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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거장(停車場) 근처(近處) ◈
◇ 정거장 근처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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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4~10.
채만식
1
停車場近處
 
2
5
 
 
3
한바탕 매질을 하고 나서 시어머니는 속이 후련한 듯이 거적문을 젖히고 방으로 들어갔다.
 
4
방으로 들어가더니 기침이 나서 한동안이나 자지러지게 기침을 한다. 기침하는 소리를 듣고 이쁜이는 잘코사니야 하고 속으로 고소해했다.
 
5
이쁜이는 겨우 다 삶아진 시래기를 건지며 자배기에 헹궈서 한 움큼씩 쥐어 짜놓고 솥을 씻어낸 뒤에 시어머니가 얻어다가 내동댕이친 된장을 풀어 국을 안치었다.
 
6
다시 불을 지피느라니까 햇살이 맨먼저 부엌으로 비쳐 들어온다. 방에서는 겨우 기침이 개었는지 아무 소리도 없다.
 
7
아무 생각도 없이 넋을 놓고 불을 지피는데
 
8
“거 머여?”
 
9
하고 남편 덕쇠가 부엌으로 쑥 들어선다.
 
10
이쁜이는 힐끔 치어다보고 아무 대답도 아니한다. 그래도 남편이라고 아까 시어머니한테 매맞은 노염을 보이는 것이다.
 
11
덕쇠는 안해가 머리가 더 뜨고 눈에 눈물 자죽이 있고 한 것을 보고 벌써 매질이 났었구나 짐작했다.
 
12
무엇 때문에 또 그랬는고, 뭐 그저 보나 아니 보나 괜히 그랬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덕쇠는 손에 들고 있던 쌀자루를 안해 앞어다 던졌다. 아까 춘삼이와 갈릴 때에 춘삼이가 우선 이놈으로 양식이나 팔아가지고 가 집안 식구와 잘 상의해 보라고 주던 돈 일 원으로 좁쌀을 팔까 입쌀을 팔까 망설이다가 큰돈 백 원으로 장사할 것을 찜믿고 입쌀을 판 것이다.
 
13
이쁜이는 건 무어냐고 말은 없이 고개만 돌려 눈으로 묻는다.
 
14
“양식이여…… 그게 쌀이여…… 어서 밥 히여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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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그러면서 어젯밤 춘삼이가 하던 말이 생각이 나서 안해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16
그런 말을 듣고 보아서 그런지 얼굴이 어쩌면 좀 귀여운 것도 같기는 하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명옥이와 빗대 보면 아무리 보아야 도야지나 무어 같지 이쁘지는 아니했다.
 
17
그러나 이쁘지도 아니하고 도야지 같고 그렇기는 하면서도 덕쇠는 자세히 안해를 뜯어보고 섰느라니까 전에는 없던 이상스럽게 정다운 생각이 솟아났다.
 
18
명옥이나 그런 이쁘기는 해도 서먹서먹한 그런 것과는 달리 덕쇠 제몸뚱이의 어느 한 도막처럼 이쁜이라는 그 덩치가 살뜰스러워지는 것이다.
 
19
그때 그는 히죽이 웃으니까 저는 매를 맞아 속이 상하는데 무엇이 좋아 웃느냐고 눈을 흘긴다.
 
20
덕쇠는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나서 저고리 앞자락 속의 호주머니를 만지었다.
 
21
쌀을 팔고서 남은 놈 십몇전을 담배를 한 봉지 살까말까 하다가 그냥 두어둔 것이 그대로 짤랑거린다.
 
22
지금 솥에 끓이고 있는 것이 국인 듯하니 얼핏 고기를 좀 사다가 넣어서 이쁜이를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23
그래 덕쇠는 허둥지둥 돌아서서 나가려다가 되돌아섰다.
 
24
“그게 국이지? 아직 다 끓이지 말구 그냥 두어 응…… 나 고기 사갖구오께.”
 
25
“고기는 무엇허게 사온다구 속없이 저런대여! 국 벌써 다 끓었는디……”
 
26
이쁜이가 뾰롱한 채로 뒤통수에다 대고 미운 소리를 해준다.
 
27
생각하니 그렇기도 하다. 시방 다시 정거장 근처까지 가서 고기를 사오자면 해가 한나절이나 될 테니 생일날 잘 먹자고 이레 굶는 셈이다.
 
28
그래 그럴 줄 알았더라면 양식 팔 때 아주 고기를 사가지고 올 걸 하고 데시기를 긁는데 방에서 어머니가 또 푸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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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밤새두룩 어디 가서 무엇허구 있었냐?”
 
30
먼저 났던 화가 덜 풀리기도 했거니와 어미는 찾지도 아니하고 부엌에서 저희끼리만 그러고 있다고 샘이 난 것이다.
 
31
덕쇠는 아무 대답도 아니했다. 이제 조반이나 해먹은 뒤에 차차 상의 하느라면 어제 저녁 이야기도 하게 될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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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러먹을 놈! 또 노름방 뒷전에 가 앉었었지 머……”
 
33
방에서는 연달아 욕이 나온다.
 
34
“노름방에는 가지두 안히였수만 또 가면 어떤그라우? 개평이라두 뜯을 수 있으면 뜯어다가 밥 한 끄니(끼)라두 히여먹는 게 났지. 그냥 우두커니 앉었으면 하늘서 밥이 떨어지간디라우……”
 
35
어머니도 실상은 공연한 트집을 잡으려고 그러는 것이지 노름방에를 다니지 못하게 할 며리도 없는 것이다.
 
36
“잘헌다 빌어먹을 놈! 그리고…… 너는 노름방에 가 밤새두룩 앉었구 늙은 어미는 배가 고파서 죽구 그러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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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방에는 가지두 안히었수만 나두 하마트라면 엊저녁(어제 저녁)에 죽을 뻔히였수…… 다행히 친구를 만나서 요기두 허구 늦었다구 붙잡어서 자구 왔수만……”
 
38
마침 멀리서 두부장수 외우는 소리가 들리자 덕쇠는 두덜거리다가 말고 부엌으로 들어가 사발 하나를 집어 들고 씽하니 나가버린다. 고기는 못 사니 두부라도 사다가 이쁜이를 좀 먹이자는 것이다.
 
39
덕쇠가 두부 세 모를 사발에 담아 들고 히죽이죽 웃으면서 부엌으로 들어오니까 이쁜이는 그대로 뾰로통해서 되레 핀잔을 준다.
 
40
“식히잔헌 일은 퍽 허구 댕기네! 두부는 무엇허러 사온대여! 그년의 두부를 보닝개 이가 갈리너만!”
 
41
“헤, 참 두부가 어찌깐디 이가 갈려? 이놈 된장에다 지져서 밥 먹어.”
 
42
이쁜이는 두부 사발을 채듯이 받아다가 국솥 소댕을 열어놓고 한 모씩 식칼로 숭덩숭덩 썰어 넣어버린다.
 
43
“왜 식전버텀 삐쳐 갖구 이리어? …… 남은 실컷 생각히여서 두부랑 사다주닝개루……”
 
44
덕쇠는 전에 만일 이쁜이가 그렇게 시키는 대로 듣지 아니했으면 욕을 해주었든지 쿡 쥐어 박질렀든지 했을 것이다.
 
45
“생각히여 주는 것두 다 싫어.”
 
46
한바탕 윽박질렀으면 풀이 죽었을 것인데 얼러주니까 이쁜이는 점점 더 보풀떨이를 하려 든다.
 
47
“잡것이 왜 자꾸 이런대여! 헤 참.”
 
48
“그만두구 저리 나가.”
 
49
“가만 있어 내가 불 때주께 어서 밥쌀 씻어.”
 
50
솥이 지금 국을 끓이는 옹솥 하나뿐이라 국을 끓여서 퍼놓고 거기다가 다시 밥을 지어야 한다.
 
51
이쁜이는 국을 퍼내고 솥을 씻느라고 시시한다.
 
52
덕쇠는 꺼졌던 불을 도로 살린다.
 
53
“여바.”
 
54
덕쇠는 천 조각이나 기운 치마 밑으로 달랑 한 겹 들어 있는 이쁜이의 홑고쟁이를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지성스럽게 부른다.
 
55
대답 대신 고개를 돌리는 이쁜이의 얼굴은 아까보다는 많이 풀어졌다.
 
56
“비단옷 안 입구 싶어?”
 
57
덕쇠는 다 생각이 있어 하는 수작이지만 이쁜이한테는 청국말같이 못 알아들을 소리다.
 
58
“비단옷 말이여 고흔 비단옷.”
 
59
“히여주면 안 입으까!”
 
60
“히여주까?”
 
61
“깐치(까치) 뱃바닥 같은 소리 퍽 허구 있네! 쓸디없는 소리 그만두구 돈 생겼거들랑 양식이나 나수 팔어와…… 이러다가는 모다 굶어죽을 티닝개루……”
 
62
이쁜이는 덕쇠가 아까 시어머니더러는 노름방에 가지 아니했다고 했어도, 눈치가 분명 노름방에 갔다가 돈이 좀 나우 생긴 것이라 짐작하고 하는 말이다.
 
63
“양식두 팔기는 팔지만 백 원 밑천 들여서 장사헐 참이여.”
 
64
말을 하면서 아까부터 히죽이 죽 웃는 남편을 이쁜이는 잠꼬대를 하고 있나 하는 듯이 위아래로 흝어본다.
 
65
“금비내(비녀)랑 비단옷이랑 응 좋지?”
 
66
“참 벨(별)소리 다 듣겠네! 미칠라거든 고이 미치잖구 왜 이런대여!”
 
67
“얼레! 내가 그짓말허는 중 알구 그리여! 제기 참! 인지 두구 부아……”
 
68
“두구 부아야 비렁배기(거지)지 머……”
 
69
“흥…… 돈 백 원 갖구 장사히여…… 장사히여서 춘삼이치름(처럼) 떵떵거리구 살어.”
 
70
“돈 백 원이 뉘 애기 이름인가 부네!”
 
71
“춘삼이가 준다구 그래어.”
 
72
“춘삼이가 누군디 돈 백 원을 주어?”
 
73
“춘삼이 몰라?…… 응 참 몰르겄구만…… 우리 동네(동리) 살다가 대처루 가서 창사허다가 부자 된 사람인디 시방 저 정거장 앞에서 장사를 하여 ……”
 
74
“그 사람이 무얼 보구 돈을 백 원이나 주어?”
 
75
이쁜이도 이야기를 듣노라니까 차차 솔깃해서 인제는 좀더 자세한 속을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원문】정거장 근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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