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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102회 사마의가 북원을 점령해 위수에 부교를 놓고, 제갈량이 목우유마를 만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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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1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一百二回 司馬懿占北原渭橋 諸葛亮造木牛流馬
2
제102회 사마의가 북원을 점령해 위수에 부교를 놓고, 제갈량이 목우유마를 만들다.
 
 
3
卻說譙周官居太史,頗明天文;見孔明又欲出師,乃奏後主曰:“臣今職掌司天台,但有禍福,不可不奏:近有群鳥數萬,自南飛來,投於漢水而死,此不祥之兆;臣又觀天象,見奎星躔於太白之分,盛氣在北,不利伐魏;又成都人民,皆聞柏樹夜哭:有此數般災異,丞相只宜謹守,不可妄動。”孔明曰:“吾受先帝托孤之重,當竭力討賊,豈可以虛妄之災氛,而廢國家大事耶!”遂命有司設太牢祭於昭烈之廟,涕泣拜告曰:“臣亮五出祁山,未得寸土,負罪非輕!今臣複統全師,再出祁山,誓竭力盡心,剿滅漢賊,恢複中原,鞠躬盡瘁,死而後已!”
 
4
각설, 초주는 관직이 태사로 천문에 자못 밝았는데, 공명이 다시 출병하려 하자, 후주에게 아뢰기를,
 
5
“신이 지금 천문대에서 직무를 맡고 있는데, 재앙의 징조가 있으므로 상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새 새 떼 수만 마리가 남쪽에서 날아와서 한수에 떨어져 죽은 것은 상서롭지 못한 징조입니다. 신이 또한 천문을 관측하니, 규성(문운을 맡아보는 별)이 태백(금성)의 영역을 범하고, 왕성한 기운이 북쪽에 있으니, (북쪽의) 위나라를 정벌함이 이롭지 않습니다. 또한 성도의 인민들이 모두 잣나무가 밤에 곡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재해와 기이한 일이 있으니 승상은 오로지 삼가 수비해야지,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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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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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제로부터 탁고(고아를 맡김)의 중책을 받아, 힘을 다해 역적을 토벌해야 하거늘, 어찌 허망한 재앙의 징조로 국가 대사를 폐하겠소?”
 
8
했다. 마침내 책임자에게 명하여, 태뢰(소, 양, 돼지의 제물)를 소열황제(유현덕)의 사당에 올리고,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려 고하기를,
 
9
“신 제갈량이 기산에 다섯 번 나갔으나, 아직 한 치의 땅도 얻지 못했으니, 지은 죄가 가볍지 않습니다! 신이 이제 다시 전군을 통솔하여 다시 기산으로 나가서, 맹세코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 바쳐, 한나라의 역적을 쳐서 없애고 중원을 회복하는 데에 정성을 다해 마음과 몸을 바쳐서 죽은 뒤에야 그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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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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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畢,拜辭後主,星夜至漢中,聚集諸將,商議出師。忽報關興病亡。孔明放聲大哭,昏倒於地,半晌方蘇。 衆將再三勸解,孔明歎曰:“可憐忠義之人,天不與以壽! 我今番出師,又少一員大將也!”後人有詩歎曰:“生死人常理,蜉蝣一樣空。但存忠孝節,何必壽喬松。”孔明引蜀兵三十四萬,分五路而進,令薑維、魏延爲先鋒,皆出祁山取齊;令李恢先運糧草於斜穀道口伺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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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마치고 후주에게 고별한 뒤에 밤새 한중에 도착해서 장수들을 불러 모아 출병을 상의했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관흥이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공명이 목놓아 크게 통곡하더니 혼절해 바닥에 쓰러져서 한참을 지나서야 깨어났다. 장수들이 거듭 마음을 풀라고 권하자, 공명이 탄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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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련하구나! 충의로운 사람에게 하늘이 긴 수명을 내리지 않다니! 내가 이번에 출병하면서, 또 한 사람의 대장을 잃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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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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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죽는 것은 사람에게 늘 있는 일이지만, 하루살이와 같이 허무하구나. 오로지 충효의 절개를 가졌을 뿐인데, 어찌 큰 소나무 같은 수명을 누리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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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공명이 촉나라 군사 34만을 이끌고 다섯 방면으로 나눠 진군하며, 강유와 위연을 선봉으로 삼아서 모두 기산으로 나가 집결하라고 했다. 이회에게 명하여 군량을 먼저 사곡의 입구로 운반하여 기다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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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魏國因舊歲有青龍自摩坡井內而出,改爲青龍元年;此時乃青龍二年春二月也。近臣奏曰:“邊官飛報蜀兵三十餘萬,分五路複出祁山。”魏主曹睿大驚,急召司馬懿至,謂曰:“蜀人三年不曾入寇;今諸葛亮又出祁山,如之奈何?”懿奏曰:“臣夜觀天象,見中原旺氣正盛,奎星犯太白,不利於西川。今孔明自負才智,逆天而行,乃自取敗亡也。臣托陛下洪福,當往破之。但願保四人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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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위나라는 작년에 청룡이 마파정에 출현해서, 연호를 청룡 원년으로 고쳤다. 이때가 청룡 2년 봄 2월이었다. 측근 신하가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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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관리가 급보를 보내기를, 촉병 3십여 만이 다섯 갈래로 나눠 다시 기산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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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위나라 군주 조예가 크게 놀라서 급히 사마의를 불러오게 하여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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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나라 사람들이 3년간 침범하지 않았는데, 지금 또 제갈량이 기산으로 나온다니, 어찌해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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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마의가 아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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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밤에 천문현상을 살피니, 중원에 왕성한 기운이 아주 성하고, 규성이 태백을 범하여 서천(촉나라)에 불리합니다. 지금 공명이 재주와 지혜를 자부하여, 하늘을 거슬러 행하지만, 이것은 패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신이 폐하의 큰 복에 의지해서 마땅히 가서 격파하고야 말 것입니다. 다만 바라옵건대, 네 사람을 천거하오니, 동행하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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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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睿曰:“卿保何人?”懿曰:“夏侯淵有四子:長名霸,字仲權;次名威,字季權;三名惠,字稚權;四名和,字義權。霸、威二人,弓馬熟嫻;惠、和二人,諳知韜略:此四人常欲爲父報仇。臣今保夏侯霸、夏侯威爲左右先鋒,夏侯惠;夏侯和爲行軍司馬,共贊軍機,以退蜀兵。”睿曰:“向者夏侯楙駙馬違誤軍機,失陷了許多人馬,至今羞慚不回。今此四人,亦與楙同否?”懿曰:“此四人非夏侯楙所可比也。”睿乃從其請,即命司馬懿爲大都督,凡將士悉聽量才委用,各處兵馬皆聽調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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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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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 천거하는 사람이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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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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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연에게 네 아들이 있사온데, 첫째는 이름이 하후패이고, 자는 중권이며, 둘째는 이름이 하후위이고, 자는 계권이며, 셋째는 이름이 하후혜이고, 자는 아권이며, 넷째는 이름이 하후화이고, 자는 의권입니다. 하후패와 하후위 두 사람은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숙합니다. 하후혜와 하후화 두 사람은 병법에 통달했습니다. 이 네 사람은 늘 부친을 위해 복수하고자 합니다. 신이 이제 하후패와 하후위를 좌우 선봉으로 삼고, 하후혜와 하후화를 행군사마로 삼아 함께 중요 군사 업무를 보좌하게 해서 촉나라 군사를 격퇴하겠습니다.”
 
30
했다. 조예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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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부마 하후무가 중요 군사 업무를 그르쳐서 허다한 인마를 잃고, 아직도 부끄러워서 돌아오지 못하오. 이제 이 네 사람 역시 하후무와 같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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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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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사람은 하후무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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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조예가 그 청을 받아들여서, 즉시 사마의를 대도독으로 삼고, 모든 장졸들은 그가 재능에 따라 임용하는 것을 따르게 하고, 각처의 병마도 모두 그의 지휘를 따르도록 했다.
 
 
35
懿受命,辭朝出城。睿又以手詔賜懿曰:“卿到渭濱,宜堅壁固守,勿與交鋒。蜀兵不得志,必詐退誘敵,卿慎勿追。待彼糧盡,必將自走,然後乘虛攻之,則取勝不難,亦免軍馬疲勞之苦:計莫善於此也。”司馬懿頓首受詔,即日到長安,聚集各處軍馬共四十萬,皆來渭濱下寨;又撥五萬軍,於渭水上搭起九座浮橋,令先鋒夏侯霸、夏侯威過渭水安營;又於大營之後東原,築起一城,以防不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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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의가 어명을 받고 조정을 떠나 성을 나가는데, 조예가 다시 손으로 조서를 주며 말하기를,
 
37
“경이 위수의 물가에 이르거든, 마땅히 벽처럼 굳게 지키며, 절대 그들과 교전하지 마시오. 촉나라 군사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틀림없이 물러나는 척 유인할 것이니 경은 절대 추격하지 마시오. 저들의 군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면 반드시 곧 스스로 달아날 것이니, 그런 연후에 빈틈을 노려 공격하시오. 그렇게 하면 승리를 거두기도 어렵지 않을뿐더러, 군마의 피로도 면할 것이오. 이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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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사마의가 고개를 숙여서 조서를 받고, 그날로 장안에 당도해서 각처 군마를 합쳐 4십만을 소집하고, 모두 위수 물가로 가서 진을 쳤다. 다시 군사 5만을 뽑아서 위수 위에 부교 9개를 놓았다. 선봉 하후패와 하후위에게 명하여, 위수를 건너가서 진을 치게 했다. 또한 본진의 뒤쪽 동쪽 언덕에 성을 하나 쌓아 올려 뜻밖의 재앙에 방비했다.
 
 
39
懿正與 衆將商議間,忽報郭淮、孫禮來見。懿迎入,禮畢,淮曰:“今蜀兵現在祁山,倘跨渭登原,接連北山,阻絕隴道,大可虞也。”懿曰:“所言甚善。公可就總督隴西軍馬,據北原下寨,深溝高壘,按兵休動;只待彼兵糧盡,方可攻之。”郭淮、孫禮領命,引兵下寨去了。
 
40
사마의가 여러 장수들과 상의하는데, 갑자기 알리기를, 곽회와 손례가 찾아왔다고 했다. 사마의가 맞아들여서, 인사를 마치니, 곽회가 말하기를,
 
41
“지금 촉나라 군사가 기산에 있는데, 만약 위수를 건너 언덕에 올라서 북산과 연결하고, 농서로 통하는 길을 끊으면, 크게 근심거리가 됩니다.”
 
42
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43
“말씀하신 바가 매우 옳소. 공께서 농서의 군마를 모두 거느려서, 북쪽 언덕 아래에 의지해서 영채를 세우고,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게 쌓아, 군대를 멈추어 움직이지 마시오. 저들의 군량이 바닥나기를 기다려서, 비로소 공격하시오.”
 
44
했다. 곽회와 손례가 명령을 받아서 군사를 이끌고 영채를 세우러 갔다.
 
 
45
卻說,孔明複出祁山,下五個大寨,按左、右、中、前、後;自斜穀直至劍閣,一連又下十四個大寨,分屯軍馬,以爲久計。每日令人巡哨。忽報郭淮、孫禮領隴西之兵,於北原下寨。孔明謂諸將曰:“魏兵於北原安營者,懼吾取此路,阻絕隴道也。吾今虛攻北原,卻暗取渭濱。令人紥木筏百餘只,上載草把,選慣熟水手五千人駕之。我夤夜只攻北原,司馬懿必引兵來救。彼若少敗,我把後軍先渡過岸去,然後把前軍下於筏中。休要上岸,順水取浮橋放火燒斷,以攻其後。吾自引一軍去取前營之門。若得渭水之南,則進兵不難矣。”諸將遵令而行。
 
46
한편, 공명이 다시 기산으로 나가서 다섯 군데 큰 영채를 좌우, 중앙, 전후에 세웠다. 사곡에서 곧장 검각까지 잇달아 다시 14개의 큰 영채를 세워서, 군마를 분산하고 지구전을 계획했다. 매일 사람들을 시켜 순찰하게 하는데, 갑자기 알리기를, 곽회와 손례가 농서의 군사를 거느리고 북쪽 언덕에 진을 쳤다고 했다. 공명이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
 
47
“위나라 군사가 북쪽 언덕에 진을 친 것은, 우리가 이 길을 빼앗아서 농서로 통하는 길을 끊을까 두려워서요. 내가 이제 북쪽 언덕을 공격하는 척하면서 위수 물가를 몰래 점령하겠소. 사람들을 시켜 나무를 묶어 뗏목을 1백여 척 만들어서, 그 위에 풀 다발을 싣고, 숙련된 젓꾼 5천 인을 뽑아 그 위에 태우시오. 내가 한밤에 북쪽 언덕을 공격하면, 사마의가 반드시 병력을 이끌고 구원하러 올 것이오. 그가 조금이라도 패하면, 나는 후속 부대를 먼저 강을 건너보내겠소. 그런 뒤에 선두 부대를 뗏목에 태워서, 상륙하지 않고 강물을 따라 내려가며 부교를 점령해서 불사르고 후방을 공격하겠소. 내가 직접 1군을 이끌고 앞쪽 영채를 점령하겠소. 만약 위수 남쪽을 점령하면, 진군은 어렵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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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여러 장수가 군령을 따라서 갔다.
 
 
49
早有巡哨軍飛報司馬懿。懿喚諸將議曰:“孔明如此設施,其中有計:彼以取北原爲名,順水來燒浮橋,亂吾後,卻攻吾前也。”即傳令與夏侯霸、夏侯威曰:“若聽得北原發喊,便提兵於渭水南山之中,待蜀兵至擊之。”又令張虎、樂綝,引二千弓弩手伏於渭水浮橋北岸:“若蜀兵乘木筏順水而來,可一齊射之,休令近橋。”又傳令郭淮、孫禮曰:“孔明來北原暗渡渭水,汝新立之營,人馬不多,可盡伏於半路。若蜀兵於午後渡水,黃昏時分,必來攻汝。汝詐敗而走,蜀兵必追。汝等皆以弓弩射之。吾水陸並進。若蜀兵大至,只看吾指揮而擊之。”各處下令已畢,又令二子司馬師、司馬昭,引兵救應前營。懿自引一軍救北原。
 
50
어느새 정찰병이 사마의에게 급보했다. 사마의가 여러 장수를 불러 의논하기를,
 
51
“공명이 이처럼 일을 벌이니, 반드시 계책이 있을 것이오. 그는 북쪽 언덕을 점령하는 척하면서, 물길을 따라 부교를 불사르고, 우리의 후방을 교란하며, 또 우리의 전방을 공격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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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즉시 하후패와 하후위에게 군령을 전하기를,
 
53
“북쪽 언덕에서 함성이 들리거든 병력을 거느리고 위수 남쪽 산으로 들어가서 촉나라 군사를 기다려 공격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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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다시 장호와 악림에게 명하여, 궁노수 2천을 이끌고 위수의 부교 북쪽 강둑에 매복하라며, 이르기를,
 
55
“만약 촉나라 군사가 뗏목을 타고 물길을 따라오면, 일제히 활을 쏴서 부교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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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다시 곽회와 손례에게 명령을 전하기를,
 
57
“공명이 북쪽 언덕으로 와서 몰래 위수를 건너면, 그대가 새로 세운 영채는 인마가 적으니 모두 도중에 매복하시오. 촉나라 군사가 오후에 물을 건너면 황혼 무렵에 틀림없이 그대들을 공격할 것이오. 그대들이 거짓 패하여 달아나면 촉나라 군사가 반드시 추격할 테니 그대들은 활과 쇠뇌를 사격하시오. 나는 물과 육지로 진군하겠소. 만약 촉나라 군사가 크게 몰려오면, 오로지 내가 지휘하는 대로 공격하시오.”
 
58
했다. 각처에 명령을 내린 뒤, 다시 두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에게 군사를 이끌고 전방을 도우라고 했다. 사마의는 스스로 1군을 이끌고 북쪽 언덕을 구원하러 갔다.
 
 
59
卻說,孔明令魏延、馬岱引兵渡渭水攻北原;令吳班、吳懿引木筏兵去燒浮橋;令王平、張嶷爲前隊,薑維、馬忠爲中隊,廖化、張翼爲後隊:兵分三路,去攻渭水旱營。是日午時,人馬離大寨,盡渡渭水,列成陣勢,緩緩而行。卻說魏延、馬岱將近北原,天色已昏。孫禮哨見,便棄營而走。魏延知有准備,急退軍時,四下喊聲大震:左有司馬懿,右有郭淮,兩路兵殺來。魏延、馬岱奮力殺出,蜀兵多半落於水中,餘 衆奔逃無路。幸得吳懿兵殺來,救了敗兵過岸拒住。吳班分一半兵撐筏順水來燒浮橋,卻被張虎、樂綝在岸上亂箭射住。吳班中箭,落水而死。餘軍跳水逃命,木筏盡被魏兵奪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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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명이 위연과 마대에게 군사를 이끌고 위수를 건너 북쪽 언덕을 치라고 명령하고, 오반과 오의에게 뗏목에 탄 군사들을 이끌고 부교를 불사르러 가라고 했다. 왕평과 장의를 선봉으로 삼고, 강유와 마충을 중군을 삼으며, 요화와 장익은 후군을 삼았다.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위수 물가의 영채를 공격하러 갔다. 이날 오시(정오께)에 인마들이 본진을 떠나 모두 위수를 건너서 전투 대형을 갖추어 천천히 행군했다. 한편, 위연과 마대가 북쪽 언덕으로 다가가니 하늘은 이미 저물었다. 손례가 이를 발견하고 영채를 포기하고 달아났다. 위연이 적에게 준비가 있음을 알고 다급히 군사를 물리려는데, 사방에서 함성이 크게 울렸다. 왼쪽에서 사마의, 오른쪽에서 곽회의 두 갈래 군사가 몰려왔다. 위연과 마대가 힘껏 뚫고 나오지만 촉나라 군사 태반이 물에 떨어지고 나머지도 달아날 길이 없었다. 다행히 오의의 군사가 달려와서 패잔병을 구원하고 강을 건너가 방어했다. 오반이 군사 절반을 이끌고, 뗏목을 조종하여 물길을 따라 부교를 불사르러 오지만, 장호와 악림이 강둑에서 화살을 마구 쏘아 가로막았다. 오반이 화살을 맞고 강물에 떨어져 죽었다. 나머지 군사도 물로 뛰어들어 달아나니, 뗏목을 모조리 위나라 군사가 빼앗았다.
 
 
61
此時王平、張嶷,不知北原兵敗,直奔到魏營,已有二更天氣,只聽得喊聲四起。王平謂張嶷曰:“軍馬攻打北原,未知勝負。渭南之寨,現在面前,如何不見一個魏兵?莫非司馬懿知道了,先作准備也?我等且看浮橋火起,方可進兵。”二人勒住軍馬,忽背後一騎馬來報,說:“丞相教軍馬急回。北原兵、浮橋兵,俱失了。”王平、張嶷大驚,急退軍時,卻被魏兵抄在背後,一聲炮響,一齊殺來,火光沖天。王平、張嶷引兵相迎,兩軍混戰一場。平、嶷二人奮力殺出,蜀兵折傷大半。孔明回到祁山大寨,收聚敗兵,約折了萬餘人,心中憂悶。
 
62
이때 왕평과 장의가 북쪽 언덕의 패전을 모르고 곧바로 위나라 영채로 달려오니 벌써 2경(밤 10시쯤)이었다. 함성이 사방에서 일어나는 것을 듣고, 왕평이 장의에게 말하기를,
 
63
“군마가 북쪽 언덕을 쳤지만, 아직 승부를 모르오. 위수 남쪽 영채가 이제 바로 앞에 있는데 어찌 위병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소? 아무래도 사마의가 미리 알고 준비한 것 아니겠소? 우리는 우선 부교가 불타는지 살핀 뒤에 진격해야겠소.”
 
64
했다. 두 사람이 군마를 멈춰 세우는데, 갑자기 뒤에서 말을 타고 달려와 알리기를,
 
65
“승상께서 군마을 급히 돌리라 하셨소. 북쪽 언덕을 공격한 군사도, 부교를 공격한 군사도 모두 잃었소.”
 
66
했다. 왕평과 장의가 크게 놀라서 급히 군사를 물리려는데, 위나라 군사가 배후를 습격했다. 한차례 포성이 일더니, 위나라 군사가 일제히 달려오고, 불빛이 하늘을 찔렀다. 왕평과 장의가 군사를 이끌고 맞붙어서, 양쪽 군사가 한바탕 혼전을 벌였다. 왕평과 장의 두 사람이 힘껏 뚫고 나오지만, 촉나라 군사 태반을 잃었다. 공명이 기산 본진으로 돌아가서 패잔병을 거두니 약 1만여 명을 잃어서 마음속으로 근심했다.
 
 
67
忽報費禕自成都來見丞相。孔明請入。費禕禮畢,孔明曰:“吾有一書,正欲煩公去東吳投遞,不知肯去否?”禕曰:“丞相之命,豈敢推辭?”孔明即修書付費禕去了。禕持書徑到建業,入見吳主孫權,呈上孔明之書。權拆視之,書略曰:“漢室不幸,王綱失紀,曹賊篡逆,蔓延及今。亮受昭烈皇帝寄托之重,敢不竭力盡忠:今大兵已會於祁山,狂寇將亡於渭水。伏望陛下念同盟之義,命將北征,共取中原,同分天下。書不盡言,萬希聖聽!”
 
68
갑자기 알리기를, 비위가 성도에서 승상을 찾아왔다고 했다. 공명이 불러들여 비위가 인사를 마치자, 공명이 말하기를,
 
69
“내게 서신이 하나 있는데, 수고롭더라도 공을 동오로 보내어 전달하려는데 기꺼이 가주실지 모르겠소.”
 
70
하니, 비위가 말하기를,
 
71
“승상의 명을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72
했다. 공명이 즉시 글을 다듬어 비위에게 주어 가게 했다. 비위가 글을 가지고 곧바로 건업으로 가서 오나라 군주 손권을 만나 공명의 서신을 바쳤다. 손권이 뜯어 읽어보니, 글에 대략 이르기를,
 
73
“한나라 황실이 불행해서 임금의 기강이 법도를 잃었고, 조씨 역적이 황제의 자리를 빼앗아서, 세력이 무성해진 것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소열황제(유현덕)로부터 부탁의 중책을 받아, 어찌 감히 힘과 마음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대군이 기산에 집결했으니, 미친 도적들이 곧 위수에서 멸망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동맹의 의리를 생각하시어, 장수들에게 북쪽을 정벌하라 명해서, 함께 중원을 취해, 천하를 같이 나누게 하십시오. 글로써 모두 말씀드리지 못하오나, 폐하의 성스런 의견을 바라 마지않사옵니다.”
 
74
했다.
 
 
75
權覽畢,大喜,乃謂費禕曰:“朕久欲興兵,未得會合孔明。今既有書到,即日朕自親征,入居巢門,取魏新城;再令陸遜、諸葛瑾等屯兵於江夏、沔口取襄陽;孫韶、張承等出兵廣陵取淮陽等處:三處一齊進軍,共三十萬,克日興師。”費禕拜謝曰:“誠如此,則中原不日自破矣!”
 
76
손권이 읽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비위에게 이르기를,
 
77
“짐이 오래도록 군사를 일으키려 했으나 아직 공명과 힘을 합치지 못했소. 이제 이렇게 서신을 보냈으니, 날을 잡아서 짐이 직접 정벌군을 이끌고, 성문으로 들어가서 위나라의 신성을 취하겠소. 또한 육손과 제갈근 등에게 명해, 강하와 면구에 병력을 주둔해서, 양양을 취하게 하고, 손소와 장승 등도 광릉으로 출병해서, 회양 등의 곳을 취하게 하겠소. 세 방면으로 일제히 진군해서, 모두 3십만 명이 기일에 맞춰 출병할 것이오.”
 
78
했다. 비위가 사례하며 말하기를,
 
79
“참으로 이와 같다면, 중원도 멀지 않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80
했다.
 
 
81
權設宴款待費禕。飲宴間,權問曰:“丞相軍前,用誰當先破敵?”禕曰:“魏延爲首。”權笑曰:“此人勇有餘。而心不正。若一朝無孔明,彼必爲禍。孔明豈未知耶?”禕曰:“陛下之言極當!臣今歸去,即當以此言告孔明。”遂拜辭孫權,回到祁山,見了孔明,具言吳主起大兵三十萬,禦駕親征,兵分三路而進。孔明又問曰:“吳主別有所言否?”費禕將論魏延之語告之。孔明歎曰:“真聰明之主也!吾非不知此人。爲惜其勇,故用之耳。”禕曰:“丞相早宜區處。”孔明曰:“吾自有法。”禕辭別孔明,自回成都。
 
82
손권이 연회를 열어 비위를 환대했다. 연회 도중에 손권이 묻기를,
 
83
“승상이 전장에서 누구를 앞장세워 적군을 격파하오?”
 
84
하니, 비위가 말하기를,
 
85
“위연이 으뜸입니다.”
 
86
했다. 손권이 웃으며 말하기를,
 
87
“그는 용맹은 넘치지만 마음이 바르지 못하오. 하루아침이라도 공명이 없으면 그는 틀림없이 화근이 될 것이오. 공명이 어찌 아직 모른단 말이오?”
 
88
하니, 비위가 말하기를,
 
89
“폐하의 말씀이 지당하옵니다! 신이 이제 돌아가면 즉시 이 말을 공명에게 고하겠습니다.”
 
90
했다. 곧 비위가 손권을 고별하고, 기산으로 돌아가서 공명을 만나, 오나라 군주가 3십만 대군을 일으켜서 어가를 타고 직접 정벌에 나서서,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진군할 것이라고 자세히 말했다. 공명이 다시 묻기를,
 
91
“오나라 주군이 따로 말한 것은 없었소?”
 
92
하니, 비위가 손권이 위연을 평한 것을 고했다. 공명이 찬탄하기를,
 
93
“참으로 총명한 군주요! 내가 그 사람됨을 몰라서가 아니오. 다만 용맹을 아껴서 쓰고 있을 따름이오.”
 
94
했다. 비위가 말하기를,
 
95
“승상께서 어서 분별해서 처리하십시오.”
 
96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97
“내 나름대로 방도가 있소.”
 
98
했다. 비위가 공명을 고별하고 성도로 돌아갔다.
 
 
99
孔明正與諸將商議征進,忽報有魏將來投降。孔明喚入問之,答曰:“某乃魏國偏將軍鄭文也。近與秦朗同領人馬,聽司馬懿調用,不料懿徇私偏向,加秦朗爲前將軍,而視文如草芥,因此不平,特來投降丞相。願賜收錄。”言未已,人報秦朗引兵在寨外,單搦鄭文交戰。孔明曰:“此人武藝比汝若何?”鄭文曰:“某當立斬之。”孔明曰:“汝若先殺秦朗,吾方不疑。”鄭文欣然上馬出營,與秦朗交鋒。孔明親自出營視之。只見秦朗挺槍大罵曰:“反賊盜我戰馬來此,可早早還我!”言訖,直取鄭文。文拍馬舞刀相迎,只一合,斬秦朗於馬下。魏軍各自逃走。鄭文提首級入營。
 
100
공명이 여러 장수와 진격을 상의하는데, 갑자기 보고하기를, 위나라 장수가 투항하러 왔다고 했다. 공명이 불러들여 물으니, 대답하기를,
 
101
“저는 위나라 부장 정문입니다. 요즘에 진랑과 더불어 군대를 함께 이끌며, 사마의의 지휘를 받고 있었습니다. 뜻밖에 사마의가 사사로운 정에 치우쳐 진랑을 전장군으로 임명하고, 저를 지푸라기처럼 깔보니, 이로 인해 불평을 품고 승상께 투항하러 왔습니다. 바라옵건대 받아주십시오.”
 
102
했다.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진랑이 군사를 이끌고 영채 밖에서 홀로 정문에게 싸움을 건다고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03
“그와 그대의 무예를 비교하면 어떻소?”
 
104
하니, 정문이 말하기를,
 
105
“제가 당장 그를 베겠습니다.”
 
106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07
“그대가 먼저 진랑을 벤다면 나는 의심하지 않겠소.”
 
108
하니, 정문이 흔쾌히 말에 올라타고 영채를 나가서, 진랑과 교전했다. 공명이 몸소 영채를 나가서 살폈다. 진랑이 창을 꼬나쥐고 크게 욕하기를,
 
109
“반적 놈이 내 말을 훔쳐가다니, 어서 내게 돌려주어라!”
 
110
하고, 말을 마치더니, 정문에게 바로 달려들었다. 정문이 말을 몰아 칼을 휘두르며 맞붙어, 겨우 1합에 진랑을 말 아래로 베어 떨어뜨렸다. 위나라 군사가 뿔뿔이 달아났다. 정문이 진랑의 머리를 가지고 영채로 들어왔다.
 
 
111
孔明回到帳中坐定,喚鄭文至,勃然大怒,叱左右:“推出斬之!”鄭文曰:“小將無罪!”孔明曰:“吾向識秦朗;汝今斬者,並非秦朗。安敢欺我!”文拜告曰:“此實秦朗之弟秦明也。”孔明笑曰:“司馬懿令汝來詐降,於中取事,卻如何瞞得我過!若不實說,必然斬汝!”鄭文只得訴告其實是詐降,泣求免死。孔明曰:“汝既求生,可修書一封,教司馬懿自來劫營,吾便饒汝性命。若捉住司馬懿,便是汝之功,還當重用。”鄭文只得寫了一書,呈與孔明。孔明令將鄭文監下。樊建問曰:“丞相何以知此人詐降?”孔明曰:“司馬懿不輕用人。若加秦朗爲前將軍,必武藝高強;今與鄭文交馬只一合,便爲文所殺,必不是秦朗也。以故知其詐。”
 
112
공명이 군막 안으로 돌아와 좌정하고, 정문을 불러들이더니, 와락 성을 내며, 좌우 사람들에게 소리치기를,
 
113
“끌어내어 참하라.”
 
114
고 했다. 정문이 말하기를,
 
115
“소장은 죄가 없습니다!”
 
116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17
“내가 일찍이 진랑을 알고 있었다. 네가 지금 목을 벤 자는 진랑이 아니거늘, 어찌 감히 나를 속이느냐!”
 
118
했다. 정문이 고개 숙여 고하기를,
 
119
“이 자는 실은 진랑의 아우 진명입니다.”
 
120
하니,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121
“사마의가 너를 거짓으로 투항시켜, 중간에서 일을 벌이게 한 것이지만, 어찌 나를 속여 넘기겠느냐!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반드시 너를 처형하겠다!”
 
122
하니, 정문이 어쩔 수 없어 거짓 투항한 것을 사실대로 말하고, 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살려달라고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23
“네가 살고 싶다니, 서신을 한 봉 써서, 사마의가 직접 영채를 습격하러 오게 하면, 네 목숨을 살려주겠다. 만약 사마의를 사로잡으면, 너의 공일뿐더러, 마땅히 너를 중용하겠다.”
 
124
하니, 정문이 어쩔 수 없이 서신을 한 봉 써서 공명에게 바쳤다. 공명이 정문을 가두어 두게 했다. 번건이 묻기를,
 
125
“승상께서 무엇으로 이 자의 거짓 항복을 아셨습니까?”
 
126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27
“사마의는 함부로 사람을 쓰지 않소. 만약 진랑을 전장군으로 삼았다면, 반드시 무예가 뛰어날 것이오. 이제 정문과 교전한 지 겨우 1합에 정문에게 죽다니, 진랑이 아닌 게 틀림없었소. 이로써 거짓인 줄을 알았소.”
 
128
했다.
 
 
129
衆皆拜服。孔明選一舌辯軍士,附耳分付如此如此。軍士領命,持書徑來魏寨,求見司馬懿。懿喚入,拆書看畢,問曰:“汝何人也?”答曰:“某乃中原人,流落蜀中:鄭文與某同鄉。今孔明因鄭文有功,用爲先鋒。鄭文特托某來獻書,約於明日晚間,舉火爲號,望乞都督盡提大軍前來劫寨,鄭文在內爲應。”司馬懿反覆詰問,又將來書仔細檢看,果然是實;即賜軍士酒食,分付曰:“本日二更爲期,我自來劫寨。大事若成,必重用汝。”軍士拜別,回到本寨告知孔明。孔明仗劍步罡,禱祝已畢,喚王平、張嶷分付如此如此;又喚馬忠、馬岱分付如此如此;又喚魏延分付如此如此。孔明自引數十人,坐於高山之上,指揮 衆軍。
 
130
모든 사람들이 탄복했다. 공명이 말재주가 있는 군사를 골라, 귀에 대고 이러저러하게 분부했다. 군사가 명을 받들어 서신을 가지고 위나라 영채를 찾아가서 사마의와 만나기를 청했다. 사마의가 불러들여 서신을 읽고 나서, 묻기를,
 
131
“너는 누구냐?”
 
132
하니, 대답하기를,
 
133
“저는 본래 중원 출신인데, 어쩌다 촉나라로 흘러들었습니다. 정문과 저는 동향입니다. 지금 공명은 정문이 공을 세웠다며, 선봉으로 삼았습니다. 정문이 제게 특별히 부탁해 서신을 바치라 했습니다. 내일 저녁에 불을 피워 올려 신호할 테니, 아무쪼록 도독께서 대군을 거느리고 영채를 습격하러 오시면, 정문이 내응하겠다고 했습니다.”
 
134
하니, 사마의가 반복해서 따져 묻고, 서신을 자세히 검사하지만, 과연 사실이라, 즉시 군사에게 술과 음식을 내리고, 분부하기를,
 
135
“오늘 2경(저녁 10시쯤)에, 내가 직접 영채를 공격하러 가겠다. 이번 큰일이 성공하면, 반드시 너를 중용하겠다.”
 
136
했다. 군사가 고별하고, 본채로 되돌아가 공명에게 알렸다. 공명이 검을 짚고 북두성의 모양을 따라 걸으며, 기도를 올린 뒤, 왕평과 장의를 불러 이러저러하게 분부하고, 다시 마충과 마대를 불러 이러저러하게 분부했다. 다시 위연을 불러 이러저러하게 분부했다. 공명 스스로 수십 인을 이끌고, 높은 산 위에 앉아서 뭇 군사를 지휘했다.
 
 
137
卻說,司馬懿見了鄭文之書,便欲引二子提大兵來劫蜀寨。長子司馬師諫曰:“父親何故據片紙而親入重地?倘有疏虞,如之奈何?不如令別將先去,父親爲後應可也。”懿從之,遂令秦朗引一萬兵,去劫蜀寨,懿自引兵接應。是夜初更,風清月朗;將及二更時分,忽然陰雲四合,黑氣漫空,對面不見。懿大喜曰:“天使我成功也!”
 
138
한편, 사마의는 정문의 서신을 보더니, 두 아들을 이끌고 대군을 거느리고 촉나라 영채를 습격하려 했다. 맏아들 사마사가 간하기를,
 
139
“부친께서 무슨 까닭으로 편지를 믿고 친히 엄중한 곳으로 들어가십니까? 만약 실수가 있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다른 장수를 먼저 보내고, 부친께서 뒤에서 지원하시는 것만 못합니다.”
 
140
하니, 사마의가 이를 따라, 곧 진랑에게 군사 1만을 이끌고 촉나라 영채를 치게 하고, 자신은 직접 병력을 이끌고 지원했다. 이날 밤 초경(저녁 8시쯤)에, 바람은 맑고 달은 밝았다. 이윽고 2경(저녁 10시경) 무렵, 홀연히 음산한 구름이 사방에서 몰려오더니, 검은 기운이 하늘에 가득하여 서로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마의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141
“하늘이 내가 공을 이루게 돕는구나!”
 
142
했다.
 
 
143
於是人盡銜枚,馬皆勒口,長驅大進。秦朗當先,引一萬兵直殺入蜀寨中,並不見一人。朗知中計,忙叫退兵。四下火把齊明,喊聲震地:左有王平、張嶷,右有馬岱、馬忠,兩路兵殺來。秦朗死戰,不能得出。背後司馬懿見蜀寨火光沖天,喊聲不絕,又不知魏兵勝負,只顧催兵接應,望火光中殺來。忽然一聲喊起,鼓角喧天,火炮震地:左有魏延,右有薑維,兩路殺出。魏兵大敗,十傷八九,四散逃奔。此時秦朗所引一萬兵,都被蜀兵圍住,箭如飛蝗。秦朗死於亂軍之中。司馬懿引敗兵奔入本寨。
 
144
이에 사람들은 모두 입에 막대를 물고, 말들은 모두 재갈을 물려서, 거침없이 크게 진군했다. 진랑이 선두에 서서 군사 1만을 이끌고 촉나라 영채로 뛰어들었지만,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진랑이 계책에 빠진 것을 알고, 황급히 군사를 물리라고 외쳤다. 사방에서 횃불을 일제히 밝히고, 함성이 땅을 뒤흔들었다. 왼쪽에서 왕평과 장의, 오른쪽에서 마대와 마충의 군사들이 양쪽에서 달려들었다. 진랑이 죽기 살기로 싸웠지만 탈출하지 못했다. 뒤따르던 사마의는 촉나라 영채에서 불빛이 충천하고 함성이 끊이지 않자, 위병이 이기는지 지는지 알 수가 없어서, 군사들을 독려해서 도와주고자 불빛 속으로 달려왔다. 갑자기 한 차례 함성이 일더니, 북소리와 피리소리가 하늘에 요란하고 화포가 땅을 뒤흔드니, 왼쪽에서 위연, 오른쪽에서 강유의 군사가 두 갈래로 달려들었다. 위나라 군이 대패해서, 열에 여덟, 아홉은 죽거나 다쳐서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이때 진랑이 이끄는 군사 1만 명은 모두 촉나라 군에게 포위되었는데, 화살이 메뚜기 떼처럼 쏟아졌다. 진랑은 어지러운 군대 속에서 죽었다. 사마의가 패잔병을 이끌고 달아나 본진으로 들어갔다.
 
 
145
三更以後,天複清朗。孔明在山頭上鳴金收軍。原來二更時陰雲暗黑,乃孔明用遁甲之法;後收兵已了,天複清朗,乃孔明驅六丁六甲掃蕩浮雲也。當下孔明得勝回寨,命將鄭文斬了,再議取渭南之策。每日令兵搦戰,魏軍只不出迎。孔明自乘小車,來祁山前、渭水東西,踏看地理。忽到一穀口,見其形如葫蘆之狀,內中可容千餘人;兩山又合一穀,可容四五百人;背後兩山環抱,只可通一人一騎。孔明看了,心中大喜,問向導官曰:“此處是何地名?”答曰:“此名上方穀,又號葫蘆穀。”
 
146
3경(자정쯤)이 지나자 하늘이 다시 맑아졌다. 공명이 산꼭대기에서 징을 쳐서 군사를 거두었다. 원래, 2경(저녁 10시쯤)에 먹구름이 몰려온 것은, 공명이 둔갑술(변신술)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 뒤 군사를 거두자 하늘이 다시 맑아진 것이니, 공명이 육정육갑(둔갑술의 신장)을 불러 뜬구름을 소탕한 것이었다. 거기에서 공명이 승리를 거두고 영채로 돌아가자마자, 정문을 처형하라 명하고, 다시 위수 남쪽을 공격할 계책을 의논했다. 매일 군사를 시켜 도전하지만, 위나라 군은 나오지 않을 뿐이었다. 공명이 직접 작은 수레를 타고, 기산 앞의 위수 동서쪽으로 와서 지리를 답사했다. 문득 어느 계곡 입구에 이르니, 그 형상이 마치 호리병박과 같아서 그 안에 가히 1천여 인을 수용할 만했다. 양쪽 산이 또 합쳐져서 한 계곡이 되었는데, 가히 4, 5백 인을 수용할 만했다. 배후에 양쪽 산이 둘러싸서, 겨우 사람 하나, 말 한 필 통행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공명이 이를 보더니,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길을 안내하는 관리에게 묻기를,
 
147
“이 곳의 이름이 무엇이오?”
 
148
하니, 대답하기를,
 
149
“이곳 이름은 상방곡인데, 호로곡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50
했다.
 
 
151
孔明回到帳中,喚裨將杜睿、胡忠二人,附耳授以密計。令喚集隨軍匠作一千餘人,入葫蘆穀中,制造‘木牛流馬’應用;又令馬岱領五百兵守住穀口。孔明囑馬岱曰:“匠作人等,不許放出;外人不許放入。吾還不時自來點視。捉司馬懿之計,只在此舉。切不可走漏消息。”馬岱受命而去。杜睿等二人在穀中監督匠作,依法制造。孔明每日往來指示。
 
152
공명이 군막으로 돌아가서 부장 두예와 호충 두 사람을 불러서 귓속말로 비밀 계책을 주었다. 그리고 군대에서 일하는 기술자 1천여 인을 불러 모아서, ‘목우유마’(사람이 미는 작은 나무 수레)를 제조하여 사용하게 했다. 또한 마대에게 명하여 군사 5백을 거느리고 골짜기 입구를 지키게 했다. 공명이 마대에게 당부하기를,
 
153
“기술자들은 밖으로 내보내지 마시오. 바깥 사람들도 들어오게 하지 마시오. 내가 불시에 점검하러 가겠소. 사마의를 사로잡는 계책은 오로지 이 일에 달렸소. 절대 이 소식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시오.”
 
154
했다. 마대가 명을 받고 떠났다. 두예 등 두 사람이 골짜기 안에서 제조하는 것을 감독하고, 법에 따라 만들었다. 공명이 매일 와서 지시했다.
 
 
155
忽一日,長史楊儀入告曰:“即今糧米皆在劍閣,人夫牛馬,搬運不便,如之奈何?”孔明笑曰:“吾已運謀多時也。前者所積木料,並西川收買下的大木,教人制造‘木牛流馬’,搬運糧米,甚是便利。牛馬皆不水食,可以晝夜轉運不絕也。” 衆皆驚曰:“自古及今,未聞有木牛流馬之事。不知丞相有何妙法,造此奇物?孔明曰:“吾已令人依法制造,尚未完備。吾今先將造木牛流馬之法,尺寸方圓,長短闊狹,開寫明白,汝等視之。” 衆大喜。孔明即手書一紙,付 衆觀看。 衆將環繞而視。
 
156
갑자기 어느 날, 장사(비서장) 양의가 들어와 고하기를,
 
157
“지금 군량미가 모두 검각에 있는데, 인부나 소와 말이 운반하기 불편하니, 어찌해야겠습니까?”
 
158
했다.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159
“내가 계책을 낸 지 오래요. 앞서 목재를 모으고, 아울러 서천에서 큰 나무를 수매하고, 사람들을 시켜 ‘목우유마’를 제조하게 했으니, 군량미 운반이 아주 편리해질 것이오. ‘목우유마’는 모두 물과 음식이 필요 없으니, 밤낮으로 끊임없이 운발할 수 있소.”
 
160
하니, 뭇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말하기를,
 
161
“옛날부터 지금까지 ‘목우유마’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승상께서 무슨 묘법으로 이러한 기이한 물건을 만드셨습니까?”
 
162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163
“내가 이미 사람들에게 제조법에 의거해 만들게 했으나, 아직 완성하지 못했소. 내가 지금 먼저 목우유마를 만드는 방법을, 크기와 도면, 길고 짧음과 넓고 좁음을 명백히 적어서 그대들에게 보이겠소.”
 
164
했다. 여러 사람들이 크게 기뻐했다. 공명이 즉시 손으로 종이 한 장에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여러 장수들이 빙 둘러싸서 보았다.
 
 
165
造木牛之法雲:“方腹曲頭,一腳四足;頭入領中,舌著於腹。載多而行少:獨行者數十裏,群行者二十裏。曲者爲牛頭,雙者爲牛腳,橫者爲牛領,轉者爲牛足,覆者爲牛背,方者爲牛腹,垂者爲牛舌,曲者爲牛肋,刻者爲牛齒,立者爲牛角,細者爲牛鞅,攝者爲牛鞦軸。牛仰雙轅,人行六尺,牛行四步。每牛載十人所食一月之糧,人不大勞,牛不飲食。”造流馬之法雲:“肋長三尺五寸,廣三寸,厚二寸二分:左右同。前軸孔分墨去頭四寸,徑中二寸。前腳孔分墨二寸,去前軸孔四寸五分,廣一寸。前杠孔去前腳孔分墨二寸七分,孔長二寸,廣一寸。後軸孔去前杠分墨一尺五分,大小與前同。
 
166
목우를 만드는 방법은 이르기를,
 
167
“배는 네모나고, 머리는 굽었으며, 다리 한 개와 발 네 개가 달렸다. 머리는 목 안으로 들어가고, 혀는 뱃속까지 닿아 있다. 많이 적재하면 짧은 거리를 간다. 홀로 가면 수십 리를 가고, 여럿이 가면 삼십 리를 간다. 소의 머리는 굽었고, 다리 한 쌍이 나란히 달렸다. 거기에 소의 목을 가로지르고, 굴러 가는 것이 소의 다리가 된다. 소의 등을 덮었으며, 소의 배는 네모졌다. 소의 혀를 늘어뜨리고 소의 갈빗대는 굽어 있다. 소의 이빨을 깎아 넣고, 소의 뿔을 세웠으며, 소의 가슴걸이는 가늘고, 소의 멍에를 매었다. 소는 끌채 한 쌍으로 몰고, 사람이 여섯 자를 걸을 때, 소는 네 걸음을 간다. 각 소마다 열 사람이 한 달 먹을 식량을 싣지만, 사람은 크게 수고롭지 않고, 소는 마시거나 먹지 않는다.”
 
168
고 했다. 유마를 만드는 방법은 이를기를,
 
169
“갈빗대는 길이가 3척 5촌, 너비가 3촌, 두께가 2척 5푼이다. 좌우가 같다. 앞 굴대의 구멍은 기준선에서 머리까지 4촌, 지름은 2촌이다. 앞다리의 구멍은 기준선에서 2촌, 앞축 구멍에서부터 4촌 5푼, 너비는 1촌이다. 앞 가로대 구멍은 앞 다리의 구멍 기준선까지 2촌 7푼, 구멍 길이는 2촌, 너비는 1촌이다. 뒷굴대의 구멍은 앞 가로대 기준선까지 1척 5촌, 크고 작아도 (비율은) 앞과 같다.
 
 
170
後腳孔分墨去後軸孔三寸五分,大小與前同。後杠孔去後腳孔分墨二寸七分,後載克去後杠孔分墨四寸五分。前杠長一尺八寸,廣二寸,厚一寸五分。後杠與等。板方囊二枚,厚八分,長二尺七寸,高一尺六寸五分,廣一尺六寸:每枚受米二斛三鬥。從上杠孔去肋下七寸:前後同。上杠孔去下杠孔分墨一尺三寸,孔長一寸五分,廣七分:八孔同。前後四腳廣二寸,厚一寸五分。形制如象,軒長四寸,徑面四寸三分。孔徑中三腳杠,長二尺一寸,廣一寸五分,厚一寸四分,同杠耳。”
 
171
뒷다리 구멍은 기준선에서 뒤 굴대까지 3촌 5푼, 크고 작아도 (비율은) 앞과 같다. 뒷 가로대의 구멍은 뒷다리 구멍 기준선까지 2촌 7푼, 후재극(방향을 조절하는 공간)은 뒷 가로대 구멍 기준선에서 4촌 5푼이다. 앞 가로대 길이는 1척 8촌, 너비는 2촌, 두께는 1촌 5푼이다. 뒷 가로대도 이와 같다. 나무 적재함은 2매이며, 두께는 8푼, 길이는 2척 7촌, 높이는 1척 6촌 5푼, 너비는 1척 6촌이다. 적재함마다 쌀 2섬 3말을 수납한다. 위 가로대 구멍에서 갈빗대 아래까지 7촌이다. 앞뒤가 같다. 위 가로대 구멍은 아래 가로대 구멍까지 기준선에서 1척 3촌이고, 구멍 길이는 1촌 5푼, 너비는 7푼이다. 구멍 여덟 개가 같다. 앞뒤 네 다리의 너비는 2촌, 두께는 1촌 5푼이다. 모양은 코끼리와 같고, 창의 길이는 4촌, 지름은 4촌 3푼이다. 구멍 안에 세 다리의 가로대가 있으며, 길이는 2척 1촌, 너비는 1촌 5푼, 두께는 1촌 4푼으로 가로대도 같다.”
 
172
라고 했다.
 
 
173
衆將看了一遍,皆拜伏曰:“丞相真神人也!”過了數日,木牛流馬皆造完備,宛然如活者一般;上山下嶺,各盡其便。 衆軍見之,無不欣喜。孔明令右將軍高翔,引一千兵駕著木牛流馬,自劍閣直抵祁山大寨,往來搬運糧草,供給蜀兵之用。後人有詩贊曰:“劍關險峻驅流馬,斜穀崎嶇駕木牛。後世若能行此法,輸將安得使人愁?”
 
174
여러 장수들이 쭉 보더니, 모두 고개 숙여 감복해 말하기를,
 
175
“승상은 참으로 신과 같은 사람이십니다!”
 
176
했다. 며칠이 지나자, 목우유마가 모두 완성되어, 마치 살아 있는 듯했다. 산을 오르거나 고개를 내려가거나, 모두 편했다. 여러 군사들이 이를 보더니,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공명이 우장군 고상에게 명하여, 군사 1천을 이끌고 목우유마를 몰아서, 검각에서 곧장 기산의 본진으로 오가며, 군량과 사료를 운반하여, 촉나라 군사에게 공급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
 
177
“검각의 험준한 땅에서 유마를 몰고, 사곡의 기구한 땅에서 목우를 몰았네. 후세에 능히 이런 방법을 행한다면, 짐을 실어나르는 것을 어찌 근심하리오.”
 
178
했다.
 
 
179
卻說,司馬懿正憂悶間,忽哨馬報說:“蜀兵用木牛流馬轉運糧草。人不大勞,牛馬不食。”懿大驚曰:“吾所以堅守不出者,爲彼糧草不能接濟,欲待其自斃耳。今用此法,必爲久遠之計,不思退矣。如之奈何?”急喚張虎、樂綝二人分付曰:“汝二人各引五百軍,從斜穀小路抄出;待蜀兵驅過木牛流馬,任他過盡,一齊殺出;不可多搶,只搶三五匹便回。”
 
180
한편, 사마의가 근심하고 있는 사이에, 정찰 기병이 보고하기를,
 
181
“촉나라 군사들이 목우유마를 이용해서 군량과 사료를 운반합니다. 사람들은 큰 힘이 들지 않거니와 목우유마는 먹일 필요도 없습니다.”
 
182
했다. 사마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183
“내가 이렇게 굳게 수비하며 출전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군량과 사료가 제대로 오지 않아서, 저절로 피폐해지기를 기다리는 것뿐인데, 이제 이런 방법을 쓴다면, 틀림없이 장기 대책이 될 것이니, 물러갈 생각이 없어질 것이다. 어찌해야 하나?”
 
184
하고, 급히 장호와 악림 두 사람을 불러 분부하기를,
 
185
“두 사람은 각각 군사 5백 명을 거느리고, 사곡의 지름길로 나가서 습격하시오. 촉나라 군사들이 목우유마를 몰고 오면, 그들이 모두 지날 즈음 일제히 공격하시오. 많이는 필요 없고, 서너 필만 빼앗아 돌아오시오.”
 
186
했다.
 
 
187
二人依令,各引五百軍,扮作蜀兵,夜間偷過小路,伏在穀中,果見高翔引兵驅木牛流馬而來。將次過盡,兩邊一齊鼓噪殺出。蜀兵措手不及,棄下數匹,張虎、樂綝歡喜,驅回本寨。司馬懿看了,果然進退如活的一般,乃大喜曰:“汝會用此法,難道我不會用!”便令巧匠百餘人,當面拆開,分付依其尺寸長短厚薄之法,一樣制造木牛流馬。不消半月,造成二千餘只,與孔明所造者一般法則,亦能奔走。遂令鎮遠將軍岑威,引一千軍驅駕木牛流馬,去隴西搬運糧草,往來不絕。魏營軍將,無不歡喜。
 
188
두 사람이 명령을 받아서 각각 군사 5백 명을 이끌고, 촉나라 군사로 변장하여 야간에 지름길로 침투해서 골짜기 안에 매복했다. 과연 고상이 이끄는 군사들이 목우유마를 몰고 왔다. 모두 지나갈 즈음에 양쪽에서 일제히 북을 두드리며 달려나갔다. 촉나라 군사들이 미처 손쓰지 못하고 몇 필을 버리고 달아나니, 장호와 악림이 몹시 기뻐하며 본채로 몰고 돌아갔다. 사마의가 이를 보니 과연 나가고 물러나는 것이 살아있는 것과 같아서, 몹시 기뻐하며 말하기를,
 
189
“너희가 이런 방법을 쓴다면, 나라고 이런 방법을 쓰는 게 어려우랴!”
 
190
하고, 곧 솜씨 좋은 장인 1백여 인에게 지시해서 직접 분해하여, 그 치수, 길이, 두께에 맞추어, 똑같이 목우유마를 제조하게 했다. 보름이 지나지 않아, 2천 개를 공명이 만든 것과 같은 원리로 만드니, 역시 달릴 수 있었다. 마침내 진원장군 잠위에게 명하여, 군사 1천을 이끌고 목우유마를 몰아 농서 지역으로 가서 군량과 사료를 운반하게 하니,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위나라 군사와 장수들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191
卻說,高翔回見孔明,說魏兵搶奪木牛流馬各五六匹去了。孔明笑曰:“吾正要他搶去。我只費了幾匹木牛流馬,卻不久便得軍中許多資助也。”諸將問曰:“丞相何以知之?”孔明曰:“司馬懿見了木牛流馬,必然仿我法度,一樣制造。那時我又有計策。”
 
192
한편, 고상이 공명에게 되돌아가서 위나라 군사에게 목우유마 각각 대여섯 필을 빼앗긴 것을 말하니,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193
“내가 그들이 빼앗아 가기를 기다리던 참이오. 우리가 겨우 몇 필의 목우유마를 빼앗겼을 뿐이지만, 머지않아 저들 군중에 허다하게 공급될 것이오.”
 
194
하니, 여러 장수가 묻기를,
 
195
“승상께서 어찌 아십니까?”
 
196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197
“사마의가 목우유마를 보면, 반드시 내 법도를 모방해서 똑같이 제조할 것이오. 그때에 대비해서 내게 따로 계책이 있소.”
 
198
했다.
 
 
199
數日後,人報魏兵也會造木牛流馬,往隴西搬運糧草。孔明大喜曰:“不出吾之算也。”便喚王平分付曰:“汝引一千兵,扮作魏人,星夜偷過北原,只說是巡糧軍,徑到運糧之所,將護糧之人盡皆殺散;卻驅木牛流馬而回,徑奔過北原來:此處必有魏兵追趕,汝便將木牛流馬口內舌頭扭轉,牛馬就不能行動,汝等竟棄之而走,背後魏兵趕到,牽拽不動,扛抬不去。吾再有兵到,汝卻回身再將牛馬舌扭過來,長驅大行。魏兵必疑爲怪也!”王平受計引兵而去。
 
200
며칠 뒤, 보고하기를, 위나라 군사들도 목우유마를 만들어 농서로 가서 군량을 운반한다고 했다. 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201
“내 예측을 벗어나지 못하구나!”
 
202
하고, 곧 왕평을 불러 분부하기를,
 
203
“그대는 군사 1천 명을 이끌고 위나라 군사로 위장해서 밤새 북쪽 언덕으로 침투하여 군량 운반을 순시하는 군사라고 말하며, 군량을 운반하는 곳에 들어가서, 군량을 호송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쳐서 쫓아버리시오. 그리고 목우유마를 몰고 되돌아오되, 곧바로 북쪽 언덕을 통과해 오시오. 이곳에서 틀림없이 위나라 군사가 뒤쫓을 텐데, 목우유마 입속의 혀끝을 비틀어 돌리면, 목우유마는 움직이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그대들은 목우유마를 버리고 달아나시오. 뒤에서 위나라 군사가 뒤쫓더라도, 그들은 목우유마를 끌고 갈 수도 없고, 메고 갈 수도 없을 것이오. 내가 다시 군사를 이끌고 오면, 그대는 되돌아가서 다시 목우유마의 혀를 비틀어 돌려서, 거침없이 몰고 오시오. 위나라 군사들이 반드시 의심하여 괴이하게 여길 것이오.”
 
204
했다. 왕평이 계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갔다.
 
 
205
孔明又喚張嶷分付曰:“汝引五百軍,都扮作六丁六甲神兵,鬼頭獸身,用五彩塗面,妝作種種怪異之狀;一手執繡旗,一手仗寶劍;身掛葫蘆,內藏煙火之物,伏於山傍。待木牛流馬到時,放起煙火,一齊擁出,驅牛馬而行。魏人見之,必疑是神鬼,不敢來追趕。”張嶷受計引兵而去。孔明又喚魏延、薑維分付曰:“汝二人同引一萬兵,去北原寨口接應木牛流馬,以防交戰。”又喚廖化、張翼分付曰:“汝二人引五千兵,去斷司馬懿來路。”又喚馬忠、馬岱分付曰:“汝二人引二千兵去渭南搦戰。”六人各各遵令而去。
 
206
공명이 또 장의를 불러 분부하기를,
 
207
“그대는 군사 5백 명을 이끌고, 모두 육정육갑(둔갑술의 신장)의 신병으로 변장해서, 귀신의 머리에 짐승의 몸으로 다섯 가지 색깔로 얼굴을 칠하고, 갖가지 괴이한 모습으로 꾸미시오. 한 손은 수놓은 깃발을 들고, 한 손은 보검을 잡게 하시오. 몸에는 호리병박을 차고 그 안에 불붙는 물질을 채워서 산기슭에 매복하시오. 목우유마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연기와 불꽃을 피우고, 일제히 몰려나가서 불꽃을 내뿜으며, 목우유마를 몰고 가시오. 위나라 군사가 이를 보고, 반드시 귀신이라고 의심해서, 감히 뒤쫓지 못할 것이오.”
 
208
했다. 장의가 계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갔다. 공명이 다시 위연과 강유를 불러 분부하기를,
 
209
“그대 두 사람은 함께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북쪽 언덕의 영채 입구로 가서, 목우유마를 몰고 오는 군사를 도와서 교전을 막으시오.”
 
210
했다. 또 요화와 장익을 불러 분부하기를,
 
211
“그대 두 사람은 군사 5천 명을 이끌고, 사마의가 오는 길을 차단하시오.”
 
212
하고, 다시 마충과 마대를 불러 분부하기를,
 
213
“그대 두 사람은 군사 2천 명을 이끌고 위수 남쪽으로 가서 싸움을 거시오.”
 
214
하니, 여섯 사람이 각각 명령을 받고 떠났다.
 
 
215
且說魏將岑威引軍驅木牛流馬,裝載糧米,正行之間,忽報前面有兵巡糧。岑威令人哨探,果是魏兵,遂放心前進。兩軍合在一處。忽然喊聲大震,蜀兵就本隊裏殺起,大呼:“蜀中大將王平在此!”魏兵措手不及,被蜀兵殺死大半。岑威引敗兵抵敵,被王平一刀斬了,餘皆潰散。王平引兵盡驅木牛流馬而回。敗兵飛奔報入北原寨內。郭淮聞軍糧被劫,疾忙引軍來救。王平令兵扭轉木牛流馬舌頭,皆棄於道上,且戰且走。郭淮教且莫追,只驅回木牛流馬。 衆軍一齊驅趕,卻那裏驅得動?郭淮心中疑惑,
 
216
한편, 위나라 장수 잠위가 군사를 이끌고 목우유마를 몰아서 군량미를 싣고 오는데, 갑자기 알리기를, 앞쪽으로 어떤 병사들이 군량 호송을 순시한다고 했다. 잠위가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니, 과연 위나라 군사이므로 마침내 방심하고 전진했다. 양쪽 군사가 한 곳에서 합치는데, 갑자기 함성이 크게 울리며, 촉나라 군사들이 대열에서 빠져나오며, 크게 외치기를,
 
217
“촉나라 대장 왕평이 여기 있다!”
 
218
하니, 위나라 군사가 미처 손을 쓰지 못하고, 촉나라 군사에게 죽은 이가 태반이었다. 잠위가 패잔병을 이끌고 적에 맞서지만, 왕평이 단칼에 베어버리니, 나머지는 모두 무너져 흩어졌다. 왕평이 군사를 이끌고 목우유마를 몰고 돌아왔다. 패잔병들이 북쪽 언덕의 위나라 영채로 달려들어가 알렸다. 곽회가 군량미를 빼앗긴 것을 듣고, 황급히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왔다. 왕평이 군사들을 시켜 목우유마의 혀끝을 비틀어 돌리고, 길 위에 모두 버린 채 싸우다가 달아났다. 곽회가 일단 추격을 멈추고, 목우유마를 몰고 돌아가라 지시했다. 여러 군사들이 일제히 몰고 가려는데, 어찌된 까닭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곽회가 마음속으로 의혹에 빠졌다.
 
 
219
正無奈何,忽鼓角喧天,喊聲四起,兩路兵殺來,乃魏延、薑維也。王平複引兵殺回。三路夾攻,郭淮大敗而走。王平令軍士將牛馬舌頭,重複扭轉,驅趕而行。郭淮望見,方欲回兵再追,只見山後煙雲突起,一隊神兵擁出,一個個手執旗劍,怪異之狀,驅駕木牛流馬如風擁而去。郭淮大驚曰:“此必神助也!” 衆軍見了,無不驚畏,不敢追趕。卻說司馬懿聞北原兵敗,急自引軍來救。方到半路,忽一聲炮響,兩路兵自險峻處殺出,喊聲震地。旗上大書:“漢將張翼、廖化”。司馬懿見了大驚。魏軍著慌,各自逃竄。正是:路逢神將糧遭劫,身遇奇兵命又危。
 
220
이렇게 어찌할 도리가 없는데, 갑자기 북소리와 피리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지고, 함성이 사방에서 일어나며, 양쪽에서 군사들이 달려오니, 바로 위연과 강유였다. 왕평도 다시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 달려왔다. 세 갈래에서 협공하니, 곽회가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왕평이 군사들을 시켜 목우유마의 혀끝을 다시 비틀어 돌려서 이들을 몰고 갔다. 곽회가 멀리서 보고 군사를 되돌려 다시 뒤쫓으려는데, 산 뒤에서 연기와 구름이 치솟아 오르며 한 무리 귀신 군사들이 몰려나왔다. 이들 하나하나가 손에 깃발과 검을 잡고 괴이한 모습으로 목우유마를 몰고 바람처럼 몰려가 버렸다. 곽회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221
“이것은 신이 돕는 것이 틀림없구나!”
 
222
했다. 뭇 군사들이 이를 보더니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감히 뒤쫓지 못했다. 한편, 사마의는 북쪽 언덕의 군사가 패전한 것을 듣고, 서둘러 직접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러 왔다. 바야흐로 반쯤 왔는데, 갑자기 포성이 한차례 울리더니, 양쪽에서 군사들이 험준한 지형에서 달려나오며, 함성이 땅을 뒤흔들었다. 깃발에 크게‘한나라 장수 장익, 요화’라고 쓰였다. 사마의가 이를 보고 크게 놀랐고, 위나라 군사들도 허둥지둥 제각기 어지러이 달아났다. 이야말로, 길을 가다가 귀신 장수를 만나 군량을 빼앗겼는데, 기습하는 군사와 마주쳐 목숨도 위태롭구나.
 
 
223
未知司馬懿怎地抵敵,且看下文分解。
 
224
사마의가 어떻게 막아낼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102회 사마의가 북원을 점령해 위수에 부교를 놓고, 제갈량이 목우유마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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