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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기(過渡期) ◈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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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채만식
1
過 渡 期 [과도기]
 
2
3
 
 
3
꽃 피고 새 울고 화기로운 마취약으로 새파란 청춘 남녀를 못견디게 속살거리던 봄도 어느 겨를에 애달피 지나가고 힘찬 가지에 무르녹은 푸른 잎이 우거진 여름철이 왔다.
 
4
땅바닥에서 확확 치닫는 더운 기운은 길바닥에서 부옇게 일어나는 먼지와 뒤 섞여 숨길을 콱콱 막고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은 사람의 몸을 느긋느긋 녹여내어 사지에는 게으른 기운이 가득차고 온몸에서는 구슬땀이 물 솟듯 흘러내렸다. 정수(正洙)는 흰 바탕에 검은 점 박힌 일본 여름옷(浴衣[욕의])을 입고 호산원(戶山原: 즉 日本[일본] 東京[동경] 市外[시외]에 있는 練兵場[연병장]) 한편 구석에 있는 소나무 그늘 밑 잔디 위에 읽지도 않는 원서 한 권을 손에 들고팔을 베고 비스듬히 누워 앞에 오락가락하는 사람들과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5
넓은 벌판에서는 총끝에 날카로운 창을 꽂아 들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병정들이 누런 저고리에 땀이 베어 시커매 가지고 상관의 꾸짖는 소리에 쩔쩔매며 이리저리 터드럭터드럭 달려다니면서 산개 연습(散開練習)도 하였다.
 
6
아롱진 옷에 빨간 양산을 가볍게 든 일본 댁네가 이제 겨우 자박자박 걷기 시작 하는 어린아이 손을 이끌고 논밭 사이 잔디 위로 서서히 거닐고 있었다.
 
7
양기롭게 떼를 지어 더운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며 기롱질하는 소학교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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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나란히 붙어서서 어깨를 서로 비비며 무어라고 재미있게 소곤거리는 젊은 남녀도 있고 그것을 보고 조롱을 하며 방해를 붙이려고 하는 심술궂은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9
'왱’ 소리를 치며 달아나는 전차도 있고 등에다 대바구니를 둘러멘 점방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도 하고 머리털이 흰 노인이 어린애를 등에 업고 벌판 가에 있는 집 문앞에 서 있기도 하였다.
 
10
이 모든 것이, 따가운 햇빛과 두려운 상관의 호령 소리에 가뜩이나 긴장된 병정들의 검고 담 흐르는 얼굴과는 아주 딴판으로 썩 한가한 빛을 나타내었다.
 
11
정수는 그런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혼잣말로 구시렁거렸다.
 
12
'저것이 모두 사람들이지 ? 저 구더기처럼 모여서 움덕움덕 움덕거리는 것들이…… 그래도 이상은 해. 저 사람마다 다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란 게 있고…… 몸에는 피가 흘러다니고…… 그리고 제가끔 하는 일은 있겠다…… 저 병정 놈들, 저 인(人)백장놈들은 사람 죽일 공불하구…… 계집은 사내, 사낸 계집…… 장자(長者) 사람은 돈…… 어, 참우스운 것은 사람이지…… 살면 얼마나 살고 얼마나 잘살겠다고 저것들이 저리 나대는고…… 저기 저 큰길로 가랭이가 찢어지도록 급히 걸어가는 놈은 무얼 하려구 지금 어델 저러고 갈까 ? 저놈도 물론 저 할 일이 꼭 있으니까 그러겠지 ? 또, 저 전차 속에 가득 탄 사람들? 저 사람들도 다 각기 가는 곳과 볼일이 서로 같질 않으렷다…… 다 각기 제 일 제가 하느라고…… 그래 살려고…… 살아도 좀더 낫게 살려고…… 그러다가 팩팩 쓰러져 뒤어질 것들이…… 또 저기 저편에서 비틀거리고 오는 놈은 분명 술이 취했지 ? 글쎄 조 놈은 대관절 무엇이 그리도 좋길래 저지경이야?’
 
13
이처럼 공상을 하는 중에 저편 솔밭 속으로 봉우가 빙그레 웃고 나오며
 
14
"여보게, 정수…… 자넨 무얼 그리 보구 있나?"
 
15
하고 정수의 옆으로 가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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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는 동경상과대학 예과 학모를 쓰고 손에는 책가방을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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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입은 교복은 근본 남색이던 것이 얼마나 입었는지 빨갛게 빛이 바랬다봉우는 본판이 얼굴빛이 검은데다가 요즘 햇볕에 그을어서 더욱 검어지고 다만 그의 희고 잘 골라선 이빨만이 빙글빙글 웃을 때마다 두툼한 입술 속에서 해뜩해뜩 곱게 반짝였다.
 
18
정수는 일어나 반가운 듯이 봉우의 손을 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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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봉울세그려…… 언제 왔댔나?"
 
20
하고 의미 있게 미소를 하며 봉우를 마슬러 보았다. 봉우는 얼굴을 찌푸리고 양복 단추를 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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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면 이리두 더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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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다시 얼굴에 가는 웃음을 띠고
 
23
"나? 음…… 얼마 되잖아. 그래 그동안 재민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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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었다.
 
25
"재미 ? 재미가 무슨 재미야…… 난 언제든지 그대로이지. 그리구 참, 자네 이번에 못 당할 일을 당했데그려…… 그래 내가 자네한테 편지했댔지…… 그 편지 받아 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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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봤지…… 그리구 자네 지금두 그 편지에다 쓴 그 주소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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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거기 그대로 있지. 그런데 대관절 어찌 된 일이랬나? 지난번 봄 참에…… "
 
28
봉우는 정수에게 지난 봄참에 자기 안해가 그처럼 자살하던 자세한 말을 모조리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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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봉우는
 
30
"한편으로 생각하면 잘 죽었다구 할 수가 있지…… 물론 불쌍하기두 하지만…… 사람이 그 지경이 되어가지구 좀더 살면 무어야? 누구든지 그 지경이 되었건 진즉 죽어버리는 게 편치…… "
 
31
정수는 조용히 앉아 잔디풀만 똑똑 뜯으며 듣고 있다가 그는 속맘으로 생각을 하여 보았다.
 
32
생각은 하였으나 그의 일면관(一面觀)인 피상적 인생관으로는 봉우의 안해가 죽은 그것에 대하여 깊은 판단을 하지 못하였다.
 
33
"그래…… 그 뒤에 한번두 꿈에 보이거나 그렇진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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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정수는 한참만에 봉우에게 물었다.
 
35
"꿈에? 없지 없어…… 사실말이지 난 내 양심에 조금치라두 거리 끼는게 없으니까…… 내가 절 보구 죽으란 적 없구 그리구 또 내가 이렇게 맘을 먹었댔지 ㅡ 이혼을 한 뒤에 넉넉친 못하나마 논 석지기나 하구 돈천이나 하구 주어 보낼려 구 ㅡ 자넨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만 난 조금두 잘못이 없다구 생각 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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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우 자네론 그도 괴이찮은 말일세만 자네한테 전혀 잘못이 없다군 또 말할 수두 없지…… "
 
37
"왜 그래 ? 만일 잘못을 가려내자면 그건 사회의 잘못, 사회의 죄라군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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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것이 알기 쉽게 말하자면 사회의 죄겠지…… 그러나 우린 사회란 무엇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잖아 ? 그러니까 난 이것이 잘못된 생각일진 모르지만, 그것이 모두'사람이 사람인 죄’라구 생각하네…… 그러나 그런 말은 지금 할말이 아니구…… 자네 부인두 자네 말대로 하면 아무 잘못이 없지 ? 그런데 그 아무 잘못이 없는 그가 자넨 어찌 되었든 '자네 때문에 ’ 이 세상에서 그 자신으로 보아선 무엇하구두 바꾸질 못할 생명을 그처럼 참혹히 잃었단 말이야…… 그 뿐 아니라, 그가 그처럼 죽기 전에는 '자네 때문에’ 그렇듯한 고생을 하잖았나? 그러니까 죄가 있구 없는 걸 묻자면 자네두 적긴 하지만 죄가 있다구 할 수가 있잖나?……"
 
39
"흥……"
 
40
하고 봉우는 농하듯이 이제는 말을 하였다.
 
41
"흥, 여보게…… 그것은 자네 같은 사람이나 할 말이지 난 그런 건 일 없네…… 그런 답답한 이론은 일없어…… 하나, 그건 그만해 두구…… 그리구 그 뚱뚱보가 말일세…… 내 지갑 속에다 돈을 오십 원이나 집어넣어 놓구 죽었겠지…… 나두 몰랐다가 며칠 된 뒤에 지갑을 열어보니까 돈 한푼 없던 지갑 속에서 십원짜리가 푹푹 다섯 장이 나온단 말이야…… 어머니 아부지두 그런 일은 없다시구 형님두 그런 일은 없다시구…… 그러니까 분명 그게 집어넣은 게 아니겠나? 그리구 또 농 속을 열어보니까 내 옷을 말이야, 내 옷을 모조리 깨끗하게 빨아 바느질을 잘 해서 두었더래."
 
42
"그러니까 자네가 인제 다시 장갈 들더래두 다신 그런 안핸 만나질 못 해요…… "
 
43
"어질긴 하건 안하건 부부간에 서로 사랑만 하면 그만 이지…… "
 
44
"그러니까 자네 부인이 자넬 사랑칠 안했단 말인가? 그러니까 글쎄 자네가 지금 다른 여자하구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한대두 자네 먼점 부인만큼 자넬 사랑하는 안해는 얻기가 어렵단 말이야…… 만일 자네가 '어진 안핼’ 얻으려거든 농촌엘 가 구해요…… "
 
45
"그런 말 말게…… 시골뜨긴 아주 싫증이 났네…… 그래 이번에 오는 길에 경도 (京都)서 선까지 봤댔네…… 그런데 양장미인이야. 썩 미인…… "
 
46
하고 봉우는 아주 만족해하는 듯이 눈을 간소름히 뜨고 빙글빙글 웃었다.
 
47
정수는 믿지 않는 듯이
 
48
"무에 어째? 선을 봐?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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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었다
 
50
"아무렴. 범연하겠나…… "
 
51
"누군데? 어찌 된 일이야?"
 
52
하고 정수는 호기심이 나서 바싹 다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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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는 다음에 쓰인 사실을 대략 정수에게 말을 하였다.
【원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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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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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7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