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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기(過渡期) ◈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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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채만식
1
過 渡 期 [과도기]
 
2
12
 
 
3
날씨가 차마 더워간다.
 
4
사람 살기 언짢은 동경 ㅡ 그 속에는 수백만의 생명이 더위와 먼지 속에서 허위댔다.
 
5
사람마다 얼음 (氷水[빙수])과 부채가 아니면 잠시라도 견디기가 어려웠다. 따가운 길거리에 산뜻하게 꾸며놓은 얼음집에서는 서늘한 맛이 저절로 우러나는 듯 ㅡ 혹독한 더위를 그려내는 알맞은 그림(畫[화])이 되었다.
 
6
불붙듯하는 햇볕에 시들어진 나뭇잎, 먼지 앉은 풀잎, 헐떡거리는 전차길 걷는 사람, 철둑(鐵道線路[철도선로])에서 사지를 죽은 게 발 놀리듯 하는 일꾼들 ㅡ 모두가 게으름에 싸여 맥없이 움직였다.
 
7
네 사람의 작은 오막살이는 전과 같이 다름없이 지나갔다. 일학기 시험 때가 닥쳐왔으므로 봉우는 시험공부를 하느라고 다른 일에 정신이 없었다.
 
8
하루는 오정쯤 하여 정수가 학교에서 돌아온즉 형식은 아직 오지 아니 하고 봉우는 책상머리에 가 끄윽 들어앉았고 문자만이 심심한 듯이 소설을 보고 있었다.
 
9
문자는 정수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반가이 자기 방으로 같이 가서 이야기를 하였다.
 
10
"문과에 다니신다지요? 문과면 무슨 문학이세요?"
 
11
하고 이 말 저 말 끝에 문자가 물었다.
 
12
"노문과(露西亞文學科)올시다."
 
13
하고 정수는 문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14
"노문학이 썩 좋다지요?"
 
15
"네. 비교적 재미가 좀 있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문자씬 무슨 문학이십니까?"
 
16
"영문학인데요."
 
17
"전 몰라요. 이름만 문과지 아무것두 몰라요. 그런데 저두 노문을 해보구 싶은데요?"
 
18
"그래두 좋지요. 그렇지만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19
"왜요?"
 
20
"문학이면 그저 문학이었지 무슨 그다지 별다른 구별이 있겠습니까? 물론 각기 나랄 따라서 조금씩 특징은 있겠지요…… 그것은 남이 끼쳐준 작품을 향락 하는 데는 필요하지만 창작하는 데는 그다지 큰 영향이야 되질 않을 게니까요. 문학은 외래(外來)의 감화보담두 내적 조건 (內的條件)인 천재의 소질이 더욱 필요 치 않습니까?……"
 
21
"그러면 정수씬 문학천재론을 주장하세요?……"
 
22
하고 머리를 들어 정수를 보려다가 정수와 눈이 마주쳤다.
 
23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돌렸다.
 
24
그들의 마주치는 눈은 다만 친한 벗이란 범위에서 한걸음 더 나간 것을 나타냈다. 그들은 얼굴이 간질간질한 듯하였다. 그러나 또한 한편으로는 그들이 그것을 잘 의식치 못할 만큼 그 작용이 몽롱하기도 하였다.
 
25
"네……"
 
26
하고 정수는 곧 대답을 하였다.
 
27
"네. 전 말하자면 문학천재론입니다. 전 문학범용론(凡庸論)으론 만족 할 수가 없어요. 저두 맨처음엔 그런 줄 저런 줄 모르구 남이 좋다니까 호기심에 끌려서 문학을 지망했더니, 지금 와선 여간 고통이 아닙니다. 사실 말이지 전 천재 아니군 문학을 할 필요가 없다구 생각해요. 문예(文藝) 그 자신이 천재의 손이 아니군 생기질 못 하니까 요…… "
 
28
"그렇지만, 천재두 배우지 않구 천재가 될 수 있나요? 정수씨두 지금 배우시는 중이 아니세요?"
 
29
"그거야 물론 그렇습니다. 천재두 닦아야만 그 천재가 발휘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물 날 곳은 첫이월부터 알아본단’ 말처럼 천재와 범인은 첨부터 다른 것이니까 요…… 전 아주 단언(斷言)을 합니다. '제가 천재가 아닌 것’을…… "
 
30
"글 쎄올시다. 지금 이 지경으로 이상과 실제가 모순된 저로는 응당 목적을 고쳐야만 될 겐데…… 그래두 전 문학에 뭐 약간 집착(執着)이 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한층 더 고통이지요? 전 아주 이 세상에선 버린 몸이에요…… "
 
31
하고 창연히 말을 맺었다.
 
32
문자는 정수의 외면한 얼굴을 아무 말 없이 다만 동정하는 듯이 바라보았다.
 
33
잠깐 동안 두 사람은 묵묵히 앉았다가 문자는 일부러 화제를 고쳐
 
34
"그인 누구에요?"
 
35
하고 물었다.
 
36
"그이라니요?"
 
37
하고 정수는 문자를 마주보고 돌쳐물었다.
 
38
문자는 왜 시치미를 뚝 떼느냐는 듯이 정수를 바라보며
 
39
"아따 저…… 애인이 계시다면서요?"
 
40
하며 의미 있게 웃었다.
 
41
"네……"
 
42
하고 정수는 고개를 끄덕 거리며
 
43
"그렇지만…… "
 
44
하고 우물우물하였다.
 
45
"그인 정수씰 퍽 사랑하시지요?"
 
46
"네…… 아마 그런 듯해요."
 
47
"또…… 정수씬?"
 
48
"저요? 글쎄요. 그저 아무렇지두 않지요."
 
49
하고 정수는 근경속 있게 문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50
문자도 마주보았다.
 
51
두 사람의 마주치는 눈은 무엇인지를 언약하는 듯, 무엇인지를 서로 바라는 듯 하였다.
 
52
정수와 문자는 의미있게 빙긋 웃고 서로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말없는 이 행동에 그들의 얼굴은 은근히 간지러웠다.
 
53
이 작용에서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54
그들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였으나, 사실 말하면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마주 앉았는 것이 아니라 마주 앉았기 위하여 이야기를 한 것이다.
 
55
그 쾌감을 잃지 아니하고 또 그 쾌감을 더 길러나가려는 본능에 가까운 무의식적인 것이었었다.
 
56
그러므로 그네의 하는 이야기는 그 수단으로 쓰이는 피상적인 것이었었다.
 
57
그 내면에는 그네 스스로도 아직은 잘 의식치 못하는 몽롱한 욕망과 이상스러운 호기심이 숨어 있었다.
 
58
이 뒤로부터 두 사람의 마음은 공연히 들썽거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단 둘이서 마주 앉으면 마음이 어쩐지 느긋한 듯하였다.
 
59
무슨 일에든지 정수의 하는 것은 문자에게, 문자의 하는 일은 정수에게 서로 말 할 수 없이 재미가 있었다.
 
60
정수나 문자 두 사람 중에 누구나 한 사람이 그 오막살이에서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면 나머지 한 사람은 그만 아무 재미도 느끼지 못하였다.
 
61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그네 스스로도 아직은 잘 의식치 못하는 그 관계가 있다고 결코 그 오막살이의 평화로운 살림살이를 깨뜨린 것은 아니다.
 
62
형식은 정수에게 질투를 하였다. 물론 정수와 문자 사이의 그러한 관계가 있는것을 그가 알고 그러한 것은 아니다.
 
63
형식은 학교에 가서 혼자 앉았으면 정수와 문자가 힘있게 껴안고 입을 쪽쪽 맞추리라는 것을 상상하고 무의식중에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일도 있었다. 또 옆방에서 정수와 문자가 조용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금시 쫓아가서 무얼 하고있나 보고도 싶었다.
 
64
더우기 문자와 정수가 자기가 보지 않는 데서 농말을 하고 웃는 소리가 들리면 그는 눈에서 불이 번쩍 나는 듯하였다. 또 혹 어느 때 정수가 집에 없는 사이 에문 자가 일이 있어 혼자 밖에를 나가는 때에는 형식은 문자와 정수가 어디선지 단둘이 조용히 만나고 있으려니 하는 생각을 가지고 곧 그저 문자의 뒤를 밟아 보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형식은 혼자 속을 태우다가도 문자의 귀여운 말소리와 정수의 천연스럽고 다정한 얼굴을 보면 그만 마음이 더운물에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자기가 그렇듯 질투를 일으킨 것을 속맘으로 몹시 부끄러워하였다. 형식은 예전에 상야에 있을 때에는 가끔 놀러오는 봉우에게도 그렇듯한 질투를 하였다. 그뿐 아니라 문자를 자기가 사랑하게 된 뒤로 문자와 접촉하는 모든 남자에게 그는 그렇듯한 질투를 하였다. 그러므로 형식의 질투는 결코 못된 강짜도 아니고 무서운 복수의 결과에 이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문자를 사랑하는 맘에서 우러나오는 변태현상에 지나지 못하였다. 말하자면 가상의 질투였었다. 그러므로 그는 문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결코 예전보다 못하지를 아니하였다. 물론 봉우나 문자도 형식이가 그러한 줄을 알지 못하였다.
 
65
그러나 정수만은 형식이의 그만한 심리를 관찰할 수가 있었으므로 가끔 혼자 미소함을 마지 아니하였다.
 
66
날이 갈수록 문자와 정수는 꿈 같은 호기심으로 차차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억제하려고도 아니하였다. 그렇다고 문자가 예전보다 형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었다.
 
67
정수와 문자 사이의 이상스러운 현상은 시적 색채(詩的色彩)를 띤 호기심과 육감에서 우러나온 꾀임에 지나지 못하였다.
【원문】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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