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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기(過渡期) ◈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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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채만식
1
過 渡 期 [과도기]
 
2
11
 
 
3
그 이튿날 봉우와 형식의 부처는 오정쯤 하여 모두 짐을 옮겨왔다.
 
4
네 사람이 모인 이 조그만 오막살이에는 평화의 기운이 차고 넘쳤다. 그들은 아무 거리낌없는 생활을 하여나갔다.
 
5
아직 현실에 물들지 아니한 그들은 이상(理想)을 토론하기 아니면 모여앉아 농하고 지껄이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었다.
 
6
방은 정수와 봉우가 육조방에 있고 형식이 부부가 사조반 방에 있게 되었다.
 
7
그것도 정수는 형식이 부부에게 큰 방을 주려 하였으나 농 잘하는 봉우의 반대로 그리 못한 것이다.
 
8
그날 저녁에 네 사람은 과실을 듬뿍 사다 놓고 둘러앉아 잡담을 꺼냈다.
 
9
봉우는 복숭아 하나를 덥석 집어 껍질도 벗기지 아니하고 우둑우둑 씹어 먹으며
 
10
"여보게 정수…… 자넨 이혼 안하려나? 물론 않겠지…… 숙명이라든가 진명이라든가 어느 여학굘 졸업까지 했다니까…… 그렇지만 형식이 넌 이번 여름방학에나 가서 썩 이혼해 버리구…… 그리구 문자씨하구 정식으로 결혼할 일이야. 그리구 이애 참 형식이, 너 여기 와서두 내 앞에서 둘이서 쓸어안구 입맞추구 그러련 ? 안된다 그건…… 내가 용설 안할 테야. 문자씨두 정신을 바싹 차리시우, 공연히 큰일이 날 터이니까…… "
 
11
하고 농말을 꺼냈다.
 
12
"용서?"
 
13
하고 형식은
 
14
"네 따위가 누굴 용서하구 않구 해…… 흥, 강짤 하니? 이애 좀 봐라…… "
 
15
하고 빙글빙글 웃으며 문자를 쓸어안을 듯이 팔을 벌렸다.
 
16
그러나 문자는 형식을 쪽 흘겨보며
 
17
"어이구 왜 이러세요 !"
 
18
하고 앉은 자리에서 몸을 피하였다.
 
19
"옳지 그래야지. 문자씨가 내 말을 잘 듣는단 말야…… "
 
20
하고 봉우는 다시 정수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21
"글쎄, 이 사람아, 자네두 이혼을 해…… 자, 우리 여기서 이혼 기성회(期成會) 하나 모을까? 난 그 회장이 되구, 자넨(정수) 부회장이 되구…… 자넨(형식) 내가 특별히 총무 하날 시켜 줄 게구, 문자씬 서기(書記)나 하나 하시구…… "
 
22
네 사람은 모두 재미스럽게 웃었다
 
23
봉우는 다시
 
24
"그러면 내가 자네(정수) 일을 맨먼점 주선해 줄 게니까…… 어때 ? 이혼할 테야?"
 
25
"글쎄 자네가 그처럼 내 일을 보아준다니까 고맙네만 그만두구…… 자넨 자네 일 이나 잘해 가게. 남의 일까지 참견하느라구 그러지 말구…… 하고 정수는 웃었다.
 
26
이때 문자가
 
27
"그러면 정수씨두 벌써 장갈 드셨어요?"
 
28
하고 물었다.
 
29
"네."
 
30
하고 정수는 '왜 묻느냐’는 듯이 문자를 바라보았다.
 
31
"금년에 나이 몇이신데요?"
 
32
하고 문자는 또 물었다.
 
33
"스물하나에요……"
 
34
"부인께선 ?"
 
35
"열아홉인지 스물인지…… 아마 스물인 것 같습니다."
 
36
"그런데 정수씨도 이혼을 하실 테예요?"
 
37
"네."
 
38
하고 정수는 다시 문자를 끄윽 바라보며
 
39
"그러지 마세요…… "
 
40
하고 문자는 정수의 눈을 피하려고도 아니하며 얼굴을 찌푸리고
 
41
"이혼을 하시면 그인 어쩌라구요?"
 
42
정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리다가 다시 말을 하려는 것을 봉우가 내달아 막으며
 
43
"체, 남이야 죽든 살든…… 저만 좋으면 그만 아니우 이 세상엔? 아니 글쎄 그 허수아비 같은 계집 하나 때문에 젊은 놈이 그저…… 그저 그래 버리구 만담? 청춘의 불붙듯 일어나는 로맨스에 물을 끼얹어야 옳담?"
 
44
이 말에 형식이가 비스듬히 누웠던 몸을 일으켜 봉우를 굽어다 보며
 
45
"허허 허허. 이애 봉우야…… 무어 어때? 청춘의 불붙듯 일어나는 로맨스 ? 물을 부어 ? 허허, 그야말로 참 당구삼년(堂狗三年) 이로군…… "
 
46
하고 놀렸다.
 
47
세 사람은 한참이나 재미스럽게 웃었다.
 
48
봉우도 웃으며
 
49
"어, 그 말 한마디 했다가 망신을 했군…… 하지만 사실 말이지 이혼을 하려거든 하루라두 속히 해야 해요. 그래야만 그 여자두 늙기 전에 시집을 다시 가지…… "
 
50
"시집?"
 
51
하고 형식은 다시 봉우의 말을 막으며
 
52
"시집을 가? 이애, 이혼을 하구 나서 바로 곧 다른 곳으로 시집이라두 가서 잘 살아갈 여자 같으면 이혼하기가 어려우니 어쩌니 할 것도 없단다 이애…… "
 
53
봉우는 그 말은 들은 체도 아니하고 다시
 
54
"그리구 이혼을 하구, 나 말이야, 나처럼 영순이 같은 얌전하구 예쁜 색시 한 테로 장갈 터억 간단 말이야…… 그리구 참, 우리 영순이가 성악가(聲樂家)야. 성대가 아주 썩 좋단 말이야…… 내가 경도 갔을 적에 마침 일요일에 예배당엘 가보니까 영순이가 혼자 찬밀 하는데…… 아이구 그저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서 못 보겠더라…… 이것 봐요. 난 인제 우리 영순이 하구 결혼을 한 뒤에 영순일 양장을 턱 시켜가지군 팔을 끼구 산볼 다닌단 말이야…… 삼층 양옥에 피아노 둥둥 치구 금강산 해금강에다 별장 짓구…… 흐흐…… "
 
55
하며 스스로 만족해하는 듯이 웃었다.
 
56
"흥…… 네 꼴에 양장미인 팔 끼구 산보 다니면 자국이 아주 잘 들어맞겠다. 이애 너 이발소에 가거든 체경 앞에 가 서서 네 꼬라질 좀 보렴…… 얼굴은 니그로(黑人[흑인]) 같구 몸은 삼동으로 굽구 걸음은 팔자(八字)걸음이구…… 게다가 엉덩이 춤까지 추구 아주 썩 됐는데…… 그것은 어쨌든 너 삼층 양옥에 피아노 사놓구 별장 짓구 할 돈 있니?"
 
57
"돈?"
 
58
하고 보우는 아주 쾌활스럽게
 
59
"그러니까 지금 상과대학을 다니잖니 ? 지금은 없어두 인제 장사해서 ㅡ 외국 무역이야 ㅡ 많이 모은단 말이야. 너 따위 의원(醫員)질 같은 줄 아니? 그리구여 보게 정수, 자네두 그 썩어진 문학인지 무언지 진작 집어치구 돈 모을 도리 하게 돈…… 문학잔 밥 먹잖구도 살 줄 아나? 그리구 자네 색시가 맘에 맞질 않거든 곧 이혼해 버리구…… 자네가 아직 고 짜릿짜릿한 막을 못 보았으니까 말이지…… 사랑하는 맛이란 참말 눈이 슬슬 감기구 뼈끝이 녹아나는 듯한 걸세…… "
 
60
정수는 빙긋이 웃으며
 
61
"왜? 자네가 우리 스윗 허틀 좀 보려나? 자네만 이 세상에서 그런 맛을 보는줄 아네그려?"
 
62
형식은 봉우를 또 핀잔을 주듯이
 
63
"제 따위가 맛을 보긴 무슨 맛을 봐? 이애 봉우야, 네 따위가 무슨 맛을 봤다구 그러니? 영순이 발바닥이나 혓바닥으로 핥아먹었니?
 
64
영순이 얼굴이 좀 밴지름하니까 저 혼자 들어서 침을 게게 흘리구 다니지…… 그렇지만 영순이가 네 따윈 일없다더라, 이애…… "
 
65
하고 어떻게 하여서라도 봉우를 성화를 먹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봉우도 지지아니하고
 
66
"발바닥엔 말구 구두 바닥에라두 그때 키스나 한번 시켜 주었으면 좋겠더라…… "
 
67
하고 우스운 말을 하였다.
 
68
네 사람은 재미스럽게 웃다가 문자가 정수를 보고
 
69
"그인 누구예요?"
 
70
하고 물었다.
 
71
"인제 차차 아시지요…… "
 
72
"그러면 그렇지."
 
73
하고 형식은 자기 짐작이 들어맞은 것을 자랑하 듯이
 
74
"원체 그래. 정수가 없을 리가 있다구…… "
 
75
봉우는 빈정거리듯이
 
76
"있긴 무에 있어. 썩어빠진 문학자니까 가상연인(假想戀人)이나 있는 게지…… "
 
77
"그래서 이혼을 하실려구 그러시지요?"
 
78
하고 문자는 정수에게 물었다.
 
79
정수는 고개를 쌀쌀 흔들며
 
80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게 아니에요."
 
81
"그러면 왜 그러세요? 전 아무래두 정수씨 속을 모르겠는데요?"
 
82
"왜 그러긴 무얼 왜 그래요? 물론 이혼은 해요. 그렇지만 다시 다른 여자 하구 결혼두 안할 테예요."
 
83
정수는 힘이 들지 않게 문자의 하는 말에 대답하였다. 그러나 문자는 자기 얼굴이 찌푸려지는 줄도 모르고 기를 쓰며 다가물었다.
 
84
"아니 글쎄…… 왜 이혼을 하시려구 그러세요?"
 
85
"이혼이요? 그건 내가 하구 싶으니까요…… 혼자 살기도 괴로운 세상에 안 해가있으면 더욱 거리끼잖겠습니까?"
 
86
"그렇지만 정수씬 그렇다구 이혼을 하시면 그인(정수의 안해) 어쩌라구요? 큰 죄악이 아니에요?"
 
87
"허허, 문자씨가 조선 여자를 보시는 범위가 너무 좁습니다. 물론 이혼을 하는것이 재미가 적은 일이지만 그래두 하는 수 있습니까? 그리구 그는(자기 안해) 소위 신여자라나요. 그래서 이혼을 하더래두 그다지 비극은 생기질 않을 터이니까요."
 
88
"그러면 부인을 사랑치 않으세요?"
 
89
"사랑이요? 허허 사랑이 다 무업니까?"
 
90
"그러면 부인께선?"
 
91
"글쎄, 자기 말은 절 사랑한다구 하긴 해요."
 
92
"그러면 왜 애초에 장간 드셨어요?"
 
93
"흥…… 우리 어머니가 날 꽉 붙잡고 앉아 '장갈 갈테냐? 이 늙은 어미가 네 앞에서 죽는 꼴을 볼 테냐?’하시구 우리 아부지께선 '저런 죽일 놈이 있단 말이냐’ 구…… 말하자면 친권(親權)을 가지구 마구 위협을 하는데 어쩝니까?"
 
94
"장간 언제 드셨는데요?"
 
95
"작년 봄이드랍니다. 작년 봄방학에 집에서 아부지가 위태하시다구 전보가 왔어요. 그래 부리나케 집엘 돌아가 보니까 아부진 다른 동리 노인들하구 바둑을 두 시구 그전보담 기운이 더 좋겠지요. 그리구 날더러 '내가 너를 마흔여덟에 났을 적에 ㅡ 네가 열둘이면 꼭 내 환갑이다 ㅡ 꼭 내 환갑날 막내며느리를 보렸던것을 네 형들이 네 나이 너무 어리다구 해서 지금까지 밀어오긴 했지만, 인젠 네 나이 스물이야. 또 내가 인제는 죽을 날이 멀잖았으니 마지막 널 여위어 놔야 죽어두 눈을 감지 않겠니? 그래 이번에 네 혼사를 치르려구 널 속여 나오게 한 것두 내가 네 형들을 그처럼 시킨 게다. 규수(閨秀)는 ㅡ 난 마땅치 않더라만 ㅡ 그래두 지금은 학교에 다닌 규수라야만 한다기에 이번에 서울서 무슨 여 학교까지 졸업한 규수에게로 정혼(定婚)을 해서 내일 모레가 택일한 날이니 그쯤 알아라…… 하시는데 참 기가 맥힙디다. 그래 어머니한테로 가서 짜증을 좀 대다가 또 경을 한바탕 치르군 하는 수 없이 강제 결혼을 당한 것이랍니다."
 
96
"그러면 아부지께서 그러신 노릇이니까 어디 정수씨 맘대로 이혼 하시겠습니까?"
 
97
"금년에 일흔인제 나셨으니까 곧 돌아가시겠지요."
 
98
"그러면 그렇다구 지금 있다는 애인(愛人)은?"
 
99
"단념해 버리겠지요…… "
 
100
"그것 봐요. 형식이…… "
 
101
하고 봉우는 형식이의 옆구리를 질벅 거리며
 
102
"자네두 그러지 말구 어서 이혼해. 회장의 명령이야. 흐흐…… "
 
103
"이 앤 공연히 남의 속두 모르구…… 정수두 만일 경우나 환경이 나하구 같았으면 이혼을 못한단다 이애. 정수가 왜 이혼하려구 하는 속이나 알구 넌 그러니?"
 
104
하고 형식은 정수의 의견을 묻는 듯이 정수를 바라보았다.
 
105
"내 생각 같아선…… "
 
106
하고 정수는 목을 가다듬어 침착한 어조로 말을 내었다.
 
107
"물론 사람마다 개성이나 취미나 주의가 다르구, 또 더구나 환경이나 경우두 같질 않으니까 통일해서 말할 수야 없지만, 내 생각 같아선 이혼할 필요가 없을듯 해…… 가령 여기 한 사람이 있어가지구 부부간에 정이 없다든지, 혹은 공 방이든 다든지 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이혼을 하구 서로 갈리는 게 좋은 일이 겠지…… 그렇지만 특수한 사회, 특수한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경우나 환경이 또한 특수하잖 냔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 말한 그 사람이 자기 아내와 이혼을 하는 데두 역시 특수한 사정이 있잖겠다구? 만일 그 사람이 이혼을 한 뒤에 그 여자가 홀로 자기의 앞길을 열어나갈 능력이 있다든지, 또는 사회에서라두 그 여잘 돌봐줄 만한 형편이 된다면 도무지 문제가 생기질 않을 게야.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생각 해 볼 것은 그 이혼을 한 여자가 자기 스스로 앞길을 열어가질 못하구 한평생 홀과수로 지내지 않으면 은근짜 집으로 팔려가거나 못된 놈의 첩이 되어 필경은 논두덕 죽음을 하게 되구…… 또 우리나라 사람이 여자의 정조에 대해서두 그런 종류의 여잘 '헌계집’이란 관념을 가지구 있으니까, 설혹 그 여자가 앞길을 열어 나가려구 해두 사회에선 그걸 용납해 주질 않으니까…… 그래서 이러한 희비극이 생긴 일두 있댔지. S라구 하는 그래두 우리나라에선 좀 뭣한 사람이 자기 본 처와 이혼을 하군 다시 다른 여자하구 결혼을 했더라나…… 그러니까 그 본 처였던 여잔 악이 바싹나서 그 S란 사람의 집 바로 맞은바라기 집에 가 앉아 ' 술 장수하는 갈보’가 되었다나…… 그리구 일상 하는 말이 '내 한몸은 저 S란 놈이 이 지경을 만들었으니까 인젠 내 몸은 어찌 되었든 돌아볼 것 없이 무슨 짓을 해서라 두 저 S란 놈에게 끕끕수나 주겠다’구…… 그러니 저 S란 제 소위 ' 점잖은 집안 ’에서 그것이 무슨 망신이며, 또 그 여잔 그처럼 참혹하구 기막힐 일이 어디 있느냔 말이야? 그러니까 어느 편으로 보든지 그렇듯 한 안해가 ㅡ 형식이 부인이나 봉우의 예전 부인 같은 ㅡ 있는 사람은 굳이 이혼을 할려구 말구 그대로 두어 두어요. 두어두면 나이 차차 들어가구 현실생활을 하게 되면 ㅡ 공 방이니 정이 없니 이혼이니 하는 것은 모두 젊은 사람이 젊은 피로 그러는 것이니까 ㅡ 그때엔 맘이 돌아설 게니까. 우리나라에 예전 사람들을 보아두 부부간에 공 방이 들어가지구 원수 보듯이 하다가두 그것이 십 년이 가질 못해서 다시 풀리잖아? 어떠한 사람은 '공방이 들거나 정이 없는 부부가 이혼을 아니하는 것이 노예 생활 매음생활’ 이라구 주장하는 사람이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 있지만, 그 사람은 좀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겠지…… 한걸음 양보하구 그렇듯한 부부 생활 이 노예 생활 매음생활 여자에게 강제하는 것이라구 가령 하더래두…… 그러면 그렇듯 한 여잘 그 노예생활이나 매음생활에서 해방을 시키면 해방시키는 그날부터 그 여자들이 갈 곳이 어디냔 말이야? 그날부텀 그들이야말로 참 키이를 잃은 배나 진배 없지…… 그들이 그날부터 새파란 청상과부가 되기 아니면 그제는 정말 공공의 매음장으로 가질 않겠다구? 그러면 자, 어느 편이 나을까? 노예생활 매음 행활에서 해방을 한다구 일껏 하구서 도리어 그들을 공공 매음소나 새파란 과수를 만들 것하구…… 차라리 인정을 베풀어 주구 부부란 명의를 그대로 가지구 그네에게 장래의 희망두 주구 맘두 편히 먹게 하는 것이? 그네가 사실 말하자면 남편 된 사람에게 그다지 거리끼거나 그렇질 않으니까…… 그 지경 된 그들이 남편에게 요구하는 것이 진진한 부부의 사랑이 아니야. 그러니까 인류애(人類愛) 로써 대접하면 그만이야. 그러구 만일 그네 스스로가 다른 곳으로 가구 싶어하거든 그때엔 얼마든지 이혼을 해주는 것이 좋구…… "
 
108
여기서 정수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109
세 사람은 조용히 앉아 듣고 더욱이 문자의 눈은 정수의 말하는 입에서 떠나지를 아니하였다.
 
110
정수는 마른입으로 담배를 맛있게 쭉쭉 빨고 다시 말을 이었다.
 
111
"그렇지만 아무리 해두 젊은 사람은 이성애(異性愛)가 사라지질 않을게니까 연앤 얼마든지 해. 아무것도 거리끼지 말구…… 그렇지만 대개 애인이 생긴 뒤에 이혼 문제가 생기는 게니까. 그래 순서야 어찌 되었든 애인이 있어서 연애를 하다가 필경은 결혼문제가 생기잖겠다구? 그러면 그제는 결혼을 하지…… 민적이니 결혼식이니 그따위 것은 집어치구…… 만일 그러기가 싫거든 애인과 정을 끊지. 연앨 하다가 최후까지 못하구 중도에서 실연하는 고 쓰린 맛이나 긴장되는 맛이 꽤 괜찮은가 보더구먼…… 인생으로 생겨나서 인생의 쓰린 맛을 좀 보는 것두 할만 한 노릇이겠지? 만일 아무래두 두 사람이 정을 끊기가 어렵거든 결혼을 해요.
 
112
그것이 물론 형식으로 보아선 소위 '첩’이란 것이겠지. 하지만 두 사람의 정이 아무래두 서로 끊질 못할 만큼이면 그렇듯한 형식에 대한 구속까지두 초월할 수가 있겠지. 아차…… 문자씨가 너무 섭섭히 생각하시겠는데?"
 
113
하고 정수는 갑자기 미안한 듯이 문자를 바라보았다.
 
114
그러나 문자는 도리어 얼굴에 즐거운 빛을 띠고
 
115
"아니에요. 저두 언젠지 형식씨하구 그런 말을 했는데요."
 
116
하고, 해쭉해쭉 웃었다.
 
117
"네, 그러세요?"
 
118
하고 정수는 마음을 놓고 다시 말을 하였다.
 
119
"물론 그것이 형식상으로 보면 첩이라구 하겠지만, 그것은 결코 야만 풍속의 일부다처의 것두 아니구, 못된 색마(色魔)나 부자놈들이 호사감으로 첩을 얻는것두 아니니까…… 그렇지만 사회에서 좀 말이 있겠지. 도덕이 어드러니 인격이 어드러니 하여 가며…… 그렇지만 도덕이란 무에야? 사람을 위해서의 도덕이지 도덕을 위해서의 사람은 아니겠지? 그러니까 도덕이란 것두 시간이나 처소나 또는 사람의 행복이나 선(善)의 표준을 따라 달라가야 할 게 아니야?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마련해논 옛 도덕에 지금 와서 구속을 받아서 옳은 일을 굽혀서야 될수 있나. 도덕이란 그 사명이 사람을 착하게 하자는 데 있으니까, 한편으로 보면 도덕의 조건이 사람의 행복을 무시할 수 없는 경우두 있겠지? 사람이 자기의 현상에 행복을 느끼는 데서 악(惡)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부르짖는 곳에 흔히 악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리구 사회의 여론 같은 것이야 돌아볼 필요가 없잖아? 자기 양심에 부끄런 일만 없으면 말이지. 더구나 지금 우리나라 사회의 여론이라는 게 도무지 정당한 게 되질 못해요. 가령 여기 그래두 사회에서 뭣 하다는 사람이 사랑치 않는 아낼 이혼하구 다시 결혼을 하면 사회에선 막 대구 배척이야. 또 남자뿐 아니라 이혼당한 그 불쌍한 여자까지두 짓밟아버리지. 그건 그래두 차차 나아가는 모양이지만, 가령 이제 말한 그 사람이 이혼을 않구 그 애인을 소위 '첩’을 삼아 보지? 그 사람은 그날부터 사회하군 하직이지. 물론 그것을 실행한 사람이 현재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만일 있다 하면 말이야. 그러니까 젊은 놈들더러 늙은이 구실을 하라기두 분수가 있지 그게 무에야, 글쎄? 그러질 말구 차라리 야소굘 진실히 믿는 사람을 하나 천당으로 특파(特派) 시켜서 하나님한테 원정을 좀 해보라지. '우리나라 젊은 사람 뱃속에서 연애성(戀愛性)을 좀 빼버려 달라’구…… 그러니까 우린 우리 양심에 거리끼지만 않으면 사회 여론 같은 게야 모르는 체하는 게 좋아. 그렇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 여론이 그다지 근거가 없는 것두 아니야. 왜 그러냐 하면, 지금 우리나라 젊은애들 가운데 참말 비계나는 꼴이 있으니까. 시체 젊은 애들이 걸핏하면 이혼을 한다지…… 그래, 왜 이혼을 하려느냐'구 물으면 열이면 아홉은 '무식하구 얼굴이 미운 것’ 이 그 제일 큰 조건이라구 대답을 하지. 그러면 유식하구 얼굴 예쁜 색신 얻어 무엇 하려냐 구 물으면, '둘이서 같이 활동을 해서 벌어먹구 살려구 그런대나. 글쎄, 금시 제 여편네하구 막 좋아 지내던 게 그런단 말이야. 사실 정이 없어 그러는 것두 아니야. 그러니까 사회에선 그따위 것들을 눈감아 볼 수가 있겠다구? 만일 인류제조소(人類製造所)란 게 있다면 그 쓰레기통에다가 모두 쓸어담아서 서울 시구문 밖에다 쿵쿵 파묻어버릴 감들…… 그것들이 모두 과도기의 특산물(특산물) 부스러기들이야."
 
120
정수는 밉살스럽게 말을 마치고 봉우를 흘끔 보았다.
 
121
형식은 봉우를 보고 조롱하 듯이
 
122
"그래, 이 봉우놈처럼 너두 과도기의 특산물 부스러기야."
 
123
봉우는 빈정거리듯이
 
124
"이애, 그래도 난 정정당당하게 나 할 일만 한단다. 이애 그러구 넌 지금 정수가 한 말이 귀에 솔깃하니까 좋아서 그러지? 네 맘에 맞지? 그렇지만 이제껏 정수가 한 말이 무엔지나 아니? 쓸데없는 공상이야. 문학자 뱃속에 든 공상…… "
 
125
"아주, 말을 하면 모두 말로 알구…… 넌 공상이란 말 의미나 알구서 공상 공상 하니? 정수가 맨 나중에 한 말이 귀에 좀 거슬리든 게지…… "
 
126
"하긴 그래…… "
 
127
하고 봉우는 항복하는 듯이 검은 얼굴에 하얀 이빨을 내놓고 흐흐 웃으며
 
128
"하긴 그래 정수가 날 빗대놓구 욕을 하길래 나두 그랬지, 흐흐…… 그렇지만 여보게 정수, 이상두 좋긴 하지만 내 이상은 어떤가? 세상에선 돈만 많으면 왕이니까…… 그래 난 돈을 어쨌든지 산더미만치 모아가지구 그 돈으로 다시 물 쓰듯이 쓴단 말이야…… 그러면 그 힘으로 사휠 덮어누를 수 있겠지? 난 그저 집엔 돈 하구 예쁜 색시만 있구 밖에 나가선 내 맘대로 무엇이든지 하기만 하면 만족이니까…… 어떤가? 내 이상이?"
 
129
하고 소리를 높여 웃었다.
 
130
다른 사람도 허물없이 웃고 정수는 봉우더러
 
131
"좋네 아주…… 아무리 웃음의 말이라도 지금 사회에선 적응성(適應性)이 많네…… 자네 말은 언제든지 그래…… "
 
132
"하지만 이애 형식이, 너 정수가 한 말대로 해나갈 용기 있니?"
 
133
"하긴 또 그래. 그렇게 했으면 좋긴 하겠는데, 그렇지만 그렇지만…… "
 
134
하고 형식은 얼굴에 어려운 빛을 띠고 말하기를 주저하였다.
 
135
정수는 빙그레 웃으며
 
136
"그렇지만 자네론 실행하기가 어렵단 말이지? 하나, 형식이 자네로서 실행 하기 어렵단 말두 또 괴이찮은 말일세…… 그러면 자넨 장차 어쩔 작정인가?"
 
137
"작정? 작정이 다 무어야? 작정한 게 있으면 그런 말을 했겠나? 지금 나야말로 참 가두오두 못하구 엉거주춤하구 섰는 셈이지…… 어이, 이놈의 세상을…… "
 
138
하고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나타났다.
 
139
문자도 그를 따라 근심스레 형식의 얼굴을 바라보고 정수도 참한 얼굴을 해서 무엇을 생각하였다.
 
140
방안의 공기는 자못 쓸쓸하여 졌다.
 
141
봉우는 그 거동을 보고 참다 못하여 소리를 와락 지르며
 
142
"이건 무에야 글쎄? 젊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렇게 세상을 되어가는 대로 살잖구…… "
 
143
하고 일어서서 벙실벙실 웃으며 문자의 옆으로 가서
 
144
"자, 문자씬 나하구 댄스나 한번 해봅시다. 네? 싫어요? 싫건 또 그만두시우. 나 혼자 할 게니 웃기나 하시우…… "
 
145
하고 근육(筋肉)댄스의 흉내를 한바탕 야릇하게 내었다.
 
146
보는 세 사람은 아무리 하여도 웃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147
봉우는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계집이 사내에게 아양을 부리듯이 형식의 얼굴을 굽어다 보며 여 청으로
 
148
"〈 린상와 아이꾜오가 다뿌리 아루와요.〉(형식씬 애교가 많아요.)"
 
149
하고 문자를 한번 흘끔 보았다.
 
150
문자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며
 
151
"어이구 봉우씬 똑…… "
 
152
하고 가는 웃음이 떠오른 눈으로 봉우를 쪽 흘겨보았다.
 
153
정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웃기만 하였다.
 
154
형식은 한참이나 재미스러운 듯이 웃다가
 
155
"저 앤 그런 말을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아…… "
 
156
문자는 형식을 잡아 흔들며
 
157
"어느 결에 또 그런 말까지 봉우씨한테 다 했구먼요? 난 몰라, 인제 울테야…… "
 
158
하고 입술을 뛰하니 내밀었으나 그의 성난 듯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 것은 더욱 귀엽게 보였다.
 
159
언젠지 형식이가 문자를 보고 농 비슷하게 '내가 어떻기에 그리 좋아 하느냐’ 고 물은 일이 있었다.
 
160
이 말 대답에 문자는 '형식씬 애교가 많아요’ 라고 하였다. 봉우는 그 흉내를 낸 것이다. 정수는 그 뜻을 짐작하고 문자를 보고
 
161
"울겠거든 좀 울어 보시구려…… 사내란 대개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의 눈물을 보구 쾌감을 얻는 잔인성(殘忍性)이 있답니다."
 
162
"아니, 정말 그러나 봐요? 이이두(형식) 심심하면 별난 말을 다해서 절 성활 먹이겠지요…… 그래 참다 못해서 울면 그젠 빙글빙글 웃으면서 잘못했다구 달래겠지…… 어이구 참, 여자가 그리 만만한가?"
 
163
형식은 어깨를 우쭐거리며
 
164
"딴은 그래…… 울려놓구 보는 맛이 썩 괜찮단 말이야…… 그러다가 살살 달래면 눈물은 그렁그렁해 가지구두 웃지요. 흠…… "
 
165
하고 웃었다.
 
166
"사람 죽겠다 이애…… "
 
167
하고 봉우는 소리를 와락 지르며
 
168
"그만저만 좀 해두렴…… 아이구 나두 어서 우리 영순일 좀 울려놓고 보아야겠는데…… "
 
169
"암만 그래두 난 인젠 안 울걸요."
 
170
하고 문자는 기를 쓰며 내달았다.
 
171
형식은 양양한 태도로
 
172
"흥, 안 울어? 또 좀 울려 줄까?"
 
173
"안 울어요 글쎄......"
 
174
"이 자리서 그때 그 말을 내놓아두 안 울어?"
 
175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이에요? 아무렇지두 않아요."
 
176
라고 문자는 말로는 지지 않고 대답을 하였으나 뒤가 저리는 듯이 얼굴은 볼고 롬 하여졌다.
 
177
"자, 그러면 자네들이 말 좀 들어보게…… 이 문자가, 날 보구 '사낸 모두’…… "
 
178
라고 하는 것을 문자가 와락 달려들어 손바닥으로 형식의 입을 꽉 틀어막으며
 
179
"아이구 마세요. 난 인젠 몰라요…… "
 
180
하고 펄썩 주저앉아 원망스레 형식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는 정말 눈물이 핑하니 돌았다.
 
181
형식은 코를 벌름거리고 어깨를 경멸하듯이 우쭐거리며
 
182
"흥, 채 말두 안해서 눈물을 흘렸으니까 말을 다 했드라면 통곡할 뻔했군…… 울잖겠다구 길 쓰더니 왜 우느냔 말이야, 글쎄?"
 
183
"그래두 그런 말까지 해서 기어이 울리랴구 할 건 무어예요? 그런 말을 하면나만 부끄런가?"
 
184
하고 좀은 성이 나는 듯이 부르대었다.
 
185
"어쨌든 울긴 울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담에 그따위로 풍을 떨지 말라구…… 그리구, 자 인젠 웃을 차례야. 그러면 내가 잘못되었으니 용설하오. 어허 허허......"
 
186
하고 너털 웃음을 쳤다.
 
187
문자는 웃지 아니하려고 입술을 다물고 앉았다가 필경 참지 못하여 픽 하니 웃어 버리고, 그래도 그는 고갯짓을 하여 가며 형식을 암상스럽게 쪽쪽 흘겨보았다.
 
188
"참말이지 재미가 그럴 듯한걸…… 여보게 봉우, 어떤가? 응?"
 
189
"말 마라 이애, 속상한다…… "
 
190
하고 봉우는 외면을 하며
 
191
"인제 보자. 나두 우리 영순이가 있으니까…… "
 
192
문자는 그래도 형식이가 얄미운 듯이 봉우에게
 
193
"아따 봉우씨나 실컨 영순씨한테 그러지 마세요. 그것이 모두 못된 짓이니까…… "
 
194
"못 된 짓이건 잘된 짓이건 누구래 안다오? 그런 재미 없이 어찌 살라구요? ……"
 
195
"에그머니 저런…… 사낸 다 저러나? 네 정수씨?"
 
196
하고 문자는 정수에게 응원을 청하는 듯이 바라보았다.
 
197
정수는 피식 웃으며
 
198
"내버려 두시우. 사낸 모두 그러나 봅디다."
 
199
"그러면 정수씨두 그러세요?"
 
200
"그보담 좀 더할걸요?"
 
201
하고 정수는 내숭스럽게 미소를 하며 문자의 눈치를 보았다.
 
202
"에구머니! 인젠 나 혼자 고립 했구려…… "
 
203
하고 심상스레 웃었으나 그의 마음에는 아무렇지도 아니한 일이건만 정수까지가 그렇다는 것이 매우 섭섭한 듯하였다.
【원문】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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