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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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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나도향
1
어머니 (4)
 
 
2
이 주일이 지나갔다. 오늘 춘우는 창하의 집으로 와서 함께 영숙의 어머니를 만나 보러 가기로 하였다.
 
3
춘우가 영숙의 남편이 시골로 내려간 틈을 타서, 영숙 어머니를 찾아보러가는 것이 일부러 그리한 것은 아니지만, 춘우의 마음에는 그의 남편이 옆에 있는 것 보다도 없는 것이 좋았다.
 
4
춘우는 창하와 함께 영숙의 집 문간에 와 섰다. 영숙 어머니를 십여 년 후에 만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 아닌 게 아니지만, 이 주일 전에 만났던 영숙을 다시 만나는 것이 더 반가운 것 같았다.
 
5
창하의 인도로 그 집에 들어서자, 집 안에서는 가는 여자의 목소리가 머리카락 얼크러지듯, 그윽하게 들린다. 거기에는 영숙의 목소리도 섞이어 있었다.
 
6
모자를 벗고 마당 한가운데 섰을 때 마루에 앉았던 영숙이가 반가이 나오며,
 
7
『어서 오십 시오』
 
8
하고 맞아 주더니, 다시,
 
9
『올라오시지요』
 
10
하고 뒤로 물러선다.
 
11
옆에 앉았던 어머니는 내외나 하려는 듯이 일어서 들어가려 하며, 영숙을 보 며, 눈을 두레 두레하고,
 
12
『누구냐?』
 
13
하며 묻는다. 영숙은 핀잔이나 주는 듯이,
 
14
『왜 모르셔요. 석다리께서 같이 살던…』
 
15
하며, 춘우를 보고 반기는 웃음을 준다. 영숙의 어머니는 한참 생각 하더니, 갑작스럽게 놀라면서
 
16
『응』
 
17
하고, 벌떡 일어나, 춘우의 손목을 잡으며,
 
18
『이런 참 이게 누구야. 에그, 퍽도 자랐네. 나는 정신이 없어서 알아보지를 못했군. 그래, 어머니도 안녕하시고 또 누님도 잘 있소?』
 
19
반말에 허우에 되는 대로 말을 하는데, 눈에는 반가운 눈물이 괴었다.
 
20
『자, 어서 좀 앉어』
 
21
하고, 손목을 이끌어 앉힌다. 춘우는 인사를 하려 하다가, 인사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그저,
 
22
『네 네 네』
 
23
할 뿐이었다.
 
24
『그러지 않아도 일전에 저 박 주사에게 말을 듣고, 한 번 보려고 하였더니, 잘 왔소』
 
25
하고, 자기 아들을 어루만지듯 하며,
 
26
『에그, 벌써 수염이 다 꺼뭇꺼뭇 하이』
 
27
하며, 손도 만져 보고, 등도 어루만져 보니까, 마루에 있던 영숙· 창하· 종년· 참모가 모두 웃었다.
 
28
『모두 꿈 같소. 우리 같은 사람은 늙지를 않는구려』
 
29
하고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30
춘우는 처창한 웃음을 띠고 앉았으며, 영숙은 창피히 여기는 듯이,
 
31
『글쎄, 왜 그러시우. 우시기는 왜 우셔요』
 
32
하며, 책망하듯이 눈을 흘긴다.
 
33
『생각하니까 모두 꿈 같기도 하고』
 
34
하면서 수건으로 눈을 한번 씻고, 다시 목메이는 소리로,
 
35
『자연히 눈물이 나는구나』
 
36
하고 서는 다시 눈물을 씻는다.
 
37
자리를 정한 후 춘우는 영숙 어머니를 건너다 보며,
 
38
『그동안 시골로 내려가셨다더니, 언제 올라오셨어요.』
 
39
노파는 먼 산을 바라보며,
 
40
『여기 온 지가 한 삼 년 돼요』
 
41
하더니, 다시 말을 돌리어,
 
42
『참 우리가 떠날 때에는 작별도 못 했지. 그때 영숙은 당신이 보고 싶다고 시골 가서도 몇 번이나 말을 했는지 알 수 없고, 어느 때는 놀 동무는 없고, 쓸쓸해서 자꾸 서울로 다시 가자고 하였었다우. 그러다가 이럭저럭 삼 년이 지났는데, 지금 이 집 주인이 자꾸 혼인을 하자고 해서 불시에 정혼은 하여 놓았으나, 구차한 살림에 무엇이 있겠소, 그대로 몸뚱이만 내 주었지요』
 
43
하며, 담뱃재를 털고 다시 말을 이어,
 
44
『그렇지만, 누가 알았겠소. 혼인을 턱 해놓고 보니까 본마누라가 시퍼렇게 살아 있지요. 기가 막힙디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우. 이왕 몸을 허락 한 바에 세상에 없는 일도 아니겠고… 그래서, 언제든지 딸에게 칭원을 듣지요』
 
45
하니까, 춘우는 그 칭원 듣는다는 말이 영숙의 마음속에도 이런 생활이 행복스러운 생활이 아니요, 자기 가슴속에 남 모르는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부연하는 듯하여, 알 수 없는 고마운 생각이 났다.
 
46
『그러고는, 나허고 가끔가끔 싸우죠. 하지만 당신도 젊은 양반이니까, 내 말을 곧이듣지 않겠지만, 쟤가 오늘 이 주인에게 시집만 안 갔더라면 정말 이렇게 이 늙은이 하나 먹여 살렸을는지 몰라요』
 
47
하고서, 자기 가슴을 제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 말을 듣던 영숙은 어머니에게 눈살을 주며,
 
48
『글쎄 좀 고만두셔요. 언제든지 만나는 이마다 그 소리는 퍽도 하시우』
 
49
하고 춘우와 자기가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자기 어머니가 가로맡아 하는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떼 버리려고,
 
50
『어서 가신다고 하시던 데나 가 보셔요』
 
51
하며,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쳐다보더니,
 
52
『벌써 두 시가 넘었는데요』
 
53
하니까, 어머니는 손으로 영숙의 발 아래의 치맛자락을 홱 뿌리더니,
 
54
『왜 이러니, 오래간만에 이야기 좀 하게, 가만 있거라』
 
55
하고, 다시 춘우의 무릎을 쭈글쭈글하여진 손끝으로 툭 건드려 자기 말을 정성껏 들어 달라는 뜻을 표한 뒤에,
 
56
『그런데 누님은 시집갔소?』
 
57
춘우는 고개를 영숙 어머니에게로 다시 돌리면서,
 
58
『갔어요.』
 
59
『언제?』
 
60
『벌써 이태가 되었는데요.』
 
61
『지금 어디 살우. 한 번 보았으면.』
 
62
『동경엘 갔어요.』
 
63
『동경? 혼자?』
 
64
『아뇨. 둘이 갔어요.』
 
65
『새서방허고.』
 
66
『녜.』
 
67
영숙의 어머니는 영숙에게 한 번 핀잔을 당하고, 버티어 볼 생각을 하였으나, 말에는 벌써 한풀이 죽었다. 그래서 얼굴에는 일부러 버티어 보려던 생각과 속으로 슬며시 일어나는 늙은이의 야속이 그의 얼굴에서 싸우는 빛을 보인다. 그러다가는 다시 말을 이어,
 
68
『그렇지만, 어머니가 일즉들 돌아가셨기 때문에 두 남매가 오죽 외롭게 지냈나. 참 외할머니를 잘 만나서, 가끔가끔 와서 봐 주셨기에…어렸을 때에 울기도 많이 하고, 남매가 서로 우애도 지극하더니…지금 외할머니는 어디 게시우?』
 
69
춘우는 영숙의 어머니가 자기 어머니의 말을 하는 것을 들으매, 바로 요 며칠 전, 수철리 어머니의 산소에 갔던 것이 생각나며, 어리었을 적에 뵈 옵던 자기 어머니가 눈앞에 보인다.
 
70
십여 년 동안 가장 즐거울 소년 소녀 시대를 춘우 남매는 어미 없는 자식으로 살아왔다. 그의 생활은 달이 비치지 않는 세상이었으며, 어리광 부리지못한 생활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간 것은 춘우 남매에게 지우려 하나 지울수 없고, 다시 어떻게 할 수 없는 비참한 사실 중의 하나이었다.
 
71
춘우는 숙이었던 고개를 들고,
 
72
『그저 거기 사셔요』
 
73
하고 말대답을 할 때 먹물을 칠한 듯한 두 눈자위에는 수녀의 검은 옷자락의 그림자 같은 비애가 비치어 보인다. 영숙의 어머니는 다만,
 
74
『에그, 한번 만나 보았으면 좋겠어. 퍽 늙으셨으렷다』
 
75
하며, 춘우의 할머니가 자기 앞에 앉았는 것처럼 공중을 물끄러미 보면서 옛날에 보던 그이와 이야기하듯이 얼굴에 웃음을 빙글빙글 나타낸다.
 
76
『늙으시고말고요. 이제는 아주 전만 못하셔요. 지금은 지팽이를 짚으시고도 별로 나다니시지를 못하셔요. 전에야 우리 집에를 날마다 다니시다시피 하시고도, 아무 일이 없으셨지요. 참 그 할머니야말로 우리에게 좀 고맙게 구 셨읍니까. 언제든지 어미 없는 자식 어미 없는 자식 하시면서, 누가 그렇게 거두어 주셨겠읍니까. 세상에는 무슨 정 무슨 정 해도 어머니의 정밖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머니는 모든 행복의 근원으로 생각해요. 세상은 여자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을 하지만, 그 대신에 어머니가 아니면 세상은 구하지 못할 줄로 믿습니다.』
 
77
영숙 어머니는 반신반의하는 말로,
 
78
『그런 것을 알아 주니, 고맙기는 하오마는, 세상에야 어머니 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어디 있읍드니까. 없어요 없어. 이건 별별 고생을 다해서 길러놓으면, 모두 제가 저절로 자란 줄들만 알지요. 실상 아버지야 그저 대범하기만 하지, 정말 깊은 정은 어머니에게 있지요. 그렇구말구. 어머니에게 있지.』
 
79
춘우는 다시 말을 받아서,
 
80
『그렇지만, 자식이 어머니를 보양할 의무가 있는 동시에, 부모는 또한 자식을 기르고 공부시킬 의무가 있으니까요. 결코 부자간이나 모녀간에는 권리라는 것이 없어요.』
 
81
여태까지 두 사람의 말하는 소리들만 듣고 앉아 있던 영숙이 그 말끝에 쑥 나서며,
 
82
『그래요. 그럼요』
 
83
하며 말을 꺼냈다. 춘우는 모든 것을 파탈한 좌석처럼 다리를 다시 도 사리고 편히 앉으며, 조금 흥분된 어조로,
 
84
『그렇지만 사랑만 있으면, 우리가 여기서 권리니 의무니 논란할 것까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랑으로써 원만히 해결할 수가 있겠지요』
 
85
할 때, 입에서 담배를 쑥 잡아 빼는 창하가 고개를 내 흔들며,
 
86
『아닐세, 그 말도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지만, 지금 세상에는 돈일세, 돈야』
 
87
하고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쓱 내밀면서,
 
88
『돈야, 돈만 있으면 제왕(帝王)도 살 수 있는 것일세, 비록 달과 같이 자애로운 부자의 사랑이라도 태양과 같이 힘있는 돈의 세력 밑에는 무색 하여지는 것일세. 인류의 역사가 맨처음에 지금에 이런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 같으면, 혹시 사랑이 제일 세력이 있고, 모든 것을 해결하는 무엇이 되었을는지 모르지마는, 우리인류의 역사가 지금 이 방향으로 진전해 나가는 이상, 우리에게 태양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돈이 없으면 못사는 것일세. 못 살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그것으로 시작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일세. 지금이라도 지금 이 방향으로 흐르는 인류의 역사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 놓는 위대한 힘이 있어 한 번에 방향을 변해 놓는다 하면 모르거니와, 아직까지는 그 무서운 세력, 돈의 힘을 모든 것을 가지고도 이기지 못할 것일세. 아! 아까운 것은 우리의 역사를 이 방향으로 틀어 놓지 말고, 다른 무슨 방향으로 우리 선조가 틀어 놓았드면, 오늘의 우리가 이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을 그랬지』
 
89
하며, 다시 시치미나 떼는 듯이 옆으로 아무 말 없이 물러앉아, 담배만 후후 하고 피운다. 춘우는 이 말을 듣더니,
 
90
『허허』
 
91
하고, 조롱도 같고, 비웃는 것도 같고, 또는 동감이라는 듯이 한번 돌아다 보더니,
 
92
『자네 말은 아주 철학자의 말 같으이 그려』
 
93
하고, 엄연한 얼굴로 딴 데만 보는 창하를 들여다본다. 옆에서 이 말을 듣던 영숙이 다시 말을 꺼내,
 
94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아저씨 말씀이 잘못얘요. 돈이 다 무엇얘요.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는 것요…』
 
95
하며, 목소리가 높아 가며 날카로와진다.
 
96
『사랑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야요. 비록 그것을 산다 하더라도 한때죠. 결코 영원치는 못할 것얘요.』
 
97
창하는 그 말을 듣고만 있다가, 느럭느럭한 목소리로,
 
98
『옳은 말씀이지요. 옳은 말얘요. 그렇지만, 돈 없는 사람들이 사랑을 해보십 쇼. 그것은 영원히 계속될 줄 아십니까. 돈으로 사랑을 살 수는 없을지라도, 돈 없는 사랑은 사랑까지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이상 사람마다 사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지는 않겠지요. 영숙 씨는 아직까지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쓰리고 아픈지를 모르십니다. 세상은 뜨겁던 것을 차디차게 만들고, 맵던 것을 싱겁게 할 뿐이지요. 사람이 나이 먹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서운 힘은 가진 뜨거운 열정이 북빙양에서 천만 년 녹지 않는 얼음덩이처럼 차디차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나는 나의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불길, 청춘의 뜨거운 정열을 얼마든지 식지 않게하려 애썼으나, 모두 쓸데없었읍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모든 행복과 모든 희망을 단념하였읍니다. 다만 녹지 않는 얼음덩이 모양으로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깜깜한 암흑과 가슴속이 텅 비어 버리는 듯한 쓸쓸함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기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칠월 칠석에 칠석 할머니와 칠석 할아버지가 만나는 것보 담도 더 귀한 일이겠지요. 사랑하는 이는 눈물로 만나서 눈물로 헤어지는 법 입니다. 참 정말 영구한 사랑이 이 세상에 있다고 하면, 그는 이 세상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99
젊은 사람 셋이서 사랑이니 무엇이니, 귀에 생소한 말만 듣고 앉았던 어머니는 슬며시 말이 없이 물러앉고 젊은 사람 셋이서만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100
창하는 다시 냉소하는 듯한 웃음을 띠며,
 
101
『사랑이 무엇이냐! 이 세상은 절망의 세상이다. 단념의 세상이다. 단념하는 것처럼 괴로움을 가슴속에 박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춘우 자네도 말 하지 않았나? 인생은 나이 먹을수록 장애물 경주를 하는 것 같고, 낮이 있다가 밤이 있는 것 같다고, 한 번의 광명이 있다가 다시 암흑이 올 때 우리는 피곤하여, 세상을 모르고 잘 것일세. 우리 앞에 닥치는 암흑——실망과 낙심, 기막히는 괴로움——그것을 뚫고 나서면, 다시 광명이 생기고, 희망이 보이고, 믿음이 생기네. 그러다가는 다시 암흑 또 광명 이것이 엎치었다 뒤쳐졌다 하는 동안에, 어느 틈에 우리를 무덤으로 끌어 가려는 상여꾼이 우리 집 문간에서 방울을 흔드는 것일세.』
 
102
춘우는 창하의 이 말을 듣다가 빙긋 웃으며,
 
103
『옳은 말일세. 사람이란 죽음으로 가는 길 위에서 서로 보고 웃고 울 고하는 것일세. 우리의 길은 무덤에서 막을 것일세. 그런데, 우리 조선 청년의 일생은 꽃피지 못한 산길과 같애.』
 
104
말도 채 그치지 못해서 창하는,
 
105
『옳은 말일세. 조선 천지는 그와 같이 황량하이. 오늘의 조선 청년이 타락을 한다 하면, 그 원인은 정치상으로나 또는 가정상으로나 무엇 무엇 여러 가지의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 등한히 할 수 없는 것은 남녀가 서로 교제하는 것일세. 여자는 남자를 그리워하고, 남자는 여자를 생각하는 것 은성(性)을 가진 사람인 이상, 당연한 일일세. 남녀가 교제할 기회가 없는 것은 조선 청년을 타락시키는 첫째 원인일세. 타는 듯한 애욕(愛慾)을 가슴에 품은 젊은 사람이 얼마나 그 상대자를 찾기 위하여 헤매는 줄 자네는 아는가? 그 헤매는 끝에는 가는 곳이 화류계일세. 불란서 사람이 음탕한 말을잘 하고 노서아 사람이 춤추고 노래하기를 좋아한다 하면, 조선 청년은 기생 집에 다니는 일밖에는 없겠지』
 
106
할 즈음에, 영숙의 어머니는 상에다가 냉면 두 그릇을 받쳐들고 오면서,
 
107
『오래간만에 온 손님을 이렇게 푸대접을 해서』
 
108
하며 춘우의 앞에 놓았다.
 
109
『이것은 무얼 사오셨어요.』
 
110
춘우는 상 두 귀퉁이를 붙잡아 놓으며,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니까, 영숙은 주인이라는 어조로,
 
111
『변변치 못한 것이나마…』
 
112
하고는, 젓가락 들기를 권하였다. 춘우와 창하는 냉면을 먹으면서, 두어 마디 말을 하려다가 그대로 아무 말이 없었다.
 
113
냉면 먹는 것을 보던 영숙의 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옷을 바꾸어 입고 나오며, 춘우를 보고,
 
114
『천천히 노다 가시우』
 
115
하고, 댓돌 아래로 내려선다. 젓가락을 입에서 때는 춘우는 영숙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며,
 
116
『왜 어디를 가셔요?』
 
117
할 때, 그의 마음은 공연히 시원하고 다행한 생각이 났다.
 
118
『네, 어디 좀 다녀올께, 천천히 노다 가시우.』
 
119
영숙의 어머니는 흰 우산을 들고 영숙을 보며,
 
120
『다녀오마』
 
121
하였다. 영숙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122
『얼핏 오셔요』
 
123
하고, 다시 앉았다. 어머니가 나가자, 상을 물렸다. 그리고 젊은이 셋만 있게 되니까, 이상한 풋기운이 세 사람을 에워싼다. 아무 거북한 것도 없고 조심 되는 것도 없이 세 사람은 마음대로 웃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각각 속으로 기뻐하였다.
 
124
춘우는 마루 뒷문에 기대어 앉으면서,
 
125
『벌써 십이 년이 되나요?』
 
126
무심히 나오는 말로 말을 꺼내니까, 영숙도 그 말을 따라서,
 
127
『그런가 봅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그때 지내던 일이 역력히 생각나요. 참 그때를 생각하면, 제가 오늘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요. 저는 그 전에 같이노 던이를 만나면 부끄러워서 인사도 하지 못하고, 길을 피해 다녀요. 저의 사촌 오라비 하나 있는 것도 저의 집에를 일체 오지 않는답니다.』
 
128
울음이 나올 듯한 어조에 쓸쓸한 웃음을 섞어서 말을 한다.
 
129
『오라버니라뇨?』
 
130
춘우는 생각하는 눈으로 옆을 흘겨보며 물었다.
 
131
『왜 모르셔요? 저허고 학교 다닐 때 가끔가끔 시골서 놀러 오던 애 말얘요.』
 
132
『네. 알겠읍니다. 영식이말이지요. 그애 지금 몇 살 입니까.』
 
133
『열 아홉 살얘요.』
 
134
『장난도 몹시 하더니.』
 
135
『지금은 아주 점잖아졌어요. 그리고, 어린애 마음에도 어떻게 자존심(自尊心) 이 많은지요. 남에게 조금이라도 듣기 싫은 소리를 안 들으려고 한답니다.』
 
136
『어렸을 적에도 그렇지 않았읍니까. 쌈 잘 하고 남 때려 주기 잘 했지요.』
 
137
『그래서, 제가 혼인을 한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집에 와서 야단을 쳤는지, 집에서도 모두 혀를 내둘렀어요.』
 
138
『왜요?』
 
139
춘우는 아까 영숙 어머니의 말이 지금 영숙의 말과 모순되는 것이 있는 것을 보고, 일부러 분명히 물었다.
 
140
『글쎄, 남의 집 첩으로 간다구요.』
 
141
춘우는 다시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말을 하면 결국 욕과 비난이 나올 뿐이므로 아무 말 없이 거북한 웃음을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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