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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보가 (동초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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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초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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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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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방이 군자지국이요 예의지방이라 십실지촌에도 충신이 나고 칠세지아도 효제를 일삼으니 어찌 불량헌 사람이있으리오마는 요순시절에도 사흉이 났었고 공자님 당시에도 도척이가 있었으니 아마도 젊은 예기를 어쩔 수 없는 법이었다. 우리나라 경상도에는 함양이 있고 전라도에는 운봉이 있는디 운봉함양 두얼품에 중년의 박씨 형제가 있었으되 놀보는 형이요 흥보는 아우인디 같은 부모 소생이나 성품은 각각이라. 사람마다 오장이 육보로되 놀보는 오장이 칠보던 것이었다. 어찌하여 칠보인고 허니 심술보 하나가 외약갈비밑에 장기궁짝만허게 병부줌치 찬듯이 딱 붙어가지고 이놈이 사철을 가리지 않고 한도끝도 없이 나오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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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모리>
4
대장군방 벌목시키고 오귀방에다 이사귄키 삼살방 집지과허기 불난집에 부채질 아벤부인은 배통이 차고 오대독자불아까고 수절과부는 겁탈허기 다큰 큰애기 무암잡고 초란이 보면 딴낯짓고 의원보면 침도적질 거사보면 소구도적 지관보면 쇠감취기 똥누는놈 주?? 히고 꼽사동이는 뒤집어놓고 앉은뱅이는 택겨나기 엎더진놈 꼭지치기 닫는놈 앞장치고 내점든놈 정갱이훑고 삼거름길에다 허방파기 삼신든데 개잡기와 다된혼인 바람넣고 혼대사에 싸개치기 상여멘놈 몽둥이질과 기생보면은 코물어뜯고 제주병에다 가래침 뱉고 옹기전에 팔매치기 비단전에다 물총놓고 고추밭에서 말달리기 가문 논에 물기파고 장마논에다 물기막고 애호박에다 말뚝받고 다펜곡식 모뽑기 촌장보면 빗질허기 군방보면 관을 찢고 소리허는데 잔소리허기 풍류허는데 나발불기 된장그릇에 똥싸기와 간장그릇에 오줌싸기 우는애기는 집어뜯고 자는애기 눈거러벌씨고 남의제사에 닭울리기 면례하는데 뼈감추기 일년머슴 외상세경 농사지어서 추수허면 옷을 벗겨 쫓아내기 봉사보면 인도허여 개천물에다 집어넣고 길가는 과객양반 재울듯이 붙들었다 해가지면 쫓아내기 이놈 심술이 이러허니 삼강을 알으랴 오륜을 알겄느냐 오륜도 모르는 놈이 형제윤긴들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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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6
놀보놈은 이러허나 그동생 흥보는 마음이 착한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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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모리>
8
부모님께 효도허고 형제간에 우애허고 일가친척 화목허기 노인이 등짐지면 자청허여 져다주고 길가에 빠진물건 임자를 찾어 전해주고 고단헌놈 봉변보면 한사모피 말려주고 타향에서 병든사람 본가에다 소식전코 집을잃고 우는아이 저희부모 찾어주기 개칩불살 방장부절 지어미물 짐승까지 구원허기 힘을쓰니 부귀를 어찌 바랄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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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10
하로난 놀보놈이 이런 착한 동생을 내쫓을양으로 공연한 생트집을 걸어 강호령을 내어 놓는디 네인놈 흥보야. 흥보 깜짝놀라 앞에와 끊어 앉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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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모리>
12
내이놈아 말들어라 부모양친생존서에 너와나와 형제라도 등분있게 기르던 일을 너는 응당 알터이라. 우리부모 야속허여 나는 집안 장손이라. 선영을 맡기면서 글도 한자 안칼키고 주야로 일만 시켜 소부리듯 부려먹고 네놈은 차손이라 내리사랑 더하다고 당초 일을 안시키고 주야로 글만 읽혀 호의호식 허던일을 내오는 생각허니 원통허기 짝이없다. 네놈은 부모때에 세도를 허였으니 나도 이제는 기를펴고 세도좀 해볼란다. 또 이 집안 살림살이 내가 말끔 장만했고 논과 밭과 수만도락 나혼자 장만허여 네놈 좋은일 못허것다. 네놈의 권속들이 여태까지 먹은것을 값을쳐 받을테나 그는 다 못할망정 더 먹이던 안헐테니 오늘은 너희 처자를 모두다 앞세우고 당장 집에서 떠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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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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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가 뜻밖의 이말을 들어놓니 산벼락이 내리는듯 천지가 아드허여」 아이고 형님 부모님 생전시 허신일은 제가 철을 몰랐으니 어찌 허신줄 모르오나 제가 죄가 있사오면 형님분이 풀리시도록 종아리를 치시던지 둔장을 치시던지 죄를 주고 이러시지 이말씀이 웬일이시요. 이놈아 우선 네식구들을 생각해봐라 이놈아 자식새끼만 돼지새끼처럼 줄줄이 퍼낳아놓으니 더 먹일수도 없거니와 네놈 밥만 먹고나면 구렁이 돌듯 집안에서 슬슬 돌다가 주막에 나가 외상술이나 먹고 넉동사니 윷이나 놀고 골패나 허고 다니는 꼴 보기 싫으니 잔소리 말고 썩 나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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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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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가 기가맥혀 아이고 형님 웬말씀이요 형제는 일신이온바 한쪽각을 버리시면 둘다 병신이 될것이요. 애어귀모 어찌허며 제신세는 고사허고 젊은아내 어린자식을 뉘집에다 의탁허며 무얼 먹여 살리리까 옛날에 창공애는 구대동거 허였는디 아우하나 있는것을 나가라고 허옵시니 이엄동 설한풍에 어느곳으로 가오리까 지리산으로 가오리까 태백산으로 가오리까 백이숙제 주려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놀보가 듣고 홰를내어 이놈 내가 너를 갈곳까지 일러주랴 잔소리말고 나가거라 불쌍허구나 흥보신세 설움이 복바치어 목메이게 우는 양을 사람의 일륜으로 볼수가 없네. 아이고 아이고 내신세야 부모님이 살어 생전에는 네것 내것이 다툼없이 평생의 호의 호식 먹고 입고 쓰고남어 세상 분별을 몰랐더니 흥보놈의 신세가 일조에 이리 될줄 귀신인들 알겠느냐. 여보소 마누라 우리가 이렇게 나가면 어느곳으로 가서 사잔 말이오. 여보 영감 그말마오. 광대헌 넓은천지 사람 살데 없으리까. 아무데라도 가옵시다. 살기좋은 서울로 갑시다. 우리가 경우를 모르니 서울 가서도 살수 없고 함평양도 가자헌들 말소리 몰라서 못가겄소. 이도저도 다버리고 산중으로 가옵시다. 산중에가 사자헌들 백물이 귀하여 못살테니 어느곳으로 가잔 말이요. 형님 앞에 다시 엎드러져서 아이고 형님 동기일신 처분으로 한번만 통촉을 허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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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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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보 듣더니 네가 정 갈곳이 없어 그렇다면 내가 네 갈곳을 일러주마. 다른데로 가지말고 꼭 내가 시키는 대로 찾어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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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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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산 이강경이 삼포주 사법성 오개도 육도듬에 파시평을 찾어가서 삼사월 긴긴해에 수많은 자식들을 생선엮기를 가르치고 제수는 인물곱고 탯가락이 장히 좋아 삼패기생 체격이니 노름방을 꾸며놓고 술상끼고 앉었으며 호기있는 잡기꾼들 서로 보기를 원하여 물쓰듯 돈 쓸테니 이삼년만 그리허면 거부장자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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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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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는말 잊지말고 꼭 그렇게 헐것이지 애당초 나는 믿지 말어. 네 만약 떠난 후에 다시 이문전에 들어서면 살육지환이 날것이다.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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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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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 듣고 하릴없이 처자들을 앞세우고 제형전에 하직헐제 형님 갑니다. 부디 안녕히 계옵시오. 저는 형님을 못 받들고 선영을 못모시고 정처없이 가거니와 마음 상치 말으시고 선영을 모시옵고 부귀공명 수명장수 유방백세 허옵소서. 통고하며 떠날적에 심지어 하인들과 동리남녀 노소없이 눈물로 하직허니 가련한 그 정상을 목석인들 보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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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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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흥보가 처자들을 앞세우고 정처없이 다니다가 하로난 복덕촌이란 곳을 당도허니 인심도 거룩허고 농장도 수근이 튼튼허여 사람살기 좋은지라 그때 마침 촌전으로 집 한채가 비어있어 집주인 찾어 사정한바 집을 영구히 허락커늘 동리 솟하나 얻어 걸고 근근히 살어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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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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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형상을 볼작시면 뒷벽에는 왜뿐이요. 앞창은 살만남고 지붕은 다 벗어져 추년는 들어나고 석가래는 꾀를벗어 밖에서 세우오면 방안에는 큰비오고 부엌에 불을 때면 방안은 굴뚝인디 밥을 하도 자조허니 아궁이에는 풀이났네. 멍석자리 꺼적문에 부엉치로 이불삼어 춘하추동 사시절을 품을팔어 연명헐제 상하전답 김매기 전세 대동방아찧기 한시 반때 놀지않고 이렇듯 품을 팔아 생불여사로 지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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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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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가 이렇게 가난하게는 살어도 자식은 부자였다. 자식들을 풀풀히 났는디 일년에 꼭 한배씩을 낳되 의례껏 쌍동이요 간혹 셋씩도 낳고 그렁저렁 보태놓은 자식들이 깜부기 하나 없이 아들만 꼭 스물아홉을 조롯이 났겄다. 하로난 이놈들이 제각기 입맛대로 음식타령을 내어 저희 어머니를 조르난디 한놈이 나앉으며 「아이고 어머니 나는 설이 쌀밥에 육계장국 후춧가루 얼큰히쳐서 더운 김에 한대접만 주시요」흥보 마누라 듣더니 아이고 이 자식들아 전에 먹던 입맛은 있다마는 「죽도먹지 못허는디 턱없는 육계장을 어디있어 달라느냐」또 한놈이 나앉으며 「아이고 어머니 나는 술찌게미나 보릿겨나 제발 덕분에 배부른 것좀 주시오」한참 이럴즈음에 흥보 큰 아들놈이 썩 나앉는디 수염에 가지가 돋힌놈이 고동부사리 성음으로 저희 어머니를 조르것다. 「어머니」아이고 이놈아 너는 어째 목에 시꾸가 많으냐「어머니 아버지 공론하고 나 장가좀 보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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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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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 마누라 기가맥혀 엇다 이놈아 야이놈아 말들어라. 우리가 형세가 있고보면 네장개가 여태 있으며 중한 가장을 못 멕이고 어린 자식을 벗기겠느냐 못먹이고 못입히는 어미 간장이 다 녹는다. 제발 덕분에 조르지를 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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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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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 옆에서 가만히 듣더니 목이메어 허는 말이 여보 마누라 우지마오. 내읍내좀 갔다오리다. 읍내는 무엇허러 가실라요. 환자섬이나 얻어와야 어린자식들을 구원허지 안겄오. 아이고 여보 영감 그 모양에 환자 먹고 도망헌다고 안줄것이니 가지마시오. 흥보가 화를 벌컥 내며 무슨 일을 꼭 믿고만 다니는가. 구사일생으로 알고가지. 내 다녀오리다. 흥보가 읍내를 가려고 갓망 의복을 차리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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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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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치레를 볼작시면 편자 떨어진 헌 망건 물렛줄 당줄에다 박조각으로 관자달어서 두통나게 졸라쓰고 절대 부러진 헌 파립 버릿줄 총총매어 노갓끈 달아쓰고 다 떨어진 고의적삼 살점이 울긋블긋 목만 남은 질버선에 짚대님이 별조로구나. 헐디헌 베도폭에 열두도막 이은 때 흉당눌러 고이 매고 한손에다가 곱돌 조대를 들고 또 한손에다 떨어진 부채들고 줄어도 양반이라고 여덟팔자 걸음으로 어싯버싯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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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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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가 읍내를 당도허여 질청을 들어가니 호장이하 아전들이 우 나오며 아니여 박생원 아니시요. 여러분 본지 경세 우경연이로고. 박생원 어쩐 걸음이시요. 글쎄 권솔들은 많고 먹을것이 없어 환자섬이나 얻을까허고 왔지만 여러분 처분이 어쩔런지 모르제. 박생원 그러지말고 오신김에 매품을 좀 팔으시오. 아 돈생길 품이면 팔고말고 허여. 다름이 아니오라 우리고을 좌수가 병영영문에 상사범을 당했는디 좌수대신 가서 곤장 열개만 맞으면 곤장 한개에 돈이 석량씩 열개면 설흔량은 굳은 돈이요. 누가 가든지 말타고 가라고 마삯 닷량까지 주기로 했으니 다녀 오실라요. 암 가고말고 허여. 내가 아니꼽게 말타고 갈것이 아니라 정갱이 말로 노자나 풍족이 쓰고 갔다 올라요. 그돈 닷냥 날 내어 주시오, 아 글랑 그리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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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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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아전 거동을 보아라 궤문을 절컥 열더니마는 엽전 닷냥을 내어주니 흥보가 받어 손에들고 여러분 내 다녀오리다. 예 평안히 다녀오오. 질청문밖 썩 나서서 얼씨구나 얼씨구나 얼씨구나 좋네. 지화자자좋을시구. 돈봐라 돈 돈봐라돈돈 도돈돈돈돈봐라 돈 얼씨구나 좋을시구. 오늘 걸음은 잘걸었다. 이돈 닷냥 가지고 가면 열흘은 살겄구나. 저희집으로 들어가며 여보 마누라 어디갔오. 대장부 한번 걸음에 엽전 설흔닷냥이 들어를 온다. 거적문 열소 돈들어갑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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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중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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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 마누라 나온다. 흥보 마누라가 나오며 어디돈 어디돈 돈봅시다 어디돈 이돈이 웬돈이오. 일수 월수변을 얻어왔오. 체계변전을 얻어왔오. 아니 그런돈이 아니로세 일수월수를 왜 얻으며 체계변전을 왜 얻겄나. 그러면 이돈이 웬돈이요. 길거리에 떨어진돈을 오다가다가 줏어왔오. 아니 그런돈이 아니로세. 이돈 근본을 이를진데 대장부 한번 걸음에 공돈같이 생긴 돈이로세 돈돈돈 돈봐라. 못난 사람도 잘난돈 잘난 사람은 더잘난돈 생살지권을 가진돈 부귀공명이 붙은돈 맹상군의 술레바퀴같이 둥글둥글 도는돈 돈돈돈돈 돈돈돈 돈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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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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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돈 가지고 양식 팔어오오. 양식팔고 고기 사다가 자식들을 데리고 배부르게 먹었겄다. 그날밤 자식들을 다 잠들여놓고 흥보마누라 조용히 묻는말이 여보 영감 배부르게 먹고나니 좋기는 허요마는 대체 이돈이 어디서 났오. 여보 큰일 부터는 비불발설 해야하오. 그돈이 다른돈이 아니라 우리고을 좌수가 병영영문 상사범을 당했습니다. 좌수대신으로 가서 곤장 열개만 맞으면 한개에 석냥씩 열개면 설흔냥 아니오. 말타고 가라고 마삯 닷냥까지 줍디다 그리여. 만일 뒷집 꾀수아비란놈이 알면 발등걸이를 당헐테니 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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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중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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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마누라 이말듣고 펄쩍뛰어 일어서며 허허 허허 이것이 웬말인가. 마오 마오 가지마오 아무리 죽게된들 매품말이 웬말인가. 맞을일이 있다해도 가산방매헐지라도 그일 모면 헐터인디 번연히 아는 일을 매맞으러 간다허니 당신은 어쩐생각죽을라고 환장인가. 못가리다 못가리다 굶으면 그냥 굶고 죽으면 좋이 죽지 가긍한 저형상에 매란말이 웬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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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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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여보 영감 병영영문 곤장 한개만 맞어도 종신 골병이 든답디다. 제발 덕분에 가지 마시오」흥보 듣더니 여보마누라 염려마오. 아 불기 이것 두었다가 엇다.(아디다) 언제 쓸것이오. 이렇게 궁한 판에 매품이나 팔어먹지 걱정마오. 내 다녀 오리다. 이렇게 옥신각신 허는통에 어느듯 동방이 히번히 밝었구나. 아침밥 지어 먹은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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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모리>
50
흥보가 내려간다. 병영 일백 구십리를 허유 허유 내려가며 신세 자탄으로 울고간다. 아이고 아이고 내신세야 천지가 삼기고 사람이 생겨날제 별로 후박이 없건마는 박홍보는 박복허여 매품이란 말이 웬말이냐. 그렁저렁 길을 걸어 병영 영문을 당도허여 치어다보니 대장기요. 내려굽어보니 숙정패로구나 심산맹호 위엄같이 용자 붙은 군로 사령들이 이리가고 저리갈제. 흥보는 근본이 숱헌 사람이라 벌벌벌 떨면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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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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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싸 말고 영문이 잔뜩 부풀어 죄인 잡어 드려라. 방울이 떨렁 사령이 예이. 흥보가 벌벌 떨며 아마도 내가 산채로 염라대왕을 보러 왔나부다. 흥보가 삼문간을 들여다보니 죄인들이 너댓씩 엎져 볼기를 맞거늘 흥보 마음으로는 그 사람들이 모두 돈버는 사람인줄 알었겄다. 아이고 저사람들은 먼저와서 돈 수백냥씩 번다. 나도 볼기를 까고 엎져볼까. 흥보가 삼문간을 들어가 가만히 엎졌을제 흥보 아는 사령 하나가 나오며 아니 여 박생원 아니시요. 알아 맞췄오. 아니 왜 이러고 엎졌소. 매맞으로 왔지. 저사령 알아듣고 박생원 곯았오. 곯아. 곯다니 그게 어쩐 말인가. 다른게 아니라 아가 조사후에 어떤놈이 흥보씨 대신이라고 왕서 곤장 열개맞고 돈 삼십냥 벌어 짊어지고 한 오십리는 갔을것이오. 「아이고 그놈이 어떻게 생겼든가」 키는 조그만허고 모기눈 주걱턱에 쥐털수염 거사리고 곤장 열개를 맞는디 그놈 참 당차게 맞습디다. 「아이고 이일을 어쩔거나. 어젯밤 우리 마누라가 우는 통에 뒷집 꾀수아비란 놈이 알고 발등거리를 허였구나」
 
53
<중모리>
54
번수네들 나는 가네. 수번이나 잘들 허소. 저희집으로 돌아오며 팔자를 탄식헌다. 몹쓸놈의 팔자로다. 매품에도 손재가 있으니 이런복이 또 있느냐. 집이라고 들어간들 처자들이 묻거드면 무슨말로 대답을 헐거나. 설리 울면서 돌아올제 그때여 흥보 마누라는 흥보 떠나던 그날부터 매를 맞지 말게 허여 주시라. 하느님전 축수를 허며 눈물 끄칠날이 바이 없이 가던길을 바라보며 불쌍허신 우리영감 어찌 이리 못오신고. 어디만치 오시는가. 약한몸에 매를 맞고 전동전동 오시는가.
 
55
<아니리>
56
이렇듯 울고 서 있을제 흥보가 비틀거리고 들어오거늘 흥보마누라 달려들어 아이고 여보 영감 매 맞었소. 매 맞었거든 어디 상처나 좀 봅시다. 놓아둬 이 여편네야 여편네가 집구석에서 그 방정을 떨었으니 무슨놈의 재수가 있어 내가 매를 맞었으면 인사불성이여. 아이고 영감 정말 매를 안 맞으셨오. 아 글쎄 안 맞었당게.
 
57
<중중모리>
58
흥보 맘누라 좋아라 춤을 추며 노는디. 얼씨구나 절씨구 절씨구나 졸시구 영감이 엊그저께 병영길을 떠나신후 매를 맞지 말고 무사히 다녀오시라고 주야축수로 빌었더니 매아니 맞고 돌아오시니 어찌 아니 즐거운가 얼씨구나 절씨구 옷을 벗어도 나는 좋고 굶어 죽어도 나는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나 지화자 좋을시구.
 
59
<아니리>
60
여보 영감 이제는 그런 허망헌말 듣지말고 건너마을 시숙님댁에 건너가서 쌀이 되거나 벼가 되거나 양단간에 얻어다가 이 자식들을 구원헙시다. 글씨 나도 그런생각은 있었으나 만일 건너 갔다가 볼기나 맞고 오거드면 남의 말 잘하는 이세상에 형님 실덕 될터이니 그 일을 어찌 할일이요. 여보 영감 윤기박대는 없습니다. 빌어보고 아니주면 돌아오면 그만이요 천행으로 사정듣고 다소간 주시오면 한때 기근은 면할테니 헛일 삼어서 한번 가보시요. 그러며 그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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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모리>
62
흥보가 건너간다. 흥보가 건너갈제 꼭 얻어 올줄 알고 큼직한 오장치를 평양가는 어둥이 본으로 등에다 짊어지고 서리아침 치운날 팔장끼고 옆걸음쳐 놀보 사랑을 건너간다.
 
63
<아니리>
64
이러고 건너가다 마당쇠를 만났겄다. 아이고 마당쇠야, 작은 서방님, 그동안 아씨 도련님들 다 무고허신지요. 오냐 마당쇠야 큰 서방님 문안 안녕하며 성정은 종어떠허냐. 아이고 말도 마십시요. 이제는 제사를 모셔도 대전으로 바친답니다. 아니 대전으로 바치다니. 제 말좀 들어보십시요.
 
65
<자진모리>
66
제향날이면 접시에다 엽전을 한주먹씩 가득 가득이 담어놓고 술이라 과실이라 어포육포 인절미라. 어전육전 편적산적 생선이라 오색탕이라 채소라 수정과라 말끔히 찌를 부쳐 어동육서 홍동백서 좌포우혜 분향재배로
 
67
<아니리>
68
파제날이면 쏵 닦어버리고 궤속에다 도로다 집어넣습니다. 만일 들어가셨다가는 몽둥이 찜질을 당헐테니 그냥 돌아가십시요. 그렇지만 여기까지 왔다가 어찌 형님을 안뵙고 갈수가 있겠느냐. 사랑에를 들어가 제형이건만은 대청에는 올라가지 못허고 뜰밑에 엎지며 아이고 형님 동생 문안이요. 놀보가 듣더니 게 뉘시오. 흥보는 정말 몰라 그러는 줄 알고 아이고 형님, 형님 함자는 놀자 보자 이옵고 형님 동생 흥보 올시다. 오 네가 바로 그 흥보냐. 이 도적놈아. 어찌 또 왔느냐. 형님 안녕허신지 문안이나 알고져 왔습니다. 야 그놈 핑계한번 좋다. 나 편헌 속 알았거든 썩 돌아가거라. 그 말끝에 썩 나왔으면 허련마는 「웬간헌 제주변에 놀보감동 시킬줄로 고픈배 틀어잡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허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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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조>
70
흥보가 비는구나 두손 합장 무릎을 끊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님전의 비나이다. 그제 저녁을 굶은 처자 어제 아침을 그져있고 어제 저녁도 굶은 처자가 오늘 아침도 못먹었으니. 만석군 형님두고 굶어죽기가 억울하오. 쌀이 되거든 한말만 주옵시고 벼가 되거든 두말만 주옵시고 돈이 되거든 한냥만 주옵시고 그도 정 못하시면 식은 밥이나 싸래기나 찌게미나 몽근겨나 한가지만 주시어도 여러날 굶은 처자들을 구원허여 살리겠네다. 형님 덕분의 살려를 주오.
 
71
<아니리>
72
놀보 듣더니마는 야 그놈 불쌍허다. 여봐라 마당쇠야 동편 곳간문 열고 지리산에서 도끼 자루 헐라고 건목쳐내온 박달 몽둥이 하나 이리 가져오고 대문 걸어라 오늘 한놈 식훌놈 있다.
 
73
<자진모리>
74
놀보놈 거동봐라 지리산 몽둥이를 눈위에 번듯들고 두눈을 부릅뜨고 엇다 이놈 흥보놈아 하늘이 사람낼제 제각기 정한분복 잘난놈은 부자되고 못난놈은 가난허니 내이리 잘사는게 하늘이 주신 내복이지 네복을 뺏었느냐. 쌀말이나 주자헌들 남대청 큰 두지에가 가득가득이 들었으니 네놈 주자고 뒤지헐며 볏말을 주자헌들 천록방 가리노적 태산같이 쌓였으니 네놈 주자고 노적헐며 돈냥이나 주자헌들 옥당방 용목궤에가 가득가득이 쌓였으니 네놈주자고 관돈헐며 찌게미나 몽근겨나 양단간에 주자헌들 궂고은방 우리칸에 떼 돼야지가 들었으니 네놈 주자고 돗 굶기며 식은밤이나 주자헌들 새끼난 암캐들이 퀑퀑짖고 내달으니 네놈주자고 개굶기랴. 몽둥이를 들어 메더니 강짜 싸움에 계집치듯 좁은 고을에 벼락치듯 후닥딱 뚝딱 아이고 이 굽살맞어 죽을놈아 어째서 나를 못살게 왔쌌냐. 후닥딱 아이고 흥보가 도망을 허자헌들 대문을 걸었으니 날도 뛰도 못허고 그저 퍽퍽 맞더니마는 중문을 차고 안으로 쫓겨 들어가며 아이고 형수씨 사람좀 살려주시요.
 
75
<아니리>
76
놀보 마누라는 독허기가 놀고보다 장리가 더허겄다. 밥을 푸다 밥주걱을 들고 나오며 아지뱀이고 동아뱀이고 한달도 서른날 돈달라 쌀달라 세상만사가 귀찮다. 아나돈 아나밥. 「뺨을 짐짝치듯 치는구나. 흥보가 뺨을 맞고나니 형님한테 맞은것은 오히려 여반장이라.」
 
77
<진양조>
78
곰곰 생각을 허니 하늘이 빙빙돌고 땅이 툭 꺼지는듯 분허고 원통허여 우루루루루- 형님앞에 가 엎드러져서 통곡으로 원정을 허는 디 아이고 형님 듣조시오. 형님이 저를 죽이시던지 살리시던지 그는 한이 없사오나 형수씨가 시아제 뺨치는법 고금천지 어디서 보았오. 차라리 아조 죽여주며 염라국을 찾어가서 부모님을 뵈옵는날 세세원정을 내가 아뢸라요. 지리산 호랑아 박흥보 물어 가거라. 굶주리기도 나는 싫고 세상살기도 귀찮허다.
 
79
<아니리>
80
흥보는 이렇듯 제형에게 매를맞고 울며불며 건너갈제 그때여 흥보마누라는 흥보 오는가 본다고 막둥이 업고 나갔다가 흥보가 절뚝거리고 들어 오거늘 흥보마누라 달려들어 여보 영감 어찌 이리 더디었오. 전곡간에 무얼 좀 얻어 오셨소. 흥보가 아무쪼록 마누라 듣기좋게 허는말이 여보 마누라 내가 형님 댁에를 건너갔더니 형님과 형수시께서 깜짝 반기시며 돈과 쌀을 많이 주시기에 어찌 좋아던지 쌀속에다 돈을넣어 몽똥그러 짊어지고 허둥지둥 건너오는디 요넘어 질모퉁이 고개를 막 당도허니 십여명 도적놈들이 나서더니 네 이놈 흥보야 전량이 크냐 목숨이 크냐 엎어뺨 한주먹에 대번에 쥐가나고 정신 차릴길이 었읍디다. 그래서 죄다 빼았기고 죽게 맞고 왔오.「흥보 마누라 이말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쑥들어가 두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간신히 살가리운 고의뒷폭 툭 무너져 바싹 마른 볼기짝에 몽둥이 맞은 흔적 피가 곧 솟는지라.
 
81
<중중모리>
82
흥보 마누라 미친듯이 두손뼉 탕탕 허허 이것이 웬말인가 그런대도 내가 알고 저런대도 내가 아오 시숙님 속도 알고 동서속도 내다아오. 동냥은 못줄망정 박자조차 깬다더니 여러날 굶은 동생 안주면 그만이지 이모양이 웬일이여 방약무인 도척이도 이보다는 성현이요 춘추때 양주라도 여기대면 군자로세, 세상 천지간에 이런일도 또 있는가. 가기싫어 허시는걸 방정맞은 계집년이 궂이 가라고 우기었다. 이 지경을 당하였네. 국난에 사양상이요 가빈에 사현처라 내얼마나 음전허면 불쌍헌 우리가장 못멕이고 못입힐까 가장은 처복없이 내죄로 굶거니와 철모르는 자식정상 목이메어 못보것네 차라리 내가죽어 이꼴저꼴 안볼라네 초마끈으로 목을매어 죽기로 작정허니 홍보가 기가막혀 마누라 손을잡고 아이고 마누라 이것이 웬일이요. 부인의 평생시니세 가장의게 매었는디, 박복헌 나를 만나 이곳생을 당케허니 내가 먼저 죽을라네 허리띠를 끌러내어 석골에다가 목을 매니 흥보아내 깜짝놀래 와르르르르르 달려들어 흥보를 부여잡고 아이고 영감 내 다시는 안울테니 이리마오. 손목을 마주잡고 둘이 서로 통곡허니 초상난 집이 되었구나.
 
83
<아니리>
84
이렇듯 흥보내외 붙들고 우는 통에 자식들까지 따러 울어놓니 그야말로 흥보 집안이 뭍 초상난 집이 되었겄다. 그때 마침 흥보를 살릴 중이 하나 내려 오는디.
 
85
<엇모리>
86
중내려온다. 중하나 내려오는디 저중의 모양을 보소 헐디헌중 서리같은 두눈썹은 웬낯을 덮어있고 크다큰 두귓밥은 양어깨에 닿을듯 노닥노닥 지은장삼 실띠를 띠고 다떨어진 속락은 요리송 치고 조리송쳐 호옴뻑 눌러쓰고 동냥을 얻으면 무엇에다 받어갈지 목괴짝 바람등물 하나도 안가지고 개미하나 안밟히게 가만가만 가려딛고 염불허며 내려온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흥보문전을 당도허니 처량헌 울음소리가 귀에 얼른 들린다. 저중이 깜짝놀래 가만히 들어보니 사생이 미판이로 구나. 저중이 목탁을 치며 지나가는 걸승으로 어진댁을 왔사오니 동냥한줌 주옵시오.
 
87
<아니리>
88
흥보가 나가보니 중이 왔거늘 대사님 대사님이 오셨으나 제집을 둘러보오 서발장대가 거칠 문적이 없소. 후일에 많이 시주할테니 오늘은 다른댁에나 가 보옵소서. 소승이 걸승이오나 댁의 문전을 들어선즉 울음소리가 낭자하오니 어쩐 곡절로 우시나이까 대사님이 들으셨다니 어찌 기망하오리까 자식들은 많고 먹을것이 없어 우리내외 서로 죽엄을 다투어 우는 길이요. 가긍헌 말씀이요. 복이라 허는것은 임자가 없는 법이요. 무지무모헌 소승의 말을 믿고 명심할테면 집터 하나를 잡아 드리오리다. 소승의 뒤를 따르소서. 너무 감축 하여이다.
 
89
<진양조>
90
흥보가 좋아라고 중의 뒤를 따러가는디 저중이 가다가 우뚝 서더니마는 이명당을 알으시오. 배산임수 계곡허고 무림수죽이 두른곳에 집터를 제혈허는디 명당수법이 완연허구나 감계룡 간좌공향 탐랑득검은파 반월형 일좌안의 문필봉 창고산이 좌우로 높았으니 이터에다 집을 짓고 안번허고 지내오면 가세가 속발허여 도주이돈 비길테요. 자손이 장성허여 삼대진사 오대급제와 용지불갈 취지무궁허여 그릴것이 없으리다. 입주자리에 표목을 꽂아놓고 한두걸음 나가더니만 인흘불견 간곳이 없구나.
 
91
<아니리>
92
흥보가 그제야 도승인줄 짐작허고 공중을 향하여 무수히 사례헌 후 있던 움막을 뜯어다가 수숫대 절읍대로 그터에다 성조를 허여놓니 집조격은 볼 수 없으나 그터에 성조후로 첫째 집안에 우환이 없어지고 부자들이 병작이라도 논마지기씩 붙여주고 차차 좀 살기가 낳어지니 흥보가 신통허여 하루는 집터 글자를 붙여보던 것이었다.
 
93
<중중모리>
94
겨우동자 갈거자 삼월삼진 올래자 봄춘자 좋을시구 나비접자 펄펄날어 춤출 무자가 좋을시구 꾀꼬리는 노래허니 노래가자가즐겁다. 기는건 짐생수자 나는건 새금자 쌍거쌍래 제비연자 날비자 좋을시구 흥보가 보고 좋아라 얼씨구나 되었네 이터에 내명당이로다 얼씨구나 좋을씨구
 
95
<아니리>
96
이렇게 세월을 보낼적의 그해 겨울을 다 보내고 봄철이 다다르니 제비한쌍이 날아들어 처마안에다 집을 짓고 알을낳아 새끼를 쳐 밥물어다 먹이며 자모구구 즐기더니 하루는 천만의워 대명이가 들어와 제비를 다 잡어먹는지라.
 
97
<단중모리>
98
흥모가 보더니 깜짝놀래 경설허여 쫓는구나. 무상허다 저 대명아 네먹을것 많허구나 청초지당 처처와요 춘면불각처처조라 허다헌곳 다버리고 구태여 내집에 와서 제비새끼 먹단말가. 한고조의 적소검으로 네허리를 베고지고 남악사에 원정하여 신병을 몰아다가 네의 큰 목을 자르고져 급급히 쫓고보니 새끼땀에 못떠나고 어미제비도 죽었으며 여섯새끼 다섯먹고 겨우 하나가 남었구나. 다만 하나 남은것이 날기공부 힘쓰다가 대평상에 뚝 떨어져 발목이 질끈 부러져서 피흘리고 발발떠니 흥보양주 어진마음 제비새끼 주어들고 한없이 탄식헌다. 불쌍타 내제비야 가긍한 네목숨이 대명의게 안죽기에 완명인줄 알았더니 이지경이 웬일이냐 내집이 가난허여 사람은 아니찾아오나 너는 매양 찾어오니 가난박대 안허기는 아무리 머물이나 제비 너희 뿐이로다. 좋은집을 다버리고 궁벽산촌 박흥보집 험한곳에와 삼겼다가 절각지환이 웬일이냐.
 
99
<아니리>
100
명태껍질과 당사실을 구하여 「부러진 다리를 칭칭동여 제집에 넣어주며」제비야 죽지말고 「멀고먼 만리강남 부디 수히 잘가거라.」흥보 은혜를 갚을 제비어든 죽을리가 있으리오. 십여일이 지내더니 다리가 차차나아 날기공부 힘을 쓸제.
 
101
<진양조>
102
구만리 창공우의 높이 높이 날아도 보고 일대장강 맑은 물에 배를 쓱 씻어도 보고 평탄헌 너른 뜰에 아장아장 걸어도 보고 길게 매인 빨래줄에 한둘한둘 놀아도보고 세우에 홈초리 젖은 두날개 실근 실근 깃도 다듬어 보니 흥보가 보고 좋아라고 나갔다 들어와서 제비집을 만져보고 집안에 들어 있을때면 제비허고 소일을 헐제 칠월유화 팔월한위 이슬이 서리되고 금풍이 삽삽허여 구월구일 당도허니 동방의 실솔불어 깊은 수심 자어내고 창공의 홍안성은 먼데 소식 띄어온다. 용산의 술마시고 망향대에 손보낼적 섭섭타 내제비야 날버리고 가랴느냐. 강남이 머다는디 며칠이면 당도헐꺼나. 명춘의 나오거든 부디 내집을 찾아오너라. 제비 저도 섭섭허여 나갔다 도로와서 이별을 아끼는듯 지지주지 울고 노는양은 흥보보고 사례한듯 흥보는 원래 설움이 많은 사람이라 제비허고 이별을 허면서도 슬픈눈물로 이별을 마쳤더라.
 
103
<아니리>
104
제비가 강남을 들어가니 강남두견은 조종지 황제라 백조 점고를 받던 것이었다. 초산에 나갔던 분홍제비 나오. 노라라 들어갔던 초록제비 나오. 중원에 나갔던 명매기 나오. 조선에 나갔던 현조 조선에 왔던 제비 차례로 들어갈제
 
105
<중중모리>
106
흥보 제비가 들어온다. 박흥보제비가 들오는디 부러진 다리가 봉퉁이가져서 전동 전동 전동 전동거리고 들어오며 예 제비황제 호령허되 너는 왜 다리가 봉퉁이 졌는냐. 흥보제비 여짜오되 예 소조가 아뢰리다. 소조어미 조선땅의 박흥보집을 주인삼고 저희들 오류수를 까서 거의 날게 되었더니 뜻밖의 대명이가 어미까지 모두 다 잡어먹고 다만 저하나 남은것이 날개공부 힘쓰다가 대평상에 뚝 떨어져 대번에 다리가 찰칵 부러져 거의 죽게 되었더니 어진 흥보 덕택으로 소저하나로 살았으니 어찌허면 은혜를 갚소리까 깊이 통촉허옵시와 흥보씨 은혜를 갚어지이다.
 
107
<아니리>
108
어명을 어기면 그런 변을 당하느니라. 금년 이월 나갈적의 그날이 을사일이라 사불원행이기로 가지말라 허여도 너희어미 고집으로 나가더니 배암날 떠났기로 배암환을 당했구나. 그러나 흥보씨는 금세의 군자로다. 흥보씨 은혜를 갚으랴거든 보은표 박씨 하나만 갖다 신전하라. 삼동을 다 지나고 춘삼월이 방자커늘 각색 짐승들이 모두다 발정헐제 다리 봉퉁이 흥보제비도 황제전숙배허니 보은표 박씨 하나를 하나커늘 저제비 입에 물고 만리조선을 찾아 나오는디.
 
109
<자진 중중모리>
110
흑운 박차고 백운 무릅쓰고 거중의 둥실 높히 떠 두루 사면을 살펴보니 서쪽지척이요 동해 창망구나 중영봉을 올라가니 주작이 넘논다. 상익토 하익토 오작교 바라보니 오초 동남의 가는 배는 북을 둥둥 울리며 어기야차 어허어허 허어어야 어기야 히야 저어가니 원포귀범이 이 아니냐 수벽사명 양안택의 불승청원 각비래라 날아오는 저기러기 갈대를 입에다 물고 일점이점 떠러지니 평사낙안이 이아니냐 백구백로 짝을 지어 청파상에 왕래허니 석양촌이 여기로다. 회안봉을 넘어 황릉묘 들어가 이십오현 단야월의 반죽까지 쉬어 앉어 두견성을 회답허고 봉황대 올라가니 봉거태공 강자유라. 황학루를 올라가니 황학일거 불보반 백운 천재 공유요라 금릉을 지내어 주사촌 들어가니 공수창가 도리개라 낙매화를 툭쳐 무연의 펄렁 떠러지고 이수를 건너 종남산을 지나 계명산 올라가니 장자방 간곳 없고 남병산 올라가니 칠성단이 비던터요. 연제지관을 지내어 갈석산을 넘어 연경을 들어가 황극전에 올라앉어 만호장안을 구경허고 정양문 내달아 상달문을 지나 봉관을 들어가니 살미력이 백이로다. 요동 칠백리를 순식간의 지내어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다다라 영고탑 통근정 구경허고 안남산 밧남산 석병강 용천강 좌우령을 넘어들어 부산파발 할마고개 강동 다리를 건너 평양의 연광정 부벽루를 구경허고 대동강 장림을 지나 송도를 들어가 망월대 광덕전 선죽교 박연폭포를 구경허고 임진강을 시각에 건너 삼각산에 올라앉어 지세를 살펴보니 청룡의 대원맥이 중령으로 흘러져 금하금성 분개허고 도봉 망월대 솟았구나. 문물이 빈번허고 풍속이 희하하여 만만세지 금탕이라 경상도는 함양이요. 전라도는 운봉이라. 운봉 함양 두얼품에 흥보가 사는지라 저제비 거동을 보소 박씨를 입에다 물고 남대문밖썩 내달아 칠패팔패 청파 배다리 애고개를 얼른넘어 동작강을 월강 승방을 지내어 남퇴령 고개넘어 두쪽지 옆에끼고 거중의 둥둥
 
111
<중중모리>
112
흥보문전을 당도. 당상 당하 비거비래 편편히 노는 거동 무엇을 같다고 이르랴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간으로 넘노난듯 단산 봉황이 죽시를 물고 오동속으로 넘노난듯 유곡청앵이 난초를 물고 송백상에서 넘노난듯 안으로 펄펄 날아들제 들보우에 올라 앉어 제비말고 운다. 지지지지 주지주지 거지연지 우지배요 낙지각지 절지연지 은지덕지 수지차로 함지표지 패지배요. 빼드드드드- 흥보듣고 괴이여겨 가만히 살펴보니 절골양각이 완연 오색당사로 감은흔적 아리롱 아리롱허니 어찌 아니가 내제비랴. 반갑다 내제비 어디를 갔다가 이제와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내제비 강남은 가려지라는디 어이허여 다버리고 누추헌 이내집을 허유허유 찾아 오느냐. 인심은 교사허여 한번가면 잊건마는 너는 어이 신의있어 옛 주인을 찾어 오느냐 원촌전촌 널보내고 욕향청산의 문두견 소식 적적 막연터니 네가 나를 찾어오니 천도지도 반갑다. 저제비 거동을 보소. 보은표 박씨를 흥보 양주 앉은 앞에 때그르르... 떨쳐놓고 들어갔다 나갔다 나갔다 들어갔다 이리 저리 넘는다.
 
113
<아니리>
114
흥보 양주 앉은앞에 뚝 떠러뜨려 놓은것을 흥보마누라 얼른 주워보더니 아이고 여보영감 제비가 뭔 씨앗을 물고 왔는디 글씨가 씌어있소. 흥보듣고 보더니 응갚을보 은혜은 박표 보은표라 보은표 보은표 아 이놈이 공주로 노성으로 은진으로 온것이 아니라 보은으로 옥천으로 연산으로 돌아온 놈이로구나 보은대초 좋다는 말은 들었어도 박 좋다는 말은 금시 초문인디 그러나 저러나 보은 박일러지 강남 박일러지 제가 이렇게 물고 온것이 기특해서라도 우리한번 심어 봅시다.
 
115
<중중모리>
116
을불 제중날을 가려 후원에 양지찾어 구덩이를 깊히 파고 신짝놓고 거름놓고 박씨를 또닥또닥 단단히 심었구나 수일만에 살펴보니 박순이 벌써 솟았는디 박넝쿨이 굵직굵직 중선배 닿줄만씩 곱게 뻗어 초막집을 꽉꽉 얽혀 놓았으니 천동지동 헌다해도 집이 짜그라질리 없고 박잎싸귀가 삿갓만씩 흥보집을 덮었으니 구년홍수 진다해도 비한점 샐 수 없이 되어 동내사람도 다모르게 흥보가 벌써부터 은근히 박덕을 보는구나.
 
117
<아니리>
118
이때는 어느땐고 팔월추석 가절이라. 다른 집에서는 떡을친다 술을 거른다 지지고 볶으느라고 이놈의 냄새가 코난간을 무너내는디 흥보집은 냉랭허여 군신풍이 들이 부는지라〔자식들은 밥을달라 떡을 달라 흥보는 가슴이 미어질듯〕 마음 달랠 길없어 어디론지 나가 버리고(흥보마누라는 졸리고 앉었다가 설움이 북바치어 신세자탄으로 울음을 우는디) 흥보는 이렇게 가난하게는 살아도 자식은 부자였다. 흥보 열일곱째 아들놈이 「유혈이 낭자해가지고 울고 들어오며 어머니 나 송편 세개만 해주시오」아 이놈아 어째서 하필 떡을 세개만 해달라느냐, 「동리로 놀러갔더니 얘들이 송편을 먹기에 내가 좀 달랬더니 가래속으로 기어나오면 송편을 주마기에」송편얻어 먹을 욕심으로
 
119
<중모리>
120
엎저 기어 나갈적의 뒤엣놈 떨어져 앞에 와 서고 그 뒷엣놈 떨어져 앞에 와서고 다음담놈 떨어져 앞에와 서서 한정없이 기어 가자허니 무릎이 모다 헤어지고 유혈이 낭자 허였기로 내가 욕설을 좀 허였더니 송편일앙 고사허고 뺨만죽게 때려주니 송편 세개만 허여주면 한개는 입에 물고 두개는 양손에 갈라쥐고 조롱 허여 가면서 먹을라요. 흥보마누라 기가맥혀 목이메어 허는말이 내자식아 무엇허러 나갔드냐 천하 몹쓸 애들이지 못먹이는 이 어미는 일촌간장이 다 녹는디 굶어죽게 생긴 자식을 그리 몹씨 허드란 말이냐 우지마라 우지마라 불쌍헌 내새끼야 우리를 마라.
 
121
<아니리>
122
이렇듯 울고 있을 적에 〔그때여 흥보는 동내로 놀러 갔다가 친구 덕분에 술이 얼근히 취해 갖고〕흥보가 집안에 들어와보니 자기 마누라가 울겄다. 여보 마누라 이게 웬일이요. 마누라가 울어서 우리 집안 식구가 배가 부를 지경이면 권속대로 늘어앉어 한평생 허고라도 울어보지만은 남보기 챙피만허고 동내 사람들이 보면 어찌 흉볼 울음을 운단 말이요. 울지말고 우리는 있는 박이니 박이나 타서 박속은 끊여먹고 바가지는 부자집에 팔아다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목숨보명 살아갑시다. 흥보내외 박을 한통 따다놓고 자식들을 앉혀놓고 톱빌려다가 박을 탈제
 
123
<진양조>
124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 에이여루 톱질이구나 몹쓸놈의 팔자로다. 원수놈의 가난이로구나 어떤 사람 팔자좋아 일대영화 부귀헌디 이놈의 팔자는 어이허여 박을 타서 먹고 사느냐 에이여루 당거주소 이박을 타거들랑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밥한통만 나오너라, 평생의 밥이 포한이로구나 시르렁 시르렁 당거주소 톱질이야 어허어어흐어 시르렁 실근 당거주소 톱질이야 여보소 마누라 톱소리를 맞어주소 톱소리를 내가 맞자해도 배가 고파서 못맞겄소. 배가 정 고프거든 허리띠를 졸라매고 에이여루 당거주소 시르르르르. 시르르...렁 시르렁 시르렁 실근 시르렁 실근 당기어라 톱질이야. 큰자식은 저리가고 작은 자식은 이리오너라 우리가 이박을 타서 박속일랑 끊여먹고 바가지는 부자집에가 팔어다가 목숨보명 허여 볼거나 에이여루 톱질이로구나.
 
125
<휘모리>
126
시르렁 실근 당기어라. 시르렁 실근 시르렁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툭탁-
 
127
<아니리>
128
박을 딱 타놓니 박속이 텡 비었거늘 흥보 기가맥혀 “흥”복없는 놈은 계란도 유골이라더니 어떤놈이 박속은 쏵 긁어다 먹고 남의 조상궤 훔쳐다 넣어놨구나. 흥보 마누라 보더니 아이고 영감 궤뚜껑위에가 무근 글씨가 씌여 있오. 흥보 보더니 “응”박흥보씨 궤탁이라 날보고 열어보라는 말인디 그러면 한번 열어보시오. 그럼 그래 볼까. 한궤를 가만히 열고보니 쌀이 하나 수북이 들고 또 한궤를 딱 열고 본게 돈이 하나 가득 들었는디. 궤뚜껑 속에다가 이쌀은 평생을 두고 꺼내 먹어도 굴지않는 취지무궁지미라 씌였으며 또 돈궤에도 이돈은 백년을 두고 꺼내써도 굴지않는 용지불갈 지전이라 하였거늘 흥보가 좋아라고 궤 두짝을 떨어붓기 시작을 허는디.
 
129
<휘모리>
130
흥보가 좋아라고 흥보가 좋아라고 궤두짝을 떨어붓고 닫쳐놨다. 열고보면 도로 하나 그뜩허고 쌀과돈을 떨어붓고 닫쳐놨다 열고보면 도로하나 수북허고 툭툭 떨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도로하나 그뜩허고 떨어붓고 나면 도로수북 떨어붓고나면 도로 그뜩. 아이고 좋아 죽겄다. 일년삼백 육십일을 그저 꾸역꾸역 나오너라.
 
131
<아니리>
132
어찌 떨어 부었던지 쌀이 일만구만섬이요. 돈이 일만구만량이나 되던가 보더라. 자. 우리가 쌀본짐에 밥부터좀 히먹고 박을 타던지 궤짝을 떨어 붓던지 해보자. 우리 권솔이 모두 몇이냐. 자식놈들 스물아홉 우리내외 도통합이 설흔한명이로구나. 우리가 이렇게 굶주리다가 한앞에 쌀한섬씩 덜 먹겄냐. 쌀 설흔한섬만 밥을 지어라.” 동내 가마솥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밥을 꼬드밥찌듯 쪄서 삯군을 사다 져다붓고 져다붓고 헌것이 거짓말좀 보태면 밥더미가 남산뎅이만 허든 것이었다. 흥보가 밥먹으라는 영을 내리는디, “내이놈들 체헐라 조심히 먹으렸다. 자, 먹어라.”해놓니, 이놈들이 우 허더니 온데 간데가 없지. “아이고 이놈들다 어디갔느냐.” 흥보내외는 자식들을 찾느라고 야단이 났는디 조금 있다가 보니게 이놈들이 모두 밥속에서 튕겨쳐 나오는디 어찌허여 밥속에서 나오는고 허니 이놈들이 어떻게 밥에 환장이 되었던지 “밥먹어라”소리에 우 허고 밥속에가 총철환 백히듯 꽉 백혀가지고 저속에서 당창 벌거지 콧속 파먹듯 밥을 파먹고 나오던 것이었다. 흥보는 자식들 같이 그렇게 조백없이 먹을 수가 없어 밥보고 인사를 허는디 노담부터 나오든 것이었다. “밥님 너 참 본지 오래다. 네 소행을 생각허면 대면도 하기 싫지만은 그래도 그럴 수가 없어 대면은 하거니와 원 세상에 사람을 그렇게 괄세한단 말이냐. 에라 이손 섭섭타 섭섭혀.”
 
133
<자진모리>
134
세상인심 간사허여 추세를 헌다헌들 너같이 심할소냐. 세도집 부자집만 기여코 찾어가서 먹다먹다 못다 먹으면 도야지 개를 주고 떼거위 학두루미와 심지어 오리떼를 모두다 먹이고도 그래도 많이남어 쉬네 썩네 허잖더냐. 날과무삼 원수로서 사흘나흘 예사굶겨 뱃가죽이 등에붙고 갈빗대가 따로나서 두눈이 캄칸허고 두귀가 멍멍허여 누웠다 일어나면 정신이 아찔아찔 앉었다 일어서면 두다리가 벌렁벌렁 말라죽게 되었으되 찾는일 전혀없고 냄새도 안맞히니 그럴수가 있단 말이냐 에라 이 괘씸헌 손 그런 법이 없느니라. 한참이리 준책터니 도로 슬쩍 달래는디 흐흐 그것참 내가 이리 했다 해서 노여워 아니 오랴느냐. 어여뻐 헌말이지 미워헌말 아니로다. 친구가 조만없어 정지후박에 매었으니 하산견지 만만야호 떨어져 살지말자. 에게게 내밥이야 옥을 준들 널 바꾸며 금을 준들 바꿀소냐. 에게게 내밥이야 제발 덕분에 다정히 살자. 새정이 붙게 허느라 이런 야단이 없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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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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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이리 노담을 허더니만 흥보가 밥을 먹는디 흥보집에 본래 숫가락은 본래 없거니와 하도 좋아서〈손으로〉밥을 뭉쳐 공중에다 던져놓고 죽 방울 받듯 입으로 딱 밥을 받어먹는디 입으로 받어만놓으면 턱도 별로 놀리것 없이 어깨주춤 눈만 끔적허면 목구멍으로바로 밀어닥치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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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모리>
138
흥보가 좋아라고 흥보가 좋아라고 밥을 먹는다. 밥을 뭉쳐 공중에다 던져놓고 받어먹고, 밥을 뭉쳐 공중에다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배가 점점 불러오니 손이 차차 늘어진다.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던져놓고 받어먹고
 
139
<아니리>
140
「흥보가 밥을 먹다 죽는구나.」어찌 먹었던지 눈어덕이 툭 꺼지고 코가 뾰족허고 아래턱이 축 늘어지고 배꼽이 요강꼭지 나오듯 쑥 솟아나오고 고개가 뒤로 발딱 자드라지며 아이고 이제는 하릴없이 나죽는다 배고픈것 보담 훨씬 더 못살겄다. 아이고 부자들이 배불러 어찌 사는고. 흥보마누라 기가맥혀 「아이고 이게 웬일이요 언제는 우리가 굶어죽게 생겨더니마는 이제는 내가 밥에 치어 과부가- 되네. 아이고 이자식들아 너희 아버지 돌아가신다 어서 와서 발상을 허여라.」 이대문에 이랬다고 허나 이는 잠시 웃자는 성악가의 농담이지 그랬을리가 있으리오. 여러날 굶은속에 밥을 먹어서는 않된다고 죽을 눌그럼허니 쑤어 한그릇씩 마시고 나더니 흥보도 생기가 돌아들어 돈 한뀌미를 들고 춤을 추며 노는디 이런 가관이 없든 것이었다.
 
141
<중중모리>
142
흥보가 좋아라 돈을들고 노는디. 얼씨구나 절씨구 절씨구나 좋을시구 돈좋다 돈봐라 돈돈돈 돈좋다. 살었네 살었네 박흥보가 살었네 이놈의 돈아 아나돈아 어디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돈봐라 못난사람도 잘난돈 잘난사람은 더잘난돈 생살지권을 가진돈 부귀공명이 붙은돈 맹상군의 술래바퀴같이 둥글둥글 도는돈 돈돈 돈돈돈돈돈 돈봐라 여보아라 큰자식아 건너마을 건너가서 너희 백부님을 모셔오너라 경사를 보아도 우리 형제보자 이런 경사가 또 있느냐 어그저께까지 박흥보가 문전걸식을 일삼터니 오늘날 부자가 되어 석숭위를 부러허며 도주공을 내가 부러헐까 불쌍허고 가긍헌 사람들 박흥보를 찾어오소. 나도 오늘부터 기미를 줄라네 이런 경사가 또있나 얼씨구 절씨구나 좋네 얼씨구 좋을씨구.
 
143
<아니리>
144
흥보자식들이 춤을 추재도 춤속을 몰라놓니 도구대 뛰듯 함부로 덤부로 뛰어다니더니만은 아부지 우리 춤 고만 추고 또 박탑시다. 그러자. 흥보가 또 한통을 들여놓고 박을 타는디. 이번에는 밥타령으로 앞소리를 메기던 것이었다.
 
145
<중머리>
146
또한통을 들여놓고 당기어라 톱질이야. 좋을씨구 좋을씨구 밥 먹으니 좋을씨구 수인씨 교인화식 날 위하여 마련했나 강구노인 함포고복 날만치나 먹었으며 엽피남묘 전준지희 날만치나 먹고 즐기던가 어허여루 당겨주소 만고의 영웅들도 밥없으면 살 수 있나 오자서 도망헐제 오시의 결식허고 한신이 궁곤할제 표모에게 기식이요 진문공 전간득식 한광무 오타맥반 중헌것이 밥뿐이라 실근실근 톱질이야 어여루 당기여라 시리렁 실건 당거주소. 강상의 둥둥 떴난 배가 수천석을 실었은들 내박 한통을 당할손가 이박을 타거들랑 은금보화만 나오너라 이박에서 나오는 보화는 우리 형님 갖다가 드릴란다. 시리렁 실근 시리렁 실근 어혀여루 당겨주소.
 
147
<아니리>
148
흥보 마누라 이말듣고 톱소리도 아니 맞고 그자리 버썩 주저 앉더니만은 뭣이 어째고 어째요.
 
149
<진양조>
150
나는 이박 안탈라요. 여보영감 형제간이라 다 잊었소. 섣달 치운날의 구박을 당허여 나오던 일을 곽속의 들어도 나는 못 잊겄소. 나는 이박 안탈라요. 나는나는 안탈라요. 흥보가 홰를 내어 타지마라 이사람아 타지마라 타지말어 너아니라도 나혼자 탈란다 답답허구나 이사람아. 형제는 불장노불숙원을 어이 그리 모르는가 계집은 만일에 죽더래도 다시 구하면 계집이요. 형제는 일신이라 우리 형님은 아차한번 돌아가시면 얼굴인들 다시 뵐수가 있겠느냐. 타지말어. 내몰랐네 내몰랐어 우리 마누라 속이 저리 답답헌줄 정녕 나는 몰랐었네 아이고 형님.
 
151
<아니리>
152
이렇듯 흥보가 〈이리 형님을 부르면서〉 목을 놓고 울음을 우니 흥보 마누라 가만히 듣더니만 여보 영감 영감, 말씀을 듣고보니 내가 잘못 생각이요. 내 다시는 안 그럴테니 어서 박 탑시다. 마누라가 이렇듯 말을 허니 흥보가 속이 좀 풀렸건마는 짐짓 한번 탁 지르는 말이 이제는 내가 안탈라요. 마누라 혼자 타시요. 여보영감 내가 죽을때라 잘못 생각했소. 어서 탑시다. 흥보가 마누라를 뻔히 쳐다보더니 허허 참 이제야 잘못된줄 알었구만. 다시는 그런 복 못받을소리 허지말고 자 그럼 어서 박 탑시다.
 
153
<휘모리>
154
실근 실근 당기어라 시르렁 실근 시리렁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툭탁-
 
155
<아니리>
156
박을 딱 타 놓으니 이번에는 박속에서 비단이 막 나달아 오는디 비단 이름이 각각 있든 것이었다.
 
157
<중중모리>
158
요간 부상의 삼백척 번듯돋아 일광단 악양루 고소대의 적성마미 월광단서왕모 요지연의 진산허든 천도문 천하구주 산천 초목을 그려내든 지도문 적설이 만린곤헌디 장부기상의 송백단 등태산 소천하의 공부자의 대단 남양초당의 경좋은디 천하 영웅 와룡단 사해가 분분 요란허니 뇌고 함성의 영초단 큰방골방 가루닫이 국화새긴 완자문 초당전 화개상의 머루다래 포도문 화란춘성 만화방창 봉접분분의 화초단 꽃숲풀 곁가지의 얼크러진 넝출문 통영칠 자개반의 안성유기 대접문 강구노인 격양가 배부르다고 함포단 투계주마 호걸들은 행화춘풍의 장원추 알뜰사랑 정든님이 나를 버리고 가겨주 두손길 덥벅잡고 가지말라 도리불 수 임보내고 홀로 앉어 독수공방 상사단 추월적만 공단이요 심산궁곡 송림간의 어무섭다 호피단 쓰기좋은 양태문 인정있는 인조사요 부귀다남 복수단 걸식과객의 궁초단 행실부족의 꾀초단이요 절개있는 모초단 서부렁 섭적 새발랑릉 노방주 청사 홍사 통견이며 백낙릉 홍낙릉 월하사주 당포 윤포 세양포 수주 통오주 성천분주 경상도 황저포 매매 흥정의 갑사로다. 해주 원주 공주 옥구 자주 길주 명청 세마포 강진 나주 극상세목이며 해남포 도리마 장성모시 건산지 한산세모시 생수삼팔 갑진고사 관사 청공단 홍공단 백공단 흑공단 송화색까지 그저 꾸역꾸역 나오는구나.
 
159
<아니리>
160
흥보 마누라가 송화색 한필들고 얼른 허는 말이 아이고 그거참 좋기도허다. 흥보 허는말이 “여보 마누라 마누라가 나한테 시집 온후로 한번도 잘 입어보지 못허고 항시 의복땀에 한이 되었으니 이제는 무슨 비단이든지 의복을 한번 해보시오. 마누라는 무슨 비단이 웃저고리 감으로 제일 좋습디여.”“나는 죽어도 노란 송화색 삼오장 저고리가 제일 좋습디다.”“촌 마누라라 어쩔 수 없다. 송화색이 좋다허니 그러면 송화색으로 해 입어보오.”
 
161
<중중모리>
162
흥보 마누라가 채린다. 흥보 마누라가 채리는디 의복을 지어 입고 차리자면 며칠이 될줄을 모르겠으니 우선 말로만 채린다. 나는 송화색으로 채린다면 송화색 댕기 송화색 저고리. 송화색 치마 송화색 단옷 송화색 속곳 송화색 속속곳 송화색 허리띠 송화색 주머니 송화색 보선에 송화색 당혜 송화색으로 수건을 들면 내 맵시가 어떻겠오.
 
163
<아니리>
164
흥보가 듣더니 “그렇게만 채렸으면 거참 볼만 허겄소. 버드 나무속에 꾀꼬리 새끼 아니면 노란 메조밥 먹고 누어 놓은 똥뎅이 영락 없겄오.”“아이고 참 영감도 그러면 당신은 무얼로 의복을 해입을라요?”“나는 제비같이 한번 채려볼까?”“아니, 제비같이 차리다니요?”“제비 은덕을 생각해서라도 제비같이 새까많게 흑공단으로 한번 해입어 볼테니 내맵시가 어떻겠는가 들어보오”흥보가 망건에서부터 보선까지 흑공단으로 내리 해내는디 말만 들어도 이런 가관이 없든 것이었다.
 
165
<중중머리>
166
흑공단 망건 흑공단 갓끈 흑공단 저고리 흑공단 바지 흑공단 허리띠 흑공단 대님 흑공단 행전에 흑공단 보선 흑공단 토수에 흑공단 배자 흑공단 도복에 흑공단 당혜 흑공단 부채를 손에들면 이내맵시가 어떻겠소.
 
167
<아니리>
168
흥보 마누라가 듣더니만“그렇게 채려놓으면 당신이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겄소.”“내 뽄이 어떻게 되겠오?”“가마구오자 오첨지 아들이 아니면 영락없이 청국사람 뽄이겠소.”“하하하 그말밖에 할말 없을게요. 여보마누라 한통 남은것 우리 마저 탑시다.”또 한통을 타랴헐제 흥보마누라 속자미가 벗석 나서“이통 탈 박소리는 내가 지어 먹일테니 당신은 뒷소리만 맞이시오”흥보듣고 추는말이 “가화 만사성이라니 자네 저리 좋아헌게 참 기물이 나오겄네 어데보소 잘먹이소.”
 
169
<중중모리>
170
실근 실근 당거주소. 어여루 톱질이야. 어화세상 사람들아 이내한말 들어보소. 천지간 좋은것이 부부밖에 또 있는가 어여루 톱질이야 우리부부 만난후에 설운고생도 많이 했네. 여러날 밥을 굶고 엄동에 옷이 없어 신세를 생각허면 발서 아니 죽었을까. 어여루 톱질이야. 가장하나 못 잊어서 오늘까지 살았더니 천신이 감동허사 박통속에 옷밥나와 만복좋은 우리부부 호의호식 즐겨보세 어여루 톱질이야 한상에서 밥을 먹고 한방에서 잠잘적에 부자서방 좋다허고 욕심낼년 많을테나 암개라도 얼른허면 내솜씨에 절단나리라. 어여루 톱질이야 시르렁 실근 당거주소.
 
171
<자진머리>
172
실근실근 박이 반만 벌어지니 뜻밖에 박통속에서 미인하나 나온다. 남녀 하인 백여명을 좌우로 거나리고 함교함태 나오는디 구름같은 머리털 낭자를 곱게허여 쌍용새긴 밀화비녀 늦으시 쩔렀으며 매아미 머리 나비눈썹 추파같은 눈동자 흑백이 분명허고 연짓밥 앵도입술 박속같이 고운이 삐비같은 두손길에 세류같이 가는 허리 응장성식 금수의상 외씨같은 발맵시로 아장 아장 아장 아장 아장 아장 아장 보보생향 나오는양 해당화 조으난듯 모로화 말허는듯 세옥성 맑은소리로 나짓이 묻는말이 “이댁이 박흥보씨 댁이오니까?”흥보가 깜짝놀래 나 이럴줄 알었제 당치않는 세간살이 그리 많이 나올적에 만단 의심을 허였드니 임자아씨 오셨구나.- 납죽 엎저 절을 허며 호좁은 박통속에서 평안히 오시니까. 이세간 임자시면 어서 가져 가옵소서. 내가 죄라고는 반찬도 없이 쌀 서른 한섬 밥지어 먹고 죽을 뻔허다 살어난 죄밖에 없소. 요만끔이라도 거짓이 있으며 내가 벗긴 쇠자식이요.
 
173
<아니리>
174
저미인 대답허되 놀래지 마옵시고 내말씀을 들어 보시요. 당명황을 섬기옵든 양귀비라 허옵니다. 마외역 죽은혼이 천하에 주류허며 임자를 구허드니 흥보씨 적선행인 제비편에 듣사옵고 부자의 첩이되어 춘종춘유 야전야의 무궁행락 누려볼까. 바래고 왔사오니 버리지 마옵소서. 흥보가 저의 아내 흑각발톱 다목다리 이것만 보던터에 이런 일색을 보아놓으니 오죽이 좋겠느냐. 손목을 덥석쥐다 깜짝놀래 덕놓으며 어디 그것 다루겠느냐. 살이 아니라 우무 덩이로다. 저것 한참 좋을적에 잔뜩 껴 앉거드면 능개질까 무섭구나.
 
175
<중머리>
176
서로보며 농창치니 그때의 흥보아내 좋은 보물 나올줄로 소리까지 맥인것이 금은보화는 고사허고 못볼꼴을 보았구나. 부정탄 손님같이 불시로 틀리난디 손가락 입에넣고 고개를 외로틀며 뒤로 돌아 앉으면서 흥! 저것들 지라허제. 박통속에서 나온세간 뉘것인지도 채모르고 양귀비와 농창인고 당명황은 천자로되 양귀비께 정신놓아 망국이 됐다는디 박통세간 무엇이냐. 당장 열끼도 굶드래도 시앗꼴은 못보겄네 나는 지금 나갈테니 양귀비와 잘지내소. 흥보가 가난허여 계집손에 얻어먹어 가장값을 못했으니 호령이나 헐수 있나. 사정조로 허는말이 여보소 애기 엄마 이것이 웬말인가 자네방에 열흘자면 첩의방에 하루자지 이렇듯 양귀비가 날만사람 보랴허고 만리타국 나왔으니 도로 쫓아 보내겄나.
 
177
<아니리>
178
흥보마누라 이말듣더니 그럼 꼭 그리허겄다고 우리 서이 고름맺고 맹세 합시다. 양귀비도 웃고 흥보도 웃고 서로보고 박장대소 옷고름을 맺고나서 양귀비 박통을 바라보며 무엇을 허는고. 호령을 허여놓으니.
 
179
<휘모리>
180
뜻밖의 박통속에서 사람소리가 수근수근 두러두런 우근우근 방포일성이 꿍뚜두룽 탕. 흥보내외 질색허여 아이고 박통속이 이어쩐 접전속이냐. 여보 마누라 임자가 공연한 말을 허더니만 이제는 우리가 다죽었나 보오. 흥보마누라 벌벌떠고 양귀비 앞에가 엎드러지며 여보시오 강남댁 다늙어죽도록 내방에 한번 안오드라도 내 아무소리 안헐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소. 그때여 박통속에서 사람들이 나오는디 석수. 목수. 와수. 토수. 각색장인 수백명이 각기연장 짊어지고 돌과 나무 지아돌을 수레에 실고 썰매에 싣고 소에 싣고 말께 싣고 지게도 짊어지고 떼비로 줄로끌며 지레로 밀고 나오는디 그중에 목수들은 대짜귀든놈 소짜귀든놈 도끼들고 톱도들고 낫도들고 대패들고 끌도들고 변탕먹통 잣대든놈 도래송곳 활비비든놈 심지어 메둥이 든놈까지 꾸역꾸역 나오는디 흥보집을 짓느라고 우당탕 퉁탕 야단을 허는구나. 흥보내외는 눈도 뜨지홋허고 벌벌떨며 까투리꿩 숨듯 나붓이 엎졌을제 상량을 허느라고 올라간다. 여기여차아 방포일성이 쿵-
 
181
<아니리>
182
사면이 조용헌디 곁에서 양귀비가 허는말이 고만 정신들 차리시오.
 
183
허거늘 흥보가 눈을 가만히 뜨고 바라보니 그 사람들도 간곳 없고 초막집도 간곳없고 기와집 수백간을 대궐같이 지어놨는디 강남사람 재주들은 이렇듯 기이헌지 벽붙인 그 진흙을 어느 겨를에 말리워 도배장판 반자까지 훤칠허게 허였것다. 집형상을 가만히 살펴보니.
 
184
<진양조>
185
동산하 너른곳에 팔괘를 놓아서 왼담치고 네모기둥에 도리얹고 부연달고 채양달고 모년모월 모일모시 입주 상량이라. 뚜렷이 새겨놓고 쎄 걸고 산자얽어 암기와는 뒤집어놓고 숫기와는 엎었으니 와가장군이 내렸난듯 안벽치고 밖벽치고 장유지 굽도리 도배까지 고루거각에 기와집으로 안채를 살펴보니 간좌곤향 오문에다 좌향대로 앉혀놓고 사랑채 행랑 별당 초당 서당 곳간을 좌우로 빼뜨러 지었난디 안팎 중문에 소슬 대문이며 벽장 다락이 좋을시구.
 
186
<자진모리>
187
안방치레를 볼작시면 용봉장 괴두지와 까끼수리 반다지며 평양장농 의주장농에 원앙침 잣벼개 천은 요강의 순금대야가 좌우로 벌여있고 동편곳간 열고보니 칠첩오첩 금반상기 은반상기 놋반상기 대양판 소양판 대합소합 은수저 놋수저 왠갖기명의 갖은제기 주걱 국제 식칼 조리 함박쪽박 불가래 부짓댕이까지 첩첩이 쌓여있고 서편곳간 열고보니 일산우산의 사모관대 각대요대 수혜자며 말안장 은협등자 옥안금천 황금록 청홍사 고운굴레 홍영자공산 호편과 후거리 견랑 쌓여 있고 홍두깨 방맹이며 다디미독과 윤디대리미 바늘상자 바늘 실 골미 가위 부전 잣대이며 비단 서답까지 쌓여있고 북편 곳간 열고보니 여럿이 찧는 디딜방아를 뚜렷이 채려놓고 혼자찧는 절구방아 절구통 절구대 흩채 접채 치와 얼맹채며 베틀씨앗에 물래틀과 쟁기열채 써래 열둘 호미따부 쇠시랑 괭이 삿갓 도롱이 접살이며 도리깨 흘태 갈퀴 멍석 방석 씨오쟁이 메통맷돌 풀독이며 또르락 꼽박신골 방망이 지게발대 똥장군과 오줌항아리 개똥망태 거름친 거랭이 심지어 옻칠한 통시가래까지 차례 차례로 쌓여구나.
 
188
<아니리>
189
차소위지성이면 감천이라 흥보는 이렇듯 꿈속같이 부자가 되었겄다.
 
190
<평중머리>
191
원채에는 본처두고 별당엔 양귀비요 행랑에는 노속이라 흥보는 심심허면 양귀비와 손길잡고 후원에 화초구경 옥락간 밝은달에 둘이 마주 비겨앉어 우의곡 채련곡을 한가히 희롱허니 이러한 지상신선 어느 세상에 또 있을리.
 
192
<아니리>
193
이때에 놀보가 저의동생 부자되었단 말을 듣고 배를 앓고 있다가 하로난 묻고 물어 흥보집을 찾어가니 고루거각 기와집을 뻐드러지게 지었거늘 대문밖에 서서 네이놈 흥보야 허고 불러놓니 흥보 사라에 누웠다가 저희형 음성을 듣고 버선발로 뛰어나와 저희형께 절을하며 형님 제가 건너가 뵈어야 할일인디 형님께서 먼저 이리 오시오니 하정에 황송 하옵니다. 놀보가 흥보를 뻔히 보더니만은 너같은 부자들이 나같이 가난한 사람 찾어오기 쉽겄냐. 그런데 이게 뉘집이냐 형님 이게 제집 이올시다. 아 이것이 네집이여. 강산지 괴변이로다. 그러면 들어가자. 흥보가 앞을서고 놀보가 뒤를 따러 들어가며
 
194
<중머리>
195
흥보집을 살펴보니 찬란허고 웅장허구나 대문안을 들어서니 연못안에 석가산을 대대층층 무었난디 연못속에 백거위는 저희끼리 짝을지어 둥덩둥덩 떠서 놀고 화계상 각색화초는 손을 보고 반기는 듯 사랑에를 들어서서 방안치레를 살펴보니 각자장판 능화도배 소래반자 완자밀창 모란자 오색보료 청담홍담 백담요와 밀화쟁반 호박대야 청유리병 황유리병 유리등 양각등 면경채경 옷거리며 문체좋은 대모책상 화류문갑 비취연상 산호필통 마노연적 용지연 봉황필과 왜필당필 당두지며 시전주지 서전주지 금책지한테 말아서 시부편에다 접쳐놓고 서책을 쟁였는디 사서삼경 예기춘추외 자서전집이며 통감사략 소학명심보감 연주시 당률 동몽선습 만물집 천자귀초까지 좌우로 모도다 쌓였구나.
 
196
<아니리>
197
전후에 보지도 못하든 것이 이렇듯 쌓여 있거늘 놀보가 장석으로 턱 앉으며 야 거 네사랑 장히 좋다. 흥보가 저희형을 사랑에 모셔놓고 안으로 들어가 여보마누라 형님이 건너 오셨으니 어서 나가 인사 여쭙도록 허시요. 흥보 마누라 놀보 왔단 말을 들으니 사지가 벌렁벌렁 떨리건마는 가장의 영을 어기지 못하여 나오는디
 
198
<중중모리>
199
흥보 마누라가 나온다. 흥보 마누라가 나오는디 전일에는 가난허여 못먹고 헐벗었지만 이제는 돈이 없나 비단이 없나 은금보화가 없느냐 비취옥잠에 가진패물 굴레같은 은가락지를 손에 끼고 한산세모시다가 당청에 물을 포로소롬허게 들여 주름은 잘게 잡고 말은 넓게 달아입고 며느리들을 앞세우고 아장아장 나오더니 시숙님 그간 안녕 하셨습니까 제수가 이렇듯 절을허니 우리네 같으면 마땅히 일어나서 제수씨 그간 어린자식들을 데리고 어찌 고생을 허셨습니까 허련마는 저 때려죽일 놈이 제수가 절을 허는디 발을 당그랗게 개고앉어 제수를 보더니 들판에 잘된 곡식 추듯허든 것이었다. 그것참 잘 되어 먹었다. 쫓겨날때 보고 지금 본게 미꾸라지가 용 되었는걸. 흥보 마누라 들은 척도 아니허고 안으로 들어가 음식을 장만 허는디 잔치집 존장치게 채리던 것이었다.
 
200
<자진머리>
201
음식을 채리는디 안성유기 통영칠반 천은수저 구리저의 집리서리 수벌리듯 주루루 벌여놓고 꽃그렸다 오죽판 대모양각 당화기 얼기설기 송편 네귀번듯 정절편이며 주루룩 엮어 산빈덕과 평과진청 생청놓고 조락산적 웃김쳐 양회간 천엽콩팥양편에다가 벌여놓고 정단수단의 잡박이며 인삼채 도라지채 낙지 연포 콩기름에다 시금채로 웃짐을 쳐 갖은양념?아놓고 편적거적 도적이며 절창볶기 매물탕수 어포육포 갈라놓고 천엽쌈 벙거지꼴 갈비찜 양지머리 차돌배기를 듸려놓고 가진실과 다괴았다 생률 황률 은행대추 고산참배 임실준시 호도백잣 곁들이고 끌끌우난 생치다리 호두득 포두둑 매초리탕 꼬끼요 영계찜 어전육전 지지개며 수란탕 초포채에다 겨자고초 생강마늘 문어 전복 봉을오려 나는듯이 괴어놓고 전골을 들여라 전골을 들이난디 청동화로 백탄숯불 부채질을 활활 고초같이 이뤄놓고 살찐소 반짝고기 반환도 드는칼로 점점편편 오려내어 꾀소금에다 참기름쳐 부수수 불려 채워내어 대양판 소양판 예도담고 졔도담고 산채고사리 수근미나리 녹두채 맛난장군 주루루루 듸려놓고 계란을 톡톡 깨어 웃딱지를 떼고 길게 늘이워라. 손 뜨건디 쇠저말고 나무저를 들여라 고기 한점을 덤벅 집어서 맛난기름의 간장물에다 풍덩 들이쳐 덤벅 피시
 
202
<아니리>
203
이렇듯 상차려다 놀부앞에 들여놓고 흥보가 술을 부어 권허며 형님
 
204
약주 드십시오. 허거들랑 이놈이 썩 받어먹는것이 아니라 여봐라 흥보야 내가 남의 초상마당에서도 권주가 없이는 술 안먹는 속 너 잘알지야. 네 계집 곱게 꾸민김에 권주가 한꼭대기 시켜 보아라.
 
205
<진양조>
206
흥보 마누라 기가막혀 흥보든 술잔을 앗어다 후닥딱 방바닥에다 부닥치더니마는 여보시요 시숙님 여보여보 아주버님 제수더러 권주가 허라는법 고금천지 어디서 보았소. 전곡자세를 고만 허시오. 나도 이제는 돈과 쌀이 많이 있소. 엄동설한 치운날의 구박을 당허여 나온던 일과 처자들을 굶겨놓고 찾어간 동생 피가 솟도록 쳐보낸 일을 곽속의 들어도 나는 못잊겄소. 보기싫소 어서 가시요. 속을 차리면 뭣허러 내집을 찾어왔소. 어서가오 보기싫소. 안갈라면 내가 먼저 들어 갈라요. 떨떠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207
<아니리>
208
놀보란놈이 공연한 재 저질러놓고 제손수 무안허여 허는말이 더 괘씸허겄다. 요망스럽게 여봐라 흥보야 네가 형제간 윤기를 알거든 네 계집 버려라. 내가 새장가 들여주마. 계집이 집구석에서 내주장을 허면 그놈의 집구석은 망허는 법이니라. 당장 버려라 버료. 그건 그렇고 또 네게 헐말이 있어. 형님 무슨 말씀 이신지요.
 
209
<자진머리>
210
내가 근래 듣자허니 네놈이 밤낮으로 자식들 앞세우고 도적질을 잘헌다니 네 이말이 분명허지 흥보 기가 맥혀 형님 이게 웬 말씀이요. 선영에서 시키지않고 배우쟎은 도적질을 어찌 헌단 말씀이요. 네 이놈아 듣기싫다. 그러면 이 가산과 이재물이 일조일석에 다 어디서 났단 말이냐. 네놈을 잡으랴고 오영문 출사들이 벌떼같이 나섰다니 그 아니 딱헌 일이냐. 사의지차 허였으니 네놈은 잔말말고 천지 누설 헐것 없이 세간과 전답 문서이며 돈괘 곳간 쇠때까지 내게다 맡겨두고 처자를 거나리고 멀리 도망가서 십년만 한정허고 잠자코 피신허다 이곳이 무사타고 내가 기별을 허거들랑 그때 돌아오도록 하여라.
 
211
<아니리>
212
십년 아니라 백년을 있다 오더라도 네 세간에다 내가 손을대면 네 아들놈이다. 흥보가 저희 형 속을 아는지라 형님 그런것이 아니옵니다. 흥보가 그 부자된 내력을 낱낱이 말을 허니 놀보가 듣더니만 아니 그래 제비다리를 부지르면 박씨를 물어와. 부지른 것이 아니오라 그놈이 날기공부 허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런진것을 그래동여 살려줬어요. 그래서 그 제비가 물어온 박씨를 심어가지고 부자가 된것이옵지 무슨 도적질을 했사오리까. 놀보가 가만히 듣다가 허는말이 거 안떨어지면 어쩔것이냐. 다리를 부질러야지. 그런디 가만 있거라. 저 웃목에 벌건헌 장롱이 저게 무슨 장롱이냐. 그게 화초장이 올시다. 화초장이요. 거 이름한번 좋다. 그속에 뭐 들었냐. 예. 은금보화가 가뜩 들었습니다. 그럼 그것 하나도 꺼내지 말고 저장롱 나 도라. 예 그리 허옵지요. 그러지않아도 형님 드릴라고 따로 몫지어 놨습니다. 그럴 것이다. 내가 어려서 너를 얼마나 이뻐했다고야. 내놔라 온짐에 짊어지고 갈란다. 흥보가 명주 한필을 꺼내다가 질빵거려 내놓으니. 놀보란놈이 화초장을 짊어지고 잊어버릴까봐 주워섬기며 가든 것이었다.
 
213
<중중모리>
214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얻었네 얻었네 화초장 하나를 얻었네. 오늘 걸음은 잘 왔구나. 대장부 한번 걸음에 화초장이 하나가 생겼구나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또랑 하나를 건너뛴다. 여기가 솔찮이 미끄럽단 말이여 가만있자. 옳지 간신히 건넌후에 초화장 아아 장화초 어어윗다 이것을 잊었다. 허허 이것을 잊었구나. 아이고 이것이 무엇이냐. 갑갑허여서 내가 죽겄구나 아이고 이것이 무엇이냐 이놈이 이것을 뒤집어 붙이면서도 모른던 것이었다. 초화장 아니다. 장초화 아니다. 화장초 아니다. 초장화 아니다. 장화초 아니다. 다 이것이 무엇이냐. 천장 방장 구들장 아니다. 된장 간장 고추장 아니다. 고초장 고초장 이것은 비슷허면서도 아니로다. 이것이 무엇이냐. 아이고 이것이 무엇이냐 에라 내가 우리집으로 가서 우리 마누라를 닥달헐 수밖에 저희집으로 돌어가며 여봐라 여편네야 집안 어른이 어디 갔다가 집이라고 들어오면 우루루루루루 쫓아나와 영접허는게 도리옳지. 좌의대사가 웬일이냐. 에라 이년 요망허다. 놀보 마누라 나온다. 놀보 마누라 나와 영감 오신줄 내몰랐소. 내잘못 되었소 들어갑시다. 이리오시오 이리와.
 
215
<아니리>
216
너 목쓸라 말고 내 짊어진것 이것이 무엇이냐 아이고 무거운디 위선 거 좀 내려나 놓으시오. 다 이 급살맞은년아 갑갑혀 나죽겄다. 얼른 가르켜라. 우리 친정 아버지가 서울가서 그런 장롱을 사왔는디 화초장이라고 헙디다. 놀보가 진을 키든 꿈깬듯이 어찌 반갑든지 그래 그래 화초장 이제. 아이고 내딸이야. 에이 여보시요. 원세상의 그것이 무슨 소리요. 다 바쁠때는 그리도 허고 저리도 허지 어찌여. 그런데 이장이 어디서 났소. 흥보가 과연 부자가 됐어. 참으로 부자가 됐어요. 응. 그런디 아 제비다리를 부질러 갖고 부자가 됐다니 나도 제비를 좀 많이 길러야 되겄어.
 
217
<자진머리>
218
그날부터 차비헐제 신 잘삼는 사람들을 십여명 골라다가 매일 삯전 석냥씩 삼시먹고 술담배 착실히 대접허여 외양덕음에 쟁여놓은 신삼을 찰볏짚을 여러짐 들여다가 제비집 수백개를 밤낮으로 만들어 안채 사랑채 행랑곳간 서당 별당 뒷간이며 앞뒤처마 들보 석글 빈틈없이 달어놓고 그래도 부족허여 제망건 당혜에다가 풍잠달듯 달어쓰고 아무리 기다려도 제비가 아니오니 제비땀에 환장되어 상사병이 일어나서 만물을 사랑해도 제비짜 드는것만 꼭 사랑허는구나. 길짐생은 끝이 같어 쪽자만 떼고보면 바로 이름이 제비라고 쪽제비만 사랑허고 마른 그릇은 다버리고 모제비만 사들이고 음식은 칼제비나 수제비만 허여먹고 종이란 눈에띄면 간제비만 접어놓고 제비땀에 화가나면 동인들과 두제비와 목제비만 허는구나.
 
219
<아니리>
220
아무리 생각해도 백계무책 도리없어 하로난 그물을 맺어들고 제비를 후리러 나가는디. 제비를 어떻게 후리느고 허니 옛날 우리나라 팔명창이 계실 시절에 팔명창중 권삼득 선생님 더늠인디 이 더늠을 후에 감찰 송만갑 선생님 전통으로 우리나라 인간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계시다가 이미 고인이 되신 동초 김연수 선생님께서 저를 가르쳐 주셨는바 도저히 저희 선생님같이 헐수는 없지마는 되던지 안되던지 흉내라도 한번 내보던 것이었다.
 
221
<중중모리>
222
이때 춘절 삼각의 연자 나비는 펄펄 제비 몰러 나간다. 제비를 후리러 나간다. 복희씨 내신 그물을 에후리쳐 들어메고 망당산으로 나간다. 이편은 우두봉 저편은 좌두봉 건넌봉 맞은봉 좌우로 칭칭 둘렀난디 아 이리와 덤불을 툭쳐 후여 허허허쳐 저 제비 어느것으로 향헌다. 연비 여천에 소래기보아도 제비인가 의심허고 남비오작에 까치만 보아도 제비인가 의심허고 춘일황앵의 꾀꼬리만 보아도 제비인가 의심허고 저기가는 저 제비야 그집으로 들어가지를 마라. 천화일에 지은 집이로다. 화급동량이라. 내집으로 들어 오너라. 이이이루워.
 
223
<아니리>
224
날만새면 밝에나가 제비 몰기로 일삼을제 하로난 신수 불길헌 제비 한쌍이 놀보집을 들어오니 놀보가 어떻게 반갑든지 소반에다 정화수를 받쳐 처마밑에 차려놓고 두손 합장 절을 허며 제비님 오시나이까 어찌 이리 행차가 더디시어 내간장을 녹이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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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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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에다 금줄치고 부정을 가리면서 알낳기를 기다릴제 여섯개 낳았는디 마음 바쁜 놀보놈 주야로 어찌 만졌던지 다섯개를 조독이 올라 모도다 곯아 버리고 다만 한개 겨우 까서 날기 공부헐제. 제비 새끼 날라허고 제집에 발 붙이고 날개를 발발떨면 놀보놈 바라보고 떨어집소사 떨어집소사 손을 싹싹 부벼도 종시 떨어지지 않고 아무리 대문간을 눈빠지도록 돌아보아도 구렁이는 아니오니 허어 이놈의 구렁이 기다리기가 제비 기다리기보다 훨씬 더 힘이 드늘걸. 구렁이는 오지않고 제비는 날게되니 저것 날러 가버리면 십년공부 허사로다. 에라 내가 구렁이 노릇을 헐밖에 수가 없다. 혀를 널름널름허면서 구렁이 형용을 허고 엉금 엉금 엉금 엉금 엉금 기어들어가 제비새끼 집어내 두다리 질끈 부지르더니 미루어 선뜻 던져놓고 모르는체 돌아서 뒷지미지고 거닐면서 목소리 크게 내어 풍월 한귀를 읊는구나.
 
227
<창조>
228
황성에 허조 벽산월이요. 고목은 진입창호운을
 
229
<아니리>
230
앞으로 돌아서며 제 손수 깜짝놀래 생침맞는 된 목소리로 여보소 마누라 놀보마누라 뛰어 나오니 여보소 내가 잠시 거니노라 미처 보들 못했더니 구렁이가 물어 제비새끼 떨어져 절각이 되었으니 불쌍허여 볼수 없네. 어서 동여 살려주세. 흥보는 명태껍질로 싸 주었다지만 나는 더 튼튼한 민어껍질로 싸주리라.
 
231
<중머리>
232
민어껍지리과 당팔사로 중선배 닿줄감듯 칭칭감어 집에넣고 행여나 촉풍헐까 큰 두대 멍석으로 여러겹을 둘렀구나. 어미제비 들어와서 그 정상을 살펴보고 자모지정 슬픈마음 한없이 탄식헌후 무슨 괴변 또 있을까. 밤이면 잠 안자고 주변을 살피면서 두쭉지로 싸서안고 낮이면 번갈아서 밥을 물어다 구원헌다.
 
233
<아니리>
234
놀보 망헐 제비어든 죽을리가 있으리오. 십여일을 지나더니
 
235
<진양조>
236
부러진 다리가 완골되어 앉어도 보고 날어도 보고 무수히 공부를 허더니만 구월구일 당도허니 거중에 높이떠서 제비말로 지지지지 주지주지 아느냐 주인놈아 에이 몹쓸 놀부놈아 날과무삼 원수되어 생다리 꺽어 이 병신이 되었으니 만리강남 먼먼길을 어데가 쉬어 가잔 말이냐 속 못차린 놀보놈은 제비를 바라보며 반갑다 내 제비야 네 아무리 미물인들 재생지은을 잊겠느냐. 수히 강남을 들어갔다가 명년 삼월 나올적에 부디 박씨를 물고 오너라.
 
237
<아니리>
238
놀보 제비 세마리는 강남으로 들어가 제비왕께 현신후에 놀보놈 전후내력 낱낱이 말을허니 제비왕이 분을 내어 원수구자 바람풍자 쓴 박씨 하나를 내어주며 이걸 갖다 놀보 주어 원수를 갚게하라. 저제비 받아물고 제처소에 돌아가 명춘을 기다릴제
 
239
<중중모리>
240
그해 겨울을 다 보내고 입춘 우수 경칩 춘분을 지내어 삼월삼질이 당도허니 나무나무 속잎나고 가지가지 꽃필적의 놀보제비 거동보소. 박시를 입에다 물고 거중의 둥실 높이 떠 촉나라 사천리 촉산도 이천리 팽성도 오백리를 넘어 하루밤 쉬인후에 아방궁을 얼른지나 월하성 일만 이천리를 순식간에 지냈구나. 게서 잠깐 쉰후 주야로 펄펄날어 놀보집을 당도허니. 놀보보고 좋아라고 반갑다 내제비야 어디를 갔다가 이제와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내제비 소호시절 이조기관 벼슬하러 네 갔더냐 유소씨 귀목이소 집배우러 네갔더냐 어이 그리 더디와서 내간장을 다 녹이느냐 박씨 물어 왔거들랑 어서 급히 나를 다오. 손바닥을 쩍 벌리고 제비에게 절을허며 박씨 주기만 기다릴제. 저제비 거동을 보소. 물었던 박씨를 놀보손에다 뚝떨어치고 거중에 둥실 높이 솟아 백운간으로 날어간다.
 
241
<아니리>
242
놀보 받아들고 여보소 마누라 살림밑천 여기왔네 놀보마누라 달려나와 박씨를 들고 보더니 아이고 이것 바삐 갖다버리시요. 놀보 깜짝 놀래 애잉 아니 어째서 원수구짜 바람풍자가 씌었으니 원수갚을 풍파란 말 아니요. 놀보가 대답허되 무식헌 여편네가 무엇을 안다고 이래 모르면 물어라도 볼것이제.
 
243
<중중모리>
244
구자 내력을 들어보소. 구자 내력을 들어봐 원수구라 허는글자 군자호구란 짝구자와 꼭같은 글자이니 흥보박에 양귀비 나오듯 이박에선 서시가 나와 내짝이 된다는 말이로세. 놀보계집 들어보니 사람죽을 말이로다. 못심게만 허는말이 그는 그러허다 치고 바람풍자가 웬일이요. 바람풍자가 더욱좋네 옛날 태호 복희씨는 풍성으로 왕허시고 순인군 오현금 남풍시를 화답허고 문무성왕의 장헌성덕 천무열풍 허였고 주공은 성인이라 빈풍시 지으시고 한태조 수수풍과 광무황제의 곤양풍 와룡선생의 적벽풍 백이숙제의 고절청풍 엄자릉의 선생지풍 도정절의 북창청풍 만고에 많었으니 그아니 좋을손가. 우리도 이박을 심어 슬슬 동풍의 입묘허여 사월남풍에 고이 자라 우순풍조 좋은시절 꽃피고 박이열려 팔월금풍따서 켜면 보물이 풍풍나와 왼집안이 풍덩풍덩 근래 퐁속에 좋은 호사 감사풍채 호박풍잠 학슬풍안 떠 괴이고 네귀에 풍경달고 방안에는 병풍치고 선풍도골 이내몸이 주야풍류 놀거드면 그아니 풍족헌가 그런풍간을 허지마소.
 
245
<아니리>
246
아무말 말고 어서 심어보세 동편처마 담장밑에 구덩이를 깊이파고 일년농사 지을 거름 한꺼번에 져다붓고 단단히 심었겄다. 아적때 심은것이 저녁때 돌아가본즉 발서 박순이 수종난놈 수퉁 다리만 허게 솟았는지라 놀보계집 깜작놀라. 아이고 영감 저것 아마도 무슨 재변이 생기겠소 바삐 뽑아 버리시요. 놀보듣고 화를내어 여편네가 또 방정맞은 소리를 허여. 나물 될것은 떡잎부터 안다지 않어. 이박 넝출이 날마다 갑절씩 쭉쭉 뻗어 나가는디 옆에서 순이나고 순이 더욱 굵게뻗어 어데가 턱걸치면 모도다 무너질제 사당에 걸치더니 사당이 무너져서 신주가 깨어지고 곳간에 걸치더니 곳간이 무너지고 왼동네로 다 뻗어서 이 넝출이 뉘집이고 턱 걸치면 무너지고 무너지면 값을 물고 헌것이 삼사천량이 훨씬 넘었겄다. 놀보가 벌써부터 박땀에 이렇게 손재를 당헐적에 박 여섯통은 놀보 집후원에가 열고 박 한통은 뒷집 울밑에 가 열렸는디 밤중만 되면 박통속에서 장고소리 소고소리 징 꽹꽈리 소리가 나니 이밖은 초라니 패 든 박이었다. 이때는 어느땐고 추팔월 망간이라. 금풍이 소슬허니 희면서도 누르스름허게 익은박이 완연히 금빛이었다. 놀보놈이 좋아라고 저 박빛이 누런것은 분명히 금들었제. 책력을 펼쳐놓고 갑자일로 택일허여 삯군 삼십여명을 사가지고 박을 타는디. 놀보가 설소리를 먹이되 금이 꼭 나올줄로 금말만 가지고 먹이던 것이었다.
 
247
<진양>
248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 어유와 톱질이로구나 어와세상 사람들아 금의 내력을 들어보소 초한적 진평이는 범아부를 잡으랴고 황금 사만근을 초군중에다 흩었으며 소진이는 구변좋아 많이얻어 실어갔고 곽거는 효성으로 묻힌금을 파내었네 시르렁 시르렁 당기어라 톱질이야 나도 이박을 어서타서 금이 많이 나오거드면 이 동리를 동명갈아 말경에는 금곡동이라 부를란다. 에여루 당기어라.
 
249
<자진머리>
250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박이 활짝 벌어지니 뜻밖에 박통속에서 노인한분 내닫는디 차린 복색 괴짜로구나 다떨어진 헌베바지 깊은살이 다보이고 삼승마포 적삼우에다 개가죽 묵은배자 무릎까지 털렁털렁 구녁뺑뺑 중치막은 아랫단 황토묻고 떨어진 체뿔관에다 석자가옷 헌베줌치 일가산을 넣어차고 곱돌조대 중둥쥐고 놀보놈 안방으로 제집같이 들오는디 토깽이 얼굴에다가 빈대코가 맵수있고 뱁새눈 병치입에 목소리는 장히 크다. 두눈을 부릅뜨고 놀보놈을 바라보며 네 이놈 놀보놈아 네 할애비 덜렁쇠 네할미 허천덕이 네아비 껄덕쇠 네어미 빨닥네가 모다 댁에 종일터니 병자팔월 과거보랴고 서울올라 간지후로 댁사랑이 비었을제 흉악헌 네아비놈 가산모다 도적허여 부지거쳐 된연후의 종적을 몰랐더니 제비에게 소식듣고 불원천리 예왔노라. 네 가솔 네세간을 박통속에다 급히담아 댁에 가서 시종하라.
 
251
<아니리>
252
놀보가 들어보니 사람 상헐 말이로다. 아니라고 떼자해도 삼대가 되었으니 증인세울 사람없고 송사를 허자허니 좋지 못헌 이근본을 읍과촌이 다알테요. 싸워나 보자헌들 저양반 생긴뽄이 장작불에다 집어넣어도 안타질 모양이라. 어찌허면 무사헐고 저혼자 궁양헐제 저양반 호령허되 네이놈 놀보야 이놈 구상전이 와계신데 네계집 네자식들 문안도 아니허니 이런법이 있단말이냐. 강남하인 이리 오너라.
 
253
<중머리>
254
박통속이 관문되어 수십명 대답소리 동학이 으근으근 귀꼴허고 보기도 겁난 번쾌같은 하인들이 몽치들고 졸바들고 꾸역꾸역 퍼나오니 놀보가 하릴없어 복지애걸허는구나. 여보시요 상전님 이동리가 반촌이요. 삼대조부 객반으로 이고장을 살려와서 모모헌 양반댁이 모도다 사돈이온바 이손문이 나거드면 소인은 고사허고 그양반들 우세오니 방장부절 처분으로 아무말씀 마옵시면 섭전으로 바치오리니 속량허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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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256
네아비 죄상을 생각허면 기어코 잡어다가 조금만 잘못허면 사랑앞 마줏대어 거꾸로 메어달고 대추나무 방맹이로 두발목 복숭씨를 꽝꽝 우려 때려가며 부려먹을 일이로되 차역인자라 그래 공돈 속돈 바칠테면 지체말고 곧 바쳐라. 놀보 여짜오되 얼마나 바치리까 너만놈을 다리고 다소를 다투겠느냐. 허드니 조금만 헌주머니 하나를 내어주며 너야 전곡간에 뭘로 채우던지 이 주머니만 가뜩채워 오너라. 놀보놈 속마음으로 저양반 저억지에 많이달라 허거드면 이일을 어찔헐꼬 잔뜩 염려허였다가 주머니만 채우라니 마음에 하도 기뻐 예- 그리 허오리다. 주머니를 받아들고 제방으로 들어가 엽전 가득 담긴 주머니를 그 주머니에다 대고 조르르르르 부어놓니 놀보주머니는 홀쪽허여 없어졌는디 센님이 준 주머니는 여전히 암시랑토 않고 가뿐헌지라 놀보 어이없어 마- 요런 잡것보소 여 허더니 돈궤를 턱 열어놓고는
 
257
<자진모리>
258
돈뀌미를 풀어내어 한줌을 넣어도 간데없고 두줌을 넣도 간데없고 석줌을 넣도 간데없고 닷줌을 넣도 간데없다. 싸돈이라 이러헌가. 양돈으로 넣어보자. 한냥을 넣도 간데없고 석냥을 넣도 간데없고 닷냥을 넣어봐도 아무흔적 없어지니 괫돈으로 넣어보자. 스무냥씩 묶은돈을 한다발 넣도 간데없고 열다발 넣도 간데없고 주머니 생긴뽄이 무엇을 넣으랴허면 주둥이를 쩍벌리고 산덩이로 들어갈듯 넣고보면 삼키는듯 아무흔적 간곳없네. 아이고 이게 무슨 주머니냐. 날 죽일것이 생겼구나. 주머니를 들고 와서 양반 앞에가 엎드러지며 아이고 여보시요 양반 앞에가 엎드러지며 아이고 여보시요 상전님 이게 무슨 주머닌지 사람죽일 주머니요. 아무리 집어넣도 한강투석 되고마니 이게 어쩐 일이니까.
 
259
<아니리>
260
저양반 호령허되 에라이놈 간사허다. 공돈 속돈 받자허면 몇만냥이 되겠으나 수만리 먼먼 길에 연거허기 괴롭기로 양쪽 폐를 생각허여 주머니를 채오라니 아무것도 넣지않고 이소리가 웬 소린고. 네 저놈 매어달고 방맹이로 우리어라. 좌우에서 대답소리 「놀보 정신이 아득허여 그자리에 다시 엎어지며」
 
261
<중머리>
262
비나이다 비나이다. 상전님 장헌덕택 살려주오 비나이다 살려주오 살려주오 공돈 속돈 다 바치제 정녕 주머니는 챌수없소. 네 소원이 그렇다면 네 할애비 양주부터 네 아비 내외허며 너의 연놈 자식까지 매명하에 삼천냥씩 이만천냥을 곧 바쳐라. 만일 잔말 하여서는 네놈마저 여기다 넣으리다. 주머니를 쩍 벌리니 놀보가 질색허여 목을 딱 움츠리며 「예 분부대로 바칠테오니 제발 그 주머니좀 넣십시요」 놀보가 밖에나가 헐가로 전답을 잡혀다가 이만천냥을 바쳤구나.
 
263
<아니리>
264
놀보가 속량터니 상전이라 아니허고 생원으로 부르난디. 여보시요 생원님 기왕작처 헌일이니 그 주머니 이름이나 좀 가르쳐 주옵소서. 오- 이걸 능청랑이라 허느니라. 능청광이요. 그 주머니가 사람 여럿 죽일 주머니요. 이 주머니가 아 사람을 죽이는 주머니가 아니라 사람 아닌놈만 꼭 죽이는 주머니다. 이놈 똑똑히 들어 보아라.
 
265
<평중머리>
266
천지가 개벽헌 연후의 불충불효 허는놈들 무의무도 모은재물 뺏어가는 주머니다. 뉘해 뉘해 뺏어갔소. 어찌 다 세겠느냐. 한나라 양기세간 밥그릇 수저까지 몽땅 모도다 뺏어갔지. 그 세간은 전곡간에 얼마나 되더이까. 돈만해도 오억만냥 쌀과 보리가 오억만석이나
 
267
한편귀도 못채웠고 또 당나라 원자세간 큰 부자라 허였지만 모도다 쓸어넣어 보아도 반주머니도 못되더라. 그 세간은 도통 합이 얼마나 되더니까. 돈은 조가 훨씬넘고 쌀만 오천오백만석 벼가 오천백만석이요. 보리가 칠천만석 콩팥이 합쳐 이십만석 참깨가 이만오천석에 들깨가 이만석 차조 메조가 삼십만석 옥수수가 삼만석이요. 피가 육만오천석 지장이 구만석에 수수가 칠만석 호추가 가루로 팔천석이제. 그렇게 뺏어다가 어데다 써 계시요. 인군에게 충성허고 부모님께 효도허고 형제간 우애허고 친구구제 허는사람 형세가 가난허면 그 재물 나눠주어 부자되게 허였지야
 
268
<아니리>
269
너도 이놈 그 맘보를 질게 개과않거드면 한장동안 한번씩을 큰비가 올지라도 무장허고 올것이니 그리알고 지내렸다. 저양반 돈을집어 주머니에 넣더니만 두어걸음 나가더니 인흘불견이었다. 박타던 역군들이 모도다 무색허여 가기로 작정허니 놀보가 만류허며 여보소들 아까 나온 그노인이 상전이 아니라 은금이 변화허여 나를 시험헌것이니 아무말 말고 박타세. 둘째통을 타랴 헐제 「놀보계집 달려들어 여보영감 이박을 또 타다가는 집도 터도 안남겄오. 제발 이박 타지 맙시다. 놀보가 홰를 내어 여편네가 방정맞인 소리를 꼭 헌단 말이여. 잔소리 말고 가만히 닥틀고 있어. 자 어서 타세.
 
270
<중중머리>
271
실근 실근 당거주소 에여루 톱질이야. 여보소 역군들 말을 듣소. 계집년의 방정땀에 나올 보물도사가 되겄구나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 정녕코 좋은 보물 이박통에 있을테니 일락서산 덜 저물어 어서급히 당거주소. 어여루 톱질이야. 박이반만 버러지니 상여한채가 나오는디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어넘차 너화너 어너어넘차 어이가리 넘차 너화너 북망산이 머다더니 놀보 집터가 북망이로구나 어너 어넘차 어이가리 넘차 너화너 여보소 상여군들 우리도 죽어서 이길이요 놀보도 죽으면 이길이로구나 어넘차 너화너 상제하나가 나오면서 아이고 아이고 서룬지고 가난이 원수로다 삯 백냥에 몸이팔려 헛울음에 목이 쉬었구나 어너어너 어넘차 어이가리 넘차 너화너
 
272
<아니리>
273
「관음보살 관음보살」허더니 상여를 턱 내려 놀보 안방에다 영구를 모셔놓고 사아제 오백명이 울면서 꾸역꾸역 나오는디 어찌허여 상제가 오백명이나 된고허니 제비왕이 놀보를 망해줄랴고 북망산에서 제일 가난헌 귀신만 말끔 삯을주고 사서보낸 상제들이었다. 상제들은 아이고 아이고 울음을 우는디 허저같은 상여꾼들 설흔두명은 눈을 딱 부릅뜨고 벽력같은 큰 소리로
 
274
<자진모리>
275
쥔놈 놀보 어데갔나. 병풍치고 젯상놓고 촉대에다 밀초켜고 향로에 향피워라. 제물먼저 올린후에 상식상 곧 차려라. 방더울라 불때지말고 괴들어갈라 굴뚝을 막어라. 만일에 지체허다는 죽고남지 못하리라. 놀보가 황겁허여 대강 거행한 연후에 상제전 문안허고 공순히 여짜오되 어떠하신 상행차인지 내력이나 아사이다. 상제가 대답허되 우리댁 노생원님 너를 찾어 보실량으로 첫박통 행차허셔 너를 속량허여 주시고 환행차 허신후에 네정성 극진허여 자식보다 낫더라고 매일 자랑허시더니 노인의 병환이라 병환나신 하로내에 별세를 허셨난디 놀보의 안방터가 장히 좋은 명당이라 찾어가 내말허면 반겨 허락을 헐것이니 갈길이 머다말고 게가서 장사허되 만일 의심을 허거들랑 이것을 보여주면 신적이 될것이다. 재삼유언 허시기로 상행차 모시옵고 불원처리 찾어왔다. 어서바삐 집 뜯어라.
 
276
<아니리>
277
이 야단을 허면서 산적이란게 다른것이 아니라 노생원님이 평생 애지중지 허시든 바로 이것이다 허며 소매속에서 능청랑 주머니를 실금히 내놓는디 놀보가 이것을 보니 송장보다 더 징헌지라 질겁하야 꿇고 엎져 상제님 살려주옵소서 노생원님 허신유언 임종시 정신없어 혼미중에 헌 말씀이요. 이놈아 정신없는 말씀허실 노생원님이 아니시다. 아이고 아이고 하관시각 늦어질라. 지체말고 집 뜯어라. 아이고 놀보 기가막혀 상제님 산세 이치로 말한대로 이터가 명당이면 일조에 이렇게 폐가가 되오리까. 이터는 벌써 김나가 버린 터이옵고 내집보다 더 좋은 명당이 얼마든지 있사옵니다. 이놈아 네집보다 더좋은 명다이 어데 있단 말이냐 아이고. 놀보가 그통에 명당을 이르는디 거기에도 불타져 죽을 심술이 들었던 것이었다.
 
278
<중머리>
279
명당을 이를게 들으시오. 명당을 이를테니 들어보오. 강원도 금강산은 복호농구혈이 명당이요. 경상도 태백산은 장군출두혈이 명당이요. 전라도 지리산은 노서하전혈이 명당이오니 그리로 가시기 바랍니다. 이놈 그곳을 멀어 어찌갈꼬. 그러면 가까운 복덕촌에 박흥보집이 그터 성조후로 일조에 억십만금 부자되온 천하에 제일가는 명당이오니 그리로 운상을 허옵소서.
 
280
<아니리>
281
음 흥보집이 그렇게 좋은 명당이여. 그러면 흥보집으로 갈터이니 너는 이터 값으로 상제 오백명과 상여군 설흔두명 매명에 백냥씩만 내놔라. 놀보 어이없어 묵묵부답 앉었으니 상제 오백명이 상정막대 치켜들고 우박매질로 두드리며 주머니에다 넣기로 작정허니 놀보질겁허여 예예 바치오리다.
 
282
<중모리>
283
놀보놈이 밖에나가 절반금에 전답을 팔어 오만삼천 이백냥을 갖다주니 상여군들 돈을받어 상여에 집어싣고 어넘차 소리허며 아이고 무거워 못가겄다. 노생원님 분부대로 충효지댁에 주고가자. 두어걸음 나가더니 인흘불견 간곳 없네 이때에 동리 구경군들은 물밀듯이 달려드니 놀보 더욱 부끄럽고 화가나서 박한통을 간신히 들어 울너머에다 던져 버린것이 박통이 와지끈 깨어지며 돈이 마구 쏟아져 나온것을 구경군들이 모도다 주어가지고 뿔뿔히 도망을 허였구나.
 
284
<아니리>
285
놀보 기가 막히고 화가 나면서도 한편은 또 좋아라고 그러면 그렇지 선흉후길이요. 고진감래라니 자 또 박타자. 넷째 통을 또 탔더니 줄봉사 갖은 병신떼들이 나와 놀보놈 재산을 또 털어가고 이번에는 다섯째 통을 타는디. 박이 건짐 벌어지니 사당패 솔대패 등물들이 꾸역꾸역 나오는디 사당패가 앞을 서 나오며
 
286
<중머리>
287
난심아 죽절아 채선아 옥남아 소고진놈 장고진놈 꾸역꾸역 나오더니 놀보집 앞마당에다 구경석을 벌여놓고 뭇사당 거사들이 흥을내어 노래헌다. 구경을 가자 구경을 가잔다. 한라산도 백두산도 지리산도 지쳐 들어가니 초당삼간을 지었구나. 왼갖 화초를 다 심어었드라 맨드라미 봉선화며 왜철쭉 진달래라 여기도 넌출 심었고 저기도 넌출 심었구나 강원도 금강산으로도 구경을 가잔다. 에루화 매화로구나. 놀보놈이 기가막혀 좋다 잘나왔다. 나오던중 제일이다. 돈은 기왕 쓰는 돈이니 나온 걸음에 잘들놀아 보아라. 이때 또다시 솔대패 한패가 나오는디 광대섬 진놈 까치발 진놈 솔대멘놈이 나오더니 놀보앞에다 대를 세우고 훨씬 널리 터를 잡고. 각색 제비가 늘어서더니 해금 소리는 고개고개 퉁소소리는 띠루디 타령장단 검무춤에 번개소고는 똥글똥글 징광쇠 북장구를 신명내어 짓두드리니 구경군이 만장이라.
 
288
<아니리>
289
이렇듯 뛰고놀제 이웃집에 열렸던 박한통이 몹시도 바빴던지 구사월 알밤 벌어지듯 저절로 딱 벌어지더니 각설이패 풍각쟁이 초라니패가 또 나오는디 각설이 패가 앞을서서 장타령을 허며 나오던 것이었다. 뜨르르르- 들어왔소 구름같은 댁에 신선같은 나그네 들어왔소.
 
290
<자진모리>
291
각설이라 먹설이라 동서리를 짊어지고 죽지도 않고 또 찾아왔소. 뜨르르르 몰아 장타령 흰오얏꽃 옥과장 누른버들 김제장 부창부수 화순장 시화연풍에 낙안장 쑥 솟았다 고산장 철철흘러 장수장 삼도도회 금산장 일색춘향의 남원장 십리오리 장성장 에고데고 곡성장 오늘가도 진안장이요 코풀었다고 흥덕장 술은 있어도 무주장 술은 싱거도 전주장 물을타도 원주장 탁주를 먹어도 청주장 돈을내도 공주장 맨술을 안주장 어서가자 어서가 오란곳은 없어도 우리갈길은 바뿌요. 품바품바 잘헌다 놀보 센님 수이가게 헙시요.
 
292
<아니리>
293
한참 이리 노닐적에 또 방정맞인고사 초란이가 구실상모 담벙기지에 되게 매운 통장구를 턱밑에다 바짝메고 이놈이 방정을 떨고 나오는디.
 
294
<자진머리>
295
꽁구락 꽁꽁 꽁구락 꽁꽁 꽁구락 꽁구락 꽁구락 꽁꽁 헛쇄 통영 칠 도리반에다 쌀이나 서너말 떠다놓고 귀가진 저고리 당가진 초마에 명실복실 다늘이고 나전 천냥만 바쳐놓고 신수재수 고사나올 니고액이나 한번 막어 봅시다. 정월이월 드는 액은 삼월삼질에 막어내고 사월오월 드는액은 유월유두에 막어내고 칠월팔월에 드는액은 구월구일에 막어내고 시월동지 드는액은 납월납일에 막어내고 매월매일 드는액은 초라니 장구로 막어 봅시다. 꽁구락 꽁꽁 꽁구락 꽁꽁 꽁구락 꽁구락 꽁구라 꽁꽁
 
296
<아니리>
297
놀보 듣고 기가막혀 야이놈아 고사액이 무엇이고 모도다 귀찮다. 다들 물러 가거라
 
298
<자진모리>
299
귀찮단 말이 웬말이요. 귀자 근본을 들어보소 네발돋힌 당나귀 세발돋힌 퉁노귀 두발돋힌 까마귀 외발돋힌 돌쪼귀 각씨네 입은 치마귀 치마귀 밑에는 단속것귀 단솟것 밑에 속겉귀 앉으면 네귀요 서면은 두귀라 꽁구락 꽁공 꽁구락 꽁꽁 꼬공꽁꽁 꽁구락 꽁꽁 꽁굴닥 꽁굴닥 꽁구락 꽁꽁
 
300
<아니리>
301
초란이패가 한참 이방정을 떨고 난후 사당패 솔대패 풍각쟁이 각설이패까지 각각 천냥씩 오천냥을 내놓으라고 놀보르 잡지는디 놀보 하리없이 집문서까지 다 잡히어 오천냥을 갖다주니 문밖에 나서면서 인흘불견이라 놀보가 억에 받혀 무엇이 나오던지 한통 남은것 또 타보자. 마저 한통을 타려할제 놀보계집 달려들어 박통우에 걸터엎져. 제발 이박 고만타소. 삼도유명 우리성세 일조탕진 되었으니 이박을 탈테거든 내허리마져 같이 켜소. 방성통곡 울음을 우니 놀보도 무안허여 여보소 역군들 양줄풀어 톱지우고 그박통 들어다가 대문밖에 내다 버리소.
 
302
<자진모리>
303
톱질역군 대답허고 양줄풀어 톱지울제 뜻밖에 박통속에서 개문포 일방허라. 예 방포일성이 꿍 박통이 딱 벌어지며 일원대장이 나오는디 신장은 팔척이요. 얼굴이 먹장같고 표범머리 제비턱에 고리눈 다박수염 황금투구 쇠짜 갑옷 장팔 사모장창을 눈위에 번뜻 들고 우뢰같은 큰소리를 벽력같이 뒤지르며 네이놈 놀보놈아 네가 나를 모르리라. 천하가 말세되어 삼국시절이 분분헐제 유.관.장 세영웅이 도원에 결의허고 한실을 바로잡자 천하에 횡행허든 삼형제중에 말째되고 오호대장에 둘째되던 탁군따 장익덕을 아느냐 모르느냐 목을 늘여 창받어라. 이렇듯 호통허니 벼락이 떨어진듯 박타던 삯군들은 창자터져 죽은놈이 여러명이 되는 판이요. 놀보는 혼비백산 기절허여 장군앞에가 뒤쳐 지는구나. 네이놈 놀보야 천하에 중헌것이 형제밖에 또 없거늘 네놈은 웬놈으로 친 골육인 네동생을 구박축출 허였으며 평생에 행헌일이 남에게 못할일만 가려가며 허여왔고 더구나 비금중에 백곡에 해가 없고 사람을 별로 따라 죄없는 제비어든 무지헌 욕심으로 생다리를 꺾어 놓고 공받고져 원했으니 그죄 어찌 용납허랴.
 
304
<아니리>
305
내본시 생긴모양 제비턱을 가졌기로 항상 제비를 사랑터니 그말을 들은즉시 불꽃같은 내성미에 제비왕께 자원하고 네죽이려 예 왔노라. 제비다리 꺽어놓듯 네목도 오늘 꺾으리라. 장창을 번뜻 들었으나 놀보는 이미 뻗어버려 송장에 침주기로 아무대답 없는지라 그때여 마당쇠가 진즉 흥보에게 달려가 이말을 전했겄다. 흥보가 이소식을 듣고 천방지축 달려와서 장군 앞에가 엎더지며 아이고 장군님
 
306
<중머리>
307
비나이다. 비나이다. 살려주오 살려주오 장군님전 비나이다. 형의죄가 만사무석 죄주심이 마땅하오나 형제는 일신이온바 형이 만일 죽고보면 한조각 병신몸이 살어 무엇 허오리까 흥보놈도 마져 죽여 형의 뒤를 따르게 허옵소서. 장군이 이말듣고 흥보를 바라보더니 시름없이 창을 내리며 눈물짓고 허는말이 흥보씨 감격허오 한종실 유황숙과 늠름한 관공님과 우리 삼인이 도원결의 한실을 회복허려다 우리중형 관공께서 여몽간계에 별세허심이 나죽은 혼이라도 철천지 한일러니 오늘날 흥보씨는 블측무도 그형에게 시종여일 공경허니 나도 중형을 생각허매 눈물 감장헐바를 모르겠나이다. 흥보 손길을 부여잡고 못허겄소 못허겄소 욕투서이 기기라더니 흥보씨의 덕행앞에는 차마 이분을 풀수 없네 체읍허며 작별허고 두어걸음 나서더니 인흘불견 간곳없네.
 
308
<아니리>
309
장군은 떠났으나 놀보는 영영죽어 꽝꽝 얼은 동태 뽄으로 전신이 이미 굳었는지라 흥보가 방성통곡하며 정신없이 저희집으로 달려가 환혼주를 가져다가 놀보입에 떠 넣어놓니 살살 맥이 돌아들어 다시 회생 허였구나. 「놀보 간신히 정신차려 가산을 둘러보니 초상친 뒤도 아니요. 이루말할 길이 없고 조석걸이 쌀 한줌과 엽전 한푼이 없는지라. 놀보와 놀보 마누라가 그제야 사람마음이 들었든지 얼굴을 바로들어 흥보 내외도 못바라 보고 다시 그자리에 엎더지더니 저의 죄를 섬기면서 방성 통곡을 허는구나.
 
310
<엇중모리>
311
놀보가 그날부터 쾌히 개과천선허여 언충신 행독경으로 대인접물 진실허고 흥보의 착헌마음 극진히 형을 위로허며 저의 세간 반분허여 형우제공 지내는양 뉘아니 부러허며 뉘아니 칭찬허리. 도원의 남은의기 천고에 유전 빛났더라. 그뒤야 뉘알리요 언재 무궁이나 고수팔도 아프실테요. 오정숙이 목도 아플 지경이니 어질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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