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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기(過渡期) ◈
◇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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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채만식
1
過 渡 期 [과도기]
 
2
13
 
 
3
마침 어느 일요일이었었다.
 
4
"에라, 오늘은 해수욕이나 하러 가겠다…… "
 
5
하고 봉우는 보던 책을 덮어 치우고 일어섰다.
 
6
"형식이두 가구 정수두 가구 인제 내일 한 과정만 마치면 그만인데 어찌 맘이이라 설뚱거리나! 문자씬 안 가시려우. 자 얼핏 일 어나 요들…… "
 
7
그러나 정수는 헤엄을 칠 줄 모른다는 핑계를 하고 가려 하지 아니하였다.
 
8
형식은 문자를 보고
 
9
"문자두 오지 말라구. 헤엄두 칠 줄 모르구 또…… "
 
10
"아니에요…… 나두 갈 테야요. 헤엄칠 줄 모르면 배라두 타지? 정수씨두 가세요, 네? 우린 헤엄은 칠 줄 모르니까 보트라두 타면 좋잖아요?"
 
11
하고 문자는 따라갈 듯이 일어섰다.
 
12
형식은 문자를 막으며
 
13
"글쎄 헤엄두 칠 줄 모른다면서 밸 타다가 빠지면 어쩔려구 그래? 그리구 문잘 데리구 그런 델 가면 못된 불량소년 놈들이 나대는 꼴이 보기 싫어…… 그러지말구 집에서 정수하구 놀아요."
 
14
하고 살살 달랬다. 봉우는 벌써 문밖에 나가 서서 혀를 끌끌 차며
 
15
"에끼 못생긴 것. 불량소년 놈들한테 매 맞을까 봐서 그러니? 염려 마라 이애.
 
16
내가 한손에 열 놈씩 당할 게니…… "
 
17
하고 풍을 쳤다.
 
18
형식도 곧 밖으로 나가고 집안은 갑자기 조용하여졌다. 문자는 따라가려고 말은 그 처럼 하였으나 정수와 남아 있게 된 것이 도리어 다행이었다.
 
19
정수와 문자는 툇마루로 나가서 정수는 등의자에 가 비스듬히 기대어 앉고 문자는 자기 방에서 가지고 온 의자를 그 옆에 다가놓고 앉아 이야기를 하였다. 모처럼 두 사람이 단둘이서 만나 단출히 앉게 되었으니까 어쩐지 마음이 푸근하고 안심이 되는 듯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또 그 '피상적’ 이야기가 나왔다.
 
20
"정수씬……"
 
21
하고 문자는 좋은 말거리를 얻은 듯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22
"정수씬 참…… 예수굘 믿잖으시지요?"
 
23
"네…… 밎잖습니다."
 
24
"그렇지만 성경은 신약 구약 다 보섰지요? 문학을 하시는 터이니까…… "
 
25
"아직 다 보진 못했습니다. 첫머리 조금씩 보다가 그것두 싫증이 나서요 문자 씬 기독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6
"글쎄요…… 저두 성경두 좀 보구 믿는 사람한테 이야기두 좀 들어보구 했지만 잘 모르겠어요. 그리구 아주 모순이 많은 듯해요? 정수씬 많이 생각해 보 섰으니까 잘 아시겠지요? 좀 들려주세요."
 
27
"저두 자세힌 모르겠습니다. 그리구 전 어쨌든 무신론(無神論)의 입각지(立脚地)에서 생각을 약간 해봤으니까요. 전 물론 신(神)의 존재부터 부정 합니다…… 그러구 이 세상의 인류라는 것을 크게 보질 않구 아주 미소한 동물이라구…… 전혀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저의 인생관의 뼈라구 할 수가 있으니까 요. 그러니까 종교가나 또는 독신자들이 '아! 하나님이시여!’라든가 종교의 신성한 것을 말한다든가 인생을 위대한 것이라구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건 참구 역질나도록 비위가 거슬려요. 물론 한편으로 생각하면 종교의, 가령 말하면 기독교의 이상이야 좋다구 할 수두 있겠지요. 애(愛)랄지 무저항을 주장해서 사람을 선(善)으로 인도하려구 하는 것이…… 그렇지만 종교란 것이 미신의 좀더 진화 된 것이 아닙니까? 원시종교에는 애라든가 무저항이라든가 하는 것이 없이 다만 별이나 해나 그런 것을 보구 절을 하며 저희들의 행복만 빌고 그렇든 게 아니에요? 가령 기독교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아라비아 사막에서 방황할 때에 번개 치는 것을 보구 그 이상스럽구 두려운 힘을 믿는 맘으로 그걸 심볼 라이즈 해가지군 에호바라구 한 게 아니에요? 그때엔 그 에호바의 신격(神格)이 다만 저의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는 데 지나지 못하다가 그 담 바빌론캡티비티 이후에 동방 종교의 영향을 받아서 그때엔 그 신격이 한층 올라가 정의(正義)의 신이니 유일신이니 창조의 신이니 하게 된 게지요? 그러다가 그리스도라는 소위 참 위대한 종교 가가 나서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기독교를 완성시켰지요? 그러나 그때 사람의 머리가 단순하던 때의 것을 훨씬 더 교활해진 지금의 사람에게 그대로 이용을 하려니까 물론 잘 되지 않을 게 아니에요? 지금 아무리 이 세상에 기독교 신자가 사억만이니 어쩌니 떠들지만, 그 사억만 사람 가운데 진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몇 이나 있을는지 전 그것이 의문입니다. 그러니까 종교도 시댈 따라서 진화가 있어야 않겠습니까? 물론 약간 진화가 없는 건 아니겠지요. 가령 기독교로 말 하면 인생이 이승(現世[현세])에 대한 접착성을 이용해서 천당이란 것을 만들어놓 구이 세상에 착한 사람에게 소극적 위안을 받게 하구…… 또, 악한 사람을 위협 해서 선으로 인도하기 위해선 지옥이란 것두 만들구…… 그러니까 말하자면 기독교에선 사람의 영생욕(永生慾)을 이용하는 데 한걸음 더 나아가서, ' 인생은 미래(未來) 즉 하나님의 세상 때문에의 인생이요, 결코 이승 때문에의 인생이 아니라’ 는 야릇한 인생관을 가지게 된 게지요? '사람은 하나님의 시련을 받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난 것이라’구…… 물론 이것이 기독교가 기독교인 이상엔 다시 어쩔 수 없는 말이겠지요. 그러니까 기독교가 ㅡ 다른 종교도 그렇지만 ㅡ 오늘날와서 이 시대에 적응성이 많질 못한 듯해요…… 사실 말이지 인생이 현세 때문에 인생이지 결코 미래나 하나님 때문에의 인생이지 결코 미래나 하나님 때문에의 인생이 아니니까요. 그리구 성경 ㅡ 더우기 구약 ㅡ 같은 것은 지금 와선 도리어 기독교도들의 소위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데 지나지 못 하니까 요. 그 하나만 들어 말하면, 구약에 있는 노아 때의 대홍수란 것을 기독교는 아주 깊이 생각할 거예요. 노아 때 대홍수로 인해서 많은 사람과 생명이 죽었다구 그러지요? 그런데 그 큰 홍수는 하나님이 내인 게라지요? 그러면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더구나 하나님의 자손을 그처럼 참혹히 죽여서야 하나님의 하나님 된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두 죄악이라구 해서 지옥을 가네 어쩌네 하면서…… 그러면 하나님두 지옥을 가야 옳잖겠읍니까? 그리구 오늘날 와서 기독교를 세계적의 것이라구 표방을 하면서 성경에다는 이방인(異邦人), 이교도를 배척한 말을 엄연히 써놓구…… 그러니까 만일 이 세상에서 누구든지 신앙과 영생의 관계를 참되게 발견하려면 오늘날 종교의 견 지에서 훨씬 초월한 생각을 가지구 관찰을 해야겠지요…… "
 
28
정수는 이처럼 통일이 적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말을 맺었다. 문자는 정수의 말을 듣고 있기는 하였지만, 자세히 알아듣지 못할 말이 많았으므로 좀은 흥이 적은 듯이 묵묵히 앉았다가 뜻밖에 문제를 고쳐
 
29
"그런데, 정수씬 왜 결혼생활을 싫어하세요?"
 
30
하고 물었다.
 
31
"아무리 해두 결혼생활이 자유롭질 못하구 또…… "
 
32
하고 정수는 다음 말은 어물어물하여 버렸다.
 
33
"무에 그다지 부자유로워요?"
 
34
"그거야 물론 자유롭질 못할 게 아니에요? 결혼을 하면 가정이란 게 생기지요? 그러다가 자식이 생기지요? 그런 게 모두 약간 괴롭게 굽니까?"
 
35
"그렇지만 결혼생활을 아니하면 웬만한 자유야 얻는대지만 그 대신 잃는 게 많잖아요? 사람이 세상에 나서 정다운 부부간에 따뜻하게 살아가는 게 큰 낙이 아니에요? 그리구 늙어지면 자라나는 자손을 보는 게 낙이구…… "
 
36
"하긴 그두 그렇지만…… 그역 사람에 따라 다르지요. 그런 데서 낙을 얻지 못 하는 사람두 있으니까…… "
 
37
"그러면 정수씨가 아마 미리서 부자연한 결혼을 하셨기 때문에 아주 싫증이 나셨나 봐요?"
 
38
"하긴 그래요. 그렇지만 전 이 세상에서 저 스스로가 제 몸을 내버린 터이니까 아무 희망이나 낙을 기대칠 않습니다. 그러니까 얼마 되잖는 세상에 맘대로나 살다가 죽어야지요. 제 자신을 위시해서 이 세상의 무엇 하나라두 즐거운 눈으로 볼 수가 있어야 희망이니 낙이니 하지요?"
 
39
"에그 정수씨두 아직 젊으신 이가 왜 그런 말씀만 하세요?"
 
40
하고 딱한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정수를 바라보았다.
 
41
정수의 눈가에는 눈물이 어리고 그의 얼굴은 한없이 비수를 머금었다.
 
42
예전부터 정수의 마음속에 깊이 숨어 그를 괴롭게 하던 고독한 감상은 그새 얼마 동안 잠잠하더니 이제 갑자기 머리를 들고 일어서 그의 마음을 한량없이 쓸쓸하고 섧게 하였다. 정수의 마음 ㅡ 동지 섣달의 벌판같이 쓸쓸하고 처량한 마음은 지금 문자와 같이 마음이 단순하고 상냥한 여자의 가슴에 안겨 맘껏 소리를 높여 울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43
문자도 정수의 그렇듯한 모양을 보고 자기의 전부를 바쳐 그를 위로하여 주고싶은 생각이 간곡하였다.
 
44
문자는 정수의 그 쓸쓸한 얼굴빛에는 자기 마음까지 쏠리는 듯하여 억지로 웃음을 띠고
 
45
"네 정수씨…… 인젠 그런 말은 하지 말구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나해요. 네?"
 
46
정수도 문자의 정답고 귀여운 말소리에 마음이 저으기 위로가 되는 듯이 피식 웃으며
 
47
"그러니까 누구래 어쩝니까?"
 
48
"그래두 하마 했드라면 정수씨 우실 뻔했는데요. 아니, 참…… 그런 말은 않기로 했지. 그런데 정수씨, 그동안 써 두신 시(時) 좀 보여주세요."
 
49
"시요? 허허 시란 다 무엡니까? 누구래 실 쓸 줄 안답디까?"
 
50
"아이 내숭스럽게…… 그러지 말구 어서 좀 보여주세요. 봉우씨랑 형식씨랑 그러는데 많이 써두셨다는데요?"
 
51
하고 해죽해죽 웃으며 아양을 부렸다.
 
52
정수는 말없이 빙그레 웃으며 문자를 끄윽 바라보았다. 마주 바라보는 문자의 그 윽한 추파에 정수의 창자 속에서는 은은한 욕망이 일어났다.
 
53
착착 들어붙을 듯이 연(軟)하고 흰 가슴과. 춘정이 흐르는 그 입술은 정수로 하여금 침을 삼키게 하였다.
 
54
문자는 온몸이 간질간질하여지는 듯 하여
 
55
"왜 그렇게 절 바라보세요?"
 
56
하고 머리를 숙이고 정수를 가릅떠보았다.
 
57
이 두 사람 ㅡ 꿈속에 노는 듯하는 두 사람은 별다른 두 사람이었다.
 
58
맹목적이요 찰나적의 두 사람이었다. 정수는 정수였으나 정말 정수가 아니고, 문자도 문자였으나 정말 문자가 아니었었다. 과거나 미래가 없는 금시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찰나의 정수요, 참말 문자를 보지 못하는 맹목의 정수였었다. 문자도 또한 과거나 미래가 없는 금시 땅에서 솟아 나온 듯한 찰나의 문자요, 참말 정수를 보지 못하는 문자였었다. 서로 마음을 끄는 ㅡ 호기심과 욕망의 지배를 받는 정수와 문자는 그렇듯한 정수와 문자였었다. 그렇듯한 정수와 문자가 참말 정수와 문자의 속에 하나씩 들어앉아 그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었었다.
 
59
두 사람은 또다시 그 '피상적’의 이야기를 내려 할 즈음에 현관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나며
 
60
"김군(金君: 즉 정수) 집에 있나?"
 
61
하는 일본 사람의 찾는 소리가 들렸다.
 
62
정수는 무우 캐어먹다 들킨 아이처럼 공연히 얼굴에 무참한 빛이 나타나더니 그것을 억제하고 현관으로 나갔다.
 
63
"아, 평야(平野)군인가? 오랜만일세 그려…… 자 들어오게…… "
 
64
하고 정수는 온 손(來客[내객])을 맞아들였다.
 
65
그 평야라는 일본 사람은 정수를 따라 들어오며
 
66
"이 집에 식구가 많이 불었다지? 그래 혼자 있기하구 어떻든가?"
 
67
하고 인사하기 겸하여 그 손은 물었다.
 
68
"물론 좋지. 혼자 있기 보담은…… "
 
69
하고 정수는 방석을 내놓고 평야와 마주 앉았다.
 
70
평야는 툇마루에 가 계면쩍은 듯이 섰는 문자를 한번 흘끔 보더니 정수를 보고 '누구냐’ 고 묻는 듯이 미소를 하였다.
 
71
정수는 난처한 듯이 좀 머뭇거리다가 자기 변명을 하느라고
 
72
"문자씨, 일루 들어와서 두 분이 인사나 하십시오. 자 평야군…… 이인 지 전 문자씨 신데 이참에 이 집으로 온 임군의 부인이시구, 이분은(평야를 가리키며) 평야청일(平野淸一) 이란 분인데, 저편 맨 갓집에 있습니다."
 
73
하고 소개를 하였다.
 
74
문자와 평야는 초면 인사를 공순히 마치고 문자는 차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나갔다.
 
75
평야는 나이 삼십이 넘어 보이고 ㅡ 실상 그는 스물여섯 살이나 얼굴에 그 처럼 노티가 나타났다 ㅡ 그의 얼굴은 매우 맑게 생겼었다. 그는 머리털을 제 털 남바위처럼 더부룩이 길렀고 기골(氣骨)은 매우 장대하였으나 그의 얼굴에는 온순한 그림자가 떠올랐다.
 
76
평야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었었다. 정수의 방 바람벽에 걸어놓은 그림도 전부이 평야가 그려서 정수를 준 것이다.
【원문】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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