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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거장(停車場) 근처(近處) ◈
◇ 정거장 근처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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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4~10.
채만식
1
停車場近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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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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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밉광머리스럽게도 서쪽 하늘에 동동 매어달린 채 좀처럼 넘어가지 아니한다. 일꾼들은 삽질 한 번에 해 한 번씩을 바라다보고 한숨 한 번씩을 내어쉰다. 모두 지치고 시장해서 갱신도 못하게 되었다. 전 같으면 넉점차가 지나갔으니 해가 거진 졌으련만 여섯점차가 하마 오게 되었는데도 해는 댓길 높이나 남아 있다. 사람이 고따위로 빤질거리고 미운 짓을 하면 쥐어 박질러 주기라도 할 것 같다.
 
4
덕쇠는 낮에 그놈 푸달진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사발로 요기를 하기는 했지만 먹던 그 당장에도 섭섭했던 걸 지금까지 속에 남아 있을 턱이 없다. 그는 삽으로 푹푹 푸는 ‘감’이 밥으로도 보이고 떡으로도 보이게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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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한 이십 칸이나 떨어진 저편의 다른 광구에서 왁자지껄하기에 보니까 일꾼들이 보리개떡 장수하는 여편네를 쫑애를 곯린다. 모두 제가끔 넓적한 보리개떡 하나씩을 물고 돌아서고 떡장수 여편네는 이 사람한테 돈을 받을라 저 사람이 집어가는 것을 붙잡을라 정신이 없다. 하다못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일꾼들은 좋다고 히히덕거리며 개중에는 그 앞에 서서 오줌을 누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매일 몇 번씩 생기는 구경거리요 그런 것만이 지쳐서 말할 기운도 없이 일만 하고 있는 이 사람들을 웃게 하는 유일한 흥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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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보리개떡 장수가 이리로 오기만 하면 덮어놓고 두어 개 집어먹은 뒤에 배(腹[복])로 셈을 하려고 우두커니 서서 침을 삼키는데 바지게꾼이 바지게를 들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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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삽질을 하려고 몸을 돌리려다가 보니까 한옆에서 방금 삽질을 하던 일꾼이 어느결에 그랬는지 서넛이나 모여 머리를 한데 처박고 수군수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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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정신이 번쩍 나는 것같이 삽질이고 무엇이고 잊어버리고 그리로 뛰어가서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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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단박 눈이 휘둥그래졌다. 말만 들었지 처음 보는 ‘노다지’라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빛깔이 누르스름하고 좀 번쩍거려서 그렇지 하릴 없이 납을 녹인 찌꺼기가 손 납똥 같다. 그런 놈이 한 개가 아니고 엄지손 구부렁이만한 놈과 또 그보다 조금 작은 놈이 두 개 이렇게 세 갠데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가느다란 잘록이로 세 개가 위태롭게 한데 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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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그놈을 손바닥에 얹어놓고 촐싹촐싹 중수를 가늠해본다. 그옆으로 키다리 하나가 붙어서서 남들이 자꾸만 모여드니까 이맛살을 찌푸리고 저편 ‘물목’께를 힐끔힐끔 돌려다본다. 노다지를 얻어낸 게 이키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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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꾼들도 벌써 눈치를 채고 삽질하던 사람 짐질하던 사람 할것없이 너도 나도 꾸역꾸역 모여들여 고개를 처박고 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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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냥 중수는 실히 되겄는걸? 석 냥쭝이면 삼백 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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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를 꼬느던 사람이 뉘게라 없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덕쇠는 한 걸음 더 그 앞으로 다가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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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노다진가? 이리 주어 귀경 좀 허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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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커다란 손바닥을 불쑥 들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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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볼 것 있다구 이런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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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가 짜증을 내어 덕쇠더러 지천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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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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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저도 손을 들이민다. 노다지를 가지고 보던 사람은, 자 다른 사람더러도 구경을 하라고 떼어주자니 키다리가 지랄을 할 것이고, 그렇다고 인제는 임자인 키다리한테 도로 건네주어 버리자니 어쩐지 아까와서 짐짓 손바닥만 촐싹거리고 있다. 일꾼들은 벌써 십여 명이나 모여 빙 둘러서서 노다지에 눈독을 들이고 키다리는 초조해서 기를 쓰고 납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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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저리 가서 일이나 않구 무엇 볼 것 있다구 그렇게 우허니 모여든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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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의 이 말을 받아 덕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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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제헐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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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악스럽게 소리를 지르면서 노다지를 툭 잡아채어다가 제 손바닥에 움켜쥔다. 그 서슬에 겨우 서로 잇기었던 노다지는 세 덩이로 따로 따로 떨어져버린 것도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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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경 좀 허먼 그놈의 것이 달어 없어지간디 그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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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일변 주먹을 펴고 노다지를 들여다보면서 일변 키다리더러 지천을 한다. 키다리는 성을 버럭 내어 싸울 듯이 덕쇠의 팔을 후려 쥐고 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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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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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를 챌 테니께 그러지! 잔말 말구 이리 주어. 괜시리 살인날 테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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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짝같이 혼자 먹기는 다 틀렸네. 얽어배기(곰보 최덕대)가 발서 눈치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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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등 뒤에서 이렇게 빈정거린다. 덕쇠는 그 말에 키다리가 잠깐 저편 ‘물목’ 께를 돌려다보느라고 고개를 돌리는 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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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이놈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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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더니 노다지를 제 입에다가 쥐어 넣고 금시로 불룩해진 볼때기를 우물우물하면서 이어 삼키느라고 끼룩끼룩 목을 길게 잡아뺀다. 눈 깜짝할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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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뜻밖의 일이라, 키다리는 잠시 멍하니 서서 있고 그동안에 덕쇠는 연신 목을 잡아늘여 대가리를 내두르면서 두 번에 두 개 삼켜버렸다. 그때야 기다리가 두 팔을 벌려 덕쇠의 모가지를 후려잡고 내동댕이를 친다. 덕쇠는 힘을 못쓰고 쓰러지고 그 위에 가 키다리가 깔고 엎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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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사람은 허허 하고 웃고 몇 사람은 키다리와 같이 들이 덤벼 수십 개의 손가락이 덕쇠의 입을 잡아 찢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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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목구멍을 할퀴기는 했어도 두 개는 이미 뿌듯이 넘어갔으니까 반쯤 죽더라도 지금 입 안에 남아 있는 놈을 마저 삼켜버리려고 애를 쓴다. 손가락이 어쩌다가 입안으로 들어오면 사정없이 질근질근 물어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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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손가락은 드리없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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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오래 가지 아니했다. 곰보 최덕대가 쫓아왔던 것이다. 덕쇠는 사람들이 갑자기 저를 놓아주는 바람에 부스스 일어서다가 바로 눈앞에 달려든 곰보 최덕대의 얽은 얼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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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찔끔해서 아직도 못 삼키고 입속에 있는 한 덩이를 마저 삼키려고 다시 목을 끼룩거리니까 벼락불이 나게 따귀가 올라붙는다. 그 서슬에 금덩이는 덕쇠의 입에서 쏟아져 흙바닥에 떨어진다. 그놈은 원체 굵어서 사람의 목구멍으로는 넘어갈 수가 없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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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 최덕대가 침과 피와 흙이 묻은 금덩이를 집어들면서 덕쇠한테로 눈을 흘기니까 키다리가 옆에 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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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식이 두 개는 생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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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방금 잡아먹고 싶은 듯이 덕쇠를 쏘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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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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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 최덕대가 입을 벌리면서 한걸음 덕쇠 앞으로 다가선다. 덕쇠는 안심하고 입을 벌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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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 최덕대는 덕쇠의 입안을 들여다보다가 한번 더 따귀를 올려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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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헐 자식! 도둑놈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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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발길을 들먹들먹한다. 덕쇠는 별로 무렴해하지도 않고 매만 더 맞지 아니하려고 몸을 모로 조촘조촘 물러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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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는 더 때리지는 아니하고 ‘물목’에 있는 제 손대를 불러 덕쇠를 제가 묵고 있는 주막으로 안동해서 보냈다.
 
 
47
밤이 이슥했다. 덕쇠는 곰보 최덕대와 전가라는 그의 손대한테 붙잡혀 앉아 피마자기름을 한번에 한 보시기씩 세 번이나 먹고 뱃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는 있는 대로 다 설해 버린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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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지와 전신의 기운이 마치 피마자기름으로 해서 밑으로 다 빠져나간 것처럼 다 빠지고 퍼져 쓰러졌다. 그래도 종시 금덩이는 나오지 아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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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에 피마자기름을 먹으라고 할 때에 덕쇠는 그 덩이가 나올까봐서 먹지 아니하려고 했다. 그러나 순사청(駐在所[주재소])으로 보낸다고 엄포를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먹었었다. 먹고 나서는 설하는 것을 참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것도 참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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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가 설한 것은 그 소용으로 저녁 때 불러다 둔 일꾼 두 사람을 시켜 냇물에다가 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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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몇 번 그 짓을 해도 금은 나오지를 아니했다. 마지막 네 번째 피마자 기름을 먹이려고 할 때에는 덕쇠는 개개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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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차라리 배를 갈르구 금덩이를 끄내가시유 예?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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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는 소리를 했다. 그는 인제는 더 견딜 수가 없이 기운이 지치고 피마자 기름에 진절머리가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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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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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 최덕대는 얽은 얼굴을 심술궂게 싱긋 웃으면서 얼러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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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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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마주기름은 멕여두 나올 택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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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곰보 최덕대의 손대 전가가 졸립게 하품을 하면서 그런 말을 두런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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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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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목에서 금을 씻으면 금이 흘러내려가잖구 우에 가 처져 있는 걸 보시지요? 그 이치가 일반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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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긴 그래! 그럼 저 녀석을 정말 배를 따야 허게?”
 
62
곰보 최덕대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하품을 씹어 뱉으면서 덕쇠를 내려다 본다. 그는 인제는 열증이 나서 이 곰 같은 인간을 더 붙잡고 이러니 저러니 할 맥이 나지 아니했다.
 
63
그는 금덩이가 유문(幽門)에 걸리어 나오지 아니하는 줄은 몰라도 아무튼 ‘물목’의 이치로 해서든지 어찌해서든지 영 나오지 아니할 줄을 알았다.
 
64
그러니 그렇다고 제 말대로 차마 배를 따는 수는 없다. 금덩이라야 모르면 몰라도 기껏해서 일백오십 원어치 아니면 이백원어칠 것이다. 실상인즉 지금 세월 좋은 판에 이백 원쯤 그저 모르고 도적 맞은 셈만 잡아도 그다지 아플 데가 없다.
 
65
물론 처음이야 괄괄한 성미에 소당머리가 미워서라도 기어코 찾아내려고 서둘렀다. 그러느라고 초저녁부터 피마자기름을 구해다가 먹이네 어쩌네 하여 이 거조를 하기는 한 것이다.
 
66
그러나 금은 종시 나올 싹이 보이지 아니하는데, 그만하고 나니까 성은 그렁저렁 다 풀려버렸겠다 해서 짐짓 마음을 돌려버렸다. 이것은 그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소위 금점판의 큰 덕대들의 도량이다.
 
67
곰보는 네 번째 피마자기름을 먹이려고 하는 전가를 눈짓으로 제지하고 퍼져 누워 눈만 끄먹끄먹하는 덕쇠의 옆구리를 발길로 툭 걷어차면서 욕을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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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져 ! 쌍통 보기 싫다, 망헐 자식……”
 
69
이 말에 덕쇠는 정신이 번쩍 들어 없는 기운을 다해서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말은 못하고 뻔하니 곰보 덕대만 올려다본다.
 
70
“없어지라니까 왜 이러구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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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유? 놓아주세요?”
 
72
“누가 널더러 거짓말헐까 바서? 그럼 배를 따주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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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움칫하고 배를 움켜쥐었다.
 
74
“법만 아니면 배를 따겠다만 내가 너 같은 걸 배를 따구 시비를 듣겠니? 꼴 보기 싫다, 어여 없어져라 빨리빨리.”
 
75
곰보 최덕대는 발끝으로 덕쇠의 옆구리를 지분지분한다. 덕쇠는 고맙다고 인사나 하려다가 너무 급하게 몰아세우니까 그냥 설설 기어서 방문을 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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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 최덕대는 덕쇠의 등 뒤에다가 대고 농담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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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의 자식 한 십 년 밥을 안 처먹어두 배지가 고프지는 않겠다.”
 
78
고 욕을 한다.
 
79
덕쇠는 놓여나와 혼자 어두운 길로 나섰을 때에는 기운이 지쳐 허든거리기는 했어도 그런 것은 조금도 괴롭지 아니하고 그저 지금 제 뱃속에 이백 원어치나 되는 금덩이가 들어 있다는 것만이 기쁘고 마음 든든했다. 그는 서편으로 기울려고 하는 초열흘의 조각 넘은 달을 바라다보고 혼자웃었다.
 
80
언제든지 이 금이 나오기는 나오려니…… 나오는 날이면 이쁜이를 무를 밑천만 남기고 나머지로는 장사를 하려니…… 이런 궁리를 하면서 그는 홀쭉하게 등에 달라붙은 배를 몇 번이고 만져보았다.
【원문】정거장 근처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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