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어머니 ◈
◇ (13) ◇
카탈로그   목차 (총 : 20권)     이전 13권 다음
미상
나도향
1
어머니 (13)
 
 
2
세월이 빠르다는 것이 그 어떤 이에게는 거짓말이 되는 때도 있지마는, 대개 지내 놓고 생각하면, 몹시 빨라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춥던 겨울도 어느덧 지나가고 지금은 봄이 되었다고 물오른 버들가지는 미친 듯 봄바람에 활개를 벌리어 춤을 추고 앞뒤 언덕 금잔디는 비단 방석을 깔아 놓은 듯 하다.
 
3
눈얼음에 잠겨 있던 시냇물은 다시 은방울을 흔드는 듯, 졸졸 흐르 기를 시작하고, 땅 속에 잠들었던 각종 곤충은 새로이 새 생명을 얻어서 넓은 천지에 살 길을 구하기 시작한다. 봄이 오는 곳에 반드시 평화와 즐거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세상에서 딴 사람은 그와 같은 평화와 즐거움을 맛보는 이가 없으리라고 무한한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끝없는 행복을 느끼는 두 사람이 있다.
 
4
남대문에서 전차를 타고 관왕 묘(關王廟) 를옆에다 두고서 전차 정류장 두 서넛을 지나가면 연병장(鍊兵場) 앞 정류장이 된다. 거기서 전차를 내버리고 구용산 가는 기찻길을 따라 한 정류장을 가면 선린 상업 학교(善隣商業學校) 앞 정류장이 있으며, 거기서 조금 비슷하게 서쪽을 향하여 뚫어진 골목이 있으니, 그로 향하여 들어가면 효창원(孝昌園)이 나선다. 이 효창원은 내지 사람들이 공원을 만들려 하는 곳인데, 아직 경성 시중에 생활하는 사람에게 너무 등한히 내버려두게 되어 장충단(奬忠壇) 남산 공원(南山公園)에는 많이 다니어도 이 효창원에는 발길을 던지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아, 아직까지 그 한가하고 유한한 송림이라든지 서강(西江) 마포(麻浦)를 동에서 서로 굽이쳐 흐르는 한강물을 격하며 여의도(如矣島)와 영등포(永登浦)의 넓은 벌판을 내다볼 제, 흉금이 열리는 듯한 맛을 보는 이가 별로이 없을것이다.
 
5
여기 그 두 사람이라는 이는 춘우와 영숙이다. 춘우는 새로 지은 봄 양복을 입고, 영숙은 초록색 파라솔에 백을 손목에 걸었다.
 
6
영숙은 따뜻한 볕이 아직 칠홉 하늘에 솟아 있는 것을 반쯤 찌푸려 쳐다보면서,
 
7
『날이 퍽 좋지요』
 
8
하매 춘우도 역시 구름 한 점 없이 개인 하늘을 쳐다보며,
 
9
『참 택일은 잘했지. 내가 하자고 해서 잘못되는 것 무엇 있었나.』
 
10
영숙은 농담 비슷 코웃음을 치는 듯 마는 듯 하면서,
 
11
『왜 안 그렇겠소. 그래서 그저께 저녁 활동사진 구경갈 적에는 남의 갓 지어 입은 옷을 소르르 흐르도록 비를 맞게 하였담.』
 
12
『압다, 내가 그랬어. 그날 그러기에 내가 가지 말자고 해두, 자꾸 가자고 재촉을 하더니, 그 모양을 당하였지.』
 
13
『그것 큰일나겠네, 제가 그랬어요. 그러게 당신이 가지 말라고 단단히 붙잡지를 않았으니까, 그렇지요.』
 
14
『허허, 그것 큰일나겠네. 그것은 어떻든지간에 우리 오늘 내친 걸음에 인천 구경까지 다녀옵시다그려.』
 
15
『인천요 ?』
 
16
『그래, 그 전부터 인천 구경 가자고 그리하지 않았소. 또 나올 기회를 만들기가 그리 쉽지 않을 터이니, 아주 다녀서 오는 것이 좋지 않소. 오후 차에 갔다가 저녁 막차에 들어옵시다그려.』
 
17
영숙은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걸음을 천천히 걷고,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뺨 위에 와서 부딪치는 꿀벌을 피하여 손에 든 수건을 흔들면서,
 
18
『에구머니, 벌! 벌!』
 
19
하고 옆으로 물러서니, 춘우는,
 
20
『무섬도 퍽 타네』
 
21
하고 벌을 쫓아 버리고서는 언덕 위로 올라섰다. 옆의 선린 상업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무엇인지 소리내어 읽고 있는 소리가 들리었다.
 
22
『글쎄요. 늦지 않을까요』
 
23
하고 팔뚝시계를 보더니,
 
24
『벌써 열 한 시인데요. 오늘은 여기서 놀다가, 요 다음에 일찌기 떠나서 하루 종일 놀다가 오지요. 그러는 게 어때요』
 
25
하며, 춘우에게 동의를 청하는 듯이 곁눈으로 쳐다본다.
 
26
『글쎄 내가 알우. 마음대로 하구려』
 
27
하고 손에 든 단장으로 길에 떨어진 돌맹이를 탁 쳐서 앞으로 굴려 보내었다.
 
28
『어디로 갈까.』
 
29
『글쎄 경치 좋은 데로 가요.』
 
30
『경치 좋은 데 ?』
 
31
『녜.』
 
32
『그러면, 우리 저리로 갑시다. 저기 저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위에 올라서면 가문들·서강·마포·용산, 또 노량진·영등포가 모조리 보이는 데가 있어.』
 
33
『강물도 보입니까.』
 
34
『그럼 강물도 보이고말고. 그렇게도 강물이 좋소.』
 
35
『웬일인지, 저는 강물이 퍽 좋아요』
 
36
하고 아까보다도 걸음을 더 속히 하여 빠르게 걸어간다. 춘우는 그 뒤를 따라가며,
 
37
『이렇게 속하게 갈 것이 무엇이오. 천천히 갑시다.』
 
38
『빨리빨리 가서 얼핏 좀 봐요.』
 
39
『강물이 그렇게 좋단 말이요. 자, 여기 솔나무 사이를 걸어가는 재미는 어떻소.』
 
40
『에구, 참 소나무가 크기도 하이. 여기는 무엇하는 곳입니까』
 
41
하고 골프 운동장을 가리킨다.
 
42
『골프라는 것이 무엇예요 ?』
 
43
『운동하는 것이야.』
 
44
『어떻게 하나요.』
 
45
『길다란 몽둥이 끝에 주걱같이 파진 것이 있는데, 그것으로 새알 같은 것을 치는 것이야.』
 
46
『응, 알겠어요. 언젠가 활동사진에서 하는 걸 본 일이 있군.』
 
47
『그래그래.』
 
48
이렇게 말을 하며, 효창원 송림을 향하여 가느라고 청파사계(靑坡四契) 촌가를 지내간다. 짚더미 쌓아 놓은 곳에서는 저 껍질을 까먹느라고 새 새끼들이 종알종알하면서 재재거리고 옆의 집 담모퉁이 양지 쪽에서 잠이 들었던 검정 고양이가 두 사람 발자국 소리에 놀라서 깡총 뛰어 지붕으로 올라간다. 저 건너 공청에서들은 늙은이들이 모여 앉아 장기들을 두느라고 왁자지껄하는데, 그 건너 집 동산에서는 새색시의 다홍치맛자락이 울타리 사이로 보이는 듯 마는 듯하는데 저만 새 버들을 꺾어서 힘있게 내부는 피리 소리가 풍편에 들리는 듯 마는 듯하다. 길 옆에 난 지 얼마 아니 되는 냉이 소 루쟁이의 상긋한 냄새는 야릇한 봄 기운에 두 사람을 취하게 하고, 건너 산 아지랭이를 두어 번 건드리고 불어오는 연한 바람은 사랑에 취하여 따갑게 타오르는 두 사람의 뺨을 핥고서 지나간다.
 
49
소나무 사이에 들어섰다. 유황이나 몰약을 사르는 듯이, 태탕한 기분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사면은 비인 듯 적막한데, 다만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적막을 깨뜨리고 자박자박할 뿐이다.
 
50
춘우는 영숙의 손을 쥐었다. 그러고 힘있게 눌렀다. 영숙도 아무 말 없이 춘우의 손을 따라 쥐었다. 그리고 정의 광채가 넘쳐나오는 두 눈으로 춘우를 보았다. 그리고, 만일 세상의 즐거움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이것일 것이라는 만족한 생각이 그의 두 사람 가운데에 넘치고 또 넘치었다. 아무 것도 숨김이 없이 하늘이 주신 자기의 생명을 조화의 섭리로 길러 가는데 자연 속에서 또한 아무것도 거리낌없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을 끓는 청춘의 피속에 느낄 때 그들은 참으로 산 듯하였다. 그리고, 부드러운 입김과 보조 맞는 발자취와 맥박이 서로 통하는 피부를 서로 대고 산골짜기에 새로 흐르는 샘물과 같이 달고도 청렬한 사랑에 취하였을 때, 그들은 참으로 살아 있던 것이다.
 
51
말없이 굴리고 말없이 건네는 두 사람의 광채나는 두 눈동자는 번개와 같이 마주치고 번개와 같이 피할 때에, 그들은 자기의 애인의 견디기 어려울만큼 가슴속에서 뛰노는 사랑의 고동을 볼 수가 있었으며, 가슴에서 영원히 타는 사랑의 불길을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52
두 사람은 어느덧 끼어안고 걸어갈 듯이 가까이 섰다. 영숙의 틀어얹은 머리 앞에서 미친 듯이 나부끼는 기름한 머리카락이 춘우의 뺨을 지근덕거리 듯이 간질인다. 그리고 때때로 영숙의 손이 춘우의 손 속에서 무엇을 더욱 더욱 고조(高調)시키는 듯이 더 힘있게 쥐어졌다.
 
53
『우리 저리로 갑시다.』
 
54
『어디로요?』
 
55
『저기 보이는 저 넓은 마당이 있지 않소』
 
56
하며, 춘우는 맨앞을 곧장 가리키면서,
 
57
『저 곳을 지나서 저리로 저 언덕을 올라가면, 또 여기처럼 소나무가 있소. 그곳을 지나 나가면, 영숙이 보자고 하던 그 강이 보이는 곳이야』
 
58
할 때, 그들은 바위 위 풀 밑으로 종알거리며, 흘러가는 시내 하나를 당도하였다.
 
59
『에그머니.』
 
60
영숙이가 건너뛰기에는 조금 넓다고 할 수 있고, 그대로 건너가기에는 징검다리가 없었다.
 
61
영숙은 두 손을 맞모으고 종종걸음을 걸으면서,
 
62
『에그, 나는 못 건너가겠네. 이를 어쩌면 좋아.』
 
63
사면을 돌아보니, 앞에도 언덕, 뒤도 언덕, 위도 송림, 아래도 송림이요, 그 가운데로 이 물이 흘러간다.
 
64
『무엇을! 그까짓 것 하나 건너오지 못하구』
 
65
하고, 춘우는 먼저 성큼 건너뛰어가서 영숙에게 손을 내어밀었다.
 
66
영숙도 손을 맞 내밀어 보더니,
 
67
『에그, 나는 무서워 못 건너가겠어. 이를 어쩌나』
 
68
하고 먼저 건너간 춘우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흘기어보았다.
 
69
『에그, 자.』
 
70
껑청 다시 건너와서 춘우는 자기 두 팔 위에 영숙을 선뜻 안았다. 영숙은 춘우 가슴에 힘없이 안겨 부끄러운 듯이 잠깐 발버둥질을 치다가, 춘우 가물 건너갔을 때에 그는 비로소 아무 말 없이 부끄러운 듯이 춘우에게 안겨있었다.
 
71
춘우가 영숙을 땅에 내려놓았을 때, 그들은 피들이 얼굴로 올라와 무안 본 사람들 모양으로 시뻘건데, 영숙은 춘우를 보더니, 부끄러움을 못견디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었다가, 다시 누가 보지나 아니하였나 하고 사면을 돌아보았다.
 
72
두 사람은 다시 언덕을 넘어섰다. 그리고, 앞이 탁 터진 넓은 풀밭을 지나서 다시 두덩을 올라섰다.
 
73
『우리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어.』
 
74
영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
 
75
『글쎄, 서울 안은 너무 복잡하니까, 몸에 퍽 해로와. 이런 데다가 조그마하게 집이나 짓고, 집앞에 화원(花園)이나 꾸미고, 뒤에는 과수나 몇 개 심고, 그러고 지내는 것이 아주 이상적일 터이지. 나도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하였지만.』
 
76
『저두요. 언제든지 한 번 그러고 살아 보리라는 결심까지 한 일이 있었어요.』
 
77
『이 근처는 땅값도 헐할 걸.』
 
78
『싸겠죠. 얼마나 가지면 될고?』
 
79
『글쎄, 돈 천 원만 가지면 되겠지.』
 
80
『천 원요? 그렇게 싸요.』
 
81
『싸다니, 그것도 땅 나름이지만, 천 원이면 넉넉할 것 같애.』
 
82
『그렇지만, 그렇게 맘에 드는 곳이 있을까요.』
 
83
『땅야 있겠지만, 돈이 없지.』
 
84
두 사람은 서로 보고 웃었다.
 
85
그것도 두 사람이 머리 속으로만 향락할 수 있는 공상이었다.
 
86
『그러면, 우리 이 근처에 있는 집 한 채를 세내서 들어 있을까요. 창하씨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아요. 또 그 집이 청아 아버지의 일가집이 되어서 더욱 불편한 일이 많아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집에서 나올 변통을 좀 해야하겠어요.』
 
87
『글쎄 나도 그럴 생각이 없지 아니하지만, 지금 형편 같아서는 그리할 수도 없고.』
 
88
『글쎄요』
 
89
하고, 영숙은 아무 말이 없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시 말을 이어,
 
90
『그러면, 전세집 하나 얻으려면, 얼마나 주면 될까요.』
 
91
『문안 같으면 모르지만, 아마 이삼백 원만 있으면 조그만 집 하나는 얻을수 있겠지.』
 
92
『이삼백 원요?』
 
93
『그래.』
 
94
『그러면, 우리 하나 얻어 보십시다.』
 
95
『돈이 있어야지.』
 
96
『그것은 제가 어떻게든지 만들어 놓을 터이니.』
 
97
『어떻게 만들어.』
 
98
『글쎄, 어떻게 만들든지 간에 당신은 이 근처에 있는 집으로 얌전한 것 하나만 얻어 보셔요.』
 
99
『얻기야 어려운 게 아니지만, 어떻게 돈을 만든단 말이요.』
 
100
『글쎄, 그것은 왜 자꾸 물으셔요.』
 
101
『또 못 물어 볼 것이 무엇이오.』
 
102
『그것은 나중에 말씀을 할 터이니, 집만 얻으셔요.』
 
103
『안 될 말야, 그것을 알아야 얻든지 말든지 할 터이야.』
 
104
『퍽두 그러시네. 제 몸을 판 줄만 아십쇼그려.』
 
105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영숙이가 몸을 판 돈으로 산 집에 내가 살아 있을 것 같소.』
 
106
『어떻든지요. 그것은 집 얻는 날 말씀한 세음치고요. 집만 얻으셔요.』
 
107
『그러면, 우리 둘이 다니며 얻읍시다그려. 내 맘에 드는 것이 영숙의 맘에 들지 않을는지도 모르고, 영숙의 맘에 드는 것이 내 맘에 꼭 들는지도 모르니까, 아마 내 맘에 드는 것이 영숙의 맘에 안 들는지는 몰라도, 영숙의 맘에 드는 것이 내 맘에는 으례 들 터이지…』
 
108
『그와 반대겠죠.』
 
109
『반대야 그럴 리 없지. 내 말이 꼭 들어맞을 터이니, 두고 보구려.』
 
110
『어디 보아요. 그러면, 우리 둘이 다니며 얻어 볼까요.』
 
111
『그럽시다.』
 
112
『대관절, 저도 무슨 직업을 구할 수가 없을까요.』
 
113
『직업이라니?』
 
114
『돈 벌 데 말예요.』
 
115
『집안 일은 누가 보고.』
 
116
『집안 일이 무엇이 그리 많아서요.』
 
117
『그래도 할 일이 많지. 영숙이 돈 벌 일을 하지 않아도, 내 영숙이 하나 넉넉히 해 주지는 못할지언정, 굶기지는 않을 터이니, 그런 염려는 하지도 말우. 그러면 내 영숙이 세간살이 하는 값으로 다달이 월급을 주리라.』
 
118
『얼마씩이나요?』
 
119
『글쎄, 많이는 줄 수가 없는데.』
 
120
『조금 주시면 저는 받지 않을 터예요.』
 
121
『그러면, 사직을 하겠단 말요』
 
122
하고, 둘은 서로 농에 겨운 웃음을 웃었다.
 
123
『그러나저러나 창하 씨가 이리로 오신다고 하셨지요.』
 
124
『글쎄, 온다고 했는데, 찾지를 못해서 못 만나나, 어떻든 서로 기다리기로 하였으니까, 오기만 하면 만나겠지.』
 
125
이리 걸어오는 동안에 마포 다니는 전차 소리가 들리었다.
 
126
『저게 어디 가는 전찹니까.』
 
127
『삼개 나가는 전차야.』
 
128
『저기 저 벽돌 집은요』
 
129
하고, 영숙은 소나무 사이를 가리킨다.
 
130
『그것은 경성 감옥.』
 
131
『에그, 참 전중이들이 많으이.』
 
132
다시 그들은 앞을 내다보고,
 
133
『자, 저것이 한강이오. 영숙이 좋아하는 강야.』
 
134
『참말로 돛단배가 다니네.』
 
135
『저기 저 시뻘겋게 쇠로 얽은 것이 있지 않소.』
 
136
『그것이 한강 철교죠?』
 
137
『맞았어. 자, 저기 기차가 가지 않소.』
 
138
멀리서 목늘여 길게 우는 촌닭의 소리가 꿈같이 들려오고, 한 마리 흰 나비가 두 사람 앞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며 지나간다.
 
139
두 사람은 바위 위에 올라섰다. 동에서 서로 흐르다가 다시 남으로 구부러져 남에서 또다시 서로 흐르는 한강 물이 용산 나루를 비스듬히 거쳐서 삼 개로 돌아드는 거울 같은 물 위로 누런 돛, 흰 돛을 훨씬 높이 달아매고 미끄러지는 듯이 흘러가는 배들은 혹은 산굽이를 돌아가기도 하고,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멀리 강가에 깔리어 있는 하얀 모래들은 봄볕에 비치어 저녁에 하늘을 쳐다볼 제, 반짝반짝하는 별보다 더 곱고 예쁘게 반짝거린다. 탁 터지게 개인 하늘은 다만 멀리 보이는 아득한 산 윤곽이 경계선이 되어 사방으로 둘러쌌을 뿐이요, 왜청을 엷게 풀어 물들인 듯하다.
 
140
『잠깐 앉어요. 나는 다리가 아파.』
 
141
어리광 비슷 간원하듯이 영숙은 한 손으로 춘우의 팔에 매어달리며, 한 손으로는 치마를 휩싸고 바위 위에 앉았다.
 
142
『나도 좀 앉아 볼까.』
 
143
춘우도 그 옆에 가 앉더니,
 
144
『벌써 몇 달이 되었나. 우리가 저기 저 다리 밑에서 뱃놀이하던 때가…』
 
145
『글쎄요.』
 
146
영숙은 고개를 다소곳하고 생각을 하더니,
 
147
『벌써 열 달이 되었나요, 열 한 달이 되었나요.』
 
148
『그때는 오늘 우리가 이렇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지.』
 
149
『그러면요. 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뵈올 적과 도는 창하 씨에게 말씀을 들을 적에 저는 어찌나 반가운지 몰랐어요.』
 
150
『나도 퍽 반가왔어. 그때 보니까, 영숙이가 어렸을 적보다 더 이뻐졌 읍 디다.』
 
151
『무어요? 예뻐요? 참 별말씀을 다 듣겠네. 내가 예쁘면 세상의 미인이 썩어나겠 읍니 다. 나는 나처럼 못생긴 여자가 없을 줄 아는데요.』
 
152
『어디가. 나는 영숙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 같은데그려.』
 
153
『그러면, 당신의 눈이 틀리셨거나 잘못 보셨지요.』
 
154
『참 나는 영숙이 눈에 고만 마음이 끌렸어』
 
155
하고, 영숙의 눈을 정이 엉킨 눈으로 들여다보매, 영숙은 춘우의 무릎을 꼬집어 뜯으며,
 
156
『아이, 난 싫어요. 왜 그렇게 보셔요, 부끄럽게』
 
157
하며 무릎을 때리었다.
 
158
『이거 왜 이래, 아파. 부끄럽기는 내 앞에서 부끄러울 게 무엇이람. 못난이 겉으니.』
 
159
『에그, 잘난 어른 좀 보게, 내 앞에서 당신이 잘났어요. 똑 어린애 같으면서도.』
 
160
『내가 어린애 같애. 영숙이가 내 앞에서는 모두 항복을 하고 말면서.』
 
161
『그렇죠. 누가 항복을 해요. 저는 항복해 본 적이 없어요. 당신이 제게 항복은 많이 하였어도.』
 
162
『잘도 그렇겠다. 좀 생각을 해 보아요.』
 
163
영숙은 생긋 웃더니,
 
164
『듣기 싫어요. 이것이나 자셔요』
 
165
하고, 주머니에 뽕뽕 과자를 꺼내서 춘우의 입 앞으로 내밀었다. 춘우는 그것을 받아 입에다 넣으며,
 
166
『어디 요담부터 두고 볼까, 누가 항복을 하나.』
 
167
『두구 봐야 내가 이기지요.』
 
168
『그 과자 주머니나 이리 좀 주. 그것은 혼자만 먹으려고 사 가지고 온 것이요.』
 
169
『제 주머니에 있는 것이니까, 내 맘대로 하지요. 자, 제가 드리는 대로 잡수셔요. 제 명령대로요.』
 
170
한두 개 주는 대로 받아먹던 춘우는,
 
171
『그것 어디 갑갑해 견디겠나, 이리 내우.』
 
172
몽텅이째 빼앗아, 앞에다 확 펴놓으면서,
 
173
『자, 이렇게 좀 놓고 같이 먹읍시다』
 
174
할 제, 위에서 누가,
 
175
『그 무슨 쌈들을 그렇게 하나?』
 
176
하는 사람은 창하였다.
 
177
『야, 어서 오게. 그러지 않아도 기다렸어, 이리 앉게.』
 
178
창하는 그대로 서서,
 
179
『아닐세, 바람 좀 쐬고, 참 좋다, 시원한 걸!』
 
180
『저기 저리로 우리 개나리나 꺾으러 갈까?』
 
181
창하는 두 사람의 풀이 죽은 것을 보더니,
 
182
『허허, 내가 공연히 그런 말을 하였군. 그저 나는 언제든지 앞뒤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탈이야. 대관절 몇 시인가.』
 
183
시계를 보더니,
 
184
『벌써 이렇게 되었나, 한 시나 되었네. 가서 점심이나 좀 먹어야지. 이 근처에 먹을 것이 변변해야지. 큰길에나 나가야 내지 사람 음식이나 있을까.』
 
185
혼자 죽 늘어놓더니,
 
186
『자, 가세』
 
187
하고, 앞장을 서서 활개를 치고 모자를 뒤로 젖혀 썼다.
【원문】(13)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99
- 전체 순위 : 698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99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1) 화수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어머니 [제목]
 
  나도향(羅稻香) [저자]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20권)     이전 13권 다음 한글 
◈ 어머니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2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