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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군(任實郡) 재실(齋室) # 이로재
【향토】
(2024.01.02. 20:24) 
◈ 오수리 이로재(履露齋)
이 재실은 오수면 오수리 후동마을 북쪽 산골짜기 왼편 기슭 중턱에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1개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김해 김씨 매헌공파 문중에서 4290년(1957) 중건하였다. 묘제는 1년에 춘추 두 번을 모시고 있으며 재실 마당에는 매헌 선생의 비석과 문관석 2기를 보존하고 있다.
오수리 이로재(履露齋)
 
이 재실은 오수면 오수리 후동마을 북쪽 산골짜기 왼편 기슭 중턱에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현판이 1개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김해 김씨 매헌공파 문중에서 4290년(1957) 중건하였다. 묘제는 1년에 춘추 두 번을 모시고 있으며 재실 마당에는 매헌 선생의 비석과 문관석 2기를 보존하고 있다.
 
 
 
 

1. 오수 이로재 중건기(履露齋重建記)

 
아. 우리 김씨는 시조 태왕으로부터 49대를 지나, 중조 판도판서공 휘 관안(管安)은 회헌선생의 문인이었다. 고려조의 정사가 문란해지고 교화가 쇠퇴하자 백성들은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였다. 공이 유교를 일으키고, 이단을 막는 것으로 자기의 소임을 삼아서 미친 듯한 물길을 거꾸로 돌렸다.
 
15대조 절효선생 휘 극일(克一)은 하늘이 낸 효자로서 맹수들을 감복시킨 일195)들이 사승(史乘)196)에 밝히 기록되어 있다. 13대조 매헌공 휘 기손(驥孫),197) 큰형 동창공(金駿孫) 막내 탁영공(金馹孫)은 점필재 선생 문하에서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등 제현과 함께 수학하여 사림의 중견이 되었다. 연산군때 무오사화때 12대조 야은공 휘 대영(大榮)께서 남쪽으로 낙향하니, 묘가 지금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에 있다. 5대조 중추부사 휘 이경(履坰)께서 묘아래에 이로재(履露齋)를 창건하시어 재숙하는 곳으로 삼고, 위토를 넓게 두어 제사를 지낼 때에 대비하였다.
 
조선시대 정조 경진년198) 우리 고조 도호군 휘 기택(基澤)때에 이르러, 재사가 쇠락하여 무너지니, 공이 슬퍼하며 중건하였다. 이후 또 백여 년이 지나서 건물이 노후함에 마침내 옮겨 지을 것을 결의하고, 며칠 후 공사를 널리 알리고, 마침내 세 번째 중건하게 되었다.
 
아아. 높은 구릉이 계곡으로 변하고, 풍속이 바뀌더라도, 천인의 윤상은 만고에 변하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 종친들은 조상의 음덕을 생각하고, 그 덕으로 산소를 보존하고 재실을 보호하였다. 모름지기, 영원토록 정갈하게 제사를 지내기를 바라며, 이에 절구 한 수를 짓는다.
 
 
霜露履來秋復春  이슬 서리 밟은 후에 가을이 지나 다시 봄이 오고
油然孝思日愈新  유연한 효에 대한 생각은 날로 더욱 새롭네
築齋自恨徵誠力  정성이 부족하니 재실을 짓고도 절로 한스러워
輪奠經營待後人  재실을 경영하며 후인을 기다리네
 
단기 4290년 정유(1957)년 9월 15일
12대손 장두 삼가 쓰다.
 
 
粵自我金氏 始祖太王 歷四十九世 中祖版圖判書公 諱管安 晦軒199)先生門人 當麗朝政荒教弛 民莫知趨向 公以興儒教 辟異端爲己任 迴狂瀾於既倒 十五代祖節孝先生 諱克一 以根天之孝 感服猛獸 昭載史乘 十三代祖 梅軒公 諱驥孫與其伯氏東窓公 季氏濯纓公 學於佔畢齋先生門 與寒暄堂金宏弼 一蠹鄭汝昌 諸賢 爲士林之中堅 燕山朝 戊午史禍 十二代祖 野隱公諱大榮 流落南土 墓在今之任寶郡 屯南面 獒樹里 五代族祖 中樞府事 諱履坰 刱建 履露齋於墓下 為齋宿之所 廣寘位土 以備香大時 李朝正廟庚辰 而至我高祖都護軍 諱基澤時 齋舍圮毀 公慨然重建 此又經百餘星霜 建物老朽 遂決意改建 不日而工告 訖是爲第三次建也
 
嗟乎 陵谷變遷200) 風俗移易 天人倫常 萬古不渝 幸我宗親念祖聿修 其德保塋域 護齋舍 須精禋於無窮 是所顒望 追吟一節
 
霜露履來秋復春 油然孝思日愈新 築齋自恨徵誠力 輪奠經營待後人
 
檀記四二九ㅇ年 丁酉九月十五日
十二代孫 壯斗謹記
 
 

 
각주
195) 感服猛獸: 아버지 의흥공이 돌아가신 후 여막에서 곡을 할 때 산군(호랑이)이 항상 곁에 쭈그리고 앉아 마치 호위함과 같이 하니 공이 제물 남은 것으로 먹이기를 가축같이 기르셨다. 전설에 의하면 시묘를 마치고 범과 작별할 때 그 범이 공의 옷자락을 물고 당기거늘 한 곳에 이르니 발로 헤치며 가르치는 것 같아 공이 짐작하시고 묘소를 그곳에 정하였는데 지금 나복산(蘿 山)에 호점혈(虎占穴)이 명묘라 칭한다.
196) 사승(史乘) :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책
197) 김기손(金驥孫) : 본관은 김해. 자는 중운(仲雲), 호는 매헌(梅軒). 할아버지는 김극일(金克一)이며 아버지는 사헌집의를 지낸 김맹(金孟)이다. 어머니는 이양(李讓)의 딸 용인 이씨(龍仁李氏)이고, 부인은 최학연(崔學淵)의 딸 흥해 최씨(興海崔氏)이다. 아버지 김맹의 꿈에 용마(龍馬)를 보고 세 아들을 낳아, 아들의 이름을 모두 마(馬)변이 있는 글자로 지었다고 한다. 김기손(金驥孫)은 둘째이고, 큰 아들이 김준손(金駿孫)이며, 막내아들이 김일손(金馹孫)이다.
198) 본문의 경진년은 경신년(1800)의 오류로 보인다
199) 회헌(晦軒) : 안향(安珦: 1243~1306) 초명은 유(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그가 만년에 송나라의 주자(朱子)를 추모하여 주자의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하여 지었다.
200) 능곡변천(陵谷變遷) : 시경에 “高岸爲谷 深谷爲陵”이란 말이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와 비슷한 말로, 큰 변화가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임실군(任實郡) 재실(齋室) # 이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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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