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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대사 (元曉大師) ◈
◇ 제행무상 ◇
해설   목차 (총 : 8권)   서문     처음◀ 1권 다음
1942
이광수
 

1. 제행무상

 
2
때는 일천 이백여 년 전. 신라(新羅) 서울 서라벌. 꽃구경 하는 삼월 보름도 지났다.
 
3
아리냇(閼川)가의 버들과 느릅나무에 연한 잎이 나불나불 봄볕을 받을 때다. 십 칠만 호라는 서라벌 후원의 뜰 가와 담 밑의 살구, 복숭아, 이스랏꽃도 졌다.
 
4
달잣(月城)대궐 숲속에서 이른 꾀꼬리 소리도 울려나올 때 인데 서른 한 살 되시는 여왕 승만(勝曼)마마의 병환으로 서라벌의 봄은 수심에 잠겨 있었다. 스물 네 살의 처녀의 몸 으로 신라의 임금이 되신 승만마마는 백성들의 사모함을 받으셨다.
 
5
키가 훨적 크시고, 얼굴이 달 같으시고, 팔이 길어 무릎에 내려오고, 어려서부터 불도를 존숭하시와 혼인도 아니하신 것이며, 즉위하시는 길로 전 임금이시자 사촌 형님이신 선 덕여왕(善德女王)을 폐하려고 모반하였던 상대등 비담(上大 等毗曇), 염종(廉宗) 이하 삼십 인에게 단연히 사형의 처분 을 내리신 것이며, 즉위하신 첫해 겨울에 무산(茂山), 감물(甘勿), 동잠(桐岑) 싸움에 유신(庾信)을 보내시와 백제군을 대파하고 삼천여 급을 벤 것이며, 또 이듬해 봄에는 백제 명장 의직(義直)의 군사를 요거(腰車)에서 참멸한 것이며, 이러한 일들이 젊은 여왕은 선덕여왕보다도 더 힘차고 나라를 빛내일 임금이 되시리라고 백성들이 촉망한 것이었다.
 
6
더구나 즉위 오 년에 조원전(朝元殿)에 높이 앉으시와 백관의 정조 하례를 받으실 때에는, 누구나 그를 스물 여덟살 되시는 부녀라고 생각할 수 없으리만큼 위엄이 있으셨다.
 
7
비담이 선덕여왕을 폐하려 한 것은 왕이 여자이기 때문에 이 웃 나라에서도 만만히 보고, 또 국내에서도 위령이 행하지 못한다는 까닭이었으나 승만마마의 정사하심을 보고는 아무도 그가 여왕이시라 하여서 만만히 볼 수가 없었다.
 
8
왕도 그의 이름이 승만인 것과 같이 승만부인을 본받으려 하셨다.
 
9
승만이란 승만경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석가세존 시대에 파사닉(波斯匿) 왕의 따님으로서 아유사(阿踰  )국 왕에게 시집을 간 이다. 파사닉 왕이 마리부인으로 더불어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 불법에 귀의하매, 그 따님 승만부인에게 편지를 보내어 불법을 믿기를 권하고, 승만부인은 아버님 어머님의 편지를 받자 곧 불법에 귀의할 마음을 발하여서 세존을 아유사국으로 모셔다가 불법을 들었으니, 그 설법을 적은 것이 승만경이다.
 
10
승만부인은 세존의 설법을 듣잡고는 환희심을 발하여서 삼대원 십대수(三大願十大守)를 발하였다.
 
11
삼대원이란, 첫째, 내 몸이 바른 법의 지혜를 얻고, 둘째, 남에게 이 바른 법을 설하고, 셋째, 바른 법을 호지(護持─쇠하지 않도록 지킨다는 뜻)하리라 함이오.
 
12
십대수(十大守)라는 것은, 일, 부처님 계(戒)를 범치 아니하리라.
 
13
이, 높은 이에게 대하여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리라.
 
14
삼, 중생(衆生)에 대하여 성내지 아니하리라.
 
15
사, 남을 미워하지 아니하라리라.
 
16
오, 탐내지 아니하리라.
 
17
육, 나를 위하여 재물을 쌓지 아니하리라.
 
18
칠, 일체중생을 건지리라.
 
19
팔, 외롭거나 갇히거나 병나거나 하여 고난받은 중생를 안온하게 하리라.
 
20
구, 옳은 일에 반항하는 중생을랑 절복(折伏)하고, 순종하는 자는 섭수(攝受)하리라.
 
21
십, 바른 법을 받아 잊지 아니하리라.
 
22
하는 것이다.
 
23
왕은 승만부인의 이 삼대원 십대수의 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려 보리라고 젊은 여자의 생각으로 굳게 결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왕은 병환이 심중하셨다. 아직 마음에 먹으신 뜻을 펴기를 시작도 하시기 전에 병이 드신 것이었다.
 
24
서라벌 어느 절에서는 여왕 승만마마의 어평복을 기원하지 아니하였으랴. 더욱이 왕의 스승이요, 지도자인 자장율사(慈裝律師)는 대궐에서 물러나오지도 아니하고 있는 비밀법을 다하여서 왕의 병마를 쫓으려 하였다.
 
25
원효(元曉)가 팔 년째나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쓰고 있는 분황사에도 이 아낌받는 여왕의 어평복 기원이 날마다 있었다. 지난밤에도 밀본대사(密本大師)가 도사가 되어서 호마 (護摩)를 수(修)하였다. 진언비밀법(眞言秘密法)이다.
 
26
원효는 이것을 즐겨하지 아니하였으나, 임금을 위한 기원의 자리라 정성스럽게 참예하였다.
 
27
일찍 선덕여왕이 병환으로 계실 때에 밀본이라는 중이 약사경(藥師經)을 읽어서 귀신을 쫓아버려서 여왕의 병환이 나으신 일이 있다고 하여서 당시에는 진언비밀의 법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28
밀본법사의 호마가 끝나매 원효는 잠자코 처소인 무애당(無碍堂)으로 돌아왔다. 무애당은 분황사 법당 동북쪽으로 따로 떨어져 있는 한 채로서 일찍 지명대사(智明大師)가 거처하던 곳이다. 원효가 처음 화엄을 배우기를 지명대사에게서 하였다. 그러한 인연도 있고 또 종용한 품이 저술하기에 합당도 하여서 원효는 주실(籌室)도 마다하고 이 외따른 곳에 거처하는 것이었다.
 
29
무애당은 방 셋으로 된 작은 채였다. 한 방에는 문수보살 (文殊菩薩)상과 화엄경을 모시고, 한 방에는 원효가 거처하고, 또 한 방에는 원효를 시봉하는 상좌 심상(審詳)이 거처하였다.
 
30
무애당이라는 당호는 원효 자신이 지어서 자필로 써서 문 미위에 붙인 것으로 화엄경의 '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라는 데서 따서 쓴 것이니 무엇에나 거칠 것이 없어야 나는 죽는 데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원효는 이 '무애'라는 말을 즐겨하였고 자기도 '무애'를 수행의 목표로 삼았다.
 
31
방안에는 가무스름한 감나무 경상 하나와 차를 끓이는 질그릇 화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경상 위에는 지필묵뿐, 그리고 등경.
 
32
심상은 원효의 가사와 장삼을 받아서 걸고 자리를 깔고는,
 
33
"시님, 안녕히 주무시겨오."
 
34
하고 합장례를 하고 물러나갔다.
 
35
원효는 자리에 누웠다. 원효는 마지막으로 왕께 뵈온 때를 생각하였다.
 
36
그것은 지난 삼월 삼짇날. 왕은 칙사를 분황사에 보내시와 원효를 청하셨다.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의 법회를 연 것이 었다.
 
37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원효는 위로서 보내신 흰 소를 메운 수레를 타고 사도대궐[沙梁宮]로 들어갔다.
 
38
왕은 침전에 계셨다. 법회라 하여도 모인 사람은 사오 인 뿐이었다. 왕의 생모되시는 월명부인(月明夫人), 춘추공의 부인인 문명부인(文明夫人), 춘추공의 며느님이요, 장차 문무왕(文武王)의 왕후가 되실 자의부인(慈儀夫人), 유신의 부인, 문명부인의 따님이요, 장차 요석공주(瑤石公主)라고 일컬어질 아유다부인 등이었다.
 
39
춘추공은 장차 태종무열왕(太祖武列王)이 되실 이로, 유신공과 함께 당시 신라의 두 기둥이었다. 춘추공의 부인 문명 부인은 유신의 누이로서 그 어머니 만명(萬明)과 함께 미인으로 이름이 높은 이였고, 그의 따님인 아유다도 그 어머니의 아름다움을 닮아서 전국에 이름이 높은 미인이었다.
 
40
춘추공의 아름다운 따님 아유다가 당시 화랑들의 사모의 표적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중에 충, 효, 신, 용, 인 (忠孝信勇仁) 화랑오교(花郞五敎)를 겸전하였다는 거진랑(擧眞郞)과 관창랑(官昌郞)이 아유다의 배필로 경쟁자가 되었다가, 마침내 거진랑이 이기어서 아름다운 아유다를 아내로 삼게 된 것이 팔년 전이었다. 그러나 거진은 무산 싸움에 백제군과 싸워서 그 아버지 비녕자(丕寧子)와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여서 신라군의 사기를 격발하여 마침내 백제군을 깨뜨린 기운을 지은 것이다. 그때의 공을 왕께 여쭈어서 왕은 이 부자를 위하여 우시고, 그 때문에 더욱이 아유다를 어여삐 여기시와 친따님같이 사랑하시와서 언제나 곁에 두신 것 이었다.
 
41
이러한 모임은 실로 흔히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모임이었다. 당시 신라의 미인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었다.
 
42
원효가 심상을 뒤에 세우고 들어서매 왕도 옥좌에서 일어 나 합장하시와 법사에게 대한 경의를 표하셨다. 문명부인 이하는 모두 합장하고 법사를 향하여 배례하였다. 임금님과 부모와 스승을 높이는 것이다.
 
43
원효는 미리 준비하여 놓은 법사의 자리에 앉았다. 그때에는 왕은 조금도 병색이 없으셨다. 보름달과 같이 둥그스름한 얼굴, 훨적 크신 키, 드리우면 무릎까지 내려오는 팔, 어글어글하고도 가느스름한 눈, 불그레한 입술, 부드럽고도 힘 있는 음성, 왕은 그중에도 가장 아름다우셨다.
 
44
그러나 한 송아리 금방 핀 아침 연꽃 같은 이는 아유다였다. 나이도 그 중 젊거니와, 그 눈썹과 눈은 같은 여성으로도 마음을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어머니 문명과 외조모 만명의 열정을 받은 사람이다. 그 외할머니 만명은 갈문왕 입종(葛文王立宗)의 손녀로서 조부를 뵈오러 온 화랑 서현(舒玄)을 길에서 한번 보고 사랑이 생겼다. 이 서현이라는 이가 유의 아버지다. 그때에 서현이 만노군 태수(萬弩郡 太守)가 되어 서라벌을 떠나게 된 때에 비로소 만명이 서현과 연애하는 일이 발각이 되어서 만명은 그 아버지 숙흘마로[肅訖宗]의 노염을 받아서 별제(別第)에 가둠이 되고 사람의 지킴을 받았으나 만명은 수챗구멍으로 빠져 도망하여 애인 서현을 따라갔다. 이리하여 유신과 문명의 어머니가 된 것이었다.
 
45
또 문명부인이 춘추와 혼인한 것은 이러하였다.
 
46
같이 문노(文弩)의 문인으로 춘추와 유신이 화랑의 수행(修 行)을 할 때에 하루는 둘이서 무예를 익히다가 유신이 춘추의 옷을 밟아 터지게 되매 유신은 춘추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누이 문명을 불러서 그 터진 옷을 깁게 한 것이었 다. 이때에 서로 보고 사랑하여서 문명은 춘추에게 시집을 가게 된 것이요, 이 사랑하는 부부의 사이에서 난 이가 장차 신라의 가장 전성시대의 왕이 되실 법민(法敏)과 요석공주 아유다였다.
 
47
이러한 피를 받은 아유다다. 아유다의 형 고조다(古炤陀)는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동잠성을 지키다가 백제군과 싸워 죽을 때에 함께 죽었다.
 
48
이러한 피를 받은 아유다다.
 
49
게다가 아유다가 전몰한 용사의 과부라는 것이 더욱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 같았다.
 
50
원효는 심상이 받들어 드리는 화엄경 제이십이권, 십지품을 펴 놓았다.
 
51
"그때에 세존이 타화자재천왕궁 마니보전(他化自在天王宮 摩尼寶殿)에 계시와 대보살 중과 함께 하시더니."
 
52
하는 십지품 첫 구절이 눈에 띄었다. 원효는 이 자리가 마니보전인가 하였다. 신라 왕궁에서, 왕의 앞에서 십지품을 설하는 것이 큰 인연이라고 원효는 생각하였다.
 
53
원효는 합장 명목하고 세존과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을 염 하였다.
 
54
경상 앞의 향로에서는 향연이 올랐다. 방안에는 향기가 가득 찼다.
 
55
"無上甚深微妙法 百十萬劫難遭遇 我今現聞得受持 願解知來眞實意."
 
56
(높고 깊은 이 법을 만겁 간들 만나리 보고 듣고 받으니 참뜻 알게 하소서) 원효의 입을 따라서 왕 이하로 모두 정성스럽게 개경게(開 經偈)를 외웠다.
 
57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의 삼현위(三賢位) 를 설하여 가행방편(加行方便)을 끝내었으니 본회에서는 입증성과(入證成果)의 뜻을 밝히는 것이오."
 
58
하고 원효의 설법이 시작되었다.
 
59
초발심(初發心)으로 이기적 개인적 좁은 욕심을 버리고 동포를 사랑하는 대비심(大悲心)을 발하는 데서 중생은 범부지(凡夫地), 즉 보통사람의 경계를 떠나서 보살위 — 즉 중생을 위하여서 사는 깨달은 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60
"대비심이 머리가 되고 직심(直心)과 심심(深心), 즉 곧은 마음과 깊은 마음으로만 살아갈 때에 우리 힘은 부처님의 힘과 같은 것이오. 곧은 마음이란 거짓 없고 속임 없는 마음이오. 깊은 마음이란 언제까지나 변함도 없고 다함도 없는 마음이란 말이오. 이 세 가지 마음으로 하여서 우리는 여래종(如來種), 즉 부처의 씨가 되는 것이오. 이리하여서 한번 여래종에 들면, 육도만행(六度萬行)을 닦아서 필경에 아녹다라삼맥삼보리(阿  多羅三  三菩提—無上正覺)를 얻어서 성불, 즉 내 몸이 부처가 되는 것이니, 이렇게 마음을 발할 때에 우리는 환희지(歡喜地)라는 자리에 올라서 보살이 되는 것이오. 어찌하여 환희지인가. 보살이 환희지에 거하면 기쁨이 많고, 믿음이 많고, 깨끗함이 많고, 즐거움이 많고, 유함이 많고, 참고 견딤이 많고, 다투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늘 생각하는 것이 부처님네들이오. 부처님네의 가르치신 법이오. 부처님네의 높은 제자들이니 기쁘고, 범부의 지저분한 경계를 벗어나서 지혜지에 가까우니 기쁘고, 모든 악도를 끊고 일체중생의 의지(依支)가 되니 기쁘고, 항상 부처님네를 뵈오니 기쁘고, 제 마음에 부처님네의 경계가 나타나 니 기쁘고, 모든 보살의 수에 드니 기쁘고, 살아가기 어렵다는 무서움[不活畏], 죽은 무서움[死畏], 악도에 떨어지는 무서움[墮惡道畏], 대중을 두려워하는 무서움[大衆威德畏]을 모두 멀리 떠날 수가 있는 것이오."
 
61
하고 원효는 일단 소리를 높여서,
 
62
"보살이 이미 내라, 내 것이라 하는 생각을 떠났거니 세상에 탐내일 것이 무엇이며 무서워할 것이 무엇이랴. 내라는 생각을 멀리 떠났으면 죽음은 다 무엇일꼬. 설사 이 몸이 죽는다 하더라도 내 이미 아상(我相)을 끊었으니 태어나는 곳마다 제불보살과 함께 할 것이며 죽는 것이 무슨 걱정이랴. 또 보살의 대원이 고작 높은 원이거니 세상에 누구를 무서워하랴. 천하에 내어놓아도 내 원같이 높고 바른 원은 없을 것이라, 그러한 말씀이오."
 
63
하고 환희지의 경문을 읽어가며 해석한 뒤에, 원효는 경을 덮어 놓고 왕과 대중을 바라보며,
 
64
"그러므로 우리 중생을 얽매는 것이 오직 아상이란 말요.
 
65
내라 내것이라 하는 생각이 우리를 얽어매어서 날마다, 시각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모든 괴로움을 되풀이한단 말씀이오. 한번 우리가 아상을 떠나서 중생을, 동포를 사랑하 는 마음을 발할 때에 우리는 벌써 삼계(三界)에 거칠 것이 없는 보살이 되는 것이오. 이런 경계를 일러서 환희지라 하고 여래종이라 하는 것이오. 이때부터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중생을 위하여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거기는 벌써 걱정, 근심, 두려움, 무서움이 없고 사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는 것이란 말이오. 이런 것을 일러서 일체무애인(一切無碍 人)이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라 하는 것이오. 제행무상(諸 行無常)이라 시생멸법(是生滅法)이니 생멸멸이(生滅滅已)하면 적멸위락(寂滅爲樂)이란 것도 이를 두고 이른 말씀이오.
 
66
적멸이란 저를 위한 모든 욕심이 스러져서 다시 아니 일어나는 것을 이른 것이오. 이렇게 되고자 비로소 충도 하고 효도 하고 부부도 되고 붕우도 되고 용사도 되는 것이라, 저라는 생각이 있는 충효가 어디 있으며, 신의는 어디 있으리. 그러매로 불법이 흥하면 나라이 흥하고, 불법이 쇠하면 나라이 망한다 한 것이오. 가령 거진랑의 충의로 보더라도 그러한 것이오."
 
67
할 때에 아유다는 꿈에서 깬 것 같이 죽은 남편을 생각하였다. 남편이라야 진실로 짧은 인연이었다. 혼인한 지 사흘 만에 거진은 유신의 휘하로 그 아버지 비녕자를 따라서 출정한 것이었다.
 
68
왕과 문명부인의 눈도 아유다에게로 쏠렸다. 원효도 아유다를 보았다. 거진랑이나 관창랑이나 다 화랑시대에는 원효와 함께 문노의 문인이었다. 더구나 동잠성 싸움에는 원효도 거진과 함께 출정하였었다. 원효도 거진 부자의 장렬한 광경을 목격한 사람 중에 하나이었다. 거진 부자와 그 종 합절(合節)이 전사한 곡절은 이러하였다.
 
69
왕이 즉위하신 첫해 정미년 시월에 백제병이 무산, 감물, 동잠 세 성을 포위하였다. 왕은 유신을 보내어서 보병, 기병 합하여 일만 명으로 이것을 막게 하셨다. 그런데 백제병의 세력이 강하였다. 의직, 계백(階伯) 같은 명장이 있었던 것 이다.
 
70
신라군은 많은 손해를 당하고 패퇴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경우를 당하였다.
 
71
신라병은 싸울 뜻을 잃었다.
 
72
유신은 원효에게 이 국면을 타개할 만한 인물을 물었다.
 
73
원효는 비녕자를 천하였다.
 
74
유신은 비녕자를 여러 막료 있는 자리에 불러서,
 
75
"지금 일이 급하오. 그대가 아니고야 뉘 있어 좋은 계교를 내어서 군사의 마음을 격려하겠소."
 
76
하고 술을 권하였다.
 
77
비녕자는 유신의 말을 듣고 일어나 두 번 절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78
"다른 사람이 많이 있건마는 홀로 내게 이 일을 부탁하시니 나를 알아 주신 것이라 죽음으로써 이 지기의 은을 갚사오리다.
 
79
이렇게 유신에게 말하고 장영에서 물러나와 종 합절을 불러,
 
80
"내가 오늘 위로는 나라를 위하고, 아래로는 지기를 위하여 죽을 터이다. 막위(幕尉) 거진이 비록 나이 어리나 충효의 뜻이 장하니 필시 아비를 따라서 죽으려 할 것이니, 만일 부자가 다 죽으면 가족이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그러니 너는 거진으로 더불어 내 해골을 거두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 가서 늙으신 부인마마의 마음이나 위로하게 하여라."
 
81
하고 말이 끝나매 창을 비끼들고 적진으로 달려들어가 적병 수인을 죽이고 전사하였다.
 
82
이것을 보던 거진을 곧 말게 올라 적진을 향하여 달려가려 하였다.
 
83
합절이 거진의 말고삐를 붙들고 말렸다.
 
84
"화랑님, 안 되십니다. 선장군마마께서 소인께 분부하시기를 화랑님을 모시고 돌아가 노부인마마를 위로하시게 하여 드리라 하셨습니다. 아들로서 엄명을 어기고 노부인의 사랑을 저바리심이 효도라 하오리까."
 
85
하고 말고삐를 놓지 아니하였다.
 
86
거진은,
 
87
"아비 죽음을 보고도 구구히 살면 효도라 하겠느냐."
 
88
하고 칼을 빼어 합절의 팔을 끊고 적군 중으로 달려들어가 싸워 죽었다.
 
89
이것을 보고 합절은,
 
90
"두 상전이 돌아가셨으니 내 살아 무엇하랴."
 
91
하고 또한 적진으로 달려나가서 한 팔로 싸워 죽었다.
 
92
신라 군사는 이 세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감격하여서 서로 앞을 다투어 적진 중으로 달려들어가서 마침내 크게 백제군을 깨뜨리고 적병 삼천여 급을 베었다.
 
93
유신은 크게 애통하여 세 사람의 시체를 거두어 후히 장사 하고 여왕 승만마마는 이 말을 들으시매 눈물을 흘리시고 세 시체를 반지산(反知山)에 합장케 하시고 비녕자의 처자와 구족(九族)에게 큰 상을 내리시었다.
 
94
이것이 거진의 사적이다. 그러므로 원효가 거진의 말을 할 때에 왕이나 문명부인이나, 또 아유다나 다 팔 년 전 일을 회상한 것이었다.
 
95
원효는 한참이나 잠자코 있다가,
 
96
"원래 불도의 진면목은 아상, 즉 저라고 하는 것을 버리는 데 있는 것이오. 저란 무엇인가. 이 늙을 몸이요, 병들 몸이요, 죽을 몸이요, 썩어 버릴 몸이오. 이것을 아무리 비단으로 싸고 고량진미로 기르더라도 이 몸은 조만간 스러질 몸이오. 그러나 그뿐인가, 이 몸의 오욕(五慾)으로 하여서 저를 괴롭게 하고 중생을 괴롭게 하는 온갖 죄를 지어서는 무 량겁에 지옥, 아귀, 축생의 보(報)를 받는 것이오. 그러면 이 몸을 무엇에나 쓸 것인가. 임금께 충성하기에, 부모께 효도 하기에, 불쌍한 중생을 돕기에 쓸 것이란 말씀이오. 마치 기름으로 불을 켜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기에 쓰는 것과 같은 것이오. 이것이 불도요, 이것이 보살행이란 것이오. 저 한 몸의 복을 얻기 위하여서 불도를 하느냐, 그러한 불도가 있을 리가 없는 것이오.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往生)하기를 바라는 것이 만일 저 한 몸의 안락을 위하는 것이라 하면 그것은 사도(邪道)요, 불도가 아니오. 저 한 몸의 안락을 바라는 자가 돌아갈 곳이 있으니 그것은 곧 삼악도요."
 
97
여기 이르러 왕의 눈이 빛났다. 원효는 법설을 그치고,
 
98
"衆生無邊誓願度(중생이 많더라도 건지오리다) 煩惱無盡誓願斷(번뇌가 많더라도 끊으오리다) 法門無量誓願學(법문이 많더라도 배우오리다) 佛道無上誓願成(불도가 높더라도 이루오리다)."
 
99
하는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외웠다. 왕과 일동도 따라 외웠 다.
 
100
"대사의 법설을 듣잡고 참으로 미증유한 환희를 얻었소."
 
101
하고 왕은 합장하시고 다른 이들은 이마를 방바닥에 붙이도록 원효에게 감사하는 절을 하였다.
 
102
팔 년 전 승만마마가 처음 왕이 되실 때에, 원효가 승만경을 설할 때보다 원효도 노성하였거니와 왕도 노성하셨다.
 
103
왕은 아직 나이로 말하면 서른을 얼마 아니 넘으셨건마는 원채 숙성하신 데다가 오래 국왕의 자리에 계신 것이 더욱 그를 노성하시게 한 것이었다. 왕은 차를 나외어 당나라에서 온 밀전당과 같은 것을 원효에게 권하셨다.
 
104
"다들 자시오. 아유다도 먹어라."
 
105
이렇게 왕은 당신이 왕이신 것을 잠시 잊으신 듯이 일일이 권하셨다.
 
106
"이 차는 한다(漢茶)요."
 
107
왕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이때에 당나라와 사이에 해마다 사신이 내왕하고 유학생과 상고들의 왕반이 빈번하여서 당나라에 있는 것이면 없는 것이 없었다. 더구나 당나라 조정에서도 해마다 여러 가지 진품의 선물이 있었던 것이다.
 
108
차를 마시고 사람들의 기분이 적이 풀렸다. 법설을 듣기에 지극히 엄숙하였던 것이 풀려서 다시 남자는 남자로 여자는 여자로, 사람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109
"자주 대사의 가르치심을 받을 마음은 간절하나 만기(萬機) 매양 바쁘고 또 비록 대사는 스승이시오, 나는 임금이라 하더라도 남녀의 별이 있어서 꺼리는 바가 없지 아니하였소.
 
110
그러하던 차에 오늘은 웬일인지 꼭 대사를 뵈워야만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오시기를 청하였더니, 대사의 법설을 듣고 나니 사대육진(四大六塵)이 모두 청정하여지는 것 같소. 모 두 불보살님의 위신력이요, 대사의 도력이시오."
 
111
이런 말씀을 하시는 왕의 얼굴에는 여성다운 수줍음조차 있었다.
 
112
"상감마마 은덕으로 이몸들도."
 
113
하고 문명부인이 엎드려 절하고, 상감을 우러러보았다. 부인의 머리에는 히끗히끗 백발이 보였다.
 
114
원효는 눈을 내리깔고 듣기만 하고 있었다.
 
115
또 한 순차가 돌았다. 비는 더욱 내리고 바람도 불어 풍경 소리가 어지러웠다.
 
116
"어, 비바람이 대단하군."
 
117
왕이 고개를 남창 쪽으로 돌리실 때에 당나라 복색을 입은 궁녀가 상감의 뜻을 알아서 창을 열었다.
 
118
일동의 눈은 내려들이는 빗발과 그로 하여서 뽀얗게 희미 하게 보이는 남산으로 향하였다.
 
119
왕은 이윽히나 바람에 비끼는 비를 바라보고 어지러운 비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더니 빙그레 웃으시며,
 
120
"가지 끝에 지다 남은 꽃송이들도 이날 하루 비바람에 다 지고 말겠구나."
 
121
하고 한탄하셨다. 왕은 다정다감하신 시인이기도 하셨다.
 
122
왕이 당태종(唐太宗)에게 보낸 시는 당나라에서도 유명하였 다.
 
123
"그러매로 제행무상이지요."
 
124
왕의 말씀에 문명부인이 화하였다. 문명부인도 노래를 짓 고 부르고 풍류를 아는 이였다. 그 남편 춘추공이나 오라버 니 유신공이나 다 한다하는 화랑이었다. 화랑의 수양과목 중에 노래, 음악, 춤 같은 풍류도 주요한 것이었다. 오라비 나 남편이 흥에 겨워서 춤을 추려 할 때에 거문고로 장단을 맞추어 주는 것쯤은 누이나 아내의 의례히 하는 일이었다.
 
125
원효도 물론 본래는 화랑으로서 그만한 풍류는 알았다.
 
126
"선선하다. 창을 닫아라."
 
127
왕은 이렇게 명하셨다.
 
128
왕은 이상하게 몸이 오싹하고 마음이 설렘을 느꼈다.
 
129
왕은 더운 차를 한 잔 더 따르라 하여 마셨다. 그래도 속 이 떨리는 것이 가라앉지를 아니하였다.
 
130
"신기가 불편하시오니까."
 
131
문명부인이 왕께 이렇게 여쭐 만큼 왕의 안색이 변하였다.
 
132
원효가 보기에도 왕은 무슨 고통을 당하는 것 같았다. 몸 의 고통보다도 마음의 고통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 괴로워 하는 얼굴에는 더욱 여성다움이 보였다.
 
133
그 고통의 원인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엄습하여 오는 백제 군인가. 백제왕은 근년에 침면하여 놀기만 한다고 하건마는 그래도 그는 범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 밑에는 성충(成 忠), 흥수(興首) 같은 문무에 빼어난 좌평(佐平)이 있었고, 의직, 계백과 같은 명장이 있었다. 더구나 계백은 신라 군사 들의 두려움이었다.
 
134
춘추와 유신 같은 큰 기둥이 신라에 있으나 백제는 신라에 있어서는 무서운 존재였다. 한 해에도 몇 차례씩 백제군은 신라에 쳐들어왔다.
 
135
백제에 염참하러 갔던 중 도옥(道玉)의 보고에 의하면 백제 에서는 성충과 흥수가 합작하여서 굉장히 군사를 모아서 훈 련하고 또 병기를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성충과 흥수는 춘 추와 유신 비범한 인물인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세 력을 크게 이루기 전에 신라를 쳐 멸하여서 영원히 화근을 끊으려 하였다.
 
136
도옥의 보고에 의하면, 신라가 당나라와 맺어서 당병을 청 하여다가 백제를 침범하려 한 것과, 신라가 제 연호를 폐하 고 당나라 연호를 쓴 것과 왕 이하로 당나라 관복을 입게 된 것 등을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137
승만마마가 임금이 되시매 안으로는 자장율사가 모든 것을 당을 본받고 당에 의지할 것을 주장하였고, 춘추도 백제를 누르려면 다의 힘을 빌지 아니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138
왕 이년 삼월에, 즉 거진 부자가 용장하게 싸워 죽은 이듬 해에 백제군이 또 쳐들어왔다. 유신은 이것을 쳐물렸으나 백제가 반드시 더욱 큰 힘을 가지고 습격하여 올 것을 기다 리게 되었다. 그래서 춘추와 그 작은아들 문왕(文王)이 당나 라에 청병하러 갔다.
 
139
당태종은 고구려를 치다가 안시성(安市城) 싸움에 양 만춘 (楊萬春)에게 대패하여 살을 맞아 한편 눈이 애꾸가 되었으 나 그 야심은 줄지 아니하였다. 마침 신라의 종실이요, 중심 인물인 춘추가 오는 기회를 타서 먼저 신라를 제 손에 넣으 려 하였다. 그래서 춘추 부자를 우대하였다. 광록경 유 형 (光祿卿柳亨)을 십리 밖에 마주 보내어서 춘추 일행을 영접 케 하고 태종이 자기가 손수 지은 온탕(溫湯)을 대접하고, 또 금과 비단을 선사하였다.
 
140
춘추의 청병은 성공하였다. 그 대신에 춘추는 태화(太和)라 는 신라의 연호를 폐하고 당나라 연호를 쓸 것, 궁중 관복 을 당제로 고칠 것을 약속하였다. 그뿐더러 춘추는 그 아들 칠 형제를 모두 당나라에 보내어 국자감(國子監)에서 공부를 시킬 것까지 약속하였다.
 
141
이리하여 당나라 서울 장안을 떠날 때에, 당태종은 조서를 내려서 삼품(三品) 이상 관이 총출석으로 대연회를 배설하여 춘추를 전송케 하였다. 당나라 역사에도 우례 심비(優禮甚 備)라고 적을 지경이었다.
 
142
이 소문을 들은 고구려는 수군으로 하여금 춘추가 타고 돌 아오는 배를 습격하여 춘추를 잡아 죽이게 하였다. 춘추의 수원(隨員)인 온군(溫君)이 춘추의 의관을 입고 배 위에 앉 았다가 대신 잡혀 죽고 춘추는 살아 돌아왔다.
 
143
그러나 춘추의 이번 길의 성공(?)은 다만 고구려를 격분케 할 뿐 아니라, 백제도 크게 자극하였다. 백제는 일본에 가 있는 왕자 풍(豊)에게 은솔(恩率) 벼슬 가진 복신(福信)을 보 내어 천황께 신라와 당이 연합하여서 백제를 범하려 한다는 연유를 상주하여 구원을 청하게 하였다.
 
144
이런 소문 저런 소문이 모두 다 왕의 근심이 아니 될 수 없었다. 왕은 잠시 원효의 법설을 들어 모든 것을 잊으셨다 가 불현듯 나라의 위태함을 생각하셨는지 모른다.
 
145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왕의 마음을 불편케 하는 것이 있었 으니 그것은 곧 춘추의 일이다.
 
146
춘추의 세력이 점점 커질수록 왕의 위신이 떨어졌다. 춘추 는 신라의 명맥이 제 손에 달린 것으로 생각하고 근년에 와 서는 차차 왕을 누르는 기색을 보였다.
 
147
더구나 법흥왕(法興王) 때부터 써 내려오던 신라의 연호를 폐하고 당나라의 정삭(正朔)을 받는 일은 신라를 당나라의 속국을 만드는 일이어늘 춘추가 자의로 당태종과 약속을 하 였고, 또 그와 함께 당태종이 내린 면복(冕服)을 왕더러 입 으라고 강청하였다.
 
148
그때에 왕은 제신이 있는 앞에서 춘추를 향하여,
 
149
"경은 이번에 당나라에 특진(特進)이 되었다더니 이제는 내 신하가 아니고 당나라 신하냐."
 
150
하고 어성을 높이셨다 하는 말이 항간에까지 들렸다.
 
151
그러나 춘추의 세력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152
"여왕으로는 안 된다."
 
153
"춘추공이 왕이 된다."
 
154
이러한 소리가 동요 모양으로 돌아다녔다.
 
155
오늘도 낮이 넘도록 왕에게 정사를 품하는 대신도 없었다.
 
156
"신라는 기울어진다."
 
157
왕의 가슴에는 이러한 아픔이 있었다.
 
158
원효는 일어나 물러나오려 하였으나 왕은,
 
159
"대사를 다시 청해 뵈옵기도 어려우니, 좀더 나를 가르치고 가오."
 
160
하고 만류하였다.
 
161
원효도 왕에게 대하여 차마 떠날 수 없는 듯한 무엇을 느 꼈다.
 
162
왕은 술을 나외라 하였다.
 
163
"대사, 허물 마시오. 이몸이 오늘은 술이 먹고 싶으오. 술 을 먹으면 계를 깨뜨리는 것이지마는 허물만 안 지으면 상 관 없겠지. 마침 오늘은 자장대사도 안 계시니 한잔 먹읍시 다."
 
164
술이 나왔다. 물론 고기 안주는 아니 나왔다. 대추와 밤뿐 이었다.
 
165
원효도 술을 마셨다. 서너 순배 돌아가매,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풀렸다. 왕의 낯에도 발갛게 화색이 돌았다.
 
166
"아유다, 거문고를 한 가락 타라."
 
167
왕은 이러한 분부를 내리셨다.
 
168
"가얏고가 어떠하올지."
 
169
아유다가 아뢰었다.
 
170
"가얏고? 가얏고도 좋지."
 
171
하시고 노랫조로,
 
172
"열 두 줄은 열 두 달 셋째 줄이 삼월인가 삼월이라 삼짇날 꽃 날리는 비바람."
 
173
하시더니 가볍게 무릎을 치시며,
 
174
"그래 가얏고를 타라. 사다함(斯多含)이 어떨꼬?"
 
175
하시고 희고 가는 손가락으로 줄을 고르는 아유다를 보셨 다.
 
176
"사다함을 타오리다."
 
177
가얏고 줄 고르는 소리에 사람들의 마음은 지금까지 눌렸 던 무거운 감정에서 해방된 것 같았다.
 
178
"사다함"이란 가락은 화랑 사다함을 읊은 것이다.
 
179
사다함은 내물왕(奈勿王)의 칠세손이요, 급손 구리치[級飡 仇梨知]의 아들이다. 귀한 집 아들로 어려서부터 불도를 배 우고 또 화랑이 되어서 그 나이 열 일곱에 벌써 천여 명 문 도(門徒)가 있었다. 그 문도들은 다 사다함에 심복하였다.
 
180
진흥왕이 이손 이사부(伊飡異斯夫)를 명하여 가라(加羅)국을 치게 할 때에 사다함은 종군을 청하였으나 왕은 사다함이 아직 나이 어리다 하여 허락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사다함 의 청함이 더욱 간절함을 보신 왕은 마지못하여 사다함으로 귀당비장(貴幢裨將)을 삼으셨다. 이에 사다함은 문도 천여 명을 거느리고 가라 국경에 다다라, 먼저 가 있던 원수(元 帥) 이사부에게 청하여 그 군사를 얻어 선봉이 되어 가지고 전단도[ 檀梁]라는 문으로 쳐들어가서 가라국을 점령하고 말았다.
 
181
개선하여 돌아오매 왕은 사다함의 공을 크게 여겨 가라인 포로 삼백 명을 주셨으나 사다함을 이를 다 놓아주고 말았 고 땅을 주셨으나 받지 아니하다가 굳이 받으라 하시매 아 리내 냇가 불모지를 자청하여서 받았다. 그리고는 죽기로써 서로 사귀인 벗 무관랑(武官郞)이 병으로 죽으매, 곡지통하 여 칠 일 만에 따라 죽었다.
 
182
사다함이라 하는 금곡은 사다함이 제 벗이 죽은 것을 슬퍼 하여서 가얏고를 울리며 울었다 하는 것이었다.
 
183
아유다는 줄 고르기를 마치고 사다함곡을 타기 시작하였 다. 첫 줄, 둘째 줄, 셋째 줄의 웅장한 소리를 기조로 하여 서 열한째 열두째의 창자를 끊는 소리를 섞었다.
 
184
"충의 용사의 참된 우정."
 
185
그 소리는 듣는 자의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하였다.
 
186
아유다는 그 가락을 끝내고 가얏고를 무릎에서 내려놓았 다. 그리고 소매로 그 상기한 낯을 가리웠다. 눈물이 흐르는 것이었다.
 
187
'사다함은 벗을 위하여서도 죽었거든 이몸은 남편의 뒤를 못 따르고.'
 
188
아유다는 느꼈다.
 
189
"아유다."
 
190
하고 왕이 부르셨다.
 
191
"네."
 
192
"울지 마라."
 
193
"황송하옵니다."
 
194
"대사, 아유다는 돌아간 남편 거진랑을 생각하고 낙루하오.
 
195
거진랑은 사다함에 비길 사람이 아니오?"
 
196
하고 원효를 바라보았다.
 
197
"그러하오. 거진랑과 소승과는 문노 문하에서 같이 병법을 배웠소. 거진은 창을 잘 썼소. 거진랑이 감물에서 싸운 양은 참으로 용장하여 귀신을 울릴 만하였소."
 
198
원효는 아유다를 위로하는 모양으로 거진을 찬송하는 말을 하였다.
 
199
"들으니 대사께서도 그때에 용맹스럽게 싸우셨다 하오."
 
200
이것은 문명부인의 말이었다.
 
201
"무얼, 소승은 다만 친구 거진랑 부자의 시체를 안아 왔을 뿐이오. 무슨 공이 있겠소."
 
202
원효는 이렇게 말하였다.
 
203
이 말에 왕은 원효를 보시며,
 
204
"창검이 별 같고 시석(矢石)이 빗발 같은 전장에 단신으로 세 번이나 달려들어가 친구의 시체를 안아오는 것은 적병을 죽이기보다도 더욱 어려운 일이오."
 
205
하고 여러 사람의 동의를 구하는 듯이 자리를 돌아보았다.
 
206
"그러하오. 적병을 죽이는 것은 공명이나 되지마는."
 
207
문명부인이 말하였다.
 
208
원효는 거진을 안고 올 때에 거진의 몸이 아직도 부드럽고 그 눈이 아직도 빛나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창을 맞은 앞가슴에 빨갛게 피가 솟아서 군복이 젖었던 것을 생각하였 다. 원효나 거진이나 피차에 열 여덟살의 소년이었다.
 
209
여러 사람의 마음에는 반지산의 세 무덤이 생각혔다. 비녕 자와 거진과 합절의 무덤이다. 충신과 효자와 충복의 무덤 이었다.
 
210
비는 그치지 아니하고 바람도 불었다. 석양이 되매 방안은 어두워졌다.
 
211
문명부인과 다른 이들은 물러나가고, 왕은 아유다와 원효 만을 머물렸다. 심상이 원효의 뒤에 모시고 있을 뿐이었다.
 
212
"이몸이 대사께 물을 말씀이 있어서."
 
213
하고 왕이 원효를 만류한 까닭이었다.
 
214
"벼르고 벼른 오늘이오."
 
215
다른 사람들이 다 물러나간 뒤에 왕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216
"아유다는 이몸의 유일한 벗이오. 이몸이 아유다의 뜻을 알 고 아유다가 이몸의 뜻을 아오. 아유다 안 그런가?"
 
217
왕은 아유다를 향하여 빙그레 웃으셨다.
 
218
"상감마마 황송하옵니다."
 
219
아유다는 합장하였다.
 
220
"대사, 이몸이 외로운 사람이 아니오?"
 
221
왕의 음성에는 애조가 있었다.
 
222
"무슨 뜻이온지?"
 
223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224
"외롭소. 이몸은 외롭소."
 
225
왕은 당신이 왕인 것도 잊은 듯이 이렇게 한탄하셨다.
 
226
"사람은 자리가 높을수록 외로운 줄로 아오. 부처님의 자리 는 가장 외로운 자리가 아니오니까. 그러므로 고고(孤高)이 시니 외로우심이 당연하신가 하오."
 
227
원효는 이렇게 아뢰었다.
 
228
"지당한 말씀이오. 그러나 대사."
 
229
하고 왕은 잠깐 주저하다가,
 
230
"이몸이 이 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이 못 되는가. 외로와, 외로와."
 
231
왕은 한번 더 한숨을 지으셨다.
 
232
왕은 원효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원효를 바라보셨다. 그 눈에 여성의 애원하는 빛이 보였다.
 
233
원효는 왕의 뜻을 똑바로 알 수는 없었다. 왕은 왕으로서 의 외로움, 즉 나라 일을 위하여서의 외로움을 말씀하심인 지, 또 한낱 사람으로서의 외로움, 여자로서의 외로움을 말 씀하심인지 원효에게는 분명치 아니하였다.
 
234
왕으로서의 외로움도 있을 법하였다. 또 사람으로서의 외 로움도 있을 법하였다.
 
235
그러나 원효는 더 물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대답하지 아니할 수도 없었다.
 
236
원효는 자기의 대답이 이 괴로워하는 여왕에게 기쁨을 드 리고 새로운 신념을 드리기를 바라서 잠시 명목하고 부처님 을 염하였다. 옛날 세존께서 파사닉 왕 부인께 경을 설하시 던 것을 생각하였다.
 
237
'그러나 내게 그러한 법력이 있을까.'
 
238
이렇게 생각하니 원효는 적막하였다. 지금 어떤 번뇌에 끓 고 있는 젊으신 여왕을 제도할 만한 힘이 원효 자신에게는 없는 것 같았다.
 
239
원효는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의 가지(加持)를 바라면서 입을 열었다.
 
240
"상감마마, 그러한 말씀은 아니 하실 말씀인가 하오. 십선 (十善)이 구족하시와 임금으로 나시는 것은 이 나라 백성을 다스리시라 하시는 비원력(悲願力)이시라, 이 나라 백성이 먹고 마시고 사는 것이 모두 다 상감마마 복력이시니, 예서 더 큰 보살행이 어디 있사오리이까."
 
241
"이몸도, 이몸도 이 나라에 임금 될 연이 있어 임금 된 줄 은 아오마는 국보(國步)는 날로 간난(艱難)하고, 백성도 편 안할 날 없으니 모두 이 몸의 악업인 듯 생각사록 가슴이 아프오. 이몸이 한 목숨을 버려서 나라이 편안하리라 할진 댄 그것을 아낄 이몸도 아니언마는 번뇌로 뭉쳐진 이몸을 버리기로 무슨 공덕이 되겠소. 약왕보살(藥王菩薩) 모양으로 이몸을 태워 빛이 되고 향이 될 수가 있기만 하면야."
 
242
왕은 잠시 눈을 감으시고 침음하시다가 한숨을 쉬이시며,
 
243
"그러나 이몸에 가득 찬 것이 번뇌, 업장. 만일 이몸을 태 운다면 악취만 날 것이오. 그러한 몸이 임금의 자리에 있으 니 나라이 편안할 리도 없을 것 같아서."
 
244
왕은 또 말을 끊으셨다가,
 
245
"이몸이 임금다운 임금이 되리라고 퍽 애도 썼소마는 그리 아니 되오. 업장이지요."
 
246
"그렇게 매양 몸소 부족하심을 깨달으심이 거룩하신 어른 의 본색이시오."
 
247
"아니, 아니. 대사는 이몸에게 똑바로 말씀하시오. 이몸을 한 여자로 보시고 똑바로 말씀하시오."
 
248
"똑바로 아뢰온 말씀이오."
 
249
"아니, 아니. 대사의 밝으신 법안(法眼)으로 이몸의 마음속 을 아니 보실 리가 있소? 이몸의 가슴속에 무슨 번뇌가 불 타고 있는가를 모르실 리가 없소. 대사는 그것을 다 아시면 서 이몸의 업장이 미진함을 보시고 이몸을 제도하시려 아니 하시는 것이오. 반드시 그렇소."
 
250
원효는 왕의 참뜻을 안 것 같았다.
 
251
"번뇌로 말씀하오면 사람의 몸을 쓰고 있는 동안 그 몸에 붙은 번뇌가 없지 아니할 것이오. 생로병사를 면할 수 없으 니."
 
252
"덕이 높으신 보살도 번뇌가 있소?"
 
253
"이 육신을 벗기까지는."
 
254
"대사도 번뇌가 있소?"
 
255
"소승 같은 젊은 무리는 말씀할 것도 없사옵고."
 
256
"겸사지요."
 
257
하고 웃으시면서,
 
258
"그러나 대사께서 아직 중생의 번뇌가 남아 있다 하면 도 리어 반가운 일이오. 이몸과 가까운 듯해서. 대사는 이미 모 든 번뇌를 벗으셨으리라 하면 너무 높아서 무시무시하오.
 
259
대사도 아직 번뇌가 남았다면 한끝 실망도 되나, 한끝 반갑 기도 하오. 그런데 대사께서는."
 
260
왕은 주저주저하더니,
 
261
"그런데 대사는 무슨 번뇌가 아직 남았소?"
 
262
하고 원효를 본다. 아유다도 원효를 본다.
 
263
원효는 눈을 감았으나 왕과 아유다의 시선이 제게 쏠렸음 을 느꼈다. 그리고 원효는 지금 당한 처지가 심히 중대한 것을 느꼈다. 원효는 제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아까 화엄경 을 설할 때에는 법사 원효였으나 지금은 그렇게 청정한 마 음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264
제 몸이 젊고 아름다운 두 여자의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 고 있음을 깨달았다. 원효의 마음의 하늘은 결코 가을 새벽 하늘과 같이 새말간 하늘이 아니요, 봄꽃 필 때 하늘처럼 아지랑이 낀 하늘임을 깨달았다. 그 아지랑이는 서른 세 살 된 남자 원효의 번뇌였다.
 
265
"번뇌무진서원단이라 하였으니 번뇌가 다할 날이 없으나 다만 끊기를 서원할 뿐이오."
 
266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267
"그러나 이몸이 뵈옵기에는 대사의 얼굴이나 눈에나 음성 에나 번뇌가 남아 있을 곳이 없는 것만 같소. 오직 맑고, 깨 끗하고—대사의 몸에는 때 하나 먼지 하나 붙을 자리가 없는 것만 같건마는 그래도 대사에게도 번뇌가 남아 있다 하니 겸사신가. 우리와 같은 범부지에 있는 중생을 제도하시려고 일부러 중생의 번뇌를 나누심인가."
 
268
왕은 혼잣말씀 모양으로 하며 원효의 눈을 보신다. 그 눈 에는 젊은 여자다운 수줍음을 보이시면서,
 
269
"대사는 어느 때가 되면 그 번뇌를 마저 버리시려오?"
 
270
하고 엄숙한 표정을 보이신다.
 
271
"무변중생을 다 제도할 때까지는 이 번뇌도 아니 버려지리 라 하오."
 
272
"그럼 성불은?"
 
273
"중생을 다 건진 뒤에."
 
274
"그러면 영겁(永劫)에 생사해(生死海)에 출몰(出沒)하시려 하오?"
 
275
"그러하오."
 
276
"대사, 그것이 보살의 대원이시오?"
 
277
"한 사람 원효의 원이오."
 
278
"그러면 삼악도(三惡道)에도 들어가시려오? 지옥(地獄)에도, 아귀도(餓鬼道)에도?"
 
279
"그럴 일만 있으면 축생도(畜生道)에라도."
 
280
"축생보(畜生報)를 받으셔도 뉘우치지 아니하시려오?"
 
281
"비록 한 중생을 위해서라도."
 
282
"고마우셔라."
 
283
왕은 힘을 주어서 합장하신다.
 
284
자리에는 이상한 기운이 돈다.
 
285
아유다도 그 아름다운 눈으로 수줍음도 없이 원효를 정면 으로 바라보고 눈을 돌리려고도 아니하였다.
 
286
이때에 원효의 눈앞에는, 위로는 불보살의 경계로부터 삼 계육도(三界六道)가 보였다. 뱀과 여우와 개와 벌레와 유황 불 일고 기름가마 끓는 지옥과 한없는 쾌락이 있는 천상(天 上)과 아미타여래의 극락정토와 피흘리는 모든 귀신들과 인 간과, 그러나 이 모든 세계는 다 마음이 일러 놓은 것이었다.
 
287
"心如工畵師."
 
288
마음은 재주 있는 환쟁이와 같다. 그의 업은 난사의(難思 議)다. 못하는 일이 없다. 천당을 지어 놓고 그 위에서 즐기 기도 하고, 지옥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 들어가서 울기도 한다. 이 인간 세상도 제가 지어 놓고는 제가 못 벗어나서 애를 쓰고 있다.
 
289
원효는 제 마음이 또 한 세계를 짓고 있구나 하고 놀랐다.
 
290
이때에 왕은 지금까지도 합장하고 있던 손을 내리시며,
 
291
"대사, 이몸의 청을 들어주시겠소?"
 
292
하는 소리는 떨렸다.
 
293
"소승에게 무슨 청이오니까."
 
294
"앞으로 어느 세상에 가서 나시든지, 이몸도 따라가서 나게 하시겠소? 이몸이 등조왕(燈照王) 궁의 청의(靑衣)가 되게 하시겠소? 이 자리에서 무슨 말씀은 못 하리. 이몸은 칠 년 전 대사께 승만경을 들은 이래로 대사를 사모하였소. 대사 의 곁에 모시고 싶었소. 그러나 이몸은 여자요, 또 이 나라 의 임금이매 참고 참고 있었거니와, 대사는 보살의 화신이 시라 다시는 중생의 몸을 쓰실까 싶지도 아니하여 차생 내 생에 내 원은 못 달할 것으로 알고 있었소. 그러나 만일 대 사가 다시 인간에 생을 받으시면 선혜선인(善惠仙人)이 청의 녀를 이끌어 세세생생에 부부가 되듯이 이몸도 세세생생에 대사를 따르게 하여 주시오."
 
295
왕의 눈에는 불이 이는 듯하였다.
 
296
원효는 놀랐다. 왕의 말씀은 실로 대담하고도 간절한 말씀 이었다.
 
297
그러나 원효는 이 말씀을 무엇으로 대답할 바를 몰랐다.
 
298
선혜선인은 보광불(普光佛)께 공양할 청련화 다섯 송이를 얻 기 위하여서 등조왕궁의 청의녀에게 세세생생에 부부 될 것 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원효는 그러하오리다 하는 대답을 할 용기가 없었다. 용기가 없었다는 것보다는 마음이 혼란 하여짐을 어찌 할 수 없었다.
 
299
"상감마마, 마음을 진정하시겨오."
 
300
원효는 겨우 이런 대답을 하였다.
 
301
"진정하라고? 이몸더러 이몸의 마음을 진정하라고 하시오?
 
302
이몸의 맺힌 한 마음이 천겁을 간들 풀릴 줄 아시오? 이몸 의 이 원을 풀기 전에 이몸이 성불할 줄 아시오. 이몸이 스 스로 최후신(最後身)인 줄만 알고, 다시는 생사해에 들지 아 니할 줄 알았으나 두고두고 생각할사록 이몸에는 미진한 인 연이 많고 달치 못한 원이 수미산과 같소. 선혜와 청의는 삼십육반(三十六返)으로 석가세존과 아수다라부인이 되었거 니와, 이몸은 대사의 법력이 아니면 억천만반을 하여도 생 사를 벗어날 길이 없소. 이몸이 수없이 아내가 되고 어미가 되고 하기 전에는 이 미진한 인연을 끊을 수가 없는가 하 오. 대사 이몸을 불쌍히 여겨서 거두어 주시오."
 
303
왕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왕은 다시 말을 이어서,
 
304
"이몸과 저 아유다와는 지나간 칠 년 동안 대사를 바라고 살았소. 아유다가 대사를 사모함을 볼 때에 이몸은 때로 질 투를 느낀 일도 있었으나 그도 다 인연이오. 사랑도 인연, 미워함도 인연."
 
305
하고 아유다를 보았다.
 
306
아유다는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이고 들지 못하면서,
 
307
"이몸이야말로 세세생생에 상감마마의 몸종[侍婢]이 되어 서 마마를 받드오리이다. 상감마마께옵서 대사님 곁에 계시 오면 이몸은 마마 뒷그늘에 숨어 뫼시오리이다."
 
308
"상감마마."
 
309
원효는 소리를 가다듬었다.
 
310
"대사, 말씀하시오. 그리하여 주마는 허락을 하시오."
 
311
왕은 이렇게 보채셨다.
 
312
"상감마마. 모두 마음의 장난이오.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이 이야기를 끊어야 할 것같이 영겁의 윤회에 지치셨으니 고만 인연의 줄을 끊으시오. 업보수생(業報受生)하는 보살의 길을 닦으시오."
 
313
이렇게 말하고 원효는 대궐에서 물러나왔다.
 
314
궐문 밖에는 수레가 기다리고 있었으나 원효는 그것을 타 기를 사양하고 비를 맞으며 걸었다.
 
315
"시님, 비가 오는데."
 
316
심상은 원효에게 수레에 오르기를 권하였으나 원효는,
 
317
"걸어가자.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불리 면서 걸어가자. 번뇌에 달은 몸을 식히자."
 
318
하고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319
"시님의 마음에도 번뇌가 일어났습니까."
 
320
심상은 한걸음 원효의 곁으로 오면서 물었다.
 
321
"네 마음에도 번뇌가 일어났느냐."
 
322
"소동은 대궐에 있는 동안이 꿈 같아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들었는지 정신이 없소."
 
323
"비를 맞으면서 그 정신이 간 곳을 찾아라."
 
324
이렇게 문답하면서 분황사로 돌아왔다.
 
325
그런데 그 후 며칠이 못하여서 왕이 승하하셨다.
 
326
원효가 왕이 빈천(賓天)하셨다는 말을 조보(朝報)로 들을 때에 원효의 마음에는 이 모든 기억이 살아나온 것이었다.
 
327
왕은 어떠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셨을까. 모든 것이 공 (空)인 줄을 깨닫고 공중에 떴던 구름장이 슬 듯이, 불이 다 타고 재만 남듯이 돌아가셨을까. 그렇지 아니하면 왕이 그 날 말씀하신 모양으로 세세생생에 원효의 곁을 떠나지 아니 할 것을 맹세하고 돌아가셨을까.
 
328
원효는 멀거니 생각하고 있다.
 
329
원효를 보내신 왕은 한참이나 두 손으로 낯을 가리우고 울 으셨다.
 
330
"상감마마, 상감마마."
 
331
아유다는 감히 왕의 몸에 손을 대이지는 못하고 부르기만 하였다. 그러하는 아유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332
아유다는 왕을 동정하였다. 왕은 호랑이와 같은 춘추공이 나 유신공을 대하실 때에는 왕의 위엄을 잃지 아니하셨다.
 
333
"경은 이 나라의 신하냐, 당나라의 신하냐."
 
334
하고 소리를 높이실 때에는 춘추도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335
그러나 왕은 역시 여자이셨다. 아유다와 단둘이 있을 때에 는, 왕은 아내 될 사람이요, 어머니 될 사람이었다.
 
336
"아유다, 부부의 정이 어떠하더냐."
 
337
"사흘 동안에 무슨 부부의 정을 압니까."
 
338
"그래도 남편이 세상에 제일 가깝고 소중하고 그립지 아니 하더냐."
 
339
"사흘 만에 남편을 전장에 내보낼 때에는 서럽디다. 그리고 잠이 아니 오고 바람결에 나뭇잎이 굴러도 남편이 돌아오는 가 하고 귀가 솔깃하옵디다."
 
340
"그럴 게다. 이몸은 부부의 정을 몰라."
 
341
"만나는 기쁨이 없으니 떠나는 슬픔도 없지 아니하옵니까."
 
342
"떠날 때에 가슴이 터져도 좋으니 만나는 기쁨을 가지고 싶다."
 
343
왕은 이러한 말씀을 하신 뒤에,
 
344
"아유다, 너도 어미 정은 모르는구나."
 
345
하고 아유다의 손을 잡으시며,
 
346
"너는 남편이 있고 싶으냐."
 
347
하고 물으시기도 하였다. 그날 밤에 상감은 아유다가 그 숙소로 돌아가기를 허치 아니하시고,
 
348
"오늘은 내 곁에서 자거라."
 
349
하여서 자리를 가지런히 펴게 하셨다.
 
350
"황송하오."
 
351
하고 아유다는 왕명을 거역하지 아니하였다.
 
352
왕은 잠이 아니 드시는 모양이라고 아유다는 생각하였다.
 
353
왕은 수없이 돌아누으셨다. 그러할 때마다 이불 소리와 함 께 왕의 한숨이 들렸다.
 
354
아유다도 잠이 들지 아니하였다. 상감 곁에서 잔다는 것만 도 어려운 일이었으나 여러 가지로 마음이 설레었다. 더구 나 원효에게 대한 사모하는 마음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할 원이었다. 왕께서 그처럼 간절히 청하시는 말씀에도 대답을 아니한 원효가 제것이 될 리는 없다고 아유다는 생각하였 다.
 
355
왕은 내생에 원효의 곁에 있게 하여 달라고 청하셨건마는 원효는 허락지 아니하였다. 그렇다면 금생에는 더욱 가망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356
아유다는 의상대사와 선묘(善妙)의 이야기를 생각하였다.
 
357
의상이 당나라에 가는 길에 (원효도 함께 떠났으나 원효는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는 모든 것이 마음의 조작이라는 것을 깨닫고 장안에 갈 필요가 없다 하여 중도에서 본국으 로 돌아왔다) 선묘라는 여자에게 사랑을 청함을 받았으나 거절하였다. 그러나 선묘는 그 후에도 의상을 생각하고 십 년이 넘도록 의상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의상을 위하여 서 빌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 선묘는 당나라 양가 여자로 지극히 미인이라고 한다.
 
358
아유다는 자기도 선묘와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자기 는 선묘보다는 행복되다고 생각하였다. 선묘는 사랑하는 의 상과 수천리를 떠나 있건마는 아유다는 같은 서라벌에 있어 서 만나려면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359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면 아유다가 선묘보다도 불행하였 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를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기 때 문이다.
 
360
아유다는 죽은 남편 거진을 생각해야 될 몸인 줄을 잘 안 다. 그러나 아유다는 제 마음이 원효에게로 쏠리는 것을 어 찌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다만 원효의 법력에 대한 사모인 줄 알았으나 칠 년이나 그 생각을 계속하는 동안에 아유다 는 원효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361
아유다는 오늘 본 원효를 마음에 그릴 때에 피가 끓어오름 을 느끼면서 이불 소리가 아니 나도록 돌아누웠다. 제 높은 숨소리가 상감의 귀에 들리기를 두려워함이었다.
 
362
아유다는 더욱 숨이 차고 머리가 띵함을 깨달았다. 이때에,
 
363
"아유다. 자느냐."
 
364
하고 상감이 아유다 쪽으로 돌아누우셨다.
 
365
"네. 아직 안 잡니다."
 
366
"왜? 너 원효대사를 생각하고 잠을 못 이루냐."
 
367
"황송하옵니다."
 
368
"역시 그렇구나."
 
369
하시고 왕은 팔을 내어밀어서 아유다의 손을 잡으신다. 아 유다는 왕의 뜻을 알고 제 손을 들어서 왕의 손에 놓아 드 렸다. 왕의 손길은 불 같았다.
 
370
"상감마마. 손이 더우시오."
 
371
"몸이 아프다."
 
372
"전의(典醫)를 부르오리까."
 
373
"아니, 밝는 날에."
 
374
"아까 바람을 쏘이시고 춥다 하시더니."
 
375
아유다는 몸을 자리에서 일으킨다.
 
376
"별일 없겠지."
 
377
"눈이 붉으십니다."
 
378
"눈이 붉으냐."
 
379
"네."
 
380
"내가 울었다."
 
381
왕은 빙그레 웃으신다.
 
382
"왜 우셨습니까."
 
383
"아유다. 내 손을 한번 꼭 쥐어 다오."
 
384
"황송하여라."
 
385
"더 힘껏."
 
386
아유다는 꿇어앉아서 두 손으로 황송하게 왕의 손을 꼭 쥐 었다. 왕의 손은 보드라와 뼈가 없는 것 같았다. 가늘고 길 고 흰 손가락. 평생에 더러운 것을 만져 본 일 없는 손이라 고 아유다는 생각하였다.
 
387
"고맙다. 그렇게 손을 꼭 쥐어 주니 외로움이 풀리는 것 같 다."
 
388
"상감마마. 오늘은 왜 그리 비감하신 말씀을 하십니까."
 
389
"악하던 사람이 마음이 깨끗해지면 눈물이 흘러. 여자의 눈 물이 원망할 때에 많이 흐른다 하거니와 지금 내 눈물은 원 망의 눈물은 아니다. 참회의 눈물이다. 이 참회의 눈물이 마 르기 전에 내가 죽으면 악도에는 아니 빠질 것이다. 임금의 눈물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서만 흘릴 것이지마는 지금은 우리나라와 내 눈물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설사 지금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나를 위하여 울어 줄 사람이 누구냐."
 
390
"신라 백성이 모두 울지 아니하겠습니까."
 
391
"신라 백성 중에 울어 줄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내가 임금 이 된 지 팔 년에 잘한 일이 하나도 없어. 백제와 싸워서 두 번 이겼으나 백제의 후환을 끊지 못하고 고구려의 낭비 성(娘臂城)도 아직 빼앗지 못하고, 조상 적부터 내려오던 법 을 폐하고 당나라 앞에 무릎을 꿇고. 생각하면 모두 잘못한 것 뿐이다. 더구나 당나라 개국 축하로 보낸 내 태평송(太平 頌)은 후세에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것도 다 자 장(慈藏律師) 때문이지. 너의 아버지 때문이고. 아차 내가 또 남을 원망하는 생각을 하는구나. 이것이 계집의 마음이 야. 내가 임금이니 모두가 내 일이지. 왜 남을 원망하느냐.
 
392
아무리 자장이기로 또 너의 아버지기로 임금인 내가 못 한 다면 고만이었겠지. 그렇지 아니하냐. 내 말은 다만 이게다.
 
393
그 태평송 첫머리는 내가 지은 것이야. 그게야 당연하지 아 니하냐. 그 나라가 새로 생겼으니까, 그만한 덕담은 해도 괜 찮은 게지. 그렇지만 "外夷違命者. 剪覆被天殃"이라든지, "五 三成一德. 昭我皇家唐"이라든지 그런 소리야 내가 했을 리가 있느냐. "四時和玉燭. 七曜巡萬方"까지는 모르겠다마는 "外 夷違命者"니 "昭我皇家唐"이니 이게야 할 소리냐. 그때에도 내가 아직 나이가 어리고, 그래서 웃음을 천추에 남겼지. 그 런데 너의 아버지는 이제는 신라 사람인지 당나라 사람인지 모르게 되었으니 나만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너의 아 버지는 필시 내가 어서 죽기를 기다릴 것이다마는."
 
394
"상감마마."
 
395
아유다는 무엇이라고 아뢰올 바를 몰랐다.
 
396
왕은 병환이 날로 침중하셨다. 왕은 돌아가실 것을 결심하 신 듯이 전의가 드리는 약도 안 잡수시고 거의 식음을 전폐 하셨다.
 
397
왕의 곁에는 궁녀 이의에는 아유다가 모셨다. 왕은 자장에 대하여서는 분명히 불쾌한 빛을 보이셨다. 자장은 벌써 칠 십이 넘은 노승이었다.
 
398
자장은 그러나 매일 예궐하였다. 불행히 승하하시는 경우 에는 대통(大統)을 이을 이가 누구냐 하는 것이 궁중, 부중 (宮中府中)은 물론이요, 일반 민간에서도 의문이었다.
 
399
왕은 아무러한 의사표시도 없으셨다. 알천장군(閼川將軍) 일까 춘추공일까, 또는 춘추의 아들 법인일까. 이 세 사람이 가장 유력한 후보자였다. 관창랑의 아버지 품일이손(品日伊 飡)을 말하는 자도 없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언망으로나 세 력으로나 도저히 춘추와 비길 수는 없었다.
 
400
알천은 아리내라고 불렀다. 그는 훈공으로나 연배로나 당 시에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다. 그는 유신의 아버지 용수(龍 樹) 장군으로 더불어 진평왕(眞平王)의 유신으로 선덕왕 오 년에 독산성(獨山城) 싸움에 백제군을 크게 파하고, 동 칠년 칠중성(七重城) 싸움에 고구려군을 깨뜨려서 일국의 신임을 받았다. 더구나 알천은 사욕이 없고 품격이 높아서 백성들 이 그의 덕을 사모함이 컸다. 승만왕도 알천을 신임하셔서 즉위초에 그로 상대등(上大等)을 삼아서 정사를 총리하게 하 였다.
 
401
그러나 알천은 다만 덕망이 있는 명장일 뿐이요, 정치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춘추가 하는 대로 방임하였다.
 
402
왕은 상대등 알천을 침전으로 부르셨다. 알천은 백발 동안 이었다. 알천은 왕의 옆에 부복하여서 고개를 들지 못하였 다. 그처럼 그는 임금께 대한 충성이 지극하였다.
 
403
"이몸이 일지 못할 듯하오. 이몸이 이 세상을 떠날 날이 멀 지 아니한 듯하오."
 
404
왕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405
알천은 눈물이 좔좔좔 소리를 내어서 자리에 떨어지고 그 의 머리에 쓴 관이 떨렸다. 느껴우는 것이었다.
 
406
평생을 충의 일념으로 살아온 알천은 임금의 병환이 중하 시다는 말을 들은 때로부터 아침마다 목욕하고 산에 올라 선왕(仙王)님께 임금의 병환이 평복하시기를 기원하였다.
 
407
"이 늙은 목숨으로 상감마마의 수명을 대신하여지이다."
 
408
하고 빌었고, 밤에도 옷을 끄르지 아니하였다.
 
409
이제 눈앞에 왕의 병환이 침중하심을 뵙고 또 돌아가실 날 이 멀지 아니하다 하시는 말씀을 듣자오매, 알천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여 눈물을 걷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410
"상감마마, 마음을 든든히 하시겨오."
 
411
알천은 떨리는 소리로 이렇게 아뢰었다.
 
412
"아니. 이몸의 갈 날이 이르렀소. 이몸이 철없는 어린 여자 의 몸으로 임금이 된 지 팔 년 동안 큰 허물이 없이 지낸 것은 다 알천 상대등의 충의의 힘이오. 이몸이 죽은 뒤에 일은 다 알아서 하시오."
 
413
왕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알천은 무엇이라고 아뢰일 바를 몰라서 다만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414
왕은 다시 말을 이으시와,
 
415
"고구려와 백제가 다 자유나라를 엿보고 있으니 앞으로 나 라에 어려운 일이 많을 것 같소. 춘추는 당나라의 힘을 빌 어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려 하나, 이것은 외인을 불러서 형 제를 치려 함과 같으므로 이몸이 허락지 아니하였으니, 차 라리 백제와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어 서로 화친할 것을 말 하고 세 나라이 한곳에 모여서 서로 맹약함이 좋을까 하오.
 
416
행여 당병을 이땅에 끌어들이지 마오."
 
417
하시는 유칙이 계시었다.
 
418
"지당하신 분부시오. 그러하오나 상감마마 만세의 후에는 대통은 어떠하올지?"
 
419
알천은 가장 중심문제인 왕위계승에 대하여서 여쭈었다.
 
420
알천의 물음에 대하여서 왕은,
 
421
"이몸이 아들이 없으니, 딸도 없으니, 진골(眞骨) 중에 가장 덕이 높은 이를 골라 나라를 잇게 하시오. 다 알천 이손이 좋도록 알아서 하시오."
 
422
왕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왕의 희망으로는 알천에게 왕위 를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왕은 알천이 듣지 아니할 것을 알았다. 그것은 알천이 겸손하기 때문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춘추가 아무리 하여서라도 제가 왕위에 오르려 할 것이었 다. 만일 왕이 알천에게 위를 전하신다 하면 필시 피흐르는 일이 일어날 것을 왕은 짐작하셨다. 춘추는 무력을 써서라 도 왕이 되고야 말 것이었다. 왕은 이렇게 생각하시므로 알 천에게 선위하실 생각을 끊으셨다. 그 대신에 알천 이하 여 러 대신을 부르시와,
 
423
"이몸의 병이 언제 나을지 모르니, 그동안은 이손 알천으로 섭정(攝政)케 하오."
 
424
하는 분부를 내리셨다. 이것은 춘추로 하여금 알천의 말을 듣게 하려 하심이었다. 이 모양으로 왕은 정사에 대한 책임 을 벗어 버리시니, 몸이 가벼워지신 것 같았다. 그리고는 아 유다와 단둘이 계실 때가 많았다.
 
425
하루는 왕은 아유다와 이러한 담화를 하셨다.
 
426
"아유다."
 
427
"네."
 
428
"너의 아버지 언제 뵈었느냐."
 
429
"어저께도 만났습니다."
 
430
"어떠시든?"
 
431
"상감마마 어떠하시온지 늘 근심하고 있습니다. 어저께도 목욕재계하고 신궁에 들어가 상감마마 어서 병환이 나으시 게 하소서 하고 빌었다 하옵니다. 이몸의 어미는 분황사에 가서 불공을 잡수었습니다."
 
432
"분황사에?"
 
433
"네."
 
434
"너도 갔던가."
 
435
"네."
 
436
"고마와라. 원효대사도 뵈왔는가."
 
437
"네, 법당에서. 축원문을 원효대사가 읽었습니다."
 
438
"고마와라. 대사와 무슨 말씀은 없었는가."
 
439
"아무 말씀도 없었습니다. 이몸이 어미와 이몸을 보고 다만 합장할 뿐이었습니다."
 
440
"대사는 어떤 옷을 하오셨던가."
 
441
"검은 장삼에 자주 가사를 메고—."
 
442
"손에는?"
 
443
"손은 차수(叉手)하고 있었습니다."
 
444
왕은 원효의 모양을 보시는 듯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하시 고 두 손을 가슴 위에 들어 합장하셨다.
 
445
아유다는 설움이 북받침을 깨달았다.
 
446
왕은 이윽히 가만히 계시더니,
 
447
"아유다."
 
448
하시고 고개를 숙이고 앉았는 아유다를 부르셨다.
 
449
"네."
 
450
하고 아유다는 옷소매로 눈물을 씻었다.
 
451
"내가 죽은 뒤에는 네가 대사의 뒤를 돌보아 드려라."
 
452
"이몸이 무슨 힘으로."
 
453
"옷과 양식과 기름과 차와 종이와 멋과 북과 과일과, 그것 이지."
 
454
"그리하오리다."
 
455
"선지식(善知識)의 얼굴을 한번 대하는 것만 해도 큰 인연, 큰 복이라고 하지 않느냐. 하물며 큰 선지식을 공양(供養)하 는 것은 여간 큰 복이 아니다. 가난해서 공양할 물건이 없 으면 선지식이 가는 길을 쓸어만 드려도 큰 공덕이라는 거 야. 어디 그러한 인연이 저마다 있나? 옛날 선혜비구는 보 광불이 지나시는 길에 부처님 발에 진흙이 묻을까 저어하여 제 머리카락을 길에 깔아 드렸다 아니 하느냐. 세상 은혜 중에 정법(正法)을 가르쳐 주시는 스승의 은혜가 가장 크지 아니하냐."
 
456
"네. 인과경(因果經)에 그렇게 씌어 있습니다."
 
457
"그런데 너는 앞으로 오래 대사를 공양할 수 있으니 그런 복이 어디 있느냐."
 
458
"황송하옵니다. 만일 이몸이 무슨 공덕을 짓사오면 모두 상 감마마께 회향하겠습니다."
 
459
"불도에 회향하지, 중생에 회향할까. '願以此功德 普及於一 切 我等興衆生 皆共成佛道'라고 하지 않았느냐."
【원문】제행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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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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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李光洙) [저자]
 
  1942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역사소설(歷史小說) [분류]
 
  # 전기소설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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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3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