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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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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군(任實郡) 재실(齋室) # 저존재
【향토】
(2024.01.02. 20:08) 
◈ 대정리 저존재(著存齋)
전주~남원 간 4차선 국도에서 대정리 이정표를 따라 마을로 들어오면 마을회관 옆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에 거주하는 해주오씨 집안에서 1949년에 건립한 정면 4칸에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재실로 현판 1개, 주련이 4개 걸려있다. 재실 옆에 청세정이 있다.
대정리 저존재(著存齋)
 
전주~남원 간 4차선 국도에서 대정리 이정표를 따라 마을로 들어오면 마을회관 옆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에 거주하는 해주오씨 집안에서 1949년에 건립한 정면 4칸에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재실로 현판 1개, 주련이 4개 걸려있다. 재실 옆에 청세정이 있다.
 
 
 
 

1. 대정 저존재기(著存齊記)

 
내가 보건대, 세상의 부자들은 밤낮으로 집과 정원을 안을 꾸미는데, 선천(先阡)에는 힘을 쏟는 자가 드물다. 요행히 힘을 다하는 자가 있어도, 조금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과거에 날아갈 듯 한 것도 종종 무너져서 황폐한 터가 되었다. 또한 예전에 한미한 가문이 고생 끝에 재실을 짓고 몇 세대를 이어 지금까지 지켜온 것도 보았다.
 
대개 그 종족에 따라서 심법이 서로 전해져, 청전으로서 만물을 삼고, 묘로서 돌아갈 곳을 삼으니, 비록 백세가 지나도 끊어지지 않는다. 만약 하루아침에 기력을 바탕으로 삼아 재실을 만든 것이라면, 때를 기다려 서로 전한 것에 불과하니, 오래도록 영원하지 못할 것임을 가히 알 수가 있다. 예전에 영조 때에 낙음처사(樂蔭處士) 오공(吳公)이 있으니, 청세정(清洗亭) 휘 연경(璉卿)의 곤손(昆孫)178)이다. 공은 경학으로 이름이 났고, 조상의 공렬을 이어 절개가 있었다. 신임사화(辛壬士禍)179)를 당해서 충신과 역적의 구분이 없던 때에 은거해서 뜻을 구하고 의리를 행하고, 혼자 즐기며 세상이 추앙하는 것을 행하였다. 이후 곧 대촌에 거하는 사람들이 문호의 명성을 잇고 있다. 공의 묘소는 마을의 앞산 밑자락 간원(艮原)에 있으며, 묘앞에 재실을 설치할 겨를이 없었다. 매번 재숙할 곳이 없어서 모두의 한이 되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모으니, 태술(泰述), 형수(炯秀), 길수(吉秀)가 분주히 재목을 모으고, 현로(賢勞) 기수(淇秀) 경묵(瓊默) 한묵(翰默) 등에게 일을 맡겨서 그 일을 감독하게 한지 반년도 되지 않은 기축년 가을에 준공을 마치니, 집과 문과 창고 등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봄가을 제사를 받들 때마다 이보다 감개무량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편액을 ‘저존재(著存齋)’라고 하였다. 양묵(瀁默), 형묵(亨默)이 모든 친척 노인들에게 뜻을 잊지 않도록 기문으로 새길 것을 요구하였다.
 
아, 오씨는 부족한 자질로 수십년동안 힘써 일하여 높고 아름다움을 회복하였다. 병화가 진탕하는 중에도 조그마한 재실을 짓고, 몇 백년 동안 묘동을 수호하니, 반드시 칭찬하고 뒤이어 감개무량함이 있다.
 
아, 백 여년 간을 지내오면서 길흉화복이 이와 같으니, 선조의 뜻을 이어서 끝없이 지켜가야 하는 줄을 알지 못하겠는가. 또 모두가 이에 사랑과 성실을 다하고 마음에 꺼림이 없고, 조상의 덕을 생각하고 덕을 빛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만일 이와 같다면 곧 심법의 전함이 더욱 긴밀해지고, 가문의 명성이 더욱 커져서 다시 경학과 명절로 세상에 중하게 쓰이는 자들이 장차 후세에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가만히 감탄하건대, 모든 오씨들이 도울 것이다.
 
임인년 중구일에
서여 김규태가 쓰다
 
 
余觀世之富民 日夜營治其園屋 鮮有能致賁乎先阡 其幸有致力矣 少焉過云 則向之翼然者 泩泩廢為荒墟 亦觀有古家寒族 辛艱為墳菴180) 歷屢世嗣守至今者 盖繇其族宗 心法之相傳 以青氈181)為萬物 丘墓為依歸 前作後述 雖百世而未斬 若其一朝藉氣力 有所施設者 即不過待物以相傳 其不足恃而為久遠可知也 昔在 英祖之世 有樂蔭處士吳公 即清洗亭 諱璉卿之昆孫也 公以經學名 節繼其祖烈 而適辛壬大禍之後 忠逆無分之日 以隱居 求志行義 自樂為世所推 而後仍之居大村者 嗣有門戶聲 公之葬在村前山枕艮原 未遑置墓門之齋 每齋宿無所胥顧恨焉 於是衆議齊奮 泰述炯秀吉秀 奔走鳩材 最任 賢勞 淇秀 瓊默 翰默 董其役閱半歲至己丑秋告訖 堂室門廡廚庫宰 設無不備焉 春秋芬苾之奉 於是益無憾矣 遂扁曰著存齋 瀁默亨默致其諸族老 意徵記於不忘 噫吳氏 以不瞻之資 拮据數十載 迺復輪焉奐焉182) 於兵禍震蕩之中 燕長少於一堂 護丘墓於屢世 其必有既賀而繼之以感慨者矣 抑未知能渡百數十年間 屈伸替興有如此 而為所以嗣守无疆之計者否 又未知齊於是者 能致愛慤不忌乎心 而念聿修183)厥德之事否 茍如是則心法之傳益密 門戶之聲益以大 而復有以經學名節重於世者 將接踵184)於後矣 窃欹為諸吳氏助之
 
壬寅重九節 瑞與金圭泰記
 
 

 
각주
178) 곤손(昆孫) : ① 여섯째 대의 손자, ② 내손(來孫)의 아들 또는 현손(玄孫)의 손자가 된다
179) 신임대화(辛壬大禍) : 신축년(1721 경종원년)과 임인년(1722 경종2년)의 큰 재앙. 721(경종 1)년부터 1722년에 걸쳐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노론(老論)과 소론(小論) 사이에 일어난 사화. 신임사화 (辛壬士禍), 임인옥 (壬寅獄).
180) 분암(墳菴) : 분묘(墳墓)를 수호하는 자의 암실(菴室)을 이름. 무덤 앞의 재실.
181) 청전(靑氈) : 선대(先代)로부터 전해진 귀한 유물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할 적에, 그가 “도둑이여,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두고 가는 것이 좋겠다.〔偸兒 靑氈我家舊物 可特置之〕”라고 하자, 도둑이 질겁하고 도망쳤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王獻之》
182) 륜언환언(輪焉奐焉) : 『禮記』 檀弓下편에 나오는 내용으로, 진나라 헌문자(趙武)가 집을 다 짓자 진나라 대부들이 말하였다. 장로가 말하기를 “아름답도다. 높음이여! 아름답도다. 화려함이여! 여기에서 노래하며, 여기에서 곡하고 여기에 국족이 모이리로다.” (장로의 이 말 뜻은 궁실이 지나치게 화려함을 경계하여 완곡한 말로 다시는 이런 건축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한 것으로 이 말 뜻을 알아들은) 문자가 말하기를 “무가 여기에서 노래하며 여기에서 곡하고 여기에 국족이 모인다면 허리와 머리를 온전히 하여(곧 요참과 참수를 면하고 천수를 다한다는 뜻) 선대부를 따라 구원(진나라 경대부들의 묘지가 있는 곳)으로 가리라.”하고 북면하여 두 번 절하니, 군자들이 이르기를 (長老는) 축송을 잘했고, (文子는) 축도(곧 答辭)를 잘했다고 하니라(晉獻文子成室이어늘 晉大夫 發焉하더니 張老曰美哉라 輪焉이여 美哉라 奐焉이여 歌於斯하며 哭於斯하며 聚國族於斯로다 文子曰武也 得歌於斯하며 哭於斯하며 聚國族於斯하면 是全要領하여 以從先大夫於九原也라하고 北面하여 再拜稽首한대 君子謂之善頌善禱라하니라)
183) 율수(聿修) : 조상의 덕을 닦는다는 말이다. 《시경》 〈문왕(文王)〉의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 그 덕을 닦을지어다. 길이 천명에 짝하는 것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길이니라.〔無念爾祖 聿修厥德 永言配命 自求多福〕”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184) 접종(接踵) : ① 남의 뒤를 바싹 가까이 서서 따름, ② 사물이나 사건이 잇따라 일어남
임실군(任實郡) 재실(齋室) # 저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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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