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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창어(病窓語) ◈
◇ 여름 밤 달 ◇
카탈로그   목차 (총 : 17권)     처음◀ 1권 다음
1928.10.5~
이광수
1
病窓語[병창어]
 
2
여름 밤 달
 
 
3
달은 가을에만 볼 것이 아니다. 秋天一夜靜無雲[추천일야정무운]하고 斷續鴻聲[단속홍성]이 到曉聞[도효문]할 때 半空[반공]에 덩두렷하게 걸린 秋月[추월]이 무론 좋지마는 여름 밤 茂盛[무성]한 풀잎에 구슬 같은 이슬이 풍풍 내릴 때에, 或[혹]은 논밭 사이로 或[혹]은 냇가에 풀숲으로 거닐면서 바라보는 달이 決[결]코 어느 달만 못지 아니하다.
 
4
온終日[종일] 지글지글 끓이던 더위도 거의 식고 후끈후끈 단 김 섞인 바람이 차차 서늘한 기운을 띠게 될 때면 벽에 걸린 늙은 時計[시계]가 땅땅 열 점을 친다. 자는 것도 아니요, 안 자는 것도 아니요, 마치 終日[종일] 뙤약볕에 시달린 벌판의 풀잎 모양으로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웠다가 時計[시계]소리에 놀라는 듯이 번쩍 눈을 뜨면 활짝 열어 놓은 東窓[동창]으로부터 靑蓮華[청련화] 피게 한다는 淸凉[청량]의 月光[월광]이 흘러 들어와 내 모기장을 비추고 내 病[병]든 몸을 비추고 그리고도 남아서 넘쳐진 물 모양으로 장지를 지나서 마루의 때묻은 창널까지 黃金色[황금색]으로 물들여 준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하염없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일어나려고도 아니하고 돌아 누우려고도 아니하고, 그렇다고 자려고도 아니하건마는, 가슴 속에서는 마치 달 밝은 산 골짝에 피는 흰 안개 모양으로 부드러운 悲哀[비애]의 안개가 피어 오른다. 비록 오래 病[병]들어 누운 몸이언마는 두 팔을 벌려 무엇을 껴안고 싶은 듯하는 淡淡[담담]한 憧憬[동경]이 불그레한 안개로 피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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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은 東窓[동창]을 가진 房[방]에는 다 들었으려니 하면 우리의 想像[상상]은 오래 개켜 넣었던 다 낡아빠진 想像[상상]이 날개를 떨쳐 입고 하늘에 찬 月光[월광]을 타고 모든 東窓[동창] 있는 집을 찾아 돌아간다. 여름인지라 東窓[동창]은 다 열렸으니 나를 막을 이도 없을 것이요, 사람들은 다 나와 같은 幻想[환상]과 憧憬[동경]을 가졌을진댄 기쁘게 나를 맞을 것이다. 모든 東窓[동창] 가진 집이 다 내 임의 집이 아니냐. 그러다가 모르게 잠이 든다. 얼마나 잤는고? 번쩍 눈을 뜨면 달은 西窓[서창]으로 들어 내 머리와 가슴을 비춘다. 그 煩惱[번뇌]로 찬 머리와 가슴을!
 
6
자다가 깨어서 내 몸이 달빛 속에 잠겨 있는 것을 볼 때, 고개를 들어 내 모양을 달빛에 비추어 무슨 哀愁[애수], 憧憬[동경]을 하고 있는 나무들과 집들을 볼 때에 우리는 초저녁 달을 대할 때보다 한層[층] 더 夢幻境[몽환경]에 있는 듯한 感[감]을 받는다. 다시 잠이 들려고 눈을 감으니 그리 興奮[흥분]되는 것도 아니언마는 잠은 들 수 없고 한숨만 지어진다. 人生[인생]의 無常[무상]이 애닲기도 하고 또 自然[자연]의 美[미]와 人生[인생]의 行樂[행락]이 대견키도 하다.
 
7
無端[무단]한 생각을 抑制[억제]할 수 없어서 벌떡 일어나 後園[후원]에 나서면 이슬을 흠뻑 받은 풀잎이 내 발과 다리를 스친다. 草木[초목]은 밤 새도록 月光[월광]을 품고 품겨 愉悅[유열]과 疲困[피곤]의 땀에 젖은 듯하다. 새벽 가까운 하늘에 반짝반짝하는 별들의 눈은 그것을 샘함인가 유난히 빛나다. 北斗星[북두성]은 北漢[북한] 바로 가로 누웠고 이 모든 愉悅[유열]과 煩惱[번뇌]의 主人公[주인공]인 달은 약간 해쓱한 얼굴로 昌慶苑[창경원] 숲 위에 걸렸다. 풀밑 벌레들은 밤이 새고 달이 가는 것을 아끼는 듯이 더 소리를 높여서 부른다. 그 부르는 소리는 마디마디 無常[무상]과 行樂[행락]의 후렴이다.
 
8
그들은 밤을 새워 男性[남성]을 부른다. 愛慾[애욕]의 煩惱[번뇌]다. 소리를 내는 것이 숫놈이라 하니, 아마 암놈들은 귀를 개웃개웃 가장 기운차고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 풀잎 사이로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혀둥지둥할 것이다. 이리하여 愛慾[애욕]은 連綿[연면]히 繼續[계속]된다. 쥐를 엿보는 노란 點[점]박이 고양이가 담을 넘어 아슬랑아슬랑 나를 핼끗핼끗 보며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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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어떤 날의 밤 달이여!
 
 
10
(一九二八年十月五日[일구이팔년시월오일]《東亞日報[동아일보]》 所載[소재])
【원문】여름 밤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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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李光洙)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28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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