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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기(過渡期) ◈
◇ 15 ◇
카탈로그   목차 (총 : 18권)     이전 15권 다음
1923
채만식
1
過 渡 期 [과도기]
 
2
15
 
 
3
문자와 정수는 평야를 보내고 다시 툇마루로 나가서 앉았던 의자에 가 걸터 앉았다. 문자는 무슨 말을 좀 하려 정수의 침울하여진 얼굴을 바라보며 눈치만 말긋말긋 보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은 듯이
 
4
"정수씨 !"
 
5
하고 불렀다.
 
6
"네……"
 
7
하고 정수는 한눈을 팔며 시름없이 대답을 하였다.
 
8
"정수씨한테 청할 게 하나 있는데요, 들어주실 테예요?"
 
9
"청할거요?"
 
10
하고 그제는 문자를 바라보며
 
11
"무어에요?"
 
12
"꼭 들어주길 테예요?"
 
13
"웬만한 것 같으면 들어 드리지요. 그렇지만 너무 억지 말씀은…… "
 
14
"아니에요. 첩경 쉬운 일이에요."
 
15
"그러면 말씀해 보시우."
 
16
"그러면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저, 정수씨 시 하나 좀 보여주세요."
 
17
"허허허허……"
 
18
웃고 정수는 문자의 하는 짓이 귀여운 듯이
 
19
"시요? 정 그렇게 보고 싶어하시면 못 보여 드릴 거야 없지만, 진정 말이지 보여 드리기가 부끄럽습니다."
 
20
"글쎄 그런 겸사 말씀은 그만해 두시구 어서 보여주세요. 자, 어데다 두섰어요? 가서 가지구 올까요?"
 
21
"아니올시다. 제가 가지구 오지요."
 
22
하고 정수는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서 책상 서랍을 한참 이것저것 뒤적 거리 다가 원고용지에다 쓴 시 하나를 찾아가지고 나와서 문자에게 주었다.
 
23
"이거예요?"
 
24
하고 문자는 즐거운 듯이 받아 펴들고 읽으려 하다가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정수를 암상스럽게 흘겨보며 야속하다는 듯이
 
25
"어이구 참, 내숭스럽게 이게 무슨 짓이에요? 조선말로 쓴 걸 글쎄 절더러 보라구요?"
 
26
정수는 문자에게 시를 주고 빙그레 웃으며 그의 거동이 재미스럽고 탐도 나는듯이 바라다보다가
 
27
"그러면 조선말이 아니구 영국말일라구요?"
 
28
"아니에요. 일본말로 쓴 것 말씀이에요."
 
29
"네, 일본말이요? 그렇지만 조선 사람이 왜 일본말로 시를 쓰나요?"
 
30
"아이구 참 정수씨두…… 정수씨두 인젠 형식씨하구 봉우씨 본을 보구 공연히 절 성화만 먹이려구 들어…… 그러지 말구 어서 일본말로 쓴 걸 보여주세요."
 
31
하고 문자는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어리광을 부리느라고 짜증을 내듯이 정수를 졸랐다.
 
32
"문자씨, 진정 말이지 보여 드리기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요, 일본말로 쓴건 말이 모두 틀리구 그래서 차마 보여 드릴 수가 없어 그럽니다. 그 대신 내가 그걸 일본말로 번역을 해서 읽어 드리지요. 네? 그러면 일반 아닙니까?"
 
33
문자는 속으로 맘먹은 것이 있는 것처럼 얼핏
 
34
"네. 그러면 그러세요."
 
35
하고 무엇을 만족해하는 듯이 해죽해죽 웃었다.
 
36
정수는 그 시를 문자에게서 받아 들고
 
37
"물론 완전히 번역을 할 수는 없습니다. 어학이나 문학에 특질이 있는 것이니까…… "
 
38
하고 서서히 번역을 하여 읽어내려갔다.
 
39
그 시는 다음에 쓰인 것이었었다.
 
 
40
시 「님은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
 
 
41
님은 길을 떠나시도다
42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님은 길을 떠나시도다
43
부세(浮世) 의 험한 언덕을 넘어
44
머나먼 저승의 벌판으로
45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영원의 길을
46
님은 다만 홀로 침묵과 소멸 속으로
47
후유 후유 적막한 길을 떠나시다
48
다정하던 님이여
49
지난해에 님과 의좋게 놀던 봄은
50
변치 않고 다시 와서
51
님을 찾건만
52
섧도다, 님의 자취는 뵈이지 않도다
53
님은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나시도다
54
이른 봄 저문 해에
55
부슬부슬 적막하게 내리는
56
애처로운 빗 소리는
57
님을 그려(思慕[사모]) 만가(輓歌)를 부르도다
58
반쯤 핀 어린 꽃봉오리는 님을 기다리다 만자저
59
아미를 숙이고 눈물을 머 금도다
60
아 ! 님이여,
61
님은 진정 떠나 시도다
62
영원히 돌아보지 못하는 길을
63
우리 님은 떠나 시도다
64
지난해 봄에 님의 가슴을 녹여 주던
65
훈훈한 봄바람은
66
잊지 않고 다시 불어와
67
님을 부르건만
68
섧도다 님은 대답이 없도다
69
다만
70
님의 남은 자취라고
71
거칠(荒凉[황량])한 님의 무덤(墓[묘])과
72
차디찬 님의 빗돌(碑石) 이
73
비인 언덕에 처량히 섰을 뿐이도 다
74
님이 주시던 따스한 정은 찾을 바 없고
75
다만
76
님을 사모하는 눈물이
77
하염없이 내릴 뿐이도 다
78
다만
79
즐거 웁던 그 옛적에
80
즐거움을 즐거운 대로 누리지 못한
81
아쉽고 안타까운 한숨이
82
절로 나올 뿐 이도다
83
아 ! 그리운 님이여
84
부세를 잊고 다시 돌아오지 못 하는
85
머나먼 길을 떠나신 님이여
86
편(傳便[전편]) 있거든
87
저승의 낙을 이몸에도 알려주 오
 
 
88
정수는 읽기를 마치고 문자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았다. 문자는 조용히 앉아 듣다가 정수가 읽기를 마치자 자랑스레 웃으며
 
89
"참 좋은데요......전 비평할 능력은 없어두 듣기에 그래요. 썩 좋아요…… 그만한 재줄 가지시구두 그저 그리 자포자길 하세요?"
 
90
'흥' 하고 정수는 시답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91
"너무 그리 비웃진 마시우…… "
 
92
"아니, 아니에요. 전 진정으로 그러는데 정수씬 왜 그러세요?"
 
93
"응, 그러니까 그러면 문자씨가 절 시험을 해보셨단 말씀이지요? 허허…… 그러면 그 시험성적이 어떻습니까?"
 
94
"어이구 참, 왜 그러세요 글쎄! 그러지 말구 인젠 일본말로 쓴 걸 보여주세요…… "
 
95
"옳지 옳아. 문자씨한테 내가 속았군…… 문자씨 수단이 아주 썩 그럴듯한데요? 허허 허허…… "
 
96
문자도 자기가 정수를 속인 것이 재미가 있는 듯이 소리를 내어 웃으며
 
97
"그건 정수씨가 하나만 보여주시구 다신 안 보여주시겠길래 그런 거예요. 자, 어쨌든 이번엔 일본말로 쓴 걸 보여주세요. 전 일본 사람이니까 일본말로 쓴 걸 보여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98
"그러면 문자씨, 일본말로 쓴 건 아무래두 보여 드릴 수가 없으니까 동화나 하나 더 번역해서 읽어 드릴 게니 어쩌시렵니까?"
 
99
"동화요? 네 그러세요. 전 무엇보담두 동활 썩 좋아하니까요."
 
100
"그렇지만 다신 더 보여 달라구 조르면 안됩니다."
 
101
"네, 다신 안 그래요."
 
102
"아니, 그렇게 말로만 할 게 아니라 꼭 그러겠다구 약속을 하세요."
 
103
"아따, 글쎄 그러세요. 맨 그저 절 성화만 먹이시려구…… 있는 대로 좀 보여주시면 제가 그걸 뺏어갈까봐 그러십니까? 써가지구 혼자만 언제까지든지 두구 보실 테예요?"
 
104
"저 혼자만 보려구 그러는 게 아니라 보여 드리기가 부끄러우니까 그럽니다. 그리구 맨 첨에 그걸 쓴 목적이 남의 앞에다 내놓으려구 쓴 게 아니라 제 힘두 시험해 보구…… 또 저 혼자 즐기려구 한 거니까요."
 
105
정수는 방으로 들어가 책장문을 열고 한참이나 뒤적거리다가 그 동화를 찾아가지고 나와 문자에게 일본말로 번역하여 읽어 주었다. 그러나 그 동화는 먼저 시보다도 더욱 번역하기가 어려웠다. 그 동화는 다음에 쓰인 것이었었다.
 
 
106
동화 「 파랑새(靑鳥[청조]) 」
 
 
107
오래 ─ 오래 된 오랜 옛적에 어느 먼 시골 한구석에 아주 퍽 불쌍하고 나이도 어린 누이와 동생이 있었습니다. 누이의 이름은 복순이라고 하는데 아홉 살 나고 동생의 이름은 옥동이라고 하는데 네 살 났습니다. 집안에는 어머니도 아니 계시고 아버지도 아니 계시고 지붕 처마가 모두 무너져가는 외딴 오막살이집에서 날이 새나 해가 지나 단둘이서 서로 붙안고 앉아 어머니를 가다리는 참말 불쌍한 오뉘 였습니다.
 
108
건넌마을에 사는 늙은 할머니들이랑 젊은 아주머니들이랑은 날마다 밥도 가지고오고 떡도 가지고 와서 잘 먹여주고 옷도 깨끗하게 빨아 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그 중에 제일 마음이 상냥한 할머니 한 분은 올 때마다 그 어린 오뉘가 하도안 스러워서 하는 말이
 
109
"이애 복순아, 옥동아, 우리 집으로 아니 가려니? 우리 집으로 가서 날더러 어머니라고 부르고…… 나하고 잠도 함께 자고 밥도 함께 먹고 그러자. 내가 너의 어머니처럼 잘 해줄 게니…… "
 
110
하고 곰살스레 달랬습니다. 그러나 복순이는 옥동이를 그러안으며
 
111
"아니에요…… 우린 안 갈 테예요. 여기가 우리 집이니까, 여기 있으면 우리 어머니가 인제 우릴 데릴러 올 거에요."
 
112
하고 누구가 와서 억지로 데려갈까 두려운 듯이 울었습니다.
 
113
그 할머니는 하는 말이
 
114
"세상에 몹쓸 귀신도 다 있지. 너희들을 어쩌라고 너희 어머닐 잡아가다니 "
 
115
하고 혼자 탄식을 하고 울며 돌아가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불쌍한 오뉘가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동안에 어느 겨를에 따뜻한 봄이 돌아왔습니다. 하루는 두 오뉘가 따스한 양지가 비치는 무너진 뜰팡에 나란히 앉아 무어라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작년 가을에 강남으로 날아갔던 제비 한 쌍이 날아와서 묵은 서답줄에 나란히 앉아
 
116
"아이구 저런…… 아기씨, 도련님…… 그동안 많이도 자랐구려…… 어머닌 어델 가셨소?"
 
117
하고 정다운 소리로 반가운 듯이 지저귀었습니다.
 
118
복순이는 옥동이를 두 팔로 그러안고 눈에서는 구슬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하여지며 슬픈 소리로 말을 하였습니다.
 
 
119
제비야 제비야
120
강남 갔던 제비야
121
너희들은 날개로 날아서
122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123
먼 데도 잘 간다면서
124
우리 어머닐 좀 찾아다 다오
125
내 이 가락지 너흴 줄 거니
126
이건 우리 어머니가
127
날 붙안고 앉아
128
"인제 많이 자라거든
129
잊지 말고 끼고 다녀라" 하시면서
130
내 치맛고름에 채워 주신
131
이 가락질 너흴 줄 게니
132
건넌 마을 장자집에 가지고 가서
133
돈으로 받고 팔아가지고
134
그 돈으로 노자 삼아
135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136
울 어머니 만나거든
137
"우리 우리 옥동이가
138
밥도 아니 먹고 잠도 아니 자고
139
어머닐 찾고 울기만 한다" 고
140
어서어서 집에 와서
141
옥동일 안고 앉아
142
젖도 많이 먹여주고
143
눈물도 닦아주고
144
눈물도 닦아주고 하시라고
145
"낮이며는
146
앞 남산에 나무하고
147
뒷동산에 나물 뜯어
148
저녁 거리 장만하고
149
밤이며는
150
옥 동일 옆에 뉘고
151
다독다독 재우면서
152
자장 자장 자장 자장
153
우리 아기 잘도 잔다
154
마루 밑에 흰둥이새끼 잘도 잔다.
155
뜰팡 밑에 어룽이새끼 잘도 잔다
156
자장 자장 자장 아가야
157
우리 아기 잘도 잔다
158
우리 옥동이 잘도 잔다
159
하여 가며
160
옥동이가 잠들거든
161
어머니는 나와 함께
162
등잔 앞에 마주 앉아
163
바느질도 알쳐주고
164
이야기도 들려주고
165
베도 짜고 그러 자고"
166
제비야 제비야
167
울 어머니 만나거든
168
어서 바삐 오시라고
169
제비야 제비야
170
강남 갔던 저 제비야
171
어서 어서 어서 바삐
172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173
먼 데도 가보고
174
그래도 만나질 못하거든
175
더 먼 데도 가보아서
176
부디 부디 울 어머닐
177
부디 부디 찾아다오
178
제비야 제비야
179
강남 갔던 제비야
 
 
180
하고 복순이는 눈물을 씻으며 치맛고름에 꽉 잡아매었던 은가락지 한 개를 풀어 손에 들고 제비에게 주려고 얼렀습니다. 제비는 그것을 보고 슬픈 노래로 물었습니다.
 
181
"에그머니 딱도 해라, 안스럽기도 해라. 아기씨 어머닌 어델 가셨기에 그러시우?"
 
182
복순이는 또 울면서
 
183
"누가 안다나? 그때 저…… 그때 우리 어머니가 방 아랫목에 누워 잠을 잤 더란다. 우리 옥동이가 젖을 달라고 울어도 일어나시질 않고…… 내가 울면서 불러도 일어나시질 않고…… 그래서 나하고 우리 옥동이하고 옆에 앉아 어머니 어머니 부르면서 울었더니, 앞마을 아저씨들이 모두 와서 우리 어머닐 새끼로 꾹꾹 묶어 별난 데다 태워 갖고 저 산 너머로 갔더란다. 아저씨들이 우리 어머닐 태운 걸 떠 메고 등불을 켜가지고 가길래 나하고 우리 옥동이 하고 울면서 따라가려니까 '너흰 못 온다’고 하곤 저산 너머로 갔단다. 그리고 우리 어머닌 다시 오시질 않았어야. 이애 제비야, 너도 저 산 너머로 가서 찾아보아라. 그리로 갔으니까. 어서, 제비야…… "
 
184
하고 제비를 앙버티고 졸랐습니다. 제비는 그 말을 듣고 한숨을 쉬며
 
185
"에그 저런, 저걸 어쩌나…… 여보 아기씨, 어머닌 벌써 황천(黃泉)엘 가셨다우, 황천에요. 에그 저걸 어쩌나 !"
 
186
"황천엘 가? 그러면 넌 우리 어머니 가신 곳을 알면서 왜 어서 가질 않니? 어서 좀 가보렴, 응. 제비야…… "
 
187
하고 복순이는 제비가 원망스러운 듯이 재촉을 하였습니다.
 
188
제비는 답답도 하고 애처롭기도 한 듯이
 
189
"에그 참…… 딱한 아기씨도 다 있지 ! 황천이란 곳은 살아선 못가는 곳이에요. 죽어야만 가는 곳이에요. 아기씨 어머니도 죽어서 황천엘 가신 거예요."
 
190
그러나 복순이는 더욱 야속스러운 듯이
 
191
"글쎄 그러면 왜 넌 죽질 못하니? 죽어가지고 좀 가보렴…… "
 
192
"아니에요. 우린 아직 강남 제비왕님이 죽으란 영(令)을 내리지 아니 하셨으니까 지금 죽진 못해요. 그리고 또 한번 죽어서 황천엘 가면 다신 오질 못하는 거예요."
 
193
"정말? 응, 제비야…… 아이고 그러면 우리 어머니도 다신 못 오시겠구나?"
 
194
하고 복순이는 또 울었습니다. 제비는 불쌍한 듯이 복순이를 바라보며
 
195
"네, 아무렴요. 한번 죽어서 황천엘 가면 아무리 해도 다신 오진 못하는 거예요."
 
196
복순이는 울기를 그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엇을 생각 하다가
 
197
"이애 제비야…… 그러면 아무라도 죽기만 하면 황천이란 델 갈 수 있니? 우리도 죽으면 황천엘 가서 우리 어머닐 뵐 수 있니?"
 
198
하고물었습니다.
 
199
"네, 그렇구말구요."
 
200
"그러면 이애, 죽는 건 무어라니? 어떻게 하면 죽는 거니?"
 
201
제비는 무엇을 한참 생각 하다가
 
202
"죽는 것은요, 저…… 그때 아기씨 어머니처럼요…… 잠자는 것처럼 가만히 누워서 다신 일어나질 않는 거예요. 그리고 죽으려면요, 음…… 죽으려면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오래오래 가만히 누웠으면 죽어지는 거예요. 그렇지만 아기씨랑 도련님이랑은 지금 죽는 게 아니에요. 인제 훨씬 나이 많아지면 저절로 죽어지는거예요."
 
203
하고 제비는 달래듯이 말을 하였습니다.
 
204
복순이는 그 말을 듣고
 
205
"아이구 이애, 그러면 나도 지금 좀 죽어보겠다 이애. 지금 어머니가 보고 싶으니까…… "
 
206
하고 옥동이를 안고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207
제비는 깜짝 놀라 방문 앞까지 날아와서
 
208
"아이고 아기씨, 도련님…… 제발 마세요. 제발 마세요."
 
209
하고 울었습니다.
 
210
복순이는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문을 잠그고 나서 옥동이를 아랫목에 뉘고 그 옆에 가 누우며
 
211
"아가 옥동아, 인젠 밥도 먹지 말고 물도 먹지 말고 나하고 여기 가만히 누웠자. 그러면 인제 어머니한테 곧 갈 게니까 그리고 배고프다고 울지 말아. 그리고 저, 할머니랑 아주머니랑 와서 밥먹으라고 해도 일어나지 말아. 밥 먹고 떡 먹고 그러면 어머니한테 못간다, 응? 옥동아…… "
 
212
하고 옥동이를 달랬습니다.
 
213
옥동이는 어머니한테 간단 말이 기뻐서 '응’이라고 대답을 하고 누나가 하라는 대로 하였습니다.
 
214
이처럼 여러 날을 누워서 배도 고프고 힘도 풀어진 두 오뉘는 손목을 마주 잡고 어머니를 찾아 머나먼 황천길을 처량히 울며 떠났습니다. 이처럼 복순이와 옥동이가 황천길을 간 뒤에 앞마을 사람들은 그 불쌍한 오뉘의 죽음을 그 어머니 무덤 양편에 조그맣게 하나씩 묻어놓고 댁내들과 처녀들은 흰옷을 입고 그 옆에 서서 오랫동안 슬피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오뉘가 살던 오막살이 빈 집에는 그 뒤에 아무도 들어 살지 아니하고 뜰팡과 지붕에는 망초라는 풀이 수북이 났는데, 날마다 아침에 해가 뜰 때와 저녁해가 설핏이 질 때가 되면 어디선지 파랑새 두 마리가 날아와서 처마 끝에 나란히 앉아 구슬픈 소리로 울다가 날아가고 날아가고 하였습니다.
 
 
215
정수는 읽기를 마쳤다. 문자는 몸을 꼼짝도 아니하고 앉아 듣다가 혹 정수가 번역 하기에 적당한 일본말을 발견치 못하여 한참씩 어물어물할 때에는 몹시 답답한듯 정수를 바라보기도 하였다.
 
216
정수는 읽고 나서 착착 접어 내던지고 마른 입술에 담배를 물고 맛이 있데 거푸 빨았다. 문자는 듣고 아서 얼굴에는 아주 선선한 미소를 띠고
 
217
"참말 잘 되었는데요. 물론 그것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정수씨가 창작 하신 거지요?"
 
218
"네……"
 
219
하고 정수는 문자를 바라보았다. 문자는 속맘으로 깊이 감동이 되어 그 동화가 ' 걸작’ 이란 말을 정수에게 하려고 열정적으로 정수를 바라보았으나 이번에도 또 핀잔을 먹을까 봐서 갑자기 말을 꾹 삼키고 말았다. 정수는 문자의 얼굴 표정으로써 그 마음을 짐작하고 피식 웃었다. 한참만에 정수는 일어서 문자에게로 손을 내밀며
 
220
"자, 인젠 그만 집어치웁시다. 그것두 이리 주시오."
 
221
하고 먼저 읽던 시를 달라고 하였다.
 
222
"이건 제가 좀 가지구 있을 테예요. 아까 번역하신 대로 한번만 더 읽어 주세요. 그러면 제가 받아쓸 게니까요, 네? 정수씨, 안 그러실 테예요? 그리구 그 동화두…… "
 
223
하고 문자는 의자에서 마주 일어서 두 손을 뒤로 감추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해죽 해죽 웃었다. 정수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반쯤 벌린 입과 간소롬한 눈초리에는 이상스러운 웃음을 띠고 문자를 끄윽 바라보았다.
 
224
〈'아따, 그저 요걸…… 요걸. 그저…… 저 젖가슴을 꽉 훑으려 안고 빨간 입술을 쪽쪽 좀 빨았으면…… 그저, 그저…… 아이구, 저 얇디얇은 옷을 그나마 확 벗겨 버렸으면…… 아이구, 그저 그랬으면……’하는 욕망이 정수의 전부에 나타났다.
 
225
ㅡ 뚫어지도록 문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눈과 그 미소며, 반쯤 벌린 입이며 문자에게로 내숙인 그의 몸이 ㅡ 〉
 
226
문자는 마음에 내키는 듯이 방긋이 웃으며 허리를 뒤로 젖히고 정수의 하는 것만 바라보았다.
 
227
정수는 두 팔을 반이나 벌리고 문자에게로 몸을 와락 쏟치려다가 무엇을 생각 하였는지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며 얼핏 손을 내리뜨리고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228
"허허 내가 이게 무슨 짓인고"
 
229
라고 문자가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말로 구 시렁 거렸 다.
 
230
문자도 그제야 얼굴을 붉히고 그대로 의자에 가 주저앉아 손에 들었던 시를 펴 들고 굽어다보았다. 물론 그것이 자기는 읽지 못하는 것인 줄을 알고야 있었지마는 그래도 그는 그것을 펴들고 굽어다보았다.
 
231
정수는 방안에서 하는 것 없이 공연히 어물어물하다가 그래도 맘이 쏠려 툇마루로 나가서 앉았던 의자에 가 앉았다.
 
232
두 사람을 태우던 정욕은 갑자기 사라졌으나 그 인상(印象)만은 선연히 새로와 서 지금 두 사람의 천연스러운 피상적 태도는 얼굴을 서로 들지 못하도록 계면 쩍게 하였다. 한참 동안이나 두 사람은 그 피상적 태도에서 건조무미하게 묵묵히 앉았다가 또다시 그 '피상적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얼굴이 간질간질 가려운 듯하여 무엇으로 자기의 얼굴을 듬쑥 가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듯하였다.
 
233
두 사람의 마음은 벌거벗은 몸을 가지고 수많은 남녀의 군중(群衆)이 모여선 곳에 나가서 자기가 자기 손으로 눈을 가리고 섰는 듯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서로의 속마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얼굴에는 아무렇지도 아니한 듯이 천연스러운 빛을 띠고 천연스러운 '피상적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이 마치 두 사람이 벌거벗고 큼직한 체경 앞에 옆으로 나란히 서서 그 체경 속에 있는 서로서로 의 벌거벗은 온몸을 ㅡ 정수는 문자의, 문자는 정수의 ㅡ 손가락질하며 바라보는 듯이 얼굴과 온몸이 간지러웠다.
【원문】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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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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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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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7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