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병창어(病窓語) ◈
◇ 소아(小兒) ◇
카탈로그   목차 (총 : 17권)     이전 11권 다음
1928.10.5~
이광수
1
病窓語[병창어]
 
2
小兒[소아]
 
 
3
1
 
 
4
내집에 어린애 하나가 왔다. 그는 나의 希望[희망]도 되고 근심도 되고 기쁨도 되고 슬픔도 되고 거울도 되고 스승도 된다. 어떠한 때에 希望[희망]이 되나, 나 自身[자신]의 無力無價値[무력무가치]함을 意識[의식]할 때마다, 「저것이나 자라서 나보다 勝[승]하게 되었으면」하는 생각이 난다. 내가 不足[부족]한 것은 — 健康[건강]이나 聰明[총명]이나 叡智[예지]나 德行[덕행]이나 — 다 이 어린아이에게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決[결]코 나와 같은 無能[무능]한 凡夫[범부]는 아니 될 것 같다. 그는 오직 나와 내 아내에게 있던 모든 좋은 것만 받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數[수]없는 祖先[조선]이 가졌던 모든 좋은 것은 다 가지고 나온 것같이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그가 이 世上[세상]을 살아갈 때에 個人[개인]으로도 福[복] 있는 生活[생활]을 하려니와 人類[인류]의 一員[일원]으로 다른 어느 一員[일원]보다도 人類[인류]를 잘 사랑하고 도와 주는 사람이 될 것같이 생각한다. 이 아이 하나가 이 世上[세상]에 出現[출현]하기 때문에 人類[인류]의 運命[운명]의 方向[방향]이 福[복]된 편으로 다만 몇 度[도]라도 轉換[전환]될 것같이만 생각된다 — 그렇게 믿으려 하고는 혼자 滿足[만족]한 微笑[미소]를 띄운다.
 
5
그렇지마는 이렇게 생각할 때에 그는 나의 근심이 된다. 나 같은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그가 무엇이 그리 대단하랴. 나 같은 不健康[불건강]한 肉體[육체]와 힘과 美[미]가 不足[부족]한 精神[정신]을 가진 者[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가 나같이 前生今生[전생금생]에 아무 積功[적공] 積德[적덕] 없는 薄福[박복]한 者[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가 무엇이 그리 끔끔하랴, 하고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希望[희망]의 蜃氣樓[신기루]가 말 못되게 스러져버린다. 그런 때에는 나는 어리석게도 어린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눈에 精氣[정기]와 光彩[광채]가 있나, 天項[천항]이 光明[광명]한가, 코가 豊厚[풍후]한가, 귀가 壽格[수격]을 띠었는가, 목소리가 雄壯[웅장]한가, 表情[표정]과 行動[행동]이 씩씩한가, 이 모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날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바라보고는 생각한다.
 
6
아무러하든지 어린것이 무에라고 옹알거리며 놀 때에, 무엇이 좋은지 소리를 내어 깔깔 웃을 때에, 두꺼비같이 덥적덥적 기어다닐 때에, 전에 없던 새 재주와 새 재롱이 생길 때에, 해죽거리고 기어와서 매어달릴 때에, 내게는 모든 希望[희망]도 근심도 다 잊어버리는 기쁨이 있다. 발톱끝까지도 머리끝까지도 다 顫動[전동]하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戀愛[연애]의 기쁨과 같이 情慾[정욕]에 타는 기쁨이 아니요, 靜謐[정밀]하고도 줄기차고도 聖潔[성결]하고도 慈悲[자비]로운 기쁨이다—. 이것이 아버지의 기쁨이란 것인가. 더우기 나같이 오랜 병석에 누워 있는 사람으로 모든 것이 다 支離[지리]하고 지긋지긋하여 存在自身[존재자신]이 厭症[염증]날 때에 그의 意味[의미]없는 외마디 소리(그것이 그네 어린이 種族[종족]의 意味深長[의미심장]한 言語[언어]인듯 하다)가 昏朦[혼몽]하게 寂滅[적멸]의 深淵[심연]으로 漸漸[점점] 가라앉으려는 나의 魂[혼]을 깨워서 불러내는 것이다. 그러할 때에 내 魂[혼]은 어린애에게 낮잠을 깨움이 된 아버지 모양으로 부시시 일어나서 다시 괴로운 人生[인생]의 길을 걷는 것이다. 내가 가는 人生[인생]의 길이 괴롭다 하더라도 그의 웃는 얼굴만 있으면 꽃밭 속으로 거니는 것 같을 것 같다. 그렇지마는 내게 슬픔이 있다.
 
 
7
2
 
 
8
지금에 있어서 내게 가장 큰 슬픔은 어린아이가 앓는 것이다. 아비 되는 내가 健康[건강]치 못한 때문인지 그는 난지 一年[일년]이 못 되어 紅疫[홍역], 流感[유감]을 連[연]하여 앓고 나고 또 母乳[모유]가 不足[부족]하여 牛乳[우유]와 암죽을 먹고 살기 때문에 두어 번 관격도 되어 失神狀態[실신상태]에 빠지었었다. 그러할 때마다 그의 母親[모친]이 寢食[침식]을 잃고 애를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病席[병석]에 누워서 앓는 저를 한 번 안아 주지도 못하는 나의 슬픔도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쌕쌕하고 苦悶[고민]하는 어린 모양을 볼 때에 나는, 「저 苦痛[고통]을 나로 하여금 대신하게 하여지이다!」하고 빌며 그가 一晝夜[일주야]나 남아 오줌을 누지 못하여 눈도 잘 뜨지 못할 境遇[경우]에는 나는, 「내 목숨으로 그의 죽음을 대신하여지이다.」하고 빌었다. 그의 머리가 더울 듯할 때 똥 빛이 좋지못할 때 짜증을 낼 때 나의 가슴은 내려앉는 듯하다.
 
9
그가 苦痛[고통]하는 것은 모두 내 罪[죄] 때문인 것만 같이 생각되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하는 가장 큰 理由[이유]다. 「나같이 薄福[박복]한 것이 왜 자식을 낳아!」하고 나는 自責[자책]한다. 첫째 내가 좋은 肉體[육체] — 그것은 健全[건전]하고도 아름다운 肉體[육체]다. —를 가질 福[복]이 있는 사람이라 하면 그도 그만한 肉體[육체]를 繼承[계승]할 蓋然性[개연성]이 많았을 것이요, 둘째 내가 精神力[정신력]의 富[부]와 物質[물질]의 富[부]를 享有[향유]할 福[복]이 있는 사람이라 하면 그도 一生[일생]에 貧困[빈곤]의 고생을 免[면]하고 安樂[안락]히 살아 갈 蓋然性[개연성]이 많았을 것이다. 이 福[복]도 저 福[복]도 없는 것이 한갖 性慾[성욕]의 衝動[충동]과 分[분]에 넘는 親本能[친본능]을 抑制[억제]치 못하여 無辜[무고]한 生命[생명] 하나를 病[병]과 貧窮[빈궁]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容怨[용원]치 못할 큰 罪[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로 나는 그가 病[병]으로 苦痛[고통]할 때마다 이러한 慙愧[참괴]와 悔恨[회한]의 情[정]이 가슴을 박박 긁는 것을 깨닫는다. 健康[건강]하고 富[부]한 者[자]에게도 人生[인생]은 苦海[고해]라 하고 火宅[화택]이라 하거든 病弱[병약]하고 貧窮[빈궁]한 者[자]에게야 그 얼마나 地獄[지옥]이랴. 나 自身[자신]이 지금 그것을 經驗[경험]하지 아니하는가. 그러면서 왜 그를 네 집에 끌어들였는가. 이제는 後悔莫及[후회막급]이요 오직 그에게 健康[건강]과 富[부]를 주기에 全力[전력]을 다함으로 그 罪[죄]의 萬一[만일]을 報[보]할 수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10
或[혹] 壽夭[수요]와 貧富[빈부]가 그 어린이 當者[당자]의 運命[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或[혹]은 偶然[우연]히 或[혹]은 前世多生[전세다생]의 業[업]으로 壽富[수부]나 夭貧[요빈]을 타고 나는 것이요, 또 다른 좋은 아비와 집을 다 버리고 病弱[병약]한 나를 아비로 貧弱[빈약]한 내 집을 제 집으로 이 世上[세상]에 온 것도 前世多生[전세다생]의 因緣[인연]이라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方法[방법]도 있다. 그러나 壽夭貧富[수요빈부]의 무서운 責任[책임]을 피덩어리 어린아기에게 돌릴 수 있으랴 — 그처럼 뻔뻔스럽고 無情[무정]할 수 있으랴.
 
11
내가 애쓴 대야 그에게 무슨 큰 補益[보익]이 되랴마는 구걸을 하더라도 배나 아니 골리과저, 아파할 때에는 藥[약]이나 먹이과저, 하고 싶은 장난이나 마음껏 시키과저, 願[원]하는 工夫[공부]나 하도록 하여 주고 싶어서 제가 아파서 잠 못 잘 때에 나도 저와 같이 잠 못 자과저 — 이렇게 밖에 내가 무엇을 더하랴. 만일 내 功德[공덕]을 그에게 廻向[회향]할 수 있다 하면 이후란 힘 없으나마 衆生[중생]에게 功德[공덕]될 일이나 하과저.
 
 
12
3
 
 
13
아이는 본래가 사랑스럽게 생겼다. 그 부드러운 살, 연연한 姿態[자태], 그 어리석음, 그 울음, 그 웃음, 그 보채는 모양이며, 좋아하는 꼴, 어느 것이나 사람을 魅惑[매혹]하는 美[미] 아닌 것이 없다.
 
14
이 魅惑的[매혹적]인 美[미]가 어른을 誘惑[유혹]하는 미끼인 것은 勿論[물론]이다. 그는 이것을 專制君主[전제군주]같이 어른을 號令[호령]하고 부려먹는다. 말도 잘 할 줄 모르는 것이 單綴音[단철음]인 소리로 어른들에게 絶對的[절대적]인 命令[명령]을 내린다. 그 命令[명령]에 對[대]하여서는 抗拒[항거]하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猶豫[유예]나 辯明[변명]이 도무지 쓸데 없고 오직 唯唯然[유유연]하게 服從[복종]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귀여운 專制君主[전제군주]를 미워하거나 反抗[반항]하는 어른이 일찍 있어 보았을까.
 
15
어린 아기는 決[결]코 無理[무리]한 號令者[호령자]는 아니다. 그는 어른들 모양으로 쓸데 없는 理由[이유], 싱거운 理由[이유] — 가령 禮節[예절]이라든지, 體面[체면]이라든지, 所有慾[소유욕], 支配慾[지배욕] 같은 — 로 어른의 服從[복종]을 要求[요구]하지 아니하고 그와 反對[반대]로 또 自己[자기]가 願[원]하는 것이 있을 때에는 남의 눈치를 보거나 面[면]에 거리끼어 어른을 못 부리지도 아니한다. 要[요]컨데 그는 가장 正直[정직]한 利己主義者[이기주의자]다. 그가 어른과 다른 點[점]은 正直[정직]뿐이다. 어른은 不正直[부정직]한, 外飾[외식]하는 利己主義者[이기주의자]다.
 
16
배가 고파 젖을 내라고 울음이라는 號令[호령]을 한다. 조금만 擧行[거행]이 遲緩[지완]하여도 號令[호령]은 더욱 峻嚴[준엄]하여진다. 그러나 젖만 물리면 울음도 뚝 그치고 엄마를 작지작지 해 준다. 그는 怨嬚[원염]을 記憶[기억]하는 者[자]가 아니다. 碧空[벽공]에 떴던 片雲[편운] 모양으로 제 要求[요구]만 滿足[만족]하면 그의 憤怒[분노]와 怨嬚[원염]은 자취 없이 스러지고 만다. 그러다가 어른이 제 要求[요구] 以上[이상]으로 무엇을 더하여 주려 할 때 그는 感謝[감사]하는 대신에 誚責[초책]하는 號令[호령]을 한다. 젖도 제 量[양]에 찰 만치 먹고는 아끼는 빛도 없이 젖꼭지를 뱉아버리고 만다. 더 먹으라고 빈다고 들으며, 威脅[위협]한다고 들을까보냐. 참으로 澹泊[담박]하거든. 만일 그가 오줌 똥이 마려우면 곧 누어버린다. 옷이 젖거나 이불이 젖거나 손님의 무릎이거나 무엇이거나 돌아볼 것도 없고 未安[미안]할 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이 가장 泰然自若[태연자약]하게 할 일은 하여버린다. 그리고는 똥도 네가 쳐라, 오줌도 네가 쳐라, 나는 그런 것을 아랑곳할 양반이 아니시다 하는 모양으로 저 가고 싶은 데로 달아나버린다.
 
17
그에게는 過去[과거]에 對[대]한 悔恨[회한]이 없다. 記憶[기억]조차 애써 싸두고 잠거 두려고 아니하고 바람받이 時間[시간]의 江[강]가에 아무렇게나 내어던져버린다. 그에게는 未來[미래]에 對[대]한 思慮[사려]도 없다. 當場[당장] 배만 부르면 그까진 젖꼭지 쥐가 물어가더라도 알은 체할 그가 아니다. 그에게는 오직 現在[현재]가 있을 뿐이다. 現在[현재]의 刹那刹那[찰나찰나]만이 그에게는 기쁨도 되고 슬픔도 되어 意味[의미]를 가질 뿐이지 過去[과거]나 未來[미래]는 그에게는 意味[의미]만 없을 뿐이 아니라 存在[존재]조차 意識[의식]에 오로지 아니한다. 하물며 남의 存在[존재] 같은 것을 關心[관심]할 그가 아니다. 되지 못하게 남을 위한다는 일도 아니하는 대신에 남을 害[해]하는 일도 생각을 아니한다. 그가 보기에 人類[인류]는 다른 自然現象[자연현상]과 같이 或[혹]은 興味[흥미] 있는, 或[혹]은 興味[흥미] 없는 구경거리에 不過[불과]한다. 그처럼 그는 超然[초연]한 것이다. 그의 超然[초연]은 몸과 衣服[의복]에 가장 잘 드러난다. 몸에다가 무엇을 바르든지, 어떠한 옷을 입히든지 그는 밉살머리스러우리만큼 無關心[무관심]하다. 그는 남을 보아 거기서 여러 가지 재미를 受[수]하나 저를 보지 않는다. 사람이란 원체 제 얼굴은 보지 않게 생긴 것이니 사람이 저를 보기를 그치면 自慢[자만]과 自嘆[자탄]과, 요새 시체 말로 自己陶醉[자기도취]의 大部分[대부분]은 消滅[소멸]할 것이다. 어린아이는 저를 아니 보려는 點[점]에서 어른보다 智慧[지혜]롭다. 대저 사람이 自己[자기]를 보려고 하는 것은 자기의 不足[부족]이나 過失[과실]을 反省[반성]하려 함이 아니요 곰보 얼굴에서도 변변한 데만 찾아보고 변변한 체하렴이기 때문이다.
 
 
18
(一九二八年十月十八~二十日[일구이팔년시월십팔~이십일] 《東亞日報[동아일보]》 所載[소재])
【원문】소아(小兒)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109
- 전체 순위 : 644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25 위 / 182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2) 첫 눈
• (1) 서당
• (1) 화전가
• (1) 새해1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병창어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2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목차 (총 : 17권)     이전 11권 다음 한글 
◈ 병창어(病窓語)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6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