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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거장(停車場) 근처(近處) ◈
◇ 정거장 근처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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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4~10.
채만식
1
停車場近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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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
이지러진 상사발에 수북수북 담은 밥을 한 사발씩 뚝배기에 소(素)두부를 두어 끓인 시래기국을 한 뚝배기씩 셋이서 제가끔 차지하고 앉아 조반을 먹는다. 아침결에 먹으니까 조반이라고 하겠지만, 꼽아보면 이밥이 어제 저녁 밥이기도 하고 어제 조반이기도 하다. 또 오늘 저녁밥일는지도 모르고 내일 조반이나 내일 저녁밥이나도 길는지 모른다.
 
4
요행 덕쇠만은 어제 저녁에 춘삼이를 만나 그렇게 잘 대접을 받았고 아까도 든든하게 해정을 했고, 또 인제 돈 백 원으로 장사를 할 일이 앞에 그득 채어 속이 느긋한 판이지만, 그것은 예사일이 아니며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5
그래 그러한 당자(當者)들 아닌 사람으로 앉아 본다면 실로 아슬아슬한 일이다.
 
6
금시로 굶은 농군들이 여기저기 픽픽 쓰러져 죽고, 그래 이 겨울을 지내고 나면 그 사람들은 그중 몇만 남지 다 죽어버릴 성싶을 것이다. 세상에 사람이, 더구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굶다니……
 
7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기야 정 굶다 굶다 못해서 굶어죽는 사람이 더러는 있기도 하고 오래 두고 노상 굶은 것이 병이 되어 죽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사람들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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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죽지 아니하고 굶어산다.
 
9
이 굶어산다는 것이 그 사람들한테는 굶어죽는다는 것보다 다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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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굶어죽는 게 별것인가! 여러 끼못먹으면 싫어도 제절로 죽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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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면서 그 사람들은 굶어죽는 것을 그다지 골똘히 생각지 아니한다. 다만 한 끼 두 끼 혹은 하루 이틀 굶은 배를 훑으려 쥐고, 앉아---앉아서가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한술 밥을 먹을 마련을 하느라고만 정신이 없다.
 
12
그러다가 어떻게 해서 몇 끼만에, 더디면 며칠 만에 한 끼를 먹는다. 밥을 약(藥)먹듯 해도 사람은 살기는 산다.
 
13
이렇게 그 사람들은 굶어산다.
 
 
14
덕쇠 모자는 그래도 모서리 빠진 개다리소반이나마 지시락물 같은 간장 한 종지, 쓰디쓴 김치 한 사발은 놓고 앉아 맞상을 받고, 이쁜이는 제 몫으로 밥사발과 뚝배기에 먹다 걷어둔 김치그릇을 방바닥에 놓고 넌지ㅣ 물러앉아서 오래간만에 밥이라는 것을 숟갈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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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나 안해는 시어머니나 가장과 맞상을 해서 밥을 먹지 아니하는 것이 예법이다. (고 그는 배웠다.)
 
16
덕쇠는 이쁜이가 국에 두부가 적고 밥도 주걱데기를 싹 긁어붙인 반사발인 것이 맘에 걸려 힐끔힐끔 돌아다본다. 전에야 그렇게 이쁜이를 생각한 적이 없었다.
 
17
어머니가 아니면 제 국에서 두부도 더 건져주고 밥도 많이 먹으라고 덜어주고 하겠는데, 어머니가 보는 데라 계면쩍어 차마 그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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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다가 저녁 굶은 시어미라니, 아까 났던 심술이 아직도 풀리지 아니해서 무엇이든지 트집을 잡아 화풀이를 마저 하려는 눈친데, 만일 그랬다가는 단박 동티가 날 판이다.
 
19
그래 덕쇠는 다칠까 무서워 눈치만 슬금슬금 살피면서 밥을 먹느라니까 아니나다를까 국에 둔 두부로부터 푸념은 쏟아져 나온다.
 
20
“두부장수놈 불러놓구 해롱해롱허더니 속이 후련허겠구만…… 아니꼽게. 입은 높아서…… 이년 잘하였다구 상급으루 네 서방이 사준 두부니 배지가 툭 터지게 처먹어라.”
 
21
이것은 아들 덕쇠까지 한껏 물고 들어가는 말이다. 두부 때문에 매를 맞았다고 남편더러 하소연을 한 것이라고, 하소연을 하니까 계집 위해 바치기 겸 어미 배 채우라고 선걸음에 달려가 두부를 사온 것이라고 이렇게 꽁한 생각에 아들까지 물고 뜯는 것이다.
 
22
덕쇠는 전 같으면 두부장수를 불러들여 그렇게 수작을 했다는 것을 들어서던 길로 트집잡아 이쁜이를 한바탕 족쳐주었겠지만 인제는 어머니가 되레 야속스럽고 구박을 받는 이쁜이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죽이나 두부가 먹고 싶었으면 그랬으랴 해서, 두부를 사온 것이 선뜻 한 일이지만 잘했다고 속으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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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니까 두부를 더 먹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은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런 판에 더 건져줄 수는 없고, 오냐 오늘 저녁이면 춘삼이네게로 가서 실컷 맘껏 잘 지낼 테니 괜찮다고 이렇게 안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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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수 빠진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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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이빨이 빠져 합족거리는 깐으로는 밥숟갈을 크게 떠넣으면서 한참만에 다시 욕이 나온다.
 
26
“쌀두 좀 생겼거든 죽을 쓸 일이지 무슨 터수에 허연 쌀밥만 처든질라구 이렇게 밥을 히여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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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자꾸만 더 이쁜이가 불쌍해서, 그러나 안해를 싸고 도는 눈치가 아니 보이게 슬며시 역성을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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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이 다 끓었길래 내가 밥허라구 그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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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은 국으루는 죽 못 쑤어먹는다냐! 지집(계집)년이 갈충머리가 없어서 그렇지…… 국 끓른디다가 쌀 북북 씻어서 갖다 넣구 불 더 때면 죽 안되야?”
 
30
만일 덕쇠가 그나마 쌀을 사가지고 와서 밥을 지어먹게 되었기망정이지, 그대로 굶고 있었다면 푸념은 하루 종일 끌었고, 이튿날도 풀리지 아니했을 것이다.
 
31
소담스런 밥 한 사발이 거진 다 쪼글쪼글한 입으로 들어가고 그 대신 노염이 그렁저렁 뱃속의 밥과 한가지로 삭아가는 눈치를 보고 덕쇠는 비로소 이야기를 꺼냈다.
 
32
이야기를 듣고 난 덕쇠 어머니는
 
33
“제까짓 년을 보구 누가 돈을 오백 냥(백 원)이나 준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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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쁜이게로 눈을 흘기면서 아니꼽게 낯놀림을 한다.
 
35
그는 속으로는 깜짝 놀라게 반가왔다.
 
36
데시기에 서캐가 허옇게 슬고 병신 천치같이 어리뚱한 저것을 무엇으로 보고 데려간다 하며, 또 일 년 데려다 두기로 하고 돈을 백 원이나 준다니 정말이라면 큰일날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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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덕쇠 말대로 그놈 백 원으로 장사를 해서 춘삼이처럼 되어 잘살게 된다면 다시 이를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38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 못 생긴 며느리가 다시 한번 치어다보이고, 그러고 장히 아니꼬왔다.
 
39
만일 이쁜이가 그의 며느리가 아니라면 그는 말하는 사람의 말도 떨어지기 전에 에 시언하다, 에 잘되었다, 그거 참 큰 횡재다 하고 얼핏 승낙을 했을 것이다.
 
40
그러나 그는 선뜻 반겨하지도 아니하고 그리하라고 대답도 아니한다.
 
41
첫째 그는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아깝다고 해야 이쁜이와 정이 들고 소중하고 그리고 귀엽고 해서가 아니다.
 
42
여덟 살 때부터 민며느리로 얻어다가 매질과 찬밥덩이와 굶기기로 기르기는 길렀어도 그만큼 길러 성례(成禮)를 치르어서 겨우 자식을 장가라고 들여 부모 할 일을 한 것인데, 일 년이라고는 하지만 어떻 될지 모르는 터에 내준다는 것이 아까운 것이다.
 
43
그러고 또 한편으로는 웬 저 따위가 백 원 값이 되며, 그리고 춘삼이 네게로 가서 덕쇠 말대로 비단옷을 입고 잘 먹고 잘 지낼 그런 호강을 한다는 것이 시새워서 밉광스럽기도 했다.
 
44
그러나 백 원은 크다. 그놈 백 원으로 장사를 해서 크게 치부(致富)를 하면 더 크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우선 당장부터 밥을 끼마다 굶지않고 먹을 수가 있으며, 옷을 뜨듯하게 입을 수가 있으니 그게 어디냐!
 
45
술집에 가서 있게 되나 잘못하면 계집을 버리게 될 것 그것을 생각하면 좀 찝찝하지만, 그러나 그 돈으로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거든 다시 장가를 들이면 그만이지, 아니 되레 그것이 낫고 다행이지…… 이렇게 그는 아주 단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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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까부터 노했던 타성도 있고 또 그것이 좋다는 내색을 보이기가 싫어 짐짓
 
47
“모르겠다 네 맘대루 허려무나.”
 
48
하고 마땅찮은 듯이 쳐밀어버린다.
【원문】정거장 근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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