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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
◇ (11) ◇
카탈로그   목차 (총 : 20권)     이전 11권 다음
미상
나도향
1
어머니 (11)
 
 
2
해는 넘어갔다. 오전 열 두 시가 되지 못하여 집을 나간 영숙이가 해가 지고 저녁밥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를 아니하였다.
 
3
다른 때 같으면 늦게 돌아오더라도 그렇게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청아의 아버지 철수가 늦게 돌아오더라도 그렇게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청아의 아버지 철수가 서울 와서 있는지라 영숙의 어머니는 초조한 생각이 나서, 담배를 담았다 떨었다 하며 일어났다 앉았다 한다.
 
4
『얘, 저녁 다 되었니? 김치는 새것을 헐어라. 그 중 항아리에 해 넣은 것 있지 않느냐. 나으리 올라오시면 드리려고 해 넣은 것 말야. 그러고 간은 본래 싱겁게 잡수시니, 찌개 같은 것도 정신을 좀 차려 간을 맞추고…』
 
5
이렇게 하인과 자집에게 분부를 하며, 문간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만나도 창문을 열고 내다보고 문소리가 삐걱하기만 하여도
 
6
『애어멈이냐?』
 
7
하며 헛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영숙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8
『얘가 웬일일고? 어서 오지 아니하고 애아버지 들어오면 또 말 듣겠군. 에이, 한 번 나가면 돌아올 줄을 모르니까. 다른 때와 달라서 제 남편이 왔으니, 좀 정신을 차렸으면 좋으련만…』
 
9
처음에는 이제는 오려니 기다리던 마음이 나중에는 가슴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와서 당장에 영숙이가 있으면 화로라도 들어서 그대로 태질을 치고 싶다.
 
10
『빌어먹을 년! 또 거기를 간 것이지!』
 
11
거기라는 곳은 즉 창하의 집이나, 눈치빠른 영숙의 어머니는 춘우 사이를 대강은 짐작한다. 그러니까, 영숙의 어머니에게는 영숙의 정조보다 철수의 돈이 더 귀하고 철수를 위하는 것보다 철수의 재산을 더 위한다. 그래서 철수의 눈을 가리고 철수의 마음을 사서 그의 재산만 취하여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면 만족하다.
 
12
젊은 여자가 남의 첩이 되었으면 그 여자의 몸 가지는 것은 추측하여 알것이니, 다른 남자와 다소간 관계가 있더라도 눈 감아 넘겨 주는 것이 그리과 히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 영숙 어머니의 생각이다.
 
13
그렇다. 돈만 날 구멍이 있어 먹고 입을 것이 있기만 하면 젊어 청춘에 마음에 드는 남자의 재미있는 정을 받아 보는 것도 그리 죄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돈이 나올 구멍을 틀어막게 되는 경우에는 자기 딸 아니라 무엇이라도 사생을 결단하고 덤빈다.
 
14
영숙의 어머니도 청춘시기를 지내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음 들고 뜻에 있는 남편하고 일생을 지내는 것이 마땅히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인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나, 청춘에서 떠나온지 벌써 그 세월이 너무 오래 고 감정이 차디찬 바위같이 식고 무디고 무딘 그는 영숙의 보고 느끼고 깨닫는 세상과 그가 느끼고 깨닫는 세상과는 그 거리가 너무 멀다.
 
15
영숙은 지금 새로 피어오르는 불길 같은 감정이 뜨거운 핏속으로 흐르는 중이요, 영숙의 어머니는 퍼다 버린 잿더미 속에서 댈그럭 거리며 굴러 다니는 차디찬 골탄같은 이지(理智)가 그의 시들시들한 껍데기와 함께 무덤 길을 재촉 할 뿐이다.
 
16
뜨거운 것과 찬것, 무딘 것과 연한것이 한꺼번에 융화가 되고, 뭉텅이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이치다.
 
17
나지막하게 입속으로만,
 
18
『얘가 오지 않나?』
 
19
하던 소리가,
 
20
『빌어먹을 년, 나가면 집에 들어올 줄을 모르니, 어디로 그렇게 돌아다니노? 행길 귀신이 씌었나?』
 
21
하며 욕지거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다시 시계를 쳐다보며, 벌써 여섯 시 반이 넘었네.』
 
22
일곱 시 십 분전이라도 영숙의 어머니는 여섯시 오십분이라는 소리를 몰라 여섯시 반이 넘은 것으로 계산을 한다.
 
23
『벌써 밥 먹으러 들어올 때가 되었는데, 들어오기 전에 오지않고, 빌어먹을 년 어디가 퍼더버리고 앉아서 집에 올 생각은 하지 않노! 또 주인의 성품을 거슬러 놓고 아무일도 안 되게 할 작정이지. 이번에 올라온 길에 달래야 쓸 돈이 이삼백원 되는데, 계집년이 뻔히 성미를 알면서도 고 모양이야! 에이, 뱅충 맞은년, 똑 속이 썩을 대로 썩어.』
 
24
딱딱 담뱃대를 또 한번 털었다.
 
25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면서 전기불이 들어오니까, 불을 떼어 창 앞으로 창 가까이 갖다가 걸어 놓고,
 
26
『얘, 청아 재지 말아라. 아버지 상 앞에서 떨어지면 섭섭히 아는데, 저녁이나 잡숫거든 재고』
 
27
하며 애 보아 주는 계집애를 부른다. 그러자, 대문 소리가 삐걱하고 나며 누구인지 마당으로 들어온다.
 
28
『인제 오나 보다』
 
29
하고 영숙의 어머니는 창밖으로 내다보았다. 그 들어오는 사람은 영숙이가 아니라 철수였다.
 
30
『에헴.』
 
31
두어 번 잔기침을 하고 마당에 들어서자, 갑작스럽게 집안은 쑤군쑤군 하면서 엄숙한 빛이 돈다.
 
32
『어서 올라오.』
 
33
영숙의 어머니는 마루로 나오면서 철수를 맞아들이면서도, 무슨죄나 지은 사람처럼 공연히 쭈뼛쭈뼛하여진다.
 
34
철수는 마당에 선채 마루 끝에 서 있는 영숙의 어머니를 쳐다보면서,
 
35
『애 어멈 어디 갔어요』
 
36
하고 엄연한 얼굴로 묻는데, 그의 얼굴에는 숨길수 없는 괴로움과 분노가 은연히 나타나 있다. 영숙의 어머니는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좋을는지 몰라서 조금 어름어름 하다가,
 
37
『동무 집 간다고 갔는데, 거의 올 걸... 올라와서 옷이나 좀 벗구려. 곧 올 터이니.』
 
38
철수는 단장 끝으로 마당을 두어 번 파 보더니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나서는,
 
39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언제쯤 나갔어요』
 
40
하고 물으니까 영숙의 어머니는 또 한참이나,
 
41
『저...』
 
42
하고 생각을 하는 체 하더니,
 
43
『다섯 시쯤 해서 나갔어.』
 
44
여기에 거짓말이 나왔다.
 
45
『왜 마당에 가섰어, 어서 올라와요』
 
46
하며 영숙의 어머니는 다시 철수의 비위를 맞추려고,
 
47
『얘, 청아야 ! 청아야 !』
 
48
하며 청아를 찾는다.
 
49
『얘 어디갔니? 이뿐아!』
 
50
하고 마루 이 끝에서 저 끝까지지 왔다갔다하며 어린애 업어주는 애를 불러 낸다.
 
51
『얘, 이뿐이더러 아기 데리고 들어오라고 해라.』
 
52
이번에는 하인에게 하는 말이다.
 
53
『고 배라먹을 년이 어디로 갔노! 해가 저물었으면 집으로 돌아올줄을 모르고, 그렇게 일러도 말을 들어먹어주어야지...』
 
54
하다가 계집 하인이 문 밖으로 나가니까,
 
55
『예, 나으리 들어오셨다고 청아 얼핏 데리고 들어오래라.』
 
56
『네』
 
57
하고 하인은 젖퉁이를 디룩디룩하며 문밖으로 나아간다.
 
58
철수는 마지못해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벗고 앉아서 당초에 말이 없다.
 
59
『얘, 상 가져오너라.』
 
60
영숙의 어머니가 부엌에 대로 소리를 질렀다.
 
61
조금있다가 하인이 들어오더니,
 
62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63
하고 댓돌 위에 가 서있다. 영숙 어머니는 이소리를 듣더니 비단을 찢는 듯한 소리로,
 
64
『무엇야. 그럼 어디를 갔단 말이냐. 어서 더 자세히 찾아봐.』
 
65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는 걸 어떻게 합니까. 저 큰길에까지 나가 보고 갈만 한곳은 다 가 보았는데요.』
 
66
『그럼, 어디를 갔단 말이냐? 다시 한번 나가 보아라, 어서!』
 
67
다시 부엌을 향하여.
 
68
『어서 상 가져와! 그리고 숭늉 좀 따끈히 데고』
 
69
하니까, 여태까지 양미간에 가릴 수 없는 내천자를 그리고 있던 철수는,
 
70
『고만 두셔요. 있다 먹겠읍니다』
 
71
하니까, 영숙 어머니는 펄쩍 뛰면서,
 
72
『왜 고만두기는! 조금 들어요, 점심도 일즉 자셨는데』
 
73
하며 미안하고 또는 죄송스러운 듯이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다가,
 
74
『얘는 무엇하러 여태가지 있노. 얼핏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얘! 이뿐이 여태까지 찾아오지 못했니? 청아도 밥을 먹어야 할 터인데』
 
75
할 즈음 철수는 무슨 생각을 한 듯이 모자를 쓰며 일어서서,
 
76
『애어멈보고 할 말이 있는데요』
 
77
하고 무슨 궁리하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다가,
 
78
『오늘 밤차로 집에를 내려가 보아야 하겠읍니다』
 
79
하고 가방을 끄집어낸다. 영숙 어머니는 속으로,
 
80
「에쿠, 일났구나」
 
81
하고서,
 
82
『그게 웬일요. 왜 그렇게 내려가우. 그렇게 급한 일이 아니거든, 하루 쉬고 내일이나 떠나지. 애어멈도 보지 않고!』
 
83
영숙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철수 사이의 이어 있는 그 무슨 줄이 끊어지는것보다도 이번에 청구하려던 몇 백 원 돈이 없어질 것이 더 애석하였다.
 
84
철수는 문 밖으로 나왔다.
 
85
영숙의 어머니는 문 밖까지 쫓아나오면서 철수를 만류하였으나, 영숙의 어머니로는 철수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기에 아무 힘도 없었다.
 
86
『그애가 곧 올 터이니, 들어와 앉았다가 보고 가요. 하인을 보내서 불러 올 터이니.』
 
87
애걸을 하다시피 하였으나, 철수는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88
『아녜요, 급해요. 며칠 있다가 올라와서 만나 보지요』
 
89
하고 초연히 가 버리려 한다. 너무 철수의 결심이 굳은 것을 안 영숙 어머니는 더 다시 철수를 붙잡을 수가 없어 말이 없이 서서 문앞 골목으로 나아가는 철수의 뒷모양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철수는 골목을 돌아서 사라지고말았다.
 
90
하는 수 없이 안으로 들어온 영숙 어머니는 제 화에 못 이기어 집안 사람이 조금만 무엇하면 트집을 잡아서 화풀이를 하려 하고,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먹고 입는 것의 주인공인 철수가 저녁도 먹지 않고 떠나간 것을 볼 때 공연히 죄지은 사람들 모양으로 전전긍긍할 뿐이다.
 
91
이런 일이 있는 줄 모르는 어린애 업은 애는 장난에 피곤한 몸에 청아를 업고서 저녁을 먹으려고 집으로 들어왔다가, 집안 사람들이 수군수군 허둥지둥 하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나서 눈치만 살피려고 부엌 문간 앞으로가 서 계집 하인에게,
 
92
『아씨 오셨소?』
 
93
하고 넌지시 물어 보았다. 계집 하인은 아까 찾으러 다니던 생각을 하고 마님께 꾸지람 듣던 것이 분하여 가자미 눈을 해 가지고 흘겨보면서,
 
94
『이런 정칠 년! 옳지, 이제 마님께 야단 만났다. 어서 마님께 가 봐라. 아까 나리가 들어오셔서 아기를 불러 오라셔서 찾다 못해 나리께서 역정이 나셔서 저녁도 안 잡숫고 시골로 가셨어 어서 가 봐! 마님께.』
 
95
가슴이 덜렁한 이뿐이는 갑자기 겁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르나, 본래 성미가 닳아진 애라 거죽으로는 그런 기색이 조금도 없이,
 
96
『왜 옆의 집에서 놀았는데』
 
97
하고 자기 변명을 시작한다.
 
98
『옆엣집이 무슨 옆엣집야. 내가 두 번이나 가 봤는데.』
 
99
『두 번이나 왔었으면 왜 나를 보지 못해.』
 
100
『없으니까 못 보았지.』
 
101
『누가 없어, 와 보지를 않았으니까 못 봤지.』
 
102
하인도 여기에는 불복이다.
 
103
『누가 안 가 봐, 네가 없었지 내가 안 갔어!』
 
104
『그럼, 왜 안방에서 내려놓고 놀았는데』
 
105
하고 서로 변명하느라고 목소리가 높았을 때 계집 하인은 소리를 버럭 질러서,
 
106
『없었거든, 없었다고 그래. 다른 데 가서 실컷 장난치고 와서 옆의 집에 있었다고…』
 
107
『다른 데서 노는 것을 봤어? 찾아보지도 않고 그러거든』
 
108
하니까, 계집 하인은 손에 들었던 부지깽이로 이뿐이를 탁 치며,
 
109
『내가 안 찾아봤어?』
 
110
하니까, 이뿐이는 분이 난데다가 얻어맞고서,
 
111
『왜 때려, 왜 왜 어린애니까 만만해』
 
112
하고 옆에 있던 쪽박을 계집 하인에게 내던졌다. 계집 하인은 이것을 피하며,
 
113
『요것 좀 보게. 누구를 때린다』
 
114
하고 그 쪽박을 다시 집어던진다는 게 마당 가운데가 떨어지며 반에 쩍 쪼개졌다.
 
115
이뿐이는 분한 생각이 툭 터지면서 그대로 소리를 질러 울음이 나오며,
 
116
『왜 때려, 이 육시를 할 년, 어디 또 때려 봐라』
 
117
하고 울며 덤빈다. 소리를 들은 영숙의 어머니가 안방 미닫이를 벼락 치듯 열면서,
 
118
『이 년들 웬 야단이냐』
 
119
하며 호령이 내린다. 이때 계집 하인이 먼저 나서면서,
 
120
『아니랍니다. 어디 갔다 인제 오느냐니까 그런답니다』
 
121
하고 변명이요, 이뿐이는 눈물을 씻으면서,
 
122
『그렇지 않답니다. 부지깽이로 사람을 막 때린답니다』
 
123
하나 동정은 어린 이뿐이에로 가지 아니하고 나이 먹은 어멈에게로 간다.
 
124
『이년 어디 갔다 인제 와서 울기는 왜 쪽쪽 우니. 아기 이리로 가져오 너라. 너는 네 생각만 하지 아기 배고파할 생각은 하지 않니, 이리와!』
 
125
어린애를 받더니, 다짜고짜로 손에 들었던 담뱃대로 이뿐이를 후려 갈기며,
 
126
『요 배라먹을 년! 어디 갔었어!』
 
127
하고 갈라지는 소리로 소리를 지르니 이뿐이는 애개개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꼬꾸라져 운다.
 
128
『말 안 할 터이야!』
 
129
하며 두어 번 더 힘을 박아 갈기 매,
 
130
『옆의 집에 있었어요, 에구구』
 
131
하며 영숙 어머니는,
 
132
『옆의 집에 있는 년이 찾으러 가도 없었어. 바로 대! 바로 대지 않을 테냐』
 
133
하며 이번에는 어르기만 한다. 이뿐이는 울음이 섞이어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134
『정말얘요, 응응』
 
135
할 제, 계집 하인은 옆에 섰다가, 잘코사니라는 듯한 눈으로 흘겨보며,
 
136
『뭬 정말이야. 딴 데 가서 놀았지』
 
137
할 제, 문밖에서 영숙이가 황망히 들어오다가, 이 꼴을 보고서 눈이 뚱그래지며,
 
138
『이게 웬일들이야』
 
139
하며 어머니를 보았다.
 
140
영숙의 어머니가 영숙과 춘우 사이를 알기도 오래고 또는 묵허를 하여 주기는 주었지만, 이번에는 그대로 둘 수가 없는지 막 내놓고 야단이다.
 
141
영숙의 어머니는 영숙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어안이 벙벙한 사람 모양으로 한참이나 아무 말이 없이 서 있다.
 
142
집안은 잠깐 무슨 큰 파란이 일어나려는 것 같이 엄숙하고 고요하다.
 
143
『어린애를 왜 이렇게 때려 주시오. 말로 이르거나 그러시지』
 
144
하고 영숙은 모녀 싸움의 단서를 끄집어내었다. 이 말을 들은 영숙의 어머니는 당장에 왜가리 같은 목소리로,
 
145
『무엇이야? 이년 어린애가 잘못하니까, 꾸짖느라고 그러는 것이지. 내가 그래 때리고 싶어 때린다드냐. 이년 네 어미는 네 눈깔 속에는 눈곱만도 있지 않니?』
 
146
영숙은 어머니의 소리지르는 것이 너무 송구 스러워서,
 
147
『웬 소리를 그리 지르시우. 그 말 한 번 했기루 남 듣기에 무슨 일 이나난 것 같게』
 
148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으려 하니까 청아가 어머니를 보고서,
 
149
『엄마 엄마』
 
150
하면서 따라온다.
 
151
『가만 있거라. 옷 갈아입고…』
 
152
하며 치마를 벗으려 할 때,
 
153
『무엇이 내가 소리를 질렀니. 계집년이 제 남편은 생각지도 아니하고 온종일 나가 있다가, 남편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는 것이 그것이 정당하고 옳은 일이고, 내가 어린애 좀 잘못했다고, 때려 준 것이 잘못한 일이야.』
 
154
영숙은 그 말 가운데 무슨 뜻이 포함된 것을 알아채고,
 
155
『누가 남편이 가고 오는 것을 몰라요?』
 
156
『누군 누구야. 네가 집안을 잘 되게 하는 수작이냐, 못 되게 하는 수작이냐. 너는 할 것이 네 남편 섬기는 것밖에 없지.』
 
157
『누가 남편을 섬기지 않는댔어요?』
 
158
『그럼, 네가 남편을 무엇으로 섬기는 모양이냐? 남편이 저녁을 먹으러 들어왔다가, 도루 나가게 만드는 것이 남편 섬기는 법이라고 누가 하든!』
 
159
『어머니는 공연히 생트집을 잡아 가지고 그렇게 크게 떠들 것이 무엇이란 말요』
 
160
하고, 영숙도 맞서기를 시작한다.
 
161
『무엇이 어째! 네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쁘냐, 이 화냥년 같으니.』
 
162
영숙의 어머니는 홧김에 이 말 한 마디를 내어 놓더니,
 
163
『이 년! 그래 너 날마다 가는 곳을 내가 모르는 줄 아느냐. 동무의 집 감네 하고서 재동을 날마다 무슨 까닭으로 가니?』
 
164
『내가 재동을 가거나 어디를 가거나 어머니가 알아 무엇 하시료. 나갈 일이 있으니까 가는 것이지.』
 
165
『알아서 무엇 하시료? 응 이년, 내 춘우인지 빌어먹다 턱이 떨어질 녀석인지 그 녀석을 날로 삼켜 버릴 터이다. 그 녀석 때문에 될 일도 안돼.』
 
166
영숙은 갑작스럽게 입끝이 쭝굿하여지며 두 눈에 독이 오르더니,
 
167
『무엇이 어째요. 춘우가 어쨌단 말요? 춘우가 어머니더러 밥을 달랍디까. 옷을 달랍디까. 춘우가 될 일을 못 되게 한 것이 무엇이오? 왜 걸핏하면 애꿎은 춘우를 쳐들어 가지고 야단요. 야단을 알 수가 없으니!』
 
168
『무엇이야. 춘우가 그럼 네게 무엇이 그렇게 긴해서 꽁무니를 따라다니니. 네 밥을 주니, 옷을 주니, 네가 춘우를 따라다녀서 네게 이로울 것이 무엇이냐?』
 
169
『해로울 것은 무엇이요. 따라다니는 것도 내가 좋아서 따라다니고, 싫은것도 내가 따라다니기 싫은 것이니까, 어머니가 간섭할 것이 못 돼요.』
 
170
『어째 내가 간섭을 할 수가 없니! 어미가 간섭을 하지 않고 어떤 빌어먹을 년이 간섭을 한단 말이야?』
 
171
『어머니가 간섭해서 되는 일 하나 없읍니다.』
 
172
『무엇이 안 된 일이냐? 어미가 간섭해서 안 된 일이 무엇이냐?』
 
173
이 소리를 듣던 영숙은 어머니를 눈이 뚫어지도록 들여다보더니,
 
174
『어머니는 생각지 못 하셔요』
 
175
하고 무섭게 바라보고 서 있다.
 
176
『모른다. 무엇이냐? 어디 말 좀 해 봐라.』
 
177
『몰라요. 나를 이렇게 만들어 준 사람이 누구요. 나를 이렇게 만들어 준 사람이 어머니가 아니고 누구얘요. 어디 어머니도 입이 있거든 말을 좀 해봐요.』
 
178
어머니의 가슴속에도 양심의 찔림이 있었던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참이나 입만 벌리고 서 있었다. 이 말 한 마디는 언제든지 영숙의 최후 무기다. 모녀간에 무슨 일로 다투든지 이 말 한 마디만 하면, 영숙의 어머니는 지고 마는 것이다.
 
179
그러나, 비록 양심으로는 자기의 잘못으로 영숙의 비운(悲運)을 가이 없이 생각은 한다 하더라도 다시 한번 둘러 생각을 할 때에는, 자기가 그렇게 하지 않았던들, 오늘날에 이 편하고 걱정 없음이 있지 못하리라고 생각 하는 영숙의 어머니는 다시 말대꾸를 시작 하여,
 
180
『무엇야! 내가 잘못해서 요 모양을 만들었어. 그래, 네가 나 아니면 꿈에나 이렇게 살아 볼 줄 알았드냐? 네가 무엇이 부족하냐!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 그래 내가 간섭을 해서 너를 못된 구덩이로 쓸어 넣었다 하면, 너는 하는 짓이 무엇이냐. 그저 들어온 복도 박차 던져 내지 못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어미가 아무리 도척 같다 하더라도, 그래 너를 조금이라도 잘 되라 할 터이지, 못 되라고 할 빌어먹을 년이있드란 말이냐. 다 너 좋고 너 편하자고 한 일이지.』
 
181
『나 좋게 한 일이 무엇이요. 나는 아무것도 싫어요. 당장에 쌍가마를 탄 다해도 나는 싫으니, 어머니 혼자 그렇게 좋거든 이 집이나 지키고 있소. 그렇게 편하고 좋은 집을 내버릴 수가 있단 말이요. 나는 나 혼자 갈 터이니, 어머니 혼자 가고 싶거든 가고 싶은 대로 맘대로 가고, 있고 싶거든 있고 싶은대로 맘대로 있어요. 나는 나 갈 데로 갈 터이니 아무렇기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산 입에 거미줄을 칠 터이오. 하루 세 끼 먹기는 사람마다 매일반이지』
 
182
하고 다시 벗었던 옷을 주섬주섬 집어 입는다.
 
183
어느덧 한 옆에 쓰러져 잠이 들었던 청아가 눈을 부시니 뜨더니 칭얼대고울 기를 시작한다.
 
184
『엄마』
 
185
하고 보챈다. 이 소리를 듣던 영숙의 어머니는 눈만 흘겨서 슬그머니 청아를 보더니,
 
186
『흥, 으아』
 
187
하고, 소리를 더 높여 우니까,
 
188
『요 배라먹을 년 같으니, 왜 자지 않고 울어』
 
189
하고 소리를 날카롭게 지르매, 청아는 그 소리에 놀라서 더 높이 소리를 지르며 운다.
 
190
『너도 팔자가 사나와서 태나기를 잘못 태났다. 고생은 잔등이에다 새기고 나왔지』
 
191
하고 다시,
 
192
『울지 말아 요년, 울기는 왜 빽빽 우니』
 
193
하고 청아에게로 달려들어 누워 있는 애를 이리 굴려서 두 겨드랑이를 쳐 들으니까, 청아는 어머니가 아니라고 악지를 쓰며 몸에 맥을 놓고 두 다리를 버르적 거리며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이 운다.
 
194
한참이나 추스르려고 애를 쓰던 영숙의 어머니는 가뜩이나 화가 나고 분한데다가, 어린애까지 야단이니까, 그대로 방바닥에다 홱 내던지면서,
 
195
『에, 나는 모르겠다. 울거나 말거나』
 
196
하는데는, 늙은 할머니와 젊은 어머니 사이에는 어린아이를 가운데다 두 고서 일종의 질투가 일어났다. 더구나 늙은 할머니는 젊은 어머니를 질투 하는 생각이 많았다.
 
197
방바닥에 곤드라진 청아는 바늘로 찌르는 듯이 운다. 이것을 본 영숙은 쏜살같이 달려들어 어린애를 끼어안으며, 마치 고양이가 잡아먹으려는 쥐 새끼를 노리는 듯이 눈으로 자기 어머니를 노려보더니,
 
198
『어린 애가 무어라고 그랬소. 방바닥에다 내던지게. 화가 났으면 났지 화 풀이를 왜 어린애에게다가 한단 말 이오』
 
199
하고 목줄띠에 핏줄이 서도록 소리를 지른다. 그러고,
 
200
『울지 마, 울지 마』
 
201
하고 청아를 달래는데, 다른 때 같으면 청아가 울기를 시작하면 반드시 자기 어머니에게다 떼어맡기던 것이, 오늘은 모녀 싸움 끝이라, 그 전보다 더 애정이 있어서 그리한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를 더욱 옥쥐어박으려고 청아에게 전에 없이 인정을 보인다.
 
202
가슴에 안기더니, 말이 없이 눈을 감고 편안히 잠이 드는 청아를 들여다보는 영숙의 마음은 공연히 처량하여진다.
 
203
인생의 무상이라는 문자는 모르더라도, 한없는 무상을 느끼었다. 자기가 지금의 자기 팔에 안고 앉아 있는 것이 자기의 딸이요, 또는 철수의 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거기에는 무슨 위대한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끊으려 하면, 끊을 수도 있지만, 자기의 힘을 가지고는 끊을 수 없는 무슨 큰 힘이 청아를 통하여 철수와 자기를 얽어놓은 것 같았다. 마치 유리통 속에 갇혀 있는 날벌레 모양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그것을 꿰뚫으려 하면 이마를 부딪쳐 나갈 수가 없는 무슨 큰 장벽이 자기와 청아와 철수를 가두어놓은 듯하였다.
 
204
청아는 가끔가끔 떨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부드러운 손으로 어머니의 젖을 만지었다.
 
205
영숙의 품이 천당이나 낙원 모양으로 절대(絶對)의 안식(安息)을 한다.
 
206
영숙은 한참이나 이 잠자는 청아를 내려다볼 때 이 청아를 자기 품에 안았을 때는 언제든지 맛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모녀의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207
왈칵 분한 기운에 발길을 돌려서 자기 집에서 나가려던 마음이 났다가 다시 주저앉게 한 이가 그 누구이냐? 그것은 자기의 어머니도 아니요, 자기의 남편도 아니요, 자기의 세간도 아니요, 그것은 자기가 어머니 노릇을 하는, 말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청아이다.
 
208
이 세상에 절대(絶對)의 사랑이 어느 것이냐 하면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남녀간 부부간의 사랑은 현대인으로서 반드시 상대적(相對的)이나 너 싫으면 나도 싫고 네가 사랑하지 아니하면 나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소위 연애이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그렇지가 않다. 자기 자식이 자기를 아무렇게 괴롭게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일 것이다.
 
209
영숙의 가슴에는 또다시 번민이 일기가 시작하여 얼굴빛이 푸르러 지기를 비롯한 다. 그리고 말이 없이 앉았으매, 구곡간장에서 새어나오는 원통한 비애가 마디마디를 녹이는 듯하여지고, 두 눈에서 눈물이 핑 돈다. 그리고, 그것이 방울이 되어 뚝뚝 낙수지듯이 두 뺨에 떨어지는 것은 마치 두어 개점을 찍어 놓은 듯하였다.
 
210
눈물이 나오더니, 한숨이 나온다. 그러더니, 다시 눈물이 비오듯 한다.
 
211
이에 영숙은 또다시 결심을 하였다. 모든 것을 단결에 결단하고 튀어 나가리라. 모든 것을 잊으리라, 그리고 새로운 생활을 하여 보리라고.
 
212
그러나 영숙의 몸은 무거운 무엇이 누르는 듯하였다. 그것은 산도 아니요, 집도 아니요, 돋도 아니라 석 자밖에 되지 않는 청아이다.
 
213
청아야말로 두 사람 사랑의 결정이냐, 그렇지 않으면 죄악의 씨냐, 또 그렇지 않으면 업원이냐, 그것은 어떻게 된지를 영숙은 모른다. 그것을 알려고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자기 남편은 버릴 수가 있으나, 청아는 차마 버릴 수가 없는데, 어찌하랴 ?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무슨 힘이 두 가련한 인생을 꼭꼭 동여매 놓았다.
 
214
영숙의 마음에는 차라리 청아가 아주 죽어 없어서 영원한 단념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하면 모르거니와, 살아 있는 동안에 나 가고 너 가거라, 떨어질수는 차마 없는 일이다.
 
215
영숙의 손에는 몽글몽글한 청아의 살이 따뜻하게 만져지고, 편안히 잠이 들어 쌔근쌔근하는 콧소리는 마치 향기를 토하는 듯하다.
 
216
그때 영숙의 마음은 괴로왔다. 어찌해야 옳으냐. 청아를 두고 가랴, 데리고 가랴,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내버릴 수도 없고, 다만 답답한 것은 가슴뿐이다.
 
217
그는 울음 소리를 내어 울었다. 고요한 밤중에 젊은 여자의 울음 소리는 가늘고 곱게 떨려서 컴컴한 밤중을 처량하게 흔들어 놓는다.
 
218
『듣기 싫다. 울기는 왜 우니.』
 
219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영숙 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괴었다.
 
220
입으로 소리는 지르나 그의 가슴도 쓰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221
자기도 안다, 영숙의 눈물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고,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라는 데 여태까지 질질 끌려와, 얼마 아니 있으면 무덤이라는 데 자기 몸을 툭 집어던지고 뚜껑을 턱 덮어 버릴 날이 멀지 않은 그는 다만 보지 않고, 느끼지 않고, 생각지 않고, 백지(白紙) 같이 있다가 백지같이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222
그래서, 영숙을 볼 때마다 보지 말고 생각지 말고 느끼지 않으리라, 하고 눈을 딱 감고 귀를 두 손으로 가리고 싶으나, 그것은 자기의 힘으로 할 수가 없든지 다만 소리만 지르고 야단만 칠 뿐이다.
 
223
『울지 말어.』
 
224
소리를 지르는 것은 실상 영숙이가 불쌍해서 나오는 것이지마는, 그것이 곱고 부드럽게 타이르는 말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귀찮고 보기 싫은 생각에 소리만 꽥꽥 지르게 되는 것이다.
 
225
영숙은 말대답도 없이 한참 앉아 울다가, 무릎이 저려서 청아를 내려 뉘고, 다시 의걸이 문을 열고 한참이나 문앞에 서 있다가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문 밖으로 나가려 하니까,
 
226
『어디를 가?』
 
227
하며 어머니가 내다본다.
 
228
『어디 가는 것은 알아 무엇하셔요. 나 가고 싶은 데, 내 발 가지고 나가는 데…』
 
229
하며 홱 나가 버렸다.
 
230
『이 밤중에 어디를 가실까요. 제가 좀 따라가 볼까요.』
 
231
계집 하인이 엉거주춤하고 엎드려 물어 본다.
 
232
『고만두어라. 그 성미에 하고 싶은 것은 하고 마니까… 그러나, 나으리가 정말 갔나?』
 
233
하고 눈을 꿈벅꿈벅하고 있다.
 
234
『글쎄올시다, 가시기야 했겠읍니까. 인제 들어오시겠지요.』
 
235
그러나, 밤이 새도록 영숙도 돌아오지 않고, 철수도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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