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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齋室)
【향토】
(2024.01.02. 10:27) 
◈ 재실(齋室)
재실을 재궁(齋宮)또는 재각(齋閣)이라고도 한다. 재실은 묘제(墓祭)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이나 종원 들의 숙식과 제사음식 장만, 음복(飮福), 망제(望祭)를 지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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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齋室)
 
 

1. 재실의 의미

 
재실을 재궁(齋宮)또는 재각(齋閣)이라고도 한다. 재실은 묘제(墓祭)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이나 종원 들의 숙식과 제사음식 장만, 음복(飮福), 망제(望祭)를 지내는 곳이다. 시조나 중시조(中始祖)의 묘소 또는 지파(支派)의 회전(會奠) 근처에 세워진 건물. 보통 재실 근처에는 선산·종산·위토가 있다.재실 에는 묘직(墓直)이 또는 산직(山直)이라는 관리인을 두는데 묘직이는 묘와 재실건물을 관리하고 문중의 토지인 묘전(墓田:묘제 및 묘지관리에 드는 비용을 조달하는 토지)을 경작한다. 재실은 문중 또는 지파의 공유재산이지만 재실의 유지와 보존은 종손이나 직계 장손이 책임을 진다. 종손이나 직계장손과 묘지기나 산지기 사이에는 유사(有司)가 2∼3명 있는데, 이들은 중간에서 실무를 담당한다.
 
재실은 삼국시대의 시조묘(始祖廟)와 신궁제도(神宮制度)에서 발생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400년대를 전후하여 능을 지키기 위한 건물을 세우기 시작하였으며, 1456~1458년에 왕릉을 건립하는 규범인 산릉제도(山陵制度)를 정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숭유정책(崇儒政策)과 궁실의 산릉제도가 사대부의 재실건축 성립의 배경이 되었다.
 
재실의 내부공간은 특유의 기능을 담당하는 여러 공간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일반 주택의 기능과 공간을 비교해 볼 때 차이점이 많다. 따라서 재실내부를 용도별로 아래와 같이 분류한다.
 
① 루(樓) : 묘제를 지낼 때 주로 사용되는 공간으로 참제인(參祭人)들을 중심으로 문중회의, 제수(祭需) 점검 및 상차림도 하며, 비가 올 때 망제를 지내고, 묘제 후 참제인들이 음복하는 장소이다.
 
② 전사청(典祀廳) : 제사에 필요한 기구 및 제수를 보관하는 곳으로 유사방(有司房)으로 연결된다.
 
③ 유사실(有司室) : 회계 및 기록, 제수 마련 및 점검, 제사절차 협의, 문중회의 주관 등을 담당하는 유사들이 거처하는 방이다.
 
④ 종주실(宗主室) : 종손 방이라고도 하며, 종손이 머무는 방이다.
 
⑤ 참제인실 : 묘제에 참석한 후손들이 머무는 방으로, 연령에 따라 방을 구분하여 사용한다.
 
⑥ 수임방(受任房) : 매년 묘제 때마다 교체되어 임명되는 제관 또는 헌관이 머무는 방이다.
 
⑦ 전임실(前任室) : 전임 유사로 제례에 밝은 연로한 후손이 머무는 방이다.
 
⑧ 동서재(東西齋) : 참제인이 머무는 방이다.
 
⑨ 대청(大廳) : 제수를 장만하는 장소 또는 루의 기능을 보조하여 상차림과 음복 등이 행해진다.
 
⑩ 부엌 : 평상시에는 관리인의 취사용으로 이용되지만 묘제시에는 제사음식을 장만하는 곳이다.
 
⑪ 고방(庫房) : 제사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는 문중의 토지에서 생산하는 수확물을 저장하는 곳으로, 제기의 보관도 한다.
 
배치 형식은 소규모의 재실인 경우에는 일자형(一字形)이며, 이보다 규모가 더 큰 재실은 트여 있는 구자형(口字形)이다. 과거의 재실은 시향제나 묘제의 준비 장소, 제사와 관련된 여러 문제를 논의하던 장소, 때에 따라 음복과 문중회의가 이루어지던 장소였지만, 현대에는 조상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지고 묘직이 사라지면서 재실은 점차 소멸되고 있다.
 
 
 

2. 묘제의 유래와 의미

 
묘제 역시 고전에서는 없었던 것인데 중국 남송 때의 주자가 그 당시의 세속풍습에 따라 “가례”에 수록하면서 중시된 것이었다. 그러나 주자의 친구였던 장식(張栻)같은 사람은 그것이 예법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매년 사절(청명, 한식, 단오, 추석)일에 묘소를 찾아가 제사하는 것이 관행이 되어 시제보다 더 중요한 제사가 되었다 하여 식자들의 탄식을 사게 되었다. 사례편람에서는 4절일의 묘제를 사당에서의 시제로 바꾸고 묘제는 1년에 한차례만 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묘제를 시제라고 칭하며 음력 10월에 기제사를 지내지 안는 그 윗대의 조상 즉 5대조 이상의 조상에 대한 제사를 1년에 한번 지내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그러나 시제와 묘제는 원래 전혀 다른 제사였다. 예법상의 제사는 1년에 4번 춘하추동의 4계절의 가운데 달에 사당에 모신 4대조를 향사하는 제사 이며 우리 속습의 10월 시제란 것은 5대조 이상의 먼 조상을 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10월의 묘제(시제)는 “가례”에서 매년 1회씩 시조나 선조에 대해 집안에서 지내는 정규 제사와 흡사하다.
 
이 시제(묘제)는 예서에는 없는 제사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으로 엄격히 지내지는 것으로 보아 관습적인 제사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묘제는 그 조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것이 원칙이다. 산소를 잃어버렸거나 갈 수 없을 때에는 연고지에 제단을 설치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시제에는 직계자손, 방계자손을 포함하여 누구라도 참례할 수 있다.
 
묘제는 그 제사의 장소가 산소 이므로 그 진행 차례도 집안에서 지내는 제사와 다르며 또 산신에 대한 제사가 따로 있었다. 예문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의 전통풍습에는 묘제가 끝난 후에도 제사음식 나누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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