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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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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나도향
1
어머니 (12)
 
 
2
그날 저녁 철수는 시골로 가리라는 마음이 불현듯 일어나기는 났었으나, 영숙의 집을 나와서 다시 생각할 때에는 자기가 어쩐지 어리석은 듯한 생각이 나서, 그대를 아무 말 한 마디도 없이 시골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그는 전동 어떠한 여관에다가 주인을 잡아 놓고, 다시 문 밖으로 나왔었다. 그러고는 발길 내키는 데로 안동 별궁 앞까지 걸어갔다. 그래 가지고 또다시 발길을 돌리어 안동 고개를 넘어갈 때에는 어제까지 자기가 느껴보지 못 하던 슬픔이 가슴에 가득하여 공연히 눈물이 날 듯하였다.
 
3
「사람이 그럴 수가 있담」
 
4
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한참 생각을 하다가, 다시,
 
5
「배은하는 계집이지」
 
6
하고는 무심히 하늘을 쳐다보면서,
 
7
「내가 제게 무엇이 부족한고. 내가 제게 과히 잘못한 일은 없는 것 같은데, 계집의 마음이란 언제든지 믿지 못할 것이지마는 그야말로 나로서는 모를 일이야. 어떻든 만나 보고서 되든지 말든지 최후 담판을 해 보고서 결말을 내어 버려야지」
 
8
하고 그는 무슨 결심을 한 듯이 주먹을 단단히 쥐었다.
 
9
길 옆 잡화상에 느런히 버티어 놓은 석경 속에는 여러 개의 자기 그림자가 비치었다 없어졌다 한다. 인력거가 지나가고 자전거가 닥쳐온다. 그는 이리저리 피하면서 길 한 옆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는, 다시 온 전신에서 피 가한꺼 번에 끓는 듯하더니, 그의 입에서는 튀어 나가듯이,
 
10
「춘우…」
 
11
라는 이름이 나왔다.
 
12
「춘우 ! 춘우가 영숙을 뺏었느냐? 영숙이 춘우에게로 갔느냐? 어떻든 그 죄가 두 사람 가운데 누구에게 있는지는 모를지라도, 나의 원수일 것이다.」
 
13
강렬한 자극제를 먹은 것 같이 철수의 얼굴과 등골에는 땀이 흘렀다. 춘우나 영숙이 그 자리에 만일 있었다 하면 철수는 사람의 성품을 떠나 들에서 뛰어다니는 야수와 같이, 그들을 물어뜯을는지도 모른다.
 
14
그는 땀을 씻고서 창하의 집을 향하여 갈 때, 또다시 팔이 떨리는 것을 깨 달았다.
 
15
「창하가 잘못이지. 창하로서는 그렇게 하지를 못할 터인데」
 
16
하고 눈에서 피 묻은 광채가 난다.
 
17
「먼저 창하에게 들어 보아야지. 창하는 내게는 첫째 되는 원수야.」
 
18
철수는 창하의 집에를 들어가서,
 
19
『아저씨 계십니까』
 
20
할 때에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사랑문을 열어도, 방 안에는 전기불만 켜있고 아무도 없는데 방바닥에는 과일 껍데기와 과자 봉지가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다.
 
21
이것을 보는 철수의 가슴과 눈에는 뜨거운 피가 올라오고, 질투와 분노가 거의 사람을 반이나 미치게 한다.
 
22
저것이 영숙과 춘우 두 사람이 달콤한 사랑——아니라, 음란한 쾌락을 누리던 자리라는 생각을 하며, 그야말로 승홍(昇汞)을 먹은 것 같이 오장이 썩어 나는 듯이 괴로왔다. 그는 미닫이가 깨어지도록 탁 닫아 버리고 안으로 들어가며,
 
23
『아저씨 안 계셔요』
 
24
하는 목소리가 갑자기 탁 잠겨 버렸다. 두어 번 기침을 하여 소리를 가다듬으려 하였으나, 점점 더 갑갑해 갈 뿐이요, 입에서는 뜨거운 김이 나온다.
 
25
안에서는 창하의 안해가 나오면서,
 
26
『오셨소! 지금 막 나가셨는데, 못 보셨소!』
 
27
『못 보았는 걸요.』
 
28
『지금 막 나가셨는데 ——』
 
29
『혼자 나가셨어요?』
 
30
『아니, 저 누구허고 같이 나갔어.』
 
31
『누구허구요?』
 
32
『누구인지는 몰라도, 어떤 여자하고 남자허고 하루 종일 놀다가, 간 지가 얼마 되지 않는데요.』
 
33
『여자허고요?』
 
34
『…………』
 
35
철수는 알아채었으나,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문 밖으로 나왔다.
 
36
「알았다. 춘우허고 영숙이겠지. 그러하면, 지금쯤은 집에 가서 앉았을 터인즉, 집으로 가서 볼까. 아니야, 내 그 집에는 당초에 들어가지를 않을 터이야. 지금 막 나갔다니까, 얼핏 쫏아가면 만날는지도 모르지. 어떻든 얼핏 쫓아가 보자」
 
37
하고 , 한 걸음 걸을 것을 두세 걸음씩 간다. 그리고, 앞에 여자 같은 사람과 청년 두서넛이 섞이어 가는 것만 보아도 앞으로 바싹 가서 보았다.
 
38
그는 온몸이 후끈후끈하도록 달음질하다시피 하여 종로까지 왔다. 종각 뒤로 영숙의 집 들어가는 골목 앞에 섰을 때, 철수는 들어갈 수도 없고 아니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는 들어가자니 자기의 결심이 약한 듯하여 들어가지도 못하고, 안 들어가면 영숙을 만날 수도 없다. 그래서 잠깐 망설이다가, 그는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그대로 돌아서서 자기 여관을 향하여 다시 걸어갔다.
 
39
여관으로 돌아온 철수는 베개를 베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서성거리다가 앉았다가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누웠다가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다시 눈을 감고 생각을 시작하였다. 철수에게는 이와 같은 일이 허무하 기도하고, 또는 기가 막히기도 하여, 세상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으며, 이와 같은 일을 당하는 사람이 또 있으랴 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자기가 영숙과 그동안 여러 해를 비록 정식 안해는 아닐지라도, 정답게 지내오다가 오늘에 자기를 배반하고 춘우를 따라간다는 것은 그것이 춘우의 잘못은 아니라 할지라도 영숙이가 남편인 자기를 모욕한 것은 사실이다. 남편을 배반하는 여자가 영숙이 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자기의 사랑을 다하고, 또는 자기의 재력(財力)을 기울여 아무것도 부족할 것이 없이 저를 위하여 주었는데, 지금 와서 이렇다 저렇다 말 한 마디 없이 헌신짝 벗어 버리듯 버리고 가는 것은 은덕을 모르는 여자요, 의리 없는 여자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고, 자기에게 부족히 한 것이 있다 하면, 나를 붙잡고 말 한 마디라도 해야 자기의 도리일 것이다.
 
40
그는 눈을 감았다. 머리도 없고 끝도 없는 토막토막 끊어져 나오는 과거의 생각이 눈앞으로 지나갔다 닥쳐왔다 한다.
 
41
그러다가, 일전에 영숙이 자기 팔에 엎드리어 눈물을 흘려가며 모든 것을 자백하고 사과하던 것이 생각나며, 또한 자기도 진정으로 모든 것을 용서 하여 준 것이 생각난다. 이 생각이 나며, 그는 눈을 번쩍 뜰 때 두 눈에서는 번갯불 같은 광채가 일어났다.
 
42
「예, 간특한 계집! 제가 나를 속여! 농락을 해! 고것에게 속은 것을 생각 하면 분해. 참 분해!」
 
43
하고, 다시 벌떡 일어나서,
 
44
『얘 냉수 한 그릇 가져오너라』
 
45
하며 한 대접의 냉수를 쭉 들이켜더니, 다시 팔을 괴이고 앉아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결심을 하고 또 결심한 끝에 그는 최후의 무서운 웃음을 웃었다.
 
46
「옳지, 이제부터는 나도 네게 다시 속지 않는 사람이 될 터이다 ! 네가 그 리하면 나도 할 일이 있다. 어디 보자!」
 
47
할 때, 그의 입 가장자리에는 비통한 웃음이 있었다.
 
48
「나는 너의 생활을 이제부터 보장해 줄 수 없다고 할 터이다. 나는 돈으로써 지금까지 너를 내것으로 만들었다. 이제부터도 나는 돈의 힘으로 너를 영원히 내것을 만들 터이다. 너의 사랑이 나의 돈에 지나, 나의 돈이 너희들 결심에게 지나, 나는 어디까지든지 해 볼 터이다」
 
49
할 때에는 무슨 믿음이 가슴속에 가득하여지는 듯하였었다. 그리고, 만족한 웃음이 그 비통한 웃음 대신으로 얼굴 전체를 광채나게 하였다.
 
50
그는 불을 끄고서 자리에 누워서,
 
51
「청아가 불쌍하지. 저것을 어떻게 처치를 해야 좋을까! 시골로 데려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미에게는 물론 주어서는 안 될 것이며…」
 
52
할 때, 대범한 아버지 가슴에도 뜨거운 인정의 물결이 치면서 불쌍한 생각이 전신에 스며드는 듯하였다.
 
53
「불쌍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제 팔자지 ! 에, 모든 것을 생각할수록 분해! 그러면 자기의 할머니게나 맡겨서 키워 달라 하고, 생활비나 대어 주지! 그러고 나는 춘우와 싸움을 시작할 터이다.」
 
54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으로 닭이 여러 홰 울도록 잠이 들지 못하였다가, 어느 틈에 잠이 들었든지 눈을 떠 보니 세상이 벌써 환하게 밝았다.
【원문】(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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