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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거장(停車場) 근처(近處) ◈
◇ 정거장 근처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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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4~10.
채만식
1
停車場近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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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3
돈 백 원---십원짜리 열 장을 저고리 속 고비에 넣고 새끼로 젖가슴 밑에를 질끈 동이고서 장터로 나선 덕쇠는 외양이야 그냥 덕쇠지만 아주 속은 딴 사람이 되었다.
 
4
더구나 그는 술이 한잔 얼큰했다. 춘삼이가 인찰지에다가 무어라고 쓴 것을 가지고 지장을 누르라니까 시키는 대로 누르고, 그러고 나서 십원짜리 열 장을 금융조합소 사람이 하듯이 착착 세어 내주는 것을 그는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받았다. 가슴은 손보다도 더 떨리고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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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원짜리 열 장을 한 장씩 침을 묻혀가면서 세어 수를 맞추기에 힘이 들었다.
 
6
그놈을 저고리 속 고비에 넣으면서 밑바닥에 구멍이 뚫리지 아니했나 잘 신칙해 보았다.
 
7
다시 새끼를 한 발 집어다가 저고리 위로 젖가슴 밑에로 질끈 동여맸다.
 
8
덕쇠는 그 고마운 춘삼이를 술을 한잔 대접하려고 청하니까 춘삼이는 그럴 수가 있느냐고 먹기는 먹어도 자기가 내지야고 전주집으로 나와 댓잔씩이나 먹었다.
 
9
춘삼이는 집에서 나올 때에 덕쇠는 이쁜이를 만나 잘 있으라고 작별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이쁜이는 가던 길로 춘삼이가 안방으로 들여보내어 그의 안해에게 맡겨 닦달을 시키느라고 눈에 보이지 아니했었다. 그래 좀 불러달라고 할까 하다가 미안해서 그만두었다.
 
10
덕쇠가 술값을 치르려고, 더구나 어젯밤에 오전어치 국밥 한 그릇 외상 달라고 그다지도 애걸하는 것을 잡아떼던 전주댁한테 보아란 듯이 십원짜리 뭉텅이를 보여줄 양으로 부스럭부스럭 새끼를 푸는데 춘삼이는 자기한테로 달아 두라고 이르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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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그래도 돈 뭉텅이를 꺼내어 그중 한 장을 번쩍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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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여! 고상…… 내 술두 한잔 먹어야지…… 자 이것 거슬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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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댁은 그러나 놀라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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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원짜리 거스를 것 없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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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춘삼이는 덕쇠를 잡아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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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담에 그놈으로 장사해서 돈 많이 벌거든 그때 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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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볼수록 덕쇠는 춘삼이라는 사람이 고마운 사람이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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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춘삼이를 작별하면서 이쁜이가 아무 철도 모르고 그러니 친구낯으로 보아 모든 것을 눈감아주고 잘 데리고 있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모든 것을 다 맡기니 말을 잘 듯지 않거든 때려주라고, 그래야 사람이 된다고 까지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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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할 일을 다 하고 돈 백 원을 지닌 몸에 얼큰해가지고 그는 혼자 장터로 나선 것이다.
 
20
돈 백 원은 덕쇠한테는 가지고 쓰고 하기는 고사하고 도무지 생각도 해보지 못하던 큰 덩치다.(천문학적 숫자(數字) 같은 엄청난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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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 저고리 속 고비에 들어 있는 십원짜리 열장이 돈이 아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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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혹시 못쓰는 돈이나 아닌가 버럭 외심이 나서 단박 풀어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은 너무 느긋해서 든 것같이 잠깐잠깐 일어나는 것이요, 그저 몸이 날 듯이 가볍고도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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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정거장에 새 차가 들이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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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내려서 흩어져가고 짐을 가진 사람이 두리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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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멀리 바라보며 속으로 흥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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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 건너편 논 가운데서는 금을 파느라고 추운 다리를 걷어올린 일꾼들이 여기저기 수백 명 모여서서 움직거리며 일을 하고 있다. 덕쇠는 보기에 그 사람들이 한심했고, 또 전에 자기도 그거나마 일을 한몫 얻어하려고 애쓰던 일이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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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이 전방 저 전방 돌아다니면서 흥정을 했다. 쌀이 한 말, 양재기, 고기, 모자가 해 입을 옷감, 솜, 고무신 그리고 마지막 담배가게에서 담배를 사는데 화장품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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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십오 전을 주고 물분 한 병을 샀다. 이쁜이를 문득 생각하고 사기는 샀으나 다시 생각하니(이쁜이가 집에 있지 아니한 것을 잊은 바는 아니지만) 춘삼이네게로 갖다 준대로 모든 것이 인제는 구비해 있을 텐데, 그래 생각도 나지 아니할 것 같아 기쁜 가운데도 저으기 섭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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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렁저렁해서 십 원 한 장 헌 것이 일 원하고 몇십전밖에 남지 아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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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흥정한 것을 모두 한데 허저 가게에 맡기고 분 산 것만 가지고 가게 앞에 나서서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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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이야 나건말건 그 돈 백 원이 따지고 보면 뉘 덕으로 생긴 거라고 분한 병이나마 기왕 산 것이니 가져다 주고, 그리고 못 보고 나왔으니 작별도 할 겸 또 무엇 그래도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사다 주고 할 양으로 춘삼이네게를 갈까말까 망설이는데, 빈 지게를 짊어지고 정거장 쪽에서 오는 한 동리 사람 순갑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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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갑이는 돈 한푼 날 턱이 없는 덕쇠가 가게 앞에서 무엇을 다뿍 흥정해 가지고 꿍쳐놓고 하는 것을 먼빛으로 벌써 보았다. 그는 그것이 궁금도 하거니와 이떻게 얼려서 막걸리잔이라도 빼앗아 먹으려고 속으로 은근히 장을 대는 판이다.
 
33
“자네 수 생꼈는가 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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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갑이는 우선 이렇게 수작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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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순갑인가? 어디 갔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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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순갑이가 금점판으로 품을 팔려고 첫새벽에 나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줄 번연히 알면서 짐짓 모른 체하고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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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하루 아침에---실로 하루 아침에---부자가 되어버린 자기와 그리고 여전히 궁하고 초라한 친구를 대놓고 보게 되니 더욱 신이 나고 그래서 말 본새도 그렇게 의젓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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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머 그저 헛걸음허러 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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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을 건성으로 하고 순갑이는 덕쇠가 꿍쳐놓던 것을 넌지시 넘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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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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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따우 돈 한 사오전 버는 금점판에는 다녀 무얼 해! 나치럼 한꺼번에 백 원을 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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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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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따우가 우리 이쁜이 같은 각시가 있나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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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싱긋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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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갑이는 덕쇠가 웃는 것을 자기 짐작 들어맞은 것으로 알았다. 그래 그는 한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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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생꼈는개비여?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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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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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자네 것인가? 뉘 짐 져다가 줄 것인가?”
 
49
하고 짐짓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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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덕쇠는 슬그머니 열이 났다.
 
51
“참! 이 사람아 나는 밤낮 남의 짐만 져다 주는 사람인 동(줄) 아는 가? 괜시리 그러지 말소…… 술 한잔 사주까?”
 
52
덕쇠는 코로 벌름벌름 웃으면서 고개를 되들고 손으로는 저고리 속 고비를 누른다. 이 속에 돈이 백 원이나 들어 있는 것을 네가 어찌 알까보냐 하는 뜻이다.
 
53
“헤 참! 구신 듣는디 떡 이야기를 허지…… 사주는 술을 안 먹어?…… 그러지 말구 한잔 사주소 이 사람…… 아침두 안 먹구 나왔더니 시방 죽겄네.”
 
54
덕쇠는 그러지 아니해도 한바탕 호기를 보이려는 판이라 순갑이를 끌고 전주집으로 갔다. 어젯밤에 덕쇠 자기가 춘삼이한테 그러한 대접을 받았는데 하룻밤 사이에 자기가 춘삼이(만은 못하지만 장차는 그렇게 될테고) 그 춘삼이처럼 친구의 시장한 것을 대접하게 된 것이 자못 감개로 왔다.
 
55
덕쇠는 흠뻑 요량을 했지만, 순갑이는 국밥에 한잔이면 족하리랬던 것이 두 잔 석 잔 다섯 잔 그러고도 어쩔 셈으로 자꾸 더 권하는지 몰라도 권하는 대로 먹은 것이 필경 막걸리 일곱 사발씩을 먹었다.
 
56
두 사람은 제가끔 제멋대로 헛딛어지는 다리와 씨름을 하면서 집으로 향해 걸어간다. 덕쇠의 물건 흥정한 것은 순갑이 지게 위에서 순갑이와 한가지로 비틀거리고, 덕쇠는 그중에도 구십 원이 들어 있는 속 고비와 이쁜이를 생각하고 산 분은 곱다시 건사를 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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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를 벗어나자 덕쇠는 더욱 비틀거리면서 어쩔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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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게 순갑이 허허허허…… 어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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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도 비틀거리고 말도 삐틀삐틀한다. 그는 연신 제 몸도 지탱하기 어려운 순갑이의 목을 그러안으려고 덤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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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순갑이…… 가노라 간다. 허허 허허…… 이 사람, 어 순갑이, 응 사람이라는 게, 엉 말이여, 운이 틔자면 다 하룻밤 새에 틔는 법이데, 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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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갑이는 아까 전주집에서 술을 얻어먹으면서부터 꼬치꼬치 물어보았으나 덕쇠는 얼버무려 넘기고 내평 이야기를 하지 아니했었다. 그래 대관절이 녀석이 돈이 어디서 생겨가지고는 이렇게 마구 쓰나.
 
62
어젯저녁에 노름방에를 갔다가 개평을 뜯은 놈으로 밑천삼아 돈을 좀땄나, 혹은 길에서 십원짜리라도 한 장 얻었나. 그렇지 않고는 천하 없어도 제가 돈이 생길 턱이 없는데.
 
63
이렇게 시새워도 하고 궁금도 했다. 그래 그 속도 좀 알려니와 돈이 생겼으면 얼마나 생겼나 파보려고 취중에라도 눈치를 여살피고 있는데, 덕쇠는 취하기도 했고 또 참을 수 없이 좋기도 해서 자랑을 한다는 것이 실토정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러지 아니했어도 사흘이 못 가서 소문이 좍 돌기는 돌 것이지만.
【원문】정거장 근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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