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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거장(停車場) 근처(近處) ◈
◇ 정거장 근처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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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4~10.
채만식
1
停車場近處
 
2
4
 
 
3
덕쇠의 안해 이쁜이는 부엌 옹솥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고 있다.
 
4
해는 아직 뜨지 아니하고 부엌문 바로 보이는 들판 건너 먼 산봉우리가 부유스름하게 물들어 오른다.
 
5
마당에는 어젯밤 바람에 몰려다니다 남은 쌀눈이 얇게 깔려 있고 눈위로 신발 자국이 두 개만 사립문 쪽으로 걸어갔다.
 
6
발자국을 보니 이쁜이는 시어머니가 벌써 어둑어둑해서 일어나 시래기를 삶아놓으라고 일러놓고 나간 일이 생각나서, 인제 오래잖아 돌아와 구누름 깨나 하겠다 싶어 속이 뜨악했다.
 
7
그러고저러고 간에 남편 덕쇠는 간밤에 왜 돌아오지 아니했을까 해서 그것이 궁금했다.
 
8
전에는 짐을 지고 멀리 가서 아무리 늦더라도, 또 노름방 웃전에 앉아 개평을 뜯느라고 닭이 두 홰 세 홰 운 뒤라도 밖에서 자는 법은 없고 으레 돌아오곤 했었다. 한번 돌아오지 아니한 때가 있었다. 벌써 삼 년이나 되었지만, 역시 노름방 뒷전에 앉아 개평을 뜯는 재미로 이슥하도록 있었는데, 순사가 달려드는 통에 진짬 노름꾼들은 다 튀어버리고 옆에서 잠을 자던 두 사람과 덕쇠가 잡혀갔었다. 잠을 자던 사람은 자느라고 못 달아났거니와 덕쇠는 노름을 하지 아니했으니까 잡혀갈 일이 없으리라고 제깐에는 청백을 부린 셈인데, 그러나 순사는 변명 대답으로 따귀를 두어 대 올려붙이고 포승지어 끌고 갔었다.
 
9
그 뒤에 덕쇠가 불어서 정말 노름꾼들이 다 잡히고 나니까 덕쇠는 닷새 만에 무사히 놓여는 나왔다. 그 뒤부터 그는 노름방에 가서 있으면 노름은 아니 해도 붙잡아가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언제든지 먼저 뛰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10
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쁜이는 그래서 혹시 또 붙들려가지나 아니했나 생각했다.
 
11
붙들려가거나 말거나 인간이 그리워서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12
어젯밤 닭이 두 홰나 울도록, 또 지금 새벽녘부터 기다려지는 마음은 무엇 벌이를 해가지고 돌아오나 해서 기다리는 것이다.
 
13
그것도 덕쇠가 밥을 굶고 나간 사이에 밥이라도 한 그릇 생겨 그놈을 셋에 갈라 두 몫은 시어머니와 둘이서 먹고 그래 요기가 된 때면 못 먹고 돌아다니는 것이 맘에 걸려 나머지 한 몫을 놓고 까맣게 기다릴 때는 더러 있다.
 
14
섶은 다 삭아 내려앉고 울짱만 그나마 지러지고 쓰러지고 한 울타리에서 새벽까치가 까악까악 짖는다.
 
15
이쁜이는 오늘 무슨 좋은 일이나 있으려나 해서 부지깽이를 든 채 부엌 앞으로 나와 내어다보았다.
 
16
까치는 부지깽이에 놀라 날아 달아나버린다.
 
17
사흘에 한 번 나흘에 한 번 이 동리로 오는 두부장수가
 
18
“두부 사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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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고 울타리 밖으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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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이도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21
“두부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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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놓고 말이 떨어지기 전에 내가 무엇하려고 두부장수를 부르나 걱정을 했다.
 
23
두부장수는 예하고 대답을 하고 사립문으로 끼웃거린다. 삼사 년 두고 겨울이면 두부를 팔러 와야 두부 한 모 사는 법 없는 집에서 부르니까 두릿두릿하는 것이다.
 
24
이쁜이는 아궁이로 기어나오는 불을 달려가서 밀어넣고 마지 못해 도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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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한 모 을메(얼마)유?”
 
26
두부 한 모에 이 전씩 한 것이 이십 년이 넘는데 그것도 모르고 물으니 두부장수는 귀한 손님을 얻어 만났다고 성급히 속으로 웃었다.
 
27
“한 돈(二錢[이전])이요.”
 
28
이쁜이는 두부장수는 그만 가 주었으면 좋겠는데 우두커니 서서 있으니까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29
“몇 모나 들여가요?”
 
30
두부장수가 기다리다 못해서 볼먹은 소리로 외친다.
 
31
“두부 돈 없어서 안 사유.”
 
32
두부장수는 어이가 없어 뻔히 서서 이쁜이를 바라본다. 이쁜이는 쫓기듯이 부엌으로 들어와 버렸다.
 
33
두부장수는 한참이나 서서 무엇을 생각하더니 그대로 두부지게를 짊어진 채 마당으로 들어온다. 그는 토방에 사내 신발이 없고 눈 위에 선연하게 발자국이 두 줄로만 나서 있는 것을 보고 그래 저 여편네가 속이 달라서 저러는구나 속짐작을 한 것이다.
 
34
머리는 더북하게 뜨고 옷은 옹문산에 구름 감듯 누더기를 입었어도 배젊은게 올망졸망 이쁘게 생겨가지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첫새벽부터 사지도 아니 할 두부장수를 불러놓고 희학질을 하는 것이 두부장수 딴에는 두부는 못 팔아도 마수거리가 괜찮은가 보다고 좋아한 것이다.
 
35
그래 부엌 앞까지 가까이 가서 이거 어떻게 수작을 붙이나 두부를 여남은 모 담아다가 불쑥 내밀어 주어보나 하고 궁리를 하는데 등 뒤에서 콜록콜록 늙은이 기침 소리가 들리었다.
 
36
두부장수는 무우 캐먹다가 들킨 놈처럼 얼핏 돌아서서 괜히 헴하고 밭은기침을 한다.
 
37
“두부장수가 왜?”
 
38
덕쇠어머니는 혹시 아들이 그새 돌아와서, 와서 돈냥이나 가지고 와서 그래 두부장수를 불렀나 하고 들어섰는 것을 두런거리기는 하면서도 토방을 둘러본다.
 
39
토방에 아들의 신발이 없으니까 부엌으로 쑥 들어섰다. 역시 며느리가 혼자서 불을 때고 있고 아들은 보이지 아니하니까 그만 신명이 풀리고 화가 슬며시 났다.
 
40
“안 드러왔데야?”
 
41
“얘.”
 
42
시어머니의 부딪는 말소리에 이쁜이는 고개를 숙였다.
 
43
“두부장수는 웬 두부장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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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구 안 불렀어라우.”
 
45
“그럼 왜 젊은 각시년이 사지두 안헐라믄서 두부장수는 불러들여? 응?”
 
46
“을메(얼마) 허는가 물어보았어라우.”
 
47
“두부장수 불러들여서 을메 허는 건 알어 무엇 헐라구?…… 으젓잔헌 것이 허는 짓마닥 어디서! …… 왜 두부장수 서방허구 싶데야?”
 
48
“늙어서 얼굴이 쪼그라지고 허리가 꼬부라지고 하기는 했어도 사납게 생긴 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덕쇠는 어머니를 닮지 않고 아버지를 닮아서 얼굴이 우툴두툴하고 맘성이 우직하다.
 
49
두부장수는 이크 이거 큰코 다치겠다고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나버렸다.
 
50
덕쇠어머니는 배고픈 화, 추운 화, 새벽같이 된장을 얻으러 돌아다니던 화, 그리고 아들 덕쇠가 벌이를 해가지고 돌아오지 아니한 화 해서 그냥 풀어지지는 아니하게 되었다.
 
51
“시래기는 무엇허니라구 인자사(인제야) 쌈(삶)구 있냐?”
 
52
사발에 얻어가지고 온 된장을 살강에다가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으면서 잡도리를 시작한다.
 
53
이쁜이는 대답할 말이 없다. 아까 시어머니가 먼저 일어나 나가면서 된장이라도 얻어다가 시래깃국이라도 끓여먹게 어서 일어나서 그새 시래기를 삶아노라고 일러놓고 나갈 때 바로 일어나서 시래기를 삶지 못했고, 그런데다가 살 수도 없는 두부를 문득 먹고만 싶은 생각에 불러가지고 그러다가 그 놈의 두부장수가 마당에까지 들어와서 그걸 시어머니한테 들키고 했으니 할 말도 없거니와 인제 당할 일이 큰일이다.
 
54
“이년이 금방(방금) 벙어리가 되었다냐?”
 
55
사납게 소리를 지르면서 시어머니는 손에 잡히는 대로 부지깽이를 집어 며느리의 등을 머리 얼러 내리갈긴다.
 
56
“……왜 암말두 않구 찌를 (밭을) 과는 황소치름(처럼)이짐만 쓰구 앉었냐!”
 
57
그러고는 퍽퍽 내리팬다. 부지깽이가 부러지니까 머리끄덩을 잡아 부엌바닥에다 동댕이를 친다.
 
58
이쁜이는 울기만 한다. 무어라고 말대답을 하면 또 말대답을 한다고 때릴 판이다.
 
59
---참새가 찍해도 죽이고 짹해도 죽인다는 셈이다.
 
60
이쁜이는 서러워서 울지는 아니한다. 아파서 운다.
 
61
여덟 살부터 이 집에 와서 그때부터 어머니라는 이 노파와 시방은 남편이라고 하는 덕쇠한테 맞으면서 이 나이까지 자랐다. 밥은 조금 먹고 매는 많이 맞고 자랐다.
 
62
덕쇠와 서방각시짓을 하면서부터는 덕쇠는 매질을 덜 했다. 그래도 때리러 들면 무지스럽게 때리기는 하지만 자주 때리지는 아니했다.
 
63
그 대신 시어머니는 더 잘 때렸다. 방이라야 하나뿐이다. 세 식구가 한 방에서 자기도 하지만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으면 시어머니는 기어코 트집을 잡아가지고는 매질을 하고라야 만다.
 
64
늙고 굶어서 기운은 없어도 매질할 기운은 어디다 아껴 두었던 것처럼 매 끝에서 솟아난다.
【원문】정거장 근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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