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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비장(裵裨將) ◈
◇ 배비장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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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채만식
1
裵裨將[배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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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평명이 되자 때마침 서풍이 나직이 일었다. 기다리던 순풍인지라 목사 일행은 시각을 지체 않고 즉시 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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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목사가 타고 도임 가는 배니, 배 치장도 홀란하거니와 크기 또한 집채 더미같이 커 해남 넓은 관두를 누르는 듯 그들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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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 앞 나루터의 버들잎 같은 나룻배, 그 앞으로 연락 부절 오르내리는 나막신짝 같은 짐배, 이런 잗다란 배만 보아 오던 배비장은 세상에 이다지도 큰 배가 있다는 것이 우선 놀라왔고, 말을 십여 필을 실었고 짐을 백 짐인지 이백 짐인지 수없이 져다 부리고 하는 모양이나, 그것이 모두 어는 구석에 가 끼여 묻히는지 자리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만큼이나 큰 배일진대, 비록 바다가 넓고 풍랑이 사납다 하더라도, 혹은 염려스럴 것이 없으련 싶은 안심이 일변 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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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어느덧 높이 단 돛에 돛마다 볼룩볼룩히 바람을 받아, 크고 작은 섬과 섬 사이를 이리저리 비키며 바다 밖으로 달리고 있다. 배 떠날무렵의 여러 가지 뒤섞여 소란턴 훤화도 이윽고 가라앉고, 달리는 소리, 돛을 회롱하는 바람소리, 간간이 외치는 도사공의 이상한 외마디 소리만 시끄럽지 않게 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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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종시 순하고 물결 잔잔하여 배는 심심치 않을 만큼 점잖이 흔들인다. 갈매기가 커다랗게 춤을 추며 돛대를 스칠 듯 따라 난다. 하늘은 바다와 한빛으로 푸르고 청명하다. 겸하여 때가 이월 초승이요, 지경이 남방이라 한양의 삼월인 듯 기후는 화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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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이 생각하던 바와는 달라 편하고 정히 흥겨운 뱃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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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흥겨운 뱃길을 술 없이 지나기는 심히 무류할 노릇, 목사는 배하일행을 위로할 겸 자기도 즐길 겸 한 자리의 주연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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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병 둘러치고 넌줄비단 모란석에 장침안석 사방침 갖추어 벌려논 자리에서 통인이 시립한 상좌로 목사가 앉고, 여러 비장은 그 아래로 이편 저편 나뉘어 뫼셔 앉고, 신연 이방 이하는 말석에 끓어앉고, 이렇게 상하가 좌석을 같이 하고 주연은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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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한순 돌고 두수 세순 돎을 따라 엄숙한 가운데 시작된 주연도 차차로 상하의 어려움이 가시고 자리는 화기애애히 어울려갔다. 목사 김경이 본시 공사를 엄히 구별하여 사석에서 놀 때는 상하 노소의 현격에 개의치 않고, 더불어 숭허물 없이 놀며 즐기는 호협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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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거나히 취한 위에 이는 시흥을 이기지 못하던 목사는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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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이 도수중(靑天倒水中)하니 어유 백운간(漁游白雲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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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하고 즉흥의 일구를 소리 높여 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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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비장들이 다투어 그 시구를 받아 읊으면서 추앙의 말이 끊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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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기쁘고 흥겨운 얼굴이다. 험하고 먼 뱃길을 불안하여 하는 기색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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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손수 잔을 들어 여러 비장이며 신연 이방에게 권한다. 그러고는 도사공을 불러들여 또한 손수 술을 쳐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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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공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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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공은 어쩔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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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워할 것이 없느니라. 그 잔을 마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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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 허오나 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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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귀천이 있느냐! 사양 말고 마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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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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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공은 몸을 돌리고 겨우 잔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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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이 이대지 편안하니 내가 마음이 매우 기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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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목사는 거듭 도사공의 잔에다 술을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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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 사또안전 덕이 높으신 소치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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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덕이겠지! …… 그래 이대로 가면 어느때쯤 조천(朝天)에 당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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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 풍세가 이대로 순하오면 오늘 저물기 전에 넉넉 당도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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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각별히 수하를 신칙해서 오늘 해전에 당도하도록 하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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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 하늘이 하시는 노릇이야 감이 어찌 하오리까마는, 수하의 신칙은 조곰도 한만이 업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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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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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그러이 여기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세번째 잔을 채워 주면서 “아뭏든지 지금 예정대로 오늘 해전에 당도를 하면 중히 상을 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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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 삼가 영을 거행하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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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악 이러고 도상공이 물러나가려 할 때다. 배비장이 뱃길은 이렇듯 무사하여 안심은 되고, 흥은 나고, 그런데 겸쳐서 많이 하지 못하는 주량에 술이 벌써 과했던지, 마침 장막 밖에서 얼씬거리는 방자 차돌이를 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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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 차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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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좌우가 깜짝 놀라도록 큰 소리로 기강 있어 불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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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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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 차돌이는 대답 소리만은 그럴 듯 공순해도 장막 너머로 갖다 대는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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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이가 왜 저럴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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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듯이 빈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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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놈, 날더러 어제 한 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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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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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 조빡없는 물 먹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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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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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이다지 편한 뱃길을 무어? 풍랑이 어쩌고 어째? 송장이 쪼빡으로 물 먹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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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아따 그런 게 아니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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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내, 어제 저놈한테 속았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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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비장은 방자는 고만해두고 동료들을 돌아보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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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이 생판 날 위협을 한단 말야. 꼬리 큰 물짐승이 있어가지구 작희를 노면, 산더미 같은 풍랑을 만나서, 무어 서천 서역국도 가고, 운수가 사나우면 쪼빡없는 물도 먹고 하느니라고…… 허허허허, 그놈참!……”
 
51
그러는데 목사 옆을 물러나가던 도사공이 질색을 하면서 쫓아와 배비장의 입이라도 틀어막을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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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제발, 어쩌자구 이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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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발을 동동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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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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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비장은 영문을 몰라 뻐언하고 도사공을 돌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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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소령개울이나 방축못에도 지킴신령이 있는 법이온데, 이 대해를 건느시면서 망년의 말씀도 분수가 있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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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나는 또 무슨 소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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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비장은 종시 희떱고 기장 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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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 없다! 그런 사위스런 소리랑 아야 내지도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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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도리어 도사공을 나무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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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말이 채 마치지 못하여, 움칫하고 배가 기우뚱거린다. 그러면서 순치 못한 바람이 돛폭을 함부로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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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는 물결이 흰 거품을 뿜으면서 차차로 높아간다. 하늘은 어느 겨를에 반 넘겨 검은 구름이 가득히 덮여가지고 뭉게뭉게 급히 퍼져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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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란 듯이 풍랑을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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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각에 사나운 비바람과 성난 파도에 휘몰려 배는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조리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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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더미 같은 물너울이 배를 삼키려고 사정없이 달려든다. 그 하나가 지나고 나면 뒤미처 또 하나가 달려들고, 또 달려들고……
 
66
바름은 살같이 급하고 우뢰같이 극성스럽다. 미구하여 돛폭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만다. 우지끈하더니 상돛대가 부러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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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을 둘러보아야 겹겹한 큰 물결이요 검은 하늘뿐이다. 이 가운데서 배는 나뭇잎처럼 나부끼며 지향없이 떠나간다. 도사공이 호올로 한사코 키를 부여잡고 방향을 정하려 드나 억센 물결과 바람을 막아 낼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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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에서는 주연이 그대로 수라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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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하나만은 그래도 삼군을 거느려 진중을 달린 적도 있는 인물이라 태연히 앉아서 버티나 뭇 비장들은 생후에 배가 처음이요, 풍랑은 더욱 이름조차 모르는 서방님네가 되어놔서 배멀미로 몸을 지탱치 못하고 이리 딩굴 저리 딩굴 오욕 소리만 연달아 일어난다.
 
70
그런 중에도 어떤 비장 하나는 남 원망할 경황은 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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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이, 원수!”
 
72
하고 옆에서 같이 딩구는 배비장을 핀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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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말을 좀 참지 못하드람!”
 
74
“낸들 일이 이리 될 줄이야 알았나! 귀신의 작희란다면 그 말쯤 노여서 이 거조를 내는 귀신이 야속하지!”
 
75
“일은 저질러놓고 귀신 탓은 어인 귀신 탓일꼬!”
 
76
“탓이야 뉘 탓이 되었든 너나없이 꼭 죽었나보다! 그놈 방자놈 말따나 조빡없는 물 먹기가 십상이요, 운수 좋아야 서천 서역국 구경이요……”
 
77
“에구 원통한지고!”
 
78
저만치서 딩굴려 오던 또 한 비장이 이렇게 탄식을 한다.
 
79
“부모 처자를 집에 두고 이 바다에서 이 주검을 하다니!”
 
80
“말도 마오! 나는 삼대 독자에 나이 삼십이건만 아직껏 아무 소생도 없으니 나 죽는 것도 원통하지만 문중에 절손될 일이 더 기가 막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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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배비장을 핀잔하던 비장이 대껄을 하던 것이다.
 
82
그럴 때에 목사가 옆에서 죽어가는 통인 가운데 좀 더얼해 보이는 한 놈을 돌아보면서
 
83
“네 나가서 도사공 불러들여라.”
 
84
하고 분부한다.
 
85
이윽고 들어오는 도사공은 그역 사색이 말이 아니다.
 
86
“너는 물에 익숙한 사람이요, 항차 도사공이 저러니 그 어디 쓰겠느냐?”
 
87
목사는 우선 이렇게 도사공을 나무란다.
 
88
“니이! 소인들만이오면야 설혹 죽은들 어떠오리까마는 지중하신 사또 안전 이하 여러 관원네를 뫼신 길에 이 일을 당코 보오니 망지소지 하옵니다!”
 
89
“이런 풍랑이 종종 있느냐?”
 
90
“몇해에 한번도 드문 일이옵니다!”
 
91
“이 배가 지금 향은 제주도로 틀림없이 가고 있느냐?”
 
92
“그려려니는 하옵니다마는 정히 이렇고서는……”
 
93
“으음……”
 
94
목사는 잠시 침울하더니
 
95
“아마 남해의 용왕께서 제향을 청하시나 보니 급히 고사를 드릴 테즉 제물을 분별하도록 해라!”
 
96
“니이!”
 
97
도사공은 듣고 물러나간다.
 
98
풍랑은 더욱더 심하여 간다.
【원문】배비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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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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