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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少年)은 자란다 ◈
◇ 용상(龍牀)보다 더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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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25일
채만식
1
少年[소년]은 자란다
2
- 1. 龍牀[용상]보다 더한 것
 
 
3
서울 차가 들어왔다.
 
4
조금 있다, 나오는 목이 미어지도록 찻손님이 풀리어 나왔다.
 
5
땀 밴 얼굴과 휘감기는 옷이, 짐이랑 모두들 시꺼멓게 기차 연기에 그을리었다. 뚜껑 없는 곳간차와, 찻간 지붕에 올라앉아 오기 때문이었다.
 
6
영호는 저도 연기와 석탄재가 쏟아지는 뚜껑 없는 곳간차를 타고, 대전까지는 아무 탈없이 아버지와 함께 오던 일이 생각이 나면서, 누가 감추어 두고 안 주기나 하는 것처럼 잃어버린 아버지가 안타깝게 보고 싶었다.
 
7
곧 울음이 터지려고 입이 비죽비죽하여지는 것을 억지로 참고, 영호는 나오는 찻손님들을 열심히 여새겨 보았다.
 
8
찻손님들은 오늘도 역시 한 모양들이었다.
 
9
큰 바랑(룩작)을 지고도 손에 짐을 들고 한 사람과, 큰 보따리를 서너 개씩이고 안고 한 여인네가 태반이었다. 더러 섞인 아이들도 저보다 큰 봇짐을 지거나 메거나 하였다. 이런 손님은 열이면 열이 다 쌀을 가지고 가, 혹 은빈 몸으로 가서 물건을 쳐오는 서울장사들이었다.
 
10
양복이나 조선옷이라도 깨끗하게 입은 점잖다는 손님은 퍽 드물었다.
 
11
영호는 한 사람이라도 놓칠세라고 애를 쓰면서 나오는 찻손님을 일일이 눈 여겨 보았다. 그러나 그 많은 총중이 아무도 아버지는 아니었다.
 
12
느지감치, 내외 양주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여느 손님들보다 알아보게 옷 주제가 남루하고 헌 이불이야 옷보따리가 너주레하고, 지쳐 기운이 없이 걸어 나오는 일행은 묻지 않아도 만주나 이북에서 오는 전재민이었다.
 
13
영호는 전재민이 나오고 있으면 이상히 반가운 것 같은 서러운 것 같은 그래서 저절로 가슴이 뿌듯이 메고 하였다.
 
14
그러면서 영호는 혹시라도 만주에서 같이 살던 사람이라도 있는가 하여, 전재민이면 보기를 더 유심히 하였다. 이런 때에 그런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잃어버린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이나 반가울 것 같았다.
 
15
영자가 어느 겨를에 쫓아와 팔을 붙잡고 몸을 실리면서, 저도 나오는 찻 손님들에서 아버지를 찾는다.
 
16
영호는 한팔로 영자의 어깨를 끌어 안아준다.
 
17
"짐 놔두구 왔니?"
 
18
영호가 눈은 찻손님들을 보는 채 물었다.
 
19
영자도 찻손님을 보는 채
 
20
"응 …… 파출소 옆인깐 갠찮아."
 
21
영자는 아홉 살, 제 나이보다 퍽 숙성한 계집아이였다. 열 살도 더 먹은아이만큼이나 키랑 하는 짓이랑이 숙성하였다.
 
22
다팔다팔 단발머리를 하고, 눈이 크고 동그랗고 한 것이 귀염성스럽다. 얼굴은 그러나 너부스름하고, 복판이 조금 죽고, 코가 나찹고 하여서 맺히고 고집 세거나 영악스런 데는 없어도, 아무가 보아도 순하고 말썽 없는 아이로 생긴 모습이었다.
 
23
오라비 영호는 사나이요, 나이도 열네 살이요 하여서 몸집이랑 키는 영자보다 훨씬 컸어도, 얼굴 생김새는 한 틀에 박아낸 것처럼 서로 잘 닮은 오뉘 였다.
 
24
나오는 찻손님은 그럭저럭 너끔하여졌다.
 
25
"오빠아!"
 
26
영자가 입에 손가락을 물고 성화난 소리로 힘없이 부른다.
 
27
영호는 영자가 그 다음 할 말을 지레 알아듣고, 우두커니 대답이 없다.
 
28
"아버지 왜 안 오시어? 오빠아!"
 
29
"………"
 
30
영호는 의미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31
맨 마지막으로 전재민 한 가족이 나왔다.
 
32
해어진 담요에다 큰 보따리를 싸서 멜빵 걸어 지고, 양편 손에 아무렇지도 않은 구지레한 짐을 갈라 들고 한 남자와, 등에는 잠들어 고개가 떨어지는 애기를 업고 헐어빠진 큰 가방을 머리에 이고 손에도 보퉁이를 들고 한 애기 어머니와 조그마한 계집아이 하나와 이렇게 네 식구였다.
 
33
영호는 저만한 사내아이 하나만 없지 저의 집이 만주에서 나설 때와 비슷하기도 하다고 생각하였다.
 
34
그렇거니 하고 보면 계집아이는 키는 조금 작어도 영자와 한 낫세나 되어 보이고, 어머니의 등에 업히어 잠이 든 애기도 마침 죽은 동생 영수만 하고하였다.
 
35
'우리도 저렇게 어머니, 아버지, 동생, 다들 같이 나섰었는데 …… 남은다 들 저렇게 잘 오는데 우리는 어떡하다 ! 어떡하다 우리는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동생은 죽고 그러고서 아버지마저 잃어버리고 어린 영자와 우리 둘이만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여기를 와서 떨어져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고 의지할 곳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 어떡하다 우리는 이 모양이 되었는고 ──’
 
36
이렇게 생각을 하다, 영호는 눈에 눈물이 핑 돌고 터지려는 울음을 참느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영호는 실컷 울기라도 하였으면 싶은 때도 영자가 울까 보아 억지로 참곤 하였었다.
 
37
영자가 앞을 지나쳐 가고 있는 그 전재민 가족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잡은 영 호의 팔을 잡아당긴다. 저도 그 일행이 무심히 보아지지 않았던 뜻 이었었다.
 
38
영호는 별안간 무엇이 시키는 것처럼 영자의 손목을 잡고 끌면서 부리나케 그 일행의 뒤를 쫓아갔다.
 
39
"어디서 오세요?"
 
40
영호는 가는 앞을 가로막듯 하고 내외를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41
일행은 웬 아이들인데 이러는가 하고 이상히 여기면서 주춤주춤하다가 멈추어 선다.
 
42
"만주서 온단다!"
 
43
애기 어머니가 대답이라고 하기보다는 탄식하듯 그러면서 짯짯이 둘이를 번갈아 보다가
 
44
"왜 그러니?" 하고 퍽 상냥하게 묻는다.
 
45
밉지 않게 생긴 아이들인데, 옷 주제하며 보아하니 자기네와 한가지로 전재민의 자녀인 듯하고, 그런데 말을 묻는 태도랑 눈에 눈물이 글썽 거리는 것이랑 무슨 심상치 않은 곡절이 정녕 있거니 하는 모양이었다.
 
46
"만주믄, 어디서 오세요?"
 
47
영호가 다시 이렇게 묻는다. 알아서는 무얼 할까마는 마주에서 왔다고 하니 어쩐지 생판 남 같지가 않고, 만주면 또 어디며, 그런 이야기라도 하여 보고 싶었던 것이었었다.
 
48
"저어, 목단강(牧丹江)이란 데서 온단다."
 
49
애기 어머니가 대답을 하고.
 
50
그 뒤를 받아 여태 보고만 섰던 남자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면서 말을 거든다.
 
51
"왜 그러니 ? 느이두 아마 만주서 왔나보구나?"
 
52
"내애."
 
53
"만주 어디서?"
 
54
"대이수거이(大梨樹溝[대이수구])예요. 간도 왕청현(間島汪淸縣)…… 낙타산( 駱駝山) 서 들어가는."
 
55
"오오, 간도 왕청현 ! 낙타산이면 우리가 살던 목단강성허구 접경은 접경 이지. …… 허기야 우리는 목단강성에서두 훨씬 복판 해림(海林)서 살다 왔지만 …… "
 
56
남자는 그러고는 영호 남매를 고쳐 보면서
 
57
"그런데 …… 느이 부모는?" 하고 묻는다.
 
58
영호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발부리를 내려다보면서 대답이 없다.
 
59
"부모를 잃어버린 게로구나 ? 만주서 오다 …… 그랬지?"
 
60
남자가 재우쳐 그렇게 물어서야 영호는 가만히
 
61
"내애."
 
62
남자는 혀를 차면서
 
63
"어떡허다 그랬니?"
 
64
"어머니는 만주서 …… 만주서 …… 돌아가시구, 아버지는 저어 대전( 大田) 이란 데서 찰 갈아타다 …… "
 
65
여기까지 말을 하다 영호는 그만 흑하고 느끼더니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면서 운다.
 
66
영자도 따라서 운다.
 
67
남자는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68
"이런 딱한 노릇이라구야!" 하고 우두커니 서서 두 아이를 바라다만 본다.
 
69
애기 어머니가 머리에 이 가방을 땅바닥에다 내려놓고 영자의 옆으로 가까이 온다.
 
70
"쯔쯧, 가엾어라! 이 어린것들이 …… 어떡헌단 말이냐!"
 
71
애기 어머니는 영자의 머리도 쓸어 주고, 치맛자락으로 눈물도 닦아주고하면서 일변
 
72
"느이 아버지는 느이를 잃어버리구 얼마나 앨 태구 찾아댕길거나!…… 가엾어라! 몇 살이냐?"
 
73
영자는 더욱 울기만 하느라고 대답도 하지 못한다.
 
74
"키는 좀 커두, 우리 인숙이허구 한동갑인가보다! 쯔쯧!"
 
75
애기 어머니는 인숙이라는 딸아이를 돌아다보면서, 그러다 손에 든 보따리를 풀고 신문지에 싼 것을 꺼낸다. 기다랗게 만 김밥이었다.
 
76
"옜다, 이거라두 오뉘 하나씩 노나 먹어라. 느이가 무슨 돈을 지닌 게 있어 밥이라두 사먹구 했겠니. 보나마나 굶구 있을 텐데 …… 밴들 조옴 고프며!"
 
77
인숙이라는 아이는 영자가 우는 바람에 저도 곧 울상을 하고 있었다. 울상 을 하고 서서 저의 어머니가 김밥이랑 주고 하는 것을 보고는 제가 가졌던 과자 봉지를 얼른 영자한테 내밀면서
 
78
"어머니, 나 이거 이애 주우?" 하고 묻는다.
 
79
"그래라. 에구 우리 인숙이 기특두 하지!"
 
80
애기 어머니가 웃으면서 칭찬이었다.
 
81
중로에서 아버지밖에 없던 그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어린 오뉘가 지향 없이이 정거장에 떨어져 울면서 방황하기 사흘…… 그동안 영호 오뉘는 찻간에서랑 남에게 따뜻한 동정을 받아보기가 비로소 처음인 것은 아니었었다.
 
82
그러나 아무 경황이 없고, 차라리 남에게 동정을 받아야 하게 생긴 이들 지지리 궁한 전재민에게서는 생각 밖엣 일이었었다.
 
83
처지가 같으면 서로 동정도 하게 마련인 것이라고 영호는 생각하였다.
 
84
"느이나 우리나 이게 모두가 해방 덕이루구나! 느이는 부모를 잃어버리 구서 이 고생을 하구 …… 우리는 딸자식을 …… 혼인날까지 받아논 딸 자식을 그 무도한 되놈들이 …… "
 
85
남자는 문득 울화가 북받치는 듯, 그러다가 말을 뚝 끊으면서 끝을 한숨으로 흐린다.
 
86
얼굴은 곧 울기라도 할 듯이 좋지 않았다.
 
87
애기 어머니도 같이 얼굴이 좋지 않아지면서
 
88
"시상으, 이럴래서야 해방이 고마울 게 무어람 ? 외려 해방 없이 살기 만두 못하지!" 하고 원망스럽게 뇌사리었다.
 
89
남자는 다시 씹어 뱉듯
 
90
"제길, 두구 봅시다. …… 좌우간 이놈의 해방인지 막덕인지가 얼마나 우리를 호강을 시켜주나 …… "
 
91
"당신두 그런 말 마시우. 호강 아냐 우리를 용상(龍牀))에다 올려 앉혀 준들 그 대갚음이 되우?"
 
92
영호는 참 그렇다고 생각하였다.
 
93
용상에 올라앉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다시 없이 좋은 일이요, 큰 호강이라는 뜻인 줄은 알겠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이 있고 큰 호강을 하고 한다더라도 아버지를 잃어버린 이 설움과 외로움과 어려움은 나수지를 못 할것 같았다.
 
94
더우기나 어머니를 생각한다면, 세상에 없는 일이 있어도 그 섧고 원통 함이 도로 물려질 수는 없는 것이었었다.
 
95
아버지는 다행히 다시 만나게 될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어머니는, 만주 땅에다 묻고 온 어머니만은 목에서 피가 나도록 어머니를 불러도 해방이 열 번 고쳐 되어도 영영 오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였다.
【원문】용상(龍牀)보다 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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