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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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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나도향
1
어머니 (8)
 
 
2
그날 저녁 영숙의 집 공기는 매우 엄숙하여지었다.
 
3
시시덕거리는 하인들의 얼굴들은 주인이 오자 성난 사람들처럼 입들을 다물고, 소리를 높이어 이야기하던 안잠자기는 무슨 말 한 마디만 하려도 뒷구멍으로 수군거린다. 영숙의 어머니는 담뱃대만 들고서 멀거니 앉아 있고 영숙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괴로운 빛이 서글픈 웃음과 함께 떠돈다.
 
4
 
5
건넌방 아랫목에는 영숙의 남편이 다리를 뻗고 누워 있고 영숙은 그 옆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잡지장을 뒤적거리고 있다. 영숙의 가슴은 답답한 기운으로 내리눌리는 듯한데, 영숙의 남편은 무슨 큰 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침중한 얼굴에 둥근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영숙은 다만 가벼운 기침으로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려 하였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영숙의 남편은 더 참을 수 없어서 말을 꺼내는 것처럼,
 
6
『여보!』
 
7
하고, 영숙을 불렀다. 영숙은 고개를 돌리어,
 
8
『녜』
 
9
하고 자기 남편을 볼 때, 남편의 얼굴은 거짓말 한 사람 모양으로 여전히 엄연할 뿐이었다. 영숙은 한참이나 보고 있다가,
 
10
『왜 그러셔요?』
 
11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방바닥에 있는 잡지 그림만 내려다보았다.
 
12
『당신이 얼마나 나의 마음을 알아 주는지, 나는 언제든지 한 번 물어 보리라 하면서도, 여태까지 물어 보지를 못하였는데, 얼마나 영숙은 나를 생각 해주?』
 
13
하며, 고개를 이쪽으로 돌린다. 영숙은 반이나 부끄럽고 말대답하기가 어렵다는 듯이, 다만 웃음만 웃고 아무 말이 없을 뿐이다.
 
14
『대답을 좀 해 봐요』
 
15
하고, 철수는 영숙의 얼굴을 뚫어지듯이 본다.
 
16
『무슨 대답을 해요?』
 
17
『내가 말한 데 대하여 말야?』
 
18
『그런 말씀을 지금 저에게 물어 보실 것이 무엇예요?』
 
19
『아니, 나는 말로써 그 대답이 듣고 싶으니까 말요.』
 
20
『대답하나 아니 하나 벌써부터 아시겠지요.』
 
21
『무엇을?』
 
22
『무엇이 무엇예요?』
 
23
하고 매무시를 잠깐 고쳐 매다가 암상스러운 얼굴에도 참지 못해서 나오는 웃음이 입 가장자리에 새어나온다.
 
24
철수는 무참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어 돌아누우면서,
 
25
『나는 모르겠소. 물어 보는 내가 그르지』
 
26
하니까, 영숙은 다시 철수의 어깨를 끌어 잡아당기며,
 
27
『왜, 돌아 드러누셔요. 내가 그렇게도 보기 싫으셔요. 보기 싫은 사람의 집에를 무엇 하러 오셨어요?』
 
28
철수는 열이 난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듯이 돌아누웠다. 영숙은 까짜나 올리는 듯이,
 
29
『왜 말씀을 않으셔요. 대답 좀 하십쇼. 사람의 말이 말 같지 않습니까?』
 
30
철수는 팔꿈치로 지근덕거리는 영숙의 팔을 뿌리치며,
 
31
『듣기 싫여, 내가 대답을 아니 했어?』
 
32
하고 흘긴 눈으로 영숙을 본다.
 
33
『그러면, 누가 말대답을 아니 한 사람이 있어요?』
 
34
『그는 모르겠소. 그러나 저러나, 오늘 내가 소문을 들으니까 좋은 소문 이들립 디다. 날더러 보기 싫여한다 합디다마는, 영숙이야말로 내가 그렇게 보고 싶지는 않으리다』
 
35
하며, 다시 너하고는 말하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린다. 영숙의 가슴은 뜨끔하였다. 새파란 기운이 날 듯하던 그의 목소리는 어디로인지 쑥 들어가 버릴 듯하였다. 그러나,
 
36
『소문이 무슨 소문얘요?』
 
37
하고 철수를 떡덩어리 반죽하듯 꽉꽉 주무르며 말을 한다.
 
38
『대답하셔요. 왜 말을 안 하세요. 그 소문이란 무슨 소문얘요』
 
39
하고 재우쳐 묻기는 하나, 으례 언제든지 한 번 있고야 말 이 일이 갑작스럽게 아무 준비가 없을 때, 철수에게서 먼저 시작된 것이 영숙에게는 의외 일 뿐 아니라 기선(機先)을 눌린 것 같아서, 그에게는 더욱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과 악지가 생기게 되었다.
 
40
철수는 느럭느럭한 목소리로,
 
41
『그것은 들어서 무엇하료. 내 입으로 말하기는 싫소. 나는 이제야 나의 몸이 불쌍한 사람인 것을 알았소.』
 
42
『무엇이 불쌍해요? 왜 말을 못 하셔요?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예요?』
 
43
『불쌍하지 불쌍해.』
 
44
『무엇이 불쌍해요. 당신은 남부럽지 않는 재산이 있지요. 안해가 있지요. 자녀가 있지요. 무엇이 불쌍해요?』
 
45
『그렇겠지. 남들은 날더러 팔자 좋은 사람이라 하겠지. 그렇지만, 나같이 불쌍한 사람이 없어. 나는 재산이 있기 때문에 불행하다. 안해들이 나를 믿어 주지 않는다. 나의 마음 보다도 나의 재산을 위하여 나를 위하는 사람뿐이야. 만일 나에게 재산이 다 없어진다 하면 나를 따라올 사람은 하나도 없을 터이지. 나도 내가 하고 싶어서 영숙을 이렇게 내버려둔 것은 아니요. 영숙은 언제든지 어머니께 시집 잘못 보내 주었다고 원망한다는 말을 내 가한두 번 들은 바가 아니오. 그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참으로 섭섭한 마음이 생기고, 당신이 야속합디다. 나도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비애를 모르 는바가 아니요.』
 
46
영숙의 마음은 변동이 생기었다. 그의 머리속에는 춘우가 보이었다가, 다시 눈앞에 있는 자기 남편이 보이었다. 영숙의 마음속에는 춘우도 그립지 않은 바가 아니지만, 지금에 자기에게 애원 비슷하게 원망 비슷하게 말을하는 자기 남편이 불쌍한 생각이 났다. 그러고 그의 가슴에서 인정이 일어날 때 의리가 생겨나는 듯하였다. 어리었을 때부터 자기와 같이 살고 어여쁜 딸을 낳고 또는 자기 어머니와 자기를 살리는 자기 남편을 자기가 배반 하는 것은? 하는 생각이 날 때 그의 가슴에는 괴로움이 있었다. 춘우의 따뜻한 사랑을 내버릴까? 자기 남편을 의리로 말미암아 좇을까? 여기에 비로소 영숙은 두 남자를 저울질하게 되었다. 영숙은 어느 편이든지 저울 추가 기울어지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47
『제가 불만족하게 하여 드린 것이 무엇얘요?』
 
48
영숙은 말을 낮추어서 애원하는 듯하기도 하고, 또는 위로하는 듯한 어조로 말을 하였다.
 
49
『당신이 나에게 불만족을 준 것은 하나도 없소. 도리어 내가 당신에게 불만족을 준 것이 말할 수 없이 많지.』
 
50
『무엇이 그리 많아요?』
 
51
『무엇이라고 꼭 말을 하리까?』
 
52
『하셔요.』
 
53
『내가 첫째로 당신에게 나의 사랑의 전부를 주지 못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말할 수 없이 죄악이요. 내가 나 한 몸뚱이로서 여러 여자를 데리고 산다는 것이 절대로 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오, 내가 내 몸에서 난 자식들을 볼 적마다 도리어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소. 그러나, 사랑은 언제든지 하나인 것이요. 결코 둘이 아니오. 오늘에 나는 형식적으로 두 여자를 데리고 살지만, 나의 참사랑이 가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는 것이요. 당신은 남의 첩된 것을 언제든지 불만족으로 생각하고 비관까지 하나 봅 디다만, 사랑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형식을 초월한 것이요, 무엇이든지 좋소. 어떠한 지위도 좋을 것이요.』
 
54
영숙은 그 말을 듣더니, 얼굴이 조금 불그레하여지며,
 
55
『저는 조금도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녜요. 그렇지요, 당신이 나를 어떠한 지위에 두시든지 나는 완전한 사랑이 받고 싶어요.』
 
56
『완전한 사랑?』
 
57
철수는 한참이나 가만히 있더니,
 
58
『그렇겠지. 누구든지 완전한 사랑을 받고 싶겠지? 그러나 당신은 참으로나에게 완전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요? 당신은 참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다 하여 나를 사랑하오?』
 
59
영숙은 대답하기를 주저하였다. 참으로 말하려면, 자기가 자기 남편을 참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영숙이 자기 남편을 사랑한다는 것보다도 정리로써 그를 따르고 의리로써 그에게 일생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숙은 그 자리에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는 없어서,
 
60
『그러면, 나의 사랑을 의심한다는 말씀이지요?』
 
61
하고 도리어 자기 남편을 반박하였다. 철수는 시들스럽다는 듯이 한번 픽 웃으면서,
 
62
『의심 하지는 않소. 결코 의심하지는 않소.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조 금도 불만하게 한 일이 없는 것을 나는 단언할 수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소.』
 
63
『불만족하게 한 일이 없다구요? 흥! 좋은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에게 그런 말씀을 할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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