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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
◇ (10) ◇
카탈로그   목차 (총 : 20권)     이전 10권 다음
미상
나도향
1
어머니 (10)
 
 
2
춘우는 창하의 집에 왔다. 창하의 집 문을 열고 사랑 마당에 들어서는 춘우의 가슴은 얽키고 뭉친 무엇으로 가득 찬 듯하여 그것을 풀어 줄 사람이 너 하나밖에 없다는 듯이 방문을 열었다. 열 한 시나 되어, 황금빛 태양 볕이 한가하게 창에 들었는데, 창하는 세상을 잊은 듯이 자리 위에서 자고 있었다. 너무 고요한 것이 도리어 비애가 섞인 적막을 춘우의 가슴에 부어 주는듯 하였다.
 
3
『창하!』
 
4
하고 춘우는 창하의 어깨를 흔들었으나, 창하는 아무 말이 없었다.
 
5
『창하 창하, 일어나게. 웬 잠인가?』
 
6
그러나, 창하는 춘우와 사이가 너무 가깝고 허물이 없는 탓으로 팔꿈치를 뿌리치며,
 
7
『잠깐만, 잠깐만』
 
8
하고, 다시 돌아누워 말이 없다.
 
9
『일어나』
 
10
하고 다시 말을 하는 춘우의 마음은 섭섭하였다. 마음이 본래부터 강하지못하고 약한 춘우는 창하까지 야속한 듯하였다. 자기를 찾아 나의 가슴속에서 ?(76번 파일) 것을 하소연하러 온 것을 이렇게까지 냉대하나, 생각이 나서, 그는 공연히 야속한 생각이 나며, 세상이 미덥지 못하였다.
 
11
그러자, 창하는 겨우 기지개를 켜고서,
 
12
『오늘 퍽 일르이그려!』
 
13
?(76번 파일)며 겨우 눈을 비빌 때, 엄연한 창하의 얼굴에는 다정스럽고 그리운 빛이 보인다.
 
14
『일어나게, 내가 할 말이 있으니…』
 
15
『무슨 말야? 자네 말야 언제든지 그 말이지!』
 
16
『아냐, 글쎄 일어나, 일어나서 이야기 해』
 
17
하며 춘우는 덮고 자던 이불을 벗기었다.
 
18
창하는 춘우의 얼굴빛이 잿빛같이 된 것을 수상스럽게 쳐다보면서,
 
19
『자네 얼굴이 왜 저 모양인가?』
 
20
하며 이불자락을 주섬주섬 걷어서 발치로 내던지고, 머리를 긁적긁적하면서 일어나 앉아 춘우를 들여다보았다.
 
21
춘우는 자기의 얼굴이 잿빛같이 된 것은 몰라도, 자기 가슴속의 괴로움은 알았으므로, 창하의 그 말을 듣고 자기 마음을 헤아리며 자기 얼굴빛도 그리 좋지는 않으리라 하였다. 그러나, 말대답은 자기 가슴이 괴롭다고 얼른 할 수가 없어서,
 
22
『내 얼굴야 언제든지 그렇지 않은가? 내 얼굴은 언제든지 요 모양일 줄 도아니까!』
 
23
하며, 자기 얼굴이 왜 이 모양으로 파리하고 보기 싫게 되었느냐는 듯이 각(角)이 진 볼따구니 껍질을 찢어서 심통사납게 한 번 잡아당겨 보다가, 그래도 자기 살이요 자기 몸의 껍질이라 해서, 아끼는 듯이 잡아당기던 손을 펴고 두어 번 쓰다듬었다.
 
24
『무슨 좋지 못한 꼴을 보고 왔나, 몹시 놀랐나? 아마 영숙에게서 또 무슨 편지가 왔나 보이 그려』
 
25
하며 창하는 춘우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기만 기다리느라고 멀거니 입만 바라보며 앉아서 재우쳐 묻는다. 춘우는 무슨 명상이나 하는 듯이 멀거니 앉아서 고갯짓만 하면서,
 
26
『아니』
 
27
하고 늘어지게 대답을 한다.
 
28
『그럼 왜 저 모양야. 왜 이렇게 멀거니 앉았나. 말이나 좀 하게, 갑갑해못 견디겠네…』
 
29
하며, 왈칵 일어나서 이불과 요를 활활 털어 개켜 놓더니, 다시 대님을 치고 고름을 매고 앉아서,
 
30
『무슨 일인가? 말을 하게.』
 
31
창하의 생각에는 필연 영숙이에게서 무슨 실망될 만한 편지가 춘우에게 간 줄 로만 알았다. 그래서, 그 일에 들어서는 지금까지 자기가 뒤를 보아 주던 일이요, 자기가 없이는 그 일이 성립되지 않았으리라는 자신과 책임 관념이 있으므로 춘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떠한 것을 보아서, 두 사람 사이를 조정하여 보리라는 마음이 생긴 까닭이었다.
 
32
춘우는 얼마 있다가, 두 눈에 결심하였다는 듯한 광채가 들며,
 
33
『여보게, 오늘부터 나는 우리 집에 들어가지 않을 터 일세』
 
34
하며, 창하를 볼 때, 그의 태도는 마치 패전한 군사가 마지막 전선에서 적군의 창검 앞으로 돌진하려는 것 같이 비장한 용기가 있어 보이었다.
 
35
창하는 이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을 알았다. 오늘 춘우가 전부터 말하여 내려오던 것을 실행하고 나온 것을 알았다.
 
36
『그러면, 자네 아우는 어떻게 되었나?』
 
37
『나의 아우!』
 
38
춘우의 눈에서는 핏빛같이 붉은 빛이 돌더니,
 
39
『다 모르는 것이 좋아. 생각지 않는 것이 좋아. 애정이라는 것이 도리어 나의 마음을 괴롭게 할 뿐야.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려는 것보다도 몹시 매정한 사람이 되고, 얼음같이 차디찬 사람이 되는 것이 나를 위하여서는 가장 좋은 도리야』
 
40
할 때, 춘우의 가슴은 어처구니〔汽罐[기관]〕가 과도의 열기로 말미암아 터지는 듯이 지독하게 쪼개지는 듯하며, 뜨거운 눈물이 두 눈에 괴었다. 그 눈물은 마치 불상(佛像)에 박아 놓은 구슬 모양으로 햇빛에 곱게 반짝거리었다. 사면은 몹시 고요하여 장엄한 전각 속 같았다. 춘우는 자기 눈에 뜨거운 눈물이 괴었을 때는 아무 말이 없이 있다가, 그것이 자기 뺨 위에 떨어져 구를 때, 다시 자기가 눈물 있는 사람이 된 것을 몹시 원망스럽게 생각 하는 듯이, 손목으로 눈물을 씻어 화난 사람처럼 뿌려 버렸다.
 
41
『일평생 눈물 없는 사람으로 살 터일세. 쫓겨난 사람에게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것이야. 또는 눈물이 없어야 하지. 나는 우리 집에서 쫓겨나고, 또는 애정이라는 천국에서 쫓겨남을 받을 사람이야.』
 
42
창하는 이 말을 듣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춘우를 보며,
 
43
『어디 얼마나 그러나 보세. 자네는 여태까지 속일 수 없는 것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모르는 모양일세그려. 사람이 모든 다른 것은 속일 수가 있을는지 알수 없어도 나이는 못 속이느니. 자네는 지금 인생의 모든 희망과 즐거움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청춘이며, 자네 혈관 속으로 돌진하는 피는 인생의 열정의 교향악(交響樂)을 아뢰는 줄을 모르나? 자네가 지금 이러한 말을 하였지만, 새벽 첫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 모양으로 그 누구 앞에서 지금 나에게 한 말을 잊어버리고, 다시 울 때가 있을 것을 나는 단언하네.』
 
44
사람의 감정은 물결과 같다. 다만 일순간이라도 그 감정을 그대로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 적다. 어떠한 경우에 그것이 사라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떠한 다른 형체로 나타나거나, 또는 아주 변해 버리기도 하며, 극단에서 극단으로 뒤집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춘우가 지금 창하의 입에서 나온 「그 누구」라는 말이 여태까지 가슴에 품었던 무섭게 힘있고 분노한 마음을 차차 보드랍고 연하게 하기에 가장 힘이 있었다. 마치 금에다가 초산(硝酸) 방울을 떨어뜨린 것 같이, 춘우의 굳고 무디던 감정을 녹일 수가 있었다.
 
45
『그렇지 않지, 나는 결심 하였어』
 
46
하는 춘우도 자기가 자기 마음을 의심하였다.
 
47
밀리어 가기만 하고, 다시 뒷걸음질할 줄 모르는 시간이 어느덧 한 시간을 지나니, 오정을 치었다.
 
48
자기 집에서 아침을 먹고, 대문을 나선 영숙은 걸음을 박창하의 집으로 향 하지 않으리라 하였으나, 엄숙한 섭리(攝理)의 신은 사람의 미묘한 감정까지 간섭을 한다.
 
49
어제 저녁에 자기 남편의 가슴에 안기어서 모든 것을 자백한 영숙은 자기도 어째서 자기가 지금에 춘우를 만나러 창하의 집에를 가는지 알지 못 하였다.
 
50
걸음걸음 떼어 놓을 적마다 자기 남편이 자기의 귀에다 대고서,
 
51
「내가 네게 부족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내가 너를 냉대한 것이 무엇이냐? 너의 생활에 불만족하게 하여 준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든지 가리지 말고 이야기하여 다오!」
 
52
하며, 처음으로 자기 가슴에 고개를 대고서 울던 것이 역력히 보인다. 그러다가는, 또다시,
 
53
「나는 몇 만 번 저버려도 좋다! 나는 내버리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너의 자식은 내버리지 말아다우」
 
54
하던 말을 들을 때 영숙의 가슴은 저리고 아픔을 깨닫고서, 다시 자기 남편에게,
 
55
「모든 것을 용서하여 주셔요」
 
56
하고, 베개에 엎드려 울던 생각을 할 때에는, 다시는 춘우를 만나 보지 않으리라 굳은 맹세와 결심을 한 것은 어느덧 어디로인지 사라지고, 지금에 또다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어, 영숙은 춘우를 만나 보러 가는 것이다. 가야 옳으냐, 아니 가야 옳으냐. 아니 가야 옳다. 만일 다시 간다고 하면, 신의 없는 여자요, 절개 없는 여자가 되며, 자기 남편에게 죄인인 동시, 자기 딸에게도 죄인이다. 그러나, 영숙의 생각 속에서 뾰로통하게 싹이 돋아 올라온 그 무슨 자각(自覺)은 오늘에 와서 과거의 모든 것을 부인해 버리고서, 새로운 길을 밟아 나가겠다는 것, 자기도 남의 차지한 도덕상 권리 의무와 또는 법률상 권리 의무를 남과 똑같이 차지하여 가지겠다는 뜨거운 욕망이 그 무슨 반동적 충동에서 일어난 까닭이다. 자기는 남의 첩이다. 자기의 남편이 자기에게 부어 주는 모든 조건이 아무리 완미하다 하더라도, 여기 와서는 사람으로서 참지 못할 치욕이 있다는 것이 피상적으로 인생을 관찰한 현대 여성의 부르짖는 소리다. 인생의 길고 깊은 내면적 생활이 없는 영숙의 가슴에서도 이와 같은 부르짖음이 나온 것도 무리라 할 수는 없을것이며, 더구나 다정한 남자의 따스한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젊은 영숙이 이러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얼마든지 동정할 여지가 있다. 영숙은 창하의 집 앞에 와서, 십여 분 동안이나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춘우가 와서 있기를 바라는 욕망이야 물론이겠지만, 와서 있어 자기와 만나면 무슨 말을 하랴? 하는 떨리는 걱정이 있었다.
 
57
모든 것을 우리 두 사람은 단념합시다. 옛일은 잊어버립시다 하자니, 춘우의 가슴이 아플 것은 고사하고, 그런 생각만 하여도 자기 가슴이 아프다. 그러면, 모든 것을 오늘 해결합시다. 나는 나의 생활을 이 자리에서 바꾸어 예전 생활을 헌신짝같이 벗어 버리고, 살거나 죽거나 당신과 같이 하겠소 하자니, 자기 어머니와 자기 딸에게 대한 애정과 여태까지 살아온 안일한 생활에 미련이 남아 있다.
 
58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난처한 영숙은 지금 기로에 방황하고 있다.
 
59
어떻든 문을 열었다. 가는 기침을 하고서, 마당에 들어섰을 때, 사랑문 여는 사람은 춘우였다.
 
60
『어서 오셔요』
 
61
하며 엄연한 태도로 내다보는 춘우의 얼굴을 보는 영숙의 마음은 무슨 죄 나지은 것 같이 두근거리었다.
 
62
다만 고개만 숙여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마루 앞에 섰을 때, 영숙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번에 자기 발 하나 잘 들여놓고 못 들여놓는데 자기의 운명이 판단이 되며, 자기의 남편과 춘우 두 사람 중에 누구 하나를 취하게 되고, 누구 하나를 내버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 자기의 오는것을 맞아들이는 이춘우도 그 사람이 택함을 입을 사람인지, 내버림을 당할 사람인지 알지 못하였다. 영숙의 마음은 지금에 균형(均衡)을 잃은 저울대 모양으로 이리 기울었다가 저리 기울었다. 춘우의 가슴에 자기 가슴을 대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때는 춘우가 자기 것이요 가장 미더우며, 자기 남편의 자릿속에 누웠을 때에는 자기 남편이 자기 것이다. 이리하여 지금 춘우의 앉아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때는 춘우에게로 자기가 완전히 기울어 지기가 쉬운 것을 자기도 알기는 아나, 그것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63
『이리 내려앉구료.』
 
64
춘우의 다정한 목소리는 방 안 흐리터분하던 공기를 한 번에 씻어 버리는듯 하더니, 갑갑하고 싫증나던 영숙의 마음도 한껏 정하여지는 듯하였다.
 
65
『괜찮아요.』
 
66
『아니, 거기는 차요. 이리 이 아랫목으로 내려앉아요』
 
67
하며 치맛자락을 잡아당겨 앉히니, 영숙도 못 이기는 듯이 내려앉았다.
 
68
『주인은 어디 가셨어요?』
 
69
『안에 들어갔다우, 세수를 하나 봐.』
 
70
『그런데, 어디가 불편하셔요? 신색이 아주 전만 못하십니다.』
 
71
『아니, 별로 아픈 데는 없소.』
 
72
『그러나, 어저께는 대단히 미안합니다.』
 
73
춘우는 대답이 없다.
 
74
『왜 대답을 아니 하셔요.』
 
75
『나는 그런 데는 대답하지 않아요.』
 
76
『말이 말 같지 않으셔요.』
 
77
영숙은 놀려먹는 듯이 생긋생긋 웃으면서 지근덕거리었다.
 
78
『생각해 보구려.』
 
79
『생각이 무슨 생각얘요? 저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요.』
 
80
『생각이 나지 않아요? 생각이 날 리가 있소. 나 같은 사람에게는 미안합니다 하는 말 하나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될 터이니까…』
 
81
이렇게 서로 정에 겨워 비꼬고 앉았을 때 창하는 두루마기를 입고 부리나케 나오더니 문을 홱 열어제치다가, 영숙이가 와 앉은 것을 보더니,
 
82
『언제 오셨어요』
 
83
하고 인사를 하고 춘우에게,
 
84
『잠깐만 다녀옴세, 집안 심부름 좀 하고 올게』
 
85
하며 황망히 뛰어나아간다.
 
86
춘우와 영숙은 창하가 뛰어나가는 걸 보고 똑같이 가슴이 근질근질함을 깨 달았다. 조용한 방 안에 단 두사람이 앉아 있으매, 먹은 마음이 한꺼 번에 벅차오르는 듯하여 침들만 삼키며 한참이나 가만히 앉았었다.
 
87
영숙은 두어 번 기침을 한 후에 곁눈으로 춘우의 동정을 살피는 듯 하더니, 목이 조금 메이는 듯하는 소리로,
 
88
『춘우 씨…』
 
89
를 불렀다. 방 안은 너무 고요하다. 삼엄한 침묵이 이 세상 모든 잡념을 떠나 공정한 재판이 내리는 천당이 아니면 지옥에 간 듯이 엄숙한 느낌을 두 사람에게는 주는 듯하였다. 이번에 영숙의 입에서 나온「춘우 씨…」라는 말이야말로 두 사람의 앞길을 좌우하는 열쇠이었다. 영숙의 입에서는 무슨 말이 나오랴? 춘우와 결심한 것을 어디까지든지 이루고 말자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오늘 이 자리를 한해서 두 사람은 떠나자는 말이냐, 영숙의 마음속에 있는 저울추가 어디로 기울어질 것이냐.
 
90
『네』
 
91
하고 대답을 하는 춘우의 눈은 전보다도 이상하게 광채가 났다.
 
92
『제가 이 말씀을 여쭈어 보는 데 대하여서는 춘우 씨의 양심에 조금이라도 거리끼지 않는 대답을 하여 주세요.』
 
93
『무슨 말이든지 저는 양심대로 대답하지요.』
 
94
『만일 제가 지금 춘우 씨를 영원히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사정이 있어 춘 우씨에게 마지막 인사를 여쭙지 않아서는 안 될 일이 있다고 하면 그때 춘우 씨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95
춘우는 이 말을 듣고서 사금파리로 생선의 배를 가르는 듯이 가슴 한 복판을 에이는 듯하였다. 그러고서 자기의 입으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지못하였다. 일순간, 다만 일순간에 춘우의 가슴에는 이상한 불이 붙어 올라오며, 그 불이 제단 앞에서 타오르는 향불을 놓은 것 같이 그것을 앞에 두 고서 그 뒤에 있는 무슨 사상(事像)보는 듯하였다. 루벤스가 그린가에서 내리는 예수》의 그림을 마지막으로 본 《 십자 플란더스의 우유 장수 어린아이와 같이 영숙의 입에서 그 말 한 마디가 떨어질 때에 무슨 신엄(神嚴) 한 사실이 자기 앞에 전개된 것을 알았다.
 
96
『그 말은 왜 물으셔요?』
 
97
말은 하였으나, 그 말이 목구멍으로 나올 때에 그는 겨자를 그대로 삼킨것 같이 거북하였다.
 
98
『글쎄 말씀얘요』
 
99
하고 영숙은 자기 눈 속에 비치어 있는 장차 닥쳐올 사실을 들여다보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기름하고도 떡가래처럼 툭 찍어 놓은 듯한 매끈한 손가락으로 방바닥만 긋고 있었다.
 
100
『나는 그런 대답하기 싫소. 대답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그와 같은 대답은 일평생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해요.』
 
101
『그렇지만 그와 같은 대답을 아니 하실 수 없는 경우에 춘우 씨도 가부간 무슨 대답을 하시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러시면 우선 춘우 씨는 우리 두 사람 사이가 어느 때까지 이대로 계속할 줄 아십니까?』
 
102
『물론 어떠한 난관을 거쳐야 할 것이지요.』
 
103
『그러면 어떻든지 한 번은 거쳐야 할 그 난관을 속하게 거쳐야 할 것이 아닙니까? 춘우 씨나 저나 이대로 만일 이후에 더 오래 계속을 한다 하면, 우리에게 반드시 불행한 일이 닥쳐올 줄로 저는 생각해요.』
 
104
춘우는 할 말이 없었다. 자기는 자기를 희생하여 영숙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영숙을 완전히 자기 것을 만들고 자기가 독차지하려면 그의 사랑의 상대자 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자기와 영숙의 사랑, 그것에는 펑 뚫어진 결함이 있는 것을 찾아내게 된다. 영숙을 독점하려면 자기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자기의 의무를 이행한 연후에 영숙의 사랑을 차지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지금 춘우는 영숙의 사랑을 차지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영숙이란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다. 여기에 비애가 있고 비극이 생기는 것이다. 영숙과 춘우는 영숙의 사랑을 차지 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영숙이란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다. 여기에 비애가 있고 비극이 생기는 것이다. 영숙과 춘우는 무서운 비극이 닥쳐올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그 앞으로 하루바삐 속하게 걸어가려고 무슨 이상한 힘에 끌려가는 중이다.
 
105
춘우는 다시 영숙을 쳐다보았다. 무슨 괴로운 생각이 영숙의 가슴속에서 영숙을 못 살게 구는 듯이 그는 얼굴빛이 이상하였다. 마치 월경을 순하게하지 못한 여자의 아랫배를 앓을 때에 나타나는 괴로운 빛이 보였다. 춘우는 영숙의 손을 쥐고서,
 
106
『왜 그런 말을 오늘 갑자기 하요? 무슨 생각을 하신 일이 있소? 그렇지 않으면 내게 부족한 것이 있소?』
 
107
영숙은 고개만 내저었다.
 
108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109
『그럼은요?』
 
110
영숙은 한참이나 무엇을 궁리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할 말이 있어도 할 수가 없는 것처럼 고개만 기웃하고 있다가 춘우가 재촉하는 말로 의아하는 듯이 쳐다보는 것을 보고서,
 
111
『여태까지 춘우 씨에게 말씀한 일은 없지마는, 춘우 씨와 사귄 지도 벌써 두 달이 되는지요?』
 
112
춘우는 이 말을 듣고서 비로소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영숙의 말하는 뜻이 어느 곳에 있는 것을 알았다.
 
113
영숙의 몸이 지금까지 춘우 자신의 것이 아닌 동시에 춘우는 남자로서 영숙의 애인 될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 영숙의 입에서 나의 몸을 완전히 당신의 것을 만들라 하기 전에 춘우는 마땅히 먼저 영숙을 철수에게서 뺏아 올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하나, 지금껏 그것을 이행하지 못한 것은 춘우의 정성이 부족해 그리한 것이나, 그에게 애정이 얇아서 그리한 것이 아니요, 다만 그에게 어떠한 세력을 대표하는 금전이라는 것이 없는 까닭이다.
 
114
춘우도 한참이나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무슨 결심을 한 듯이,
 
115
『알았소! 당신의 말을 듣기 전에 나는 벌써부터 안 일이 있소. 그러나, 그것을 당신은 그렇게까지 염려하시오? 내가 당신을 믿고 당신이 뜨겁고 무겁고 힘있는 사랑으로써 나간다 하면 언제든지 우리의 사랑을 완성할 날이있을 것이오. 물론 나는 당신의 괴로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며, 나로서 지켜야 할 나의 책임도 모르는 바가 아니요.』
 
116
영숙은 춘우의 뜨겁고 힘있는 말소리에 지금까지 자기 마음 가운데에서 이리 기울었다 저리 기울었다 하는 마음의 저울추가 거의거의 춘우 편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무슨 큰 힘을 얻은 듯하였다. 그는 다만 만족에 가까운 즐거움으로 춘우의 말을 들을 때에는 그 목소리와 음조가 나라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지사(志士)의 비참한 목소리같이 들리었다.그는 춘우의 말소리가 일언반사 어느 것이 자기에게 믿음을 주지 않는 것이 없으며 정당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117
춘우는 말을 꺼내기 시작하더니, 꼬리에 꼬리를 잇고 힘에 힘을 더하여 말을 한다.
 
118
『알았읍니다. 나는 오늘 당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버리었읍니다.나의 가정도 내버리고 나의 어린 동생까지 뿌리쳤읍니다…』
 
119
할 때 춘우의 마음은 거북하였다. 실상은 춘우가 오늘 집에서 싸우고 나온것은 원인이 결코 영숙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심리의 세미 한 부분에는 영숙에게 그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이 자리 영숙의 앞에서는 자기가 가정에서 뛰어나온 것과 원인 전부가 영숙에게 있는 것 같이말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람이 흥분이 되면 사소한 감정이나 또는 사소한 이유가 전적(全的)으로 그 결과가 나타나는 듯한 일이 있다. 여기에 춘우는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다.
 
120
영숙은 고개를 번쩍 쳐들며,
 
121
『왜? 댁에서 나오셨나요?』
 
122
하며 경이의 눈으로 춘우를 쳐다보매, 춘우는,
 
123
『네, 아주 나왔어요.』
 
124
이 말을 들은 영숙은 춘우의 결심이 그렇게까지 굳은 것과 또는 자기를 그렇게까지 위해 준 것과 또는 그렇게까지 미덥고 굳센 용사(勇士)를 자기의 애인으로 한 것이 자기에게는 더 말할 수 없는 굳은 힘이 되는 듯 하였다.
 
125
춘우와 영숙과의 두 사람 마음 가운데에는 이 순간에 무슨 공통되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으니, 장차 두 사람은 어떠한 형식으로라도 완전한 부부가 되리라는 막연한 느낌이다.
 
126
『그러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실 터입니까?』
 
127
춘우는 이제부터 자기 생활에 무슨 큰 변환이 있을 터인 것을 생각하 매, 한편으로 생신한 마음이 도는 동시에 또는 자기의 책임이 무거운 것을 깨닫게 되었다.
 
128
『이제부터요?』
 
129
한참 말이 중단 되었다가,
 
130
『이제부터는 자유스럽게 살려오. 이왕 집에서 뛰어나온 이상, 다시 집에 들어가지는 않겠지요. 어떠한 괴로움 어려움이 있든지 나는 나대로 살아가 보려 해요. 영숙!』
 
131
영숙의 손을 쥐면서 끼어안을 듯이 힘을 주어 영숙의 팔을 잡아당기며,
 
132
『영숙 씨도 나처럼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와 같이 어려움과 슬픔과 기꺼 움 즐거움을 똑같이 나누면서 함께 살아갈 생각은 없소? 만일 영숙 씨가 나를 떠나지만 않는다 하면, 나는 무슨 짓이라도 할 터이오. 두 다리 두 팔이 있는 이상 당신이 내 그 두 다리 두 팔에 굳센 힘을 부어 줄 줄 믿소. 응!
 
133
영숙 씨 나는 당신이 지금 철수와 떠나지 않고 이대로 있다 하면 참으로 몸이 괴로와 못 살겠소. 도리어 모든 것을 딱 잊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134
영숙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러웠다. 어제 저녁에 자기 남편에게 맹세까지 한 것이 지금 와서는 후회가 된다. 그는 춘우의 이 말을 듣고서 다만 뜨거운 핏속에 감격의 떨림이 있을 뿐이다.
 
135
『춘우 씨! 저도 벌써부터 그러한 생각을 먹지 않은 것이 아냐요. 춘우 씨의 마음도 제가 몰라 드리는 것이 아냐요. 춘우 씨의 마음이 괴로우신 것보다 몇 배 이상 저의 마음도 괴롭습니다』
 
136
하는 영숙은 몹시 감사함과 또는 어제 저녁 일을 뉘우치는 눈물이 검정 눈 기름한 눈썹 위에 이슬같이 맺히었다.
 
137
『춘우 씨!』
 
138
영숙은 춘우의 무릎에 그대로 엎드려지며,
 
139
『모든 것을 용서하여 주셔요. 제가 약한 년입니다. 모든 것을 저는 잘못했어요』
 
140
하고 느끼어 운다. 춘우는 영숙의 등에 손을 대고,
 
141
『왜 이러우, 울기는 왜 울어』
 
142
하며 타이를 때 어쩐지 자기의 마음도 공연히 비상(悲傷)하여져서 눈물이 핑 돌아 영숙의 윤곽이 흐릿하여 보인다.
 
143
『저는 참으로 춘우 씨에게 무엇이라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요. 춘 우씨는 저의 잘못은 무엇이든지 용서하여 주시죠?』
 
144
춘우는 지체 없이,
 
145
『우리에게는 무엇이든지 가리움이 없고 꺼리는 것이 없으며, 언제든지 용서가 있을 따름이며, 서로 믿을 뿐이죠.』
 
146
『그러나 춘우 씨?』
 
147
말을 하려다가, 영숙은 다시 고개를 내흔들며 느끼는 목소리로 운다.
 
148
『왜 이러우, 우지 말아요. 남이 듣더라도 부끄럽지 않아요.』
 
149
영숙은 속이 시원할 만큼 울더니,
 
150
『저는 참으로 춘우 씨에게 죄를 지었어요. 저의 애 아버지에게 이제부터는 춘우 씨를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하였어요.』
 
151
춘우의 가슴은 쓰리었다. 날더러 자기를 사랑하여 달라고 하던 예쁜 붉은입술은 어제 저녁의 자기 남편에게 나를 배반하겠다고 그의 베개 밑에서 속삭거리었을 것을 생각하매, 사탄의 독 묻은 입술과 같이 영숙의 입술도 무서워 보이었다.
 
152
그러나, 지금 영숙은 모든 것을 자백한다. 자백자에게 또다시 무슨 허물이 있으랴. 도리어 그가 측은하고 가련할 뿐이다.
 
153
춘우는 다만 우는 영숙을 타일러,
 
154
『울지 말아요. 내 모든 것을 용서할 터이니, 울지 말아요』
 
155
하고 영숙의 고개를 쳐들어 그의 눈물을 씻어 주었다. 영숙은 옆으로 자리를 정하고 앉으며 힘없는 한숨을 가슴이 무너지도록 쉬더니, 느끼는 목소리로,
 
156
『이제부터는 저도 모든 것을 내버리고 춘우 씨와 함께 어디든지 가려 해요. 춘우 씨는 저를 어느 곳으로든지 데리고 가셔요.』
 
157
『그러죠. 어디든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떨어지지 않도록 하죠. 모든 것을 이기고 싸워 보죠』
 
158
할 즈음 창하가 바깥으로 뛰어들어오는데, 그의 손에는 과자와 과일을 잔뜩 들었다.
 
159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다가, 춘우를 향하여,
 
160
『이것이나 먹게』
 
161
하고 손을 들었던 것을 내놓으며, 구두를 끄르고 들어와서, 영숙을 보고 속으로는 또 어린애들 모양으로 쪽쪽 울었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
 
162
『눈이 왜 저렇게 붉을까요?』
 
163
하고 영숙의 대답이 굳이 듣고 싶다는 듯이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영숙은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하면서, 입만 몽긎몽긎하고 있으려니까, 춘우도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영숙의 입만 보고 말 나오기를 기다린다.
 
164
『안질이 나셨나요?』
 
165
창하의 짓궂이 묻는 것은 놀려먹자는 수작이다.
 
166
『아뇨?』
 
167
영숙은 창하가 알면서도 그러니까 거짓말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울었다고 할 수도 없어 아니라고 하기만 한다.
 
168
『그러면, 무엇이 들어갔나 봅니다그려』하니까, 민망한 춘우는,
 
169
『압다, 그것은 그렇게 알아 무엇 하나! 어서 이것이나 먹게』
 
170
하고 과자를 집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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