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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창어(病窓語) ◈
◇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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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10.5~
이광수
1
病窓語[병창어]
 
2
거지
 
 
3
「나는 거지다」하는 생각이 불현듯 난다. 내 집에도 가끔 나보다도 더 어려운(듯한) 거지가 문간에 와서 혹은 장타령을 하고 혹은 回心曲[회심곡]을 하고 (동냥 중은 물론 거지다, 아니다 本義上[본의상] 모든 중은 다 거지다), 또 혹은 「마님이나 아씨나 아씨나 마님이나 돈이 되나 쌀이 되나 쌀이 되나 돈이 되나」하여 시끄러워서 동전 한 푼이라도 아니 내주고는 못 배기게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글을 써서 讀者[독자] 여러분에게 한 푼 두 푼 구걸하는 것이다. 같은 거지라도 그냥, 「돈 한 푼 적선합시오」하느니보다는 목청좋게 장타령이라도 하고 이 家門[가문]에 福[복]이 들어오라고 덕담이라도 늘어놓는 이가 돈 줄 재미가 더 많다. 나도 그냥 讀者[독자]에게 구걸하기보다는 장타령이 되거나 덕담이 되거나 내 재주껏 목청껏 늘어 놓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4
세상에는 벌어먹는 편으로 보아서 세 가지 사람이 있다. 한 가지는 남이 벌어 놓은 것을 빼앗아다가 먹는 사람이다. 이것이 지금 世上[세상]에서 가장 兩班[양반], 即[즉] 「놀고 먹는 이」가 가장 上等[상등] 사람이요, 둘째는 제 힘으로 제 땀으로 벌어먹는 사람, 即[즉] 「일하고 먹는 이」니 이것이 모든 農夫[농부], 勞動者等[노동자등], 요새 시체 말로 新興勞農階級[신흥노농계급]이요, 세째는 제가 땀을 흘려 벌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남이 벌어 놓은 것을 빼앗아 먹을 힘과 재주도 없어서 혹은 익살로, 혹은 재주넘이로 혹은 어여쁜 얼굴로, 혹은 고운 목청으로, 혹은 장타령으로, 혹은 이야기책으로, 혹은 阿諂[아첨]으로 다른 두 가지, 그 중에도 특별히 兩班[양반]님네의 殘飯落肴[잔반낙효]를 얻어먹는 거지들이다. 이 세 가지 사람 가운데 第一[제일] 福[복] 좋은 이는 무론 첫 階級[계급]이니 그들은 모든 집 가운데 가장 크고 좋은 집에 살고, 모든 飮食[음식] 가운데 가장 新鮮[신선]하고 慈養[자양] 있고도 美味[미미]하고도 보기조차 좋은 飮食[음식]을 먹고, 여편네 中[중]에도 가장 변변하고도 토실토실하고 상냥한 여편네를 두고, 좋은 옷에 좋은 수레에 果是[과시] 地下仙[지하선]답게 산다. 이 世上[세상]은 그 兩班[양반]들 위해서 생긴 것 같다. 중들의 말을 듣건대 이러한 兩班[양반]들은 모두 多劫多生[다겁다생]에 많은 福[복]을 심고 높은 德[덕]을 닦는 어른들이라 하니 우리네 薄德[박덕]한 下賤輩[하천배]야 그윽히 부러워나 할지언정 焉敢生心[언감생심] 우러러나 볼 수 있으리?
 
5
비지땀 흘려 농사해서 얼음 같은 白米[백미] 지어 細沙[세사] 같은 胡[호]좁쌀하고 바꾸어 먹는 農夫[농부]의 八字[팔자]나, 짓는 집은 남의 집 끄는 구루마도 남의 구루마 고리고 구린 남의 집 똥뒷간의 오줌 똥까지 쳐주어야 할 八字[팔자]도 上八字[상팔자]될 것은 없지마는 그래도 남 위해서 제 땀을 흘리는 것 보니 혹시나 來生福樂[내생복락]어늘 積功[적공] 積德[적덕]이 될는지도 모른다.
 
6
이 모양으로 혹은 놀고 먹고 혹은 일하고 먹어서 貧富[빈부], 貴賤[귀천], 上下[상하], 苦樂之別[고락지별]은 있다 하더라도 먹을 제 것을 가지기는 하였건마는 우리네와 같이 놀고 먹을 福[복]도 없고 일하고 먹을 功[공]도 없는 거지之類[지류]는 兩班[양반]네 脾胃[비위]를 잘 맞주면 한 밥 얻어먹고, 兩班[양반]네 눈밖에 나는 날에는 所謂[소위] 不運[불운], 落魄[낙백]으로 촐촐히 배를 곯다가 까딱 잘못하면 屈原[굴원]이 모양으로 汨羅水[멱라수]는 槃纒[반전]이 없어서 못 가더라도 가까운 漢江人道橋[한강인도교] 밑에서라도 千秋[천추]의 芳名[방명]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7
(一九二八年十月二十一日[일구이팔년시월이십일일] 《東亞日報[동아일보]》 所載[소재])
【원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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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창어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2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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