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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씨전 (朴氏傳) ◈
해설   본문  
미상
시대 :
조선 말기 :
1
박씨전 (朴氏傳)
 
 
2
인조대왕 때 이득춘이라는 사람이 있어 벼슬이 이조참판 홍문관 부제학에 이르렀는데 그는 부인 강씨와의 사이에 남매를 두었으니 아들의 이름은 시백이요, 딸의 이름은 시화였다. 시백의 나이 16세요, 시와의 나이 13세가 되었을 때 왕이 이참판에게 강원 감찰사를 제수하시니 공이 부인과 시화는 집에 두고 시백만 데리고 임지로 부임하여 시백에게 시서를 강론하고 학문을 지도하였다.
 
3
이 때 금강산에 박현옥이라는 선비가 있으니 별호를 유점대사라 하는데 도학에 능했다. 그는 유점사 근처에 비취정을 짓고 세월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그를 비취 선생이라 하고 혹은 유점처사라 부르는데, 그에게는 시집가지 않은 딸이 있었다. 이참판이 유점처사의 딸을 시백의 배필로 삼기로 했다.
 
4
세월이 흘러서 이듬해 봄철이 되자 왕께서 이공에게 벼슬을 돋우어 이조 참판 겸 세자빈객을 제수하고 조정으로 불러 '짐을 도우라'는 분부를 하셨다.
 
5
이럭저럭 박처사와 상약한 일이 다가왔으므로 시백을 데리고 금강산에 이르러 박처사 집을 찾아 아들의 혼례를 올리고, 박처사와 함께 술잔을 나누며 즐거워하는데 신랑 시백이 신방에서 뛰어나왔다.
 
6
"아니 너는 왜 신방에서 뛰어나왔느냐? 그런 경거망동으로 나를 욕되게 하려느냐?"
 
7
"소자가 들어갔을 때는 신부가 없더니, 나중에 들어왔는데 마치 무서운 천신의 끔찍한 괴물 같은 여자라 경악하였습니다. 그런데 몸에서 더러운 냄새까지 진동하여 토할 것만 같아서 급히 나왔습니다."
 
8
이판서는 깜작 놀랐으나 아들의 경솔하고 무례함을 책망했다. 시백은 부친의 명이 엄격한지라 다시 신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신부를 다시 보기가 싫어서 닭 울기가 무섭게 외당으로 달려나와서 우울하게 날을 보내었다.
 
9
하루는 박소저가 시부모께 문안하고 절한 뒤에 엎드려서 이판서에게 아뢰었다.
 
10
"내일 아침에 노복을 종로 여각에 보내어, 거기서 매매되는 수십필의 말 중에서 제일 못난 비루먹은 말의 값을 물으면 일곱 냥을 달라고 할 것이니 못 들은 체하고 삼백 냥을 주고 사오라 하십시오."
 
11
"아니 네 말이 이상하지 않느냐?"
 
12
"그 곡절은 후일에 알게 되실 것입니다."
 
13
이판서는 자부의 비범한 재주를 믿기 때문에 응낙하였다.
 
14
노복이 일곱 냥에 정해 놓고 말 거간꾼과 남은 돈을 나누어 먹기로 하고 비루먹은 말을 끌고 돌아왔다.
 
15
박소저가 한참 보다가 말했다.
 
16
"저 말을 도로 갖다 주라고 하십시오."
 
17
"네 말대로 삼백 냥을 주고 사온 말인데 왜 다시 퇴하라는 거냐?"
 
18
"이 말은 삼백 냥 가치의 말인데 그 값을 덜 주고 사왔으니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19
이판서가 놀라서 노복을 족치니 노복이 빌면서 사죄하고 다시 말 여각으로 가서 삼백 냥을 다 주고 말을 끌고 돌아왔다. 박소저는 이판서에게 말 기르는 법을 아뢰었다.
 
20
"이 말은 하루에 깨 한 되와 백미 오홉씩 죽으로 쑤어서 3년 동안 먹이되, 이 초당 뜰에 풀어놓고 밤에도 찬이슬을 맞게 하십시오. 그러면 3년 후에 긴하게 쓸 일이 있습니다."
 
21
박소저 계획대로 후원에서 3년 동안 놓아 먹였다. 하루는 박소저가 이판서에게 여쭈었다.
 
22
"내일 명나라 칙사가 남대문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믿을 만한 노자에게 분부하여 우리말을 끌고 가서 기다렸다가 칙사가 값을 묻거든 삼만 팔천 냥에 팔아 오라 하십시오."
 
23
과연 명나라 칙사 장수는 말을 삼만 팔천 냥에 사갔다. 이 말은 천리마였던 것이다.
 
24
이 무렵에 나라에서는 과거를 시행하여 인재를 전국에서 뽑게 되니, 이시백이 과거에 응할 준비를 하고 내일이면 대궐 안 과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25
그 날 이시백은 박소저의 시녀 계화가 전해 주는 박소저의 연적을 받아 가지고 들어가서 장원에 급제하니, 그 표연한 풍채는 만인총중에 뛰어나 있었으며 그 거동은 진세의 선랑이었다.
 
26
모든 재상이 이득춘을 향하여 분분히 치하하매 공이 여러 손을 이끌어 술을 내어 즐기더니, 날이 저물어 파연곡을 아뢰매 모든 손이 각각 집으로 돌아가니, 이 아들을 거느려 내당으로 들어와 석반을 마치고 촛불로 낮을 이어 즐기나, 박소저가 외모 불미하므로 손을 보기 부끄러워하여 깊이 들어 있음을 서운히 여겨 심히 즐겨 아니 하니,부인이 말하기를,
 
27
"오늘 아들의 과거 본 경사는 평생에 두 번 보지 못할 경사이거늘 상공의 낯빛이 좋지 아니하심은 필연 추악한 박씨, 좌석에 없음을 서운히 여기심이니, 어찌 우습지 않으리까?"
 
28
이 말에 노한 이판서는 정색하고 말했다.
 
29
"부인은 아무리 지식이 없다 한들, 다만 용모만 보고 속에 품은 재주를 생각지 아니하느뇨? 자부의 도학은 그 신통함이 옛날 제갈무후의 부인 황씨를 누를 것이요, 덕행의 뛰어남은 태사에 비할 것이니, 우리 가문에 과분한 며느리어늘, 부인 말이 우습지 않으리요?"
 
30
말을 마치매 부인의 안색이 심히 좋지 않았다.
 
31
이 때 계화는 이시백의 장우너 급제함을 듣고, 소저를 향하여 기쁨을 치하하고 또 탄식하여 말했다.
 
32
"소저께서 시댁에 오신 후로 상공의 자취 이 곳에 한 번도 보이지 아니하고, 우리 소저의 어진 덕이 대부인의 박대하심을 당하사, 적막한 후원에 홀로 주야 거처하사, 집안의 크고 작은 일에 참여하지 못하시고, 잔치에도 나가시지 못하시며 수심으로 세월을 보내시니, 소비 같은 소견으로도 신세를 위하여 슬픔을 이기지 못하리로소이다."
 
33
그러나 소저는 태연히 웃고 대답했다.
 
34
"사람의 팔자는 다 하늘이 정하신 바라, 인력으로 고치지 못하거니와, 자고로 박명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어찌 홀로 나뿐이리요? 분수를 지켜 천명을 기다림이 옳으니, 아녀자 되어 어찌 가부의 정을 생각하리요? 너는 고이한 말을 다시 말라. 바깥 사람들이 들으면 나의 행실을 천히 여기리라."
 
35
계화는 소저의 넓은 마음과 어진 말에 못내 탄복하였다.
 
36
이 때 박소저가 시가에 온 지 이미 삼 년이 되었다. 하루는 시부모께 문안 올리고 다시 옷깃을 여미고 여쭈었다.
 
37
"소부, 존문에 온 지 삼 년으로, 본가 소식이 묘연하매 부모의 안부를 알고자 잠깐 다녀오려 하오니, 대인은 허락하심을 바라나이다.
 
38
하거늘 공이 듣고 크게 놀라 말했다.
 
39
"이곳에서 금강산이 오백여 리요, 길 또한 험하거늘, 네 어찌 가려 하는냐? 장성한 남자도 출입하기 어렵거든 하물며 여자의 몸으로이랴! 이런 망령된 생각은 행여 하지 말라."
 
40
"소부도 그러한 줄 아오나 이번에는 꼭 다녀도고자 하오니, 과히 염려하지 마소서."
 
41
공이 소저의 남다른 점을 아는지라 이에 허락하며 말했다.
 
42
"부득불 한번 다녀오고자 하거든 내일 근친할 제구와 인마를 차려 줄 것이니 속히 다녀오라."
 
43
"소부, 수삼 일 동안에 다녀올 도리가 있사오니, 인마와 제구가 쓸데가 없나이다."
 
44
공이 소저의 재주를 짐작하나 이렇듯 신속히 다녀올 도리가 있음은 몰랐는지라, 이 말을 듣고 더욱 신기하에 생각하여 흔연히 허락하거늘 소저는 시부모께 재배 하직하고 후당에 돌아와 계화를 불러 조용히 분부하기를,
 
45
"내 친가에 잠깐 다녀오리니, 너는 내 행색을 바깥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
 
46
하고, 뜰에 내려 두어 걸음 걷다가 몸을 나려 구름에 오라 삽시간에 금강산 비취동에 다다라 부모께 재배하고 문안을 드리니, 박처사는 이에 딸의 손을 잡고 말했다.
 
47
"너를 시가에 보낸 지 3년에 너의 박명을 슬퍼하였으나, 이는 하늘에 매인 바로 인력으로 움직이지 못할 바이어니와, 이제는 너의 액운이 다하고 복록이 무한할지라. 이 달 15일에 내 올라가리니, 너는 잠깐 머무르다 먼저 가라."
 
48
소저는 부모 슬하에서 몇 해의 회포를 풀며 며칠 동안 머무르더니, 처사 부부 재촉이 성화같았다.
 
49
"너의 시댁에서 기다리실 테니, 빨리 돌아가 시부모께 뵈어라."
 
50
소저는 마지못하여 부모를 하직하고 다시 구름에 멍에하여 잠깐에 후당에 돌아오니, 계화, 바삐 소저를 맞아, 신속히 다녀옴을 반가워했다.
 
51
소저는 곧 의복을 갖추고 시부모게 나아가 문안드리고, 다시 꿇어 공께 여쭈오되,
 
52
"소부 올 때에 가친의 말씀이, 이 달 15일에 갈 것이니 너의 시부께 아뢰라 하더이다."
 
53
공이 흔연히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을 시켜 술과 안주를 갖추고 처사 오기를 기다렸다. 과연 15일에 이르러 달빛 맑고 바람 맑은데, 홀연 반공으로부터 학의 소리나며, 처사가 구름을 타고 내려오거늘, 공히 황급히 뜰에 내려 처사를 맞아 방에 들어와 예를 마치고 좌정하매, 공자 또한 의관을 갖추고 처사를 향하여 절을 하고 문안을 드리니 공자의 뛰어난 풍채 일대의 영웅 호걸이라 처사는 황홀하고 귀중히 여겨, 공자의 손을 잡고 이판서를 향하여 말했다.
 
54
55
"영랑이 거룩한 재주로 높은 벼슬에 올라 장원 급제하여 옥당에 참여하니 이런 경사가 또 없음을 아오나, 이 시골 사람의 천성이 졸렬하여 공께 치하를 드리지 못하였더니, 금년은 여아의 액운이 다 하여 지금 저의 흉한 용모와 누추한 바탕을 벗을 때가 되었으므로, 존문에 나와 사위의 과거한 경사를 치하하고, 아울러 여아를 보고자 왔나이다."
 
56
공이 처사의 말에 무슨 뜻인가 들어 있음을 짐작하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주객이 술을 나누며 밤이 깊음을 깨닫지 못하더니, 문득 닭의 소리 요란하매 처사 비로소 소저의 침소에 들어가니 소저 급히 마루에서 내려 부친을 맞아 절을 올리고 문안하니, 처사는 흔연히 딸의 손을 잡고 마루로 올라 남향하여 소저를 앉히고 웃으며 말했다.
 
57
"금년으로 너의 액운이 다 하였도다."
 
58
하고, 주문을 외며 소매를 들어 소저의 얼굴을 가리키니, 그 흉하던 얼굴의 허물이 일시에 벗어지고 옥같이 고운 얼굴이 드러나거늘, 처사는 쾌히 웃고 말했다.
 
59
"내 이 허물을 가져가고자 하나, 남의 의혹을 없앨 길이 없으리니 시부께 말씀하여 궤를 얻어다 이를 넣어 시모와 가장에게 보여 의심을 풀게 하라. 오늘 이별하면 이후 70년이 지나야 부녀가 다시 만나리라."
 
60
하고 밖으로 나가 이판서에게 이별을 고하며 당부했다.
 
61
"이후 혹 어려운 일이 있거든 자부에게 물으소서."
 
62
뜰에 내려 두어 걸음 걷더니, 간 곳이 없었다.
 
63
이튿날 계화가 이판서 앞으로 와서 소저의 신기한 소식을 전했다.
 
64
"어제 처사께서 다녀가신 후로 우리 소저께서 얼굴의 허물을 벗고 절색의 부인이 되었기에 이런 신기한 술법에 놀라서 대감께 아뢰옵니다."
 
65
이판서가 기뻐하면서 후원의 초당으로 달려가 보니 그처럼 흉하던 며느리가 절세의 미소저로 변하여 있었다.
 
66
"제가 전생의 죄가 크므로 얼굴에 흉한 허물을 쓰고 세상에 태어나서 수십 년의 액운을 채웠기로 하늘이 가친께 명하여 본형을 회복하여 주셨으니 의심치 마십시오."
 
67
시부모는 반신반의하며 벗은 허물을 본 다음 확신하며 신기하게 여겼다.
 
68
이 때 왕은 이시백의 재덕을 사랑하고 벼슬을 돋우어 병조 판서를 제수하시니 시백이 천은을 사례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부친을 뵈옵자 부친이 꾸짖었다.
 
69
"너는 지난 일을 생각지 못하느냐? 지금 무슨 면목으로 아내를 보겠느냐? 네 위인이 그렇게 어리석으니 국가의 중임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70
이시백과 박소저가 부부 화동한 지 수삭이 못 되어 몸에 태기가 있더니 마침내 십 삭이 되어 소저가 쌍둥이 아들 형제를 순산하였다.
 
71
이 때 왕은 병조 판서 이시백에게 평안감사를 제수하셨다가 또다시 조정으로 불러서 곧 상경 벼슬을 내리셨다. 그런데 명나라의 조정이 요란하여 가달 등의 외적이 변경을 침노하매 왕이 심려하시고 이시백으로 상사를 삼으시고 적당한 인물을 군관으로 삼아서 원군발정을 하라고 분부하시었다.
 
72
시백은 여러 장수 가운데서 임경업을 정하여 왕께 추천하였다.
 
73
북방의 호국에 이르니 호왕이 보고 임경업을 사위 삼기를 원하며 은근히 탄식하였다.
 
74
"내가 조선을 쳐 항복 받고자 하던 차, 뜻밖에 가달의 침범으로 조선에 임경업의 덕을 봄으로써 조선에 뛰어난 명장이 있음을 보고 그만큼 조선의 위세가 장엄함을 알았으니, 앞으로 조선을 깔보고 범하지 못하겠도다."
 
75
옆에서 이런 호왕의 말을 들은 공주가 뜻밖의 말을 했다.
 
76
"부왕마마는 염려 마십시오. 제가 조선에 나아가서 이시백과 임경업을 없애 버리고 오겠습니다."
 
77
호왕이 기뻐하면서 공주로 하여금 자기의 조선 침략의 숙원이 이루어지기를 은근히 바랐다. 공주는 장담하고 조선을 향하여 길을 떠나 조선 남자의 행색으로 한성에 잠입하였다.
 
78
박소저, 하루는 시부모께 저녁 문안을 드리고 침실에 들더니, 시백이 밤이 깊어 들어오거늘, 소저는 판서 이시백을 맞아 좌정하였다. 판서가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소저와 더불어 이야기를 하였다. 드디어 밤이 이슥하자 소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79
"내일 날이 어둑하여, 강원도 원주 기생 설중매라 일컬으며 상공의 서헌으로 올 이 있으니 그 아름다움을 탐내어 가까이하시면 큰 화를 당하실 것인즉, 그 계집더러 여차여차 이르시고 내실로 들여보내시면, 첩이 마땅히 여차하리니, 상공은 첩의 말을 허수히 듣지 마소서."
 
80
시백이 웃으며 말했다.
 
81
"부인의 말씀이 우습도다. 장부가 어찌 한 조그만 계집의 손에 몸을 바치리요?"
 
82
"상공이 첩의 말을 믿지 아니하거든, 그 계집을 후원으로 들여보내시고 상공이 그 뒤를 쫓아 들어오사, 그 계집이 말하는 것을 살펴보면 사실을 아시리다."
 
83
판서 시백이 응낙하고 명일, 부모께 문안하고 조정에 들어가 공사를 보고 날이 늦은 후에 돌아오니 손들이 모였거늘, 이에 술을 내다 즐기다가 날이 저물어 손이 각각 돌아가거늘, 판서는 저녁을 마치고 서헌에 한가로이 앉아 있었다.
 
84
과연 밤이 깊은 후에 한 여자, 문을 열고 들어와 재배하거늘, 판서가 눈을 들어 보니 나이 20세쯤 되었는데 그 얼굴이 백옥 같아 천하의 미인이라 놀라 물었다.
 
85
"너는 누구인가?"
 
86
그 여자가 대답했다.
 
87
"소녀는 원주 사는 설중매이온데, 상공의 위풍이 시골에까지 유명하기고 한번 뵙고자 하여 험한 길을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심를 바라나이다."
 
88
판서가 말하기를,
 
89
"너의 말이 기특하나, 여기는 손들의 출입이 잦으니, 후원 부인 있는 곳에 들어가 있으면, 손들이 다 흩어진 후에 너를 부르리라."
 
90
하고, 시녀를 불러 후원으로 인도하게 하였다. 설중매가 부인 처소에 들어가 박씨께 뵈니, 박씨가,
 
91
"너는 바삐 올라오라."
 
92
하니, 설중매 사양하지 아니하고 들어오거늘, 소저는 자리를 주고 계화로 하여금 술과 안주를 가져오게 하여 부어주었다. 설중매가,
 
93
"첩은 본디 술을 먹지 못하오나, 부인이 주심을 어찌 사양하리까?"
 
94
하고 받아 마시기를 이어 사오 배 하니, 두 눈이 어지러워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 쓰러져 잠들었다. 소저가 그 여자의 자는 모습을 보니, 얼굴에 살기가 어려 그 흉독한 기운이 사람을 쏘거늘, 가만히 행장을 뒤지니 삼척 비수가 들어 있었다. 소저가 그 칼을 집으려 하니 그 칼이 변화무쌍하여 사람에게 달려들거늘, 놀라 급히 피하고 주문을 외어 그 칼을 제어하고, 잠 깨기를 기다리니, 날이 밝은 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거늘, 박씨가 말했다.
 
95
"너는 바삐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
 
96
'첩은 강원도 원주 사는 계집으로서, 부모를 모두 여의어 의지할 곳이 없사와 가무를 배웠삽거늘, 어찌 본국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소저의 높은 이름을 듣고 왔나이다."
 
97
박씨, 소리를 높여 꾸짖었다.
 
98
"네 끝까지 나를 업신여기어 이렇듯 속이니 어찌 통분하지 않으리요? 네 호왕의 공주 기룡대가 아니냐?"
 
99
기룡대는 혼비백산하여 사죄했다.
 
100
"부인이 밝으사 첩의 행색을 아시니 어찌 조금이나마 속이리까? 첩은 과연 호왕의 공주로, 부왕의 명을 받아 귀댁에 들어왔사오니, 부인의 너그러우신 덕으로 용서하시면 본국에 돌아가 조용히 지낼까 하나이다."
 
101
"네 본색을 바로 고하기로 용서하나니, 이 길로 곧 떠나 너의 나라로 가 너의 국왕더러 이르라. 이판서의 부인 박씨에게 행색이 드러나 성사를 못한 바, 박씨의 말이 네 잠시라도 지체하면 큰 화를 만나리니 빨리 돌아가 화를 면하라 하더이다 하라."
 
102
기룡대는 정신이 어지러워 엎드려 사죄했다.
 
103
"바라옵건대, 부인은 첩의 죄를 용서하소서.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옵심을 비나이다."
 
104
"너의 국왕이 분에 넘치는 뜻을 두어 우리나라를 침범하고자 하니, 이니 우리나라의 운수가 불길함이나, 너의 병력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마음대로 침범하지 못하리니, 너는 바삐 나가 자세히 이르라."
 
105
기룡대는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 후 하직하고 나왔으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여 사면으로 돌아다니기를 밤이 새도록 하되, 나갈 길이 없는지라, 기룡대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106
"호국 공주 기룡대가 이시백의 집에 이르러 죽게 될 줄을 어찌 알았으리요?"
 
107
이 때 문득 박씨 나타나 말했다.
 
108
"네 어찌 가지 아니하고 날이 새도록 그저 있느뇨?"
 
109
기룡대는 땅에 엎드려 말했다.
 
110
"첩이 부인의 덕을 입어 돌아가려 하였사오나 사면이 층암절벽이라 갈 바를 모르오니, 바라건대 부인은 길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111
소저가 말하기를,
 
112
"너는 그저 보내면, 필연 임경업 장군을 해하고 갈 듯한 고로, 너로 하여금 나의 수단을 알게 함이라."
 
113
하고 공중을 향하여 진언을 외니, 홀연히 뇌성벽력이 진동하며 폭풍우가 일도니 기룡대의 몸이 절로 날려 순식간에 호국 궁중에 가서 떨어졌다. 이것을 본 호왕이 경악했다. 공주 기룡대가 오랜 후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조선에 가서 겪은 자초지종의 일을 고하자 호왕은 경탄했다.
 
114
"허허, 이시백의 부부가 그런 기대한 영웅인 줄은 몰랐도다."
 
115
이후 용골대, 용홀대의 두 형제가 왕명을 받들고 군사를 교련하여 조선으로 행군을 개시하였다.
 
116
이 때 이판서의 부인 박씨가 시백에게 심상치 않은 말을 했다.
 
117
"호국의 공주 기룡대가 쫓겨 돌아간 후에 호국의 병세가 점점 강성하여 조선 침범의 야망을 버리지 않고 군사를 내어 임경업을 죽이고 위로 상감의 항복을 받고자 금년 12월 28일에 동대문을 깨치고 물밀듯이 쳐들어올 것입니다. 부디 그 날을 어기지 마시고 상감을 모시고 광주산성으로 급히 피하소서. 그 뒷일은 제가 이곳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118
그러나 영의정 김자점과 좌의정 박운학의 반대에 부딪쳐 상감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이 때 공중에서 홀연히 옆에 비수를 낀 선녀가 내려와서 뜰 아래 배알하고 상감에게 온 뜻을 아뢰었다.
 
119
"신은 도승지 이새백의 부인 박씨의 시비 계화입니다. 박부인이 저에게 지금 성상이 간신 김자점의 참소를 들으시고 유예 미결하시니 네가 가서 아뢰어 곧 산성으로 동가하시게 하라 하더이다."
 
120
계화는 빼어들고 왔던 칼을 칼집에 꽂고 앞에 있던 큰 망두석을 번쩍 들어서 피난을 반대하고 있는 재상 김자점과 박운학을 겨누고 큰소리로 꾸짖은 다음 다시 상감께 아뢰었다.
 
121
"만일 이 밤을 지체하시면 큰 화를 당할 것이니 저의 주인 박씨의 말을 범연히 듣지 마시고 곧 피난하소서."
 
122
상감은 이시백을 이조 판서 검 광주 유수로 명하시고 그의 호위 아래 산성으로 떠났다.
 
123
이 때 용골대가 한성에 침입하여 보니 국왕이 이미 피난하고 대궐에 없으므로 아우 용홀대에게 서울을 점령케 하고 스스로 기병 오천을 거느리고 광주산성으로 추격하여 성중을 향해 총을 쏘매, 화살이 비오듯했다.
 
124
상감이 이런 혼란으로 어쩔 줄 모르고 망연실색하고 있을 때 공중에서 홀연히 큰 소리가 들려왔다.
 
125
"상감께서는 항서를 써서 용골대에게 주소서. 용골대는 세자 대군 삼형제를 볼모로 잡아가고 난리는 일단 끝날 것입니다. 신첩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입니다. 신첩이 한 번 나아가 칼을 들면 용골대의 머리와 호병 삼만을 풀 베듯 할 것이나 천의를 어기지 못함이니, 신첩의 죄를 사하소서."
 
126
용골대는 항서를 받은 후에 세자 대군과 왕대비전으르 데리고 광주를 떠나갔다.
 
127
한편 계화는 박씨 집의 후원에 용홀대의 머리를 베어 박부인에게 드리니 부인은 그 놈의 머리를 높은 나뭇가지에 달아매어 두었다가 그 놈의 형용골대가 와서 보고 낙망케 하라고 일렀다. 그 후 용골대가 한성으로 들어와서 동대문으로 들어오다가 용홀대가 박씨의 시비 계화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노기 충천하여 벽력 같은 호통을 치자, 박부인은 계화를 불러서 명했다.
 
128
"네가 저 놈을 죽이지는 말고 간담을 서늘케 해서 우리 도술의 솜씨를 보여라."
 
129
계화가 맞아 싸운 지 십여 합에 용골대는 계화의 무술 실력에 당하지 못할 것을 알았으나 허세를 부리고 큰소리로 꾸짖으며 삼백 근 철퇴를 둘러메고 계화에게 달려들었다. 이 때 계화가 거짓 패하여 달아나자 용골대는 의기 양양하게 쫓으며 호통을 쳤다.
 
130
"이 년, 네가 달아나면 안 잡힐 줄 아느냐?"
 
131
계화가 잡았던 칼을 공중에 휘저으며 진언을 외우매, 모래와 돌이 날리고 사방에서 어두귀면의 병졸이 아우성을 치고, 에워싸 들어오고, 눈과 비가 크게 퍼부어서 순식간에 물이 한 길도 넘으니, 용골대 수족을 놀리지 못하고 혼비백산하여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132
"네가 그럴 뜻이라면 왕대비전하를 이리로 모셔 오라."
 
133
박부인이 급히 뜰에 내려 왕대비전을 맞아 통곡하며 불행을 위로하고 계화에게 명하여 용골대를 석방시키니, 계화가 박씨의 명을 받고 나와서 용골대에게 말하기를,
 
134
"너를 여기서는 용서한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의주에서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당할 것이니, 의주에 도달하는 즉시로 의주 부윤 임경업 장군에게 배례하고 이 글을 보여 드려라. 그러면 임장군이 너를 용서하고 돌려보내리라."
 
135
용골대가 의주에 이르자 임경업이 비호같이 달려들며 벽력 같은 소리로 용골대를 질타했다.
 
136
"이 무도한 오랑캐 장수야. 어서 내 칼을 받아라!"
 
137
용골대는 황망히 말에서 내리며,
 
138
"장군은 노기를 풀고 잠깐 이 글을 보시오."
 
139
하고 이시백 부인 박씨의 편지를 올렸다.
 
140
'이번 우리 조국의 국운이 불길하여 이런 일을 당하였으나 하늘이 호국과 조선 두 나라가 종속 관계가 되라고 정하신 운수여서 용골대가 상감의 항서를 가지고 세자 대군 삼형제분을 모시고 귀국하는 것이니, 장군은 분한 마음을 진정하시고 이 일행을 무사히 가게 하여 삼 년 후에 세자를 무사히 환국하시게 함이 상책입니다. 장군은 부디 이 말씀을 믿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141
상감은 산성에서 항서와 함께 왕대비전하와 세자군은 호국에 보내시고 침식이 불안하던 중 하루는 공중에서 선녀 한 명이 내려왔다.
 
142
"신첩은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 박씨로소이다."
 
143
"경의 지략을 매양 탄복하던 중 이제 경의 신형을 보게 되니 과인의 마음이 매우 기쁘오."
 
144
임금은 이시백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로 향발하여 환궁하셨다.
 
145
그 후에 상감은 이시백에게 의정부 우의정에 대광보국을 제수하시고, 부인 박씨도 충렬 정경 부인으로 봉하시고 부부의 충성을 항상 칭찬하여 마지않으셨다.
 
146
어느덧 세자가 호국에 잡혀간 지도 삼 년이 되었으므로 왕대비전과 상감이 주야로 근심하고 계시던 중 임경업이 자원하여 발정한 후 두 달만에 호국에 이르러 왕자 삼형제를 모시고 귀국하니 이 때 전임 영의정 김자점이 이시백과 임경업을 시기하여 어명이라는 거짓말로 먼저 임경업을 잡아서 옥에 가두고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 이에 이시백이 김자점의 음모를 폭로하니 상감이 노하여 김자점의 목을 베고 그 처자도 목도 베어 죽이게 하고, 가장집물을 몰수해 버리셨다.
 
147
그 해 가을 구월 초순에 상감이 승하하시고 세자가 19세로 즉위하니 연소한 임금을 보필하는 이시백 재상의 높은 이름이 일국에 진동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 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하나는 평안감사를 하였고, 하나는 송도유수를 지냈는데 각각 애민의 정사를 하여 청렴하였다.
 
148
그 후 삼부자가 함께 조정에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자손을 교훈하여 부귀를 더하며 가문의 영광을 빛내니 세월이 흘러 이시백공의 나이가 팔십이 지났다.
 
149
어느 해 가을 구월 보름께 달빛이 휘황하게 밝으므로 공이 부인과 더불어 완월대에 올라서 남녀 자손을 좌우에 앉히고 즐거운 잔치를 베풀던 중 공이 손수 잔을 들어 두 아들에게 주면서 뜻밖의 유언을 했다.
 
150
"내 소년 시절의 일이 어제 같은데 어느 사이 팔십이 지났으니 세상일이 일장춘몽이로구나. 우리 부부는 세상 명분이 다 하였으니, 너희들과 영결코자 한다. 금후로 너희들 형제는 조금도 슬퍼하지 말고 자손을 거느리고 길이 영화를 누려라."
 
151
그리고 모든 손자를 일일이 어루만지고 상을 물린 뒤에 부부가 나란히 누워서 자는 듯이 운명하였다.
 
152
상감이 이시백공의 별세 소식을 들으시고 또한 비감하시며 예관을 보내어 영전에 조알하게 하고 부의를 후히 내리시는 한편 시호를 문충공이라 하고 박씨 부인에게는 충렬비를 봉하여 추증하셨다. 박씨 부인의 시비 계화도 상전을 따라서 역시 병 없이 자는 듯이 죽었으므로 이판서 형제는 더욱 비감하였으나 상례를 존절하여 입관 성복하고 길일을 택하여 선산에 안장하고 여막을 짓고 살면서 조석 곡읍으로 삼년 상례를 지성으로 모셨다.
 
153
상감이 이러 형제의 충효를 아름답게 여기시고 다시 중임을 맡기시니 형제가 더욱 극진한 충성으로 임금을 섬겨서 작위가 일품에 이르고 자손이 계계승승하여 대대로 충성을 다하였다.
【원문】박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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