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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회(都會)의 아해(兒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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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11~12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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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都會)의 아해(兒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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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내가 글을 읽고 글을 쓰고 낮잠을 자고 하는 방밖은 아내 행길이다. 정원이 없는 작은 집이라 남향으로 광선에 유의한다는 것이 창을 행길로 내게 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담장 안으로 다소의 여유가 있는 것을 개방적으로 한다고 담을 낮게 쌓고 대문을 달지 않았더니, 행인도 그리 잦지 않은 길옆이 아늑하고 양지바르다고 졸망구니 아이들은 언제나 창밖에와서 재깔대고 떠들어 쌓는다. 줄을 긋고 돌차기를 하기, 초자(硝子)알을 담장 밑에 쪼으며 맞혀 먹기, 병정놀이로부터 합창, 행진, 그러다가는 때로 훤화(喧譁)하게 울고 싸움질이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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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에 골몰해 있을 때엔 이러한 것이 별로 귀에 거슬리지 않지만, 붓이 마음대로 나가지 않거나 상(想)이 잡히지 않을 때엔 아이들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까지 신경을 건드리고 마음을 초조하게 하여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버럭, 창문을 저끼고 고함을 쳐보나, 그때만은 좀 시무룩해졌던 아이들도 조그만 지나면 의연(依然)히 집 앞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장난에 취해버리곤 하였다. 아내는 궁여(窮餘)의 책(策)을 써서 담장안팎에 물을 뿌린다. 그러면 아이들은 담장과 쓰레기통에 올라앉아서 물뿌린 것이 마르기를 기다린다. 물이 마르면 그들은 다시 돌차기와 초자알 굴리기와 공 던지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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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서 사는 지가 5년이 되는데 처음 몇 해에는 아이들 떠드는 소리도 적었고, 또 문밖에 와서 훤화하게 구는 졸망구니도 없었었다. 생각해 보면 4, 5년 동안에 동네에는 많은 아이들이 새로이 세상에 생겨났고 그때에는 어리던 놈들이 지금은 문밖으로 몰려나와서 장난을 치며 떠들어댈 만큼 장성들을 한 모양이다. 하기는 내 집에도 그 동안 두 놈의 어린 것이 생겼고, 그 중의 한 놈은 어른 다섯 몫은 부산하게 굴어댄다. 그러니 인근의 집마다 같은 분수로 쳐서 미루어 보면, 나의 방밖이 이렇게 성가시고 시끄러워진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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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은 모두 커다란 저택들이어서 아이들이 장난을 칠 만한 정원만큼은 가지고 있음직도 하건만, 동무를 구하여 몰려나오는 것인지, 특히 내 집 창밖이 저희들 말마따나 ‘놀기가 좋아서’ 그러는 것인지, 해가 다사롭게 비칠 무렵이면 아이보개가 둘러진 것까지 합쳐서 십 수 명씩 몰려들어선 불안한 나의 신경의 순시(瞬時)의 안정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내가 언제나 저희들 놀음터로 창문이 난 방에 들어앉아 있는 것을 그들은 알 턱이 없을 것이고 이 작음 방안에서 이 집의 주인이 멍청하니 책상을 안고 하잘것없는 궁리에 전념해 있다는 것을 이해할 턱이 만무한 동네의 졸망구니들이고 보니 때로 창문을 열고 눈을 부릅떠 보이는 내가 그들에겐 다시없이 인정머리 없고 사나운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방이 어두워져도 어서 하루바삐 담장을 높이고 또 두꺼운 판장으로 대문을 해 달고, 항용 길거리에서 보듯이 담 위엔 맥주병이라도 바수어서 무시무시하게 꽂고 했으면도 싶으나, 주먹구구로 계산해 보아도 요즘 물가로 이삼백 원은 헐케 들어갈 모양이니 언뜻 가난한 경제에 손이 나가들 않는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쓰고 앉은 지금에도 밖에는 서너 놈 굵직굵직한 소학교 삼사 학년 놈들이 전장(戰場) 그린 딱지를 가지고, 제법 이 집주인께 미안을 표시하려는지 소리를 낮추어서 쑤군덕거리며 장난에 취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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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때때로 시골아이들의 노는 것을 상상해 보고 또 내가 어렸을 이만 시절에 자라나던 모양을 가만히 회상해 보기도 한다. 산과 들과 강으로 몰려다니며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던 것을 지금 나의 기억 속에서 더듬어 볼 수가 있다. 어른들이 성가셔하는 토방 밑이나 사랑방 댓돌 밑보다도 자연에 친숙해지려고 산과 들과 강으로 쏘다니던 것을 생각해 낼 수가 있다. 도회의 아이들이 골목 쓰레기통 옆이나, 이렇게 남의 집 창문 밑에 와서 어른들의 눈을 피하여 면지를 일으키며 째깔대는 것과는 판이하다. 그래서 이런 때엔 나는 언제나 시골서 자라나는 두 아이를 행복되게 생각하며, 지금 내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도 그러한 많은 대기 속에서 자유롭게 기르지 못하는 것을 한(恨)나게도 생각해 보곤 한다. 일전에 수창동 살다가 청량리 밖 교외로 이사해 나간 우인(友人)을 만났더니, 아이들의 건강이 눈에 뜨이게 좋아졌다고 말하면서, 어른들의 교통은 불편하지만 아이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 집 부근이라고 산이나 또는 광활한 운동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들이나 개울이라 이름할 만한 곳은 없으나 삼청공원이 가깝고 또 커다란 운동장을 가진 삼사 개의 중학교가 있으니 아이들이 뛰놀고 장난을 칠 만하기에는 족하다. 저희 집 뜰 안에는 역시 나 같은 그 집의 아버지가 두려워서 이렇게 밖으로 동무를 구하여 몰려나온다 치고, 그렇다면 그들은 어째서 가까운 산이나 또는 근방에 있는 중학교로 몰려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가끔 이상스레 생각해 본다. 그리고 골목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도회의 아이들을 핀잔줄 때엔 누구나 으레 그것을 이유로 삼는다. “왜 넓은 마당이나 산으로 가서 놀지 않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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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요즘 도회의 이러한 아이들의 심리를 약간 엿볼 수 있은 듯 하였다. 이들이 산이나 운동장으로 가지 않는 것은 그곳에 그들을 이끌 만한 매력이 없는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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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라! 우리들이 어렸을 때에 산으로 내달린 것은 대조나 살멩이를 따거나 밤을 줍거나 솔순을 꺽어 먹기 위하여서였다. 들로 달린 것은 까치 새끼를 내리고 콩부대를 하고 수수깜부기를 찌고 달래와 메를 캐기 위하여서였고, 개울이나 강으로 내달린 것은 물고기를 잡거나 헤엄을 치기 위함이었다. 어른들처럼 주회도로(周廻道路)를 멋없이 빙빙 돌거나, 건강이나 자연에 대한 그럴 듯한 이유를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하여서 산과 들과 강으로 책보를 던지면 곧바로 내달려 간 것은 아니었다. 위생사상이나 자연에 대한 미의식이 앞섰던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재미와 매력을 거쳐서 비로소 그러한 이념이 마음속에서 자라났던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마음을 낚는 아무러한 재미나 매력의 시설이 없는 공원의 주회도로로 단순한 권면(勸勉)이나 욕설을 가지고 아이들을 쫓아 보낼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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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이러한 자연적인 모든 조건은 도회에 앉아서 도저히 농촌과 같은 것을 바랄 수가 없다 치고, 그렇다면 그 대신 기계나 기구 등의 설비로서 아이들의 마음을 이끌 수는 얼마든지 있을 줄 생각한다. 덕수궁이나 창경원의 ‘아이들 왕국’ 같은 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모여서 노는가. 그리고 한주일에 한 때. 일 개월에 하루라도 이러한 유원지에서 놀아 볼 수 있는 행복된 아이가 서울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몇 만 분의 하나나 될 것인가. 아이들의 건강도 물론이어니와 도회이니 만큼 교육적인 방면의 계발도 유의하여 과학적인 시설이 하루바삐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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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는 커다란 운동장을 가진 각 학교들이 좀더 성의와 각성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통절히 생각하였다. 후생성이 학교의 운동장을 일반에게 개방하라는 취지가 공포(公布)된 것을 어느 신문에서 본 지가 퍽 오래 된것 같은데 요즘의 서울 학교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깊이 이해되지 않는 모양 같았다. 나 자신도 몸소 당하였고, 적어도 나와 전후하여 교문을 들어서던 오륙 인의 소년들이 당하는 것을 내 눈으로 친히 목도하였거니와, 중학교의 당국자들은 아직도 학교의 마당을 그들의 사유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 같아서 나의 마음은 대단히 온건(穩健)치 못하였으나 남과 시비를 가리기 싫어하는 성미인지라 소년의 한패와 함께 나도 어린것의 손목을 끌고 쑤걱쑤걱 교문을 물러나왔지만, 이렇게 넓은 운동장으로부터도 방축(放逐)을 당하는 어린아이들의 놀이터는 어디일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며 참으로 마음속이 편안할 수가 없었다. 약간의 시설을 가진 운동장에서까지 방축을 당한 아이들이, 공원의 멋없고 싱거운 주회도로를 정신나간 놈처럼 돌아다니기에 지친 뒤, 그들은 쓰레기통이나 남의 추녀 밑, 그렇지 않으면 차마(車馬)의 내왕(來往)이 빈번한 거리로 행길로 몰려다니며 먼지를 먹으며 어른들의 꾸중을 들으며 그들의 소년시절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큰 사회문제가 없고 또 이렇게 답답한 문제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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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조선』, 1940년 11ㆍ12월호)
【원문】도회(都會)의 아해(兒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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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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