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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비장(裵裨將) ◈
◇ 배비장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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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채만식
1
裵裨將[배비장]
2
4
 
 
3
세월이 살같이 흘러 신관이 도임한 지도 그럭저럭 수삭이 되었다.
 
4
김목사의 백성 다스림은 심히 밝고 어질어 도내 일판에는 태평의 기운이 가득하였다.
 
5
백성들은 격양가를 부르며 편안히 그 생업을 즐기었다. 인심은 순량하여, 그야말로 길에 흘린 것을 줍는 자 없고, 밤에 문을 잠그지 아니하되 도적이 없었다. 정히 ‘관무사 촌무사(官無事村無事)’의 지경이었다.
 
6
정사가 밝아 백성이 편안하매, 목사 자연 한가한 날이 많았다.
 
7
그러한 하루날, 조사를 파한 후 목사가 배비장을 조용히 불렀다.]
 
8
그동안 배비장은 마음에 명심하였던 바를 잘 지켰었다. 술마시기를 삼가하였다. 술을 마시자면 거기에 기집이 딸리니 자연간 마음이 허랑하게 될까 저어함이었었다.
 
9
그러자니, 공사로운 자리이고 혹은 동료들이 사사로 베푸는 자리이고 되도록이면 주연(酒宴)에 나아가기를 피하며, 적적한 대로 역관에서 시서와 벗하여 지내왔었다.
 
10
배비장이 이렇듯 술과 여색을 삼가고 늘 무료히 지낸다는 말이 이윽고는 목사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었다.
 
11
목사는 그것이 일변 가상하기도 하였으나, 또 한편으로는 남아가 너무 고루하게 처신을 한다 하여 딱한 생각도 없지 못하였다.
 
12
“그래, 객회가 어떠한가?”
 
13
목사는 우선 이렇게 배비장을 불러 앉히고 위로삼아 묻는 것이었었다.
 
14
“객회 여부가 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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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댁 문안은 종종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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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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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가 피하면, 이내 역관으로 돌아가서 서서와 벗삼고 늘 적적히 지난다고?”
 
18
“………”
 
19
“종종 더러 동료들과 섭쓸려서 술잔 머고 활달히 노는 게 아니라!……”
 
20
“………”
 
21
“사람이 그 길에 너무 참혹하다 방탕에 빠지는 것도 불가하지만, 너무 또 조심만 하려 드는 것도 장부답지가 못한 일이어든!”
 
22
“………”
 
23
“내가 아는 바, 자네가 노상 술잔을 질겨하지 않든 사람이 아니기로 말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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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제주까지 왔을 바에는 사람이 좀 방날을 해서 파겁이 되어야지? 그대지 졸해가지고야 평생 어디 발천할 길이 트이나……”
 
26
“네에!”
 
27
대답은 하였어도, 이날 밤 목사가 배비장을 위하여 베푼 주석에 배비장은 칭병을 하고서 역시 나오지 아니하였다.
 
28
그러한 지 이삼 일이 지난 어느 날……
 
29
배비장은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무료히 앉아, 그 무료함을 견디다 못해 『사기(史記)』를 읽고 있었다.
 
30
그러자 마침, 방자 차돌이놈이 너펄거리고 오더니, 이놈이 밑도 끝도 없이
 
31
“허! 그런 고현 년들! 그년들을 당장 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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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분해하는 것이었었다.
 
33
“건 무슨 소리란 말이냐?”
 
34
“아, 다름이 아니오라…… 온 그런 발칙스런 기집들이 어딨사와요?”
 
35
“누가 누구를 어쨌기에 그런단 말이냐?”
 
36
“수청기생들 말씀인뎁쇼!……”
 
37
“그래서?”
 
38
“지나믄서 듣자니, 즈이들끼리 무얼 우김질을 허구 있사와요!”
 
39
“그래서?”
 
40
“한패는 우기기를, 수염 있는 내시가 있다커니, 또 한패는 수염 있는 내시는 천하를 다아 돌아다녀두 없는 법이라커니…… 흐흐흐!”
 
41
“무엇이 어째?”
 
42
“흐흐흐!……”
 
43
“으응?”
 
44
“게, 누굴 가지구 그러는 고 했더니, 흐흐흐!”
 
45
“예끼놈! ……”
 
46
배비장은 비로소 알아듣고는 얼굴이 화끈 달았다. 미상불 창피한 노릇이었다.
 
47
“소인이, 그래서, 년들을 당장 주동아릴 찢어놀려다 겨우 참구 만 걸입쇼!”
 
48
“듣기 싫다, 이놈!”
 
49
“거 좀, 약주두 잡숫구, 외입두 허시구 하셨으면 그런 창피한 소문이 나겠사와요?”
 
50
“허어, 그놈이!”
 
51
“흐흐흐!…… 건데 참, 나립쇼?”
 
52
“………”
 
53
“약주는 아니 잡숫구, 기집은 가차이 아니하시드래두, 가끔 더러 놀러래두 다니서야지, 하두 원, 글만 읽으시구 허시니, 소인 뵙기두 딱하십디다!”
 
54
“세상에 글 읽기 외에 더 질거운 일이 있다드냐?”
 
55
“그야 그럽습죠마는…… 참, 나리?”
 
56
“그래서?”
 
57
“한라산 구경이래두 한번 뫼시구 가깝쇼?”
 
58
“한라산 구경을?”
 
59
“네에!…… 아, 제주 땅에 오섰다가 여지껏 한라산 구경두 못하시다니 거
 
60
어디……”
 
61
“겨를 보아 한번 가자꾸나!”
 
62
“겨를 보셔서 무얼 하십니까? 바루 지척이니 내일이래두 가시죠?”
 
63
“쯧, 아무리나!”
 
64
목사의 하던 말이 아니라도, 몇잔 술을 즐기지 않는 배비장이 아니었다.
 
65
또 계집이 옆에 있어, 섬섬옥수로 술을 부어 묘한 노래로 더불어 권하는 잔을 들기를 흥그러워하지 않을 배비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 병의 술도 차지 않고, 방자 차돌이놈만 앞세우고서 이튿날 한라산 구경을 나섰다.
 
66
한라산은 듣던 바와 다름이 없었다. 때마침 성하라, 골골이 흐르는 옥같은 석간수가 더욱 상줄 만하였다.
 
67
그러한 계곡의 바위 위에 안자아 주종(主從)이 쉬고 있을 때였다.
 
68
인기척이 들리므로, 돌려다보니, 짐꾼을 앞세우고 시비를 데린 젊은 여인 하나가 계곡을 쫓아 올라오고 있었다. 바로 앞을 가까이 지날 때에 배비장은 무심코 그 젊은 여인을 마주 보았다. 배비장은 깜짝 놀랐다.
 
69
일언이폐지하면 천하 절색이었다. 한라산에 자주 신선이 내린다 하더니, 과시 천상 선녀의 하강인가도 싶었다. 더욱 배비장을 현혹케 하기는, 여인이 무슨 일인지 배비장과 눈끼리 마주칠 때에 쌍긋 한번 웃는 것이었었다.
 
70
꿈결같이 쌍긋 그렇게 웃고는 여인은 앞을 지나쳤다.
 
71
한 사오 보 갓을 무렵이다. 여인은 가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한번 더 쌍긋 웃는 것이었었다.
 
72
“나리!”
 
73
차돌이놈이 버럭 소리를 질러서야 배비장은 정신이 들었다.
 
74
“무얼 그렇게 보십니까?”
 
75
“응? 아닐다!”
 
76
“점잔찮이, 남의 댁 내행을!”
 
77
“아닐다! 저기 저, 바위가 퍽 기묘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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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전 고만 쉬시구, 내려가시죠?”
 
79
“조금만 더 쉬자꾸나?”
 
80
“저물면 어떡허십니까?”
 
81
“아따 이놈아! 탐승객이 날이 좀 저물기로서니……”
 
82
“………”
 
83
차돌이놈이 씽긋 웃으며 혀를 날름하는 것을 배비장은 보았을 턱이 없었다. 저만치 가고 있는 그 여인의 뒤태를 보기에 정신이 팔려서.————
 
84
여인 일행은 배비장이 있는 곳으로부터 한 백여 보는 더 가더니, 흐르는 물가에다 자리를 정하고 짐을 내려놓으며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여인은 연방 배비장을 도려다보기를 마지 않았다. 배비장은 마침내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85
“얘? 차돌아?”
 
86
“네에?”
 
87
“저 여인이 누구냐?”
 
88
“아니, 건 왜 물으십니까? 혹 다른 어른이시라면 그야말루 탐화봉접이시라니, 물으심직두 하시지만……”
 
89
“아닐다! 이런 심산중에 젊은 여인이 저렇게 왔기에 말이로구나!”
 
90
“네에!…… 아마 물놀이를 온 모양입죠!”
 
91
“물놀이?”
 
92
“여름이면 제주서는 여인들이 음식을 차려가지구, 깊숙한 산골짝으루 물놀이를 더러 가군 합죠!”
 
93
“여염집 여인들이?”
 
94
“그럼입쇼?”
 
95
“허어!”
 
96
“인전, 일어스시죠?”
 
97
“좀더 쉬자꾸나?”
 
98
“날이 저물어 옵니다!”
 
99
“차돌아?”
 
100
“네에?”
 
101
“내가 갈증이 몹시 나는구나?”
 
102
“물 잡수시죠?”
 
103
“그릇이 있어야 물을 먹지 않느냐?”
 
104
“산중에서 그릇을 찾으시니 딱하신 말씀이십니다! 손으루 움켜 쥐고 자시든지, 업드리시구 입으루 자시든지 하셔얍죠!”
 
105
“양반의 체모에 그야 될 말이냐!……”
 
106
“그럼 참으셔얍죠!”
 
107
“차돌아?”
 
108
“오늘은 차돌이를 여러 번 부르십니다?”
 
109
“너 저 여인께 가서……”
 
110
“네에?”
 
111
“아따 이놈아, 무얼 그대지 놀라느냐?”
 
112
“아니, 남의 여염댁 여인께 가리시니 말씀입죠!”
 
113
“산중인데 상관 있느냐? …… 가서 표주박이라두 잠깐 빌려가지구 오려므나?”
 
114
“아니, 섣불리 누굴 죽이실 령으루다, 그런 심부림을 시키십니까?”
 
115
“걱정 마라! 뒷일은, 내, 감당할 테니……”
 
116
“전 그럼, 모릅니다!”
 
117
“오냐. 어서 가서 표주박이 되었든 모엇이 되었든 좀 빌려가지구 오느라.”
 
118
차돌이놈은 몇번 더 다진 후에 비로소 여인 일행이 차일을 치고 자리를 펴고 하는 곳으로 내려간다.
【원문】배비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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