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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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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나도향
1
어머니 (7)
 
 
2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갔다. 푸른 빛이 가지가지마다 철철 흐르는듯 하던 녹음도 이제는 쌀쌀한 바람을 맞아 빛이 여위고 몸이 마르게 되었다. 스러지는 듯한 벌레의 숨 모는 소리가 나무 틈에서 난다.
 
3
바람이 한번 불면 하늘과 땅에 모든 수분(水分)이 번개치듯 쭉쭉 말라 들어, 구름은 걷히고 이슬은 마른다. 또다시 가을이 왔다.
 
4
춘우는 여름옷을 가을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그러고 집에서 나오기는 오후 여섯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조급한 마음으로 걸음을 총총히 걸어서 계동 박창하의 집으로 향하여 갈 때, 그의 마음은 영숙을 보리라는 희망으로 가득 찼었다. 그저께 만나 본 영숙은 오늘 만나는 것이 퍽 오랜 것 같고 잊어버릴 것 같았다.
 
5
춘우가 박창하의 집에 들어서 사랑 문을 열었을 때, 방 안에는 아무도 없고, 창하가 보던 책이 방바닥에 펴 놓은 채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옷거는 못에는 모자도 없고 옷도 없었다.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6
그러나, 어떻든 구두를 끄르고 방으로 들어갔다. 모자를 벗어 던지고 두 다리를 뻗고서, 우연히 책상 위를 보니까, 거기에는 연필로 아무렇게나 갈긴 글발이 있었다.
 
7
그것은 창하의 편지였다.
 
8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기를 바라네.」
 
9
춘우는 한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창하 오기를 기다리었다. 시계가 일곱 시를 치고 삼십분이나 넘어도 창하는 오지 않았다. 춘우의 마음은 죄어오기 시작하였다. 석쇠 위에 얹어 놓은 간덩이 모양으로 오그라지기 시작한다. 창하를 만나고 싶은 그것보다도 창하를 만나야 영숙의 기별을 알수 있으며, 영숙을 만날 수 있음이었다.
 
10
춘우는 또다시 일어나서 문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캄캄한 길거리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창하를 기다리었다. 동리 집에서 은은히 들리는 시계 소리가 아홉 번을 운다. 그는 계동 넓은 길을 모자도 쓰지 않고 다섯 번을 오르락내리락 하여 보았다. 그래도, 창하는 오지 않았다. 다시 창하의 집 사랑으로 들어가서, 구들장 위에 탁 자빠지어서 사지를 쫙 펴고 죽은 사람처럼 있었다. 그러고, 눈을 감고서 나는 죽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여 보았다. 캄캄한 무덤 속에 누워 있다고 하여 보았다. 구더기와 땅두더지가 자기 몸을 파먹고, 척척한 샘물이 자기 얼굴에 떨어진다고 하여 보았다. 그러고, 자기가 사랑하는 예쁜 영숙도 자기와 같이 이렇게 죽은 사람이 언제든지 한 번 되고야 말 것이라 하여 보았다. 사람은 언제든지 한 번 죽는다 하는 생각을 할 때, 그의 가슴에서는 불같이 뜨거운 힘이 생기는 듯하였다. 사람은 언제든지 죽는다. 죽기 전에 힘있게 살아 보자. 무슨 짓이든지 하여보자. 무서울 것이 없다, 하는 생각이나며 피가 끓고 새힘이 나는 듯하였다.
 
11
영숙을 영구히 내 물건을 만들고야 말 터이다. 영숙은 내것이다 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릴 때 영숙은 영구한 자기 것이 된 것 같고, 마음은 말할 수없이 즐거웠다. 세상의 명예와 지위와 부귀를 내던지더라도 영숙은 내던질 수 없다는 것이, 그때 춘우의 가슴속에서 또다시 한번 일어나는 뜨거운 결심 이었다.
 
12
춘우는 잠깐 잠이 들었었다. 어느 틈엔지 모르게 몽롱한 가운데로 스미어 들어 버리었다. 안개 끼인 눈앞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시계 소리가 꿈 속에서 듣는 것인지 생시에 듣는 것인지 모르겠더니, 깜박 정신이 없었다.
 
13
몇 시가 되었는지 모른다. 누구인지 춘우는 옆에 와서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14
『춘우.』
 
15
밤 기운에 적신 목소리가 춘우의 꿈 기운에 잠긴 정신을 반쯤 깨웠다. 그러자 다시 한번,
 
16
『춘우 자나』
 
17
하는 소리를 들을 제, 춘우는 벌떡 일어났다.
 
18
『응, 창하.』
 
19
그러고 사면을 둘러볼 때 창하는,
 
20
『웬 잠을 그렇게 자나, 매우 기다렸지?』
 
21
하며 반갑지 않은 얼굴로 춘우를 볼 때, 창하의 눈에는 즐겁지 않는 소식을 가지어 온 듯한 기운이 끼었다. 춘우는 눈을 비비며,
 
22
『고만 깜박 잠이 들었어!』
 
23
하고 우선 영숙의 소식을 물으려 하였으나, 창하의 입에서 먼저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4
창하는 옷을 벗고,
 
25
『몇 시에 왔나?』
 
26
하고 자리에 앉는다.
 
27
『여섯 시에』
 
28
『무엇이야? 여섯 시!』
 
29
하고 창하는 놀라면서 시계를 쳐다보더니,
 
30
『벌써 저렇게 되었나, 열 한 시 이십 분일세. 이건 아주 미안하이그려.』
 
31
춘우는 참다 못하여,
 
32
『관철동에 가 보았나?』
 
33
하고 고개를 들었다.
 
34
『갔었어!』
 
35
『만나 보았나?』
 
36
『보았어.』
 
37
『내가 한 말을 전하였나?』
 
38
『전했지.』
 
39
『그러니까, 무엇이라던가?』
 
40
『오늘은 할 수가 없는 형편이데.』
 
41
『왜?』
 
42
춘우는 눈에서는 의심스러운 빛이 돌았다.
 
43
『오늘 자기 남편이 시골서 오기 때문에 올 수가 없다고 하데.』
 
44
『남편이 왔어?』
 
45
『응.』
 
46
『그래, 자네도 만나 보았나?』
 
47
『그래서, 지금에야 온다네, 저녁을 먹고 가라고 붙잡아서, 그대로 올 수가 있던가. 그런데 저녁을 어떻게 늦게 했는지 먹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요.』
 
48
춘우의 가슴에서는 쓸데없는 질투의 마음이 칼날로 자기 전신을 에이는 듯 하였다. 즐겁게 지내던 두 달 동안의 꿈 같은 행복은 순간에 끊어지고 말았다. 악착한 운명은 춘우와 영숙이 정성껏 꾸며 놓은 사랑의 생활을 짓 밟고야 말려한다. 잔잔한 바다에 비친 달빛을 한 덩이 검은 구름이 가리어 버리고 뜻하고도 뜻하지 못한 맹렬한 폭풍우는 지금에 어디서든지 닥쳐올 것이다. 물결이 솟고 배가 깨지고 굳세고 무서운 소리가 들린 연후에야 다시 고요하여질 것이다. 춘우와 영숙은 그 수선스럽고 처참한 가운데를 꿰뚫고 나가지 않고는 평화로운 저쪽 언덕에 올라설 수가 없을 것이다. 저쪽 언덕에 평화로운 나라를 찾아 가지 못하면 깨지고 조각이 나는 파멸을 당할 수밖에 없는 거룻배다. 종이로 만들어 바다에 띄워 놓은 배와 같이, 지금에 무서운 꼴을 당할 때는 오고야 말았다. 춘우는 한참이나 말이 없이 앉아 있을 때창하는 친구를 위하여 충고를 한다는 어조로 등대같이 번득거리는 두 눈에 광채를 내며,
 
49
『자네는 지금 자네 인생이 위태한 분기점에 서 있네. 지금 자네의 한 번 마음먹는 것과 한 번 발길을 내놓는 것이 자네의 일생에 총결산을 할 때, 반 이상의 원인을 만들어 놓을 것 일세』
 
50
하며 침중한 얼굴로 말을 하였다.
 
51
『아네, 모든 것을 아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알고 내가 해야 할 것도 아 네. 나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도 나는 벌써부터 알고 있네. 그러나, 나는한 가지 나의 마음으로 알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네…』
 
52
『알겠네. 그것은 애인을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심리이겠지! 그러나, 자네에게 장차 닥치어올 운명이 결코 행복스럽지 못할 것을 나는 지금 단언까지 할 수 있는 것일세, 자네는 비같이 쏟아지는 눈물을 흘리고, 바닷물을 마시고 고래같이 술을 마시고도, 자네의 조그마한 가슴은 타고 또 타고 해서 맨 나중에는 차디찬 잿덩어리가 되고야 자네 얼굴에 웃음이 있을것 일세. 그러나 나는 자네의 그 웃음을 보지 않으려 하네. 차디찬 얼굴에서 쓸쓸하게 도는 웃음을 나는 보기를 원하지 않네.』
 
53
『자네의 청춘도 벌써 다 가고 말았는가? 청춘에는 어디가지 청춘으로 지내야 할 것이다. 뱃속에서 갓 나온 어린애를 보고서, 그 애가 늙어 죽은 뒤에 땅속에 묻힌 백골을 생각하는 철학자 모양으로 자네는 너무 늙고 영리하여졌네.』
 
54
『아니, 나도 청춘을 아끼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청춘을 아끼지 않고 어떻게 하겠나. 될 수만 있으면, 천 년이나 만 년이나 청춘대로 살고 싶으이. 그렇지만, 맵고 날카로운 세상은 나를 벌써 늙게 하였네. 아름다운 여자를 볼 때, 나의 가슴이 타오르기는 고사하고, 그 분 바르고 연지 칠한 피부와 살 속에 묻힌 앙상한 뼈다귀가 먼저 들여다보이는 것을 어찌하나. 여자의 웃음이 그 붉은 입술 위에 벌어질 때, 나는 그 웃음 때문에 가슴이 무너지어 버린 수없는 청춘 남자를 불쌍히 여길 수밖에 없네. 나는 결코 여자를 사랑 할 수가 없어.』
 
55
『그러면 자네는 이 세상에 엄연한 사실도 존재한 사랑을 부인하나?』
 
56
『아니지, 그렇지 않지, 나의 친구인 자네도 지금 사랑으로써 행복을 느끼고, 그것 때문에 속을 조이고 있지 않는가? 세상에 사랑은 있지, 그것은 부인 하지 못하지. 그렇지만, 현대에 생존한 모든 인류가 사랑을 할 수 없을만치 병적(病的)으로 되어 버리었다는 말일세. 지금에 이 세상을 깨뜨려 부수 기전에 결코 사람들이 사랑을 하지 못하지, 현대 사람들은 너무 참지 못 할 고민과 비애를 지내왔네. 너무 약아지었네. 너무 의심이 많으이, 너무 자기를 위하게 되었네. 그렇지, 하늘에 비행기가 날고, 땅으로 기차가 달 음질하고, 물속으로 잠항정이 다니고, 우리가 열흘에 다니던 길을 편안히 앉아서 하루 안에 간다는 것이 반드시 생활조건(生活條件)이 아닐 것일세.』
 
57
춘우는 감동한 듯한 눈으로 한참이나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58
『오늘 밤에 내 가슴속에 있는 것과는 자네 말하는 것이 너무 거리가 멀으이. 나는 나의 할 것이 있으니까, 사랑은 자기의 희생(犧牲)이야. 자기를 희생 할 수 없는 사랑은 결코 사랑이 아니니까…』
 
59
창하는 껄껄 웃으며,
 
60
『하여 보게. 해 보다 고만두지는 말게. 나도 자네를 위하여 힘있는 데까지는 다해 보겠네. 나는 자네와 영숙의 사랑을 완전히 만들 수가 있다 하면, 갈릴리 바다로 예수가 걸어간 것보다도 더 이상의 기적(奇蹟)을 행한 줄로 알 것일세.』
 
61
춘우는 간원하듯이,
 
62
『창하』
 
63
하고 잠깐 가까이 앉으며,
 
64
『자네는 참으로 나를 위하여 힘써 주겠나?』
 
65
하고 손을 쥘 듯하였다.
 
66
『조력하지. 나는 그 기적이 보고 싶네. 만일 그 기적이 내 눈앞에 나타난다하면, 나는 이 세상이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다른 것을 깨닫겠네. 무슨 광명을 찾아내겠네.』
 
67
『그러면, 나는 한 가지 힘을 더 얻었네. 나는 모든 것을 내버리고 자네가말하는 그 기적을 꼭 실현해 보겠네… 아니지, 기적이 아니지, 으례이 될 일이지.』
 
68
『나는 자네에게 말하여 두네. 첫째로 자네는 자네 가정을 떠나고, 둘째 로자네는 자네 몸을 제단 위에 올려 놓게.』
 
69
『알았네.』
 
70
『그리고, 자네는 주고서 받지를 원하지 말게. 만일 자네가 완전히 나의 지금 한 말을 실행할 수가 있다 하면 자네에게는 그래도 무엇이 남을 터이니까… 자네가 지나간 두어 달을 꿈 속에 지내 왔지만, 그 꿈을 깨게 된 때가 온 오늘에 자네는 참으로 세상을 알 수가 있을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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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2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