍死。翟元便走,被關平趕上,一刀斬之。乘勢追殺,曹兵大半死於襄江之中。曹仁退守樊城。
 
132
하후존과 책원이 일제히 나가서 맞이하자 형주 군사들이 또 패전했다. 다시 2십여 리를 뒤쫓아 무찌르는데, 문득 배후에서 함성이 크게 진동하고 북과 피리소리가 나란히 울렸다. 조인이 급히 앞쪽 군사들에게 명령해서 속히 되돌아가라고 하지만, 배후에서 관평과 요화가 쳐들어와서 조조 군사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조인이 계책에 빠진 것을 알아채고 먼저 한 무리 군사를 뽑아내서 양양으로 나는 듯이 달아났다. 양양 성에서 몇 리 떨어진 곳에 다다르자, 앞쪽에 수를 놓은 깃발이 나부끼는데 운장이 말을 세우고 칼을 비껴들고, 갈 길을 막아섰다. 조인의 간담이 떨리고 심장이 놀라서 감히 창칼을 부딪치지 못하고, 양양을 향해 작은 길로 달아났다. 운장이 뒤쫓지 않았다. 잠시 후, 하후존의 군사가 이르러 운장을 보더니 크게 노해 바로 운장과 교전했으나 단지 1합에 운장에게 베여져서 죽었다. 책원은 바로 달아나지만 관평이 뒤쫓아 한 칼에 참했다. 기세를 타고 뒤쫓아 무찌르니, 조조의 군사들 태반이 양강(한강의 지류)에 빠져 죽었다. 조인이 번성으로 물러나 지켰다.
 
 
133
雲長得了襄陽,賞軍撫民。隨軍司馬王甫曰:“將軍一鼓而下襄陽,曹兵雖然喪膽,然以愚意論之:今東吳呂蒙屯兵陸口,常有吞並荊州之意;倘率兵徑取荊州,如之奈何?”雲長曰:“吾亦念及此。汝便可提調此事:去沿江上下,或二十裏,或三十裏,選高阜處置一烽火台,每台用五十軍守之;倘吳兵渡江,夜則明火,晝則舉煙爲號。吾當親往擊之。”
 
134
운장이 양양을 점령한 뒤, 군사를 포상하고 백성을 어루만져 안정시켰다. 수군사마 왕보가 말하기를,
 
135
“장군께서 북소리 한 번에 양양을 함락하시고 비록 조조 군사들의 간담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제 못난 의견으로써 논해보겠습니다. 이제 동오의 여몽이 육구에 둔병하여, 늘 형주를 집어삼킬 뜻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병력을 이끌고 바로 형주를 취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36
하니, 운장이 말하기를,
 
137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 그대는 어서 이렇게 조치하시오. 강물의 상류와 하류를 따라 2십 리나 3십 리마다 높은 언덕을 골라 봉화대를 두시오. 봉화대 한 곳마다 군사 5십으로 지키시오. 만약 오나라 군사들이 강을 건너면 밤에는 불을 밝히고 낮에는 연기를 피워 신호하시오. 내가 친히 가서 격파하겠소.”
 
138
했다.
 
 
139
王甫曰:“糜芳、傅士仁守二隘口,恐不竭力;必須再得一人以總督荊州。”雲長曰:“吾已差治中潘濬守之,有何慮焉?”甫曰:“潘濬平生多忌而好利,不可任用。可差軍前都督糧料官趙累代之。趙累爲人忠城廉直。若用此人,萬無一失。”雲長曰:“吾素知潘浚爲人。今既差定,不必更改。趙累現掌糧料,亦是重事。汝勿多疑,只與我築烽火台去。”王甫怏怏拜辭而行。雲長令關平准備船只渡襄江,攻打樊城。
 
140
왕보가 말하기를,
 
141
“미방과 부사인이 두 곳의 길목을 지키고 있으나 아무래도 전력을 다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반드시 한 사람을 다시 뽑아서 형주를 총독하게 하십시오.”
 
142
하니, 운장이 말하기를,
 
143
“내가 벌써 치중 반준을 파견해서 지키게 했는데 무슨 걱정이오?”
 
144
했다. 왕보가 말하기를,
 
145
“반준은 평소 시기가 많고 이익을 좋아해서 임용하시면 안 됩니다. 군전도독이자 양료관인 조루로 하여금 대신케 하십시오. 조루는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청렴하고 강직하니 이 사람을 쓴다면 만에 하나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146
하니, 운장이 말하기를,
 
147
“내가 평소 반준의 사람됨을 알고 있으니, 이미 보내놓고서 다시 고칠 필요는 없소. 조루는 현재 양료(군량과 보급)를 맡고 있으니 이것도 중요한 일이오. 그대는 너무 의심을 품지 말고, 다만 나에게 봉화대를 지어주러 가시오.”
 
148
했다. 왕보가 불만스럽게 작별 인사를 올리고 갔다. 운장이 관평에게 선박을 준비해 양강을 건너 번성을 칠 것을 준비하라 명했다.
 
 
149
卻說曹仁折了二將,退守樊城,謂滿寵曰:“不聽公言,兵敗將亡,失卻襄陽,如之奈何?”寵曰:“雲長虎將,足智多謀,不可輕敵,只宜堅守。”正言間,人報雲長渡江而來,攻打樊城。仁大驚,寵曰:“只宜堅守。”部將呂常奮然曰:“某乞兵數千,願當來軍於襄江之內。”寵諫曰:“不可。”呂常怒曰:“據汝等文官之言,只宜堅守,何能退敵?豈不聞兵法雲:軍半渡可擊。今雲長軍半渡襄江,何不擊之?若兵臨城下,將至壕邊,急難抵當矣。”
 
150
한편 조인은 앞서 두 장수를 잃고 번성으로 물러나 지키면서 만총에게 말하기를,
 
151
“공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싸움에 지고 장수들을 잃어, 양양을 빼앗겼으니 어떻게 해야겠소?”
 
152
하니, 만총이 말하기를,
 
153
“운장은 호랑이 같은 장수이고, 지혜와 계책이 많으니 함부로 맞서지 마시고 오로지 굳게 지켜야 합니다.”
 
154
했다. 이렇게 말하는데, 어떤 사람이 보고하기를, 운장이 강을 건너 번성을 치러 온다고 했다. 조인이 크게 놀라자 만총이 말하기를,
 
155
“오로지 굳게 지켜야 합니다.”
 
156
했다. 그런데 부장 여상이 분연히 말하기를,
 
157
“제게 수천 병력을 주시면 바라건대 오는 적군을 양강 안에서 막아내겠습니다.”
 
158
하니, 만총이 간언하기를,
 
159
“안 됩니다.”
 
160
했다. 여상이 노해서 말하기를,
 
161
“그대들 문관의 말에 따라 오로지 굳게 지키면, 어찌 능히 적군을 물리치겠소? 어찌 병법에서‘적군이 반쯤 건너면 공격하라.’한 것도 듣지 못하였소? 지금 운장이 양강을 반쯤 건너는데 어찌 치지 않소? 만약 적병이 성 밑에 다다라 장차 해자 주변에 이르면 급히 막아내기 어렵게 될 것이오!”
 
162
했다.
 
 
163
仁即與兵二千,令呂常出樊城迎戰。呂常來至江口,只見前面繡旗開處,雲長橫刀出馬。呂常卻欲來迎,後面 衆軍見雲長神威凜凜,不戰先走,呂常喝止不住。雲長混殺過來,曹兵大敗,馬步軍折其大半,殘敗軍奔入樊城。曹仁急差人求救,使命星夜至長安,將書呈上曹操,言:“雲長破了襄陽,現圍樊城甚急。望撥大將前來救援。”
 
164
조인이 즉시 병력 2천을 주며 여상에게 명하여, 번성을 나가서 맞아 싸우라 했다. 여상이 강어귀에 이르니 바로 앞쪽에 수놓은 깃발을 휘날리며 운장이 칼을 비껴 잡고 출마했다. 여상이 싸우러 나가려고 했지만, 뒤의 군사들은 운장의 신 같은 위엄이 늠름한 것을 보고 싸우지도 않고 먼저 달아났다. 여상이 소리를 쳐도 막을 수가 없었다. 운장이 마구 무찔러 쳐들어오자 조조 군사들이 크게 져서 기병과 보병의 절반이 꺾였다. 패잔병이 번성 안으로 달려 들어오자, 조인이 급히 사람을 보내서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사자가 밤새 달려서 장안에 이르러, 곧 서찰을 조조에게 바치며 말하기를,
 
165
“운장이 양양을 깨뜨리고, 현재 번성을 에워싸 몹시 위급하옵니다. 바라건대 대장을 먼저 보내서 구원해주십시오.”
 
166
했다.
 
 
167
曹操指班部內一人而言曰:“汝可去解樊城之圍。”其人應聲而出。 衆視之,乃於禁也。禁曰:“某求一將作先鋒,領兵同去。”操又問 衆人曰:“誰敢作先鋒?”一人奮然出曰:“某願施犬馬之勞,生擒關某,獻於麾下。”操觀之大喜。正是:未見東吳來伺隙,先看北魏又添兵。
 
168
조조가 조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169
“그대라면 가서 번성의 포위를 풀 수 있을 것이오.”
 
170
하니, 그 사람이 바로 나오는데 사람들이 보니 우금이었다. 우금이 말하기를,
 
171
“장수 하나를 선봉으로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함께 가겠습니다.”
 
172
하니, 조조가 다시 사람들에게 묻기를,
 
173
“누가 선봉이 되겠소?”
 
174
했다. 한 사람이 분연히 나오며 말하기를,
 
175
“바라건대 견마지로를 다해서 관 아무개를 사로잡아 휘하에 바치겠습니다.”
 
176
했다. 조조가 그를 보더니 크게 기뻐했다. 이야말로, 동오가 와서 기회를 노리기도 전에, 먼저 북위가 병력을 더하는구나.
 
 
177
未知此人是誰,且看下文分解。
 
178
이 사람이 누굴까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73회 현덕은 한중왕에 오르고, 운장은 양양군을 쳐서 빼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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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동양문학 >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120권)     이전 73권 다음 한글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