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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기(過渡期) ◈
◇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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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채만식
1
過 渡 期 [과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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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3
해는 거의 석양이 가까웠다. 정수와 문자가 앉아 있는 툇마루 앞 뜰팡에는 선선한 집그림자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멀지 아니한 사적장(射的場)에서는 총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다. 음습(陰濕)한 검은 구름이 하늘을 차차 덮기 시작하고 그를 따라 사람의 몸은 훈더운 기운에 보채어 흐르는 땀이 몹시 진득거렸다. 검은 구름은 삽시간에 하늘을 절반이나 차지하고 그 그득 덮여 있는 모양은 금시 대지(大地)를 내리누르는 듯하였다. 정수와 문자는 숨이 콱콱 막히는 듯하여 부채질을 활활 하며 '어서 소낙비가 한 줄금 왔으면 ’하고 기다리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4
구름 속에서는 무서운 번갯불이 참담히 번득거리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천둥소리에 문자는 깜짝깜짝 놀랐다. 이리 한참이나 야단을 하며 벼르다가 꿀맛 같은 선선한 바람이 휙 불더니 손 굽으렁이 같은 빗낱이 바싹 말라 먼지가 푸근푸근한 땅 위에 하나씩 둘씩 폭폭 완고하게 떨어지기를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빗낱은 점점 자주 듣다가 갑자기 댓줄기 같은 빗줄이 확확 부는 바람을 따라 옆으로 비스듬히 김싸게 좍좍 내리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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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비에 잠겨 운치 있게도 암암히 보였다. 땅위에는 순식간에 검누른 흙물이 이리저리 흘러내려가고 두 사람의 얼굴에는 선선한 산(生[생]) 기운이 떠올랐다. 함석지붕 때문에 비 듣는 소리, 바람소리, 천둥소리가 한데 뒤 섞여 귀가 윙해서 말소리가 잘 들이지 아니 하므로, 두 사람은 말을 하려면 입을 귀에다 바싹 대고 말을 하였다. 이처럼 소낙비는 한참이나 잠자코 쏟아지다가 겨우 큰비는 그쳐버리고 다만 실낱 같은 가는비가 바람에 살살 날려 안개와 같이 흐트러 졌다. 검은 그름은 바람에 몰려 뭉툴뭉툴 헤어져 가고 서편 하늘에서 구름장을 방긋이 떠들고 눈이 부시게 족족 뻗어나오는 햇발은 가는비에 나부껴 마치 하늘에서 금가루(黃金末[황금말])가 조용히 내려오는 듯하였다.
 
6
빗소리에 잠겨 잠깐 동안 그친 듯하던 전차소리, 총소리, 사람들의 지껄이는 소리는 마침 기다리고 있던 듯이 빗소리가 막 그치자 한꺼번에 와락 몰려나왔다. 만상은 모두 정하게 목욕을 한 듯이 새로운 기운이 나보였다. 매초롬하게 씻겨 내린 땅 위에는 유리 조각, 자개 껍데기가 보얗게 솟아나와 반가운 듯이 반짝거리고 정하게 씻긴 나뭇잎에서는 매끄러운 반사가 일어났다.
 
7
두 사람의 먼저 긴장되고 계면쩍던 마음도 상쾌한 천후(天候)의 영향을 받음 인지 인제는 아주 쾌활하여져 가지고 '봉우와 형식이가 비를 담뿍 맞지나 아니하였나’ 하여가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침 우체사령이 "편지 받으오 ㅡ "하고 문 여는 소리에 문자는 얼핏 현관으로 나가서 편지 한 장을 들고 들어왔다. 이 편지는 봉우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순에게서 온 편지였었다.
 
8
그 편지는 도화(桃化)색 도는 바탕에 흰 백합꽃이 찍힌 조그마한 양봉투에 봉우의 주소소 성명을 또박또박 쓰고 이면에다는 다만 경도오제(京都吳弟)라고만 썼었다. 그러나 누가 보든지 첩경 그 내용이 연서(戀書)라고 생각할 만하였다.
 
9
문자는 빙긋이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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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분명 영순씨한테서 온 편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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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편지를 정수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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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는 받아들고 피식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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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옳습니다. 봉우가 또 의기가 양양해지겠구먼…… 그렇지만 이번엔 대관절 무어라 구 답장을 했을꼬? 이 편지 속엔 사진두 들지 않은 듯한데…… 봉우가 지난번 편지에 자기 사진을 보내주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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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하긴 봉우씬 보내려구 하는 것을 형식씨가 들어서 못 보내게 했어요. 지금 보내선 못쓴다구…… 그래 보내진 않았어요. 그런데 그 편지에 별 말을다 썼어요. 그 편진 봉우씨하구 형식씨하구 둘이서 의논해가면서 쓴 건데요. 그래 제가 한번 읽어 달라고 조르니까 일본말로 번역해서 읽어주는데…… 참 별 말이 많아요. 저 누구라든가? 그 사람 욕을 막 하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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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문이라 구 그러지요?"
 
16
"네네, 서 무엇이라구 그래요. 그리구 맨 끝에 가선 이런 말두 썼겠지요. ' 저녁마다 열두시, 새로 한시가 지나두룩 잠을 이루지 못하구 영순씨 생각만 하구있다가 어찌어찌해서 겨우 잠이 들면 영순씨의 그 아리땁고 다정스러운 그림자가 선연히 제 앞에 보이구 합니다. 그래 전 반가운 마음에 와락 달려들어 영순 씨의 그 보드라운 움파 같은 손목을 훑으려고잡고 영순씨! 하고 부르구 나선 그동안 그려하든 설화나 하려 하면 웬일인지 목이 막혀 말이 나와야지요! 그래 전 답답한 가슴을 어루만지며 묵묵히 섰느라면 영순씨가 잡혔던 손목을 확 잡아 뿌리치는 바람에 저는 깜짝 놀라 잠이 깨어 사방을 휘휘 둘러봅니다. 아! 영순씨, 그때에 영순씨는 간곳 없고 저는 옆에 누운 정수군의 손목을 꽉 훑으려잡고 있겠지요. 얼마나 제 맘이 섭섭하겠습니까? 그 꿈에 만나 그리워하는 말을 좀 하려하나말이 도무지 나오질 아니하는 이 봉우의 가슴이 비록 꿈은 꿈일지언정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영순씨…… 영순씨…… 저는 밤마다 밤마다 이처럼 마음을 졸이고 지냅니다. 저의 외로운 혼은 애인을 찾으려고 멀리멀리 적막 사막에서 방황을 합니다. 아! 우리 영순씨는 그 근경을 알아주시는지? 오늘밤도 이미 깊었습니다. 붓을 들고 책상에 의지하여 졸던 저는 높다란 하늘에서 흰구름을 타고 선경의 노래를 부르는 영순씨를 보기도 하고, 무서운 짐승에게 몰려가다가 깊은 구렁에 빠져 헤매는 영순씨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아! 그래도 우리 영순씨는 이러한 근경을 전혀 모르시고 다만 홀로 고요히 누워 아리따운 꿈을 꾸시겠지! 아 그 색색 하는 숨소리…… 선경의 노래 같은 그 작은 숨소리를 듣는 듯한 저의 혼은 또다시 멀리멀리 애인을 찾으려! 영순씨!…… 영순씨의 입에서 나오는 예스(냐)의 그 한말은 이 봉우에게 얼마나한 생명수가 될지 짐작하여 주시오. 만일 영순 씨가 그 오냐란 대답을 하시기에 아직두 더 시간이 필요하신 경우거든 그동안 태우는이 봉우의 가슴을 측은히 생각하시고 한 장 사진을 보내주시는 수고를 아끼지 마심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영순씨, 제가 이 편지를 토스트에 집어넣고 나서 날마다 얼마나 우체사령의 편지 받으오 하는 소리에 가슴을 뛰놀리며 영순 씨의 회답을 기다리겠는지 짐작하여 주시오……’라구 썼겠지요. 하하하하…… 그리구 그 편지가 여간 긴 게 아니에요. 그때 언젠지 봉우씨가 '이건 꼭 두구 우리 영순이한테 쓰는 편지에만 쓰는 거다’ 하고 사가지고 온 그 편지에다가 깨알(荏實[임실])이 쓴 게 여덟 장이나 되었어요. 하하하하……"
 
17
하고 문자는 재미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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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도 문자를 따라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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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가 꿈에 영순일 만나서 손을 잡구 어쩌구 한단 말은 정말인가 봐요. 아니, 손을 잡는 게 아니라, 껴안구 입두 맞추구 그러는 모양이에요. 요새 저녁이면 아주 귀찮아 못견딥니다, 전…… 그 사람(봉우)이 잠을 자다가두 잠덧을 하면서 제 목을 그러안구 무어라구 구시렁거리겠지요 그래 제가 확 뿌리치면 잠을 깨어 가지군 절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응, 정수댔나?’ 하구 돌아 눕겠지요…… 매일 밤 그래요. 하룻밤에도 몇 번씩…… 그리구 참, 그처럼 껴안군 제 어깨에 다나 등에나 입을 대구 키스하는 흉낼 내겠지요. 허허 허허…… "
 
20
문자는 뱃살을 거머쥐고 웃으며
 
21
"네, 그런데요…… 꿈에 만나서 꽉 껴안을 제 고 보들보들한 살이 자기 팔에가 닿으면 그건 참 온몸이 녹아나는 듯하나요. 그렇지만 키슬 하면 어쩐지 보드라운 맛이 없구 뻣뻣하다나요. 그래두 좋아서 막 내리 빨다가 영순씨가 확 뿌리치는 바람에 화닥닥 놀라서 보면 정수씨 목을 그러안구 그 옷자락에다 키슬 하구 그런 대 나요. 하하하하. 그래 봉우씬 그 편지에다 그런 말까지 모조리 쓰려구 하는 것을 형식씨가 '이애 넌 공연히 그따위 말 썼다가 영순이가 널 보구 아주 음탕한 놈이라구 도리어 욕이나 하면 어쩔려구 그러니? 차라리 손목이나 잡는다구 쓰렴…… ’ 그랬대나요. 그래 그 말대로 손목만 잡는다구 쓴 거래요. 하하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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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재미있게 웃었다.
 
23
그때에 마침 봉우와 형식이가 문 밖에서 요란히 지껄이며 들어왔다. 문자는 그 편지를 얼핏 품에다 감추고 시치미를 뚝 떼고 현관으로 나갔다.
 
24
문자는 두 사람이 비를 후줄근히 맞은 것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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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그러면 그렇지…… 저게 모두 천벌이에요. 날 떼어놓구 혼자들만 간…… 하나님이 무심할 리가 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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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웃으며 들어오는 두 사람에게 농말을 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문자에게 지지아니하려고
 
27
"내가 천벌을 받으면 문잔 그저 편할 줄만 아나? 내가 비 맞아서 옷을 버렸으니까 그걸 빨아주려면 문자가 받을 천벌은 어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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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코를 벌름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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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그래 봐요 좀? 옷을 빨아주나. 빨고 안빨긴 나한테 매었으니까 내 가안 빨면 그만이지…… 네? 봉우씨, 그렇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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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요. 그렇구말구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난 그런 말은 안했으니까 내 옷은 빨아주시겠지요?......"
 
31
하고 봉우는 너털웃음을 쳤다. 형식과 문자도 같이 재미있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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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세 사람은 지껄이며 옷을 갈아 입고 형식은 툇마루로 나아가
 
33
"정수, 자넨 왜 그러구 가만히 누웠나? 영감처럼…… "
 
34
하고 문자가 이제껏 앉았던 의자에 가 앉았다.
 
35
그러나 그가 '이 의자에 문자가 정수와 마주앉아……’라고 생각하니 문득 불쾌한 생각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곧 사라져 버렸다.
 
36
정수는 흔연히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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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늘은 재미있게 놀았나?……"
 
38
하고 물었다.
 
39
형식이 마침 대답을 하려고 하는 것을 봉우가 방에서 나오다가 와락 내 달으며
 
40
"하, 잘 놀구말구…… 재미가 어찌 많든지 좀 남겨가지구 와서 자네랑 문자씨랑 좀 주구 싶데그려…… 그리구 싸움을 또 한바탕 부시구…… "
 
41
하고 소리를 높여 말을 하였다.
 
42
"싸움? 싸움이 또 웬 싸움이야?……"
 
43
하고 정수는 좀 근심스런 듯이 물었다.
 
44
봉우는 여전히 높은 소리로
 
45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마침 빌 맞으면서 품천(品川) 해수욕장에서 나오느라니까 웬 왜놈들이 우리 뒬 따라오며 ㅡ 우리가 조선말로 막 지껄이긴 했댔지 ㅡ '지나인, 짱꼬로’ 어쩌구 그래…… 그래 비까지 맞구 골이 난 판이라 달려들어두 놈을 개(犬[견])잡듯이 두들겼지. '이놈들, 버젓한 조선 양반들더러 지나인 짱꼬로라니’ 하구…… 어쨌든 그놈들 코에서 조선 사람 냄새가 물씬물씬 나게두 들 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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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구?"
 
47
"그리구 나서…… 허허, 망신을 하려니까, 파수막으로 잡혀갔댔지. 순사놈이 무어라구 지껄이기에 '저놈들이 우릴 보구 지나인이니 짱꼬로니 하구 모욕(侮辱) 하길래 젊은 혈기에 싸운 것이라’구 그랬지…… 그리구 어쩌구저쩌구 하구 얼렁얼렁 얼러넘기구 와버렸지. 오늘 빈 맞었지만 맘은 시원하다. 〈'난 왜놈두 들 겨주는 게 맘에 제일 상쾌해……’" (이 말만은 우리나라 말로) 하고 자기만 마치 유쾌한 듯이 웃었다.〉
 
48
문자는 봉우의 옆으로 다가서며
 
49
"봉우씨, 봉우씨한테 참 좋은 걸 하나 드릴 게 있는데요…… "
 
50
하고 머리를 돌려 정수를 바라보며 의미있게 웃었다.
 
51
"좋은 것이요?"
 
52
하고 봉우는
 
53
"대관절 무엇입니까? 내가 보아야 좋은지 어쩐지 알 게 아니요?"
 
54
"아니에요. 지금 보여 드리면 그 좋은 가치가 반이나 없어지는 거예요. 그리구 그것이 좋단 것은 저 정수씨가 담보하시는 터이니까요…… "
 
55
하고 또 정수를 바라보며 미소하였다.
 
56
"네, 그러면 좋다구 그럽시다. 그러면 그 좋은 것을 주실 터인데 어쩌란 말씀이요?"
 
57
"한턱을 잘 내셔야 해요…… "
 
58
"한턱? 한턱은 말구 열턱이라두 내지요. 문턱하구 내 턱하구만 해두 벌써 두 턱이나 안됩니까?"
 
59
문자는 웃음을 참지 못하여 영순에게서 온 편지를 봉우에게 얼핏 내주어 버렸다 봉우는 받아 들고 빙그레 웃으며 요리조리 만져보다 가
 
60
"응, 이것…… 우리 영순이…… 러브레터…… "
 
61
그 거동을 보고 형식은 시험하려는 듯이
 
62
"자넨 그런 좋은 걸 자네 혼자만 보려나?"
 
63
하고 봉우의 눈치를 살폈다.
 
64
"그래라. 곧 죽어두 백봉우다…… 내가 그러면 자네들 알아듣두룩 낭독을 하지…… "
 
65
하고 봉우는 쾌쾌히 말을 하고 편지봉투를 뜯어 편지를 꺼내어 펴들고 읽어 내려갔다.
 
66
그 편지는 석 장쯤 되는 조그마한 편지지에다 쓴 것인데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문자는 알아듣지 못하여 몹시 답답한 듯이 읽는 봉우의 입만 바라보았다. 읽어가는 동안에 봉우의 얼굴은 매우 좋지 못하였다. 편지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였다.
 
67
'우리는 지금 배우는 중이니까 다른 생각은 전혀 끊어버리고 배우는데다 모든 힘을 다하여야 하겠읍니다’란 말과, 봉우더러 예배당에 착실히 다녀서 세례를 받으란 말과, 또 그동안 봉우에게 하는 편지의 항용투대로 이번에도 '자기는 이(齒[치])를 악물고 공부를 한 뒤에 우리 민족을 위해서 자기의 전부를 다 하여야겠다’ 는 말을 잊지도 아니하고 썼었다.
 
68
정수는 듣고 나서 의자에서 몸을 돌이켜 누우며 그의 입술에는 몹시 경멸 하는듯 한 찬 민소(憫笑)가 떠올랐다. 형식도 경멸하는 듯이
 
69
"멱국 먹었네 멱국 먹어…… 그게 글쎄 그때 그 편지 답장이야?"
 
70
하고 문자가 그 편지의 내용을 몰라 답답하여 하는 것을 보고 대강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71
문자는 그 말을 듣고 호기심이 가득찬 눈으로 봉우를 보며
 
72
"아주 썩 얌전하세요. 네? 그렇잖아요?"
 
73
형식은 봉우를 성화를 먹이려고
 
74
"얌전은 무엇이 얌전해? 그렇잖아요?"
 
75
형식은 봉우를 성화를 먹이려고
 
76
"얌전은 무엇이 얌전해? 그것이 모두 예술 잘못 믿은 여독(餘毒)이지. 그리구 얌전하면 정말 얌전해서 그러나? 남의 눈을 꺼려 그러지. 사실 말이지, 요새 그 신여 자란 게 새롤 신자 신여잔지 초(酸[산])처럼 시단 신여잔지 모르겠더구나 이애…… 눈꼴이 시어 볼 수가 있어야지. 성경자나 보구 찬미가깨나 부르구 하 면제 소위 신성한 생활이나 하는 줄로…… 눈을 가릅뜨구 다니며 남을 낮추 보구…… 그러구 그따위들이 방탕을 하기 시작해 봐요. 걷잡을 수가 없지. 저희 가무 얼 난체해…… 잘나고도 잘난체하는 것두 보기가 싫은데 못난 것들이 난첼 하니 어찌잔 말이야…… 저희가 무얼 좀 안단 건 모두 개대가리에 감투 씌운 셈이지. 정수 말 본으로 그것들이 모두 과도기 특산물 부스러기들이야…… "
 
77
하고 봉우를 흘끔흘끔 보았다. 봉우는 얼굴에 실망한 빛을 띠고 편지를 착착 접으며
 
78
"아니야, 얌전하긴 썩 얌전해요. 그렇지만 아직두 철을 몰라 그러나봐?……"
 
79
"철을 몰라? 이앤 어이구…… 지금 영순이 나이 열여덟이야. 그리구 그 편지에다 널더러 '세례 받으라’구 쓴걸 보구, 또 예전 편질 보아두 너한테 아주 맘이 없진 않은 것 같애. 그러니까 웬만한 계집애 같았으면 지금 연애라면 죽을 줄 살줄 모르구 달려들 때야. 그런데 그건 무어야. 도무지? 돌부처두 아니구…… 모두 그것이 예수교 중독이야. 시실 말이지 지금 교회란 게 우리나라에선 감정의 도수장이니까. 젊은 남녀가 교제하는 걸 당(唐)비상보담두 싫어하구…… 영순이두 이 애, 어려서부터 그따위 감활 받구 자라났기 때문에 그런다. 글쎄 처녀면 처녀 다운 어트모스피어가 있어야지!"
 
80
"그렇지만 영순이가 날 의심하는지두 모르지? 서가놈한테 한번 속은 일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두 그렇잖아…… 자기 부모가 날 신용할만큼 편지두 하구 그랬으니까…… "
 
81
그러나 형식은 그 말은 들은 체도 아니하고 이상스럽게 흥분이 되어
 
82
"또 그리구 현재 자기 위칠 변명하느라구 자기소개까지 했겠지. 무어 어때? 민족을 위해서 어쩌구 어째? 진정 그런 맘이 있거든 한두 번 썼으면 그만 이지…… 봉우한테 그동안 다섯 번인지 편질 했는데, 할 때마다 그 말을 꼭 잊질 않구 문안투(問安套) 로 쓴단 말이야. 공연히 세상이 어찌 되어가는 줄두 모르구 남이 하는 대로 엄벙덤벙 따라가면서…… 〈글쎄 민족을 사랑하겠다면서 왜 민족의 체면을 팔아먹느냔 말이야? 공불 해가지구 애국자가 되겠대나? 그러면 이 세상에 무식한 사람은 애국자 노릇두 못하나? 그리구 또 무식하면 유식한 애국자가 되두룩은 민족의 체면을 먹어두 관계칠 않은가?〉무슨 말이야 도무지…… 참말이지 구역 날 꼴이 하두 많으니까!……"
 
83
하고 영순이가 아주 얄미운 듯이 말을 하였다. 정수는 형식이가 처음에는 봉우를 성화를 먹이느라고 농말을 하던 것이 그처럼 흥분이 되어가지고 자기가 역시 모순 되는 말을 섞어 함부로 남을 욕하는 것을 보고
 
84
"아니야. 자네가 그건 아무리 농말이라두 너무 하는 거야. 남의 집 처녈 그처럼 욕해서야 될 수가 있나?……"
 
85
하고 다시 봉우를 흘끔 바라보며
 
86
"그리구 또 봉우가 너무 노엽게 생각하라구……"
 
87
하고 피식 웃었다.
 
88
"아니야 아니야. 암만 그래두 우리 영순인데…… 인제 보게, 돌아온 주일부턴 예배당에 다녀야겠네…… "
 
89
하고 허물없이 웃었다.
 
90
아! 봉우도 깊은 꿈에서 아직 방황한다. 영순이도 그 꿈속으로 끌려 들어가려 한다. 현실에서 멀리 떠나는 그 꿈 ㅡ 그 맛에 앞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이 끌려 간다.
【원문】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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