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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기(過渡期) ◈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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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채만식
1
過 渡 期 [과도기]
 
2
7
 
 
3
두 사람은 집 문앞에 다다랐다.
 
4
집은 조그마한 단층이었고, 말하자면 북향(北向)집이었었다. 이편 북쪽 길거리로 문이 나고 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현관이 있고 바른손 편에 사조반 방이 있고, 그 사조반 방과 서로 연하여 남편으로 육조방이 후스마(조선 병풍처럼 문짝을 만든 샛문) 하나로 사이가 나뉘어 있었다.
 
5
그 육조방 남편으로는 또다시 조그마한 툇마루 하나가 있고 침대용의 등의자 하나가 놓였었다.
 
6
변소는 그 툇마루 안편에 가 숨어 있고 부엌은 현관과 마주 연하여 있었다.
 
7
집 남편으로는 명색 정원 비스름한 것이 있고 그와 연하여 널찍한 부자집 후원이 있었다.
 
8
이 집은 말하자면 요사이 일본 도회에 고유한 미인식(美人式) 건축이 있었다.
 
9
그리고 집 좌우로는 그와 꼭 같은 모양의 집이 세네 채씩 죽 들러붙어 있었다.
 
10
두 사람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11
사조반 방은 비워 두었는지 혹 침실로 쓰는지 모르나 아무것도 놓인 것이 없이 천장 한가운데 전등 하나만 축 늘어졌고 육조방에는 책상 책장 같은 것이 너절하게 늘어놓였고, 사방 바람벽 위로는 꽤 익단 솜씨의 풍경화 초상화가 몇 개 걸려있었다.
 
12
정수는 뒤 뜰팡으로 나아가 이웃집 댁네더러 집 보아 준 인사를 하고 들어오며
 
13
"어느 방에 자네가 있을려나?"
 
14
하고 상의하듯이 물었다.
 
15
"방? 방이야 어찌 되었든 내가 지금 배가 고프니까 어서어서 고기두 사오구 비루두 사오구 밥 좀 해요…… 그리구 연애소설두 하나 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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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책장문을 열고 책을 뒤적거렸다.
 
17
"그래 염렬 마요……"
 
18
하고 정수가 앉아 담배를 피우노라니까 봉우가 소리를 지르며 그의 고유한 왈패를 부렸다.
 
19
"아, 글쎄 배고프다니까 그래. 담밴 또 어린 사람이……"
 
20
이처럼 봉우는 농하기 겸 정수에게 성화를 대는 판에 밖에서 문 열리는 소리 가나며
 
21
"얘, 봉우놈이 또 여길 와서 정술 못견디게 굴잖니?……"
 
22
하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23
두 사람은 다같이 "형식이 아니라구?" 하고 봉우는 그대로 앉아서 "키다리 왔니?……" 하고 소리를 쳤다.
 
24
정수는 현관으로 나아가 그 형식(亨植)이란 사람과 악수를 하고 웃는 낯으로
 
25
"형식인가? 오랜만일세그려…… 자, 어서 올라오게……"
 
26
하고 형식의 손목을 이끌다가 언뜻 문 밖에 배젊은 일본 여자가 섰는 것을 보았다.
 
27
정수는 형식을 바라보며 '누구냐?' 묻는 듯이 미소하였다. 형식은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며 일본말로
 
28
"문자(文子) ! 들어가서 잠깐 쉬어 가자구…… 종일 걸어 다니느라구 다리가 아프겠군. 어서 들어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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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계면쩍은 듯이 정수를 바라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30
정수는 벌써 짐작을 하고 공순히 일본말로 문자에게
 
31
"잠깐 들어오시지요? 누추해서 안되었읍니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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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맙습니다. 그러면 잠깐…… "
 
33
하며 그 여자는 허리를 납신 굽혀 인사를 하고 형식을 따라 조심스레 현관으로 올라갔다. 봉우는 그제야 나와 형식의 어깨를 탁 치며
 
34
"흥, 동부인합시구…… 얘, 팔자 좋구나…… "
 
35
라고 악의(惡意) 없는 조소(嘲笑)를 하다가 다시 문자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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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씨도 오셨읍니다그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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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일본말로 인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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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반가운 듯이 봉우의 옆으로 다가서며
 
39
"봉우씬 참 잘두 돌아다니세요. 어느 겨를에 여길 또 오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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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허물없이 웃었다.
 
41
네 사람은 방을 들어가 정수는 방석을 내놓고 앉기를 권한 뒤에 자기도 문자와 맞은 바라기에 앉았다.
 
42
(작자는 여기서 잠깐 한 말을 하려 한다. 이 다음에 나오는 말은 대개 일본말 로그들이 하였다. 문자와 말을 할 때는 말할 것도 없이 일본말로 하였지만 그네 조선 사람 끼리만이라도 우리 조선말로 말을 하면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문자에게 미안스럽다는 의식을 그네끼니 아무 약속이나 제정이 없었을지라도 본능적으로 의식하게 된 것이다.
 
43
이렇듯이 경험은 일본에 유학한 우리 조선 학생들 중에 지내본 사람이 적지 아니 할 줄 믿는다.
 
44
이 다음에 혹 가다가 일본말을 그대로 쓴 것이 있는 것은 일본말을 이는 독자에게 그 말을 한 사람의 감정이나 그 말 자체의 참뜻을 음미하기 편하게 하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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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마디 더 할 말은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우리 나라 문학의 작품이요 일본말을 조선말로 번역하여 놓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46
그것은 작자가 일본말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쓴 것이 아니라 작품의 인물들이 ' 우리말’을 일본말로 번역하여 한 말을 자자는 다시 먼저의 그 '우리말'로 돌려 보내 가지고 쓴 까닭이다.)
 
47
정수와 문자를 형식은 소개하였다.
 
48
"자 이분은 김정수씨란 분인데, 지금 조도전대학 문과에 다니시구…… 또 이 사람은 지전문자(池田文子)라구 하는데…… 저……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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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말을 못하고 웃어버렸다.
 
50
문자는 얼굴이 빨개지며 정수와 인사를 마쳤다.
 
51
형식은 두 사람이 인사를 마친 것을 보고 문자를 놀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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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동무 하날 또 만났군. 더구나 정순 문학의 천재니까 또 미남 자구…… 그렇지만 이 불쌍한 나로 봐서 너무 반하진 마오…… "
 
53
하고 싱글싱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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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한번 더 얼굴을 붉히며
 
55
"아이 그 잡성스러라......이인 똑 어이구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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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래도 고새를 갸웃거려 아양을 부리며 손바닥으로 형식을 슬쩍 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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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문자는 머리를 돌려 정수를 마주보다가 정수의 눈과 마주쳐 머리를 숙이고 혼자 해쭉 웃었다. 그러나 봉우와 형식은 그것을 보지 못하였다.
 
58
정수는 속맘으로 '썩 귀여운걸……’하는 생각이 저 창자 속에서 우러나는 듯이 일어나 이상스럽게 맘이 기뻤다. 아무말도 아니하고 있던 봉우가 마침 정수의 옆구리를 쥐어지르며 그가 잘하는 농을 또 내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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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아, 글쎄 배가 고프다니까 그래…… "
 
60
이 말에 형식이가 내 달으며
 
61
"저 앤 그저 목구멍에다 거지 보퉁일 차구 다니나? 어쩌면 그리 먹을 것 만 찾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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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허물없는 말로 핀잔을 주듯이 말을 하였다.
 
63
"흥, 이애…… 수염이 대자 오치라두 먹어야 양반이란다. 넌 예쁜 색시 손목이나 붙잡구 다니니까 먹잖구두 살 듯싶으니?"
 
64
하고 문자를 흘끗 보며 웃었다.
 
65
세 사람은 모두 웃었다.
 
66
"그래 글쎄 염렬 마오. 자네 굶기진 않을 게니까......"
 
67
하고 정수는 일어서 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68
"아니, 여보게 정수…… "
 
69
하고 형식이가 정수를 막으며
 
70
"잠깐 내 말 좀 듣구 나가게…… 자네 집에 방이 둘일세그려? 하나좀 나한테 빌리잖으려나? 아니…… 멋 빌린단 게 아니라 같이 좀 있세…… 이 색시(문자를 가리키며) 가 밥은 해줄 게니까…… "
 
71
이 말을 들은 정수는 아직 아무 말도 못하고 어려운 듯이 봉우를 바라보는데 봉우가 얼핏 내달으며 말하였다.
 
72
"어라 얘…… 내가 오기로 벌써 말해 두었 더란다…… "
 
73
"응? 정말이야? 정말인가 정수?……"
 
74
"응……"
 
75
하고 정수는 여전히 얼굴에 어려운 빛을 띠고
 
76
"그렇지만…… "
 
77
하며 봉우를 의미있게 바라보았다.
 
78
봉우는 정수의 눈치로 그 뜻을 짐작하고 더욱 완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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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그건…… 나한테 우선권이 있으니까…… "
 
80
라고 말은 하고도 자기 역시 우스운 듯이 허허 웃었다.
 
81
다른 사람들도 모두 웃으며 형식이가 다시
 
82
"여보게…… 우선권이 있건 상선권(商船權)이 있건 그만두어 버리고 나한테 양보 하게…… 아닌게아니라 그동안 일 주일이나 두구 셋방을 하나 얻으려고 돌아다녀 보았지만 알맞은 게 있어야지…… 응 여보게…… 아니 여보 박생원…… 어쩌려우?"
 
83
하며 빙글빙글 웃었다.
 
84
봉우는 나오는 웃음을 참고 억지로 강경한 듯이
 
85
"흥, 이놈…… 인젠 박생원이야? 그래 너 좋자구 난 어찌란 말이니?"
 
86
"그러면……"
 
87
하고 정수가 말을 거들었다.
 
88
"그러면…… 기왕에 방이 둘이니까 봉우두 오구 형식이두 오지…… 그러면 물론 방이 좁아서 곤란은 되겠지만…… 형식이가 문자씨하구 한방 차지하구 난 봉우하구 한방에 있구…… "
 
89
하고 세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90
그러나 정수가 이러한 계책을 낸 것은 형식에게 대한 친분도 친분이겠지만 문자와 같이 있고자 하는 호기심 ㅡ 몽롱한 호기심에서 나온 것이었었다.
 
91
"어, 그래두 우리 정수가 낫군…… "
 
92
하고 형식은 눈초리에 웃음을 띠고 봉우를 흘겨보며
 
93
"저 앤 뚝뚝하기가 나무토막이야 나무 토막…… "
 
94
"말 마라 이애…… "
 
95
하고 봉우는 우리말로
 
96
"나무 토막이나 무어나, 너희 둘이 인제 와서 있게 되면 샛문 하나 사이서 너희 내 외간에 좋아하는 꼬라질 어찌 보라구 그러니…… 우리 홀아비놈 둘이서…… "
 
97
하고 형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98
정수와 형식은 뱃살을 거머쥐고 문자는 무슨 영문인 줄 모르고 벙벙하다가 필경 자기에게 부끄런 말인 줄 깨달았는지 얼굴을 붉히고 덤덤히 앉아 세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원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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