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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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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군(任實郡) 재실(齋室) # 신재
【향토】
(2024.01.02. 20:21) 
◈ 오산리 신재(慎齋)
이 재실은 오수면 오산리 금산동마을 중앙에 있다. 신재(愼齋)는 연안 김씨 재실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이다. 재실은 무인년(1938)에 조성하였으며, 사방에 연못을 조성하여 연꽃을 심었다. 건물에는 현판 3개와 주련 2개가 남아있다. 기록에 의하면 연안 김씨 김두윤(金斗潤)이 1814년에 창건하여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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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리 신 재(慎齋)
 
이 재실은 오수면 오산리 금산동마을 중앙에 있다. 신재(愼齋)는 연안 김씨 재실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이다. 재실은 무인년(1938)에 조성하였으며, 사방에 연못을 조성하여 연꽃을 심었다. 건물에는 현판 3개와 주련 2개가 남아있다. 기록에 의하면 연안 김씨 김두윤(金斗潤)이 1814년에 창건하여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라고도 한다.
 
 
 
 

1. 오산 신재 원운(慎齋原韻)

 
小少聞知性率天  어려서부터 들어서 아는 것 없어도 성품은 천성을 따르고
生憎修餙幅段邊  살면서 꾸미는 것 싫어하였으나 가장자리는 넓게 하였네
犻居如衆冥非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니 어두워도 밤 같지 않고
始畏無終老忘年  시작부터 삼가니 늙어도 잊혀지지 않네
梧月191)偏澄來好友  7월의 맑은 날씨에 좋은 벗들이 찾아오니
蓮船能護學真仙  연꽃 배를 잡아타고 진선을 배우리라
三盃不過巡回酒  불과 술 석 잔이 돌지도 않았는데
恒戒兒孫早罷筵  항상 경계하여 아손에게 술자리를 일찍 파하라 하시네
 
만년에 우연히 짓다[暮年偶題]
 
 
 

2. 오산 신재기(慎齋記)

 
정축년(1937) 시월 보름에 호남의 벗 연안 김철기(金喆基)가 멀리192) 천리 밖에서, 물결을 타고 한적한 물가에 있던 나를 찾아와서, 문중의 어르신인 윤기(閏基), 정기(禎基)의 뜻을 말하였다. 우리 집안이 임실[雲鄕] 금산에서 대대로 거주한 처음은 우리 증왕고부터였다. 왕고께서는 평생 지조와 행실이 정결하셨고,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고 근엄하게 지내셨으니, 실로 효제(孝悌)로 말미암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거하시던 집을 신재(愼齋)라고 편액하셨으니, 아마도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삼가고 두려워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떠나신지 이제 76년이 되어, 재실이 점차 퇴락하여 황량한 곳이 되어, 풀이 무성하여 흔적이 없어져서, 비록 늘상 이곳을 찾을 때마다 오히려 탄식만 하게 된다. 하물며 우리 같은 불초 후손들이 이에 거하면서 차마 그대로 두고 보겠는가.
 
우리 선조는 삼감으로서 몸을 닦았는데, 우리는 삼감을 지키다가 삼가지 못하고 끝내는 삼감을 폐지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어찌 감히 삼가지 못한 죄를 벗어날 수 있을까. 옛터가 일무쯤 되고, 몇 묘의 방죽이 있는데, 일찍이 우리 할아버지께서 방죽을 파서 연꽃을 심고 버드나무를 심어 재실의 맑은 운치를 돕기 위한 것이다.
 
여전히 변함없이 개미새끼 한 마리 없어도 지금에 와서 연못 가운데에 집을 지어 옛 현판을 달고 머무르면서 선대를 사모하면서 삼감을 지키지 않은 것을 속죄하고자 하니, 만에 하나라도 나에게 바라는 것은 사람들이 인색해 하지 않을 한마디의 은혜를 내려주어서 미간(楣閒 ; 처마 사이)을 꾸밀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사양하면서 말하였다. 아! 이 건물이 있는 곳의 풍경이 뛰어나고, 일의 전말에 대해서는 멀리 밖에 있는 내가 서술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오로지 삼가는 것에 대해서는 한 가지 도로써 거슬러 올라갈수록 올라가고, 그보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처지는 것이다. 앞선 성인과 뒤따르는 성인들이 이를 경계하면서 서적[方冊]에 밝혀 쓴 것이 실로 넓어도 충분치 채울 수 있어 천하에도 충분한데 하물며 한 몸에는 어떠하겠는가.
 
옛 말에 이르기를 고기 한 조각을 먹으면 전체의 맛을 알 수 있고, 나무 한 그루를 보면 전체 산을 볼 수 있다고 하였으니, 지금 하나의 신(愼)이라는 하나의 현판을 보면서 가히 선대의 평일에 연수[進修]한 모든 공적을 생각할 수 있다. 하물며 지금 이 건물을 다시 짓는다[肯構]고 하니, 이것은 또한 삼가고 삼가는 도리이다. 조상이 삼감으로 창건하고, 후손이 삼감으로 계승하니 삼감이 시들지 않고, 이 건물이 영원토록 이어져 다른 시간에도 보존되어 집안의 명성이 지금에 비교하여도 부족함이 없을 것을 가히 알만하다. 삼가는 도다.
 
단기 4293년(1960) 7월 어느 날 제각에 새기다
직각 은진 송규헌(宋奎憲)이 짓다.
 
 

2.1. 愼齋記

 
丁丑 十月之望 湖南友人 延安金喆基 裏足千里於世 故波浪中 訪余于漢師岑寂之濱 以其門老閏基禎基氏之意 告之曰 弊姓之世居雲鄉金山 始我曾王考 王考之生平 操履潔貞 修齊謹嚴者 實由孝悌以也 且扁其燕居曰慎齋 蓋戒懼193)乎 人所不覩之意 沒世 今為七六星霜 齋隨廢墜荒凉一區 草蕪湮沒 雖尋常行路 猶為咨嗟 況咱等之不肖 居斯靦視乎 吾祖以慎修身 吾守愼不愼 乃至於廢愼 安敢免不愼之罪也 舊址一武許 數畝方塘 曾是吾祖 所鑿蒔蓮種柳 助齋清致者 依舊无蟻 故今者 構齋于塘心 揭以舊顏 寓慕羹墻194) 欲贖不慎之 萬一願丈 人勿靳一言之惠 以侈楣閒也 余辭曰 噫 齋之形勝 事之顚末 遠外非吾所徵 悉惟慎之 以一道溯而上之 等而下之 前聖後聖之千百 警戒昭載方冊 茍能擴而充之 優於天下 況於一身乎 古語曰 食一以臠 知全味 見一木知全山 今於一扁之愼 可想乃祖平日 進修之全功 況今日之肯構 是亦慎慎之道也 祖刱於慎 孫繼於慎 慎之勿替 則斯齋之永 保於異時 可知家聲之 無遜於今日矣 慎之哉
 
檀記四千二百九十三年 庚子(1960)七月 日刻
直閣 思津 宋奎憲 記
 
 
 

3. 오산 신재 삼가 원운을 차운하여(謹次原韻)

 
慎祖一生正樂天  신재 할아버지는 일생을 참으로 천성을 즐기며 사셨으니
惟存舊宅金山邊  옛집은 금산 자락에 있었다네
傳承孝道連三世  삼대를 내려오도록 효도를 전승하시고
營構守心祝萬年  재실을 엮어 그 마음을 지키어 만년을 축수하니
煙霞滿塔因成憵  노을 가득한 탑은 초췌해졌으나
水月籠門怳擬仙  물에 비친 달, 농문(籠門)은 신선계인 듯 하네
微涼往事憑誰問  살랑 부는 바람에 지나간 일들 누구에게 물을까
今日如登警戒筵  지금 재각에 올라서도 술자리 경계하네
 
사증손 윤기(閏基)
 
 

 
각주
191) 오월(梧月) : 음력 7월의 다른 이름.
192) 裏足 과족 : 발을 싸맴. 멀고 어려운 길을 간다는 뜻.
193) 계신공구(戒愼恐懼):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다. 서경(書經) 대우모에 “순(舜)임금이 우(禹)임금에게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희미하니, 정밀히 살피고 한결같이 해야 진실로 중도를 잡으리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 하였다. 계신공구는 정(靜)할 때의 경(敬)공부로 중용 수장(首章)에 “도(道)란 잠시도 떠나서는 안되니 떠날 수 있는 것이라면 도가 아니다. 때문에 군자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계신하며,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공구한다(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 하였다.
194) 갱장(羹墻) : 어진 이를 사모하는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이고전(李固傳)에, “순(舜)이 요(堯)를 사모하여, 앉아 있을 적에는 요 임금을 담벼락에서 뵙는 듯하고, 밥 먹을 적에는 요 임금을 국에서 뵙는 듯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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