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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거장(停車場) 근처(近處) ◈
◇ 정거장 근처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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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4~10.
채만식
1
停車場近處
 
2
7
 
 
3
이쁜이가 남편 덕쇠를 따라나와 정거장 장터에 거진 당도했을 때에는 가슴이 사뭇 두근거리고 바람끝이 차건만 볼때기가 확확 달곤 했다.
 
4
이쁜이는 오늘 새벽에 시어머니한테 머리끄덩이를 잡혀 동댕이질을 치우고 부지깽이로 얻어맞고, 또 밥먹을 때에 욕을 반참삼아 얻어먹은 그런 예사일만 아니면 남편의 하는 것은 도무지 모두가 뜻밖이요 처음 보는 일이었었다.
 
5
맨먼저 남편이 그렇게 두부를 사다 주는 둥 말을 곰살갑게 하는 둥 그런 것이 전에 없는 일이다.
 
6
또 비단옷을 입혀준다는 것은 말만이라도 꿈에도 들어보지 못하던 소리다.
 
7
그때 그는 남편의 얼큰한 얼굴을 보고 혹시 내력 없는 주정을 하는 것인가 했으나 보아도 주정은 아니었었다.
 
8
혹시 안 갔다고 잡어떼기는 하지만 노름방에를 갔다가 돈이 좀 나우 생겼나, 그래서 비단옷을 해준다고 그러나. 그러나 그렇게 갑자기 곰살갑게 굴고 비단옷을 해주고 할 턱이 무엇인가.
 
9
가령 돈이 생긴 눈치를 알고 이편에서 먼저 비단옷을 해달라고 했더라도 ‘되지두 못헌 것이 건방진 소리를 한다’고 머쓰려버릴 것이고 기껏해야 양식을 팔아오는 길에 분이나 오전짜리 한갑 사다가는 시어머니 몰래 집어던져 줄동말동한데, 물론 그거라도 감지덕지하지만.
 
10
그래 종시 궁금하던 판인데 밥을 먹으면서 남편이 시어머니더러 하는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속을 알았다.
 
11
그는 그 말을 듣고 그 내평을 알고 나니 속이 얼떨떨하니 어쩐 셈을 알 수가 없었다.
 
12
도무지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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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세상에 못났다는 처접을 타고 난 자기를 보고 돈을 백 원이나 준다는 것이 이상하고, 그래서 그 돈으로 장사를 해서 춘삼인지 하는 사람처럼 떵떵거리고 살고, 그래 밥을 아니 굶고 옷을 헐벗지 아니하고 산다는 것이 남의 일인 것 같다.
 
14
또 그 집에 가서 일 년 동안 비단옷을 입고 그리고 잘 먹고 지낼 일도 거짓말같이 곧이들리지 아니했다.
 
15
그러나 남편의 눈치가 노상 거짓말은 아닌 성싶은데, 그러면 대관절 그 집에 가서는 무슨 일을 하길래 그렇게 호강을 하게 되나.
 
16
바느질도 잘 할 줄 모르고 반찬도 잘 만들 줄 모르고 머리에는 이가 시글시글하고,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못나고 못생겼다고 지천이나 먹고 매나 맞고 그랬는데, 그래도 그런 재주밖에는 아무것도 할 줄을 모르는데 무엇을 시키려고 데려갈꼬.
 
17
그렇더라도 좌우간 데려가기는 데려가는가 보니, 가서 보면 알 것이거니와하고 생각해보니 울긋불긋한 비단옷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무어 모두 다 훤하게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모처럼 귀한 밥도 맛있는 줄 모르게 먹다가 말았다.
 
18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려니까 남편이 재촉을 해서 그냥 두어두고 세수를 했다.
 
19
왜비누는 구경한 지 오래고 녹두비누라도 있으면 했으나 그도 써본지오래다.
 
20
분도 없었다.
 
21
기름도 없이 머리를 어떻게 어떻게 빗고 나니까 저고리로 치마로 시꺼먼 이가 슬슬 기어다닌다.
 
22
뒤통수의 서캐를 좀 훑어내고 싶었으나 감지도 아니한 머리를 어찌할 수가 없다.
 
23
옷은 세상이 없어도 지금 걸치고 있는 그것뿐이다.
 
24
조각보보다 더 기운 검정 광목치마 다홍빛 위에 검은빛--땟국--이한 겹 덮인 저고리, 그리고 홑고쟁이와 목만 남은 버선.
 
25
거기다가 다 해어져가는 굵다란 짚신을 끌고 보퉁이 하나 없이 그는 남편이 가자는 대로 따라나섰다.
 
26
시어머니는 내어다도 아니 보고 있는 방 뜨락에서
 
27
“댕겨와요.”
 
28
라고 이웃에나 가는 듯이 인사를 했다. 시어머니는 대답도 아니한다. 그러나 사립문께로 나갈 때에 거적문을 가만히 떠들고 내어다보는 것을 알지 못했다.
 
29
집 문앞을 나서서 남편은 뒤에 처진 이쁜이를 돌아보며 히 하고 웃었다. 덕쇠 저도 왜 웃는지 모르거니와 이쁜이도 웃는 속을 몰랐다. 그러나 따라서 웃었다.
 
30
둘이는 나란히 눈 사박거리는 길을 정거장으로 향하고 걸었다.
 
31
“배 안 고파?”
 
32
덕쇠는 몇걸음 못 가서 뭇는다. 주걱데기를 반 사발 밖에 못 먹은 것이 걸려서 위로삼아 뭇는 말이다.
 
33
“아니.”
 
34
전 같으면 몇 끼 굶은 판이라 그걸로는 요기도 아니 되었겠지만 오늘 아침은 지금 이 일로 가슴이 벙벙해서 시장한 줄을 모르는 것이다.
 
35
“가서 눈 질끈 감구 일 년만 고생히여…… 일 년만 고생허면 내 심평두 피구 히여서 다 괜찮얼 티닝개.”
 
36
덕쇠는 간곡하게 타이르듯 한다. 그러나 이쁜이는 또한 속모를 말이다.
 
37
“그 집에 가면 비단옷 입구 호강헌다면서 고생허라구 그리어?”
 
38
“아무렴…… 그렇기는 허지만 그리두 집에 있는 것보다는 고생이지.”
 
39
“왜?”
 
40
덕쇠는 제깐에도 안해를 술집에다 갖다 둔다는 것이 속으로 언짢아서 고생이라는 말을 써서 말하는 것인데 이쁜이는 호강이라더니 고생이라고 하니까 영문을 몰라 그렇게 고지식하게 뭇는 것이다.
 
41
“글쎄 잘 입구 잘 먹구 편허게 지낼 티닝개 되려 집에서 있을 때보다는 낫을는지 모르지만 말이여……”
 
42
“응.”
 
43
“그렇지만 남의 집이닝개 말이여……”
 
44
“좋을 도리만 있으면 일 년은 말구 십 년이라두 있지.”
 
45
“머?”
 
46
그 말에는 덕쇠는 가슴이 뜨끔해서 껑충 뛴다.
 
47
그는 아까부터 이쁜이를 보면 볼수록 정말로 이뻐지는 것 같고, 그리고 정다와져서 그놈 돈 백 원만 아니라면 그만두었을 것이다.
 
48
그런지라 속으로 여러 가지 궁리가 되는데 지금 이쁜이가 말한 대로 제가 좋아서든지 혹은 무슨 탈이 붙어서든지 그야말로 십 년이나 있게 된다면 그건 큰일이다. 영영 뺏기고 마는 것이다.
 
49
“괜히…… 일 년만 되거든 와야지 못써…… 괜히.”
 
50
그는 전에 하듯이 이쁜이를 얼러메었다.
 
51
“오라면 오지.”
 
52
이쁜이의 대답은 풀이 죽었다.
 
53
오라면 왔지 별수가 없을 줄만 아는 때문이다.
 
54
부처는 잠시 말이 없이 걸었다.
 
55
“춥지?”
 
56
덕쇠는 홑고쟁이 하나만 입은 이쁜이가 가엾어서 목소리를 다시 보드랍혀 뭇는다.
 
57
“아니.”
 
58
배가 고플 때 배가 고프다고, 몸이 아플 때 몸이 아프다고, 옷을 못입어 추울 때 춥다고 바른 대로 대답이 나오지 아니하도록 단련도 되었거니와 이쁜이도 남편이 갑자기나마 그렇게 살뜰히 구는데 마음이 끌려 마음도 말도 자연 곰살가와진 것이다. 그러나 춥기는 추웠다.
 
59
“춥더래두 조꼼 참어…… 인제는 춘삼이네게만 가면 그만이닝개루.”
 
60
덕쇠는 제가 두루마기라도 없는 것이 내내 안타까왔다.
 
61
그는 인제 마음 먹은 대로 돈을 많이 모으고 잘살고 하면 이쁜이를 다습고 좋은 옷으로 감아 편안히 앉혀놓고 살게 하리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62
해도 햇살이 엷게 남쪽으로 치우쳐 훨씬 높이 솟았다.
 
63
싹도 트지 아니한 보리 묻은 밭에서 까마귀가 새까맣게 내려앉아 거름준 것을 파헤치고 있다.
 
64
논에는 비죽비죽 솟은 모포기 사이로 물이 얼어붙고 눈이 어설프게 뿌려져 있다. 이 훤하게 터진 들판의 바람끝이 고추같이 맵다.
 
65
덕쇠는 와들와들 떨며 찰래찰래 따라오는 이쁜이가 보기도 민망해서 밭두덕 시든 풀에다 불을 놓았다.
 
66
눈이 시든 풀숲에 쌓였기는 하지만 곧잘 활활 타서 둘이는 불이 타 뻗는대로 따라가며 불을 쬐었다.
 
67
조금은 나았다.
 
68
부처는 서로 보고 웃었다. 이 부처가 이렇게 정다와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69
이렇게 해서 겨우 장터 가까이 당도했을 때에는 이쁜이는 가슴이 요란스럽게 설레었다.
 
70
“그 집에 가서는 무슨 일을 헌대여?”
 
71
이쁜이는 마침내 이렇게 물어보았다.
 
72
덕쇠는 듣고 보니 무어라고 대답을 알아듣게 해줄 바를 몰랐다.
 
73
“무어 그저 손님들 오면 술상 옆에 가 앉어서 술 따러(부어)주구……”
 
74
“그걸?”
 
75
“응.”
 
76
“그걸 내가 헐 줄 알어야지!…… 술 따르다가 잘못히여서 흘리구 그러면 어떻게 허게!”
 
77
이쁜이는 술 붓는 것이라니까 비로소 이야기로 들은 술집 색시를 상상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다는 것은 알 수가 없고 다만 술 부을 줄 모르는 것이 걱정이 되었다.
 
78
“그러구 손두 이렇게……”
 
79
내어 보이나마나 개이빨같이 벌어진 손등에 누룽지처럼 껍질이 발린 커다란 손이다.
 
80
“괜찬히여.”
 
81
덕쇠는 이쁜이를 안심시키느라고 괜찮다고는 했지만, 미상불 술을 잘 부을 줄도 모르고 또 손이 저래서 도로 쫓겨오고 돈 백 원을 물러달라고 하게 되지나 아니할까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82
“그러구 또?”
 
83
이쁜이는 남편이 괜찮다는 데 안심을 하고, 그러면 그 밖에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것이다.
 
84
“그뿐이지 머……”
 
85
“그뿐?”
 
86
“응.”
 
87
“밥은 안 히여먹구? 설거지랑……”
 
88
“아니.”
 
89
“빨래랑?”
 
90
“빨래두 다 히여주는 사람이 따루 있어.”
 
91
“어쩌나!”
 
92
이쁜이는 그만 탄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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