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느덧 동천이 휘엿이 밝았다. 그 밝은 빛이 궤짝 틈사구니로 비쳐들어, 궤짝 속의 발가벗은 배비장은 날이 밝은 줄은 알았다.
4
“업귀신 사시오! 업귀신 사시오! 말하는 업귀신 사시오! 업궤 얼러서 막 싸게 파오! 업귀신 사시오!”
5
사내가 지고, 놈이 이렇게 목청을 돋우어 외우면서, 사람이 자주 왕래하는 거리를 간다. 마침 장날이었다.
6
한 곳에 이르니, 한 백성이 나서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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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귀신 볼기짝 살이 간질병에 백발백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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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 간통에다 업궤 속에 숨은 놈의 볼기짝 살은 간질에 즉효라고 들었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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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응하려다 꿀꺽 말을 삼켰다. 볼기짝살 한 칼쯤 떼어내더라도 목숨은 살아나 테니 상관 아니라지만, 그 소리를 했다간 당장 이 본부놈에게 간밤의 일이 들킨 바 되어, 그 무서운 한주먹에 박살을 당하고 말 테니 오히려 주검을 재촉하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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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귀신 사시오! 말하는 업귀신 사시오! 업궤짝 얼려서 막 싸게 파는 업귀신 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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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귀신 볼때기살이 문둥병에 백발백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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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 간통하다 업궤 속에 숨은 놈은 볼때기살은 문둥병에 즉효라고 들었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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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응하려다가 차마 못하고 삼켜버린다. 이 본부놈에게 맞아죽지만 아니할테라면 볼때기살이 한 칼쯤 떼우더라도 목숨은 부지할 것이매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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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짓을 하면서 반일(半日)을 돌아다녔으나 아무도 이 업귀신을 사고자 하는 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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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와 놈은 길 옆에다 지게를 받쳐놓고 쉬면서 다시 공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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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사는 놈도 없으니 이 귀신덩이를 어찌하면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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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인제는 나도 별 슬기가 없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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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렇지, 제주에 말이 씨가 말르면 말랐지, 내 슬기가 밭을 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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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는 누설치 말라 이르지 않는가! 따라와 보면 알 걸 가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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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다시 지게를 지고 놈이 앞을 서서 얼마 지경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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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짝 속의 가짜 업신 배비장은 배도 고프고 사족도 아프고, 또 곰곰 생각하니 잠시 허랑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여, 불의한 짓을 하다가 이무슨 체면이며 고생인가 생각하니 절절히 뉘우침을 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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