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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기(過渡期) ◈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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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채만식
1
過 渡 期 [과도기]
 
2
2
 
 
3
봉우는 갑자기 방 윗목에서 요란히 나는 소리에 겨우 들었던 잠이 깜짝 놀라 깨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4
방 웃목에서는 퉁탕거리는 소리, 버스럭거리는 소리, 거친 숨소리에 야단법석이 일어났으나 봉우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5
봉우는 속맘으로 '필경 이 방에 도적놈이 들어왔구나’ 생각을 하고 두려운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방바닥을 쓱쓱 더듬어 성냥을 찾았다.
 
6
요란한 소리는 끊이지 아니하고 봉우의 가슴은 울렁거렸다. 그는 성냥을 겨우 찾아 한꺼번에 여남은 낱이나 잡고 확 그어대고 '웬놈이냐’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며 그 요란한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7
봉우는 한번 더 두려움에 놀랐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르 흐르고 가슴은 말 할 수 없이 두근거렸다.
 
8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성냥불이 켜지자 방 웃목에는 봉우가 상상한 도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자기 안해가 귀신같이 무섭고 흉악한 모양을 하고 우뚝 섰었다.
 
9
그 모양이야말로 참 몸서리가 나도록 끔찍하였다. 얼굴은 양촛빛같이 해쓱하고 혓바닥을 세 치나 빼어 깨문 입에서는 붉은 피와 게거품이 질질 흘러 빡빡 찢어 발긴 저고리와 치마에 붉은 핏물을 들이고 그 검고 기다란 탐진 머리채는 얼굴로 어깨 위로 앞가슴으로 풀어 흩뜨린 채 흴쭉한 눈으로 봉우를 바라보는 그 형상 이성냥 불에 훤히 나타났다가 불이 사라짐을 따라 그만 암흑 속으로 슬며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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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에 봉우의 머릿속에는 '오…… 저년이 나를 죽이려고 저러는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일어나 성냥불이 사라지자 '악’ 소리를 치고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11
이 야단 소리에 단잠이 곤히 든 집안 사람들은 모두 잠을 깨어 불을 켜가지고 모여들었다.
 
12
맨먼저 온 사람은 봉우 모친이었다. 봉우 모친은 촛불을 켜가지고 지벅지벅 오면서 생각 밖에 침착한 말로 봉우를 보고 '조용해라 조용해…… 그리 요란히 굴지 말구’란 말을 이르고 봉우가 자던 방으로 들어갔다.
 
13
봉우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닫지도 못하고 다만 뜰팡에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우두커니 서서 남이 하는 거동만 바라보았다.
 
14
그러자 방안에서는 다시 쿵 소리가 나며 봉우의 안해는 방바닥에 가 넘어져 기절을 하였다.
 
15
집안 사람들은 모두 달려들어 봉우 안해를 아랫목으로 옮겨 뉘고 일변 수족을 주무르느니 일변 찬물을 먹이느니 하여 한참이나 급히 나대다가 겨우 정신이 깨어났다. 집안 사람들은 겨우 마음을 놓고 모두 밖으로 나오고 봉우 안해는 감았던 눈을 힘없이 한번 떠보더니 몹시도 부끄런 듯 해쓱한 얼굴에 핏기운이 확 몰려 오르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까지 한두 줄기 조르륵 흘러내렸다.
 
16
봉우 모친은 맨나중에 밖으로 나와 봉우를 찾느라고 컴컴한 곳을 굽어다보며 불렀다.
 
17
"이애 개똥아, 개똥아…… 어데 갔니? 어서 오너라, 어서…… 인젠 관계치 않으니 어서 들와 자요."
 
18
봉우는 그제야 자기 모친 앞으로 다가나오며 볼메어진 소리로 볼품 사납게 말을하였다.
 
19
"아 글쎄 그년이 절 죽이려구 그랬는데 그래요!"
 
20
라고 봉우는 말을 하면서 자기 안해가 자기를 죽이려고 그 흉악한 거동을 하고있던 일을 문득 생각하니 다시 화가 무럭무럭 치달아 숨을 식식거리며 자기 안해가 누웠는 방안을 흘겨보았다.
 
21
봉우 모친은 봉우의 하는 말이 놀랍기도 하고 또 방에 누웠는 봉우의 안해가 듣고 오직 섭섭하여하랴 생각하고 야속스러운 듯이 말을 하였다.
 
22
"이앤 공연히 속두 모르구 그리더라…… 죽이긴 누가 누굴 죽여…… 제 본 병으로 그리지…… 그런 흉한 말은, 이애 입밖에 내지두 마라."
 
23
"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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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번에는 봉우가 놀라운 듯이
 
25
"본병 ? 응응응…… 그래요…… 옳지, 옳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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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의 입술에는 경멸하는 빛이 떠오르더니
 
27
"흥, 본병으로 그린다…… 미치광이 ? 지랄병이란 말씀이지요 ? 흥 !제 신세두 딱은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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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아주 냉랭하게 조소를 하였다.
 
29
그러나 그는 속맘으로 자기가 오래 두고 기다리던, 이혼하기에 썩 알맞은 조건을 얻은 것을 매우 기뻐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그런 빛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다시 메어지르는 말소리로
 
31
"그리면 지금 당장에 제 친정으로 쫓아보내요…… 인젠 옥황상제가 말려두 전 듣질 않을 터니까. 왜 그리구 진즉 저한텐 그런 말두 안해 주었어요…… 진작 알았드라면 벌써 전 쫓아보냈지 지금껏 우리 집에 두질 않어요. 어서 지금 당장에 쫓아 보내요…… 자식 잘 되라구 여워 주신 게 지랄장이 계집? 어서 얼핏 쫓아 보내요…… "
 
32
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봉우 모친은 더욱 그 며느리에게 미안쩍어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봉우를 나무라듯 달래듯 말을 하였다.
 
33
"이애 넌 왜 그다지두 자발적게 구니 ? 보내긴 이 밤에 어델 보내, 글쎄…… 넌 십 년이나 공부했다는 게 안해 쫓아내기 어미아비 성화 먹이기 그따위 공부 했니?"
 
34
하고 다시 말을 낮추어
 
35
"하긴 그애(봉우 안해)가 시집인지 무엔지 오던 그 이듬해부터 그 증세가 생겨가지군 그동안 줄곧 일 년에 몇 차례씩 야단이 났드란다…… 약인들 수월히 먹이구 의원인들 한두 사람만 뵈었니 ? 그래두 낫질 않구 점점 더해 가는 걸 집안에선 들 어쩌니? 그렇다구 너한테 그런 말을 했다가 그렇잖아두 너희끼리 금슬이 좋지 못한데다가 그 일을 어쩌라구…… 그렇지만 인젠 하는 수 없다…… 너두 알구 그랬으니까 내일 날이 밝거든 너희 아부지하구 의논해서 제 친정으로 보내든지 할 게니까 어서 들어가 잠이나 자거라…… 자, 어서 들어가요…… 자리옷만 입고치운 데 가서서 저래서 감기 들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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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봉우를 달래었다.
 
37
봉우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사랑방으로 나가버렸다. 봉우는 사랑방으로 나가 잠을 자려고 하였으나 도무지 잠이 오지를 아니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물밀 듯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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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뜻밖에 놀라던 일…… 진저리가 나게 무서운 자기 안해의 그 형상…… 그러나 인젠 그만하면 이혼을 할 수가 있다는 생각…… 이혼을 한 뒤에 자기가 자나깨나 속맘으로 상상하던 그 아리따운 안해에게 다시 장가를 들 일…… 학교를 마치고 나서 돈을 어쨌든지 많이 좀 모을 일…… 삼층 양옥…… 피아노, 별장, 서서(瑞西) 나 이태리로의 여행, 사회사업, 동포 구제, 사회에서 자기의 높은 명예……
 
39
이처럼 봉우는 마지막에 가서는 재미가 꿀 같은 앞길의 '공상’을 하고 있었다.
 
40
봉우의 모친은 봉우가 나가는 것을 보고 병인을 혼자 둘 수가 없어 다시 봉우의 안해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가 이제껏 봉우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눈을 감고 눈물만 흘리는 그 며느리 옆에 가 조용히 앉아 머리도 짚어 주고 자애가 깊은 눈으로 가끔 그 애처로운 형상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41
밤은 훨씬 더 깊어서 거의 첫닭이 울 때나 되어가고 불던 바람도 그만, 근처 사방이 모두 죽은 듯이 고요하여졌다. 방안에는 졸음이 오는 듯한 등잔불이 끄느 름하게 비쳐 있고 두 사람의 숨소리는 번갈아 색색거렸다.
 
42
봉우의 아내는 죽은 듯이 눈을 감고 누웠으니, 그의 설움은 무궁히 깊어 흐르는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43
그는 곰곰 생각을 하였다.
 
44
'아! 모진 병…… 하필 남편 앞에서…… 다른 사람의 부부와는 달리 허물이 더 많은 남편 앞에서 내가 그 부끄런 꼴을 보이다니! 그뿐인가…… 내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고? 아이고! 내가 이것이 무슨 죄다짐인가? 나를 쫓아보낸다고? 나를…… 에라 인젠 꼭 죽어버리는 수밖에…… 내가 이 위에 더 살면 무슨 그다지 끔 직한 재미가 있을라고? 가면 갈수로 고생뿐이지…… 인젠 필경 내가 지랄장이라고, 자길 죽이려고 그랬다고 모함을 잡아가지고 쫓아보내기가지 하려고 드니! 세상에 이런 원통한 일이 어데 있을까…… 진즉 맘먹었을 적에 죽어 버렸더라면 이런 일을 당하지는 아니하였을걸…… 얼굴이나 한번 더 보고 죽으렸던 것이 필경은 이 지경을 당했구나. 에라, 어서 죽어버리겠다. 그렇지만 기왕 오늘 저녁이면 죽을 몸이니 그때 첨 장가들던 때처럼 오순도순 이야기나 서로 앉아 한번 더해 주었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구면…… 에라, 그것도 쓸데없는 생각이지. 오순도순 정답게 이야기할 사람이면 나한테 그리 몹시 굴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죽는 게 제일이다. 나 같은 년은 죽어 없어지면 그때엔 어질고 착한 안해 얻어서 재미있게 잘 살겠지. 아이고 ! 이다지도 모질고 야속한 세상에 난 왜 났는가? 다른 사람들은 세상에 나서 잘들도 살더라만 나는 전생에 무슨 업원(業冤)이 그 리도 깊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설움을 받는가 ? 어려선 초독한 계모 손에서 눈물을 받아먹고 자라다시피 자라다가, 겨우 시집살일 한다는 게 모진 병을 얻어 들인데다가 가장(男便[남편])조차 이리 구박을 주니, 이 위에 더 살면 인젠 죽기보다도 더한 욕을 볼 테니…… 나도 죽은 뒤에 저생에 가선 다신 계집이 되지 말고 버젓한 사내가 되어 이생에서 이 서러운 고생하던 일을 일러가며 잘 살아야지…… 아! 그렇지만 지금 죽긴 참으로 원통하고 섧다 ! 남은 한평생을 잘 살다가 제명에 죽기도 싫어하는데 난 좋은 때 눈물 아니면 한숨으로 지내다가 필경은 이 청춘에 자결을 하다니 ! 인제 한번 죽어지면 난 이 세상에선 그만이지…… 섬 거적에 둘둘 말아 아무데나 꿍꿍 파묻어버리곤 제사날이 돌아와야 찬물 한 그릇 떠놓아 줄 사람도 없으니, 세상에 이다지 야박한 신세도 또 있을까? 아! 서럽고 원통하다…… 아무리 밉고 싫어도 쫓아내지나 말았으면 죽은 목숨으로 알고 한평생 이 집에서 종살이라도 하련만…… 장간 열 번이라도 다시 가고 첩이라도 얻어 살잖고. 첩을 얻건 장갈 다시 가건 내 터수에 무슨 강짜까지 할라고? 에라 그 꼴을 보고 내가 잘 살 건 또 무어야…… 어! 세상도 참 모질고 야속하다. 죽어야지…… 죽어도 이 집에서 죽어야 죽은 귀신이라도 옳은 귀신 노릇을 하지……’ 생각 하니 소름이 쪽쪽 끼쳤다.
 
45
생각을 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힘없는 팔을 짚고 무거운 몸을 일으키기는 하였으나 눈물이 어리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인제는 자기는 죽느니라 생각을 하고 가뜩이나 설움이 가슴에 복받친데다가 평소에 자기를 지극히 사랑하여 주던 그 시어머니의 인자스러운 얼굴을 한번 바라보니 뭉쳤던 설움이 억제할 수도 없이 터져 올라와 그만 그 시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46
"어머니 이이!…… 으으…… 으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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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흑흑 느껴가며 애처로이 울었다.
 
48
시어머니는 그런 줄 저런 줄, 며느리의 깊은 설움은 알지 못하여도 다만 불쌍한 그 정경을 보고 안스러운 마음이 극도에 다다라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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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오냐. 우지 말아…… 그것두 다 네 팔자가 사나운 탓이다. 이제 약도 더 먹고 맘을 편히 가지면 곧 낫느니라…… "
 
50
하고 곰살갑게 달랬다.
 
51
봉우의 안해는 한참이나 울다가 겨우 일어나 팅팅 부은 눈을 치맛자락으로 씻으며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봉우의 모친은 그 거동을 보고 깜짝 놀라 마주 일어서며
 
52
"어델 가니 ? 넘어질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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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팔을 벌려 비틀비틀하는 그 며느리를 붙들어주려 하였다.
 
54
봉우의 안해는 좀 머뭇머뭇 하다가
 
55
"뒷간에 가요…… "
 
56
하고 시어머니가 따라올까 염려를 하여 없는 힘을 내어서 몸을 바로잡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봉우 모친은 어찌할 줄을 몰라 다만 근심스러운 눈으로 그 뒤를 바라볼 뿐이었다.
 
57
봉우 안해는 힘빠진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 부엌으로 들어가서 자기가 예전부터 잘 간수하여 두었던 양잿물 그릇을 찾아가지고 잠깐 서서 망설이다가 도로 나와서 어린아이들만 누워 자는 큰방으로 들어갔다.
 
58
큰방으로 들어가서 웃목에 있는 사그라져 가는 화롯불에다 꽁꽁 굳은 양잿물을 녹이면서 화로 옆에 앉아, 자기가 이제 이것을 먹고 죽어버리리란 생각을 하니 다시 설움이 복받쳐 돋는 눈물이 마른 재에 무심히 구멍을 뚫었다.
 
59
한참만에 겨우 마시기 알맞도록 녹은 것을 보고 일어서서 방안을 둘러보다가 아랫목에서 색색 자는 어린 조카 병길(柄吉)의 귀여운 얼굴에 그는 눈이 띄었다.
 
60
그는 아랫목으로 삽작삽작 걸어가서 어린아이가 잠을 깰까 조심스러이 그 옆에가 엎드려 볼을 마주 대고 눈물 섞인 입안엣 소리로
 
61
"병길아 병길아! 너하구두 이젠 마지막이다! 부디 잘 자라라…… 나도 너 같은 아들이나 하나 있었으면…… "
 
62
하고 다시 말을 하려다가 어린아이가 기지개를 발끈 쓰고 몸을 돌려 눕는 바람에 얼핏 일어나 화롯가로 가서 앵잿물 그릇을 집어들었다.
 
63
집어들고 마시려고 입에 가까이 들고 서서 그는 마지막으로
 
64
"야속한 세상이 모질기두 하더니 인젠 모다 그만이루구나…… 왜 난 살질 못하고 이 청춘에 이런 죽음을 …… "
 
65
하고 흑흑 느끼면서
 
66
"어머니! 형님! 전 인제 가요…… "
 
67
하고는 말을 마치자마자 손에 들었던 앵잿물 그릇을 입에 대고 벌컥벌컥 죽을 기를 쓰며 한 방울도 남기지 아니하고 모조리 들이마셨다.
 
68
봉우 모친은 혼자 앉아 기다리다가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므로 초조히 불을 켜가지고 밖으로 나와 혼잣말로
 
69
"이 앤 무얼 이리 하나 ?"
 
70
라고 구시렁거리며 뒷간문 앞으로 가서
 
71
"색이 여기 있니 ?"
 
72
하고 뒷간문을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뒷간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고, 컴컴한 속으로 자기의 말소리가 자취없이 사라져버릴 뿐이었다.
 
73
그래 봉우 모친은 겁이 더럭 나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큰방에서 나는 이상스러운 신음 소리를 듣고 정신없이 큰방으로 쫓아들어갔다.
 
74
들어가다가 봉우 안해가 방 웃목에 넘어져 코와 입으로 붉은 피를 쏟으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가지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보채는 것을 보고 소리를 ' 으악’ 지르며 뒤로 한 발을 물러섰다.
 
75
집안은 또 한번 와락 뒤집혔다. 집안 사람들은 달려들어 일변으로 의사를 부르러 보내고 일변으로 개숫물을 먹이고 하였으나 원체 많은 양잿물을 먹었으므로 인제는 목구멍이 띵띵 부어 막혀버려서 한 숟갈씩 떠 먹이는 개숫물도 잘 넘어가지를 아니하고 또 뱃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독기와 피는 목구멍에까지 올라오고는 밖으로 나오지를 못하고 다시 '꾸르륵꾸르륵’하며 내려갈 뿐이었다.
 
76
봉우 모친은 피투성이가 되어가지고 이제 아무 정신없이 거의 죽어가는 며느리를 무릎에 뉘고 눈물어린 눈으로 그 얼굴을 굽어다 보며
 
77
"아이구 이애야! 이 몹쓸 자식아…… 좀 고생스러워두 그대로 참구 살아가질 않구…… 늙은 어미아빌 두고 네가 청춘에 이것이 무슨 짓이란 말이냐…… "
 
78
하고 비죽비죽 울었으나 며느리의 귀에는 그런 말을 들어볼 정신이 없는 듯 하였다. 다만 그는 겨우 눈을 반쯤 뜨고 무슨 말을 좀 하고 싶어 하였으나 혀가 바싹 오그라들어 마음대로 돌지를 아니하므로 간신히 머리를 돌려 웃목 한구석에 가 얼굴을 찌푸리고 섰는 그의 남편 봉우를 아무 표정 없이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고 몸을 용트림을 하며 몹시 고민하였다.
 
79
의사는 얼마 아니하여 곧 왔으나 다만 입맛만 다시고 아무 말도 못하였다.
 
80
이어 경관이 온다. 이십 리나 되는 군산서 검사(檢事)가 출장을 한다 하여 애처 로운 기운을 머금은 집안의 공기는 자못 조이는 듯하였으나 아! 죽음을 뉘라서 말리리요!.
 
81
불쌍하고 가엾은 그는 ㅡ 봉우의 안해는 그날 새벽에 먼동이 채 트기 전에 마지막으로 수천 길이나 깊은 저 속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비수(悲愁)와 원한을 머 금은 눈동자로 전별하는 듯이 봉우를 한번 바라보고는 그만 이 세상 ㅡ 스물네 해이 세상에서 구천에라도 사무치고 오뉴월 삼복염천에라도 서리칠 무궁한 원한과 설움을 가슴에 품고 그만 자취도 없이 소리도 없이 다시 오지 못하는 소멸의 나라로 길을 떠나고 말았다.
【원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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