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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군(任實郡) 재실(齋室) # 대산재
【향토】
(2024.01.02. 21:26) 
◈ 오궁리 대산재(大山齋)
이 재실은 신덕면 오궁리 하촌 마을에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수성 최씨(隋城 崔氏) 문중의 재실로 6.25이후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개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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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궁리 대산재(大山齋)
 
이 재실은 신덕면 오궁리 하촌 마을에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수성 최씨(隋城 崔氏) 문중의 재실로 6.25이후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개 걸려있다.
 
 
 
 

1. 오궁 대산재 최씨대산재기(崔氏大山齋記)

 
운수면(雲水面)의 서남쪽에 여러 동네가 있는데 높고 험준하게 솟은 산들 사이 후미진 곳에 신덕(新德)이 있다. 그 가운데 오궁(五弓) 마을은 인가(人家)가 즐비한데 바로 최씨가 대대로 터를 잡고 사는 곳이다. 세세토록 청빈(淸貧)을 지키며 수수[秫]를 뿌려 양식을 삼고 마를 심어 옷을 만들고 풀을 베어 지붕을 덮고 살았다. 친족과 화목하는 것만이 다른 성씨들 보다 나았고 효성만큼은 남보다 특출하였다.
 
선산 아래 몇 칸 재실을 건립하여 해마다 제사를 모실 때 이곳에서 재숙(齋宿)하며 준비하였다. 아! 내가 살펴보면, 부중(府中)에 여러 성씨들이 종신토록 의식(衣食)에274) 분주하느라 선조를 모시는 일에 마음을 쓰지 못하면서도 담담하게 부끄러운 줄 모른다. 게다가 지금 세상은 사람을 가르친다는 일이 ‘추원보본(追遠報本)’의 도리와는 배치(背馳)되어 시달(豺㺚)이 도리어 사람보다 현명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대저 최씨는 궁벽한 곳에 사는 이목(耳目)으로써 어디서 정명(正明)한 견식(見識)을 얻어서 오늘날 사람들은 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인가?
 
최씨의 선조는 신라의 왕족으로 전서(典書)를 지낸 최영규(崔永奎)인데 고려조에 공훈을 세워 수성(隋城)에 봉해지면서 지금의 성씨를 받았다. 자손이 매우 많아졌는데 운수에 옮겨 살면서 선산이 있었다. 최창한(崔昌翰)이 처음 오궁의 오사동(五沙洞) 대산(大山) 간좌원(艮座原)에 묘를 쓰고, 그 부인 권씨는 같은 산 다른 기슭 유좌원(酉坐原), 자기 어머니 이씨는 옛 땅 간좌원에 안장되어 서로 바라보고 있다. 재각이 대산 아래 있어서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다.
 
이 일을 맡아서 한 사람은 남주(南周), 종곤(鍾坤), 종구(鍾九), 병엽(炳燁)이다. 어느날 신주(信周)와 종택(鍾澤)이 찾아와서 일언(一言)을 보태달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그 일이 비록 제군(諸君)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진실로 선조들이 쌓아온 일에 미치는 바이니 공사는 오늘 끝난다고 하더라도 끝이라고 할 수 없으니 미치지 못한 일이 많을 것이다. 무릇 사물은 때를 살펴서 온전히 해야 하고 원려(遠慮)까지 근심할 필요는 없으니 낙성(落成)하는 날에서 시작하여 오직 기울어져 무너질까봐 매년 보수(輔修)할 것을 생각하고 대를 이어 뒤를 이어가도록 가르치면 바야흐로 유종(有終)을 보게 될 것이다. 일찍이 듣건대 수성(隋城)의 풍속이 잔부(殘薄)하고 무상(無常)하였는데 오직 전서공(典書公)이 윤리(倫理)를 돈독하게 하여 어질게 다스려서 크게 행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제군들이 덕문(德門)의 후생들이 이 재실에 모여 강학하고 선조들이 이미 실천하셨던 효제(孝弟)에 힘쓰도록 하면 윤리가 날로 밝아지고 추원(追遠)은 돈독해질 것이니 무엇 때문에 이 재실이 쉬이 사라질 것을 근심하겠는가? 이런 연후에 제군의 공로가 많다고 할 수 있으니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계묘년 중춘(仲春) 하순에 전의(全義) 이도형(李道衡)이 남안산재(南安山齋)에서 적는다.
 
 
雲水之西南 譜坊山 岳險峻而若新德一坊 又僻地也 有村五弓者 人家櫛枇乃崔氏世庄也 世守淸貧播秫以爲食種麻以供衣誅茅以庇屋惟睦族過他姓孝誠又出人 建數間齋於先山之下 每歲一之祀 齋宿俱需必於是焉 噫以余觀於府居諸姓終其身奔走絲穀 等間先事而恬不知愧 且今世敎人之術背馳 追遠報本之道 而豺㺚反有賢於人者 盖崔氏以僻地 耳目於何見得 正而識得明以爲 夫今日所不爲也 崔氏之先新羅王族 典書諱永奎 致勳 麗朝而得封隋城仍受 今姓子姓甚衆而其徒於雲水以有先山也 有諱昌翰 始墓于五弓之五沙洞大山艮原 其配權氏同山而異麓酉坐 其妣李氏土古地艮坐亦相望 而齋卽大山下 故因名焉 尸其役者南周鍾坤鍾九炳燁 日信周鍾澤來請一言之助 余爲之言曰 役雖始於諸君實祖先積累攸曁工雖訖於今日 不可以爲有終 亦未可以自多也 夫物必全於時察憂必無於遠慮 肇自落城之日 惟恐其傾頹而連年思所以輔修繼世詔所以踵武方見其有終抑嘗聞之隋城 風俗殘薄無常惟典書公篤於倫理 治化大行 吾願諸君常使德門 後生以時會斯齋講先祖已行 而務以孝第則 倫理日明而追遠其篤 夫何憂斯齋之易杇哉 如是然後諸君可以自多其功矣勉之哉
 
癸卯 仲春 下澣 全義 李道衡 記于南安山齋
 
 
 

2. 오궁 대산재 대산재판상제명기(大山齋板上題名記)

 
태산이 아무리 비록 높다고 하여도 흙을 쌓은 것이고 바다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가는 물줄기가 흘러서 모인 것이니 인간사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 큰 일을 이룬다는 것은 무룻 같은 종인들 사이에 뭇 정성을 합하여 이루는 큰 일을 누군들 위선(爲先)보다 먼저 하겠는가?
 
부족(富族)과 거성(巨姓)이 자기 선조를 위한 일을 한다면 사람들이 장차 말하기를, “진실로 분수 안에서 한 일이니 그 많은 재물을 어디에다 쓰겠는가?”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대대로 가난하고 외로운 집안이 수백년 만에 비로소 떼를 입히고 석물을 갖추고 위답(位畓)을 두어 풍족하게 제사를 드리면 모두 그 정성에 대해 말하고 그 공로를 드날리게 될 것이다. 더구나 무덤 아래 재실을 세워 재숙(齋宿)하고 희생을 바치는 장소로 삼는 것이겠는가?
 
지금 수성(隋城) 최씨(崔氏)가 그런 경우로 비로소 재실을 영건하였다. 밤낮으로 함께 애태우는 마음으로 근심하며 먹기를 제 때에 어찌 먹었으며 잠을 잔들 어찌 편안히 자겠는가? 7년 만에 제반 공사를 마치었다. 만약 부유한 집안이었다면 12개월 공사에 불과하였으리라.
 
아! 그 공로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여러 종친이 당시 일을 맡았기에 현판(懸板) 위에 새겨 둔다. 이어오는 후생(後生)들이 그 이름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하기를, “아무개는 나의 몇 선조이며, 아무개는 나의 선조의 숙부이며, 아무개는 나의 선조와 더불어 몇 대 동조(同祖)이다. 그 마음으로 함께 애쓰셨구나.”라고 할 것이다. 아! 어찌 서로 더불어 돕지 않겠는가? 서로 더욱 그 덕에 힘써야 할 것이다.
 
계묘년 중춘(仲春)에 면와(俛窩) 이도형(李道衡) 씀.
종손(宗孫) 종열(鍾烈)
문장(門長) 철주(哲周)
고문(顧問) 신주(信周) 학주(鶴周) 갑휴(甲休) 남주(南周)
위원장(委員長) 종구(鍾九)
부위원장(副委員長) 종곤(鍾坤) 병옥(炳玉)
총무(總務) 종택(종택), 덕주(德周) 귀주(貴周)
재무(財務) 종섭(鍾燮) 종순(鍾順) 병렬(炳烈)
감독[監董] 종팔(鍾八) 종휴(永休) 종문(鍾文)
외무(外務) 종엽(炳燁) 종태(鍾泰) 병용(炳用)
이사(理事) 병섭(炳燮) 종남(鍾南) 병권(炳權) 병선(炳善)
감사(監司) 학휴(學休) 종천(鍾千) 종보(鍾甫)
 
 
泰山雖巍奉土之積也 河海雖大細流之聚也 人事亦類是也 大事之成矣 凡會間之同 衆誠之合而大事孰先於爲先哉
 
有富族巨姓盡其先事則 人將曰固分內事且財足於何用之 而世貧孤族者 數百年始封莎具石置田豊祭則 皆道其誠而揚其功 况又建齋墓下 以爲齋宿供牲之所者乎 今隋城崔氏類是也 始其營也
 
同晝夜焦心煩慮 食何得昔 寢何安枕閒七年而諸般竣功 若富族不過一二月 功也 噫功豈可忘哉 諸宗撮當時任事以 刻諸板上繼後而生者歷指其名而曰某也 吾幾代祖某也 叔於吾祖某也 與吾祖同祖幾代而厥心俱苦矣 嗚呼 胡不相與輔相以益懋乃德哉
 
癸卯 仲春 俛窩 李道衡記
宗孫 鍾烈
門長 哲周
顧問 信周 鶴周 甲休 南周
委員長 鍾九
副委員長 鍾坤 炳玉
總務 鍾澤 德周 貴周
財務 鍾燮 鍾順 炳烈
監董 鍾八 永休 鍾文
外務 炳燁 鍾泰 炳用
理事 炳燮 鍾南 炳權 炳善
監司 學休 鍾千 鍾甫
 
 

 
각주
274) 원문의 사곡(絲穀)은 몸을 가리는 실과 배를 채우는 곡식이라는 뜻으로, 입는 것과 먹는 것을 아울러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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