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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거장(停車場) 근처(近處) ◈
◇ 정거장 근처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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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4~10.
채만식
1
停車場近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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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
덕쇠가 마지막 돈이 남은 대로 오 원 오십 전을 톨톨 털어 태워놓고 패를 죄다가 물주는 일곱끗인데 일새(一 四[일사])에 장(十[십])으로 진주(五[오])를 잡고 나동그라진 것은 시꺼먼 대살문이 휘엿이 밝아오는 새벽녘이다.
 
4
덕쇠는 순갑이며 다른 사람들을 보기에도 열적어서 두 팔을 뒤로 짚고 뻔하니 앉아 있다. 그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성을 내야 할지 제속을 제가 어떻게 가질지를 몰라 괜히 코를 킁킁 입을 씰룩씰룩한다.
 
5
그의 눈은 연일 잠을 못 자서 벌겋게 충혈이 되고 눈곱이 다닥다닥 붙었다. 비죽비죽 비어진 코털 끝에는 석유불의 그으름이 새까맣게 고드름 달리 듯 했다.
 
6
투전판은 덕쇠가 밑천이 떨어지니까 그냥 깨져버린다. 뒷전에서는 두어 사람이나는 아무렇게나 쓰러져 쿨쿨 잠을 자고 있고 서넛이나는 제가끔 돈 딴 사람한테 개평을 달라고 손을 들이민다.
 
7
돈 딴 사람은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대로 십원짜리며 일원짜리며 사슬 돈이 푹푹 집혀 나온다. 덕쇠는 어쩌면 돈 딴 사람이 지금 구겨진 지전을 다 펴서 새로 저렇게 세어가지고
 
8
“옛다, 장난으로 그랬으니 네 돈을랑 도루 가져가거라.”
 
9
하면서 착 내줄 성도 싶었다. 그래서 그는 돈 딴 사람의 낯꽃을 다시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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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딴 사람은 개평꾼들이 백 원을 땄으리 구십 원을 땄으리 하면서 자꾸만 손을 들이미니까 짜장 뚜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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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래야 제우(겨우) 육십 원 땄구만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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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큰돈을 한 뭉치 집어넣고 일원짜리를 한 장씩 모조리 나누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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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돈을 도로 줄까 바라던 것이 허사가 되니까, 그의 하는 소리가 밉광스러워 골이 버럭 나고 골이 나는 깐으로는 당장 달려들어 그자를 실컷 두들겨주고 싶었다. 두들겨주고 그러고 그 김에 돈도 도로 빼앗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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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갑이만 빼놓고 개평 얻은 사람들은 덕쇠야 어찌 있건 좋아서 모두들 입이 헤벌어진다. 돈 딴 사람은 마지막 일원짜리 석 장을 덕쇠에게로 밀어보내면서 섭섭한데 해장이나 하라고 한다. 덕쇠는 본 체도 아니하고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나왔다.
 
15
훤하니 밝은 방문 밖으로 나서니 덕쇠는 꿈을 꾸다가 깬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방문 옆으로 있는 오줌독에다가 담뿍 잠갔던 소변을 철철 쏟으면서 손바닥으로 그놈을 받아다가 눈을 씻는다.
 
16
훤하니 밝은 바깔에 나서서 정신이 들어갈수록 지나간 일이 아득하니 꿈결 같았다. 그는 소변을 다 누고 나서 우두커니 섰다가 무심결에 제저고리 안깃의 호주머니를 만져본다. 돈은 역시 없다. 꿈결같이 허망해도 돈 구십 원은 홀라당 날아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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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콱콱 찧고 싶게 후회가 난다. 그는 우선 연 사흘밤 투전을 하면서 잡았던 패가 선연히 눈에 밟혔다. 새자(四[사]) 그놈을 지르지 않고 그대로 잡었더라면 오이(五[오])가 나왔으니까 새외(四五[사오]) 가보로 이십 원씩 맞태었던 놈을 먹었을 텐데 그놈 새자패가 싫어서 질렀더니 오륙(五六)에 새자가 또 나와서 죽던 것…… 이런 일이 하나씩하나씩 생각이 나고 그런 족족 발이 저절로 한번씩 굴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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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잘만 했더라면 지금 그 돈 구십 원이 그냥 들어 있을 텐데 하고 또 호주머니를 만져본다. 섭섭하게도 호주머니 속에서는 아무것도 만져지지 아니한다. 그 대신 시퍼런 십원짜리 아홉 장이 눈에 선연히 밟힌다.
 
19
그저 자그마치 한 오륙 원만 땄었을 때 벌떡 일어섰어도…… 아니 한 이십원만 땄었을 때에 벌떡 일어섰어도…… 적이나 해서 한 사오십 원만 땄었을 때에 벌떡 일어섰어도…… 이렇게도 후회났다. 그러나 후회를 하려들면 방금 미칠 것 같다. 그래서 슬며시 마음을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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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백 원쯤 생기기도 뜻밖에 생겼거니와 잃어버리기도 꿈속에서 잃어버렸으니 그저 허망한 꿈으로 돌려버리고 허허 한바탕 웃으면 그만이지…… 이렇게 마음을 돌리면 적이 속이 편하려고 하나, 뒤미처 이 뒷일을 장차 어떻게 한다? 어머니가 그렇게 극성을 하면서 달랄 때에 선뜻 내맡겼더라면 도무지 이런 일 저런 일이 없을 텐데…… 인제는 어머니를 볼낯도 없거니와 만나는 날이면 둘 중에 하나가 생주검을 하고 말 것……또 이쁜이를 무얼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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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대답이 꼭 막힌다. 약간 허망한 일이라고 단념을 하고 허허하면서 한바탕 웃어버리고 할 그런 따위가 아니다. 큰일났다. 그냥 모른체하고 씻어넘길 수는 없고 큰일이라도 이만저만찮은 큰일이다.
 
22
“에라! 빌어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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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혼잣말로 이렇게 내씹으면서 휘휘 둘려본다. 마당 건너로 헛간앞에 길쭉한 새끼가 한 도막 허연 된서리에 덮인 채 뻗히고 있다. 덕쇠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새끼를 집어들고 아직 잠가둔 사립문을 열고 울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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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도 촌의 새벽은 이르다. 오줌지게를 진 사람이 뒤우뚱뒤우뚱 논샛길로 해서 보리밭으로 나가고 있다. 개동망태를 어깨어 걸멘 사람이 한 손에 호미를 들고 울타리 밑으로 부지런히 기어다니면서 개똥을 줍는다.
 
25
텃밭 가에 높다랗게 솟은 포플라나무 꼭대기에 까치가 한 마리 위태롭게 앉아 까악까악 짖다가는 들로 향해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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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문도 없는 오두막집에서 애기만한 각시가 다홍 저고리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나오더니 동리 앞 우물로 나간다. 강아지가 찰래찰래 뒤를 따라간다. 덕쇠는 각시를 보니 이쁜이 생각이 불현 듯이 났다. 지금쯤 춘삼이 말대로 명옥이보다도 훨씬. 이뻐졌을 이쁜이를 생각하면 부질없이 그를 갖다가 전당잡힌 것이 애초에 잘못이라고 그 일까지 후회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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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직이 들판 건너로 건너다보이는 정거장 쪽을 연신 돌려다보면서 동리 뒷산의 솔숲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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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선 어떤가 하고 새끼를 목에 감아 두 손으로 양편에서 지그시 졸라 본다. 처음에는 목이 좀 거북하더니 이어 귓속에서 윙윙 소리가 난다. 눈이 나오려고 하고 콧속이 뻑뻑해진다. 그래도 조금 더 조르니까 귀가 터질 것 같고 눈에서 별 같은 것이 보이면서 왈칵 기침이 나온다. 조금만 더 졸라본다. 관자놀이가 들썩거리고 얼굴이 터지려고 하고, 금방 죽는 것 같다. 그는 겁결에 얼핏 손을 느꾸고는 숨을 배 밑까지 깊이 들이마셨다가 다시 그 놈을 내뿜는다. 그것이 어떻게나 시원한지 그런 맛은 생전 처음인 성싶게 좋고 안심이 되었다.
 
29
“괜히 아프게스리!”
 
30
덕쇠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방금 새끼에 스쳐 얼얼한 모가지를 손으로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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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허면 죽어지나? 나뭇가지에다가 매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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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저더러 이런 소리를 하면서 소나무들을 휘휘 둘러본다. 그러나 솔들이 모두 길 반 아니면 두 길밖에 아니 되는 애송이라 목을 매고 늘어질 만한 가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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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그것이 다행한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두루 돌아다보다가 한복판께서 큼직한 참나무 하나를 찾아내었다. 길 반이나 높은 데 가서 실직한 가지 하나가 뻗어나온 놈이 목을 매기는 아주 마침감이다.
 
34
우선 나무를 타고 올라가 뻗어나온 가지에다가 새끼를 한끝 든든히 비끄러 매고 한끝은 올가미를 만들어 목에 걸고 축 처지면 될 판이다. 그는 참나무를 올려다보면서 생각해본다.
 
35
‘축 처지면 아까 해보듯이 귀가 울고 눈이 쏟아지려고 하고 코가 맹맹하고 얼굴이 터지려고 하고 숨이 막혀서 대롱대롱 발버둥을 치고 혀를 기다랗게 빼물고……’
 
36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그는 저도 모르게
 
37
“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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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내면서 상을 찌푸리고 몸서리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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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윙 소리가 나면서 손 구부렁이 같은 왕벌 한 마리가 뜽 날아들어 우툴두툴한 참나무 우듬지에 앉는다. 이어 구멍에서 꼭 같은 놈 한 마리가 날아나간다.
 
40
“벌 때미(때문에)못 올라가겄구만!”
 
41
덕쇠는 혼자 두런거리면서 다른 나무를 찾는다. 그러나 만만한 놈은 그리 없고, 있어도 모두 흠이 있다.
 
42
“제미헐 것! 죽을래두 죽을 수가 있어야지!”
 
43
덕쇠는 마침내 골을 내어가지고 산에서 내려왔다. 산 밑에서 헐떡거리며 찾아다니는 순갑이를 만났다.
 
44
“야 이 잡것아 ! 너 그럴 종(줄) 알었다 !”
 
45
순갑이는 덕쇠를 보기가 무섭게 이런 지천을 하면서 아직도 덕쇠가 손에 들고 있는 새끼토막에다가 눈을 흘긴다. 순갑이는 엊그제 덕쇠가 몸에 돈 백 원을 지녔을 때와 달라 도루 전처럼 ‘해라’를 하고 욕을 하며 흉허물없이 한다.
 
46
덕쇠는 히죽이 웃으면서 저도 새끼토막을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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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일루 목을 매달어 죽어 ? 왜 죽을라구 히여 ?”
 
48
“히히, 그냥 그럴라구 히여 부았지, 이 사람아야 죽을라닝개 못 죽겄데……”
 
49
“죽구 못 죽구 간에 무엇 때미 죽을라구 히여? 죽으면 죽는 놈만 원통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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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하두 일이 허망허구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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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허구 걱정된다구 죽어 ? 야 이 자식아 그런 개 같은 소리 그만히여 두구 가자, 아까 그놈 삼 원허구 또 내가 개평 얻은 놈 일 원허구, 내가 받어 두었으닝개루 가서 술이나 실컷 먹자. 이놈으루 술 먹구 늑신취허구 나서 그 돈 백 원으루 술 다 사먹은 셈만 치면 그만 아니냐?”
 
52
덕쇠는 듣고 보니 미상불 그럴 듯했다. 아무튼 사 원어치를 식전 해장부터 둘이서 먹고 나면 취할 것은 취할 것이니, 그러면 돈 백 원으로 술을 다 사먹은 셈 대고 잊어버리고 그러고 뒷일은…… 그것이 좀 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별수가 없는 것……
 
53
이렇게(마음을 돌리지 아니한다고 해도 별수가 없기야 하지만) 덕쇠는 그런 대로 단념을 하고 순갑이와 같이 전주집으로 가서 돈 사 원을 몽땅 맡겨놓고 마치 돈 구십 원을 다 물어버린 분풀이나 하는 듯이 술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둘이 다 곯아떨어졌다.
【원문】정거장 근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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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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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9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