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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기(過渡期) ◈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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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채만식
1
過 渡 期 [과도기]
 
2
4
 
 
3
금년 봄에 봉우 안해가 죽은 지 얼마 아니 되어 봉우의 집안에서는 군산으로 이사를 하였다. 봉우의 형은 그대로 그 촌에서 농사일을 보게 하고 그 나머지, 봉우의 양친과 봉우와 어린아이들만이 이사를 한 것이다.
 
4
이사를 한 것은 별다른 목적은 없었으나 첫째 어린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봉우가 살던 촌에는 보통학교 하나도 없었다), 둘째는 도회지에 나와서 약간 장사도 하여 보려 함이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알고 보면 봉우의 안해가 죽은 데 대하여 미신적으로 그 집에서 살기를 꺼려하고 또 시골 사람으로서 도회지 생활을 동경한 것이 은연중 그 원인이 되었다.
 
5
봉우는 군산으로 이사하는 모든 준비를 자기가 통 맡아 하여야 되겠으므로 학 기초에 동경을 가지 못하는 것을 적지 아니하게 불평히 여겼다.
 
6
그러나 자기 외에는 마땅히 그 일을 할 사람이 없고 더구나 군산으로 이사 하기를 자기가 들어서 주장한 터이므로 하는 수 없이 얼마 동안 학교를 결석하고 집안일을 보게 되었었다. 봉우는 먼저 영정(榮町) 복판에다 큼직한 묵은집 한 채를 사가지고 그것을 모조리 헐어버렸다.
 
7
그리고 그 터에다 새 재목을 들여 안채와 바깥채를 덩시렇게 지어가지고 그 바깥채에 다는 (바로 길거리였으므로) 그리 작지 아니한 포목전 하나를 벌여놓고 자기가 살던 촌에서 착실한 노인 하나를 얻어 전방 일을 보게 하였다.
 
8
봉우는 집짓는 곳에서 손수 집안 머슴이나 진배없이 같이 들어 일을 하고 일꾼들을 딱딱하게 잡도리를 하였다.
 
9
봉우는 자기 골에 틀리는 일만 있으면 어느 계급 어느 사회에 속한 사람에게든지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쌈을 싸웠다.
 
10
그러므로 봉우의 성질의 그 일면만 보는 사람들은 봉우를 '쌈 잘하는 몽리꾼’이라고 은연중 두려워를 하고, 또 밉게 말하는 사람들은 '그놈이 일본 가서 공부하는 세를 믿고 건방진 짓을 한다’ 하기도 하였다.
 
11
봉우가 집짓는 곳에서 그처럼 일을 하는 동안에 '오병묵(吳柄默)의 딸 영순(永順)이가 고학하러 일본 경도로 자기 부모 몰래 달아났다’하는 자자한 소문을 들었다.
 
12
봉우는 이 소문난 것을 매우 이상히 여겼다.
 
13
그는 '영순이란 처녀가 고학을 하려고 경도로 달아난’ 그 사실을 매우 범 연히 생각 하였다.
 
14
그러므로 그 범연한 사실을 가지고 그다지 소문이 자자히 난 것을 매우 이상히 여기며 그렇듯한 사람들의 심리를 비웃기도 하였다.
 
15
그러나 한편으로 그 영순이란 처녀가 분명히 군산서 그만한 세력을 가졌나 보다하여 영순에게 은연중 호기심을 일으키게 되었다.
 
16
어느 날인지 봉우가 지나면서 문득 자기 집 바로 뒷집이 그 오병묵의 집인 것을 보고 그 다음날부터는 그 집 어린아이와 오병묵의 안해 이씨(李氏)를 유심히 보고 가까이 상종을 하였다.
 
17
오병묵의 안해 이씨야말로 과년한 딸을 둔 부인이라 언제든지 사윗감 될 만한 청년을 심상히 보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봉우의 동정을 잘 살펴보아 왔다.
 
18
보아 오는 동안에 그는 봉우에게로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
 
19
봉우가 집짓는 곳에 와서 벗어붙이고 꿍꿍 일을 하는 착실한 것이랄지, 이씨 자기와 집안 어린아이들에 다정히 구는 것이랄지, 모든 일에 쾌활한 성질이 랄지, 그 외에 일본 유학생이고 또 시골 사람들이 귀신보다도 두려워하는 사 법관이나 경찰관을 딱딱 어르는 ㅡ 이 모든 것이 이씨로 하여금 속맘으로 '나도 저런 사위를 얻었으면……’하는 간절한 희망을 일으키게 하였다.
 
20
그래 하루는 봉우집 머슴이 우물에서 물을 긷노라니까 이씨가 물동이를 들고 와서 조용히
 
21
"자네 집 젊은 주인 (봉우) 장가들었나?"
 
22
하고 물었다.
 
23
"장가요?. 네…… 장가 들구 말구요…… "
 
24
하고 순직한 머슴은 아무 거리낌없이 대답을 하였다.
 
25
이 말을 들은 이씨의 마음은 적지 않게 섭섭하였다.
 
26
그러나 얼마 아니하여 이씨는 '봉우가 장가를 들기는 하였으나 금년 봄에 양잿물을 먹고 그 안해가 죽었다’는 말을 누구에게선지 또 들었다.
 
27
이 말에 이씨부인의 사라지려 하던 그 희망이 다시 살아났다.
 
28
그러나 봉우의 안해가 양잿물을 먹고 죽었다는 말에 한편으로는 봉우에게 대하여 어쩐지 두려운 생각이 나는 듯도 하였다.
 
29
날이 갈수록 집안에서는 서로서로의 집안 내용을 차차 알게 되었다.
 
30
그러므로 봉우도 오병묵의 가정을 대개 알게 되고 영순에게 대한 일도 여기저기서 들어 알게 되었다.
 
31
그래서 필경 봉우는 영순의 성격이나 행동이 그가 자라난 그의 가정과는 아주 딴판인 것을 알았다.
 
32
오병묵의 가정은 별로 보잘것없는 가정이었다.
 
33
오병묵은 남의 중개점에서 일을 보아주고 있었으나 그가 가진 지식이라고는 남이 하는 편지 한 장도 변변히 읽지를 못하였다.
 
34
그리고 그 두 내외가 마주앉아 집안싸움을 할 때에 ㅡ 그것은 한 달에 몇 번씩 정해 둔 듯이 부부싸움을 하였다 ㅡ 이씨의 입으로 자기 남편에게 '이놈 저 놈, 개 같은 놈, 죽일 놈’ 하고 욕지거리를 하는 말은 심상히 말하듯 하는 말이었다.
 
35
그리고 영순이는 아주 기독교를 독실히 믿었으나 그의 가정에서는 거의 아무 종교도 없고 도리어 영순의 신앙까지도 반대를 하였다.
 
36
오병묵은 이번에 영순이가'그처럼 한 일도 예배당에를 다니더니, 고년이 너무 되바라져서 그 지경이 된 것이라’ 고 얄밉게 말을 하였다.
 
37
그러나 영순이가 공부를 하려고 하는 것을 막지는 아니하였다.
 
38
영순이가 군산서 보통학교를 마친 뒤에 서울로라도 보내어 좀더 공부를 시키려고는 하였으나 가세가 하락치를 아니하므로 하는 수 없이 군산서 오리쯤 되는 곳에 있는 미국 사람 교회에서 세운 여학교에서 세운 여학교에 입학을 시켜 그나마 좀더 공부를 하게 하였다.
 
39
그러면서도 영순이가 예수교를 믿는 것은 매우 반대를 하였다.
 
40
물론 그렇다고 오병묵의 가정에 종교란 명색이 없는 것은 아니었었다.
 
41
지금 아직도 우리나라 종교계의 대부분을 차지한 유교와 애매한 인습적인 불교사상과 조선숭배(祖先崇拜)의 그것이 오병묵의 가정에도 없는 것은 아니었었다.
 
42
봉우가 집안일을 대개 마치고 길을 떠나려는 그 안날 저녁에 이씨는 봉우를 찾아와서
 
43
"내일 아츰에 떠나신대지요?"
 
44
하고 인사 겸 물었다.
 
45
"네, 내일 일찌기 떠나야겠읍니다......"
 
46
하고 봉우는 그에게 고유한 공순한 태도로 대답을 하였다.
 
47
"우리 영순이가,"
 
48
하고 이씨는 영순에게서 온 편지봉투를 봉우에게 보이며 말을 하였다.
 
49
"우리 영순이가 여기 있대는데요......"
 
50
이렇게 말을 하고는 '좀 찾아가 보아주지 아니하려느냐’는 듯한 얼굴 빛으로 봉우를 바라보았다.
 
51
이씨는 ㅡ 이씨뿐만 아니라 우리 조선 시골 여자는 대개 그렇다 ㅡ 지리(地理) 란 것을 알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
 
52
그러므로 지금 자기가 사는 군산이란 곳이 어느 곳에 붙어 있는지, 조선이 어딘지 일본이 어딘지를 도무지 모르는 터이다.
 
53
그저 일본이라 하면 그 일본의 지리 ㅡ 지리뿐 아니라 다른 것도 그렇지만 ㅡ에 대하여 지방적 개념이 도무지 없으므로 다만 일본인 줄만 알았다.
 
54
그러므로 일본을 간다면 단지 일본을 갈 뿐이지 동경이란 곳이 있어 동경으로도 가고 경도나 대판(大阪)이란 곳이 있어 경도나 대판으로도 가고 하는 줄을 알지못하였다.
 
55
그러므로 봉우가 일본을 가서 영순이를 찾아보는 것이, 가령 말하자면 서울 종로에 사는 사람이 동대문이나 서대문 근방에 사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줄만 알고 있었다.
 
56
봉우는 전부터 영순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는 터라 속맘으로'경도라니까 가는 길에 좀 들러볼거나......’ 하는 내숭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그 편지봉투만 만지작거리며 이씨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57
이씨는 말하기가 난처한 듯이 머뭇머뭇 하다가
 
58
"아따 저, 어려우시지만 그애 좀 찾아보아 주세요…… 어린 것이, 더구나 계집애가, 혼자 타국엘 가서 그러구 있으니까 잠시라두 맘이 놓여야지요."
 
59
하고 미안스러운 듯이 봉우의 눈치를 보았다.
 
60
봉우는 속맘으로는 '에끼나 되었다’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천연스럽게 말을 하였다.
 
61
"네. 별로 어려울 건 없읍니다. 가는 길초니까요......"
 
62
"아니 그러면......"
 
63
하고 이씨는 의외로운 듯이 물었다.
 
64
"아니 그러면 우리 영순이 있는 곳하구 학생(이씨는 봉우와 말을 할때에 일상 학생이라고 불렀다) 가시는 데하구 다른가요?"
 
65
"네. 좀 다르긴 하지만 바로 가는 길초니까요…… 별루 관계찮습니다…… 편지나 무엇 보내실 것 있건 절 주세요."
 
66
"아이그 그러세요? 참 고맙습니다…… 그러면 지금 가서 편지하구 옷 한벌 해논 것하구 가지고 오지요…… 그렇지만 짐스러울 터인데요?……"
 
67
"아니올시다. 옷 한 벌이 얼마나 됩니까 어데…… 관계찮으니까 보내실 것 있건 아무것이라두 갖다 주세요."
 
68
"네. 그러면 지금 곧 가져오겠 읍니다…… "
 
69
하고 이씨는 총총히 돌아갔다.
 
70
그러나 이씨가 봉우에게 이처럼 영순이 찾아보기를 당부하는 것이 영순의 신상을 근심하는 마음도 있겠지마는 한편으로는 이씨 자신도 잘 의식치 못하는 별다른 목적이 있는 까닭이었었다.
 
71
또한 봉우도 하루바삐 동경으로 가야만 할 형편이건만 그래도 경도에 들러서 영순이를 찾아보려는 것은 별다른 희망을 가진 까닭이었었다.
 
72
그 이튿날 오병묵은 정거장까지 봉우를 따라나와서 '집에서 통 돈 한 푼 보내주지 못하는데 어린 계집애가 고학을 한다고 그처럼 가 있으니까 부모 된 사람이 한시라도 맘을 놓을 수가 있겠소? 이번에 가시거든 수고는스럽지만 부디 좀 찾아보아서 만일 못 쓰겠거든 내게 기별을 좀 해주시오…… 내가 곧 쫓아가서 붙잡아 와야겠으니까 요…… 그러다가 자칫 잘못하면 계집애자식을 버리잖겠소? 부디 좀잘 알아서 자세히 기별을 좀 해주시요’란 말을 신신당부하였다.
【원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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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1923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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