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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거장(停車場) 근처(近處) ◈
◇ 정거장 근처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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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4~10.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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停車場近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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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날삯 사십 전씩을 받고 정거장 앞 들판의 금점판에서 일을 하고 있다. 허망하게 돈 백 원 잃어버리고 겸하여 안해까지 잃어버린 그 일이이 있은 지 바로 그 뒤부터니까 그때가 양력 정초였으니 벌써 석 달이 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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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성스럽던 추위도 끈질기게 뭉그대다가 할 수 없이 물러가고 어느결에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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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 앞에 두어 주 섰는 수양버들이 맨먼저 봄을 받아 하룻밤 사인 듯싶게 환하게 푸르다. 울타리 안의 살구나무에 볼록볼록 여문 꽃망울이 맺었다. 밭고랑에 눌러 붙었던 보리순이 벌써 두세 치나 자라 탐스럽게 나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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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두덕에서 산기슭에서 여인네며 어린 아이들이 장꾼같이 모여 나물을 뜯는다. 금점판의 일꾼들도 기를 펴고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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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봄이 와서 춥지 아니한 것만이 다행이지 그 밖에는 봄이 되레 일꾼들한테는 괴롭다. 겨울보다 해가 길어 같은 품삯으로 일을 더 해야하니 괴롭고, 겨울처럼 아침 점심 두 끼만 먹어서는 해질 무렵까지 일을 해낼 수가 없어 오 전짜리 탁배기국 한 그릇이든지 호떡 한 개든지 더 먹어야 하니 돈이 더 들어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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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람들이 이천 명, 지금 오늘도 들판에서 금을 파고 있다. 여느때 같으면 소를 들이대고 논을 갈고 거름을 내고 못자리(秧版[앙판])을 해야 할 때다. 그러나 넓다 못해 끝이 없는 이 들판에는 누구 하나 농사는 하는 사람이 없다.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벼보다도 더 값나가는 금이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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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은 조선에서는 첫째 가는 사금광이다. 함금량이 턱없이 많은데 그나마 ‘자옥쇠’가 아니요 고루 먹혔고, 벌흙이 얇은데 감은 석 자 두께나 되고 가끔 ‘노다지’가 툭툭 뛰어나오고 해서 웬만큼 성적 좋다는 석금(石金)보다도 월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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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을 수유하기는 유명한 x x 이지만 자기네가 직접 채굴을 하지 아니하고 분광(分鑛)을 내놓았다. 분광세(稅)가 매평 오 원 오십 전이다. x x는 사무원 몇 명만 두고 매평 오 원 오십 전씩 따먹는다. 백만 평만 잡고 그중에 나는 것이 십만 평이라더라도 오백만 원이다. 그래서 우선 광주가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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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분광업자가 수없이 들이밀렸다. 그들은 광주(鑛主)인 x x에 매평 오 원 오십 전씩의 광세를 내고 다시 지주(地主)한테 매평 오 원으로부터 십 원까지 주고 땅을 산다. 그래가지고 한번에 이삼천 평 혹은 몇 백평씩을 차지하고는 자 땅떼기를 한다.‘감’을 트럭으로 실어 나른다. 그놈을 ‘물목’에다 대고 찧어서 금을 건진다. 이 짓을 하느라고 매일 이천명의 일꾼을 사서 부린다.(그런 때문에 지주들이 또한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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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매평에 구십도짜리가 한 칠 돈 팔 푼으로부터 서 돈 중수까지 나오는 곳도 있다. 그러니까 광세와 땅값으로 십 원 각수를 물고도 분광업자들은 숱한 이문을 남기느라고 배가 부르다. 그래서 그새까지 이 들에서 농사일을 해주고 얻어먹던 농군들은 삽으로 금을 파주고 날삯 사십 전 아니면 사십오전을 얻어먹는다. 광주나 분광꾼이나 지주한테는 이 땅이 금점판이 된 덕에 깨가 쏟아지지만 농군들한테는 농사를 지어줄 때나 금을 파주는 지금이나 종시 일반이다. 농사일을 하던 때에도 해가 긴 봄날에는 배가 고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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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을 파면서부터 논이 고르게 연해 있던 이 들판은 무엇이든지 형용이 괴상하다. 군데군데 벌흙을 파서 싸올린 것이 피라밋인가 있는 애급 풍경이다. 들판 가운데 사무소로 생철집이 생기고 논 가운데로는 트럭이 놓였다. 일꾼들한테 한 상에 칠 전짜리 현미 싸래기밥을 파느라고 밥집이 십여 군데 생기고 일꾼들을 재우느라고 네 귀에 기둥을 박고 가마니쪽을 둘러치고 바닥에는 등겨를 깔고 그 위에다가 가마니쪽을 깔고 집(?)이 생기고 호떡가게가 생기고 술집이 생기고, 담배가게 사탕가게 이런 것들이 들 가운데 아무렇게나 새로 생겨났다. 그야말로 지리(地理)가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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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네 분광구에서는 어제까지 웃껍데기 벌흙을 다 벗겨내고 오늘은 아침부터 ‘감’을 파는 참이다. 덕쇠는 다른 일꾼 여남은과 같이 삽질을 하고 있다. 벌흙을 벗겨낸 밑으로 세사와 조약돌이 섞인 누르스름한 석 자 두께의 흙 한 켜---‘감’을 삽으로 퍽퍽 퍼서 들이대는 바지게에 부어준다. 분광도 규모를 크게 할라치면 트럭으로 감을 실어 나르지만 곰보 최덕대는 이번에는 조그맣게 한 오백 평밖에 아니 했고 또 ‘물목’도 가까와서 그냥 바지게꾼으로 져나른다. 바지게꾼들은 한 오십 명이나가 저편 물목까지 감을 지고 가고 지러 오고 하느라고 마치 밥을 물어나르는 개미떼처럼 두 줄로 연락 부절해서 오고가고 한다. 곰보 최덕대는 ‘물목’옆에서 금 캐는 것을 감독하면서 이편짝도 연해 감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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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지금 삽질을 하면서 정신은 삽끝에서 논다. 전에도 더러 나왔다는 그런 ‘노다지’가 한 덩이 눈에 띄었으면…… 띄기만 하면 슬쩍 집어가지고 눈치를 보아 뺑소니를 칠 요량이다. 그렇게라도 돈 백 원이나 손에 쥐어야 전자에 노름으로 백 원을 잃어버린 벌충도 되고 이쁜이를 찾으면 춘삼이한테 백 원을 갚아주고 도로 무르든지, 그렇게 계제가 못되면 장사를 시작할 밑천을 장만하든지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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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쩌면 한 덩이 얻어질 것도 같으면서 소위 ‘시운이 지지 아니 해서’ 그런지 아무리 정신을 차렸어도 석 달이 되어오도록 입때까지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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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한 짐을 겨우 퍼서 얹어주고 허리를 폈다. 딱 시장해서 구부렸던 허리를 펴기가 대견했다. 하마 점심 먹으라는 소리가 날 때가 되었는데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해는 아까 그 자리에 그냥 있지 더 간 것 같지도 않다. 일보다도 해가 원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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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겨우 점심을 먹으라는 영으로 사방에서 깨어진 놈 성한 놈 쟁들이 괭괭 울렸다. 덕쇠는 쥐었던 삽을 내던지고 일터 한편 구석에 옴닥옴닥 모아놓은 점심 꾸러미에서 제것을 찾아들기가 바쁘게 저편 봇둑에 있는 국밥집으로 들고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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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십 명이 모여들어 국 푸는 솥을 둘러싸고 제가끔 가지각색의 밥그릇을 너도나도 들이민다. 그러나 밥이라는 것은 모두 한결같은 현미싸래기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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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지 일이 왼쌀의 쌀눈이요, 오분지 일이 푸르스름한 쭈그렁이쌀의 쌀토막이요(싸래기라는 이름은 그것 때문에 붙은 억울한 영광이다) 오분지 일이 피(稷[직])요, 오분지 일이 모래요, 오분지 일이 겨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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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을 대되로 한 되에(고봉으로) 십칠 전씩 주고 팔아다가는 조리로 일이 어쩌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물에다가 한 번 헹궈서 밥을 짓는다.(이것은 실상인즉 닭모이로 쓰는 것인데 이 일꾼들이 빼앗아 먹는 참이다.)그래서 그 놈을 먹고 대변을 보면 다시 거기서 닭모이가 나온다.---피와 모래와 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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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들은 이런 밥 한 덩이씩을 담은 그릇을 들이밀고 서로 먼저 국을 받으려고 밀치고 넘어지고 욕하고 성내고 눈을 부라리고 실로 무서운 광경이다. 국이란 건 시래기에 콩나물과 된장과 벌써 여남은 번이나 삶은 것이다. 그 놈 한 사발과 말걸리 한 잔에 오 전이니 싸기는 일꾼같이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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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국을 받은 사람들은 제가끔 흩어져서 버티고 선 채로 훌쩍거리며 먹고 있다. 덕쇠도 돈 오 전으로 겨우 말걸리 한 사발과 밥그릇에 부어주는 국을 받아가지고 물러서서 술을 들이켠 뒤에 국밥을 목구멍에 퍼넣기 시작했다. 실상 그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조금 아까 삽으로 흙을 퍼얹듯이 숟갈로 밥을 목구멍에다가 퍼넣는다는 게 옳은 말이겠다. 혀와 이빨을 놀려 씹고 어쩌고 할 것도 없다. 씹으면 모래가 물려서 되레 폐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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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저 우물우물해서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넘기어 배만 부르면 그만이다. 이것은 덕쇠만 그렇다는 게 아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그렇다.
【원문】정거장 근처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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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9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