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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
◇ 제110회 문앙이 필마단기로 강병을 격퇴하고 강유가 배수진으로 적군을 대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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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경
나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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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第一百一十回 文鴦單騎退雄兵 薑維背水破大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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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회 문앙이 필마단기로 강병을 격퇴하고 강유가 배수진으로 적군을 대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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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魏正元二年正月,揚州都督、鎮東將軍、領淮南軍馬毋丘儉,字仲恭,河東聞喜人也。聞司馬師擅行廢立之事,心中大怒。長子毋丘甸曰:“父親官居方面,司馬師專權廢主,國家有累卵之危,安可宴然自守?”儉曰:“吾兒之言是也。”遂請刺史文欽商議。欽乃曹爽門下客,當日聞儉相請,即來拜謁。儉邀入後堂,禮畢,說話間,儉流淚不止。欽問其故,儉曰:“司馬師專權廢主,天地反覆,安得不傷心乎!”欽曰:“都督鎮守方面,若肯仗義討賊,欽願舍死相助。欽中子文淑,小字阿鴦,有萬夫不當之勇,常欲殺司馬師兄弟,與曹爽報仇,今可令爲先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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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위나라 정원 2년 정월, 양주도독 진동장군 영회남군마 관구검은 자가 중문이고 하동군 문희현 사람이었다. 그는 사마사가 마음대로 조방을 폐하고 조모를 옹립하자 마음속으로 크게 분노했다. 맏아들 관구전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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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께서 관직에 계시는데, 사마사가 권력을 전횡하여 군주를 폐하니,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어찌 편안히 자리만 지키실 수 있습니까?" 하니, 관구검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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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말이 맞구나." 하고, 곧 자사 문흠을 불러 상의했다. 문흠은 조상(曹爽)의 문하생인데 그날 관구검이 부르자 즉시 달려와서 배알했다. 관구검이 뒷채로 맞아들여 예를 마친 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관구검이 눈물을 흘려 멈추지 않으니 문흠이 그 까닭을 물었다. 관구검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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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사가 권력을 전제하고 주군을 폐하여 천지가 뒤집히니 어찌 상심하지 않겠소?" 했다. 문흠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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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독께서 이 방면을 진수(군대를 주둔하여 수비함)하고 계신데, 만약 의를 앞세워 역적을 토벌하신다면 저는 바라건대 목숨을 버리고 돕겠습니다. 저의 둘째 아들 문숙은 어릴 때 이름이 아앙으로 만 명의 사내도 당할 수 없는 용맹을 가졌는데 늘 사마 형제를 죽여서 조상(曹爽)의 복수를 하고자 합니다. 이제 그 아이를 선봉으로 삼으십시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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儉大喜,即時酹酒爲誓。二人詐稱太後有密詔,令淮南大小官兵將士,皆入壽春城,立一壇於西,宰白馬歃血爲盟,宣言司馬師大逆不道,今奉太後密詔,令盡起淮南軍馬,仗義討賊。 衆皆悅服。儉提六萬兵,屯於項城。文欽領兵二萬在外爲遊兵,往來接應。儉移檄諸郡,令各起兵相助。卻說司馬師左眼肉瘤,不時痛癢,乃命醫官割之,以藥封閉,連日在府養病;忽聞淮南告急,乃請太尉王肅商議。肅曰:“昔關雲長威震華夏,孫權令呂蒙襲取荊州,撫恤將士家屬,因此關公軍勢瓦解,今淮南將士家屬,皆在中原,可急撫恤,更以兵斷其歸路:必有土崩之勢矣。”師曰:“公言極善。但吾新割目瘤,不能自往。若使他人,心又不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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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구검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술잔을 나누며 맹세했다. 두 사람은 태후의 비밀 조서가 있다고 사칭하고, 회남의 대소 관병 장졸들에게 명하여 모두 수춘성으로 들어오게 했다. 서쪽에 단을 세우고 백마를 죽여서 입술에 피를 발라 맹세했다. 선언하기를, 사마사가 대역부도(반역으로 도리에 크게 어그러짐)하여 이제 태후의 밀조를 받들어, 회남의 군마를 총동원하여 의를 앞세워 역적을 토멸한다고 하니, 모든 사람이 기쁘게 따랐다. 관구검은 군사 6만을 거느리고 항성에 주둔하고, 문흠은 군사 2만을 거느리고 성 밖에서 유격대가 되어 왕래하며 지원하기로 했다. 관구검이 여러 고을에 격문을 보내어 곳곳에서 군사를 일으켜 돕도록 했다. 한편, 사마사는 왼쪽 눈에 혹이 생겨서, 때 없이 아프고 가려웠다. 이에 의사를 시켜 혹을 잘라내고 약을 써서 봉한 뒤 날마다 부중에서 요양하고 있었다. 갑자기 회남에서 위급을 고하자 태위 왕숙을 불러 상의했다. 왕숙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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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관운장의 위세가 중원을 뒤흔들 때, 손권이 여몽을 시켜 형주를 기습하여 빼앗고 장졸들의 가족을 구슬려서 이 때문에 관공의 군세가 와해됐습니다. 지금 회남 장졸들의 가족이 모두 중원에 있으니 서둘러 이들을 구슬리고 아울러 군사를 동원하여 그 귀로를 차단하면 틀림없이 흙이 무너지는 형세가 될 것입니다." 하니, 사마사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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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말씀이 지당하오. 다만 내가 눈의 혹을 자른 지 얼마 안 되어 직접 갈 수가 없구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보내자니 마음이 평온하지 않겠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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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中書侍郎鍾會在側,進言曰:“淮楚兵強,其鋒甚銳;若遣人領兵去退,多是不利。倘有疏虞,則大事廢矣。”師蹶然起曰:“非吾自在,不可破賊!”遂留弟司馬昭守洛陽,總攝朝政。師乘軟輿,帶病東行。令鎮東將軍諸葛誕,總督豫州諸軍,從安風津取壽春;又令征東將軍胡遵,領青州諸軍,出譙、宋之地,絕其歸路;又遣荊州刺史、監軍王基,領前部兵,先取鎮南之地。師領大軍屯於襄陽,聚文武於帳下商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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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중서시랑 종회가 곁에 있다가 진언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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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초(淮水 부근)의 군사가 강하니 그 창끝이 몹시 날카롭습니다. 만약 다른 이를 보내어 군사를 지휘하게 하면 여러 가지로 불리합니다. 만약 그가 실수를 한다면 곧 대사를 그르칠 것입니다." 하니, 사마사가 벌떡 일어나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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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역적들을 깨뜨릴 수 없겠구나!" 하고, 곧 아우 사마소를 남겨 낙양을 지키고 조정을 다스리게 했다. 사마사가 가마를 타고 병든 몸을 이끌고 동쪽으로 갔다. 진동장군 제갈탄에게 명하여 예주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안풍진에서부터 수춘을 공격하게 했다. 또한 정동장군 호준에게 명하여 청주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초현과 송 방면으로 출격하여 퇴로를 끊게 했다. 또한 예주자사 감군 왕기에게 선두 부대를 거느리고 진남 지역을 선취하라고 했다. 사마사가 대군을 거느리고 양양에 주둔하여 문무 관료를 군막에 불러들여 상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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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祿勳鄭袤曰:“毋丘儉好謀而無斷,文欽有勇而無智。今大軍出其不意,江、淮之卒銳氣正盛,不可輕敵;只宜深溝高壘,以挫其銳。此亞夫之長策也。”監軍王基曰:“不可。淮南之反,非軍民思亂也;皆因毋丘儉勢力所逼,不得已而從之。若大軍一臨,必然瓦解。”師曰:“此言甚妙。”遂進兵於濦水之上,中軍屯於濦橋。基曰:“南頓極好屯兵,可提兵星夜取之。若遲則毋丘儉必先至矣。”師遂令王基前部兵來南頓城下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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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록훈 정무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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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구검은 모략을 좋아하나 결단을 못하고, 문흠은 용맹하나 지혜가 없습니다. 이제 군사를 크게 일으켜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왔습니다. 장강과 회수 지역 군사의 예기(날카로운 기세)가 한창 강성하니 함부로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그 예기를 꺾는 것이 옛날 주아부(한나라의 장군)의 좋은 계책입니다." 하니, 감군(군사 감독관) 왕기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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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습니다. 회남의 반란은 군사와 백성이 반란을 바란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관구검이 힘으로 핍박한 때문에 부득이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대군이 가면 틀림없이 와해할 것입니다." 했다. 사마사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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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이 절묘하오." 하고, 마침내 은수의 상류로 진군하여 중군이 은수의 다리 옆에 주둔했다. 왕기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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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돈이 군사를 주둔하기에 아주 좋으니 군사를 거느리고 한밤에라도 취해야 합니다. 지체하면 관구검이 반드시 먼저 이를 것입니다." 하니, 사마사가 곧 왕기에게 명하여 선두 부대를 이끌고 남돈으로 가서 진을 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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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毋丘儉在項城,聞知司馬師自來,乃聚 衆商議。先鋒葛雍曰:“南頓之地,依山傍水,極好屯兵;若魏兵先占,難以驅遣,可速取之。”儉然其言,起兵投南頓來。正行之間,前面流星馬報說,南頓已有人馬下寨。儉不信,自到軍前視之,果然旌旗遍野,營寨齊整。儉回到軍中,無計可施。忽哨馬飛報:“東吳孫峻提兵渡江襲壽春來了。”儉大驚曰:“壽春若失,吾歸何處!”是夜退兵於項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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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관구검은 항성에 있다가 사마사가 직접 오는 것을 듣고, 사람들을 모아 상의했다. 선봉 갈옹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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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돈의 지세는 산을 의지하고 강을 끼고 있어 둔병하기에 극히 좋습니다. 위나라 군사가 선점하면 그들을 물리치기 어려우니 속히 점령해야 합니다." 했다. 관구검이 그 말을 옳게 여겨, 군사를 일으켜 남돈으로 갔다. 가는 사이에 앞쪽에서 통신 기병이 달려와서 알리기를, 남돈은 이미 인마가 진을 쳤다고 했다. 관구검이 믿지 못하고 직접 군사 앞으로 가서 살펴보니 과연 깃발들이 들판을 가득 메우고 영채가 정연했다. 관구검이 군중으로 되돌아와 생각해보니 쓸만한 계책이 없었다. 갑자기 정찰 기병이 급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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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의 손준이 군사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 수춘을 습격하러 옵니다." 했다. 관구검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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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춘을 잃으면 우리가 어디로 돌아가겠느냐!" 하고, 이날 밤에 군사를 항성으로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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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師見毋丘儉軍退,聚多官商議。尚書傅嘏曰:“今儉兵退者,憂吳人襲壽春也。必回項城分兵拒守。將軍可令一軍取樂嘉城,一軍取項城,一軍取壽春,則淮南之卒必退矣。兗州刺史鄧艾,足智多謀;若領兵徑取樂嘉,更以重兵應之,破賊不難也。”師從之,急遣使持檄文,教鄧艾起兗州之兵破樂嘉城。師隨後引兵到彼會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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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사는 관구검의 군사가 물러간 것을 보고, 관리들을 모아서 상의했다. 상서 부하(傅嘏)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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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관구검의 군사가 퇴각한 것은 오나라 사람들이 수춘을 습격할까 두려워서입니다. 틀림없이 항성으로 돌아가 군사를 나눠서 막을 것입니다. 장군께서 영을 내려서 1군은 낙가성을 취하고, 다른 1군은 항성을 취하며, 또 다른 1군은 수춘을 취하게 하시면, 회남의 군사는 반드시 퇴각할 것입니다. 연주자사 등애는 지모가 뛰어나니 군사를 거느리고 낙가를 취하러 달려가라 하고, 아울러 대군으로 지원하면 적병을 격파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하니, 사마사가 이를 따라, 급히 사자를 보내며 격문을 지니고 가서 등애로 하여금 연주의 군사를 일으켜 낙가성을 깨뜨리게 하고, 사마사가 뒤따라 군사를 이끌고 그곳으로 가서 합류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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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毋丘儉在項城,不時差人去樂嘉城哨探,只恐有兵來。請文欽到營共議,欽曰:“都督勿憂。我與拙子文鴦,只消五千兵,取保樂嘉城。”儉大喜。欽父子引五千兵投樂嘉來。前軍報說:“樂嘉城西,皆是魏兵,約有萬餘。遙望中軍,白旄黃鉞,皂蓋朱幡,簇擁虎帳,內豎一面錦繡帥字旗,必是司馬師也,安立營寨,尚未完備。”時文鴦懸鞭立於父側,聞知此語,乃告父曰:“趁彼營寨未成,可分兵兩路,左右擊之,可全勝也。”欽曰:“何時可去?”鴦曰:“今夜黃昏,父引二千五百兵,從城南殺來;兒引二千五百兵,從城北殺來:三更時分,要在魏寨會合。”欽從之,當晚分兵兩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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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관구검은 항성에 머물면서 수시로 사람을 낙가성으로 보내어 정탐하게 했다. 적병이 올까 두려워서 문흠을 군영으로 불러 함께 의논하니, 문흠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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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독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와 못난 아들 문앙이 단지 군사 5천 명만 있으면 낙가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했다. 관구검이 크게 기뻐했다. 문흠 부자가 군사 5천을 이끌고 낙가성으로 갔다. 선두 부대가 보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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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가성 서쪽은 모두 위나라 군사인데 약 1만 명 남짓입니다. 멀리 중군을 바라보니 흰 깃털 깃발과 황금색 도끼, 수레의 검은 지붕과 붉은 병풍이 보이고, 장군의 군막을 군사들이 에워싸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 안에 수(帥)자를 수놓은 비단 깃발이 세워져 있으니, 이것은 틀림없이 사마사입니다. 영채를 세우는 것을 아직 완비하지 못했습니다." 했다. 이때 문앙이 부친의 곁에서 채찍을 들고 있다가, 이 말을 듣고 부친에게 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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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영채를 아직 세우지 못한 틈을 타서, 군사를 둘로 나누어 좌우에서 치면 전승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하니, 문흠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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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갈 수 있겠느냐?" 했다. 문앙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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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해질녘에 아버님께서 군사 2천5백 명을 이끌고 성의 남쪽으로 달려가십시오. 제가 또한 군사 2천5백 명을 이끌고 성의 북쪽으로 달려가겠습니다. 3경(자정쯤) 무렵에 위나라 영채에서 만나야 합니다." 했다. 문흠이 이를 따라 그날 저녁 군사를 둘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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且說,文鴦年方十八歲,身長八尺,全裝慣甲,腰懸鋼鞭,綽槍上馬,遙望魏寨而進。是夜,司馬師兵到樂嘉,立下營寨,等鄧艾未至。師爲眼下新割肉瘤,瘡口疼痛,臥於帳中,令數百甲士環立護衛。三更時分,忽然寨內喊聲大震,人馬大亂。師急問之,人報曰:“一軍從寨北斬圍直入,爲首一將,勇不可當!”師大驚,心如火烈,眼珠從肉瘤瘡口內迸出,血流遍地,疼痛難當;又恐有亂軍心,只咬被頭而忍,被皆咬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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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앙의 나이 이제 18세이고 신장이 8척인데, 전신에 갑옷을 두르고 허리에 구리채찍을 차고 창을 쥐고 말을 타더니, 멀리 위나라 영채를 향하여 나아갔다. 이날 밤 사마사의 병력이 낙가성에 당도하여 영채를 세우고, 아직 등애가 오지 않아 이를 기다렸다. 사마사가 눈 아래의 혹을 떼어낸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잘라낸 자리가 아픈지라 군막 안에 누워서, 수백 명의 갑옷 입은 병사에게 명하여 빙 둘러서서 호위하게 했다. 3경 무렵에 홀연히 영채 안에서 함성이 크게 진동하고 인마들이 아주 어지러워져서 사마사가 급히 물으니 누군가 보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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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군사가 영채 북쪽에서 방어를 뚫고 돌입하였는데 앞장선 장수의 용맹을 당할 수 없습니다." 했다. 사마사가 크게 놀라서 마음이 마치 불타는 듯했다. 눈알이 혹을 잘라낸 자리로 튀어나오는 바람에 피가 흘러 바닥에 가득하고 아픔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군대의 사기를 흐트릴까 두려워서 이불을 깨물고 참으니, 이불 조각이 씹혀서 문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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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來文鴦軍馬先到,一擁而進,在寨中左沖右突;所到之處,人不敢當,有相拒者,槍搠鞭打,無不被殺。鴦只望父到,以爲外應,並不見來。數番殺到中軍,皆被弓弩射回。鴦直殺到天明,只聽得北邊鼓角喧天。鴦回顧從者曰:“父親不在南面爲應,卻從北至,何也?”鴦縱馬看時,只見一軍行如猛風,爲首一將,乃鄧艾也,躍馬橫刀,大呼曰:“反賊休走!”鴦大怒,挺槍迎之。戰有五十合,不分勝敗。正鬥間,魏兵大進,前後夾攻,鴦部下兵乃各自逃散,只文鴦單人獨馬,沖開魏兵,望南而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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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문앙의 군마가 먼저 도착하여 일제히 진격했다. 영채 안에서 좌충우돌하니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감히 당하지 못했다. 혹시 누군가 저항하더라도 문앙이 창으로 찌르고 구리채찍으로 내리치니 죽지 않는 이가 없었다. 문앙이 부친의 도착만 기다리며 부친의 지원을 기대하지만 오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중군으로 돌격하지만 활과 쇠뇌의 사격을 받아 되돌아오고 말았다. 문앙이 날 밝아올 때까지 싸우는데 북쪽에서 북소리가 하늘을 시끄럽게 울렸다. 문앙이 종자(따르는 사람)를 뒤돌아보면서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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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께서 남쪽에서 돕지 않고 북쪽에서 오시다니 무슨 까닭이냐?" 했다. 문앙이 말을 달려가서 바라보니 한 무리 군사가 질풍처럼 달려오는데, 선두의 대장은 바로 등애였다. 그가 말을 몰아 칼을 비껴들고 크게 외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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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을 일으킨 역적은 달아나지 말라!" 했다. 문앙이 크게 노하여 창을 꼬나 쥐고 맞이했다. 5십 합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싸우는 사이에 위나라 군사가 크게 진격하여 앞뒤로 협공했다. 문앙의 부하들이 각자 달아나 흩어지고 문앙만 필마단기로 위나라 군사들을 뚫고 남쪽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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背後數百員魏將,抖擻精神,驟馬追來;將至樂嘉橋邊,看看趕上。鴦忽然勒回馬大喝一聲,直沖入魏將陣中來;鋼鞭起處,紛紛落馬,各各倒退。鴦複緩緩而行。魏將聚在一處,驚訝曰:“此人尚敢退我等之 衆耶!可並力追之!”於是魏將百員,複來追趕。鴦勃然大怒曰:“鼠輩何不惜命也!”提鞭撥馬,殺入魏將叢中,用鞭打死數人,複回馬緩轡而行。魏將連追四五番,皆被文鴦一人殺退。後人有詩曰:“長阪當年獨拒曹,子龍從此顯英豪。樂嘉城內爭鋒處,又見文鴦膽氣高。”原來文欽被山路崎嶇,迷入穀中,行了半夜,比及尋路而出,天色已曉,文鴦人馬不知所向,只見魏兵大勝。欽不戰而退。魏兵乘勢追殺,欽引兵望壽春而走。
 
46
그 뒤로 몇백 명의 위나라 장수가 정신을 차리고 말을 몰아 뒤쫓았다. 낙가교 주변에 다다를 즈음 거의 따라잡았는데, 문앙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고 한소리 크게 외치더니 위나라 장수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구리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어지러이 낙마하여 뿔뿔이 달아나니 문앙이 다시 천천히 갔다. 위나라 장수들이 한데 모여 놀라서 말하기를,
 
47
“이 자가 아직도 감히 우리를 물리치려 하다니! 힘을 합쳐서 추격합시다!" 했다. 이에 위나라 장수 1백 명이 다시 뒤쫓으러 왔다. 문앙이 버럭 크게 화를 내어 말하기를,
 
48
“쥐새끼들이 목숨 아까운 줄을 모르느냐!" 하고, 구리채찍을 쥐고 말을 몰아 위나라 장수들 속으로 뛰어들어 구리채찍으로 몇 사람을 타살하고 다시 말머리를 돌려 말고삐를 느슨히 잡고 천천히 갔다. 위나라 장수들이 잇달아 너댓 번을 추격하지만, 그때마다 문앙 한 사람이 격퇴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49
“그 옛날 장판파에서 홀로 조조 군에 맞서니, 이로써 조자룡이 영웅호걸로 이름이 났네. 낙가성 안에서 창칼 부딪히는 곳마다, 또한 문앙의 담력이 높은 것을 보네.”
 
50
했다. 알고 보니, 문흠은 산길이 가파르고 험해서 골짜기 안으로 잘못 들어가 한밤중까지 헤매다가 겨우 길을 찾아서 나왔지만, 하늘이 이미 밝았다. 문앙의 인마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었고, 위나라 군사가 크게 이긴 것으로 보여서 문흠은 싸우지 않고 물러났다. 위나라 군사가 그 기세를 타고 추격하니, 문흠이 군사를 이끌고 수춘으로 달아났다.
 
 
51
卻說,魏殿中校尉尹大目,乃曹爽心腹之人,因爽被司馬懿謀殺,故事司馬師,常有殺師報爽之心;又素與文欽交厚。今見師眼瘤突出,不能動止,乃入帳告曰:“文欽本無反心,今被毋丘儉逼迫,以致如此。某去說之,必然來降。”師從之。大目頂盔慣甲,乘馬來趕文欽;看看趕上,乃高聲大叫曰:“文刺史見尹大目麼?”欽回頭視之,大目除盔放於鞍鞽之前,以鞭指曰:“文刺史何不忍耐數日也?”此是大目知師將亡,故來留欽。欽不解其意,厲聲大罵,便欲開弓射之。大目大哭而回。欽收聚人馬奔壽春時,已被諸葛誕引兵取了;欲複回項城時,胡遵、王基、鄧艾三路兵皆到。欽見勢危,遂投東吳孫峻去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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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위나라 전중교위 윤대목은 조상(曹爽)의 심복이었다. 조상이 사마의의 음모로 살해되어 이제는 사마사를 섬기고 있지만, 늘 사마사를 죽여 조상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또한 평소 문흠과 교분이 두터운데 이제 사마사가 눈의 혹이 돌출하여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자 군막으로 들어가 고하기를,
 
53
“문흠은 본래 반역하려는 마음이 없었는데 이제 관구검에게 핍박을 받아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가서 설득하면 틀림없이 투항할 것입니다." 했다. 사마사가 이를 따르니, 윤대목이 머리에 투구를 쓰고 몸에 갑옷을 걸쳐 입고 말을 타고 문흠을 뒤쫓아 갔다. 점점 가까워지자 소리 높여 크게 외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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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자사! 여기 윤대목이 왔소이다!" 하니, 문흠이 고개 돌려 바라보니, 윤대목이 투구를 말안장 앞에 내려놓고 채찍으로 가리키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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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자사는 어찌 며칠을 참지 못하는 것이오?" 했다. 이것은 윤대목이 사마사가 곧 죽을 것을 알고 문흠을 붙잡아 두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흠이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성난 목소리로 크게 욕하고 곧 활을 잡아당겨 쏘려고 했다. 윤대목이 크게 소리내어 울며 돌아갔다. 문흠이 인마들을 거두어 수춘으로 달아나지만, 수춘은 이미 제갈탄이 군사를 이끌고 점령해버렸다. 다시 항성으로 돌아가려는데 호준과 왕기, 등애가 이끄는 세 갈래 군사가 모두 이르렀다. 문흠이 형세가 위급한 것을 보고 동오의 손준에게 귀순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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卻說,毋丘儉在項城內,聽知壽春已失,文欽勢敗,城外三路兵到,儉遂盡撤城中之兵出戰。正與鄧艾相遇,儉令葛雍出馬,與艾交鋒,不一合,被艾一刀斬之,引兵殺過陣來。毋丘儉死戰相拒。江淮兵大亂。胡遵、王基引兵四面夾攻。毋丘儉敵不住,引十餘騎奪路而走。前至慎縣城下,縣令宋白開門接入,設席待之。儉大醉,被宋白令人殺了,將頭獻與魏兵。於是淮南平定。司馬師臥病不起,喚諸葛誕入帳,賜以印綬,加爲鎮東大將軍,都督揚州諸路軍馬;一面班師回許昌。
 
57
한편, 관구검이 항성에 있는데, 수춘이 이미 함락되고 문흠의 군세가 무너진데다, 세 갈래 군사가 성 밖에 온 것을 알고, 성안의 군사를 총동원하여 싸우러 나왔다. 등애와 마주치자 관구검이 갈옹을 출마시켰다. 등애와 창칼을 부딪친 지 1합을 넘기지 못하고 등애의 한칼에 갈옹이 베어졌다. 등애가 군사를 이끌고 돌진하니 관구검이 결사 항전하지만 강회(장강과 회수 지역) 군사들이 크게 흐트러졌다. 호준과 왕기가 군사를 이끌고 사방으로 협공했다. 관구검이 대적하지 못하고 십여 기를 이끌고 길을 뚫어 달아났다. 신현성에 이르니 현령 송백이 성문을 열고 맞아들여 연회를 베풀어 대접했다. 관구검이 크게 취하자 송백이 사람들을 시켜 살해하고 그 머리를 위나라 군에 바쳤다. 이에 회남이 평정되었다. 사마사가 병석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여, 제갈탄을 군막으로 불러들여 인수를 하사하며 정동대장군으로 제수하여 양주의 여러 방면 군마를 지휘하게 했다. 그리고 사마사가 군사를 거두어 허창으로 돌아갔다.
 
 
58
師目痛不止,每夜只見李豐、張緝、夏侯玄三人立於榻前。師心神恍惚,自料難保,遂令人往洛陽取司馬昭到。昭哭拜於床下。師遺言曰:“吾今權重,雖欲卸肩,不可得也。汝繼我爲之,大事切不可輕托他人,自取滅族之禍。”言訖,以印綬付之,淚流滿面。昭急欲問時,師大叫一聲,眼睛迸出而死。時正元二年二月也。於是司馬昭發喪,申奏魏主曹髦。髦遣使持詔到許昌,即命暫留司馬昭屯軍許昌,以防東吳。昭心中猶豫未決。鍾會曰:“大將軍新亡,人心未定,將軍若留守於此。萬一朝廷有變,悔之何及?”昭從之,即起兵還屯洛水之南。
 
59
사마사가 눈의 통증이 그치지 않고 매일 밤 이풍, 장집, 하후현 세 사람이 침대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사마사가 심신이 흐릿하니, 스스로 더 버티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곧 낙양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마소를 불러오게 했다. 사마소가 곡하며 침상 아래에서 절했다. 사마사가 유언을 남겨 말하기를,
 
60
“내가 지금 권한이 막중하여 비록 어깨에서 벗으려 해도 그럴 수 없구나. 네가 나를 계승하고 절대 대사를 타인에게 맡겨 스스로 멸족의 화를 부르는 일이 없도록 하라." 했다. 말을 마치고 인수를 주면서 얼굴 가득히 눈물을 흘렸다. 사마소가 급히 물어보려는데, 사마사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눈동자가 튀어나오며 죽었다. 이때가 정원 2년 2월이었다. 이에 사마소가 발상하고 위나라 군주 조모에게 이를 상주했다. 조모가 사자에게 조서를 주어 허창으로 보내어 즉시 사마소에게 허창에 주둔하여 동오를 막으라고 명했다. 사마소가 마음속으로 머뭇거리며 결단하지 못하니 종회가 말하기를,
 
61
“대장군께서 막 돌아가셨으니 인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장군께서 여기에 머물러 지켜야지 만일 조정에 변고가 생긴다면 후회한들 어쩌겠습니까?" 했다. 사마소가 이를 따라 즉시 군사를 일으켜 낙수의 남쪽으로 돌아가서 주둔했다.
 
 
62
髦聞之大驚。太尉王肅奏曰:“昭既繼其兄掌大權,陛下可封爵以安之。”髦遂命王肅持詔,封司馬昭爲大將軍、錄尚書事。昭入朝謝恩畢。自此,中外大小事情,皆歸於昭。卻說,西蜀細作哨知此事,報入成都。薑維奏後主曰:“司馬師新亡,司馬昭初握重權,必不敢擅離洛陽。臣請乘間伐魏,以複中原。”後主從之,遂命薑維興師伐魏。維到漢中,整頓人馬。征西大將軍張翼曰:“蜀地淺狹,錢糧鮮薄,不宜遠征;不如據險守分,恤軍愛民:此乃保國之計也。”
 
63
조모가 이를 듣고 크게 놀랐다. 태위 왕숙이 아뢰기를,
 
64
“사마소가 이미 형을 이어서 대권을 장악했으니 폐하께서 그에게 작위를 봉하여 안심시키소서." 하니, 조모가 곧 왕숙에게 조서를 주어, 사마소를 대장군 녹상서사로 봉했다. 사마소가 조정으로 들어와 은혜에 감사했다. 이로부터 안팎의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사마소에게 넘어갔다. 한편, 서촉의 세작이 이 일을 탐지하여 성도로 들어가서 보고했다. 강유가 후주에게 아뢰기를,
 
65
“사마사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고, 사마소가 처음으로 대권을 잡았으니 반드시 감히 낙양을 함부로 떠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청컨대 이 틈을 노려서 위나라를 정벌하면 중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후주가 이를 따라 곧 강유에게 명하여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정벌하게 했다. 강유가 한중으로 가서 인마를 정돈하니, 정서대장군 장익이 말하기를,
 
66
“촉나라 땅은 협소하고 재물과 식량은 부족하니 원정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험한 요충지에 의지하여 분수를 지키며 군사들을 돌보고 백성을 아끼는 것만 못하오. 이것이 국가를 보전하는 계책이오." 했다.
 
 
67
維曰:“不然。昔丞相未出茅廬,已定三分天下,然且六出祁山以圖中原;不幸半途而喪,以致功業未成。今吾既受丞相遺命,當盡忠報國以繼其志,雖死而無恨也。今魏有隙可乘,不就此時伐之,更待何時?”夏侯霸曰:“將軍之言是也。可將輕騎先出枹罕。若得洮西南安,則諸郡可定。”張翼曰:“向者不克而還,皆因軍出甚遲也。兵法雲:攻其無備,出其不意。今若火速進兵,使魏人不能提防,必然全勝矣。”
 
68
강유가 말하기를,
 
69
“그렇지 않소. 지난날 승상께서 아직 초가집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도 이미 천하가 셋으로 나뉘는 것은 정해진 일이었소. 그래서 기산으로 여섯 번 나가서 중원을 도모해야 했소. 불행히 도중에 돌아가셔서 공로를 이루지 못하게 됐소. 이제 내가 승상의 유명을 승계했으니 마땅히 충성을 다하여 국가에 보답하여 그 뜻을 이을 것이니 비록 죽어도 한이 없소. 지금 위나라가 틈을 보이니 이틈을 타야지, 이때에 정벌하지 않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소?" 했다. 하후패가 말하기를,
 
70
“장군의 말씀이 맞소. 경기병을 이끌고 포한으로 출격해야 하오. 도서와 남안을 점령하면 나머지 여러 군도 평정할 수 있소." 하니, 장익이 말하기를,
 
71
“지난번에 이기지 못하고 돌아온 것은 모두 출병이 너무 지체되었기 때문이었소. 병법에 이르기를, 대비하지 못한 것으로 공격하고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나가라 했소. 이제 빨리 진군하여 위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방비하지 못하게 만들면 틀림없이 전승을 거둘 것이오." 했다.
 
 
72
於是薑維引兵五萬,望枹罕進發。兵至洮水,守邊軍士報知雍州刺史王經、征西將軍陳泰。王經先起馬步兵七萬來迎。薑維分付張翼如此如此,又分付夏侯霸如此如此:二人領計去了;維乃自引大軍背洮水列陣。王經引數員牙將出而問曰:“魏與吳、蜀,已成鼎足之勢;汝累次入寇,何也?”維曰:“司馬師無故廢主,鄰邦理宜問罪,何況仇敵之國乎?”經回顧張明、花永、劉達、朱芳四將曰:“蜀兵背水爲陣。敗則皆沒於水矣。薑維驍勇,汝四將可戰之。彼若退動,便可追擊。”四將分左右而出,來戰薑維。維略戰數合,撥回馬望本陣中便走。王經大驅士馬,一齊趕來。維引兵望著洮水而走;將次近水,大呼將士曰:“事急矣!諸將何不努力!”
 
73
이에 강유가 군사 5만을 이끌고 포한으로 진군했다. 촉나라 군사가 도수에 이르니, 변방을 지키는 위나라 군사가 옹주자사 왕경과 정서장군 진태에게 보고했다. 왕경이 먼저 기병과 보병 7만을 이끌고 맞이했다. 강유가 장익에게 이러저러하게 분부하고 하후패에게도 이러저러하게 분부했다. 두 사람이 계책을 받고 떠나자, 강유가 대군을 이끌고 도수를 등지고 포진했다. 왕경이 아장 몇 사람을 이끌고 나와서 강유에게 묻기를,
 
74
“위나라와 오나라, 촉나라는 이미 솥발 같은 형세를 이루었거늘 너는 여러 차례 침범하니 무슨 까닭이냐?" 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75
“사마사가 아무 까닭 없이 임금을 폐하니 이웃 나라가 그 죄를 묻는 것이 도리이다. 게다가 너희 나라는 우리의 원수이자 적이지 않느냐?" 했다. 왕경이 장명, 화영, 유달, 주방 네 장수를 뒤돌아보며 말하기를,
 
76
“촉나라 군사가 배수진을 쳐서 패전하면 모두 물에 빠지게 될 것이다. 강유가 날래고 용맹하니 너희 네 장수가 그와 싸우라. 그가 퇴각하면 바로 추격하라." 했다. 네 장수가 좌우로 나누어 출진하여 강유와 싸우러 왔다. 강유가 몇 합 싸우더니 말머리를 돌려 본진 쪽으로 달아났다. 왕경이 군사를 크게 몰아 일제히 뒤쫓았다. 강유가 군사를 이끌고 도수 쪽으로 달아났다. 장차 강물에 다다를 즈음에 장졸들에게 크게 외치기를,
 
77
“사세가 위급하구나! 여러 장수들은 어찌 노력하지 않는가!"
 
78
했다.
 
 
79
衆將一齊奮力殺回,魏兵大敗。張翼、夏侯霸抄在魏兵之後,分兩路殺來,把魏兵困在垓心。維奮武揚威,殺入魏軍之中,左沖右突,魏兵大亂,自相踐踏,死者大半,逼入洮水者無數,斬首萬餘,壘屍數裏。王經引敗兵百騎,奮力殺出,徑往狄道城而走;奔入城中,閉門保守。薑維大獲全功,犒軍已畢,便欲進兵攻打狄道城。張翼諫曰:“將軍功績已成,威聲大震,可以止矣。今若前進,倘不如意,正如‘畫蛇添足’也。”維曰:“不然。向者兵敗,尚欲進取,縱橫中原;今日洮水一戰,魏人膽裂,吾料狄道唾手可得。汝勿自墮其志也。”張翼再三勸諫,維不從,遂勒兵來取狄道城。
 
80
여러 장수가 일제히 힘을 떨쳐 거세게 반격하니 위나라 군이 대패했다. 장익과 하후패가 위나라 군사의 배후를 기습하여 두 갈래로 나누어 달려들어 위나라 군사를 포위했다. 강유가 무위를 떨치며 위나라 군중으로 돌입하여 좌충우돌하니 위나라 군사가 크게 어지러워져서 서로 짓밟혀 죽은 자가 태반이고, 쫓기다가 도수에 익사한 자가 무수했다. 위나라 군사의 목을 벤 것이 1만을 넘어 시체가 몇 리에 걸쳐 쌓였다. 왕경이 패잔병 1백 기를 이끌고 사력을 다하여 탈출하여 곧장 적도성으로 달아났다. 성안으로 달려 들어가서 성문을 닫고 지켰다. 강유가 완전한 승리를 크게 거두고 군사들을 호궤한 뒤 곧 진격하여 적도성을 공격하려고 하자 장익이 간하기를,
 
81
“장군이 공적을 이미 세웠고 위엄과 명성을 크게 떨쳤으니 멈춰야 하오. 지금 만약 전진했다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마치 뱀을 그리고 거기에 다리를 덧붙이는 셈이오." 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82
“그렇지 않소. 지난날 패전했을 때도 오히려 계속 진격하여 중원을 종횡으로 누비고 싶었소. 오늘 도수에서 일전을 벌여 위나라 사람들의 간담이 찢어졌을 것이니 내가 보기에 적도성은 손에 침을 뱉아 얻을 수 있소. 그대는 그 뜻을 스스로 무너뜨리지 마시오." 했다. 장익이 거듭 간언해도 강유가 듣지 않고 군사를 지휘하여 적도성을 치러 갔다.
 
 
83
卻說,雍州征西將軍陳泰,正欲起兵與王經報兵敗之仇,忽兗州刺史鄧艾引兵到。泰接著,禮畢,艾曰:“今奉大將軍之命,特來助將軍破敵。”泰問計於鄧艾,艾曰:“洮水得勝,若招羌人之 衆,東爭關隴,傳檄四郡:此吾兵之大患也。今彼不思如此,卻圖狄道城;其城垣堅固,急切難攻,空勞兵費力耳。吾今陳兵於項嶺,然後進兵擊之,蜀兵必敗矣。”陳泰曰:“真妙論也!”遂先撥二十隊兵,每隊五十人,盡帶旌旗、鼓角、烽火之類,日伏夜行,去狄道城東南高山深穀之中埋伏;只待兵來,一齊鳴鼓吹角爲應,夜則舉火放炮以驚之。調度已畢,專候蜀兵到來。於是陳泰、鄧艾,各引二萬兵相繼而進。
 
84
한편, 옹주의 정서장군 진태가 군사를 일으켜 왕경과 합세하여 이번 패전을 복수하려는데, 갑자기 연주자사 등애가 군사를 이끌고 당도했다. 진태가 등애를 영접하여 서로 인사를 마치자, 등애가 말하기를,
 
85
“이제 대장군의 명을 받들어 특별히 장군을 도와서 적병을 격파하러 왔소." 하니, 진태가 등애에게 계책을 묻자 등애가 말하기를,
 
86
“강유가 도수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만약 강인들의 대군을 불러서 동쪽으로 관농(지금의 관중과 감숙성의 동쪽 지역)을 쟁탈하고 4군에 격문을 보낸다면 우리 군사의 커다란 우환이오. 이제 그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적도성을 도모한다면 그 성벽이 견고하여 다급히 몰아쳐도 쉽게 공략하기 힘들어 헛되이 군사들을 지치게 하고 힘을 소모할 뿐이오. 내가 이제 항령에 포진하고, 그 뒤에 진군하여 공격하면 촉나라 군이 틀림없이 패할 것이오." 했다. 진태가 말하기를,
 
87
“절묘한 말씀이오!" 하고, 곧 2십 개 부대의 군사를 먼저 뽑아 각 부대마다 5십 인을 두어 모두 각종 깃발과 북과 피리, 봉화 따위를 가지고 낮에는 숨고 밤에는 행군하여, 적도성 동남쪽의 높은 산 깊은 골짜기에 매복하고, 적병이 오기를 기다려 일제히 북을 울리고 피리를 불어 응하고 밤에는 횃불을 들고 포를 쏴서 적군을 놀라게 하며, 준비를 마친 후 촉나라 군사의 도착만 기다리기로 했다. 이에 진태와 등애가 각각 군사 2만을 이끌고 잇달아 진군했다.
 
 
88
卻說,薑維圍住狄道城,令兵八面攻之,連攻數日不下,心中鬱悶,無計可施。是日黃昏時分,忽三五次流星馬報說:“有兩路兵來,旗上明書大字:一路是征西將軍陳泰,一路是兗州刺史鄧艾。”維大驚,遂請夏侯霸商議。霸曰:“吾向嘗爲將軍言:鄧艾自幼深明兵法,善曉地理。今領兵到,頗爲勁敵。”維曰:“彼軍遠來,我休容他住腳,便可擊之。”乃留張翼攻城,命夏侯霸引兵迎陳泰。維自引兵來迎鄧艾。
 
89
한편, 강유는 적도성을 포위하고 군사들을 시켜 8면으로 치게 하지만 잇달아 며칠을 공격해도 함락시키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우울하고 괴롭지만 쓸만한 계책이 없었다. 이날 황혼 무렵에 갑자기 서너 차례 전령 기마가 달려와서 급보하기를,
 
90
“2개 방면으로 군사들이 몰려오는데, 깃발에 큰 글씨로 뚜렷하게 쓰기를, 한 방면은 정서장균 진태이고, 다른 방면은 연주자사 등애입니다." 했다. 강유가 크게 놀라서, 곧 하후패를 청하여 상의하니, 하후패가 말하기를,
 
91
“제가 예전에 장군에게 말씀드렸듯이 등애는 젊어서부터 병법에 매우 밝고 지리를 잘 이용하오. 지금 그가 군사를 거느리고 오니 자못 강한 적수가 될 것이오." 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92
“적군이 멀리서 오니, 아군이 적군에게 영채를 세울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쳐야겠소." 했다. 그리고 장익을 남겨서 계속 적도성을 공격하게 하고, 하후패를 시켜 군사를 이끌고 진태를 맞아 공격하게 했다. 강유도 직접 군사를 이끌고 등애를 맞이하러 갔다.
 
 
93
行不到五裏,忽然東南一聲炮響,鼓角震地,火光沖天。維縱馬看時,只見周圍皆是魏兵旗號。維大驚曰:“中鄧艾之計矣!”遂傳令教夏侯霸、張翼各棄狄道而退。於是蜀兵皆退於漢中。維自斷後,只聽得背後鼓聲不絕,維退入劍閣之時,方知火鼓二十餘處,皆虛設也。維收兵退屯於鍾提。且說,後主因薑維有洮西之功,降詔封維爲大將軍。維受了職,上表謝恩畢,再議出師伐魏之策。正是:成功不必添蛇足,討賊猶思奮虎威。
 
94
5리를 못 가서 갑자기 동남쪽에서 한바탕 포성이 울리고 북과 피리 소리가 땅을 뒤흔들고 불빛이 하늘을 찔렀다. 강유가 말을 몰아 살피러 가보니, 주위가 모두 위나라 깃발이었다. 강유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95
“등애의 계략에 빠졌구나!" 하고, 곧 하후패와 장익에게 군령을 전하여 각각 적도성을 포기하고 퇴각하라고 했다. 이에 촉나라 군이 모두 한중으로 퇴각했다. 강유가 직접 후미를 엄호하는데 배후에서 북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강유가 후퇴하여 검각을 들어갈 때 비로소 위나라 군의 횃불이 타오르고 북소리 울리던 스무 곳 남짓이 모두 텅 빈 곳임을 알게 되었다. 강유가 군사를 거두어 퇴각하여 종제에 주둔했다. 한편, 후주는 강유가 도서에서 전공을 세웠다고 하여 조서를 내려 강유를 대장군으로 봉했다. 강유가 대장군 직을 받고 천자에게 표를 올려 은혜에 감사드린 후에, 다시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정벌할 것을 의논했다. 이야말로, 공을 이루는데 구태여 사족을 달지 않는 법인데, 역적을 토벌하여 호랑이 같은 위엄을 떨치려 하는구나.
 
 
96
不知此番北伐如何,且看下文分解。
 
97
이번 북벌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원문】제110회 문앙이 필마단기로 강병을 격퇴하고 강유가 배수진으로 적군을 대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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