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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임실의 재실
◈ 용암리 영사재(永思齋)
영사재(永思齋)는 신평면 용암리 북창마을 광명등(光明燈) 앞에 지어져 있다. 재실은 이 마을에 거주 하는 성산 배씨(成山 裵氏) 재실로 1974년 7월 20일 완공된 재실이다.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2개 걸려있다. 영사재 편액은 전남린(田南麟)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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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리 영사재(永思齋)
 
영사재(永思齋)는 신평면 용암리 북창마을 광명등(光明燈) 앞에 지어져 있다. 재실은 이 마을에 거주 하는 성산 배씨(成山 裵氏) 재실로 1974년 7월 20일 완공된 재실이다.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2개 걸려있다. 영사재 편액은 전남린(田南麟)이 썼다.
 
 
 
 

1. 용암 영사재기(永思齋記)

 
대개 묘에 재실이 있는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진(晉)나라의 병사(丙舍)나 당(唐)나라의 향정(享亭)은 모두 선조에게 향사하고 종족을 단합하는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곳이다. 우리 선조에 이천현감(伊川縣監)을 지낸 분이 계시는데 이름은 면(艸+緬106))으로 운수(雲水) 고을에[雲鄕]에 거처를 정하였는데 이미 16~17세를 지났을 정도로 오래 되었다.
 
임실현[本縣] 신평면(新平面) 북창리(北倉里) 중기산(中基山) 해좌의 무덤[亥阡]은 공의 의리(衣履)를 묻은 곳이고, 공의 아들 생원공(生員公)의 분묘(墳墓)도 같은 곳의 아래에 이어져 있다. 공의 손자 참봉공(參奉公)의 분묘 또한 같은 줄기 산기슭 탑동(塔洞)의 계좌[癸阡] 자리에 있다. 그러나 묘 아래에 비바람을 피하고, 우러러 볼 수 있는[贍望] 장소가 없어서 자손들이 오래도록 한탄하며 걱정하였다. 하지만 재력(財力)이 넉넉하지 않아서 미처 재실을 지을 여력이 없었다. 갑인년 봄에 종중 어르신 배승희(裵承熙)씨가 특별히 종회(宗會)를 마련하여 여러 종인에게 선언하기를, ‘일을 미루면 한이 없으니 올 봄에는 결단코 재실을 지어야 한다’고 하면서 스스로 많은 돈을 내놓으니, 종회에서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아 재물을 모아 장인[匠人]인 불러 중기산(中基山) 아래 북창촌(北倉村) 앞에 재실을 건립하였다. 왼쪽에는 방(房), 오른쪽에는 구들을 놓고, 가운데 대청(大聽)을 두었다. 집과 문, 담을 비록 아름답게 꾸미지는 못하였지만 청초(淸楚)하고 명랑(明朗)하여 검소하고 순박함을 높이 살만하므로 묘제(墓祭)를 지낼 때에 비바람과 눈보라 쳐도 여기에서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현감공(縣監公)은 고려 태사(太師) 무열공(武烈公) 배현경(裵玄慶)의 17세손이며, 조선에 들어와서 배진손(裵晉孫)은 자헌대부(資憲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지냈는데 이분의 손자이고, 배구(裵矩)는 서해도(西海道) 안렴사(按廉使)를 지냈는데 이분의 아들이다.
 
아! 공은 우리 16세조인데, 중간에 실전(失傳)되어 언제 제사를 받들었는지 조차 알지 못하게 된 지 오래되었다. 후손 배한규(裵漢圭)와 배정수(裵定洙)가 여러 해 동안 찾아 다행히 분묘를 확인하여 제향을 받든 지 신사년(辛巳)에서 갑인(甲寅)까지 34년간이었다. 그 후 조상의 영령에 제향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잃었던 분묘를 찾는 기쁨을 얻었으니, 자손들의 성의(誠意)가 감발(感發)하여 유명(幽明)의 사이가 없어지게 되었으니 기산(基山)의 밝은 곳[明區]에 오르내리시는 선조의 영령이 양양(洋洋)하구나. 위에 계신 듯 하고 옆에 계신 듯 하니 뵐 수 있을 것만 같다. 수십 년 동안 재각을 짓지 못하였는데, 자손들의 사모하는 마음으로 오늘에서야 추모할 수 있게 되었다. 준공하는 날에 내가 여러 종중에게 삼가 말하기를, ‘무릇 모든 일은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잘 마무리하는 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이니 오늘 준공한 것으로 우리의 일이 다 끝났다고 하며 마음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욱더 보수하면서 잘 유지하여 영원히 바꾸지 않으며 위로는 선조의 음덕(蔭德)을 계승하고 아래로는 후손들의 의리를 닦으며 저 기산과 더불어 천세만세토록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멈추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고 오래오래 보존될 것이다’라고 일렀다.
 
 
갑인(甲寅) 월 일 16세손 배정수(裵定洙) 삼가 짓다.
 
 
 

1.1. 永思齋記

 
盖墓之有齋其來久矣 晉之丙舍 唐之享亭 是皆享祖先而合宗族 追寓慕者也 惟我先祖伊川縣監公諱艸+緬 奠居雲鄕者 旣經十有六七世之久 以本縣新平面北倉里中基山亥阡 公其衣履之藏 而公之子 生員公墳墓同原繼下 公之孫參奉公 墳墓亦同脉山麓塔洞癸阡 而阡下無風雨之庇 贍望之所 故子孫愴悒久 而但財力不瞻不遑營齋 至於甲寅春 族大夫承熙氏 持設宗會 宣言於諸族 曰事推無限 而今春決然 成齋爲言 自出累萬金 族議僉同 鳩財招工 刱建齋於中基山下 北倉村前 而左房右堗 中介大聽 棟宇門垣 雖無雕飾之美 淸楚明朗 儉淳可尙 以若墓祭 時有雨雪 則可以將斯於事矣 惟我縣監公 卽高麗太師武烈公 諱玄慶之十七世孫 入本朝 有諱晉 孫 資憲大夫 工曹判書公之孫 有諱矩西 海道按廉使 公之子也 嗟乎 公卽我十六世祖 而中間失其傳 而不知幾 何時於香火久闕也 後孫漢圭定洙 積年搜覓 幸得墳墓尊享者 自辛巳至甲寅 今爲三十有四年 而闕後得享祖先之靈歡失後得墳 子孫之誠意 感發無間於幽明 而基山明區陟降之靈 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 庶其可見矣 數十年未遑營齋 子孫遠慕之誠 亦得今日而可追也 竣工之日 余敬告于諸宗 曰凡事刱始固難 善終亦尤難 勿以今日之事 謂吾事已畢 而弛心益加隨補 維持守成而永遠無替 上承先祖之蔭德 下修後昆之義理 與彼基山千世萬歲不蹇不蹇 不崩而長存云爾
 
歲甲寅 月 日 十六世孫 定洙 謹識
 
 
 

2. 용암 영사재위선추감제명기(爲先追感題名記)

 
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아서 높은 산악이 될 수 있으며 물은 한 줄기 시내도 사양하지 않아서 큰 바다가 되는 것이니 사람의 일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각 자손이 모여서 무리가 되는 것이다.
 
여러 정성이 뜻을 모아야 큰 일을 할 수 있다. 큰 일이라는 것은 먼저 위선(爲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 무덤에 사초(莎草)하고 석물을 갖추고 제전을 마련하며 무덤 아래 재각을 세우는 것인데 일은 크고 힘은 미약하여 일을 마치지 못하였다. 경영할 재력마저 다 써버려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하며 좋단 말인가?
 
이에 종족(宗族) 몇 사람이 여러 종족들에게 선언하기를, ‘설령 빚을 얻는다 해도 우리 종족이 되갚을 길이 없다. 또한 공사[役設]를 이렇게 중지한다는 것도 매우 어렵다. 바라노니 여러 종족의 피같은 조상을 사모하는 마음을 모아 오늘날 재각을 건립하는 때에 닥쳐 각자 더욱더 너그러운 정성으로 천금과 만금을 흔쾌히 납입하는 것이니 우리들이 먼저 하면 순조롭게 성사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우리 종족이 백 여 호구를 헤아리니 몇 백명이니 세속에서 이른바 사람이 모이면 하늘에도 오른다고 하였으니 어찌 이 일을 할 수 없겠는가! 어찌 불미(不美)하다고 하면서 빚을 얻거나 중지하겠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일은 진실로 아름답지 않은데다 다른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니 경영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하지 않다고 하겠는가?’하였다.
 
말이 끝나자 모인 사람들이 모두 호응하여 여러 용도로 쓰일 물건들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하여 저절로 이룰 수 있었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이것은 우리 종족이 위선(爲先)하는 정성을 지금 보게 된 것이다. 문중에서 주관한 사람이 이르기를, ‘이번 위선하는 정성은 남달랐으니 앞으로 열성적으로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하였다. 그 정성에 감복하여 편액을 짓지 않을 수 없었기에 위왕 같이 기록하고 이르니, ‘오늘날에 옛날 사씨(史氏)로 말이암은 일을 보았으니 후일에는 오늘의 일을 사씨의 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진실로 후손들과 함께 그 사적을 남겼으니 누군들 안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오직 바라는 것은 후손들이 그 정성을 보고 그 마음에 감복하여 모두 지극한 정성을 지닌 사람이 되고 후일에 이 재각에 오르는 사람이 살펴 보기만을 바란다.
 
 
갑인년 월 일 회장 승희(承熙) 지음
 
 
山不厭一土壤 故能成喬岳 水不讓一細流 故終成大海 於人事亦如是也 各子孫聚之爲衆也 衆誠之合謀而能成大事 大事則莫若先於爲先 以封莎具石置田 又建齋於墓下 事巨力微 事未了 而營財竭盡 然則如之何以可也 於是宗族數員 宣言於諸族 曰說使得債 吾宗之返報無路 且役設而若是中止 亦甚難矣 惟望共受一血之諸族 遠慕祖先之誠 近値今日 建齋之時 各自尤用惠誠千金 與萬金欣納 又歡入則 吾先事順成 又况吾族計戶則百餘量口則幾百耳俗所謂人衆則升天 豈不爲是事乎 何曰不美而得債中止哉 若不然吾事眞不美 且得恥笑於外 他經之營之可不重難哉 言迄衆皆應之 使物用度如水注下自然成了 豈不美哉 是吾諸族爲先之誠 今可見矣 門中管者 曰今次爲先之誠 異於人者 將有先事 必有烈誠也 感其誠以不可無楣板著名 故左以記之曰 今之視昔史氏之由也 後之視今亦史氏也 今與後之實有其蹟 誰曰不可乎 惟望後昆見其誠 而感其心 皆爲至誠人 後日登斯齋者 有所考覽焉
 
甲寅年 月 日 會長 承熙 識
 
[의연금 명단 생략]
 
 

 
각주
106) 文迪→用成→晋孫→矩→蘊, 면, 함, 준, 윤길
【향토】 임실의 재실
• 학암리 덕수재(德修齋)
• 용암리 영사재(永思齋)
• 원천리 경모재(敬慕齋)
(2024.01.0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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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