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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창어(病窓語) ◈
◇ 입추(立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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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10.5~
이광수
1
病窓語[병창어]
 
2
立秋[입추]
 
 
3
『퍽으나 덥습니다.』
 
4
『네 덥습니다.』
 
5
『오늘이 立秋[입추]라지요, 어째 바람이 살랑살랑 한 것 같아요 하하.』
 
6
『오늘부터는 가을이니까요 하하.』
 
7
하고 말하는 두 사람의 눈은 길 위로 날아가는 빨강 잠자리를 따랐다.
 
8
가을은 슬프다고들 한다. 秋風[추풍]이라든지 낙엽이라든지 하는 것이 우리에게 悲哀[비애]의 感情[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벌레 소리, 그 中[중]에 밤새도록 머리맡에 씰씰거리고 우는 蟋蟀[실솔]의 소리도 어째 歲月[세월]이 덧없음과 生命[생명]과 榮華[영화]가 믿을 수 없음을 알리는 것 같아 여름에 자라고 퍼지어 싱싱하게 푸르던 草木[초목]이 하룻밤 찬서리에 서리를 맞아 축축 늘어지는 꼴은 아무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난데없는 찬바람이 뒤를 이어서 누렇게 말라버린 나뭇잎을 그냥 떨어버리는 것만 아니라 이리 날리고 저리 굴러 止接[지접]할 곳이 없이 휘몰아가는 소리를 枕上[침상]에서 들을 때에 비록 愁人[수인]이 아니더라도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9
勿論[물론] 한 번 達觀[달관]하는 눈을 뜰 때에 봄이라도 기뻐할 것도 없고 가을이라고 서러워할 것도 없을 것이다. 스러지는 풀, 떨어지는 잎사귀가 다 저 할 職分[직분]을 하고 涅槃[열반]의 安息[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라 하면 賀[하]할지언정 弔[조]할 바는 아닐 것이다. 五月飛霜[오월비상]으로 萬物[만물]이 한창 生長[생장]하여 아직 結實[결실]이 되기 前[전]에 橫死[횡사]한다면 아깝다 할까, 生命[생명]의 快樂[쾌락]도 실컷 누리고 目的[목적]도 充分[충분]히 達[달]한 뒤에 구지레한 存在[존재]를 오래 끌지 아니하고 肅殺[숙살]한 一夜[일야]의 風霜[풍상]에 뚝 生[생]을 끊어버리는 것이 도리어 바랄 만한 快[쾌]한 일일 것이다.
 
10
한 걸음 더 내켜서 萬法皆空[만법개공]의 慧眼[혜안]으로 본다 하면 봄은 무엇이며 가을은 무엇이랴. 生[생]도 空[공]이요, 死[사]도 空[공]이어니 喜悅[희열]은 무엇이며 哀愁[애수]는 무엇이랴. 오직 如是如是[여시여시]할 뿐이다. 그렇지마는 人情[인정]이 어디 거기까지를 가는가. 滅却心[멸각심] 頭火[두화]하면 火宅[화택]이 即[즉] 淸凉[청량]하련마는 사람이 그것을 아니하고 부채를 들어라, 얼음을 들어라, 自動車[자동차]를 달려라, 避暑地[피서지]를 찾아라 하여 더욱더욱 기름 땀을 짜내는 것과 같이 愛慾[애욕]의 煩惱[번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人生[인생]에게는 가을은 亦是[역시] 슬픈 것이다.
 
11
後園[후원]의 몇 그루 나무와 몇 포기 풀, 내게 꽃을 보여 주고 잎을 보여 주고 極[극]히 貧弱[빈약]하게나마 그늘을 보여주어 한 여름 앓는 나의 벗이 되어 주는 그들이 이로부터 얼마 아니하여 찬 서리에 落葉[낙엽]이 져서 낱낱이 낯이 익고 情[정]이 든 그 얼굴은 한 여름의 綠分[녹분]이라는 그리운 記憶[기억]만 남기고 永遠[영원]히 다시 못 돌아올 過去[과거]의 黑暗[흑암] 속으로 가버리려니 하면 慈悲[자비]에 가까운 愛別離苦[애별리고]에 가까운 感懷[감회]가 湧出[용출]하여 얼마동안 두고 보지 못한 그 잎사귀들과 바람에 비끼는 줄기들이 더욱 자랑스럽고 애처로와진다. 다만 病者[병자]의 內弱[내약]한 센티멘탈리즘일까.
 
12
한 가을이 지날 때마다 나도 늙는다. 비록 이번에 앓는 病[병]이 나를 놓치더라도 나는 가을이 지나는 족족 늙어 마침내는 서리맞은 풀 모양으로 죽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草木[초목]을 위하여 솟는 슬픔은 結局[결국] 自身[자신]을 위한 슬픔이든가.
 
 
13
(一九二八年十月七日[일구이팔년시월칠일] 《東亞日報[동아일보]》 所載[소재])
【원문】입추(立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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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李光洙)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2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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