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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부전 ◈
해설   본문  
1
흥부전
 
 
2
형제는 오륜의 하나요, 한 몸을 쪼갠 것이다. 그러므로 부귀와 화복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형제도 형제 나름이다.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가 만나는 어름에 사는 연생원이라는 양반이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형의 이름 놀부요, 동생의 이름은 흥부였다.
 
3
틀림없는 한 어머니 소생이건만 흥부는 마음씨 착하고 효행이 지극하며 동기간의 우애가 극진한데, 놀부는 부모에게는 불효이고 동기간에 우애가 조금도 없으니, 그 마음 쓰는 것이 괴상하였다. 모든사람, 오장에 육부를 가졌지만 놀부는 당초부터 오장에 칠부였다. 말하자면 심술보가 하나 더 있어 심술보가 한번만 뒤집히면 심사를 야단스럽게도 피웠다.
 
4
술 잘먹고, 욕 잘하고 거드름 빼고, 싸움 잘하고, 초상난 데 춤추기, 불난 데 부채질하기, 해산한 데 개잡기, 장에 가면 억지 흥정, 우는 아기 똥 먹이기, 죄없는 놈 뺨치기, 빚값으로 계집 뺏기, 늙은 영감 덜미잡기, 아이 밴 아낙네 배차기, 우물 곁에 똥누어 놓기, 올벼논에 물 터놓기, 잦힌 밥에 흙 퍼붓기, 패는 곡식 이삭빼기, 논두렁에 구멍뚫기, 애호박에 말뚝 박기, 곱사등이 엎어놓고 밟아 주기, 똥누는 놈 주저앉히기, 앉은뱅이 턱살 치기, 옹기장수 작대기 치기, 면례(무덤을 옮겨 장사를 다시 지내는 것) 하는데 뼈 감추기, 남의 양주(바깥주인과 안주인이라는 뜻. 부부)잠자는데 소리 지르기,수절과부 겁탈하기, 통혼한 데 간혼놀기, 만경창파에 배 뚫기, 닫는말에 앞발 치기, 목욕하는데 흙 뿌리기, 담 붙은 놈 코침 주기, 얼굴에 종기 난 놈 쥐어박기, 눈 앓는 놈 눈에 고춧가루 넣기, 이 앓는 놈 뺨치기, 어린아이 꼬집기, 다 된 흥정 파의하기,중을 보면 대테메기, 남의제사에 닭 울리기, 큰 한길에 허망 파기, 비 오는 날에 장독 열기 등이었다.
 
5
이놈의 심사가 이렇듯 모과나무같이 뒤틀리고 동풍 안개 속에 수숫잎 같이 꼬여 그 흉악함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나 흥부는 충실, 온후, 인자하였으니, 형의 하는 짓을 탄식하고 때로는 간할 마음을 가져보았으나 말해 보아야 쓸데없으므로 말없이 주면 먹고 시키는 일이나 공손히 하였다.
 
6
놀부의 악한 마음은 부모가 물려준 많은 재산을 독차지하고 아우 흥부를 구박하나 흥부의 어진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놀부는 부모 제삿날이 와도 제물은 장만하지 않고 돈으로 대신 놓고 지내면서, "이번 제사에도 황초 값 닷 푼은 온데 간데 없구나." 하는 식이었다.
 
7
그런 천하에 몹쓸 놈이라 아우를 내쫓을 궁리를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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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란 것은 어려서는 같이 살아도 처자를 갖춘 다음엔 각각 따로 사는 것이 떳떳한 법이다. 너는 처자를 데리고 나가 살아라."
 
9
처음엔 사정도 해보았으나 놀부는 듣지 않았다. 흥부는 하는 수 없이 아내와 어린것들을 이끌고 대문을 나섰다.
 
10
건너산 언덕 밑에 가서 움을 파고 온 식솔이 모여앉아 밤을 새웠다. 이튿날 그 자리에 수숫대를 모아다가 한나절에 얼기설기 집을 지어놓으니, 방에 누어 다리를 뻗어 보면 발목이 벽 밖으로 나가고 팔을 뻗어보면 또한 손목이 벽 밖으로 나갔다. 기막힌 노릇이었다.
 
11
게다가 가지고 나간 양식이 한 톨도 없이 사흘에 한 끼니도 메울수가 없게 되니 살아갈 계책이 없었다. 이 판국에 굴비 두름 같은 연년생 자식들이 밥 달라고 젖 달라고 보챈다. 하는 수 없이 흥부는 놀부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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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전에 뵙니다. 세 끼를 굶어 누운 자식 살려 낼 길 없어 염치코치 불구하고 찾아왔으니 동기간 정을 생각하여 무엇이든지 좀 주시면 품을 판들 못 갚으며 일을 한들 공으로 가져가겠습니까? 모쪼록 죽는 목숨 살려주십시오".
 
13
이렇듯 애걸하였으나 놀부는 차디차기만 하였다. 오히려 맹호같이 날뛰며 모진 눈을 부릅뜨고 핏대를 올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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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염치없는 놈이다. 내 말을 들어 보아라. 하늘이 내지 않은 자는 벼슬에 못 오르고 땅이 내지 않은 자는 이름없는 인간이다. 너는 어찌하여 복이 없어 날 보고 이렇게 보채느냐? 잔말은 듣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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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는 울며 사정하였다.
 
16
"양식이 못 되거든 돈 서 돈 주시면 하루라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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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들어 보아라. 쌀이 많다 한들 너 주자고 섬을 헐며, 벼가 많다 한들 너 주자고 노적 헐며, 돈이 많다 한들 너 주자고 궤돈 헐며, 가루 되나 주자 한들 너 주자고 큰 독에 가득한 것을 떠내며, 의복 가지나주자 한들 너 주자고 행랑것들 벗기며, 찬 밥술이나 주자 한들 너 주자고 마루 아래 청삽사리 굶기며, 지게미나 주자 한들 너주자고 새끼 낳은 돼지를 굶기며, 콩 섬이나 주자 한들 큰 농우가 네 필이니 너를 주고 소 굶기랴? 정말 염치없고 속이 없는 놈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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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러시더라도 죽는 동생 살려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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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부는 화를 더럭 내어 벼락같은 소리로 하인 마당쇠를 부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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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뒷광문 열고 들어가면 저편에 보리 쌓은 담불이 있지?"
 
21
거기 있는 도끼 자루 묶음을 내오게 하고는 손에 닿는 대로 골라잡더니 그만 달려들어 흥부의 뒤꼭지를 잔뜩 움켜쥐고 사정없이 친다. 마치 손 잰 중이 비질하듯, 상좌중이 법고 치듯이다.
 
22
"이놈 내 눈앞에 뵈지마라."
 
23
흥부는 어찌나 맞았던지 온 몸이 나른하여 그만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형수나 보고 가려고 엉금엉금 부엌으로 기어갔다. 놀부 아내가 마침 밥을 푸고 있었다. 흥부는 굶은 창자에 밥 냄새를 맡으니 오장이 뒤집혔다.
 
24
"애고 형수님, 밥 한 술만 떠주오. 이동생을 살려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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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년 또한 몹쓸 년이었다.
 
26
"남녀가 유별한데 어디를 들어오노?"
 
27
밥 푸던 주걱으로 흥부의 마른 뺨을 우지끈 때리니 흥부는 두눈에 불이 화끈 일고 정신이 아찔한 중에도 얼떨결에 손을 슬쩍 뺨 위로 밀어보니 밥이 볼때기에 붙어 있는 것이었다. 얼른 입으로 쓸어 넣는다.
 
28
"아주머님은 뺨을 쳐도 먹여가며 치시니 감사한 말을 어찌 다 하겠습니까? 수고스럽지만 이쪽 뺨마저 쳐주십시오. 밥좀 많이 붙은 주걱으로요. 그 밥 갖다가 아이들 구경이나 시키겠소."
 
29
이 몹쓸 년이 주걱은 내려놓고 부지깽이로 흥부를 실컷 때리니, 흥부는 아프단 말도 못하고 할 수 없이 통곡하며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때 우는 애 젖 물리고 큰 아이 달래면서 칠년 가뭄에 큰비 기다리듯, 구년 홍수에 볕발을 기다리듯, 어린아이가 굿에 간 어미 기다리듯, 굶은 자식들과 흥부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흥부가 매에 취하여 비틀비틀 걸어오니 흥부 아내는 남의 속도 모르고 반겨 마중을 나갔다.
 
30
"큰댁에 가더니 술에 잔뜩 취해 오시는 구료. 어서 들어갑시다. 쌀이 거든 밥짓고 돈이거든 저 건너 김동지 집에 가서 한 끼라도 늘려먹을 것을 팔아 옵시다."
 
31
그러나 흥부는 형의 행패를 바로 말하지 못하고서 꾸며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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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집에 갔더니 주안상이 나오고 더운 점심밥이 나오데. 상을 물리고 나니 형님과 형수께서 돈과 쌀을 주시더군. 큰 고개를 넘어오다가 도둑놈을 만나 다 빼앗기고 빈 손으로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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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런데 얼른 보니 유혈이 낭자하며 얼굴이 부었고 온 몸을 만져보니 성한 곳이 없다. 흥부 아내가 기가 막혀 땅에 주저앉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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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마누라, 슬퍼 마오. 가난 구제는 나라에서도 못한다 하니 형님인들 어찌하시겠소? 우리 양주가 품이나 팔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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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 아내는 이 말에 순종하여 서로 나가서 품을 팔았다. 흥부 아내는 방아 찧기, 술집의 술 거르기, 시궁발치의 오줌 치기, 얼음이 풀릴 때면 나물캐기, 봄보리를 갈아 보리 놓기. 흥부는 이월 동풍에 가래질하기, 삼사월에 부침질 하기, 일등 전답의 무논 갈기, 이집 저집 돌아가며 이엉 엮기, 궂은 날에는 멍석 맺기 등 이렇게 내외가 온갖 품을 다 팔았다.
 
36
그러나 역시 살기는 막연하였다. 하루는 생각다 못해 나랏곡식이나 한 섬 얻어 먹으리라 마음먹고서 흥부는 어슷비슷 갈짓자로 걸어 읍내로 들어가 관청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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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 나랏곡식이나 좀 얻어 먹고자 하는데 처분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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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막중한 나랏곡식을 어찌달라 할까? 그러나 연생원은 매를 더러 맞아 보았소?"
 
39
"매는 왜? 나랏곡식이나 얻어주면 배고파 죽겠다는 어린 자식들을 살리겠구먼."
 
40
"나랏곡식 얻을 생각 말고 매를 맞으시오. 고을 김부자를 어느 놈이 영문에 없는 일을 꾸며 고소했소. 김부자를 압송하라는 공문이 왔는데 김부자는 마침 병이 나고 친척도 병이 있어 누구를 대신보내고자 찾고 있소. 연생원이 김부자 대신 영문에 가서 매를 맞으면 그 값으로 돈 삼십 냥을 줄겁니다. 그 돈 삼십 냥은 예서 증서를 줄테니 영문에 가서 대신 매를 맞고 오는 것이 어떻소?"
 
41
이방은 돈 닷 냥을 먼저 주고, 영문으로 보내는 보고장을 흥부에게 주었다.
 
42
"어서 다녀오시오. 내 편지 한 장 갖다 영문 사령에게 주면 혹시 매를 쳐도 가볍게 칠지 모르며, 또한 김부자가 뒤로 감영 관리에게 돈 백이나 보낼 테니 염려 말고 어서가오."
 
43
흥부는 어찌나 좋던지 여태까지 반말하던 사이 갑자기 변하여 존대말을 쓰는 것이엇다.
 
44
"여보 이방님, 다녀오리다."
 
45
집으로 돌아온 흥부로부터 이 말을 들은 흥부 아내의 놀라움은 컸다.
 
46
"여보 아이 아버지, 매 품팔이가 웬말이오! 남의 죄를 어찌알고 대신이라니 웬말이오? 살인죄를 범했는지 강도죄를 범했는지 사기죄를 범했는지 남의 죄를 어찌 알고 그런 말을 하시오? 만일 영문에 올라갔다가 여러 날을 굶은 몸에 영문 곤장 맞게 되면 몇 대를 맞지 않아 쓰러져 죽을 것이니, 어서 가서 그일일랑 거절하오. 마오마오 가지 마오. 만일에 갈 생각이면 나를 죽여 묻고 가오. 나 죽여 세상 모르면 가려니와 나를 살려두고는 못 가리다. 가지 마오, 가지 마오, 제발 내 말 듣고 가지 마오. 만일 매맞다가 아이 아버지 죽게 되면 뭇초상이 날 테니 부디 내 말 괄시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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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두 손으로 구들장을 쾅쾅 치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듯 강권하자, 흥부는 슬며시 마누라를 얼러 보는 것이었다.
 
48
"여보 마누라, 한 번 높은 곳에 앉아 보지도 못할 쓸데없는 이 볼기짝, 감영으로 올라가서 삼십 대만 매를 맞고나면 돈 삼십 냥이 생길 테니 열 냥으로 고기 사서 매맞은 상처 고치고, 열 냥으로는 쌀을 팔아 온 식구가 포식하고 열 냥으로는 소를 사서 스물넉 달 배내기 주었다가 그 소를 팔아 맏아들 장가들이고, 그놈이 아들 낳으면 우리에게 손자되니 그 아니 경사인가?"
 
49
말을 듣고 생각하니 사리는 맞는 것 같았으나 그러나 역시 사람 갈길이 아니므로 흥부 아내는 한사코 말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흥부는 영문에 갈 마음은 속으로만 혼자 먹고 겉으로는 얼렁뚱땅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다.
 
50
"그리하오. 아니 가리다. 짚신이나 삼아 신게 저 건너 김동지네 가서 짚 한 단 얻어 가지고 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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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와서 영문으로 올라가는데 삯말이나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돈 삼십 냥을 한 몫으로 받아 쓸 작정으로 하루에 일백칠십 리씩을 걸어서 갔다.며칠 만에 영문에 다다르니 도사령이 흥부를 보더니 아래 사령들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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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양반이 김부자 대신으로 왔으니 아랫방에 들여앉히고 만일 문초를 당하여 매를 치게 되더라도 아무쪼록 가볍게 칠 것을 잊지 마소. 우리 청에 편지와 돈 백 냥이 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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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사람이 흥부를 위로하고 있을때, 마침 청령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영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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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중에 살인죄를 범한 자 외에는 모두 석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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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는 낙심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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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시오 도사령, 나는 매를 맞아야만 수가 생기오. 그저 가면 나는 낭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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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연생원, 이번에 김부자 일로 여기 왔는데 매 안 맞았다고 만약 돈을 안 주거든 두말 말고 곧장 영문으로만 오면 우리가 무슨 수를 쓰든지 돈 백은 받아줄 테니 염려 말고 어서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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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령의 말을 듣고 흥부는 할 수 없이 노자에서 남은 돈 한 냥으로 떡을 사서 짊어지고 집으로 왔다.
 
59
이무렵 흥부 아내는 남편이 감영에 갔음을 알고는 뒤뜰에다 단을 모으고 정화수를 길어다가 단 위에 올려놓고 두 손 모아 빌며 눈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참에 흥부가 거적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섰다. 뛸듯이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60
"아이 아버지 다녀오시오? 죄가 없어 놓여오나? 태장 맞고 돌아오나? 형장 맞고 돌아오나? 상처는 어떠하오?"
 
61
흥부는 매도 못 맞고 돌아오는 참에 이말을 들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62
"나더러 상처를 묻지 말고 네 친정 할아비한테 물어 보아라. 매 한대 맞지 못하고 건성으로 돌아오는 사람더러 이년아, 장처는 뭐고 상처는 다 뭐냐?"
 
63
"좋다 좋다.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을씨고! 매 맞으러 갔던 낭군 안 맞고 돌아오니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는가!"
 
64
흥부는 마누라의 좋아하는 거동을 기가 막혀 어이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어린 자식들 살릴 생각을 하니, 슬픈 감회가 치밀어서 눈물이 비오듯 하며 통곡이 터져나와 두 손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65
이때 마침 김부자의 조카가 지나다가 흥부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찾아 들어와서 묻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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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서방, 주린 사람이 영문에 가서 그 매를 맞고 어떻게 돌아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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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는 마음이 곧은 사람이라 바른 대로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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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았으면 해롭지 않을 것을 그것도 복이라고 못 맞았다네."
 
69
"자네가 마음씨만은 착한 사람일세. 나도 어디서 들었네만, 무사히 오고서야 돈 달랄 수 있나? 내가 마침 지닌 돈이 칠팔 냥 있으니 쌀말이나 팔아먹소."
 
70
흥부는 그 돈으로 쌀 팔고 반찬 사서 며칠은 살았으나 굶기는 역시 마찬가지라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그래 짚신 장사나 해보리라 하고 김동지 집으로 짚을 얻으러 갔다.
 
71
"자네 불쌍도 하이! 형은 부자건만 자네는 그렇듯 가난하니 어찌 아니 측은한가?"
 
72
이러면서 김동지가 내주는 짚단을 얻어다가 짚신을 삼아 장에 내다팔고 그것으로 끼니를 이었으나 그도 한두 번이지 짚인들 매양 얻을 염치가 있으랴?
 
73
흥부는 탄식하며 또한 어린 자식들을 어루만지며 통곡하니 흥부 아내도 기가 막혀 땅을 치고 우는 모양이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정경이었다.
 
74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춘삼월 좋은 계절을 맞이하니, 흥부는 이왕에 배운 바 있어 약간의 식자는 있는 터라 수숫대로 지은 집에 입춘을 써 붙였다.
 
75
삼월 삼일이 되니 소상강의 떼기러기는 가노라 하직하고 강남의 제비 왔노라 하고 나타날 때였다. 고대광실 다 버리고 오락가락 넘돌다가 흥부를 보고 반기면서 좋다고 지저귀니, 흥부가 제비보고 경계하는 말이었다.
 
76
"고당화각 많건만 수숫대로 지은 집에 와서 네 집을 지었다가 오뉴월 장마철에 집이 만일 무너진다면 그 아니 낭패이랴? 아무리 짐승일망정 내 말을 듣고 좋은 집 찾아가서 실팍하게 집을 짓고 새끼를 치려므나."
 
77
이같이 충고해도 제비가 듣지 않고 흙을 물어다 집을 짓고 첫배 새끼를 길러 내어 날기 공부에 힘을 쏟을 때 날아 올랐다 날아 내렸다 하면서 이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큰 구렁이 한 놈이 별안간 달려들어 제비 새끼를 모조리 잡아 먹으니 흥부는 보고 깜짝 놀랐다.
 
78
"흉악한 저 짐승아, 고량진미가 많겠건만 하필이면 죄없는 제비 새끼를 모조리 잡아 먹으니 악착 같구나. 제비가 불쌍하구나. 저 제비 새끼를 모조리 잡아 먹으니 악착 같구나. 제비가 불쌍하구나. 저 제비 곡식을 먹지 않고 자라나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옛 주인을 찾아오니 그 뜻이 정다운데 제 새끼를 보전치 못하고 일시에 다 죽이니 어찌 가련치 않은가?"
 
79
그리고는 칼을 들어 그 짐승을 잡으려 할 때 제비 새끼 한 마리가 허공으로 뚝 떨어져서 피를 흘리며 발발 떠는 것이었다. 흥부는 이를 보자 펄쩍 뛰어 달려들어 제비 새끼를 두 손으로 고이 잡고 애처롭게 여겨 부러진 다리를 조기 껍질로 찬찬 감고 아내를 불렀다.
 
80
"당사실 한 바람만 주소, 제비 다리 동여매게."
 
81
흥부 아내가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당사실을 급히 찾아내어 주니 흥부는 얼른 받아 제비 새끼의 상한 다리를 곱게 감아매어 찬 이슬에 얹어 두었다.
 
82
그랬더니 하루 지나고 이틀지나고 이리하여 십여 일이 지나자 상한 다리가 제대로 소생되어 날아다니게 되니, 줄에 앉아 재잘거리며 울고 둥덩실 떠서 날아갈 때 소상강 기러기는 왔노라 하고 강남가는 제비는 가노라 하직하는 것이었다.이리하여 제비가 강남 수천 리를 훨훨 날아가서 제비왕께 입시하니 제비왕이 물었다.
 
83
"경은 어찌하여 다리를 절며 들어오느냐?"
 
84
"신의 부모가 조선국에 나가 흥부의 집에 깃들었는데 뜻밖에 큰 구렁이의 화를 입어 다리가 부러져 죽을 것을 흥부의 구조를 받아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흥부의 가난을 면케 해주신다면 그로써 소신은 그 은공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까 합니다."
 
85
"흥부는 과연 어진 사람이다. 공 있는 자에게 보은함은 군자의 도리이니, 그 은혜를 어찌 아니 갚으랴? 내가 박씨 하나를 줄 테니 경은 가지고 나가 은혜를 갚도록 하라."
 
86
제비가 왕께 감사드리고 물러나와서 그럭저럭 그 해를 넘기고 이듬해 춘삼월을 맞으니 모든 제비가 타국으로 건너갈 때였다.
 
87
그 제비 허공 중천에 높이 떠서 박씨를 입에 물고 너울너울 자주자주 바삐 날아 흥부네 집동네를 찾아들어 너울너울 넘노는 거동은 마치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오동나무에서 노니는 듯, 황금같은 꾀꼬리가 봄빛을 띠고 수양버들 사이를 오가는 듯하였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넘노는 거동을 흥부 아내가 먼저 보고 반긴다.
 
88
"여보 아이 아버지, 작년에 왔던 제비가 입에 무엇을 물고 와서 저토록 넘놀고 있으니 어서 나와 구경하오."
 
89
흥부가 나와 보고 이상히 여기고 있으려니 그제비가 머리 위를 날아 들며 입에 물었던 것을 앞에다 떨어뜨린다. 집어 보니 한가운데 '보은박'이란 글 석 자가 쓰인 박씨였다.
 
90
그것을 동편 울타리 밑에 터를 닦고 심었더니 이삼 일에 싹이 나고, 사오 일에 순이 뻗어 마디마디 잎이 나고, 줄기마다 꽃이 피어 박 네 통이 열린 것이다. 추석날 아침이었다. 배가 고파 죽겠으니 영근 박 한 통을 따서 박속이나 지져 먹자 하고 박을 따서 먹줄을 반듯하게 긋고서 흥부 내외는 톱을 마주잡고 켰다.
 
91
이렇게 밀거니 당기거니 켜서 툭 타 놓으니 오색채운이 서리며 청의 동자 한 쌍이 나오는 것이었다. 왼손에 병을 들고 오른손에 쟁반을 눈 위로 높이 받쳐들고 나온 그 동자들은,
 
92
"이것을 값으로 따지면 억만 냥이 넘으니 팔아서 쓰십시오."
 
93
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94
박 한 통을 또 따놓고 슬근슬근 톱질이다. 쓱삭 쿡칵 툭 타놓으니 속에서 온갖 세간붙이가 나왔다. 또 한 통을 따서 먹줄 쳐서 톱을 걸고 툭 타놓으니 순금 궤가 하나 나왔다. 금거북 자물쇠를 채웠는데 열어 보니 황금.백금밀화.호박.산호.진주.주사.사향 등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쏟으면 또 가득 차고 또 가득 차고 해서 밤낮 엿새를 쏟고 나니 큰 부자가 된 것이다.
 
95
다시 한 통을 툭 타놓으니 일등 목수들과 각종 곡식이 나왔다. 그 목수들은 우선 명당을 가려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그 다음 또 사내종, 계집종, 아이종이 나며 들며 온갖 것을 여기저기 쌓고 법석이니 흥부내외는 좋아하고 춤을 추며 돌아다녔다.
 
96
그러다가 덤불 밑에 있는 마지막 박 한통을 따서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박 속에서 꽃같은 한 미인이 나와 흥부에게 나붓이 큰 절을 하는 것이었다.
 
97
"나는 월궁의 선녀입니다. 강남국 제비왕이 나더러 그대 부실이 되라 하시기에 왔습니다."
 
98
이리하여 흥부는 좋은 집에서 처첩을 거느리고 향락으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소문이 놀부 귀에 들어가니,
 
99
"이놈이 도둑질을 했나? 내가 가서 욱대기면 반 재산을 뺏어낼 것이다."
 
100
하고 벼락같이 건너가 닥치는 대로 살림살이를 쳐부수는 것이었다. 한참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있을때 마침 출타 중이던 흥부가 들어왔다.
 
101
"네 이놈, 도둑질을 얼마나 했느냐?"
 
102
"형님 그 말씀이 웬 말씀이오?"
 
103
흥부가 앞뒷일을 자세히 말하자, 그럼 네 집 구경을 자세히 하자고 놀부는 나섰다. 흥부가 형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집 구경을 시키는데 월궁 선녀가 다시 나타나니 놀부는 그 계집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다.흥부가 거절하자 이번은 화초장이나 달라고 한다.
 
104
그러고는 흥부가 화초장을 하인을 시켜 보내주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스스로 짊어지고 가서 집에 이르니 놀부 아내는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리고 그 출처와 흥부가 부자가 된 연유를 알게 되자,
 
105
"우리도 다리 부러진 제비 하나 만났으면 그 아니 좋겠소?"
 
106
하고는 그해 동지 섣달부터 제비를 기다렸다.
 
107
그렁저렁 섣달 정월 다 넘기고 봄철이 돌아오니 제비 한 쌍이 놀부집에 와 흙과 검불을 물어다 집을 지었다. 어미 제비가 알을 낳아 품을 무렵에는 놀부놈은 주야로 제비집 앞에 대령하여 가끔가끔 집어내어 만지작거리니 알이 모두 곯았다. 그러나 천행으로 한 개가 남아서 새끼를 까게 되었다.
 
108
차차 자라나 바야흐로 날기를 배울 때 주야로 기다리는 구렁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놀부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여 하루는 뱀을 찾아 나갔다. 아무리 찾아도 뱀 한 마리 못 보고 돌아오는 길에 홍두깨만한 까치 독사를 만났다.
 
109
"얼씨구 이 짐승아, 내 집으로 가서 제비집으로 올라가면 제비 새끼 떨어지고 나는 부자가 될 것이니, 네 은혜는 병아리 한 뭇에 계란 한줄 더 얹어 갚을 것이다. 그러니 사양 말고 어서 가자."
 
110
이러고 막대기로 툭툭 건드리다 놀부는 발가락을 물리고 나자빠졌다.
 
111
그러나 빨리 집으로 돌아와 침을 맞고 약을 바른 끝에 살아나자, 제가 이무기인 양 제비 새끼 잡아 두 발목을 지끈등 분지르고는 흥부가 했던 것같이 조기 껍질로 발목을 싸고 청올치로 찬찬 동여매어 제비집에 얹어 두었다.
 
112
그 제비가 겨우 살아남아 남으로 돌아갈 때 하는 말이,
 
113
"원수같은 놀부놈아, 명년 춘삼월에 다시 와서 원수를 갚을 것이니 잘 있거라. 지지위 지지."
 
114
이듬해 춘삼월에 그 제비는 '보수박'이라 쓰인 박씨를 물고 돌아왔다.
 
115
놀부가 보고 풀밭에 떨어지면 잃어버릴까 겁이 나서 삿갓을 뒤집어들고 따라다녔다. 제비는 그 삿갓 속에 떨어뜨렸다. 한 치나 되는 박씨에 보수박이라 쓰였으나 무식한 놀부는 그것을 모르고 처마밑에 심었다.
 
116
며칠이 안 가서 순이 나고 덩굴이 뻗고 이윽고 박이 주렁주렁 열리게 되었다. 놀부는 큰 박 하나를 우선 따다 놓고 제 계집과 켜려 하다가 그 박이 쇠같이 딱딱하므로 저희끼리는 할 수 없게되자 목수와 힘깨나 쓰는 장정들을 불러 잘 먹인 후에, 이십 냥씩 선금후히 주고 박을 켜게 하였다.
 
117
그리하여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박 속에서 글 읽는 소리가 나면서 이윽고 관을 쓴 늙은 양반, 갓을 쓴 젊은 양반, 초립 쓴 새 서방님, 도포입은 도련님이 달아 매고 참나무 절굿공이로 짓찧었다.
 
118
"이놈 놀부야! 네 아비 개불이와 네 어미 똥녀가 댁종으로 드난살이 하다가 오밤중에 도망한 지 수십 년이 되는데 이제야 찾았구나. 네 어미와 아비 몸값이 삼천 냥이다. 당장에 바쳐라."
 
119
놀부놈이 돈 삼천 냥을 들여 바치며 사죄하니 그 생원님 못 이기는체하고 놀부에게,
 
120
"이 돈 삼천 냥 용전으로 쓰겠거니와 떨어질만 하면 내 다시 오리라."
 
121
하고 사라졌다.
 
122
다시 두번째 박을 타보았다. 이번에 가야금 든 놈, 소고든 놈, 징, 꽹과리 든 놈들이 우루루 몰려 나오더니,
 
123
"우리가 놀부 인심 좋다는 말 듣고 일부러 찾아왔으니 한바탕 놀고 가세."
 
124
하고 쌀 섬 내놔라, 돈 백 내놔라며 정신없이 날뛰니, 놀부는 돈 백 냥에 쌀 한 섬을 주어 보낸 후 또 한 통을 탔다.
 
125
이번엔 노승이 나오고 뒤따라 상좌승이 나왔다.
 
126
"놀부야, 우리 스승님이 네 집을 위하여 사십구 일 정성을 드렸으니 돈 오천 냥만 바쳐라."
 
127
이 이상 패가 망신하지 말고 그만 켜자는 놀부 계집의 말을 어기고 또켜니 이 번엔 상여 한 채가 나오고 뒤따라 각양각색의 병신 상제들이 나왔다.
 
128
"야 이놈 놀부야, 소 잡고 잘 차려라. 돈 만 냥만 내놓아라."
 
129
놀부가 전답을 선 자리에서 헐값으로 팔아 돈 삼천 냥을 주고 빌며사정하니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고 갔다. 놀부는 따라가며 물어 보았다.
 
130
"여보, 다른 통에 보물 아니 들었소?"
 
131
상두꾼이 대답하였다.
 
132
"어느 통에 들었는지 모르나 생금 한 통이 들기는 들었소."
 
133
놀부놈이 옳다 하고 슬근슬근 박 한 통을 다시 툭 타놓으니 박 속에서 팔도 무당들이 뭉게 뭉게 나오는데, 징과 북을 두드리며 각색 소리다하더니 장고통을 들어 놀부놈의 가슴팍과 배때기를 벼락치듯 후려쳤다. 놀부놈은 눈에서 번갯불이 나는지라 분한 가운데서도 슬피 울며 비는 것이었다.
 
134
"이 어찌된 곡절이오? 매 맞아 죽을지라도 죄명이나 알고 죽으면 한이 없겠으니 제발 덕분에 말해주오."
 
135
"이놈 놀부야, 다름 아니라 우리가 네 집을 위하여 굿을 많이 했으니 오천 냥을 바쳐라. 만일 거역하는 날엔 네 머리가 온전치 못하리라."
 
136
놀부놈은 기겁을 하여 돈 오천 냥을 내주고 겨우 그들을 보내고 나니 열이 치받쳤다.
 
137
"될테면 되고 망할 테면 망해라. 남은 박을 또 계속 타보리라."
 
138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이게 웬일인가? 박속에서 수천 명 등짐 장수들이 누런 농을 지고 꾸역꾸역 나오더니 정신없이 떠들어댔다. 놀부놈이 기가 막혀 다른 박이나 타보려고 돈 삼천 냥을 내놓으니 그들은,
 
139
"뒷 박통에는 금과 은이 많이 들었을 것이니 정성 들여 켜보아라."
 
140
하고 일시에 물러나 사라졌다.
 
141
그 다음 또 한 통을 따다놓고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이번엔 박 속에서 수천 명 초라니 탈이 나오면서 오도방정을 다 떨었다. 그러고는 일시에 달려들어 놀부놈의 덜미를 잡고 메다꽂으니, 놀부는 거꾸로 서서,
 
142
"애고 애고 초라니 형님, 이게 웬일이오? 뭐든지 말씀만 하시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143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애걸하였다. 그러자 초라니가 호령하였다.
 
144
"이놈 놀부야, 돈이 중하냐 목숨이 중하냐?"
 
145
"사람 생기고 돈이 났으니 돈이 어찌 중하겠습니까?"
 
146
초라니가 다시 꾸짖었다.
 
147
"이놈, 그러면 돈 오천 냥만 시각 내로 바쳐라."
 
148
놀부는 할 수 없이 돈 오천 냥을 내주었다. 그리고 물어 보았다.
 
149
"다음 박통 속 일이나 자세히 일러 주소."
 
150
"어느 통인지 분명히 생금이 들었으니 다 타보아라."
 
151
슬근슬근 툭 다음 박을 타놓으니 박 속에서 수백 명 사당걸사들이 나오면서 작은 북을 두드리며 저희끼리 야단스럽게 놀아나며 소리를 하더니 놀부를 보고 달려들었다.
 
152
"옳지! 이놈 이제야 만났구나!"
 
153
여러 놈이 놀부의 사지를 갈라 잡고 헹가래를 치니 놀부놈 눈이 뒤집히고 오장이 나오는 듯하였다.
 
154
"네 놈이 목숨을 조전하려면 전답 문서 다 바쳐라."
 
155
문서 뭉치를 다 내주고 또 다음 박이다. 슬근슬근 툭 타놓으니 박 속에서 수백 명의 왈패들이 밀거니 뛰거니 뛰쳐나왔다.
 
156
누구 누구냐? 이죽이.떠죽이.난죽이.바금이.딱정이.군평이.태평이.여숙이.무숙이.하거니.보거니.난쟁이.몽둥이.아귀소.악착이.조각쇠.섭섭이.든든이 등이다. 그들은 차례로 앉더니 놀부를 잡아 빨랫줄로 찬찬 동여 나무에 동그마니 달아매고 매질 잘하는 왈패 한 놈을 가려 뽑아 분부하는 것이었다.
 
157
"저놈을 사정 두지 말고 세게 쳐라!"
 
158
여러 놈이 한쪽으로 놀부를 잡아 내어 이 뺨 치며 발로 차고, 뒹굴리며 주무르고 잡아뜯고, 한편으로 주리를 틀며, 매질을 하며, 두 발목을 도지개에 넣고 트니 복숭아뼈가 우직우직하는 것을 용심지에 불을 당겨 발샅에 끼어 당근질을 하며, 온갖 형벌을 쉴 새 없이 갈아들며 하니 쇠공이의 아들인들 어찌 견뎌내리오?
 
159
"살려 주오! 살려 주오! 제발 덕분에 살려 주오. 돈 바치라면 돈 바치고 쌀 바치라면 쌀 바치고 계집 바치라면 바칠 것이니 남은 목숨 살려 주오!"
 
160
여러 왈패들이 돌아가며 한 번씩 생주리를 틀더리, 그제서야 한 놈이 분부하였다.
 
161
"이놈 놀부야, 들어라! 우리가 금강산 구경을 가는데 노자돈이 떨어졌으니, 돈 오천 냥을 바치되 만약에 지체하면 된급살을 내리리라!"
 
162
놀부놈은 어찌나 혼이 났던지 감히 한 말도 대꾸하지 못한 채 돈 오천 냥을 주어 보낸 후에 사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중에도 끝내 허욕을 버리지 못해 당장에 수가 터질 줄로 알고, 엉금엉금 동산으로 기어 올라가서 다시 박 한 통을 따가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춤거리는 인부를 달래어,
 
163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기어라 톱질이야."
 
164
슬근쓱싹 박을 쪼개어 놓고 보니 팔도 소경이란 소경은 다 뭉치어 막대기를 닥닥거리며 눈을 희번덕거리고 내달아 꾸짖었다.
 
165
"이놈 놀부야! 날려느냐? 기려느냐? 네놈이 어디로 갈 거냐? 너를 잡으려고 안남산, 밖남산, 구계동, 쌍계동, 면면촌촌을 얼레빗으로 샅샅이, 이 참빗으로 틈틈이, 굴뚝 차례로 두루 널리 찾아 다녔는데 오늘에야 이곳에서 만났구나! 네 우리들의 수단을 한 번 보렷다!"
 
166
그러고는 지팡막대를 들어 휘두르니 놀부놈 어찌할 바를 몰라 이리 저리 피하나 여러 수경들은 점을 치며 눈 뜬 사람보다 더 잘 찾아 붙잡는다. 그러니 놀부놈은 달아나지도 못하고 애걸하는 것이었다.
 
167
"여보 장님네들, 이게 웬일이오? 사람을 살려 주오. 무슨 일이든 분부대로 하리다."
 
168
소경들이 그제서야 놀부를 놓아 주고 북을 두드리며 경을 읽더니, 놀부놈을 지팡이 두드리듯 함부로 치니 놀부놈을 견디다 못해 돈 오천 냥을 내어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169
"집안에 돈이라곤 한 푼도 남은 게 없이 가산을 탕진했으니 이젠 살아갈 길이 막연하구나! 이왕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해보면 설마하니 끝에 가서야 길한 일이 없으랴?"
 
170
그러고는 다시 동산으로 올라가서 박 한 통 따다놓고,
 
171
"이번 박은 겉을 보건대 빛이 희고 좋으니 이 속엔 응당 보화가 들었을 것이니 정성 들여 타보자!"
 
172
하고 한동안 켜보다가 궁금증이 나서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들어보니 박속에서 우뢰같은 소리가 진동하며,
 
173
"비로라! 비로라!"
 
174
하므로 무더기로 큰 탈이 또 나는 줄 알고서 톱을 내던지고 달아나려하자 다시 박 속에서 우뢰같은 호령이 터져 나왔다.
 
175
"너희가 왜 박을 아니 타느냐. 내가 답답하여 한때를 못 견디겠으니 어서 켜라!"
 
176
놀부가 겁을 먹고 물었다.
 
177
"'비'라 하시니 무슨 비인지 자세히 말씀하시오."
 
178
"이놈, 비로라.!"
 
179
놀부가 다시 물었다.
 
180
"비라 하시니 양귀비입니까? 누구신 줄이나 먼저 알고 박을 마저 켜겠습니다."
 
181
"나는 그런 '비'가 아니라 연나라 사람 장비거니와 네가 만일 박을 아니켜면 무사하지 못하리라."
 
182
놀부가 장비라는 말을 듣더니 매우 놀란 듯 목안의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183
"이를 장차 어찌하면 좋은가? 이번엔 바칠 돈도 없으니 죽는 도리밖에 없나 보다."
 
184
박을 타던 인부가 비웃으며 말을 받는다.
 
185
"너는 네 죄로 죽거니와 내야 무슨 죄로 죽는단 말이냐? 그런 말 다시 하다가는 내 손에 먼저 죽을 줄 알아라!"
 
186
"허튼 소리 말고 어서 타던 박이나 마저 타서 하회나 보세."
 
187
놀부가 할 수 없이 마저 타고 보니 별안간 대장군 한 사람이 와락 뛰어 나오는데 얼굴은 숯먹을 갈아 끼얹은 듯이 꺼먼 것이 제비 턱에 고리 눈을 부릅뜨고서 장팔 사모 큰 창을 눈 위로 번쩍 들고 인경같은 소리를 우뢰같이 질렀다.
 
188
"이놈 놀부야, 네가 세상에 태어나 부모께 불효요, 형제에게 불목하고 친척과 불화하니 죄악이 네 털을 빼어 세어도 당치 못할 것이다. 천도가 어찌 무심할까 보냐. 옥황상제께서 나를 시켜 너를 '모든 방법으로 한없는 죄를 씻게 하라'하시기에 내가 특별히 왔으니 견뎌보아라."
 
189
그러고는 움파같은 손으로 놀부의 덜미를 달려들어 잡고서 공기 놀리 듯하니, 놀부놈은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나 울며 애걸 복걸 하였다. 장군은 그 정상을 불쌍히 여겨 꾸짖고 떠나갔다.
 
190
"응당 너를 여러 토막 낼 것이지만 십분 생각하고 용서하는 것이니 이후는 어진 동생을 구박 말고 형제 화목하게 살도록 하라."
 
191
놀부는 생짜로 경을 치르고 겨우 정신을 수습하자, 다시 동산으로 올라가 보니 박 두 통이 남아 있으므로 한 통을 또 따가지고 내려왔다.
 
192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겨 주소 톱질이야. 이 박 켜거들랑 금은보화 사태같이 나오너라. 흥부같이 살아 보리라."
 
193
놀부 계집이 곁에 서 있다가 한 마디 던지는 것이었다.
 
194
"다른 보화는 많이 나오되 흥부 아주버니같이 첩만은 나오지 마소서."
 
195
놀부는 당장에 꾸짖었다.
 
196
"가산을 탕진하고 살림이 결단나서 상거지가 된 것이 샘이 어디서 나오는고. 소란스럽게 굴지 말고 한편 구석에 가 있거라!"
 
197
밀거니 당기거니 슬근슬근 타며 귀를 기울여도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므로 놀부놈 매우 기꺼워하며 인부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198
"이번엔 다 켜도 아무 소리가 없으니 아마 수가 터질 박이렷다!"
 
199
그러고는 급히 타며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것도 없고 다만 평평할 뿐이므로 놀부가 기꺼워할 즈음이다. 인부는 속으로, '여러 박통마다 탈이 났으니 이 박이라고 어찌 무사하랴?' 하고는 소피하러 가는 체하며 도망쳤다.
 
200
놀부는 인부를 기다리다 못해 박통을 도끼로 쪼개고 보니 아무것도 없고 다만 허연 박속이 먹음직하므로 제 계집 시켜 끓이게 하였다. 그리하여 온 집안 식구가 한 사발씩 달게 먹고 나니 놀부는 배가 붕긋하여 게트림을 하며 계집에게 말하였다.
 
201
"그 국맛이 매우 좋아, 당동!"
 
202
"글쎄요, 그 국맛이 매무 유명하오. 당동!"
 
203
놀부의 자식들이 제 어미를 부르면서 말하였다.
 
204
"이 국맛이 좋소, 당동!"
 
205
놀부가 다시 말하였다.
 
206
"글쎄요? 나도 그 국을 먹고 나니 당동 소리가 절로 나오. 당동!"
 
207
놀부의 자식이 말하였다.
 
208
"어머니 우리들도 그 국을 먹고 나니 당동 소리가 절로 나오. 당동!"
 
209
"오냐 글쎄 그렇구나. 당동!"
 
210
놀부놈은 은근히 화가 치받쳐서 꾸짖었다.
 
211
"너무 요망스럽게 굴지 마라! 당동. 무슨 국을 먹었다고 당동하노? 당동."
 
212
놀부 계집이 맞장구를 쳤다.
 
213
"그 말이 옳소! 당동."
 
214
놀부의 딸도 당동, 아들도 당동, 머슴놈도 당도, 놀부 마누라도 당동, 온집안 식구가 저마다 당동거리니 무슨 가야금이라도 뜯으며 풍류하는 것 같았다.
 
215
'부자가 되려고 박을 심었다가 허다한 재산을 다 없애고 전후에 없는 고생을 하고 매를 맞고, 끝판에 와서는 온 집안 사람이 당동 소리로 병신이 되었으니 이런 분하고 원통한 일이 어디 있으리오? 당동.'
 
216
놀부는 홀로 신세를 생각하니 분한 김에 낫을 들고 단숨에 동산으로 치달아 올라갔다. 그리고 박덩굴을 노려보며 헤치니 덩굴 밑에 박 한통이 남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크기는 인경(조선시대 통행 금지를 알리기 위해 치던 종)만하고 무게가 천 근이나 될 것 같았다. 그것을 본 놀부놈은 치받치던 분한 생각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허욕이 번쩍 나서 혼자 지껄이는 것이었다.
 
217
"그러면 그렇지. 이제야 보물이 든 박을 얻었구나! 무게로 쳐도 금이 많이 든 모양이요, 재물도 많이 들어 있으므로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덩굴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모르고 공연히 한탄만 했구나! 먼저 박통에서 나온 초라니 말이 '금이 들기는 어느 박통에 들었다'하더니, 그 양반 말이 과연 옳다. 황금이 든 박이 예 있을 줄 알았더라면 다른 박은 타지 말고 이 박 먼저 켰을 것을...."
 
218
그러고는 기꺼움을 스스로 이기지 못해 그 박을 따 가지고 내려오며 흥얼거렸다.
 
219
"좋을 좋을 좋을씨고? 지화자 좋을씨고!"
 
220
슬근슬근 타다가 반쯤 켜고 우선 궁금증이 나서 박 속을 기웃이 들여다보니 그 속이 아주 싯누런 것이 온통 황금 같으므로 놀부놈 좋아라 한다.
 
221
"수 났구나! 그럼 그렇지! 마누라, 자네도 이 박 속을 들여다 보게. 저 누런 것이 온통 황금일세."
 
222
놀부 아내가 한동안 코를 훌쩍거리더니 되물었다.
 
223
"누런 것을 보니 금인가 싶소만 그 속에서 구린내가 물큰물큰 나니 그게 웬일이오?"
 
224
놀부가 말하였다.
 
225
"자네도 어리석은 소리 작작하게. 박이 더 익고 덜 익은 것이 있을 거아닌가. 이 박은 아주 무르익었으므로 구린내가 나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어서타고 보세."
 
226
슬근슬근 거의 타다가 놀부 양주 궁금증이 또 나므로 톱을 멈추고 양편에 마주앉아 들여다보는데 별안간 박 속으로부터 모진 바람이 쏟아져 나오며 벼락같은 소리가 나더니 똥줄기가 무자위에서 나오는 물줄기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227
놀부 양주는 피할 사이도 없이 똥벼락을 맞으며 나동그라졌다. 똥줄기는 천군만마가 달려오듯 태산을 밀치고 바다를 메울 듯 터져나와 삽시간에 놀부집 안팎채가 똥으로 그득하게 되자 놀부 양주는 온 몸이 황금덩이가 되어 달아났다. 멀찍이 물러나서 뒤돌아보니 온 집안이 똥에 묻혀있는 것이었다.
 
228
놀부가 기가 막혀 발을 동동 구르며 탄식하였다.
 
229
"여보 마누라,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재물을 얻으려다 재물을 탕진하고 끝장은 똥더미로 의복 한 가지 없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오? 애고 답답 서러워라."
 
230
이때 앞뒷집에 사는 양반네들 제 집까지 똥이 밀려와서 그득하게 쌓이게 되자 그 양반들이 고두쇠를 벼락같이 부르더니 분부하는 것이었다.
 
231
"빨리 가서 놀부놈을 잡아오너라!"
 
232
고두쇠가 새총알같이 달려가서 놀부놈의 덜미를 퍽퍽 눌러 짚고 풍우같이 몰아다가 생원님들 앞에 꿇어 앉혔다.
 
233
"이놈 놀부야, 들어라! 양반댁에 쌓인 똥을 해지기 전에 다 쳐내지 못하면 죽을 줄을 알아라!"
 
234
놀부놈은 기왓장 위에 꿇어앉은 채 계집을 시켜 돈 오백냥을 갖다놓고 거름 장사들을 닥치는 대로 불러다가 삯전을 후히 주고 똥을 쳐낸 다음에야 겨우 풀려났다.
 
235
놀부 내외 서로 붙들고 갈 곳이 없어 통곡하는데, 이때 건너 마을 흥부가 형이 패가망신했다는 말을 듣고 급히 노복을 거느리고 와서 놀부 양주와 조카들을 데리고 제 집으로 돌아왔다.
 
236
그리고 흥부는 안방을 치우고 형님 내외를 거처케 한 다음 의식을 후히 내어 대접하며 위로하고, 한편으로 좋은 터를 잡아 수만금을 아낌없이 들여 집을 짓되 제 집과 같게 하고 세간이며 의복 음식을 똑같게 하여 그 형을 살게 하여 주었다.
 
237
그러자 비록 놀부같은 몹쓸 놈일망정 흥부의 어진 덕에 감동하여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형제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게 되었다. 흥부 내외는 부귀다남하여 나이 팔순에 이르도록 장수하며 자손이 번성했는데 모두가 사람됨이 빼어나서 대대로 풍족하니, 그 후로 사람들이 흥부의 덕을 칭송하여 그 이름이 백 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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