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과도기(過渡期) ◈
◇ 5 ◇
카탈로그   목차 (총 : 18권)     이전 5권 다음
1923
채만식
1
過 渡 期 [과도기]
 
2
5
 
 
3
영순이는 금년에 열여덟 난 처녀였었다.
 
4
그는 봉우가 말한 것처럼 그처럼 미인은 아니었었다.
 
5
다만 그의 좁으장한 어깨통과 홀쭉한 키와 가는 허리와 긴 다리가 양장을 하고 나서면 뒷맵시가 썩 그럴듯하였다.
 
6
그의 얼굴은 밉상도 아니고 미인도 아니었었다.
 
7
그의 얼굴은 말하자면 엄격한 얼굴이었다.
 
8
어느 구석엔지 용이히 침노치 못할 듯한 기운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영순의 얼굴이 독살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9
그의 얼굴의 본판은 온순한 것이 영순의 엄숙한 신앙의 심리작용을 입어 그 처럼 엄격한 빛이 가미된 것이었다.
 
10
그는 지금 일본 경도에 있는 B고등여학교 삼년급에 다니는 중이다.
 
11
그는 물론 맨손으로 ㅡ 겨우 경도까지 가는 차비를 장만하여 가지고 ㅡ 집을 떠났었다. 그러나 영순이는 예전부터 경도서 공부를 하는 K라는 여자와 사귐이 있었다.
 
12
영순이가 집을 떠나 바로 경도로 간 것도 그 K를 찾아간 것이다.
 
13
그 K라는 여자는 경도에 있는 일본 정객(政客)들과 실업가들이 정치적 야심으로 기본금을 모아 가지고 세운 화친회(和親會)란 단체에서 매삭 육십 원씩의 학비를 타서 공부를 하는 중이었었다.
 
14
영순이도 K의 소개로 그 화친회의 회원이 되어 그 육십 원이란 돈을 매삭 얻어서 이름 좋은 고학을 하여나갔다.
 
15
그런데. 그 화친회에서는 애초에 사업을 가장 잘하여 나갈 목적으로 어디서 주워 왔는지 모르나 조선사람 서태문(徐泰文)이라는 검은 장막에 싸인 의심다운 인물에게 그 회의 모든 사업을 맡겨 처리하게 하였다.
 
16
그러므로 그 화친회는 서태문의 독점사업이나 진배가 없었다.
 
17
서태문은 K의 소개로 영순이가 고학하러 왔다는 말을 듣고, 첫째는 자기의 직무도 수행할 겸 둘째는 영순에게 흉악한 야심이 일어나 다른 사람에게는 곧잘 허락 치 아니하는 것을 영순에게는 두말없이 그 자리에서 학비 대주기를 허락하였다.
 
18
그래 매삭 초사흘이면 육십 원이란 돈표와 서태문의 이상스러운 ㅡ 그 이상스러운 것을 영순이는 이상스러운 줄을 모르는 ㅡ 편지가 영순의 손에 또박또박 떨어졌었다.
 
19
물론 영순이는 서태문으로 하여금 학비 대주기를 손쉽게 허락케 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20
'영순이는 남자가 아니고 여자요, 얼굴이 밉상이 아니고 사람 됨이 어수룩하여 세상 물정을 모르므로, 장차 서태문의 손에 녹아날 만한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철 없고 세상 인심을 모르는 영순이는 생각밖에 그러한 고마운 양반을 만나매 어찌나 기쁘고 감사한지 자기 말대로 하면 '아부지와 같이 공경하고 사랑’ 하게 되었다.
 
21
그리고 으례 서태문을 '서선생님’이라고 불렀다.
 
22
영순이는 속맘으로 '고학하기가 썩 어렵고 또 여자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몸을 버리 기가 쉽다더니, 지금 와서 당해 보니 참말이지 고학하기란 누워 떡 먹기보다도 쉬운 일이라’고 하는 생각이 나서 한편으로 자기의 처지에 대하여 거만된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다.
 
23
그러므로 영순은 서가의 말이라고 하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의심을 아니하였다.
 
24
서가는 영순에게 명년이면 동경으로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25
'동경을 가면 여자대학이 다섯 군데나 있는데 어디든지 자기 소개장만 가지고가면 어려움 없이 입학을 할 수가 있다고.’
 
26
영순은 길전(吉田)이란 여선생 ㅡ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ㅡ 의 집 이층에 기숙을 하고 있었다.
 
27
서가에게는 이것이 매우 불만족이었었다.
 
28
더우기 길전 선생은 독신생활을 하는 성격이 매우 엄정한 여자이었고, 어디까지든지 영순이를 잘 지도하고 보호하려 하였으므로 서가에게는 그것이 더욱 앙통 하였다.
 
29
이것은 영순이가 경도로 간 지 얼마 아니 되어서의 일이다.
 
30
영순이가 서가의 간절한 청으로 다른 조선 여학생 ㅡ 모두 화친회에서 돈을 얻어 쓰는 ㅡ 들과 함께 서가의 집으로 하룻밤 놀러간 일이 있었다.
 
31
놀러가서 서가에게 은근한 대접을 받고 먹을 줄 모르는 술도 좀 먹고 밤이 깊도록 화투를 치며 놀다가 전차가 끊겨서 돌아오지를 못하고 그만 그 집에서 자고 그 이튿날 아침에야 돌아온 일이 있었다.
 
32
길전 선생은 밤이 새도록 기다리고 전차정거장으로 하인을 보내 보고 하였으나 필경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33
그 이튿날 길전 선생은 영순이가 지난밤에 그처럼 한 일을 알고 눈이 빠지도록 나무랐다. ㅡ 길전 선생은 서가의 행동을 심상치 않게 보아왔었다.
 
34
그러나 영순이는 실컷 나무람을 듣고도 자기 방에 돌아가서 얼굴에는 불평한 빛을 띠고 혼잣말로 '내가 서선생님 같은 어른의 댁에서 하룻밤을 자고 온 것이 무에 그다지 잘못인고’하고 매우 불쾌히 여겼다.
 
35
영순은 자기 옷과 편지를 가지고 일삼아 찾아온 봉우를 매우 은근히 접대하였다.
 
36
더우기 고향에서는 서로 이웃 사이요, 자기 부모의 친서에 착실한 사람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것을 보고 마음에 매우 친근스러운 감상이 일어났다. 그래 영순이는 자기가 현재 경도서 지내가는 형편을 대개 이야기하였다.
 
37
길전 선생도 아무 의심없이 봉우를 접대하고 영순이가 서가에게 너무 허물 없이 하는 것을 근심스러운 듯이 봉우에게 말을 하였다.
 
38
봉우는 영순을 작별하고 여관으로 돌아오며 입안엣말로 '서태문이 ? 서태문이? 알듯 알듯 하다만?’ 하더니 한 사흘 동안 경찰서도 찾아가고 서태문도 찾아보고 경도에 있는 조선 유학생도 찾아보고 하며 분주히 돌아다니다가 마지막 동경으로 길 떠나는 날 밤에 영순이를 찾아가서 작별인사를 한 뒤에 주먹을 부르 쥐고 분개한 듯이 말을 하였다.
 
39
"오늘 저녁에 만일 그놈을 정거장에서 만나면 대번에 쳐죽여 버리겠읍니다. 서 태문이 그놈 말씀이야 요…… "
 
40
"왜 그러세요?"
 
41
하고 영순은 봉우의 이 뜻밖의 말에 눈이 둥그래지며 말을 물었다.
 
42
"내가……"
 
43
하고 봉우는 다시 소리를 나직이 하여 말을 하였다.
 
44
"내가 아무리 보아두 그놈의 하는 짓이 수상스럽기에 뒬 좀 살펴봤 댔지요……< 그 놈의 본 이름은 서태문이가 아니라 서병욱이란 놈이에요. 인제 알구 보니까…… 그놈이 동경서 아주 지독한 친일파놈이드랍니다. 그놈, 제 말이 제가 명치 대학을 졸업했단대지요? 아닌게아니라 명치대학 학모에 교복은 입구 다녔드랍니다. ― 인삼장수 엿장수 하느라구요 ― 그놈이 인삼장수 엿장술 하다가 잘 팔리질 않으니까 보인회 회장 곡산초칠랑(谷山初七郞)이란 자의 궁댕이에 가 들어 붙어서 제 말대로 '일선 융화에 큰 노력을 했다’나요…… 그러다가 필경은 우리나라 유학생들한테 들켜나서 죽두룩 두들겨맞고 이 경도로 쫓겨왔드래요…… 경도로 와서 또 무슨 일을 저지르구 ― 사기취재라는 사람두 있구, 처녀 유인 죄란 사람두 있으니까 자세힌 모르겠읍니다만 ─ 잡혀가서 얼마 동안 콩밥을 먹은전과 자라나요…… 그놈이 감옥에서 나올 때에 마침 이 경도에 있는 일본 사람 야심가 들이 저희 말대로 하면 소위 '일선 융화를 촉진’할 목적으로 그 화친 회란것을 세우는 기밀 알구, 그놈이 에끼나 먹을 것 생겼구나 하구 그곳에 뛰어들어가서 지금 그 꼬릴 펴구 다니는 거예요…… 그래 고놈이 ― 아이구! 그저 고 놈의 소윌 생각하면 ― 우리나라 민족의 체면을 팔아 일본 사람에게 아첨하기, 어리숙한 조선 여학생 꾀이기…… 그러면서두 고놈이 외면으룬 애국잔 체 일류 신산 체하고 뭐라구 딱딱거리구 다니니 그놈의 하는 짓이 분하구 밉잖겠읍니까? 대판 있는 C교회두 그 화친회 돈으루 유지해 나간답니다. K, 고년두 서태문이와 한칼에 목을 베어 죽일 년이에요…… 영순씰 서가에게 소개한 것두 고년의 소위지만 전 화친 회와 서가놈의 내용을 번연히 알면서두 영순씨한텐 일절 그런 말을 아니 한 것을 보면 저희끼리 공모해 가지구 영순씰 속여 저희 맘대루 하잔 수작이 아닙니까?>" (이하 < > 표한 부분은 검열에서 '삭제’당한 부분임 - 편자)
 
45
봉우의 말소리는 점점 높아갔다.
 
46
영순이는 처음에는 얼굴에 놀라운 빛과 호기심을 가진 빛을 띠고 들었으나 말이 차차 깊어감에 따라 그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하여지고 아무 말도 없이 봉우의 말을 들었다.
 
47
"그러니까……"
 
48
하고 봉우는 소리를 더 높여
 
49
"< 그러니까 그놈의 담보가 좀더 크구 조선이란 땅덩이가 하나 더 있드라면 마저 팔아먹을 놈이 아니예요?>"
 
50
하고 잠깐 말을 그치고 영순을 바라보았다.
 
51
영순이는 섧지 아니한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하여지며 무슨 말을 하려 하였으나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를 아니하고 다만 옷자락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52
그는 '그것이 진정이냐’고 한번 물어보고도 또한 싶었으나 봉우의 태도가 너무 열정적이고 그의 얼굴에 조금도 가식한 빛이 없으므로 그의 말을 믿지 아니 할수가 없었다.
 
53
물론 봉우의 말을 꼭 믿었다.
 
54
그러나 서태문에게 대한 신용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55
"그러니까……"
 
56
하고 봉우는 다시 나직하고 다정스런 말로 영순을 측은히 여기듯이 말을 하였다.
 
57
"그러니까 물론 영순씨 잘못이라구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린 지금 아주 가난한 처지에 있지 않습니까? 영순씨두 가난하시지요? 하나, 공분 하구 싶으시지요? 고학은 물론 못하실 것이구…… 그러니까 저두 이제껏 한 말씀이 참말 미안스런 말씀 입니다. 지금 영순씨더러 그 돈을 받으시지 말란 말씀은 아니에요. 받아서 착실히 공불 하시되, 그 돈의 내력이 그런 것이니까 그에 대해서 장차 할 깊은 자각을 가지셔야 될 줄 압니다. 그리구 서가놈을 대단 주의하십시오…… 길전 선생에게 영순씨가 서가놈한테 너무 허물없이 하신단 말을 듣구 제깐엔 놀랐는데요…… 서가놈이 이제껏 영순씨가 생각해오신 것관 아주 딴판이니까 요…… "
 
58
하고 봉우는 말을 맺었다.
 
59
봉우는 영순에게 부디 자기 부모한테 그런 기별을 하지 말아 달라는 목마른 듯한 부탁을 듣고 그날 밤에 경도를 떠났다.
 
60
영순은 기가 막혀 방바닥에 가 엎드러져 울음을 울었다.
 
61
쓸쓸하고 고적한 감상이 자기를 내리누르는 듯하여 방금 작별한 다정스러운 봉우가 말할 수 없이 그리운 생각이 일어났다.
 
62
그는 혼자 탄식하듯이 생각을 하였다.
 
63
'나는 왜 돈이 없어 그런 더러운 돈으로 구구히 공부를 하게 되었는고…… 그러나마 내가 이제부터라도 그 돈을 받지 말면? 무얼 가지고 공불 해? 이런 일을 당할수록 공분 더 해야만 할 텐데…… 고학? 고학은 참말 자신이 없고…… 에라 모르겠다. 그 돈이나마 눈을 질끈 감고 받아서 공불 한 뒤에 내가 그만큼, 민족에게 누를 끼친 만큼 더 많이 갚으면 그만이지. 더러운 진흙에서 고운 연꽃이 피고 좋은 열매가 맺질 않나…… 봉우씨 말씀대로 할밖에……’라고 맘을 먹고 나서 두 무릎을 단정히 꿇고 두 손을 합장하여 위를 우 러러 보며 엄숙한 말소리로
 
64
"하나님이 시여! 약한 나를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 하옵소서…… "
 
65
하고 기도를 드렸다.
 
66
그러나 그가 팔을 걸핏할 적에 눈에 얼핏 띄는 팔걸이 금시계와 방안에 늘어놓은 문방구, 벽에 걸린 화려한 의복을 보니 문득 꺼림칙한 생각이 나서 아예 사라지지 아니하였다.
 
67
그는 넓으나넓은 빈 들에 혼자 방황하는 듯한, 말할 수 없이 외로운 설움이 가슴에 복받쳐 방바닥에 다시 엎드러져 밤이 깊도록 소리를 숨겨 울었다.
【원문】5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16
- 전체 순위 : 618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95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86) 삼대(三代)
• (23) 적도(赤道)
• (21) 어머니
• (20) 탁류(濁流)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과도기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23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18권)     이전 5권 다음 한글 
◈ 과도기(過渡期)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7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