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과도기(過渡期) ◈
◇ 17 ◇
카탈로그   목차 (총 : 18권)     이전 17권 다음
1923
채만식
1
過 渡 期 [과도기]
 
2
17
 
 
3
그날 저녁이었었다. 밤은 이미 깊었으나 정수는 그의 항용 버릇으로 아직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모기장 속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누우며 여러 가지 공상으로 그의 머릿속은 어수선하여졌다. 옆에 누운 봉우는 보던 책을 손에서 내리 뜨리고 불안스럽게 잠이 들었다. 정수는 일어나서 전등불을 꺼버리고 불안스럽게 잠이 들었다. 정수는 일어나서 전등불을 꺼버리고 도로 드러누웠으나 그래도 잠은 오지 아니하였다. 그의 귓속에서는 왕 하는 소리, 우르릉거리는 소리, 버스럭 거리는 소리가 한데 뒤섞여 요란히 귀가 울므로 그처럼 고요하고 깊은 밤이었지만 조금도 조용한 듯한 기운이 없이 수많은 군중이 모여 훤화하는 속에 누웠는 듯 하였다. 정수는 다시 벌떡 일어나 모기장을 걷어치고 툇마루로 나가서 등의자에 가 드러누웠다.
 
4
앵 하는 소리를 치며 염치없이 달려드는 모기떼들은 사정없는 정수의 부챗 바람에 쫓겨가고 쫓겨가고 하였다.
 
5
변화 많은 구름이 떠돌아다니는 하늘에는 흰구름이 빵긋한 사이로 작은 별들 이하나씩 둘씩 반가운 듯이 반짝였다.
 
6
정수는 그가 항용 하는 공상을 다시 하기 시작하였다.
 
7
'내가 사람이지? 살아 있지? 그리고 지금 스물한 살이것다. 가만 있자. 지금부터 십 년을 지나면, 서른 살…… 그동안, 그동안 십 년이면 삼천육백쉬흔 날. 시간으론 음, 사오 이십하고 사륙에 이십사, 삼사십에 이하구, 또…… 이오는 십, 이륙 십에 이, 삼은 육하면…… 어디 보자. 팔천 아니 팔만육천쉬흔 시간인가 보다. 그러니까 내가 팔만 시간만 더 지나면 서른 살이란 말이지. 그리고 또 팔만 시간만 지나면 마흔 살이고…… 그때가 되면 지금 같은 젊은 핀 다 밭아 버리고아주 교활한 생존욕(生存慾)만 남으렷다. 판에 박힌 현실생활의 종놈이 된단 말이지…… 어! 허망한 노릇이로군. 그렇지만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 수가 있을까? 마흔 살까지…… 그래, 가령 그때까지 산다고 해두고, 그러면 그때엔 내가 어떻게 되어가지고 있을꼬. 거지가 되어버릴려나…… 그렇잖고 아주 모진 병이 들어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고생을 할려나…… 또, 그렇잖으면 아주 썩 내 이상에 맞게 되어가지고 재미있게 살아갈려나. 아무래도 잘 모르겠는데…… 그러면 가령 재미있게 잘 살아간다더라도 나이 마흔 살이면 얼마 아니해서 죽어버릴 운명인데 재미가 있으면 얼마나 할라고…… 도리어 더 서러울걸. 아서라 아 서라, 도무지 쓸데없는 짓이다. 인생은 아무 생존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마흔에서 십 년을 또 지나면 쉬흔, 또다시 예순…… 그러면 그때엔 대가리에 가 열 없는 흰 터럭이 허렿게 나고 허리가 구부러지고, 얼굴엔 주름살이 잡혀가지고 늙은이가 된단 말이지. 어이구, 그게 무어야…… 그러다가 마지막엔 죽어버린단 말이지. 내가, 인제 그렇게 되어가지곤 죽어버린단 말이지. 지금 이렇게 멀겋게 살아 있는 내가…… 그 야속히 보기 싫은 꼬라지가 되어가지곤 죽어버린단 말이야.죽어…… 죽으면 지금처럼 이런 생각도 없어지고 이 살도 모두 썩어버리고, 말도 못하고 숨도 못 쉬고…… 그저 그저 없어져버리겠지. 그리고 망측하게 생긴 뼈다 귀만이 아무것도 모르고 땅에 가 파묻혔거나 그렇잖으면 그 뼈다귀나마 가장자리로 해골 각각, 팔다리뼈 각각 굴러다니겠지. 내가 죽으면 그렇게 된단 말이야. 그런데 꼭 한번은 안 죽을 수가 없지. 죽어, 죽는단 말이야. 죽으면 난 이 세상선 아무것도 남지 않으렷다…… 그러니까 나만 죽어지면, 나한테는 나한테 있는전 부가 없어지겠지. 저기 떠돌아다니는 구름도 저 예쁜 별들도 우주도 인생도 인생의 모든 것도…… 아! 인제 내가 장차 영겁의 무(無)에 돌아가는구나…… 내가이 세상에 생겨나지 아니하였던 과거에 내가 이 세상에선 무(無)였던 그것과 꼭같이 미래에도…… 아! 아무리 허위대도 죽음은 꼭 한번 오는구나. 삼천갑자 동방삭(三千甲子東方朔) 이도 필경은 죽었으니까…… 그러면 죽긴 일반이지. '천년 은 살거나 만년이나 살더란 말이냐. 죽음에 들어 노소(老小)가 있나' 하는 노래가 과연 그럴 듯한걸…… 장자(莊子)가 제팽상 (濟彭殤) 이라고 한 말이 진리(眞理) 야. 아! 인생, 인생…… 기가 막히게 짧은 동안에 한없이 고통만 큰 것이 인생…… 이렇듯한 인생으로 태어나서 살려고 허위댈 게 무어야. 좀더 산단 것은 필경은 고생을 좀더 하겠단 의미에 지나질 못하지. 아! 인생은 어찌 인생에 지나질 못하는고…… 아무 내력 없이 슬며시 이 세상엘 한번 나와서 어물어물 하다가 또 어느 겨를에 팩팩 쓰러져 죽어버리곤 다음엔 아무것도 남질 않는 것이 인생…… 굳이 남는 것이 있다 하면 대자연의 인명록(人名錄)에 성명 삼자(姓名三子) 가 남을 뿐…… 인생이란 고따위 것들이건만 그래도 제깐에 나댄단 말이야. 낳고 살고 죽는데 아무 목적도 사명도 없는 파리 발만한 능력도 없는 것들이, 하루살이 같은 고것들이…… 요 좁쌀낱 하나만한 지구 위에 가 옴닥옴닥 모여서 그래도 고 조동아리론 ’위대'란 말을 하것다…… 그래도 고들이 담본 큰 체해. 개미(蟻[의])집만도 못한 사회, 어린애 장난 같은 과학, 구역질나는 종교, 거짓 부리는 예술, 수박 겉핥기 같은 철학, 같잖은 도덕, 십 년 묵은 대통(煙管[연관]) 같은 사상…… 그래 가지곤 저희끼리 자유니 평등이니 진보니 퇴보니…… 자연곌(自然界[자연계]) 정복하느니, 진릴 찾느니, 선악이 어쩌니 미추(美醜)가 어쩌니…… 국가(國家)니 전쟁이니, 혁명이니 개조니, 영이니 육이니 해가면서 저희 끼리도 잘난 놈 못난 놈 구별을 해가지곤 색다른 놈은 다른 색다른 놈에게 텃셀 하고…… 그래서 서로 잡아먹질 못해서 으르릉거리고…… 어이구 구역난다. 그런데 난 어쩌고. 그렇지만 나도 그중에 하나야. 조금도 다름없는…… 이 우주의 무궁대에 비해 보면 먼지 한낱보다도 크다고 할 수가 없는 요 몸뚱이…… 우주의 무궁한 시간에 비하면 짹하는 일초 시각보다 그다지 길다고 할 수도 없는 육십 년쯤 되는 생명…… 그 몸 그 생명을 가지고 요 기가 막히고 구역이 나는 인생 사회에 가 뒤섞여서 나 역시 어쩌구어쩌구 나댄단 말이야. 어허허…… 이것이 무어야 도무지. 그렇지만 아무래도 살아 있는 동안엔 '생활'이란 걸 면할 수가 없는데…… 생활, 생활, 인생생활…… 현실, 아! 현실…… 어라 이놈의 세상이 귀찮다. 그런데 문자, 고게 왜 그럴까…… 문자, 내가 문자 고걸 사랑해서 그러나? 아닌 건 아니야. 아닌 건 아니라 썩 육감적이야. 영자완 같잖아. 어쩐 지영자 한텐 그렇게 못하겠는데…… 말하자면 영잔 신성한 듯도 해…… 영자, 영자, 아! 영자…… 아니다 아니다. 영자도 인생이다. 인생은 인생이 인생인 것을 모른다. 그러니까 모르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다. 아! 나는, 나는……’
 
8
마침 이때에 방에서 샛문이 열리고 눈이 부신 전등불이 확 몰려나오며 문자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문자는
 
9
"이 방엔 왜 불을 껐나?"
 
10
하고 전등을 찾아 불을 확 키고 곤한 잠이 가득 든 눈을 주먹으로 비비며 비틀비 틀하면서 툇마루로 걸어나갔다. 그는 잠을 자다가 변소에 가려고 함이었었다. 나가다가 등의자에 가 사람이 누웠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11
"에그머니, 저게 누구야…… "
 
12
하고 소리를 쳤다.
 
13
"놀라지 마시우. 저 올시다…… "
 
14
하고 정수는 음울하게 대답을 하고 일어 앉아 문자를 바라보았다.
 
15
문자는 옷을 입지 아니하고 다만 도화색 도는 얇은 고시마기(일본녀가 아랫 도리에 두르는 것) 하나만으로 아랫도리만 가리고 나왔었다. 그러므로 거진 나체(裸體) 나 다름없는 문자를 정수는 볼 수가 있었다.
 
16
운치 있게 흐트러진 머리칼, 잠이 가득 든 두 눈, 그것을 비비는 두 주먹, 우유 빛같이 부옇고 오동포동한 웃도리, 잘 발육된 앞가슴에 예쁜 곡선(曲線)을 그린 불쑥 내민 두 젖통, 통통한 두 팔이 닭의알같이 곱게 내려붙은 좁으장한 두 어깨 ㅡ 의 모든 것이 정수로 하여금 체모도 없이 얼빠진 사람처럼 뻔하고 바라보게하였다.
 
17
문자는 정수의 말소리를 알아듣고 꺄웃이 한번 굽어다 보더니
 
18
"에그머니, 이걸 어쩌나…… "
 
19
하고 얼핏 자기 방으로 달아나 버렸다.
 
20
정수는 손에 들었던 보물이나 놓친 듯이 섭섭하여 문자의 뒤만 바라다 보았다.
 
21
문자는 부끄런 마음에 전등을 얼핏 꺼버리고 모기장 속으로 들어가서 소피를 억지로 참고 곤히 자는 형식의 품에다 얼굴을 푹 파묻었다.
 
22
이렇게 한참이나 있다가 그는 다시 일어나 전등을 켜고 옷을 찾아 입은 뒤에 정수가 어찌하고 있나 보려는 호기심으로, 또 정수와 이야기하는 동안에 긴장되는 맛을 좀 보려고 변소에 가는 척하고 다시 툇마루로 나갔다. 문자는 정수의 옆으로 가까이 가며
 
23
"정수 씬 왜 잠도 안 주무시고 그러세요? 모기가 이렇게 엉켜지르는데…… 아마 무슨 번민이 계시지요?"
 
24
하고 해쪽이 그 '피상의 웃음’을 웃었다.
 
25
정수는 열병 앓는 사람처럼 벌떡 일어서 얼굴에는 그윽한 욕망을 띠고 말 없이 문자를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두 사람은 말없이 마주보다가 정수는 문자를 껴안을 듯이 두 팔이 벌어지는 줄 모르게 반이나 벌어지고 그의 허리는 앞으로 내 숙여졌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주저하는 듯이 그 모양으로 서서 문자를 바라보는 눈과 벌린 입에 '계면쩍은 미소’가 정수 자신도 모르게 떠올랐다.
 
26
문자는 거짓 위협하는 듯이 미소가 떠오르는 눈으로 정수를 암상스럽게 홉 떠보며 그래도 '네 맘대로 해라’하는 듯이 허리를 뒤로 비스듬히 젖혀 가슴을 내밀고 고개를 꺄웃꺄웃하며 해쪽이 웃는 그의 입술에는 은근한 춘정(春情)이 그윽히 떠올랐다.
 
27
정수는 갑자기 무엇을 생각 하였는지
 
28
' 하마 터 라면’ 하는 그 찰나에 돌연히 두 팔을 맥없이 내리뜨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모기장 속에 드러 누우며
 
29
"허, 내가 이게 무슨 짓이야……"
 
30
하고 죽은 듯이 고요히 있었다.
 
31
문자는 두 번째 정수에게 이러한 일을 당함에 그 변덕지덕하는 것이 노 엽기 도하고 또 자기를 놀리느라고 그러하는 듯도 하여 마음에 약간 섭섭한 생각도 나고 부끄럽 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문자가 정수에게 움직여지는 변치못 할 힘에게 덮여 눌리고 말았다.
 
32
정수는 혼자 속으로 '에라, 내일 내가 여길 떠나야지 그렇잖으면 큰일이 나겠다. 인젠 이번 학기도 며칠이 남질 않았으니까. 그러면 내일 곧 길을 떠나는 게 좋겠군……’ 하고 집에 돌아갈 결심을 하였다.
 
33
그 이튿날 정수는 학교에도 가지 아니하고 귀국할 짐을 챙겼다.
 
34
봉우는 금년 봄에 결석한 것을 보충할 양으로 그대로 동경에 머물러 하기 강습을 할 작정이었고 형식은 문자를 데리고 귀국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 남겨둘 수도 없었으므로 그대로 남아 있을 작정이었다.
 
35
남아 있을 세 사람 ㅡ 봉우, 형식, 문자는 이번 하기방학에 정수는 응당 귀국 할줄이야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그처럼 일찌기 귀국할 줄은 몰랐으므로 매우 섭섭히 여겨 서로 권유하여 가며 며칠 더 머무르도록 말을 하였다.
 
36
정수는 그들의 청을 듣는 척하고 하루 이틀 나갔다. 그러나 사실 말하면 그들이 권하는 말을 듣고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는 차마 발길이 돌아서지 아니하여 그러한 것이다. 그는 영자도 영자려니와 문자와도 갈리기가 진정으로 싫었다.
 
37
문자도 역시 문자라, 세 사람 중에 제일 열성으로 정수를 말리며 한달 동안만 더 있으라고 간청을 하였다.
 
38
정수는 이번 길이 영자나 문자와 영영 이별이라는 것을 아무 근거도 없이 본능적으로 의식하였다. 그는 그 하루 이틀 미뤄 나가는 동안에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졸이고 설뚱거렸다.
 
39
아! 이 어린 꿈 ㅡ 면할 수 없는 꿈 ㅡ 언제나 깨려나. 아니, 아니다. 차라리 그녀로 하여금 하루라도 더디게 그 꿈을 깨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행복이다. 하루라도 더디게 현실의 비애를 맛보게 하는 것이 적선(積善)이겠다.
【원문】17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16
- 전체 순위 : 618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95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86) 삼대(三代)
• (23) 적도(赤道)
• (21) 어머니
• (20) 탁류(濁流)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과도기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23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18권)     이전 17권 다음 한글 
◈ 과도기(過渡期)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7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